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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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문서: 허준

대한민국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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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이름

한국어

동의보감(東醫寶鑑)

영어

[A]

프랑스어

[2]

국가·위치

대한민국 서울

소장·관리

국립중앙도서관

등재 유형

기록유산

등재 연도

2009년

제작 시기

1612년

대한민국의 국보
National Treasures Of Korea

공식명칭

한글

동의보감

한자

東醫寶鑑

영어

[A]

분류번호

국보 319호

소재지

서울특별시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경기도 성남시 한국학중앙연구원
서울특별시 관악구 서울대

분류

기록유산 / 전적류/ 활자본/ 목활자본

시설

25권 25책
24권 24책 / 17권 17책

지정 연도

2015년 6월 22일

제작 시기

조선시대 1596년 ~ 1610년

1. 개요
2. 특징
2.1. 영향
3. 비판
3.1. 인용의 오류
3.2. 한의학 정체와 동의보감
3.3. 재료 문제
3.4. 이상한 처방
3.4.1. 전녀위남
3.4.2. 투명인간?
3.5. 의사와 한의사 간의 논쟁
3.5.1. 의사들의 입장
3.5.1.1. 과학적 방법론의 문제
3.5.1.2. 신용의 문제
3.5.1.3. 해부학 생리학적 문제
3.5.1.4. 원전으로써 문제
3.5.2. 한의사들의 입장
3.5.2.1. 편찬 목적
3.5.2.2. '음양 오행에 억지로 맞추는 시각'?
3.5.2.3. 원전학으로써의 동의보감
4. 번역
4.1. 동의보감과 저작권법
5. 400년만의 재편찬
6. 그 외

1. 개요

대한민국 정부에서 지정한 국보 319호로 허준이 완성한 조선 시대의 의학서. <내경편>, <외형편>, <잡병편>, <탕액편>, <침구편>, <목차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세 동양 최고의 의서 중 하나로 국외에도 명저로 소개되었고 수차례 번역된 바 있다. 또한 2009년 7월 31일,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됨으로서 세계의 유산으로 거듭났다.

선조 때 당대의 어의(御醫사전참고)와 유의(儒醫사전참고)들이 왕명을 받고 중국과 한국의 의학 서적을 하나로 모아 연구, 편집 등 작업에 착수한 것을 광해군 3년(1610년)에 허준이 마무리하여 완성하고 광해군 5년(1613년)에 간행한 의학 서적이다. 총 25권 25책으로 나무 활자를 사용하여 발행하였다.[3] 모두 23편으로 내과학인 <내경편>, <외형편> 4편, 유행병·곽란·부인병·소아병을 다룬 <잡병편> 11편, <탕액편> 3편, <침구편> 1편과 <목차편> 2편으로 되어 있고, 각 병마다 처방을 풀이한 체제정연한 서적이다. 이를 허준은 동국(조선)의 실정에 맞는 의서라 하여 ≪동의보감≫이라 이름하였으며, 훈련도감 자본으로 발행되었다. 이 책은 중국과 일본에도 소개되었고, 현재까지 한국 최고의 한방 의서로 인정받고 있다. 사실 의학서의 절대량으로 보면 중국 쪽이 훨씬 많으나 체계적인 분류와 관리가 상대적으로 부족하였고 중의학 기록물에 대한 국가적 관심도 부족했던 점을 감안하면 동의보감이 일정 부분 앞선다.

한의학에 대한 기록이다 보니 중국 쪽이 얽힌 일이 있다. 2005년 한국은 보건 복지부를 중심으로 2013년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 기념 사업 추진단'을 통하여 체계적으로 등재 준비를 진행하였다. 이는 언론을 통해 중국에도 알려졌으며 2005년 당시 강릉 단오제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로 상처입은 중국의 자존심을 다시 한번 건드리게 되었다. 게다가 한국이 중의학을 한국 문화 유산으로 등재한다는 중국 찌라시들의 자극적 선동까지 더해졌다. 결국 2009년 동의보감은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등재사유는 예방 의학 측면과 공공 의료 서비스 측면에 대한 선구적인 면에 대한 고평가이다. 다만 동의보감이 중국의 모든 의서보다 우월하다는 자뻑 지나친 주장은 맞지 않다.

강릉 단오제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로 뜨겁게 데인 중국이 이후 허겁지겁 무형문화재 보호에 나섰듯이 이후 허겁지겁 중의학 서적 등재에 나섰으며 2011년 본초강목과 황제내경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였다.

동명의 소설 책도 있다.[4] 해당 책은 발간 당시 공전의 대 히트를 기록했고, 이후 tv 드라마 <허준>으로 만들어졌는데, 드라마 역시 대 히트를 쳤다.

2. 특징

목차에 내경편은 인체의 본질인 정(精), 기(氣), 신(神), 그리고 그 '정ㆍ기ㆍ신'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현상들(피, 꿈, 목소리, 말, 진액(津液), 담음(痰飮)) 및 '정ㆍ기ㆍ신'을 만들고 담고있는 오장육부, 기생충, 소변, 대변 순으로 기술되며, 각기의 작용 및 생리, 병리 상황을 기술하고 있다. 외형편은 인체의 상부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순서대로 기술되며, 이는 기의 상승과 하강, 출입의 원리 및 내상 및 외감의 진행 방향이 외형에도 반영됨을 이해시키는 흐름으로 기술되어 있다. 한마디로 한의학의 기본 원리를 목차만 봐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구조로 편집하고 있는 것이다.

각 항목에 병증(病症)과 처방의 실질적인 것만을 빠짐없이 선택, 수록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출전(出典)이 밝혀져 있기 때문에 각 병증에 대한 고금의 치방(治方)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하였고, 그 밖에도 속방(俗方)을 기재하였다. 동의보감의 위치는 송대 이후에 무수히 많이 나왔던 의서들의 범람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맞물리기도 한다. 왕실 서고나 민간에 떠돌던 수많은 의서들 중에 정말 필요한 내용이 무엇이고, 어떤 지식을 당시 의사로서 알아야 되는가의 관점에서 정리한 것인데 당연히 이 과정에서 의원의 의학관과 지식, 임상 경험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다만 중국에서 만들어진 책을 참조하는 과정에서 국내에 자생하지 않는 약초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식으로 기록한 부분이 있어, 편집에 대한 아쉬움을 남긴다.

