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웨인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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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OCK

본명

Dwayne Douglas Johnson
드웨인 더글러스 존슨

링네임

더 락 (The Rock)

별칭

Rocky
The Great One
The Brahma Bull
The Most Electrifying Man in All of Entertainment
People's Champion

생년월일

1972년 5월 2일 (47세)

신체

196cm, 118kg[1]

출생지

캘리포니아 주 헤이워드

피니시 무브

러닝 숄더 브레이커[2]
락 바텀
피플즈 엘보우
샤프슈터

주제곡

Destiny (1996~1997)
Power (1997~1998)
Do You Smell It? (1998~1999)
Know Your Role (1999~2001, 2004~2011)
If You Smell (2001~2003)
Is Cookin (2003~2004)
Electrifying (2011~2019)

주요 커리어

USWA 월드 태그팀 챔피언 2회
WWF/E 챔피언 8회
WCW/월드 챔피언 2회
WWF 인터콘티넨탈 챔피언 2회
WWF 태그팀 챔피언 5회
2000년 로얄럼블 우승

그의 상징인 브라마 불 로고

1. 소개
2. 프로레슬러 이전
3. 프로레슬링 선수
3.1. 경력
3.1.1. 데뷔: 락키 마이비아
3.1.3. 코퍼레이트 챔피언
3.1.4. People's Champion
3.1.5. 2001년 ~ 영화배우 전업까지
3.1.6. 복귀
3.2. 경기 스타일
3.3. 어록
3.4. 둘러보기
4. 배우 경력
4.1. 작품 목록
5. 기타
6. 신장 논란

1. 소개

[3]

[4]

스티브 오스틴과 더불어 애티튜드 시대를 이끈 프로레슬러 중 하나이자 프로레슬링계 사상 최고의 슈퍼스타 중 하나로 이제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성공한 스포츠 출신 영화배우이다. WWE프로레슬러이자 미국영화배우. 외조부는 전설의 사모안 레슬러 '피터 마이비아'[5]이고, 아버지도 캐나다계 흑인 레슬러 '락키 존슨'으로 출중한 레슬링 가문 출신이다.[6] 때문에 그의 외모에선 여러 인종이 섞여있는듯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솔로파 파투 주니어(= 리키시), 故 에드워드 파투(= 우마가 / 자말), 리키시의 쌍둥이 아들인 프로레슬러 우소 형제들, 아노아이 가문의 형제인 로지로만 레인즈, 그리고 AJ 리의 보디가드로 활동했던 타미나 스누카, 나이아 잭스와도 친척 관계다.[7]

WWE 역사의 수많은 슈퍼스타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인기를 누린, 몇 안되는 프로레슬러. 특히 WWE 데뷔 이전부터 배우로 전업하기 전까지 겨우 10년이 채 안되는 경력이었음에도 역사상 이런 전무후무한 인기를 얻은 선수도 더 락 말곤 없다.[8][9] 196cm의 두터운 피지컬과 준수한 경기력 및 역동적인 리액션, 신의 경지에 다다른 말솜씨(그에 따른 수많은 유행어들을 창출했다)와 천부적인 쇼맨쉽, 카리스마 있는 기믹, 마초적이면서 잘생긴 얼굴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최고의 인기를 누린 스타이며 WWE의 최전성기였던 애티튜드 시대에서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에 유일하게 견줄 수 있는 특급 슈퍼스타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다.[10]

락의 대표적인 트레이드 마크 하면 대부분 브라마 불[11], 현란한 마이크 워크와 특유의 눈썹 제스처[12]와 대머리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2. 프로레슬러 이전

만 15세 때 모습. 참고로 이 사진은 한때 한국에서 '미국 중딩의 위엄'(...)이라는 제목의 짤로 돌아다니기도 했다.[13][14]

1980년대 활약한 락키 존슨과 WWF 시절 활동한 전설의 레슬러 하이 치프 피터 마이비아의 딸인 아타 마이비아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캘리포니아 주 헤이워드.[15] 어릴 때는 외가 식구들과 뉴질랜드에서 자랐다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미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어린 시절에는 상당한 문제아였는지 경찰에 체포된 적도 있었다고 하지만, 펜실베니아주 베들레헴의 한 고등학교 선생님을 만나면서 다른선생님들은 다 싫어하는 문제아에 불과하고 심지어 자신에게 한번 대들었던 드웨인에게 오히려 대인배스럽게 넌 미식축구하기 최고의 몸을 가지고 있으니 당장 입단해달라고 요청하면서, 드웨인 존슨도 반항심을 접게되고 스포츠맨십을 배우며 미식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문제아 드웨인 존슨의 삶을 바꾼 "한 번의 악수". 미식축구 선수를 지망해 미식축구 명문대학인 마이애미 대학교(마이애미 허리케인스)의 수비 태클로 장학금을 받고 입단했다.[16] 마이애미 허리케인스는 드웨인 존슨이 입학한 첫 해 내셔널 챔프를 차지했지만 그 때 드웨인은 무릎 부상을 당해 전력에서 이탈했었고, 그 대타로 들어온 선수가 마이애미 대학교 풋볼팀 역사에 남을 스타이자 NFL을 대표하는 수비 태클로 성장한 워런 샙(전 탬파베이 버커니어스, 오클랜드 레이더스)이었다. 그래서 드웨인은 풋볼 선수로써는 아쉬운 커리어를 남겼고 1995년 범죄학과 생리학 학위를 딴이후 NFL 드래프트에 지원했지만 역시나 지명되지 못했다. 캐나다 풋볼 리그(CFL) 캘거리 스탬피더스에 입단했지만 두 달 만에 짤렸다. 사실상 전업 프로 미식축구 선수가 되는 것에는 실패한 케이스. 그래서 영화계에 투신한 이후 미련이 좀 남았는지 미식축구 관련된 배역을 몇가지 했다. 워킹 톨, 웰컴 투 더 정글에선 전직 미식축구 선수. 더 게임플랜에서는 아예 현역 미식축구 슈퍼스타다.

그렇게 미식축구 선수 생활을 포기한 후 가업이라 할 수 있는 프로레슬러가 되기로 마음을 먹는다. 처음에 그의 아버지인 락키 존슨은 힘들고 고달픈 스케줄과 경기 그리고 자신이 그랬던 것 처럼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다는 문제 때문에 말렸지만 그의 의지를 확인하고, 그의 트레이닝을 시키며 한 명의 레슬러로 키워내게 된다.

3. 프로레슬링 선수

3.1. 경력

3.1.1. 데뷔: 락키 마이비아

데뷔 시절 모습

95년 아버지에게 사사해 레슬링을 배운 뒤 아버지의 친구인 팻 패터슨에 의해 트라이아웃 기회를 얻어 브루클린 브롤러를 상대로 승리하며 테스트에 통과한다.[17] 이후 수련을 위해 제리 롤러의 단체인 USWA에 입단하게 되고, 거기서 플렉스 카바나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바트 소여라는 선수와 태그팀 챔피언을 하기도 했다. 이후 96년 본격적으로 WWF로 올라와서 수련을 받기 시작한다.[18][19]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6)에서 데뷔했으며 처음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이름을 딴 락키 마이비아[20][21]라는 링 네임으로 선역으로 데뷔해 8인 태그팀 제거 매치에서 마지막으로 살아남으며 승리했고 이후 데뷔 3달 만인 1997년 2월 RAW에서 헌터 허스트 햄즐리를 꺾고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에 오른 뒤 WWF 레슬매니아 13에서 술탄[22]을 상대로 타이틀을 방어해내고, 브렛 하트를 상대로도 승리하며 타이틀을 방어해 낸다.[23]

하지만 너무나 솔직담백해서 재미없는 호청년 캐릭터라 이내 팬들에게 오질나게 욕만 얻어먹고 인기도 없었다. 이러한 경향은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이 된 후로 더욱 심해져서 락키가 등장하면 관객들은 "Rocky Sucks!", "Die Rocky Die"라는 챈트를 퍼부었다.[24] 이는 재미도 특징도 없는 무색무취의 풋내기가 전폭적인 푸쉬를 받는데 따른 관중들의 반발 심리였다. 생각해보라, 여성 관객과 아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며 나름 탄탄한 기믹과 캐릭터성을 갖추고 있고, 나름 짬밥도 되고 유명세도 탄 지금의 존 시나도 바른생활 사나이 기믹이 재미없다는 이유로 10년 넘게 야유를 달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생판 모르는 신인이자 개성도 없는 락키 마이비아가 승승장구 할 때 관중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겠는가? 더욱이 그 시대는 자극적이고 강렬한 인상을 주는 캐릭터만이 살아남던 애티튜드 시대였다.[25] 게다가 지금의 락의 모습에서 상상할 수 없는 우스꽝스런 초창기 복장도 바로 빈스 맥맨이 제안했던 거라고...아이고 회장님 만약 추후의 이미지 변신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더 락은 없었을지도 모른다.[26]

지금이야 WWE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은 슈퍼스타로 성장하지 못하거나 또는 성장하기 전의 하이 미드카터급 선수나 드는 타이틀이 될 정도로 그 위상이 많이 내려갔지만 과거 WWF와 WCW&ECW가 합쳐지기 전만 하더라도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은 WWE 챔피언에 이은 2인자라는 업계의 확고한 인식이 있었고 이 타이틀을 두고 특별 매치가 성사될 정도였다.[27] 대표적으로 WWF 레슬매니아 10숀 마이클스레이저 라몬래더매치같은 희대의 명경기가 부킹될 정도. 때문에 더 락의 인터콘티넨탈 챔피언 획득을 지금으로 치면 WWE TLC(2009)에서 쉐이머스가 존 시나를 꺾고 WWE 챔피언이 된 충격에 버금갈만큼 파격적인 결과였다. 이걸로 끝나지 않고 데뷔한지 1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는데 WWF 로얄럼블(1998)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고 그 해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8)에서 기어이 최연소이자 WWE 역사상 최초의 20대 챔피언에 올랐다. 이후에 데뷔한 지 1년도 안 되어 WWE 챔피언이 된 커트 앵글과 3년 후 킹 오브 더 링 우승에 반년도 안 되어 최연소 WWE 챔피언에 등극하며 기록을 갱신하고, 이후 로얄럼블 우승과 레슬매니아 메인이벤트 장식이라는 꽃길을 제대로 걸은 괴물 브록 레스너의 등장으로 희석되긴 했지만 정말 보기드문 유례없는 푸쉬였다. 특히 아래 언급된 유색인종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쏟아지는 야유가 더 락의 초기 캐릭터 정립에 큰 역할을 하게 되는데...

3.1.2. 네이션 오브 도미네이션

1997년 오웬 하트에게 패배해 타이틀을 잃고, 무릎 부상을 당해 잠시 결장하게 되었다가 이후 자신들에게 아유를 퍼붓던 백인 관객들에게 복수하겠다며 흑인지상주의 악역 스테이블 네이션 오브 도미네이션에 가입한다.[28][29] 또한 락키 마이비아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자신을 3인칭화 하는 명칭인 더 락과 검은색 경기복을 쓰기 시작한다. 당시 리더이자 WCW시절 프로레슬링 사상 최초의 흑인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던 파룩과 대립을 한다. 락은 리더인 파룩을 제쳐두고 자신이 할 말을 다 하는데, 파룩이 더 락의 마이크를 뺏고 말하려 하자 "더 락이 말하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라고 말하는 둥, 다른 NOD 동료들에겐 비싼 롤렉스 시계를 선물하지만 파룩에게는 더 락의 대형 브로마이드를 선물...나아가 오웬 하트를 영입시키며 점차 NOD의 실세로 떠오르고 파룩은 바지사장으로 전락해갔다. 그 후 점점 감정이 격해지다 파룩이 락과 켄 샴락의 대결 때 링 사이드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락이 당할 때 구해주지 않고 바라만 본 일을 꼬투리 잡아 그를 비난한다. 그러다 결국은 팀원들을 이용해 파룩을 린치하고 축출시킨다. 그리고 자신이 리더가 되며 완전히 턴힐한다. 파룩을 몰아낸 뒤 인터콘티넨탈 타이틀을 놓고, 켄 샴락, 스티브 오스틴과 대립을 하게 되는데 켄 샴락에게는 정말 처절할 정도로 당했고[30], 스티브 오스틴에게는 벨트를 내놓으라고 말했다가 스터너를 얻어 맞은 뒤 뻗은 상태에서 "이딴건 너나 쳐먹어, 난 월드 챔피언에서 놀 꺼니까"라는 말까지 듣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더구나 오스틴은 그 벨트를 강물에다 던져 버려서 더 락은 한동안 벨트없는 챔피언이라는 굴욕을 당했다. 또 이 시절 DX의 리더인 트리플 H와 정말 엄청난 대립을 보였는데, 두 선수 모두 자기들만의 스테이블을 이끌며 다른 쪽을 지독하게 공격했다. 그러다 마침내 WWF 섬머슬램(1998)에서 인터콘티넨탈 타이틀을 놓고 전설의 사다리 경기를 펼치며 두 선수 모두 높은 인정을 받게 된다.

