동래 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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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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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임꼴은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한자가 다르더라도 한글 표기가 같으면 합산된 인구로 계산)

· · · · · 강전 · · · · · · · · · · · · · · · · · · · · ·

· · · 남궁 · · · · ·

· · · · · · 도시 · · 독고 · · · 동방 · · · 등정

· · · · · · · ·

· · 망절 · · · · · · · · 무본 · · · ·

· · · · · · · · · · · · · ·

· 사공 · · · · · 서문 · · · 선우 · · · · · 소봉 · · · · · · · · ·

· · · · · · 어금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장곡 · · · · · · 제갈 · · · · · · · ·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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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 · · · · · · · · · · 황목 · 황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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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萊 鄭氏
동래 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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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

부산광역시[1][2]

시조

정회문(鄭繪文)

중시조

정지원(鄭之遠)

집성촌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제오리
경상북도 군위군 효령면 금매리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우망리
강원도 판교군 군한리
전라북도 김제시 교월동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

인구

474,506명(2015년)

1. 역사
2. 집성촌
3. 분파
4. 항렬
5. 주요 인물
5.1. 전근대 인물
5.2. 근현대 인물
5.2.1. 29세손
5.2.2. 30세손
5.2.3. 31세손
5.2.4. 32세손
5.2.5. 33세손
5.2.6. 계보불명

1. 역사

동래 정씨는 대대로 호장이었으나 3세(三世)인 정목(鄭穆)이 고려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정2품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에 오르고, 정목(鄭穆)의 아들로 그의 네 아들인 정제(鄭濟), 정점(鄭漸), 정택(鄭澤), 정항(鄭沆)이 모두 문과(文科)에 오름으로써 명족(名族)이 되기 시작(始作)하였다. 정선조(鄭先祚)의 후손은 계속 동래(東萊)에 남아 향리직(鄕吏職)에 종사하기도 하였다.

동래정씨 2대조인 정문도의 묘는 현재 부산시에 남아있는데 이 묘에는 풍수지리적인 전설이 있다.

고려 초에 풍수에 일가견이 있는 고익공이라는 사람이 동래지역 호장으로 내려왔다. 그는 화지산 풍수를 볼 때마다 “좋기는 하나……”라면서 뒷말을 잇지 못하였는데 정문도와 아들 정목은 그 이유를 묻지 못 했다. 그 후 고익공은 경상도 안찰사를 거쳐 개경으로 전출되었고 정문도가 세상을 뜨자 아들 정목은 고익공의 말이 생각나서 아버지 묘소를 화지산에 쓰도록 하였다.

그런데 다음 날 묘소에 가 보니 누군가 묘소를 파헤쳐 목관이 드러나 있었다. 다시 목관을 묻고 감시하는데 밤에 도깨비들이 나타나 말하기를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이따위 목관을 묻느냐. 적어도 금관(金棺)을 묻어야지”라고 하면서 묘를 파헤치고 사라졌다. 정목이 근심하고 있는데 한 백발노인이 나타나 “도깨비 눈에는 보릿짚이 금빛으로 보이니 보릿짚으로 목관을 싸면 다시는 묘를 파헤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날이 새자 보릿짚으로 목관을 싸서 묻었더니 이번에는 도깨비들이 “금관이야. 이제 됐다”라면서 사라졌다. 그 후로는 다시는 도깨비가 나타나 묘를 파헤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해 여름 어느 날, 뇌성벽력이 천지를 진동하더니 황령산의 괴시암 바위가 산산조각으로 부셔졌다. 아버지의 묘소를 쓰고 난 후 정목은 개경에 있는 고익공을 찾아가 아버지를 화지산에 모셨다고 하자, 고익공이 깜짝 놀라면서 집에서 내쫓으려고 하였다. 이에 정목이 아버지의 묘를 쓰고 일어났던 일을 자세히 말하자 고익공은 그제야 안도하면서 “그 바위는 묘를 지내면 후손에서 역적을 낳을 역적바위인데 이제 그 것이 깨졌으니 화근이 사라졌다”[3]면서 정목을 거두어 관직에 출사하게 하고 자기 딸과 혼인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문종대에 정목은 실제로 과거에 급제하였고 네아들 역시 모두 문과에 올랐다. 고려초 풍수지리가 널리 퍼지고 동래정씨가 고려시대부터 관직에 대거 진출하기 시작해 조선시대까지도 양반가였음을 나타내는 전설이다.

이 묘는 현재에도 부산 진구 양정1동 화지공원에 남아있다.

2. 집성촌

3. 분파

  • 교서랑공보파(校書郞公派: 6세)
    • 전서공규파(典書公規派: 12세)
    • 설학재공구파(雪壑齋公矩派: 12세)
    • 문경공흠지파(文景公欽之派: 13세)
    • 참의공절파(參議公節派: 12세)
    • 평리공리파(評理公釐派: 13세)
    • 굉파(宏派: 13세)
    • 참판공개보파(參判公介保派: 13세)
  • 첨사공필파(詹事公弼派: 6세)
    • 호군공회종파(護軍公會宗派: 13세)
    • 윤창파(允昌派: 9세)=동지공진파(同知公軫派: 12세)
    • 수찬공옹파(修撰公雍派: 13세)
    • 직제학공사파(直提學公賜派: 13세)
    • 유파(游派: 13세)
    • 참봉공급파(參奉公伋派: 13세)
    • 대호군공인파(大護軍公絪派: 11세)
  • 호장공선조파(戶長公先祚派: 3세)

4. 항렬

29세손

인(寅)○, 진(鎭)○

30세손

○모(謨), ○운(雲)

31세손

진(鎭)○, 수(秀)○

32세손

○영(泳), ○하(夏)

33세손

상(相)○, 용(用)○, 우(遇)○

34세손

○희(熙), ○구(九), ○봉(鳳)

5. 주요 인물

5.1. 전근대 인물

5.2. 근현대 인물

5.2.1. 29세손

5.2.2. 30세손

5.2.3. 31세손

5.2.4. 32세손

5.2.5. 33세손

5.2.6. 계보불명[8]


  1. [1]동래도호부, 동래군. 현재의 동래구.
  2. [2] 여기서 동래는 현재의 동래구 뿐만이 아닌 현재의 부산광역시 전역(기장군, 강서구제외)을 이르는 말이었다.
  3. [3] 후에 역적으로 몰려 죽은 정여립이 동래정씨 대호군파라는걸 생각하면...
  4. [4] 꽤 살고 있긴 하나 주요 거주지는 아니다.
  5. [5] 6.25 이전에는 동래정씨가 지역의 유지로 많이 살았으나 6.25때 인구가 많이 줄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6. [6] 호적상의 이름은 정현수라고 한다.
  7. [7] 아버지가 31세손 항렬을 사용한다.
  8. [8] 요즘은 돌림자를 쓰면 작명에 한계가 생겨서 피하는 경우가 많고, 한글 이름이거나 본명은 따로 두고 족보에만 돌림자로 올리는 경우가 있으므로 불명으로 정리해둔다. 또한 여성의 경우, 딱히 계보에 따른 돌림자를 신경쓰지 않는 점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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