집필 당시에 나름대로 검증되었던 거의 모든 의서를 참조한 것으로 보이며 아마도 조선 세종 ~ 세조에 걸쳐서 발간했던 의방유취가 기초 원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5] 특히 상한론황제내경, 의학입문을 인용한 부분이 많다. 물론 독창성 부분에서 떨어진다고 이 책이 얕보일 이유는 없다. 애시당초 의학이라는 실용적인 학문은 100% 창작, 독창적일 수가 없다. 당장 동의보감이 참고한 상한론이나 내경조차도 그전에 있었던 다른 텍스트와 임상 자료를 참고해서 만들어졌다는 연구가 있다. 또한 상한론, 의학입문 등이 외부의 기운 중심이거나 질병, 병증 중심이었던 데에 비해, 도교적 관점을 도입하면서 사람 중심의 의학을 정립한 공도 있다. 실제로 서문에 '병이 같더라도 사람에 따라 치법이 다르다'는 걸 언급하고 시작한다. 또 이후 한의학의 방향을 외사(外邪)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으로 바꾸기도 했다. 이는 중국에 비해 한반도가 기후가 다양하지 않아 풍토성 질환이 적다는 점에도 기인한다.

최초로 집필된 뒤 후대에 국내의 현실에 맞게 재편집되었다는 의견이 있는데, 비슷한 시기에 나온 경악전서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고, 청나라 말에 대두된 온병학의 내용도 빠져있는 것으로 보아 재편집이라기보단 중국을 기준으로 한 약방문 조합식을 국내에 맞게 변경한 것이란 의견 쪽이 더 신뢰도가 높다. 동의보감 시절에 경악전서는 있지도 않았고, 경악도 의사가 아니었다. 한참 동의보감(1596년 ~ 1610년)을 쓰고 있던 기간은 임진왜란 ~ 정유재란으로 한중일 3국이 한반도에서 전쟁 중이었다. 경악전서 서문에 따르면 장경악도 명나라의 군인이어서 이 국제 전쟁에서 참전했지만 군인으로서는 성공하지 못하고 귀환했다. 이후에 의사로 직업을 바꾸고 성공해서 유경과 경악전서(1624년)를 저술하였다. 시간적으로 따져보면 장경악이 어쩌다가 동의보감을 보았다면 모를까 동의보감이 경악전서 내용을 포함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 외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첫째, 도교적 공리(道敎的功利)와 실용주의적 사상을 적용하여 정확성과 실용성에 중점을 두어 그때까지 번잡다기(煩雜多岐)했던 많은 의서의 의술적 통념을 취사선택하여 정수(精髓)만을 골라 의술이론과 임상에 완벽을 기하였다.

둘째, 동양 의학사에서 최초로 정(精)·기(氣)·신론(神論)에 근본을 두고 내장기(內臟器)의 생리적 기능변조(機能變調)와 그 직접적인 병증을 일괄하여 내경편(내과)에서 새로 다룬 저작이다. 이것은 지금의 정신 신체 의학(心·身)과 같다. 즉, 의술의 본의(本義)를 정신 수양과 섭생에 두고, 복약과 치료는 2차적 의의라고 하였다. 이것이 《동의보감》 전편의 일관된 중요한 특색으로서 350여 년 전에 현대 의학의 선구적인 학설과 치료법이 이미 강구되었다는 사실은 경이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고, 《동의보감》이 한방(漢方)이면서도 한방적(韓方的)이라는 의의가 여기에 있다.

셋째, 당약(唐藥 : 중국에서 나는 약재)이 아닌 한국에서 나는 약재를 권장하였으며, 탕액편에 나오는 약물학의 약재는 속명(俗名)을 일일이 한글로 부기하여 채약(採藥)과 사용이 편리하도록 하였다.

넷째, 각 고방의서(古方醫書)를 고증할 때 인용한 학설이나 처방의 출처를 명시하여 자신의 독자적인 억설이 아님을 밝혔고, 후학들에게 연구의 여지를 남겨두었다. 현대 논문에서나 볼 법한 인용 출처 표시를 확실히 해 두었다.

다섯째, 각 처방약의 용량에 대한 관심인데, 고서에 표시된 것은 용량이 너무 많아 한국인의 체질에 적당치 않음을 지적하였으며, 오랫동안의 임상 경험으로 얻은 지식을 살려 표준 용량의 기준을 만들어 적의(適宜)를 가감하도록 하고, 그 복용법까지 명시하였다.

여섯째, 민간에서 아쉬운 대로 쉽게 조제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단방약을 집어넣었다.

2.1. 영향

동의보감이 한국한의학계에 끼친 영향은 다음과 같은 점들을 들 수 있다.

  • 책이 워낙 비싸다 보니 이 책을 구하기 위한 계를 만들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마을 단위로 구비하여 글(한문)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의사를 겸하게 되는데, 이렇게 유학자이면서 의술 지식도 갖춘 유의(儒醫)들이 늘어나자, 직업 자체로는 중인 계급인 한의사의 위상이 크게 상승되었다.
  • 저서의 완결성이 뛰어나 전체적인 한의학의 질을 크게 끌어올렸다. 현재도 동의보감을 공부해서 치료하였을 때 상당한 정도의 적중률을 보장할 정도이다.
  • 사실 동의수세보원의 내용도 동의보감을 상당수 인용한 것이다. 게다가 현대의 대학 교과서까지도 동의보감을 기본적인 근거로 하여 만들어졌다. 결국 동의보감은 현대 한국 한의학의 모태가 된 셈이다.
  • 동의보감의 방대한 분량을 요약하고, 명의 이천이 저술한 의학입문의 요점을 합쳐서 방약합편이라는 책이 나오기도 했다.