마이크웍 스타일도 바꿔서 흑인식 슬랭을 잔뜩 섞고 독설도 가미했는데 이것이 대박을 치기 시작하며[31][32], 그 전까지만 해도 사모안 특유의 적당히 육덕진 체형이었지만, 근육이 적절히 드러나 보이는 보기 좋은 체형으로 변하게 되었다.[33] 그리고 1998년의 WWF 레슬매니아 14에선 희대의 명대사 "If You Smell What the Rock is cooking?"가 등장했다.

3.1.3. 코퍼레이트 챔피언

이후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8)에서 맥맨 의 도움을 받으면서 WWF 월드 챔피언에 오르게 된다. 이로써 더 락은 당시 최연소 기록인 26살에 챔피언에 등각함과 동시에, 최초의 흑인 WWF 챔피언이라는 기록[34]을 세우게 된다.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락은 빈스 맥맨의 악역 스테이블인 코퍼레이션의 일원으로 활동하게 되는데, 이는 락에게는 꽤 의미가 깊은 서바이버 시리즈였다.

이 서바이버 시리즈를 기점으로 락은 탑힐로 올라섰는데, 이 서바이버 시리즈는 1년 전에 있었던 몬트리올 스크류잡의 패러디였다. 더 락은 잠깐 맥맨 부자와 대립하며 턴페이스를 하였고 어렵사리 올라오는 듯 싶었으나, 그것은 처음부터 맥맨 부자와 짜고 친 연기였고 결승에서 턴힐하며 맥맨가와 연합했다. 결승은 믹 폴리와의 대결이었는데, 막바지에 샤프슈터가 나왔고 믹 폴리는 항복하지 않았는데 맥맨 부자가 멋대로 경기를 끝내버리며 락의 승리를 선언한 것이다. 그런데 그 잠깐의 턴페이스 기간 동안 폭발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관중들이 당시 탑페이스였던 오스틴 수준의 환호를 보냈었고, 이 서바이버 시리즈 이후에는 반응이 탑힐에게 쏟아지는 야유뿐 아니라 환호가 뒤섞이기 시작한다. 당시 주 관객층인 성인들은 마이크만 갖다주면 탑힐이어도 배꼽이 빠지도록 웃겨주며[35], 경기력도 좋고, 얼굴도 잘 생긴 이 선수에게 기믹을 벗어나 뛰어난 레슬러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죽하면 1998년 12월 PPV였던 WWF 인 유어 하우스 26: 락 바텀[36]의 부제는 더 락의 피니시 기술의 명칭을 딴 '락 바텀'으로 썼을 정도.

이후 맨카인드와 계속해서 WWF 챔피언쉽을 놓고 치열하게 대립하며 타이틀을 주고 받았고, 당시 관객이 없는 빈 경기장에서 경기를 가지기도 했는데 이 경기들은 폭소를 불러 일으키며 더욱 더 락의 인기를 올려주었다. 이후 WWF 로얄럼블(1999) I Quit(아이 큇) 매치에서 다시 한 번 WWE 역사에 남을 명경기를 보여주고, 더 락은 이 경기를 통해 챔피언쉽을 따내면서 챔피언 자격으로 WWF 레슬매니아 15 메인 이벤트에서 자연스레 오스틴과 경기를 하게 된다.[37][38] 레슬매니아 15에서[39] 스티브 오스틴에게 패해 타이틀을 잃은 뒤 본격적인 스티브 오스틴과의 라이벌 커리어를 걷기 시작하며 애티튜드의 양대 아이콘으로 등극하게 된다.

3.1.4. People's Champion

락의 최전성기

이렇게 인기를 높여 가다가 결국 1999년 턴 페이스로 전환 후 남녀팬 모두에게 인기폭발하게 되었는데. 특히 1999년 처음 런칭된 또다른 위클리 이벤트 스맥다운의 명칭은 다름아닌 더 락의 마이크웤에서 따온 명칭. 당시 파죽지세였던 락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일이었다. 스맥다운 첫 방송에서도 트리플H와 메인이벤트를 장식했다.

이후 가장 부정하고 흉폭한 태그팀 언더테이커빅 쇼의 태그팀에 맞서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였던 믹 폴리와 전설적인 태그팀 Rock&Sock(락 앤 싹) 커넥션을 결성하게 된다. 특히 개그 기믹으로 큰 인기를 얻던 믹 폴리가 더 락의 오만함을 풀어주기 위해서 힘 쓰는 모습이나 은근 싫어하면서도 도와주는 츤데레 락의 모습을 보며 예능감 포텐이 빵빵 터지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월요일 밤의 전쟁 시기 최고의 시청률을 달성한 세그먼트인 "This is Your Life"[40]의 주인공이 되었다.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9) 이후 오스틴이 부상으로 빠진 뒤에는 명실상부한 단체의 원탑으로 등극. WWF 로얄럼블(2000)에서도 우승한 뒤 연달아서 WWF 레슬매니아 2000에서 도전자 자격으로 챔피언십에 도전하지만 맥맨 가문의 야합으로 실패했다. 그러나 1달 뒤인 WWF 백 래쉬(2000)에서 승리해 챔피언에 오르고, 인민의 챔피언(People's Champion)이라는 기믹으로 모든 팬들이 열광하는 애티튜드 시대의 최고 스타로 자리매김 한다. WWF 타이틀을 놓고 벌이는 트리플 H+빈스 맥맨과의 대립이 대박을 치면서 RAW의 시청률이 6~7점대를 돌파, WCW와의 경쟁도 사실상 끝나게 된다. 물론 스티브 오스틴의 인기도 건재했으므로 사실상 WWF는 아이콘이 두 명이 존재했던 셈이다.

이후 2001년, WWF 로얄럼블(2001)에서 우승한 스티브 오스틴과 WWE 레슬매니아 17에서 경기를 갖게 된다. 과거 레슬매니아 6 당시 헐크 호건 vs. 워리어의 메인이벤트를 연상케 할 정도로 단체의 탑페이스끼리의 충돌은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경기 당일. '스티브 오스틴의 시대는 끝났고, 이제는 나의 시대'라고 외치는 듯한 더 락과, '아직 나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를 입증하려 한 오스틴의 치열한 경기 끝에 오스틴과 빈스의 연합과 잇달은 체어샷에 결국 아쉽게 패배하고 챔피언 자리에서 물러난다.

3.1.5. 2001년 ~ 영화배우 전업까지

레슬매니아 17 다음날 RAW에서 오스틴과 재경기를 가졌으나 트리플 H와 연합한 오스틴에게 또다시 패배하게 되고 이후 영화 미이라 2를 찍으러 공백기를 가지게 된다. 공백기 동안, WWF가 WCW/ECW 연합군의 침공(인베이젼)을 받고 WWF챔피언 오스틴이 연합군으로 넘어가버리며 위기에 빠지자 2001년 7월 30일 RAW에서 회사를 구하기 위해 컴백한다.

락을 WWF에 다시 불러온 빈스 맥맨과 각각 WCW/ECW의 경영권을 인수한 빈스의 자녀들인 셰인스테파니가 먼저 링 위에 등장해 서로를 견제하던 가운데 락이 드디어 링 위에 올라왔고 락을 제외한 세 사람은 더 락을 자신의 세력으로 영입하기 위해 링 위에서 서로를 비난 및 디스했다. 그런데 빈스가 락을 WWF에 머무르게 하려고 설득하던 도중, 락이 갑자기 피니시 무브인 락 바텀을 빈스에게 시전했다. 이 때문에 관중들이 오스틴에 이어 락까지 연합군으로 넘어가는가 싶어 잠시 야유가 나오기도 했다.[41] 이를 보고 스테파니는 박수를 치며 기뻐하고 셰인이 껑충껑충 뛰며 쾌재를 부르면서 락을 바라보았고 락의 눈과 셰인의 눈이 마주친 뒤,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어 두 사람은 서로 악수까지 락이 그대로 연합군에 합류하는 듯 하는 순간, 락은 갑자기 정색을 하고는 셰인에게도 락 바텀을 시전하여 링 위에 맥맨 부자를 모두 쓰러뜨렸고 잠잠했던 관중들은 다시 열광하기 시작한다. 스테파니가 그대로 도망가면서 링 위에는 쓰러진 맥맨 부자와 락 세 사람만 있었고, 락은 그대로 피플스 엘보우셰인에게 먹인 다음[42] WWF로 귀환을 선언했다.[43]

WWF 리벨리언(2001)에서 오스틴에게서 WWF 타이틀을 뺏진 못했지만 대신 WWF 섬머슬램(2001)에서 부커 T를 물리치고 WCW 챔피언에 올랐다.그럼 이제 벨트 바꾸면 되겠네? 같은 편인 크리스 제리코와 WCW 타이틀을 놓고 경쟁하게 되고 정말로 WWF 서바이버 시리즈(2001)에서 제리코에게 공격을 당하긴 하지만 커트 앵글 역시 오스틴을 배신하고 그틈에 락 바텀을 작렬시켜 승리하면서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한다. 참고로 이 승리는 락이 오스틴에게 거둔 첫 승.

서바이버 시리즈 이후 의기양양해진 빈스는 일명 Kiss My Ass Club(...)이란것을 만들어 과거 WWF를 배신하고 연합군에 붙었던 선수들(윌리엄 리갈 등)이라든가, 짐 로스 등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이들에게 자신의 엉덩이에 강제로 뽀뽀하게 만들기도 했다. 빈스의 Kiss My Ass Club의 횡포가 극심해질 때 쯤 락은 빈스가 찝적대는 트리쉬를 보호하면서 막간의 로맨스도 하고 리키시의 엉덩이에 빈스의 얼굴을 파묻어버리며 빈스에게 최고의 굴욕을 선사하고 Kiss My Ass Club의 해체(?)를 선언했다. 하지만 12월 WWF 벤전스(2001)에서의 통합타이틀 경기 4강전에서 제리코에게 패하며 WCW 타이틀을 잃었다. WWF 로얄럼블(2002)에서 제리코와 통합타이틀전을 벌이지만 역시 패배.

2002년 2월18일 RAW에서 8년 만에 돌아온 헐크 호건에게 도전. WWF 레슬매니아 18에서 아이콘 vs. 아이콘 경기가 성사되었다.[44]

레슬매니아 당일 어린 시절의 영웅을 응원하는 관중들의 편애 속에서도 락 바텀과 피플스 엘보우 콤보로 승리. 이후 스캇 홀케빈 내쉬의 습격을 물리치고 호건을 존중해주는 모습을 보이며 훈훈하게 마무리 지었다.