조선 시대 일본에 간 통신사가 병이 나자 일본인 의사가 치료를 하러 왔는데 "야 저 야매 왜놈 의사는 집에나 가라고 전해라~"라는 발언을 했다. 그 말에 화난 일본인 의사가 "난 비싼 동의보감 보고 공부한 제대로 된 의사인데 왜 그러냐?" 하고 화를 냈고 마침 의술에 조예가 있던 통신사가 정말 공부했나 시험을 해본 후 치료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으로 파견 나간 사신이 중국 책방 거리에 책을 사러가면서 "조선에서 출판된 책으로 팔리고 있는 것이 뭐 있을까?"하고 돌아다녔는데 조선 책으로 명나라에서 출판되어 있는 것은 동의보감 뿐이었다고 한다. 내심 "우리도 잘 나가는 문화국"이라는 생각에 조선 양반이 쓴 성리학 책 등을 기대했겠지만 실상 인정받고 있는 것은 동의보감 뿐이었다고 한다.[6]

3. 비판

3.1. 인용의 오류

앞서 '특징' 부분에서 설명했듯이 동의보감은 인용 출처를 철저하게 밝혔는데, 문제는 인용의 오류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자세히 찾아보면 황제내경의 문구는 물론이고, 의학입문의 내용조차도 잘못 적은 경우가 있다. 의학입문은 동의보감 저작 당시엔 명나라에서 들여온 의서 중에서 나름 신간이었다. 동의보감에서 인용한 최신간서적은 공정현의 만병회춘이다. 하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동의보감에서 인용한 출전들이 너무 방대한데다가, 최근까지조차도 그 원전들을 구할 방법조차 막막한 까닭에 후학들이 과연 어디가 어떻게 틀렸는지 비교 검증할 엄두도 못내었다는 점이다. 지금은 중국이 대다수의 고전 의서를 온라인 문서화한 덕분에 오류 발견이 매우 쉬워졌다. 한편으로는 출전 자체가 아예 세상에서 없어졌거나 애매해서 특정 서적으로 확정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3.2. 한의학 정체와 동의보감

'너무 뛰어난 나머지' 후대에 이제마동의수세보원사상의학이라는 개념을 새로이 들고 나오기 전까지 실질적으로 의학 이론의 발전에 장애를 가져왔다. 실제로 동의보감 이후에 한국 한의학은 어느 정도 정체 상태였으며 이는 마치 서양 과학계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끼친 영향과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다. 동의보감에 언급되어 있지 않은 경악전서 기반의 처방이나 온병학 등은 한국에서 비중이 상당히 작은 편이다. 동의보감의 양이 너무나 방대했기 때문에 그 가격과 부피 면에서 접근성이 떨어져 방약합편과 같은 요약집이 나오는 등, 당시 한의학은 그 발전 방향이 바뀌었을 뿐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도 동의보감 믿고 그 이상을 추구하지 않으려는 매너리즘이 생긴 건 사실이다. 너무 동의보감만 들먹이는 탓에 "한의학은 1610년 이후로 정체되있는거 아닌가?" 하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당시 한의학의 정체 현상은 임진왜란 이후 병자호란까지 이어진 일련의 전쟁으로 적잖은 양의 문서가 소실되었다는 것과, 조선 후기의 국력 쇠퇴 등의 시대적 요소 역시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조선 초기의 의방유취, 향약집성방과 조선 중기의 동의보감은 모두 국책 사업으로 제작했던 [7] 엄청난 분량의 백과사전식 의서였다. 또한 중국의 최신 의서들을 심혈을 기울여서 반영하였다. 동의보감에서는 1575년 간행한 이천의 의학입문, 1587년 간행한 공정현의 만병회춘을 인용한다. 불과 십 몇 년의 시간차가 있을 뿐이다. 허나 동의보감 이후의 관찬 종합의서는 1799년 정조(조선)가 명하여 동의보감을 요약할 목적으로 간행한 제중신편과 조선 멸망 직전인 1906년 고종 무렵의 의방촬요 정도뿐이다. 조선 후기는 더이상 관찬 종합 의서를 발간할 수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은 제도적으로 백성이 개인적으로 외국에 드나들거나, 무역하는 행위를 제약했다. 수입된 것이라면 의학 서적은 물론이거니와 약재조차도 국가가 나서지 않으면 전혀 유통시킬 수 없는 사회였다. 동의보감이 씌여진 시기는 역사상으로 중국의 명 - 청 전환기였고, 사대주의에 입각한 조선 지식인들이 오랑캐(청나라)의 학문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던 것도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렇게 조선의 지식 풍토가 경색되어가는 와중에도, 중국 청나라 건륭제 시기에는 조선이 제중신편을 발간했던 시점보다 앞선 1782년, 거대한 규모의 서적 정리 사업인 사고전서를 이미 완성해 놓았다. 박제가와 같은 북학파(실학) 학자들이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분명히 최신 의서를 들여왔었을 텐데도 제중신편에는 1624년 간행한 경악전서까지만 반영되었다.

또 국토가 좁고 4계절이 뚜렷한 조선의 상황과, 외기(外氣) 중심의 의학으로 발전 방향을 잡은 중의학이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견도 있다. 이제는 점차 열대화가 되어가는 한국 기후를 볼때 사고의 중심을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로도 현대에 이르러서는 온병학을 점차 강조하는 추세이다.

3.3. 재료 문제

보통의 의서가 확실한 치료 방법에 중점을 두는 반면 동의보감은 일반 백성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에 중점을 두어 약효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즉, 동일한 병에 대해 보통의 의서가 값비싼 약재를 쓰는 확실한 약제법을 제시한다면 동의보감은 약효는 다소 떨어지더라도 산이나 들에서 쉽게 구할 수 있거나 약방에서 값싸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먼저 제시한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약재를 혼합했을 때 더 효과가 뛰어난 경우에도 가급적이면 단일 약재나 재료 배합이 적은 치료법을 우선시한다.

재편집되면서 지나치게 국산 약재로 대체하는 것을 선호한 나머지 일부 약재의 기원이 불분명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문제지만 안 그런 경우도 있다는 게 문제이다.

3.4. 이상한 처방

중금속 관련 처방은 현대 의학적 관점에서 어쩔 수 없는 오점으로 남는다(물론 도교 자체의 결함이긴 하다). 예컨대 수은을 장복하면 귀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게 있는데, 수은 중독이 되면 환각을 보거나 환청을 듣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8]물론 좋은 건 아니다.

그 외에도 예를 들자면 매우 많다.

  • 부부가 서로 사랑하게 하는 처방(=원앙새 국을 먹거나 뻐꾸기 머리뼈를 차고 다니면 된다)
  • 물에 빠져 죽은 사람 살리는 처방, 목매 죽은 사람 살리는 처방(아침에 목매 죽은 사람은 저녁에 살릴 수 있어도 저녁에 목매 죽은 사람은 아침에 살릴 수 없다)
  • 딸 아들 가려 낳는 방법 6가지(예 : 월경 끝나고 1일, 3일, 5일, 7일, 9일 홀수날 수태하면 아들 낳는다
  • 아들 낳는 방법 : 월경이 끝나고 1일, 3일, 5일…… 홀수 날 수태하면 아들, 남편의 오줌에 담가둔 계란을 먹으면 아들, 좌로 누워 수태하면 아들 등), 또는 여자를 남자로 바꾸는 방법 등
  • 가위에 눌린 사람에게 불을 비추거나 앞에서 갑자기 부르면 죽을 수도 있다. 이때는 오직 그 사람의 발뒤꿈치나 엄지 발가락 발톱 근처를 아프게 깨물어 준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 원숭이가 말을 하게 하려면 수은을 먹이면 된다. 살려줘.
  • 악몽을 예방하는 법 : 호랑이 해골로 만든 베개를 베고 잔다. 오래된 수필집을 보면 악몽 때문에 호랑이 해골을 구했는데 너무 커서 베고 잘수가 없다고 투덜거리는 내용도 있다고 카더라.[9] 이런 정도.
  • 주술도 나온다. 목에 가시 제거법으로, 동쪽으로 흐르는 물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무당이 외우는 주문을 외우라고 한다. 여율령.
  • 매 맞을 때 덜 아프게 해주는 처방 : 이 약의 이름은 '기장산(奇杖散)'이라는 약인데 백랍 1냥을 얇게 썰어 사발에 넣고 따뜻한 술에 우려서 먹으면 된다고 한다. 여기서 백랍이란 재료는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꿀벌의 벌집을 말하고 나머지 하나는 물푸레나무의 진액을 말한다. 기장산을 만드는데 쓸 백랍은 후자를 말한다. 이론상으로는 물푸레나무 진액에 정말로 통증을 완화시켜주는 성분이 있기는 하지만 이 약을 먹는다고 해서 곤장을 100대 맞아도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쌩쌩한 정도는 아니다.
집대성 및 재편집의 성격이 강한 동의보감의 특징을 생각해보면 저자인 허준이 저런 걸 다 믿었다고 생각하진 말자. 딸 아들 가려 낳는 방법의 경우(전녀위남법) 이미 조선시대에도 믿지 않았다.

3.4.1. 전녀위남

동의보감에는 소위 '아들 낳는 법'이라고 알려진 전녀위남법(轉女爲男法)이 수록되어 있다. 사실 전녀위남법을 기록한 것은 동의보감이 처음이 아니며, 1434년(세종16)에 노중례가 편찬한 태산요록(胎産要錄)과 이를 언해하여 1608년(선조 41) 간행된 언해태산집요(諺解胎産集要)에도 실려 있고, 심지어 1433년(세종 15)에 간행된 향약집성방에는 거꾸로 딸 낳는 법인 '전남위녀법’도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처방들은 이미 조선 당시의 의관들도 사실로 믿지 않았다. 아래는 승정원일기의 영조 8년 11월 14일 기사다.

서명균이 말하기를, “진부한 약재라 해도 효과가 아주 뛰어난 경우가 있으니, 노년의 팔미원(八味元)과 부인의 태산약(胎産藥: 임신/출산시 복용하는 약)이 다 뚜렷한 효과가 있음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송인명이 말하기를, “의가(醫家)의 남녀의 성별을 바꾼다는 설(전녀위남)은 거짓입니다만, 양태(養胎: 임신의 조리) 같은 경우에는 분명 효과가 있지요. 옛말에 태임(太妊: 周나라 文王의 어머니)께서 태교를 하셨다 하는데, 태교도 효과가 있으니 약을 써서 양태(養胎)를 하는 것이 어찌 효과가 없겠습니까.”

어의 6명과 고위 관료들이 모여 왕의 진료를 논하는 자리에서, 대놓고 전녀위남을 거짓이라 하고 있고, 이에 딴지를 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3.4.2. 투명인간?

잡방문에 은형법(隱形法)이라는 처방이 있다. 개의 담(膽)을 포함한 세 가지 본초로 구성되어 있으며 효과는 '隱形(직역: 형체를 숨김)'이라고 되어 있다. 이 처방을 KBS 스펀지에서 '투명인간이 되는 법'으로 해석하여 실험했지만 당연히 투명인간이 되지 않았다(...). 재료는 나와있는데 그 재료를 배합해 약을 제조하는데 필요한 수량이나 무게가 세세히 안 나와 있는 데다가 '隱形'의 해석 자체가 고증을 거치지 않았기에 의미있는 실험은 아니다.물론 투명인간이 될리는 없다.