2002년 4월 WWE가 RAW와 스맥다운의 양대 브랜드로 분리될 때 모든 선수들을 대상으로 드래프트를 했는데, 락은 스맥다운의 첫 번째 선수로 지명되어 WWE 산하 스맥다운 브랜드 소속의 선수가 된다.

레슬매니아 이후 공백기를 가졌다가 워크아웃한 오스틴을 대신해 회사를 이끌기 위해 컴백했고, WWE 벤전스(2002)(이 때부터 7월)에서 언더테이커, 커트 앵글을 꺾고 WWE 통합챔피언에 등극했는데 헐크호건과 오스틴의 기록을 넘은 최초의 7회 챔피언 등극이었다. 이어 섬머슬램 2002에서 초특급 거물 신인 브록 레스너의 도전을 받고 선전했지만 결국 브록의 무지막지한 파워를 감당하지 못하고 패배하며 한 달만에 챔피언 벨트를 내주게 된다.

잦은 영화, 방송 및 광고 촬영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락의 인지도 상승에는 매우 큰 도움을 주었고 빈스 역시 회사에도 도움되겠다싶어 적극적으로 락을 밀어주었으나 2002년 이후에는 너무 지나치다며 팬들의 비판과 야유를 받게 되었다. 특히 위에 언급된 WWE 섬머슬램(2002)의 브록 레스너와의 경기에서는 조만간 락이 영화 촬영 때문에 공백기를 갖는다는 사실이 알려진 탓에 락이 현역 챔피언이자 탑 페이스였음에도 경기 당일 야유를 받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이것을 이용해 2003년 1월에 스맥다운으로 복귀할 때는 확 달라진 모습[45]과 함께 거만한 할리우드 스타 캐릭터로 복귀, WWE 노 웨이 아웃(2003)에서 헐크 호건과 2번째 경기를 가져 빈스의 도움으로 승리한다. 그 직후 RAW로 이적하는데 자신이 이 업계에서 유일하게 이루지 못한 것은 오스틴을 레슬매니아에서 꺾지 못한 것이라며 그에게 도전한다. 결국 WWE 레슬매니아 19에서 락 바텀 세 방을 날려 가까스로 승리한다. 하지만 그 다음 날 RAW에서 골드버그의 WWE 데뷔의 희생양이 되었고, 백 래시 2003에서 맞붙게 되지만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후 더 이상 WWE 출연이나 경기를 하지 않고 영화에 전념하게 된다.

여기까지만 해도 후덜덜한 커리어인데, 이런 엄청난 커리어를 쌓아올린 기간은 불과 대략 6년에 불과하다.

영화배우 전환 이후에도 WWE와의 관계는 좋아서 라 레지스탕스로부터 믹 폴리를 구해주는가 하면 2004년 WWE 레슬매니아 20에서는 믹 폴리와 락&싹 커넥션을 재결성하여 에볼루션과 경기를 가지기도 하고 근데 졌다 유진을 도와주는 등 여러 번 깜짝복귀를 했다. 팬들도 야유가 아닌 뜨거운 환대를 해주었다. 하지만 그나마도 2004년 가을 RAW 출연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WWE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더 락이 영화에 전념하는 동안에도 WWE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더 락의 프로필을 계속 현역 로스터로 분류하며 일말의 가능성을 남겨뒀다.

2006년쯤 가졌던 인터뷰에서 다시 WWE로 복귀할 생각은 없냐는 질문에 "사람들이 나를 잊어갈 때 쯤 다시 링으로 돌아가겠다."는 코멘트를 한 적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저 멘트를 단순한 립서비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여겼으나... 그로부터 5년 후에 정말로 그의 말대로 되었다!

2008년 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자신의 외조부와 부친을 헌액하기 위해 행사 당일 출연했다. 공식적으로 WWE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4년 만이었다. 그리고 2009년 스맥다운 10주년 때는 직접 출연은 아니었지만 영상 메시지로 마이크웍과 더불어 축하 메시지를 남겼다. 그 와중에 뜬금없이 돌프 지글러가 까였다.

3.1.6. 복귀

Finally, The Rock has come back! Home...

2011년 2월 14일 레슬매니아 XXVII의 호스트가 되었고 7년 만에 RAW에 등장하였다. 레슬매니아에서 뭘 할 생각인지 현역 레슬러 시절 이상으로 벌크업이 되어있는 모습으로.[46] 관중들의 엄청난 환호 속에서 전혀 녹슬지 않은 현란한 마이크워크를 과시했다. 무적의 그분미즈를 디스했다.

꾸준히 시나, 미즈와 대립하더니[47] 레슬매니아의 메인이벤트 경기인 시나와 미즈의 타이틀전이 더블 카운트 아웃으로 무승부로 끝나자 등장해서 재경기를 주선했으나 바로 시나에게 락바텀을 시전해 미즈가 타이틀을 지키게 만들었으며 경기 후 미즈에게도 피플즈 엘보우를 먹여 레슬매니아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그리고 레슬매니아 다음 주의 RAW에 출연해 존 시나가 제안한 대결을 받아들이면서 그간 레슬링 팬들이 꿈의 대결이라고만 생각해 왔던 더 락 vs. 존 시나의 경기가 WWE 레슬매니아 28의 메인이벤트로 결정. 10년 전 WWF 레슬매니아 18에서 호건과 겨룬 icon vs icon 대결의 시즌 2로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한편으로 이는 골수팬들에게 '전날 레슬매니아를 망친 주제에 다음 레슬매니아에서도 메인을 해먹냐'며 죽도록 욕을 먹었고 CM 펑크도 WWE 머니 인 더 뱅크(2011) 직전 파이프밤에서 이 점을 마이크웍에 써먹을 정도로 여론이 좋지 않았다.

2011년 자신의 생일 파티 특집 RAW에서 마이클 콜이 인용한 의문의 단장의 메세지에서 WWE 레슬매니아 27에서의 행패를 사과하라고 하자, 대충 사과해주고는 마이클 콜에게 락 바텀과 피플즈 엘보우를 날려주었다.

2011년 11월 PPV인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존 시나와 한 팀이 되어 미즈&알 트루스와 상대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공식 경기로는 무려 7년이라는 오랜 공백기간이 있었음에도 별 실수 없이 경기를 잘 풀어나가며 승리. 오히려 과거에 사용하던 롤업계 기술인 라 마히스트랄이나 피셔맨 수플렉스 등을 깔끔하게 사용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멤버가 멤버이니만큼 락이 테크니션으로 보인 매치업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으니...경기 후에는 시나에게도 락 바텀을 먹여 링에서 쫓아내며 괜히 최고의 스타가 된게 아니였다는걸 보여줬다.

그리고 2012년 4월에 열린 WWE 레슬매니아 XXVIII 에서 존 시나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 경기가 열리기 전에 10년 전 레슬매니아 18에서의 헐크 호건 과의 대결을 연상하면서, 시나에게 패배하고 현 세대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정도가 아니겠느냐고 예상한 사람들이 많았으나 오히려 존 시나에게서 클린 핀폴을 얻어내는 충격적인 결과를 연출했다. 마침 개최지가 더 락의 고향인 마이애미였던지라 더 락이 승리하는 순간의 환호는 상상 이상. 반면 자신만만했던 시나의 망연자실한 표정이 카메라에 잡혔고, 유치원~초등학교 저학년 연령 대의 팬들은 경기 결과에 충격을 받아 엉엉 우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2013년 1월에 열린 WWE 로얄럼블(2013)에서 CM 펑크와 타이틀 매치를 가졌다. 경기는 CM 펑크가 수상쩍은 과정으로 승리. 빈스 맥마흔이 난입해 펑크의 타이틀을 박탈하려 했으나 락은 바로 재경기를 요청했고 이게 받아들여져 펑크에게 스파인 버스터 → 피플스 엘보우 세트를 먹이고 승리.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WWE 벤전스(2002) 이후 11년만에 WWE 챔피언에 등극했다. 이 소식을 접한 레슬링 팬덤은 반쯤 멘붕 상태. 풀타임 현역도 아닌 선수가 챔피언에 등극했다는 사실에 불만을 표하는 의견도 있었으나, 이런 불만은 CM 펑크가 이 날까지 챔피언쉽을 보유했던 기간이 434일이라는 점에 의해 깔끔하게 묻혔다.

2013년 2월에 열린 WWE 엘리미네이션 챔버(2013)에서 CM 펑크와 다시 타이틀 매치를 가졌다. 경기는 더 락의 승리. 다만 경기내용이 심히 좋지 않다는 평가를 받으며 또 까임을 당했다. 어쨌든 이로서 WWE 레슬매니아 29에서 존 시나와 Twice In A Lifetime[48] 경기 확정.

엘리미네이션 챔버 이후 WWE 챔피언십 벨트 디자인을 바꿨다.

큼지막한 WWE 로고와 사이드 플레이트에는 더 락의 상징인 브라마 불 문양을 붙여놓았다.[49] 공개 직후엔, 더 락 전용 벨트냐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이후 사이드 플레이트에 챔피언인 선수의 상징 로고를 넣도록 변경됐고, 벨트 자체도 모난 곳 없는 무난한 디자인이라서 평가가 좋아졌다.

챔피언인데도 라이브 쇼에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고 CM 펑크와 존 시나의 도전자 결정전에 대해 트위터로 반응하거나, 영화 홍보나 하고 있는 모습도 곱게 보이지 않는다는 비난이 많다.[50] 특히 2월 25일 러에서 열린 CM 펑크와 존 시나의 도전자 결정전이 레슬매니아급 퀄리티를 뽑아낸 명경기였던데 반해, PPV였던 엘리미네이션 챔버에서 더 락이 보여준 경기력은 시망이라 실망스러운 목소리가 계속 늘어 가고 있는 상태.

그리고 WWE 레슬매니아 29 메인 이벤트에서 존 시나와 서로 피니쉬를 주고받는 경기 끝에 결국 AA 3번 맞고 타이틀을 내주고 말았다. 존 시나는 락에게 락바텀 3번, 피플스 엘보우 1번을 얻어 맞았다. 대부분 WWE팬들이 예상한 결과. 심지어 혹CENA 엔딩도 예상대로일까 싶었는데 역CENA 경기가 끝나고 서로 악수하고 포옹하고 손을 번쩍 들어주는 진부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경기 도중 'boring!' 챈트가 나왔을 정도로 내용도 좋지 않았는데 마무리마저 뻔할 뻔자였으니 당연히 팬들의 반응은 망했어요.

다만 안타깝게도 이 경기에서 부상을 입어 레슬매니아 29 다음날 RAW에도 불참하였고 WWE 관련 스케쥴이 전면 취소되었다. 예정되어있던 브록 레스너와의 대립도 물건너가고 진행 중인 '헤라클레스' 영화촬영에도 큰 차질이 생겼다고한다. 당분간 출연은 힘들 듯. 그래도 3년 연속으로 레슬매니아 시즌에 나와 PPV 판매율을 엄청나게 상승시켜 사업 확장으로 적자에 허덕이던 WWE에 큰 도움이 되었다.

레슬매니아 XXX에 출현하여 헐크 호건, 스티브 오스틴과 함께 역사상 최고의 선수들끼리의 오프닝 세그먼트를 진행하였다. 일단 가장 어리고 늦게 성공한 락이 세 번째로 나오긴 했는데 최고의 달변가답게 마이크를 잡자마자 진 주인공의 포스를 보여주었다.

그 후로 아무 소식이 없었다가...10월 7일 RAW에서 빅 쇼와 대립하던 중이었던 루세프의 세그먼트에서 등장했다!! 현장은 완전한 광란의 도가니였고 루세프를 쫓아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날 깜짝 등장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는데, 원래는 뉴욕의 타임 워너 사에 볼일이 있어 왔다가 마침 거기서 RAW가 열리고 있어서 깜짝 방문한 거라고 한다. 오로지 레슬링에 대한 애정만으로 깜짝 출연을 감행한 락을 향해 팬들은 크게 감격했다.