이를 두고 세간에는 동의보감에 '투명인간이 되는 법'이 있다고 회자되었다. 그런데 우석대 한방병원에서는 동의보감이 인용한 원전(原典)을 고증하여 이 처방이 실은 안구의 염증성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동의보감의 '투명인간이 되는 법'은 진짜일까?[10] 참고. 여기서 개의 담은 눈의 고름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고 나머지 본초는 항염증 작용이 있다. 따라서 '隱形'이란 시야를 막는 고름을 없애는 걸 의미한다는 주장이다. 환자의 입장에선 눈 뜨면 장애물이 계속 '보이는' 셈이기 때문. 요즘의 감각으로 보면 은형법 같은 말이 썩 좋은 표현은 아니나 예전에는 전대의 표현을 고치지 않는 것이 관례였으므로 그대로 썼다고 한다. 조선왕조실톡 261화에서도 이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다. #

3.5. 의사와 한의사 간의 논쟁

3.5.1. 의사들의 입장

동의보감에는 아주 황당한 처방이 많이 존재한다. 한의학적 설명의 한계인 듯하다. 올바른 처방이냐, 아니냐가 문제이다.

3.5.1.1. 과학적 방법론의 문제

먼저 과학적 방법론의 문제가 있다. 현대 의학과 차이를 보면 현대 의학에서는 아무리 히포크라테스가 서술했다고 해도 '그건 잘못이다.'라고 아주 단순하게 선을 그어 버린다. 잘못은 잘못이지, 변호를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한의학은 과학적 관점에서의 명백한 잘못도 잘못이라고 하지 못하는 특성이 있다. 한의학이 또 다른 과학을 주장하기 위해 과학적 방법론과 통계학적 검증을 거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의사들이 한의학을 까고 비웃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학은 비판을 적극 수용하고 실험하고 검증한다. 그러나 한의학은 이러한 비판을 거부한다. 그러나 올바른 과학자, 의사라면 아무리 보기 싫은 비판이라도 그 비판을 남겨두고 재비판하는 방법을 일반적으로 택한다. 논쟁과 토론으로 살아남아야 올바른 지식이라고 본다.

3.5.1.2. 신용의 문제

허준이 황당한 내용은 믿지 않되 집대성의 성격상 기록만 해 두었을 것이라는 시각도 문제가 된다. 정말 허준이 믿지 않았는데도 처방을 기록했다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지가 문제가 된다. 또한 한의사들은 허준이 믿지 않았다는데 더 중요한 건, 허준은 믿었다는 거다. 심지어 주술까지 수록했다.

허준을 변호하기 위해 허준은 그것을 실제로 믿지 않았을 거라 주장하지만, 그렇다면 더욱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동의보감에 어떤 내용을 믿을 것이고, 어떤 내용은 믿지 않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사실 동의보감에는 위의 예 외에도 황당무계한 내용이 많다. 심지어 정액을 피로 만드는 법도 있고, 엄마 배 안의 태아의 성별을 바꾸는 처방도 있다. 이건 믿어라, 저건 믿지 마라 정도의 구별이라도 좀 해 두시지..

3.5.1.3. 해부학 생리학적 문제

해부학, 생리학 면에서도 문제가 된다. 한의학은 현대 생물학으로서는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는 장부론을 논하고 있다. 음양 오행에 억지로 맞추는 비과학적 시각이 한의학의 근본적인 한계이다.

3.5.1.4. 원전으로써 문제

그리고 많은 한의대에서 아직까지도 동의보감 원전 수업을 열면서 교육한다. 적어도 의대 본2 ~ 3에서 라틴어 원전을 직접 인용한 책으로 임상 수업을 하지는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는 시작부터 틀린 말이다. 전국 12개 한의과 대학에서 동의보감을 단독 과목으로 개설한 곳은 4개 뿐이다. 관련된 사항은 아래 반론 항목에 후술되어 있다.

3.5.2. 한의사들의 입장

동의보감에 황당한 처방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이건 대부분의 한의사들도 인정을 한다.한의사들도 아프면 동의보감대로 처방하지 않고 종합병원에 간다.덕분에 한의사들이 욕을 많이 먹는다.

3.5.2.1. 편찬 목적

동의보감은 애초부터 허준이 조선 정부의 명령으로 조선에 존재하고, 또한 이루어지고 있던 모든 처방들과 당시로서는 모든 부분에서 관련된 말 그대로 민간 요법이나 주술적 요법까지 전부 다 체계화하여 정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발간된 책이다.

이것을 위하여 당시 조선과 중국의 거의 모든 주요 의서들을 수집하는 것은 물론, 조선의 각 군현에서 이루어지던 민간 요법이나 주술 요법까지 전부 다 체계화하여 기록해야 했던 것이 바로 허준이 어의로서 총 지휘하던 동의보감 편찬 작업이었다. 따라서 허준은 동의보감을 지을 때 의서에 있던 텍스트를 그대로 옮겨와 출처를 표기하며 처방에 기록하고 체계화했다.

허준이 믿었느냐, 안 믿었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동의보감의 편찬 목적은 조선에 존재하고 있던 모든 한의학적 처방은 물론 각종 기타 등등의 민간, 주술 요법까지 총동원해 기록하고자 한 것이다 .

예를 들어 경옥고에 대한 처방을 동의보감에서 소개할 때는 이걸 매일 먹으면 360세 까지 산다고 적혀있는데, 이것을 허준과 당대 임금 및 관료들이 믿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한 동의보감 잡방에는 불 피우는 방법, 자석이 남쪽을 가리키는 방법, 옷에 묻은 기름 때 제거하는 방법들도 있다. 한마디로 뭔가 백성들에게 도움이 될 법한 것, 혹은 누군가가 그것을 위하여 사용한다고 말한 모든 잡다한 것까지 수록한 것이다.

민간 요법과 주술 요법을 정리한 책이기 때문에 주술 내용이 책에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마음이 번잡할 땐 불경이나 주기도문을 외우는 것이 좋다고 말하면서 그것 둘 모두를 수록하면 수록자는 불교와 기독교 모두를 믿는단 말인가?

3.5.2.2. '음양 오행에 억지로 맞추는 시각'?

당연히 한의학의 역사에서 적어도 최근 100년을 제외한다면 한의학은 지금의 자연 과학적인 시각이 들어온 적이 없었다. 병이라는 현상에 한의학적 치료술기인 침구학과 각종 처방을 사용하고 이에 대한 효과와 치료경과 관찰이 이어지면서 현재의 한의학 치료술기와 처방들이 경험론적으로 만들어져 온 것이다. 여기에 음양 오행이 사용된 것이야 당시로서는 자연을 설명하는게 음양 오행론이라는 세계관 철학 뿐이었으니 당연했다. 또한 한의학은 과학적 통계론과 접근 방법을 거부한다는 것 역시 이건 일부 의사들의 착각이다. 최근에는 한의학에 대한 논문들도 많이 출판되고 있으며 객관성 확보를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3.5.2.3. 원전학으로써의 동의보감

한의대에서 원전학으로 동의보감을 교육한다는 것이 시대 착오라는 주장은 애시당초 '원전학'의 개념조차 이해못했기에 나올 수 있는 비판이다.

애시당초 '원전학'은 수천년간 축적되어 오면서 쌓인 텍스트가 수록되어 있는 의서들을 읽고 이해하거나, 혹은 의서를 저술한 저자의 의도, 역사를 이해하거나 파악하기 위해 가르치는 과목이다. '임상'으로 쓰이는 '임상 과목'과는 그 목적부터 완전히 다른 과목이라는 의미이다.

동의보감이 원전 수업에 쓰이는 이유는 근대 이전 역사를 통틀어 한국에서 저술된 의서, 혹은 의학 백과사전 중 동의보감이 향약을 가장 많이, 또한 제대로 수록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라틴어로 된 의서를 가르치는 것이 아닌, 영어 문법과 단어들을 가르치는 가이드라인이 바로 원전학이라는 것.

실제로 원전 수업은 의서에서 무작위로 추출된 예문들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주된 과정이다.

요약하자면 실제 임상에서 사용하라고 있는 '임상 과목'이 아니라, 어떤 의서라도 읽고 판단하여 정보를 선택하거나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원전학이고, 그 원전학의 교재로 쓰이는 것이 동의보감인 것이다. 한의대 교육 과정에 대해 철저하게 무지가 깔려있기에 가능한 비난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선 주석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많은 한의대에서 동의보감을 정식으로 교육한다는 것도 철저히 틀렸다. 전국 12개 한의과대학 중 동의보감이 아예 과목으로 개설된 곳은 대구한의대, 대전대, 우석대, 세명대 뿐이다. 언제부터 많은이라는 의미가 30%정도의 의미에 쓰였는지 의문. 그나마도 대구한의대와 우석대학교는 '전공선택'으로 동의보감이 개설되어 있는 형편이며, 대전대학교는 아예 Reading & Comprehension이라는 이름으로 읽는 것과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대문짝만하게 표방하고 있으며, 전공으로 매 학기 1학점 씩 여러 학기에 걸쳐 배우는 것은 세명대가 유일하다. 그나마도 세명대 역시 대전대와 동일한 개념으로 동의보감을 교육하고 있다. 게다가 한의대마다 할당된 인원들을 생각해보면 동국대, 동의대, 원광대 그리고 경희대가 빠진 것부터 한의대생 다수는 동의보감만을 따로 배우는 과목과 스치지도 않는다.

이런 점은 언급되지도 않는 것에서 전형적인 트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애초에 배우는 목적과 이유를 알지도 못한 채 떠드는 꼴에 불과한 것이다.

4. 번역

동의보감은 한문으로 되어 있거니와, 현대 말과 맞지 않아 이를 개선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이 있어왔다. 동의보감을 최초로 번역한 사람은 선비인 허민이다. 1964년에는 『동의보감』(상중하, 동양 종합 통신 대학 발행)을 완역하였다. # [11]

어렵고 난해한 동의보감을 쉽게 풀어서 쓴 역주본도 나오고 있다. 2012년 현재도 출간 진행 중으로 동의과학연구소 겸 양재동일한의원 원장인 박석준 씨 주도로 2002년 동의보감 완역본 1권 내경편이 발간되었고 2008년 동의보감 완역본 2권 외형편이 발간 되었다. 2권 이후의 작업은 현재까지 없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국역·영역 작업을 완료하여, 2015년부터 한의학고전DB에서 공개하고 있다(원문, 국문, 영문 모두 열람 가능). 2014년 개발된 스마트폰용 앱인 '내 손 안의 동의보감'에서도 마찬가지로 전문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1972년 동의보감(東医宝鑑), 1973년 속동의보감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어로 완역되어 출판되었다.

4.1. 동의보감과 저작권법

남한의 제헌의원이자, 6.25 전쟁으로 입북한 조헌영 박사[12]의 주도로 국역본이 완성되었다. 이후 1982년 북한의 과학백과사전출판사에서 다시 펴낸다.