3일 뒤 10월 10일 15주년 스맥다운에 다시 등장. 트리플 H와 과거 둘이 펼쳤던 대립을 회상하면서 그 때 네가 숀 마이클스랑 짜고 치사하게 이겼다[51]는 둥 예전에 락바텀맞고 갈비뼈 부여잡으며 울부짖은건 내가 아니라 로드 독이었다는 둥 유치한(...) 말싸움을 벌이다가 자신의 소원은 내년이건 내후년이건 5년 뒤건 10년 뒤건 아무 때나 좋으니 레슬매니아에서 트리플 H와 결판을 내는 것이라며 떡밥을 던졌다.

WWE 로얄럼블(2015)에 마지막에 등장해 위기에 빠진 육촌 로만 레인즈를 구해주었다. 그런데 락이 야유를 먹었다! 등장할 땐 환호였으나 우승자 로만 레인즈와 엮이는 순간 야유가 폭발했다. 그 후 백스테이지에서 로만 레인즈와 함께 인터뷰를 진행하였는데 여기서 말을 더듬었다. 그리고 로만 레인즈의 손을 들어줄 때도 상당히 놀란 표정을 보여주었는데, 뉴스에 따르면 실제로도 야유가 나와서 정말 당황했다고 한다.

2015 WWE 레슬매니아 31 쇼 막바지 부분에 있었던 트리플 H스테파니 맥마흔의 세그먼트 때 등장했다. 거기서 스테파니에게 뺨을 맞고 "난 여자니까 넌 때릴 수가 없겠지? 그러니까 링에서 꺼져!!"라는 소리를 들으며 링 밖으로 나가는 안습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관중석에 있었던 UFC 여자 벤텀급 챔피언 론다 로우지를 데려와 다시 링으로 돌아온 뒤에 트리플 H에게 신나게 해머링을 먹이고 론다 로우지에게 마무리를 맡기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2015년 12월 28일 RAW에서 WWE 레슬매니아 32 출전이 확정됐다!

2016년 1월 25일자 RAW에 출연해[52] 주차장부터 시작해 백스테이지를 거쳐 고릴라 포지션까지 장장 5분에 걸쳐서 떠벌거리는 정말 무지막지한 수준의 세그먼트를 선보였다.

더 락의 어마어마한 말빨을 감상 해보자. 정말 경이롭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53][54] [55]

레슬매니아 32 당일 역시 등장해 약 40분간 신나게 입을 털어줬다.[56][57] 이후 갑작스럽게 등장한 와이어트 패밀리와 충돌 결국 깜짝 경기를 갖게되었는데 이미 옷 속에 레슬링 기어를 입고있었고, 에릭 로완을 경기 시작 6초 만에 꺾으며 역대 최단 시간 승리 기록을 챙겼다. 이후 깜짝 복귀한 존 시나와 함께 와이어트 패밀리를 쫓아낸 건 덤.

이후에도 간간히 일회성으로 출연하고 있다. 다만, 영화나 이런저런 프로그램 출연 스케쥴이 빡빡하게 차있는터라 특정 PPV 등에 흥행몰이를 위해 초단기 계약을 맺고 1회성으로 출연하는 정도. 경기를 뛰는 경우도 거의 없어서 어그로 끄는 악역 레슬러들을 가볍게 발라주는 퍼포먼스로 레슬링 기술 몇개만 쓰는게 전부라 그의 팬들에게는 살짝 아쉬운 부분.

2019년 8월 2일, ABC의 유명 토크쇼 '라이브! 위드 켈리 앤드 마이클'에 출현했을 때 레슬링이 그립지 않냐는 질문을 받자, 당연히 레슬링이 그립고 사랑하지만 현재 자신은 조용히 레슬링에서 은퇴한 상태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그러면서도 '경기장에서의 관중들의 함성만한게 없다'며 일말의 여지를 남겨뒀다.#

그러다가... 2019년 10월 4일, FOX 채널로 변경 후 첫 스맥다운인, 20주년 기념 스맥다운 프리미어 쇼 출연이 공식 발표되었다! WWE 공식 홈페이지는 물론 더 락 본인도 자신의 SNS를 통해 이 소식을 전하며 짧은 코멘트를 남겼는데 사뭇 감동적이라는 평이다.

"마침내, 내 고향같은 WWE로 돌아갑니다. 이번 금요일 밤, 제가 폭스TV 라이브의 첫 스맥다운에 출연합니다. 그동안 난 내 꿈을 한참 뛰어넘어 초월적인 커리어를 쌓은 엄청난 행운아였습니다. 여러 해 동안 훌륭한 작품을 통해 영예를 누렸으나 '피플스 챔프(The People's Champ)'가 되는 것만큼 큰 영광은 없었고, 집보다 좋은 곳은 없었습니다. 쇼를 끝낸 후 날 위해 테킬라 한 잔을 준비해두길."

3.2. 경기 스타일

사실 더 락은 프로레슬링계에서 받는 엄청난 명성에 걸맞는 경기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여러 선수에게 경기력이 준수하다는 평도 받았고 형편없다는 평도 동시에 받았다. 점수를 매기자면 B~D 사이 라고 봐도 될 정도의 수준이다. 사람마다 평가가 극단으로 굉장히 많이 엇갈린다. 또 동시대의 다른 레전드 들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을 대표하는 명경기가 뭐냐는 질문이 나오면, 바로 브렛 하트와의 더블턴 경기로 답할 수 있고, 숀 마이클스언더테이커, 트리플 H 등도 이러이러한 경기가 있다는 대답이 쉽게 나오지만 더 락의 경우에는 쉽게 대답하기 힘들다[58]

그리고 기술 시전이 상당히 어정쩡하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수플렉스, 서브미선류가 심하다. 샤프슈터는 국내 팬들에게 '슈터'라고 불리며[59] 조롱받았으며, 더 락의 스승이자 기술의 창시자기이도 한 브렛 하트에게도 엉성한 샤프슈터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참고 셋업 무브인 스파인 버스터의 경우는 '누가 뒤에서 밀쳐서 넘어지는 것 같다'란 말까지 듣기도 했다. 하지만, 더 락으로 기믹변경한 이후의 경기 운영은 브롤링을 베이스로 한 스피디한 타입으로 바뀌었다. 락키 마이비아때와 달라진 점인데 길다란 신체로 휘두르는 해머링 액션만으로도 시원시원한 느낌을 주고, 경기를 스피디하게 이끌면서도 관중의 호응을 유도하는 기술도 많아서 그의 경기는 명경기가 되진 않더라도 관중들에게 확실한 즐거움만큼은 보장됐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기믹매치에 상당한 강점이 있고 난전에 능해서 다자전에서도 돋보이는 경기를 많이 만들어낸다. 애티튜드 시기 최고의 브롤러를 스티브 오스틴으로 꼽는데는 이견이 전혀 없지만, 적어도 그다음 브롤러를 꼽는다면 반드시 들어가야할 레슬러가 바로 더 락. 슬램류의 기술이 상대적으로 적게 나오는 반면, DDT만큼은 정말 찰지게 구사한다. 중요 시그니처 무브인 Floatover DDT는 역습상황에서 잘 들어가는 기술.

그리고 이런 화려함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더 락의 접수 능력이다. 스티브 오스틴의 스터너 접수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때[60] 좋든 싫든 반드시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더 락의 오버 접수다. 더 락은 스터너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기술 접수 나 시전에 있어서 몸을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식의 액션을 선호한다. 매니아의 입장에선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으나, 확실한 것은 이런 역동적이고 확실한 액션이 보는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61]

다만 접수능력과 접수 후의 리액션은 다른 영역이다. 접수 능력이 좋다는 것은 그 기술을 제대로 당해주는 것이고, 그 기술에 걸려든 다음에 리액션을 잘하는건 다른 문제다. 더락은 확실히 기술에 맞기 전에 이미 리액션을 하는 티가 심하게 나기 때문에 접수능력 자체에 있어서는 의문부호가 달리기도 한다. 헤머링이 날아오면 맞기 직전에 맞은 시늉을 하면서 리액션을 해야 하는데 더락은 날아오기 한참전에 이미 날아가고 없다.(...) 관절기를 당해도 제대로 안꺾여 준다. 본인도 제대로 안꺾는 편이고...

타 단체에 비해 거구의 스타들이 많은 WWE에서도 키가 크고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전형적인 헤비급 선수인데, 체격에 비해서 스피드나 탄력 등 전반적인 운동능력이 훌륭하다. 숀 마이클스처럼 kip up[62]을 능수능란하게 할 정도로 체격에 맞지 않게 유연성과 탄력이 우수하고 브롤러 시절 전반적으로 스피디한 움직임과 운영으로 경기가 화끈하다는 평을 들었다. 다만 트리플 H와 마찬가지로 체격은 훌륭한데 힘을 쓰는 파워무브가 거의 없다. 초창기 락키 마이비아 시절에는 베이더를 수플렉스로 날리는 등 나름 그래플링 기술이 몇 개 있었지만, '더 락'으로 링네임을 바꾸고 브롤러 스타일로 전환한 이후로는 더더욱 보기 드문 장면이 되었다. 상술했다시피 힘보다도 오히려 퀵니스를 살리는 동작에 주로 의존한다. 이 때문에 2011년 복귀 이후로 가진 경기들을 보면 스피드나 체력이 젊은 시절에 비해 떨어진 것이 유달리 눈에 띄며, 평론가 데이브 멜처도 2013 로열 럼블 리뷰에서 이를 지적하곤 했다.

덤으로 부상 경력이 거의 없는 수준의 몸 관리 능력도 지녔다. 현역 시절 부상 일지를 보면 스토리라인에서 제외하기 위해 만들어낸 부상을 제외하고 실제 부상은 락키 마이비아 시절 입은 3개월 짜리 허벅지 부상 정도가 전부일 정도로 부상이 적다. 거한들이 몸을 쓰는 과격한 운동[63]에서 다치지 않고 경기를 할수 있다는 건 그거 자체가 실력일 확률이 높다. [64] 더군다나 전성기 시절 단체의 메인이벤터로서 살인적인 스케쥴을 감당했음에도 말이다.

경기력 면에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더 락의 최대 장점은 바로 정말 어마어마한 수준의 쇼맨십, 연기력, 엔터테인먼트 능력과 마이크웍 능력이다. 더 락은 그야말로 타고난 엔터테이너다. 미국인들, 특히 흑인들이 좋아하는 미국 흑인 영어의 찰진 억양과 슬랭을 섞는 말빨만으로 관중의 환호를 쉽게 이끌어내고, 대립을 할때도 단순 대본에 의존하지 않고 시시때때로 상대방의 정보를 역으로 이용해 적절한 조롱을 해서 대립을 흥미진진하게 이끌 줄 안다. 또한 애드립 구사도 매우 훌륭해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다. 그리고 본인의 챈트를 따라하도록 유도하는 소위 조련하는 식의 마이크웍도 정말 뛰어나다. 그의 세그먼트를 보면 'Finally'로 시작하는 첫 인사부터, 'What the rock is cooking'으로 마무리하는 끝맺음까지 관객들이 함께 외치며 즐기는 시그니쳐 멘트가 역대 WWE의 그 어떤 레전드급 선수들과 비교해도 많다. 쉽게 말해 단순히 말빨만 좋은게 아니라 타고난 연기력과 센스로 그 말빨을 엔터테이닝하게 풀어내는 능력도 뛰어나다는 것. 이러한 그의 마이크웍 능력은 가히 프로레슬링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정리하면, 테크닉 구사는 정교하지 못하나 센스를 활용한 경쾌한 경기운영에 천재적인 엔터테이닝 능력을 가미해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는 선수라고 할 수 있겠다.

3.3. 어록

"Know your role and shut your mouth!"