한의학계는 북한의 과학백과사전출판사로부터 판권을 옮긴 '동의보감'(여강출판사)과 허민의 '동의보감 국역증보'(남산당)를 주로 참고했으나, 내용과 해석이 분분하였다.[13][14]

이 북한 번역본을 둘러싼 사건 덕분에, 동의보감은 한의학 뿐만이 아니라, 한국 저작권법에도 큰 영향을 남겼다. 조헌영 박사의 번역을 참고한 여강출판사의 '동의보감'과 흡사한 법인 문화사[15]의 '동의보감' 국역본이 나왔는데, 여강출판사 측이 이를 고소한 것이다. 하급심에서는 손해 배상을 하라는 판결이 나온 적이 있다. 2001년부터 재판이 진행되었는데, 2005년 경 법원이 북한과의 판권 계약을 주장한 여강출판사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하여 북한에 조회를 하자, 북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저작권사무국'[16]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저작권사무국은 저작권자의 승인과 저작권사무국의 공증 확인서가 없는 한 남측에서의 우리 저작권에 대한 이용은 저작권 침해로 된다는 것을 알립니다.라는 공문을 보냈고, 이에 법원은 저작권을 주장한 원고에게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 [17] 원고는 북한 출판사가 1978년에 조선족 문화 예술관에 판권을 위임하고, 남한인이 그곳에서 판권을 취득해 왔다고 주장했으나, 북에서는 이런 일이 없다고 한 것이다. 북한은 공산 국가라 저작권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남북한은 저작권 관련 국제 협약인 베른 협약에 가입하고 있다. 북한의 법학사전 설명을 보면, “과학, 문학 또는 예술의 창작품에 대하여 창작자가 가지는 권리"가 저작권임을 명시하고 있다.

5. 400년만의 재편찬

우수한 한의학 의서이긴 하지만, 21세기 현 상황에선 부족한 점이 많이 있다. 이에 '한국한의학연구원'은 동의보감 편찬 400년만에 재편찬 사업을 2012년에 추진하였으며, 2016년까지 집필을 완료하고 편집 과정을 거쳐 2018년에 공개할 예정이라 한다.

동의보감은 1613년 발간돼 지금까지 한의학 대표 교과서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17세기 이후 등장한 임상적 성과를 담지 못하며, 일부 내용은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이 필요하다는 게 한계점으로 꼽혀왔다. 이에 신동의보감은 크게 기초 한의학, 임상 한의학, 한국형 한의학 등 3개 분야로 나눠 동의보감을 재집필하기로 하였다. 기초 및 임상 한의학 분야는 동의보감 외 중요 문헌 고찰을 통해, 현재까지 등장한 동아시아 한의학을 중심으로 집대성하기로 하였다. 남자 태아를 여자로 바꾸는 식의 '전남위녀법', '투명 인간' 등 비판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리뷰도 포함된다.주목할 부분은 한국형 한의학 편찬 사업이다. 동의보감 이후 국내 한의사가 자체 개발해 현장에서 사용 중인 치료 기법을 체계화해 추가하는 것이다. 이렇게 완성된 신동의보감은 한의학 교육과 일선 한의사들의 임상 참고 자료로 보급될 예정이다. 또 새로운 내용이 추가될 때마다 위키백과 형식의 업데이트 시스템도 구축된다. 즉, 허준의 업적을 계승하고 동의보감 편찬 이후 의학적 성과를 한데 모아 현대 한의학의 임상적, 과학적 성과를 반영한 통합형 근거 중심의 한의학서를 만든다는 것이다.

6. 그 외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것과는 달리 동의보감은 일반인이 쉽게 볼수 있는 서적이 아닌 전문 서적이다. 한글 번역본이라 하더라도 최소한의 약초학이나 한의학적 지식이 있어야만 의학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분량이 무지막지하다.[18] 내경편이 한자로 4권인데 한국어 번역을 하자 200자 원고지에 8,000쪽이였고, 외경편이 한자로 4권인데 한국어 번역을 하자 200자 원고지 9,000쪽 분량이었다. (외경편 2,160쪽)[19] 당연히 분권해서 판매 중이지만 그 한권으로도 충분히 흉기가 될 정도. 단순 암기는 둘째치고, 환자가 생겼을 때 바로바로 해결법을 찾기도 힘들다. 민간 배포용이라는 의도로 만들기는 했지만, 완전 초보자용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시중에서 동의보감 검색해봐야 소설 동의보감밖에 안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허준이 침구에 능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것은 일부 무면허 침구사들이 근래 내세운 주장이다. 이들은 허임의 일화를 내세워 침구의가 전혀 다른 분야인 것처럼 포장하기도 한다. 이것을 위해 침의 vs 약의라는 식으로 몰고가는 경우도 있는데 실록을 통틀어 약의라는 직종이 따로 존재한 적은 없다. 더군다나 침의를 따로 양성하고 관리하는 기관도 존재하지 않았다. 침의는 어디까지나 기존 체계의 일부로 존재하였다.

세종 때에 침구의를 뽑기 시작하면서 침구학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일종의 전문의가 존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력의, 치종의 등의 다른 전문의도 있었으며, 이는 어디까지나 전문 분야의 차이라서 과거 시험에서는 비중의 차이가 있으나 한의학 전반에 대하여 모두 공부하여야 했다. 무엇보다 침의가 약 처방한 내용도 버젓이 나오고 있다. 실록에서 허준이 '소신은 침을 잘 모르옵니다만(후략)'라고 하여 침의인 허임이 침을 놓게 한 기록이 있으나, 이 부분도 앞뒤 문맥을 파악해야 한다. 선조가 편두통이 생겨 어떤 식으로 치료할지 허준과 상의하는 부분이며 이때 허준은 침구 치료를 권하면서 침의인 허임을 높이기 위해 겸양의 표현으로 저 말을 한 것에 가깝다. 그리고 이때의 왕실 의료는 집단 협진 체제였다. 즉 주치의격인 원로 의사가 병명을 진단하면 그 밑의 의사들이 각각 혈자리를 잡고 침을 놓는 방식이었다. 당장 허임이 나오는 저 기사만 봐도 허준은 병명을 진단하고 남영은 혈자리를 잡고 허임이 침을 놓는 방식이었다. 허준이 정말로 침구에 능하지 않았다면 선조가 침구 치료에 대해 허준과 상의할 이유가 없다. 현대 의학으로 비유하면, 대통령 주치의가 병명을 진단하고 좀더 수술 실력이 능숙한 다른 의사가 수술을 하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대통령 주치의가 수술에 능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이런 방식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왕의 몸에 침습적 치료인 침 치료를 하기 때문에 만전을 기하기 위한 것이다. (실록에서도 침의의 실수로 왕이 죽는 경우가 몇번 나온다.) '침구편이 상대적으로 부실한 편이다. 23편중 달랑 1편이 침구에 할애되어 있을 뿐'이라고 하나 이는 동의보감의 내용을 숙지하지 못한데서 오는 오류. 동의보감의 신형편을 제외하고는 각 편마다 끝부분에 침구 관련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무엇보다 허준의 다른 저작들에도 침구 관련 내용이 나온다.

임진왜란을 소재로 한 게임 임진록 2에서는 전광렬이 열연한 드라마 허준의 대히트로 멀티플레이 조선군 진영 영웅 유닛으로 패치 추가됐다. 여기서 허준의 전용 업그레이드가 동의보감인데 허준 주변 아군 유닛을 서서히 치료해주는 효과다. 허준은 임진왜란을 겪은 인물이니 그가 나와도 이상할 건 없지만 동의보감은 정작 임진왜란이 끝나고 한참 뒤에야 나왔다.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급식체의 피해 단어다(...) 급식체 개드립으로 "동의? 어 보감" 이런 식으로 응용되기도 한다.


  1. [A] 1.1 1.2 Principles and Practice of Eastern Medicine
  2. [2] Principes et pratique de la médecine orientale
  3. [3] 당대 금속활자는 고정이 쉽지 않은 등 기술적인 문제로 대량 인쇄가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대량으로 찍어내는 판본은 모두 목재활자를 사용하였다.
  4. [4] 다만 정확한 제목은 <소설 동의보감>이다.
  5. [5] 의방유취가 과연 동의보감의 기저본이었는지, 역사적 연속성은 어느 정도 였는지는 2010년대 이후 관련 주제를 꾸준히 연구하고 있는 한국 과학사 학회 신동원 교수의 저술들을 참고하면 된다.
  6. [6] 이 당시 중국은 명, 청 시기로 성리학이 교조화되기 시작하던 조선과 달리 양명학과 고증학이 대세가 되던 시기였다. 이미 중국에서 성리학은 송나라 때부터 주된 유학으로 자리잡아 조선보다 훨씬 먼저 연구가 된 상황이었다. 당연히 조선의 유학자들이 쓴 성리학은 이황과 이이 정도를 제외하고는 중국에서 먹힐리가 없었다.
  7. [7] 관찬(官撰)
  8. [8] 전근대 사회에서 수은은 서양에서는 모든 금속의 시작이자 연금술의 핵심금속으로, 동양에서는 도교의 연단술의 재료로 취급받을 정도로 신비하게 취급받았다. 당시로서는 중금속의 체내 축적이나 중금속 중독 등의 개념이 없었으니...
  9. [9] 하지만 이거는 아주 허무맹랑하다고 보기는 힘든 게 악몽의 주요 원인중 하나가 심리 불안이고 강한 동물의 상징 등을 가까이 하므로써 호랑이 같은 강한 동물이 나를 지켜준다는 심리적 안정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일종의 토테미즘을 통한 심리학적 치료라고 볼 수도 있다.
  10. [10] 우석대학교 부속한방병원 한방내과 장인수, 2016년 4월 29일
  11. [11] 참고로 1년 뒤에, 『열하일기』를 완역하였다.
  12. [12]조지훈 시인의 부친이기도 하다. 한의사 출신이며, 남한 제헌의원으로서 한의학계에 남긴 업적이 엄청나다. 1950년 보건의료 행정법안”의 제1장 총칙의 의료인 규정에 서양 의사 제도만 두고 한의사 제도는 폐지한 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자, 앞장서서 폐지에 힘썼다. 북한에서도 최초로 동의학(남한의 한의학에 해당) 박사가 되었으며, 현재의 한의학이 있기까지 큰 공헌을 하였다. 88세까지 살아 굉장히 장수했는데 어느 정도냐면 아들 조지훈보다 20년은 더 살았다.
  13. [13] 여강출판사는 1993년 북한판 동의보감의 저작권자인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로부터 15년 동안 한국에서의 판권을 가지고 계약했다고 하였다. 밑에서도 서술하지만 이는 거짓이다.
  14. [14] 다른 기록유산의 사례를 보면 조선왕조실록의 경우 북한은 1980년, 남한은 1994년에 번역 완료 되었다. 승정원일기랑 일성록도 현재 번역 중이다. 근데 참고로 승정원일기는 현재 진형형으로 번밀레 중이고, 작업의 완성은 언제 될 지도 모르겠다.
  15. [15] 법인 문화사 측은 이것이 복제가 아니라, "국내 한의대 교수들로 구성된 번역 위원들이 동의보감 원문과 중국 서적을 토대로 책을 출판한 것"이라고 한 적이 있다.
  16. [16] 북한에서 2004년에 설립되었다. 아마도 이 문제를 처리하기 위함인 듯하다.
  17. [17] 유사 사례로 리조실록 사건이 있는데, 이것은 실제로 북측에서 완역한 리조실록 판권을 계약한 여강출판사와 무단 복제한 다른 출판사와의 소송으로, 이번에는 여강출판사가 승소하였다. 참고로 여강출판사는 이 외에도 많은 북한 저작물을 펴내였다. 북한 저작물은 상호주의에 관계없이 우리 저작권법 상의 보호를 받는다고 판시하여 상호 저작권을 보호하는 한국의 실정법에 배치되지 않으려면 응당 지켜야한다는 뜻이다.
  18. [18] 한문으로 된 영인본 기준으로 총 25권, 3,200여쪽, 160만여 자이다. 우리말로 풀어 쓰면 더욱 분량이 늘어난다.
  19. [19] 따라서 25권 전체에 12,000쪽 ~ 14,000쪽 정도 될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소아과 국시를 치기 위해 배우는 홍창의 책이 약 700쪽, 전문의를 따기 위해 배우는 넬슨 책이 약 3,000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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