(네 주제를 알고 아가릴 닥쳐라!)

"Finally The Rock has come back to (도시 이름)!"[65]

(드디어 더 락이 (도시 이름) 수플렉스 시티 에 돌아왔다!)


"Just bring it!"

(일단 덤벼라!)


"It doesn't matter what your (name/think) is!"[66]

(네 이름/ 생각이 뭐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Shine it up real nice... turn it sumbitch sideways and stick it straight up your Candy-Ass!"

([어떤 물건을] 반짝이게 광을 내서...옆으로 돌려 네 놈 후장에 박아버리겠다!)[67]


"If you smell~ what the Rock is cookin!"[68]

(락이 니놈을 요리하는 냄새가 느껴지나!)

참고로 이 어록 중에 WWE 게임 시리즈의 제목으로 채택된 것만 무려 세 개나 된다. 2번째 시리즈 부제가 된 "Know your role", 3번째 시리즈의 부제가 된 "Just Bring It!" 그리고 4번째 시리즈의 부제가 된 "Shut your mouth!"까지.[69]

3.4. 둘러보기

2007년 레슬링 옵저버 명예의 전당 헌액자

PWI 선정 올해의 레슬러

스티브 오스틴
(1999)

더 락
(2000)

스티브 오스틴
(2001)

PWI 선정 올해의 선역

스티브 오스틴
(1998)

더 락
(1999, 2000)

랍 밴 댐
(2001)

레슬링 옵저버 선정 올해의 흥행 보증 수표

스티브 오스틴
(1999)

더 락
(2000)

사쿠라바 카즈시
(2001)

브록 레스너
(2010)

더 락
(2011, 2012)

조르주 생 피에르
(2013)

레슬링 옵저버 선정 가장 기량이 발전한 선수

타카이와 타스히토
(1997)

더 락
(1998)

베이더
(1999)

스티브 오스틴
(1998)

더 락
(1999, 2000)

스티브 오스틴
(2001)

레슬링 옵저버 선정 가장 카리스마 있는 선수

스티브 오스틴
(1998)

더 락
(1999 ~ 2002)

밥 샙
(2003)

존 시나
(2010)

더 락
(2011, 2012)

타나하시 히로시
(2013)

레슬링 옵저버 선정 올해의 기믹

스티브 오스틴
(1998)

더 락
(1999)

커트 앵글
(2000)

2000년 WWF 로얄럼블 우승자

빈스 맥맨

더 락

스티브 오스틴

역대 레슬매니아 메인이벤트[★]

1999.3.28
레슬매니아 15

WWF 챔피언십
더 락 vs 스티브 오스틴

2000.4.2
레슬매니아 16

WWF 챔피언십
트리플 H vs 더 락 vs 빅 쇼 vs 믹 폴리

2001.4.1
레슬매니아 17

WWF 챔피언십
더 락 vs 스티브 오스틴

2012.4.1
레슬매니아 28

싱글 매치
존 시나 vs 더 락

2013.4.7
레슬매니아 29

WWE 챔피언십
더 락 vs 존 시나

북미 메이저 단체 세계 챔피언 10회 이상 등극자

링네임
(총 합계)

이력

릭 플레어
(20회)

(※ WWE 기준 16회)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9회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7회
WCW 인터내셔널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2회
WWF 챔피언 2회

(※ WWE 기준)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8회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6회
WWF 챔피언 2회

존 시나
(16회)

WWE 챔피언 13회
WWE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3회

트리플 H
(14회)

WWE 챔피언 9회
WWE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5회

스팅
(14회)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6회
TN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4회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2회
WCW 인터내셔널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2회

랜디 오턴
(13회)

WWE 챔피언 9회
WWE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4회

헐크 호건
(12회)

WWF 챔피언 6회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6회

커트 앵글
(12회)

TN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6회
WWE 챔피언 4회
WWE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에지
(11회)

WWE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7회
WWE 챔피언 4회

더 락
(10회)

WWE 챔피언 8회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2회

제프 제럿
(10회)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6회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4회

번 가니에
(10회)

A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0회

11명

4. 배우 경력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이름

드웨인 존슨
DWAYNE JOHNSON

분야

영화

입성날짜

2017년 12월 13일

위치

6801 Hollywood Blv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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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이라 2》(2001)에서 악역 스콜피온 킹으로 출연한 이후 영화계로 빠지는가 싶더니 영화 《스콜피온 킹》(2002)에서 주연을 맡아 대박을 터뜨리며 영화배우로서 화려하게 데뷔했다.[71] 이 당시엔 위에 언급한대로 WWE에서도 거만한 할리우드 스타 기믹으로 등장했다.

2003년에 개봉한 《웰컴 투 더 정글》에서 더 락은 비평가들에게 매우 호평을 받았는데 이 때 아놀드 슈워제네거 정도의 가능성까지 언급됐을 정도였다. 《스콜피온 킹》 때 비평가들한테 이 영화에서 "락의 연기를 보고있노라면 《코난》에서 슈워제네거의 연기는 로런스 올리비에에 비견된다"는 혹평을 받았던 걸 상기해보면 격세지감. 실제로 이 영화에서 슈워제네거가 깜짝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출연작들에서는 연기력도 그런대로 무난하고 기대작도 많았지만 그가 원했던 액션물로서의 히트작은 딱히 없었다. 때문에 영화계에서 평범한 배우로 머무느니 차라리 복귀하라고 요청하는 팬들도 많았으나 더 락 본인은 기존 노선을 변경해 가족, 코미디물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이후 동성애자 연기부터 거친 플레이로 상대 선수들 이빨을 많이 뽑아놔서 이빨 요정이 되어버린 하키선수, 도시의 영웅으로 자유로이 살다가 갑자기 8살짜리 딸이 찾아와 우왕좌왕하는 미식축구 선수 등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연기를 배웠고 안정적인 흥행몰이를 이어갔다. 본인 연기에서 터닝 포인트가 된 것은 2005년의 《쿨!》로, 그저 그런 액션 영화의 주연으로 재능을 낭비하기보다는 조연이라도 착실히 여러 연기에 도전하며 커리어를 쌓기로 한 것이 신의 한수. 이후 다양한 연기에 도전하며 본업인 액션 배우로도 대성공. 이는 단순한 액션배우만이 아닌 다양한 연기에 도전하며 자신만의 원라이너 캐릭터를 확립했던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커리어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게다가...

바쁜 사람들은 1분 32초부터 보도록 하자.

그 유명한 더 락 오바마 혹은 버럭 오바마는 구글 자동 검색어에도 떠있을 정도로 알려진 영상. SNL에 출연하여 이 모습을 보여줬는데, 존 매케인, 케이 허친슨 등 공화당 의원들이 자신의 의견에 계속 태클을 거는데 빡친 오바마가 변신한 모습이라는 설정이다.헐크? 물론 더 락 오바마로 변한 이후 집무실 집기를 깨부수며 심기를 건드린 참모진들을 모두 창밖으로 내던지는 개그를 선보인다. 이후에도 두 차례나 더 SNL에서 더락 오바마 연기를 선보였는데, 이런 대형 쇼프로그램에 계속해서 게스트로 초대될 만큼 그의 인지도 자체는 전국구라고 할 수 있다.

2010년에 개봉한 《패스터》는 정말로 패스트하게 조기에 막을 내렸다. 하지만 루크 홉스 역을 맡은 《분노의 질주 5》와 《분노의 질주 6》이 연이어 대박을 치면서 15억 달러에 달하는 흥행 수익을 자랑하는 7편에까지 등장하며 시리즈를 대표하는 주역으로 자리 잡았다. 게다가 브루스 윌리스이병헌이 출연하는 《지아이조 2》의 주연을 맡았다. 마이클 베이의 신작 《페인 엔 게인》(Pain & Gain)에서는 마크 월버그, 안소니 마키와 짝을 이뤄 단순무식찌질한 근육바보 범죄자 연기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현재 평론가들 사이에서의 배우로써의 드웨인 존슨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긍정적이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잘 생긴 외모에, 레슬러 시절부터 인정받아온 특유의 매력적인 연기 스타일이 성공적으로 영화계로 옮겨와 현재까지도 안정적으로 영화계에 자리잡고 있을 수 있었던 이유라고. 초창기 영화 출연 당시 받았던 혹평에서 부족함을 자각하고 연기 수업을 적극적으로 받았을 뿐 아니라, 자기개성만 심하게 짙은 반짝 액션스타들과는 다르게 어떤역할이든 맡으면 진심을 다해 영화를 위해 제대로 망가질줄도 알고있으며, 장대한 체격 덕분에 깊은 울림이 느껴지는 또렷한 발성으로 대사 전달력이 좋고 액션 장면이 아니어도 배우로서 충분히 존재감을 자랑한다.

다만 많은 평론가들과 영화관계자들이 '근육질의 큰 체형이 불필요하다'는 공통된 지적을 하고 있는데, 더 다양한 장르와 배역을 소화하고 톱클래스 배우로 한 단계 더 올라서는데 체격이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할리우드 표준 체형'으로 감량을 강력하게 권유받고 있으나, 본인이 체형 교정을 거부해왔는데 그 이유는..."언제라도 링에서 레슬링을 할 수 있는 몸을 유지하고 싶다"라는 것.[72] 다만 영화 '둠' 촬영 당시엔 벌크를 상당히 줄인 적도 있었는데, 이후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걸 보면 본인은 이 체형을 유지하는게 더 편한 모양이다.하긴 수십년간 유지한 습관을 바꾸는게 쉬운 일은 아니니..

단순한 립서비스가 아니라 실제 배우로서 더 성장할 수 있음에도 진지하게 프로레슬링을 대하는 그의 행동과 멘탈 덕분에 한때 알바라고 까대던 덕후들도 입을 다물고 배우와 레슬러 양쪽 입장의 팬들 모두에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루세프와의 세그먼트에 깜짝 등장한 것도 우연히 일정이 겹치게 되자 더 락 본인이 '팬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라는 이유에서 WWE에 먼저 출연의사를 표시한 것이었다.

지아이조 2 개봉 당시 이병헌과 함께 WWE 챔피언 벨트를 들고 프로모션 차 한국에 왔다. "좋은 아침입니다."라는 한국어 인사로 시작한 내한 기자 회견에서 액션 영화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함께 헌신적이고 이지적인 태도로 답변에 임하여 기자들의 호감을 샀다. 연예가중계에도 출연, 특유의 시원스러운 미소로 한국 시청자들에게 인사했다. 프로레슬러 더 락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덩치 큰 배우의 해맑게 웃는 모습에 반했다고.

2013년 12월, 경제잡지 포브스의 조사에 따르면 13억 달러의 흥행 수입을 기록하며 12억 달러를 기록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제치고 흥행 수입 1위 자리에 올랐다. 분노의 질주 팀의 동료인 빈 디젤은 4위에 올랐다. 분노의 질주 6편. 지아이조2. 페인 앤 게인의 연이은 흥행 성공으로 이룩해낸 성과였다. 이미 전해에 1년 간 할리우드 배우 출연료 수입 5위에 올랐었다. 당시 1위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였고 드웨인 존슨이 제친 유력 영화배우들 중에는 6위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9위의 덴젤 워싱턴 등이 포진해 있었다. 2015년에도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이 전 세계적으로 흥행 신기록을 갱신하고 있으니 여전히 상위권에 랭킹 예정. 그리고 결국 1위를 했다. 마찬가지로 포보스지에 따르면 15년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6450만 달러를 벌어들인 것. 분노의 질주 시리즈와 《샌 안드레아스(영화)》의 흥행을 이끈 공이 가장 크다는 평. 그리고 2위에는 청룽이 6100만 달러로 안착했다.

2014년부터는 전 부인 대니 가르시아와의 동업으로 세븐 벅스 프로덕션 회사 설립 및 컨텐츠 제작에도 참여하고있다. 2015년에는 HBO에서 《볼러스》(Ballers)라는 드라마를 총괄제작 및 주연으로 은퇴한 미식축구 선수 겸 현 재무설계사로 재직중인 스펜서 스트래즈모어 역을 열연, 시청자와 평론가에게 모두 좋은 평을 얻으며 시즌2 제작을 확정지었다. 시즌1은 10회에 걸쳐 절찬리에 상영되었으며, 현재 시즌2 촬영중.

2016년에는 디즈니의 차기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인 《모아나》의 남자 주연 캐릭터인 마우이 역으로 참여하며, 처음으로 뮤지컬 연기에 도전하게 된다. 이외에도 샤잠 실사 영화의 블랙 아담 등 굵직한 역할들을 맡으며 커리어를 다양하게 늘여가는 중.

드웨인 존슨은 초창기만 해도 척 노리스스티븐 시걸 같은 B급 액션 배우[73]의 수준을 넘어서 이제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갖춘 2010년을 넘어서는 명실상부한 A급 액션 스타가 되었다. 본래 액션 배우는 국적을 막론하고 캐릭터가 중요한데, 드웨인 존슨은 아놀드 슈워제네거 이후 좀처럼 대세가 되지 못했던 마초 근육남 캐릭터를 21세기에 걸맞게 표현하면서 높은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前 세대의 근육질 액션스타였던 슈워제네거가 게르만 특유의 각지고 근엄한 마스크와 투박한 발음, 중독성있는 원라이너로 캐릭터를 쌓았다면, 드웨인의 캐릭터는 시원한 미남형의 마스크와 낮게 깔리는 근사한 음색, 거기에 수년간 RAW의 마이크웍으로 다져진 입담까지 갖춘 신사적인 캐릭터다. 비주얼도 준수해서 투박한 이미지의 아널드 슈워제네거, 젊은 시절에는 미남이었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을 뿐 너무 늦게 데뷔해 다소 늙은 스티븐 시걸과는 달리 드웨인 존슨은 이미 프로레슬러로 유명해진 후 자연스럽게 영화배우로 넘어가면서 투잡을 뛰는 상태라 비주얼이 돋보이며 특히 구레나룻을 기르면 상당히 매력적이다. 약간 단조롭더라도 뚜렷한 매력을 가진 덕분에, 프로레슬러 더 락이 아니라 영화배우 드웨인 존슨의 팬층 또한 두텁게 형성되어 있다. 흑인, 사모아 출신이라는 인종적인 핸디캡도 미국 대통령부터 흑인이 선출되는 등 유색인종이 대세가 되어 가는 미국 현실에는 더 이상 단점이라 하기 어렵게 되었다[74]. 덕분에 개봉만 했다 하면 박스오피스 1위는 무난하게 찍어 주는, 그야말로 믿고 보는 배우가 되었으니 프로레슬러 겸[75] 영화배우로서는 가장 성공적인 인물임에 틀림없고, 많은 프로레슬러들의 모범적인 워너비로 자리잡고 있다.

2017년 현재 드웨인 존슨의 개런티는 헐리웃 10위권 이내에 들어가며 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의 쟁쟁한 배우들보다도 개런티가 높다.

그리고 2017년 연말에 개봉한 쥬만지: 새로운 세계가 월드 와이드 성적으로 9억 6천만 달러 이상을 벌며 초대박을 터뜨리는데 성공했다.

2018년에는 사업 철수로 돈을 번 조지 클루니를 제외하고 영화출연 수입으로 무려 1억1900만 달러 약 1억 2천만 달러(약 1350억원)를 벌어들이며 역사상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린 배우로 기록되었다.

4.1. 작품 목록

연도

제목

활동

제작비

극장 흥행

2001

미이라 2

단역

9800만 달러

4억 3301만 달러

2002

스콜피온 킹

주역

6000만 달러

1억 6533만 달러

2003

더 런다운

주연

8500만 달러

8090만 달러

2004

워킹 톨

주연

4600만 달러

5700만 달러

2005

쿨!

조연

5300만 달러

9522만 달러

2005

주연

6000만 달러

5600만 달러

2006

그리다이언 갱

주연

3000만 달러

4100만 달러

2007

레노 911:마이애미

우정출연

1000만 달러

2202만 달러

2007

게임 플랜

주연

2200만 달러

1억 4700만 달러

2008

겟 스마트

조연

8000만 달러

2억 6437만 달러

2009

윗치 마운틴

주연

5000만 달러

1억 600만 달러

2009

플래닛 51

주연

7000만 달러

1억 564만 달러

2010

디 아더 가이즈

조연

1억 달러

1억 7000만 달러

2010

미스터 이빨 요정

주연

4800만 달러

1억 1246만 달러

2010

유 어게인

조연

2000만 달러

3200만 달러

2010

패스터

주연

2400만 달러

5262만 달러

2011

분노의 질주: 언리미티드

조연

1억 2500만 달러

6억 2000만 달러

2012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2 : 신비의 섬

주연

7900만 달러

3억 2569만 달러

2013

G.I. Joe: 리탤리에이션

주연

1억 3000만 달러

3억 7574만 달러

2013

엠파이어 스테이트

주연

1100 만 달러

300만 달러

2013

페인 앤 게인

주연

2600만 달러

8610만달러

2013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

조연

1억 6000만 달러

7억 9000만 달러

2014

허큘리스

주연

1억 달러

2억 4300만 달러

2015

분노의 질주: 더 세븐

조연

1억 9000만 달러

15억 1152만 달러

2015

샌 안드레아스

주연

1억 5500만 달러

4억 6065만 달러

2015~2018

볼러스(드라마)

주연

2016

센트럴 인텔리전스

주연

5000만 달러

2억 1257만 달러

2016

모아나

주연

1억 5000만 달러

6억 4051만 달러

2017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

주연

2억 5000만 달러

12억 3858만 달러

2017

베이워치

주연

6900만 달러

1억 5214만 달러

2017

쥬만지: 새로운 세계

주연

9000만 달러

9억 6200만 달러

2018

램페이지

주연

1억 2000만 달러

4억 2800만 달러

2018

스카이스크래퍼

제작, 주연

1억 2500만 달러

3억 162만 달러

2019

파이팅 위드 마이 패밀리

제작, 조연

2019

분노의 질주: 홉스 & 쇼

주연

2억 달러

2019

쥬만지: 더 넥스트 레벨

주연, 제작

2020

정글 크루즈

제작, 주연

2020

레드 노티스

주연

1억 3천만 달러

넷플릭스

5. 기타

  • 현역 시절 백스테이지 정치 싸움과 관련해서 고생을 상당히 많이 한 선수다. 락키 마이비아로 데뷔 했던 시절에는 비슷한 위치에 있던 트리플 H를 밀어주기 위해서 클릭 패거리가 그를 묻어버릴려고 온갖 모함질을 다했다고. 이 때는 브렛 하트가 동향 후배인데다가 락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가문 대대로 아는 사이라서 여러모로 도와줬다고 하고, 뒷날 월드 챔피언에 오른 뒤 WWF 레슬매니아 15에서[76] 오스틴과 첫 월드 챔피언전을 벌이기 전에도 여러 선수들이 락은 아직 경험도 적고, 어리다면서[77] 절대 안된다면서 빈스의 사무실을 들락 거렸다고 한다. 다행히 빈스와 오스틴이 도와줘서 별 무리없이 PPV에서 경기를 진행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크리스 제리코가 WWF에 데뷔했을 때 WCW 출신임에도 나름 푸시를 받자 이를 시기한 선수들이[78]그를 묻어버릴려고 했을 때 본인이 직접 나서서 조언도 해주며 지켜줬다고 한다.
  • 현역 시절 의외로 부상 전력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락키 마이비아 시절 NOD에 가입하기 전 2달 가량 허벅지 부상으로 쉰 것을 제외하면 그 이후로는 제대로 된 부상을 입은 적이 거의 전무한 편인데 당시가 애티튜드 시대이고, 락 역시 그 시대에 걸 맞게 무수한 하드코어 매치를 하면서 머리에 체어샷을 난타당하거나, 철제 계단이나 입장로에서 파일 드라이버를 맞고, 사다리에서 떨어지는 등 상당한 고생을 했음에도 당시 모든 RAW와 히트[79], 스맥다운, 하우스쇼, PPV 그 밖에도 각종 쇼나 코미디에 꼬박꼬박 출연했을 정도. 특유의 오버 접수가 허투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 웃는 모습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뭘해도 간지
  • 단체 내 위상에 비해서 패배한 경기가 많다. 챔피언 횟수도 많지만 보유기간도 1~2달이 대부분일 정도로 짧은 편. 그 당시의 빅3(트리플H, 오스틴, 더 락)로 꼽히는 레슬러들과는 전부 기본적으로는 호각 정도에 물고 물리는 관계였고[80], 그 외에도 강력함만으로 따지면 커트 앵글 등 비등한 선수도 많았다. 브록 레스너에겐 피니시 기술인 피플스 엘보우가 씹히는 최악의 굴욕을 당하면서 파워의 열세를 여실히 드러냈다. 이런 열세에도 불구하고 마이크웍에선 지독한 말빨로 악바리처럼 조롱하고, 링 위에선 악전고투하여 결국 승리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챔피언이 바로 그의 캐릭터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의 레슬링 캐릭터는 음담패설을 속사포처럼 날리며 상대를 까는 말빨과 과장된 몸짓을 선보이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측면이 강하다. 대표적으로 스터너 접수. 다만 기술의 정확성 같은 건 좀 많이 떨어져서 전성기 때도 한창 비판을 많이 받았다. 대표적으로 똥슈터(...), 브렛 하트 역시 다른 건 다 칭찬하면서도 그의 샤프슈터를 보고 한마디 했을 정도. 그나마 WWE 로얄럼블(2013)에서는 제대로 썼다.
  • 위에서 언급했듯 단체의 간판급 선수 임에도 불구하고 레슬매니아 메인이벤트에서 승리를 한적이 거의 없다. 다섯 번의 레슬매니아 메인이벤트를 치루면서 이룬 전적은 1승 4패. 특히 월드 챔피언쉽 경기에서 단 한번도 이겨 본 적이 없다. 레슬매니아 28 메인이벤트에서 승리하면서 겨우 체면을 세웠지만 그 경기는 세계 챔피언쉽 경기가 아니었다. 로렌스 테일러처럼 레슬매니아 메인이벤트에서 승리해본적은 있지만 세계 챔피언쉽을 방어하거나 쟁취해본 적은 없다는 드문 기록의 소유자이다. 다만, 레슬매니아에서 헐크 호건, 스티브 오스틴, 존 시나라는 각 시대의 Iconic Star 들과 모두 경기를 하고 그들을 전부 이겨본 경험이 있는 유니크한 기록을 지니고 있으며 이 기록에 대해서 WWE에서도 언급한적이 있다.
  • 일부에서는 WWE 시대의 아이콘이라는 것에 의문을 표한다. 보통은 애티튜드 시대의 1인자이자 아이콘은 오스틴을 언급하고 더락은 2인자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역대 2인자들 중에서는 더 락이 인기가 가장 많았지만 1인자 오스틴과는 확연한 격차가 있었다. 하지만 시대의 아이콘이 꼭 한 사람이라는 법은 없으며 당장 뉴 제너레이션의 아이콘을 따지자면 브렛 하트와 숀 마이클스가 함께 거론된다. 거기다 챔피언 등극 기간이 짧고 승률이 낮다는 것 또한 어디까지나 오스틴처럼 전무후무한 케이스와 비교해서 그렇지 당장 월드 챔피언에 등극한 횟수가 10번이고 전체 승률도 50%가 넘는다. 그리고 우리가 아이콘은 곧 무적이라는 법칙에 익숙해져서 그렇지 패배한 적이 있다고 해서 아이콘이 아니라는 법 또한 없다. 결정적으로 락은 오스틴이 목부상으로 공백기를 가진 약 1년여동안 단체의 탑 페이스 겸 1인자로 군림했으며, 오스틴에게는 상대 전적에서 열세이고 레슬매니아 18에서는 헐크 호건에게 환호가 밀리기는 했어도 후반에 피플스 엘보우를 시전하며 다시 환호를 되찾아 왔다. 무엇보다 WWE에서 그를 아이콘으로 칭하고 있고 대다수의 팬들 역시 4대 아이콘을 고르라면 그 중에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락이 들어간다. 정리하자면 헐크 호건과 오스틴의 아성을 넘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아이콘이 아니라고도 할 수 없다. 엄연히 애티튜드 시대부터 믹 폴리나 트리플 H와 함께 많은 사랑을 받았고 이후에도 오스틴에게 바톤을 넘겨 받아 연합군으로부터 WWF를 지켜내는 등 아이콘의 역할을 문제 없이 수행해줬기 때문이다.

* 시대의 라이벌로는 주로 트리플 H와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이 거론되는데, 트리플 H와는 미들급에서 시작해 각각 DX와 네이션을 이끌며 오랜기간 대립하며 메인 급으로 성장했고[81], 오스틴은 이전 인터콘티넨탈 타이틀을 놓고 잠시 대립하긴 했지만 본격적인 라이벌 구도는 더 락이 그의 부재로 사실상 원 톱의 위치에 오르면서로 보는 편이다. 다만 오스틴 상대로 한 전적은 별로 좋지 못한 편. 오스틴전 상대전적은 2승 7패로 심하게 밀리고 있으며, 그 2승도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치루어진 WWF VS 연합군의 대결 중 커트 앵글의 도움을 받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WWE 레슬매니아 19에서 열린 오스틴의 은퇴경기였다. 괜히 레슬매니아 직전 "업계에서 오스틴 빼곤 다 이겨봤다"고 말한 게 아니다. 더락의 라이벌로는 오스틴이 언급이 자주 되지만 오스틴의 최대 라이벌은 누가봐도 더 락이 아니라 빈스 맥마흔인 부분도 있다.

  • 대학 시절 만난 대니 가르시아란 여성과 결혼해 슬하에 1녀 사이먼 가르시아 존슨을 두고있다. 가르시아와는 2007년 결혼 11년만에 이혼을 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혼 후 전 부인이 더 락의 전속 매니저를 맡으면서 오히려 결혼생활을 유지할 때보다 공식석상에서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더 락의 WWE 컴백 이후에도 모든 경기를 링사이드에서 가족들과 함께 관전하고 있으며, 2012년 출시된 더 락 DVD/블루레이 'The Epic Journey of Dwayne The Rock Johnson'에서도 더 락에 대한 코맨트를 위해 출연한 바 있다. 현지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이혼의 표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 국내 팬들 사이에선 그럴 거면 굳이 이혼할 필요 없는 거 아니냐는 말도 팬들 사이에서 있긴 하지만, 혼약으로 맺어진 관계라는 건 친구 사이와는 또 다르므로 이는 단언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다가 2019년에 로렌 하시안와 결혼하였으며, 이미 두 사람 사이에는 각각 3살과 1살이 된 딸이 있다고 한다.
  • 바로 위에 적힌 대로 전 부인과 아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2014년부터 둘이 동업으로 세븐 벅스 프로덕션이란 제작사를 설립해 제작자로도 꽤 잘나가는 중이다. 더 락이 출연한 영화 대부분을 제작했고, 샤잠과 블랙 애덤 같은 DC 유니버스 영화 제작에도 참가하는 중.
  • 영어판 트랜스포머 프라임에서는 클리프점퍼의 성우를 맡았다. 하지만 클리프점퍼는 1화에서 5분도 안 되어 죽어 버렸고, 이후에 나오는 회상 장면에서는 대사가 없거나 대사가 43화에는 있었어도 그때는 빌리 브라운이라는 배우가 맡아했다.
  • 2004년 미국의 몰카 프로인 punk'd의 희생양(?)이 된 적이 있다. 내용은 영화 촬영차가 폭발했는데 그것에 대한 책임문제로 싸우다가 낚시임을 알게된 에피소드.
  • 이 장면은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으로써 인기를 끌고있다.
  • 대인 관계가 상당히 좋은 걸로 유명한데 파이프 밤을 통해서 그렇게 씹어대던 CM 펑크도 그를 정말 쿨한 인간이라며 덤덤하게 대했고, 심지어 마크 월버그와도 친하다고 한다. 특히 케빈 하트와 항상 티격태격을 연출하고 소셜 미디어에서도 서로 응원하는 모습을 보이며 절친한 사이이다. 라이언 레이놀즈와도 상당히 친하며 서로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며 좋아요와 댓글 등을 자주 남기며 친분을 과시하고 있다. 2011년 복귀 이후 대립했던 존 시나 또한 대립중에는 험악한 관계였을때도 있었으나 대립이 끝나고 친한 친구가 되었다고. 심지어 레슬매니아 29에서 부상을 당하고 수술대에 오르게 될 상황이었을 때, CM펑크와 존 시나가 일부러 찾아와서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또 한 번은 보스턴에서 차를 타고 가다가 어느 차의 사이드 미러를 박살내버렸는데 본인이 차주가 올 때까지 기다린 다음 직접 사과, 수리비 또한 모두 지불하기로 했다. 차주는 그럴 필요 없다며 자기 차가 더 락에게 박살난 것만큼 멋진 일은 없다며 괜찮다고 쿨하게 코멘트.(물론 수리해준 것으로 보인다.) 락 정도가 되면 전담 변호사 정도는 있기에 법적으로는 굳이 직접 차주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락의 인간성을 보여주는 일화로 볼 수 있다.
  • 전술했듯이 대부분과 좋은 대인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한 때는 숀 마이클스를 정말로 싫어했던 시기가 있었다. 위에 언급된 데뷔 초기시절 괴롭힘의 주축이였던 사조직 클릭의 맴버인데다 당시 망나니로 악명높았던 숀은 그의 성장을 막으려고 했고, 락의 외할머니가 주최한 쇼에서까지 무례하게 굴어서 당시 14살이었던 락을 화나게 만드는 등 영 사이가 좋지 못했다. 2005년 WWE.com과의 인터뷰에서는 숀과 경기를 치르는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할 정도였지만, 후에 숀이 개과천선 후 화해했다고 한다. 그 시기는 알 수 없으나 2008년 명예의 전당에서 락이 게스트로 등장했을 때 경기해보고 싶은 상대로 존 시나와 레이 미스테리오를 꼽고 세 번째 선수를 언급하려는 순간 객석에서 HBK를 외치자 숀 마이클스를 꼽았다. 락이 팬들을 위해 그냥 언급한 것인지 진심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시간이 약이라고 옛날의 감정은 많이 누그러진 듯 하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숀은 브렛 하트와도 화해했으니 좋은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 미드웨이에서 더 락을 주연 겸 페이스 모델링까지 해서 만든 스파이헌터라는 게임이 있었다. 본래 미드웨이의 시리즈로 아케이드로 시작해 플레이스테이션 2 등으로 시리즈가 이어지다가 아예 영화화+게임화를 동시에 노린 기획이었는데, 영화는 엎어졌고 게임도 평가가 그저 그랬다.
  • 2006년에 자기 이름으로 된 재단 드웨인 존슨 락 파운데이션을 세웠다. 주로 불치병 걸린 아이들을 돕는 재단.[82] 자신의 모교에도 기부를 했다고 한다.
  • 2000년 미국 대선 당시 양 정당의 전당 대회에 나와서 연설을 하기도 했는데 당시 WWE의 행사 차원에서 간 것이라고 한다.

  • SNS도 적극적으로 돌리고 있다. 본인이 나오는 출연작 내용도 많지만, 팬들과 찍은 사진과 동영상은 물론이고 운동하는 모습도 자주 올리는 편. 마이애미에 전용 운동시절을 가지고 있으며, 매일 여기서 훈련중에 있다. 이름은 Iron Paradise. 그의 평상시 생활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을 보자. 현재 개 2마리를 입양해서 개스타그램의 지분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갈색은 Brutus, 검정,흰색이 Hobbs. Brutus는 안타깝게도 2015년 9월 29일 집에서 놀다가 독버섯을 먹고 상태가 너무 안좋아져서 안락사를 시켜야했다. 현재 Hobbs는 아직도 잘 지내고 있는데, 산책가는 것은 둘 다 되게 싫어했다...Hobbs야 지금도 산책가는건 더럽게 싫어하고, 가끔씩은 주인말을 좀 안듣는 편이다. Hobbs는 주인님 운동하는데도 자주 따라다니는 듯...항상 운동할때 주인 근처에 있다.
  • 위에 언급된대로 엄청난 운동광으로 새벽에 일찍 일어나 빡세게 트레이닝 하는 스타일이다. 절친인 트리플 H와는 SNS를 통해 서로 몇시에 일어나 운동했는지 경쟁할 정도.[83] 때문에, 자신의 아이언 파라다이스라는 이동식 피트니스 트럭에서 매일 자신만의 운동루틴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 그의 마이크웍 중 가장 유명한 'If you smell what the rock is cooking'은 국내에 WWE가 처음 방영되던 시점에서 '락의 힘을 느낄 수 있나'라는 말로 적절하게 초월번역 의역되었다. 그 이외에 그가 만들어 낸 말인 'Smackdown'이나 'Just bring it' 등이 사전에 등재되며 공식적인 영어 단어가 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널리 쓰이게 되었다는 의미.
  • 2007년 찍은 영화 게임 플랜에서 처음 만나 사귀게 된 작곡가 로렌 하시언 사이에서 2015년 12월 둘째 딸 자스민을 얻었다. 그리고 2018년에 세째 딸 티아나를 얻었다.
  • 그의 왼쪽 가슴과 팔에 있는 문신은 영화 배우로 전업하던 시기에 새긴 것인데 외가 사모안의 전통 문신이라고 한다. 자신의 모든 것, 중요한 것, 조상들 등등 자신의 삶을 모두 모아낸 아주 복잡한 작품이다. 외할아버지 피터 마이비아는 이것과 비슷한 패턴을 다리와 허벅지에 했는데, 하다가 중독으로 죽을 뻔 하였다고...

* 더불어 오른팔에 있던 브라마 불 문신이 더 락의 트레이드마크라도 해도 좋을 정도로 유명한 문신이었는데, 지난 2017년에 어깨부터 이두근에 이르기까지 오른팔의 거의 절반을 새로운 문신으로 덮어버려 브라마 불 문신은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새로운 문신은 브라마 불의 진화와 더불어 피와 땀, 세월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황소의 얼굴뼈가 갈라지고 부서진 다소 그로테스크한 형상이다. 더 락 본인의 설명으로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담고있다고...

  • 국내 공중파에서 방송할 때 전담 성우는 MBC는 박지훈이었으나, 박 모씨가 걸린 이후에는 주로 안지환이 맡는다. KBS나 기내더빙에서는 홍진욱이 맡는다. 다만 Siri 광고에서는 시영준이 담당했다.
  • 프로레슬러 제자가 딱 1명 있는데 정확히는 아버지 락키 존슨이 제자를 가르칠 때 옆에서 함께 도왔던 것이다. 그 제자는 다름 아닌 올랜도 조던.
  • 연기 활동과 각종 사회 활동 참여로 2016년 4월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랭크되었다. 피플지 선정 2016 가장 섹시한 남자에 선정되었다. 2017년 마침내 미국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이 확정되었다.
  • 그의 인생 목표 중 하나가 바로 미국 대통령이다.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여러번 이야기한 거라서 단순 농담만은 아닐지도. 재미있는건 이 꿈이 어느정도 실현 가능성이 있다는건데, 2017년 미국의 모 기관에서 여론조사를 한 결과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드웨인 존슨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올 경우 도널드 트럼프를 제칠수도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물론 이는 트럼프가 연일 최저 지지율을 갱신하고 있는 상태에서 반영된 결과라 다른 후보들도 트럼프 다 제끼는(...) 판국이라서 걸러 봐야 하는 부분은 있지만, 어쨌든 미국내에서 그의 인기가 여전히 대단하다는 증거로 볼 순 있을 것이다.
본인도 계속 시그널을 보내는 중. 2017년 5월 지미 팰런이 진행하는 '더 투나잇 쇼 스타링 지미 펄론'에 출연해 "2020년 대선에 출마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리더십을 보고 싶어한다."고 발언하기도 했고, GQ와의 인터뷰에서도 "실제 가능성(real possibility)이 있다."라고 언급한 적도 있었다. 2017년 10월 쥬만지 속편 홍보 행사에서도 "'국민들을 위한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이 가장 어울릴 것 같다. 그것만큼은 말해줄 수 있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더락 오바마가 진짜 나올지도
  • 2017년 7월 애플 Siri 광고에 출연하였다. Siri의 쓰임새에 대해 다루는, TVCF가 아닌 웹 상영용 단편영화이다. 극장 상영만 안 했지 정말로 단편영화 취급을 하는지, 공식 포스터도 있다. 각 국가별 언어로 만들어졌으며 한국어 더빙 영상도 제작되었다. The Rock x Siri, 오늘도 거침없이 한국어 더빙 영상의 성우는 시영준. 꽤 담백하게 연기했다. 또한 Siri에 "더 락이랑 뭘한거야?"라고 물으면 이 영상으로 안내한다.
  • 익스펜더블 4에서 멤버들을 하나하나 사냥하는 악역으로 출연하고 싶다고 했다.
  • SNS에 올리는 일상사진을 보면 팬케이크에 메이플 시럽을 뿌려서 먹는 것을 정말 즐기는듯 하다. 보통 팬케이크 먹으면서 노트북으로 영화를 본다고 한다.

  • 프로레슬러 출신 배우라 그런지 영화에 출연하면 작중에서 락바텀을 사용하는 장면이 한번 이상은 꼭 나온다. 그외에도 크로스라인 등 다른 기술들은 더 많이 사용한다.
  • 어린 시절부터 엄청난 노안이었다. 16살에 이미 떡대가 어지간한 성인 남성보다 큰데다 콧수염까지 나서 동급생들이 학교에서 잠복근무하는 경찰로 오해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11세때 이미 듬직해보였는데, 이 때문에 한 팬은 세금내도 될 정도 나이로 보인다는 드립을 했다.
어깨를 잡을 수 없다고
  • 분노의 질주 시리즈 때문에 함께 한 빈 디젤과 불화설이 있었지만 사실은 좋은 관계(?)라고 한다. 둘의 트레이닝 영상 다만 훗날 실제로 불화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불화의 원인은 영화 제작에 대한 견해 차이로 심지어 8편을 촬영할 땐 단 한 장면을 제외하고 둘이 같이 촬영한 적이 없었을 정도로 불화가 심했다고 한다. 둘은 수 차례 대화를 나눴지만 영화 제작에 대한 근본적인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서로의 견해를 존중하며 화해는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분노의 질주: 홉스 & 쇼 촬영으로 인해 9편에서는 출연하지 않기로 하며 하차가 확정되었다. 2019년 가을에 이르러 빈 디젤이 SNS을 통해 홉스 앤 쇼의 성공과 결혼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남기자 이에 바로 화답하는 등, 둘의 관계가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진 것으로 보인다.
  •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기로도 유명한데, 10년째 자신의 집안일을 도와준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께 고급차를 선물한 것이나, 어렸을 때 자신에게 도움을 줬던 하쿠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자 크리스마스 선물로 트럭을 선물해 주는 등... 하쿠는 이 때 감격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자신의 친척이자 전담 스턴트맨인 타노아이 리드에게 신형 포드 F-150 픽업트럭을 선물했다. 락의 인스타그램, #, 타노아이 리드의 인스타그램. 2019년 3월엔 또 아버지 락키 존슨에게 집을 한 채 선물했다고..

  • 헤비 유투버 이기도 하다. 구독자가 300만 명이 넘는다!

  • 위에 적었듯이 운동 마니아인데 아예 언더 아머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딴 'Project Rock'이라는 네이밍으로 다양한 상품군을 판매 중이다. 락의 인기 덕에 출시된 상품들도 상당히 인기 있다고 한다.
  • 한창 프로레슬러로 활동하던 시절 선역일 때였든 악역일 때였든 여러 백스테이지 인터뷰에서 특유의 입담으로 자신에게 질문하던 인터뷰어들을 자주 놀리는 세그먼트로 그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대표적으로 놀림 당한 것이 현재 RAW의 메인 캐스터인 마이클 콜. 1996년부터 2003년까지 WWE 인터뷰어로 활동했던 케빈 켈리도 락으로부터 남자의 자존심이 없다는 말을 듣는(...) 놀림을 받았고[85], 조나단 코치맨도 더 락의 강요로 뜬금없이 기도를 한다거나, 이상한 춤을 추다가 엉덩이를 걷어차이는 등의 굴욕을 당했다. 릴리안 가르시아도 2001년에 가끔씩 백스테이지 인터뷰어를 한 적이 있는데 더 락을 인터뷰하다가 그에게 성적인 농담을 들어 당황한 적이 있다. 그 밖에도 많은 인터뷰어들이 락의 놀림을 받았지만, 전설적인 캐스터인 짐 로스는 락과의 인터뷰에서 별다른 놀림을 받지 않았다.
  • 이런 더 락에게 백스테이지 세그먼트에서 굴욕을 준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허리케인. 2003년 레슬매니아 19를 앞둔 RAW에서 한창 락커룸에서 거드름을 피우고 있던 락에게 옷장에서 불쑥 튀어나온 허리케인이 "아까 샤워하고 나온 걸 봤는데, 그렇게 대단한 그레이트 원도 거시기는 아주 작더구만"이라 놀렸고, 그 말을 들은 락은 멘붕을 일으키다 정신을 차린 뒤 자신의 주니어(...)에게 "넌 절대 작지 않아! 자신감을 가져!"라 격려하는 개그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 굴욕을 갚아주기 위해 이 날 RAW에선 더 락과 허리케인의 싱글매치가 메인 이벤트로 잡혔는데, 경기는 내내 락이 우세를 점했지만, 갑자기 나타난 스티브 오스틴에게 정신이 팔린 락이 허리케인에게 한방 맞아 핀폴을 허용함으로서 허리케인이 락을 잡는 이변을 낳기도 했다.

  • 케빈 하트와는 절친 중의 절친으로 센트럴 인텔리전스 이후 상당히 많은 영화에 함께 출연했다.

6. 신장 논란

키에 대해서 논란이 많다. WWE에서 프로레슬러로 활동하던 시기엔 196cm으로 표기하였다. [86] 더 락 본인은 배우 전업 이후로는 193cm이라고 하였으나 그보다는 조금 더 작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191cm인 크리스 헴스워스브록 레스너 보다는 확연하게 컸으므로 193cm~196cm 사이가 분명하다. 거기에 드웨인 존슨의 나이가 나이인 만큼 20대 시절인 196cm의 키에서 당연히 줄을 수 밖에 없다.

198cm의 찰스 바클리- 193cm? 드웨인 존슨- 216cm 샤킬 오닐

키가 198cm인 찰스 바클리와 같이 찍은 사진에서 누가 봐도 상당히 격차가 날 정도로 작아 보인다.[87] 과거 WWE 프로레슬러들의 프로필은 과장해서 적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에 저 정도 신장인 사람보다 키가 작아 보이는게 크게 이상한 것은 아니다.

185cm의 마이클 베이와 찍은 사진

191cm의 브록 레스너와 찍은 사진

193cm의 데이빗 핫셀호프와 찍은 사진

여기서 중요한 건 핫셀호프는 구두를 착용하고 존슨은 단화 차림이다. 저 정도 덩치의 사람들의 구두는 굽도 최소 5cm은 훌쩍 넘어간다. 둘이 해변에서 함께 찍은 사진에서는 존슨이 작아보였으나 위치 차이였고 둘이 같은 층계에서 찍은 사진은 비슷했다.

또한 188cm 아놀드슈왈제네거 보다 월등히 컷고 와 193cm 트리플H의사진에서도 약간 더컷다.

188cm의 라이언 레이놀즈와 190cm의 크리스 헴스워스 보다도 크게 찍힌다.


  1. [1] 체중은 작품에 따라 차이가 크다. 페인 앤 게인 촬영 당시 135kg, 분노의 질주 시리즈 촬영 당시 128kg, 슬림하게 조절 시 118kg, 비시즌 125kg, 허큘리스 촬영 당시 135kg.
  2. [2] 락키 마이비아 초창기 시절 피니셔.
  3. [3] 99년도 사용 타이탄 트론
  4. [4] 현재까지 사용 중인 타이탄 트론
  5. [5] 만화 근육맨의 등장인물 제시 메이비어의 모델이기도 하다.
  6. [6] 2008년 두 사람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는데 이때 시상을 맡은 이가 락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날 시상에 앞서 팬서비스 겸 분위기 띄우기용으로 화려한 마이크웤(...)을 보여주었다.
  7. [7] 사모아 조도 사모아인지라 드웨인 존슨의 친척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사모아 조는 드웨인과 친인척이 아니다.
  8. [8] 스티브 오스틴은 경력상으로 1996년 WWE에 입문할때 이미 12년간 프로 레슬링을 했다는 탄탄한 커리어를 가지고 있었다. 대체로 10년정도의 커리어를 보내야 단체의 메인이벤터 자리에 진입하는게 보통인 프로 레슬링 역사상 이정도로 짧은 시간만에 단체의 메인이벤터로 성장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현역 선수 중에서 비견될만한 이는 존 시나 정도.
  9. [9] 시나 역시 2000년에 레슬링을 시작하여, 2002년에 WWE에 들어와 불과 3년만에 메인 이벤터로 성장하고 이후 헐크 호건, 스티브 오스틴에 이은 확고부동한 WWE 아이콘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10. [10] 여담으로 당시에도 유색인종 월드 챔피언은 많이 있었지만, 업계를 좌지우지할만한 영향력과 인기를 지닌 선수는 락이 거의 유일했다. 아니 모든 프로 레슬러 통틀어 락만한 사람도 거의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테지만.
  11. [11] 팬티에 그려진 소 얼굴.
  12. [12] 한쪽 눈에만 힘을 주고 눈썹을 위 아래로 움직인다. 몇몇사람은 의외로 따라하기 힘들다는 반응.
  13. [13] 본인 말에 의하면 자기가 다니는 학교마다 남다른 노안때문에 학생이 아니라 잠복경찰(...)아니냐?는 의심까지 받았을 정도라고 한다.
  14. [14] 다만 만 15세면 한국나이로 16~17살인데 (생일이 지났냐 안 지났냐에 따라) 미국 공립학교는 보통 4년제이므로 이 사진이 찍혔을 때는 고등학교 1~2학년이었을것이다. 물론 그 나이를 감안해도 위엄인 건 맞다.
  15. [15] 다만 아버지인 락키 존슨이 캐나다 사람이라 더 락도 본래라면 캐나다 사람이다.
  16. [16] 드웨인과 당시 같이 활약했던 선수로 유명한 이가 NFL의 라인배커 레전드인 레이 루이스(전 볼티모어 레이븐스)와 밥 말리의 아들인 로핸 말리가 있다.
  17. [17] 당시 레슬링 기어가 하나도 없어서 어린 시절부터 따르던 하쿠에게 레슬링 복장을 빌렸다고 한다.
  18. [18] 당시 함께 수련한 동기가 마크 헨리다.
  19. [19] 과거 프로모터로 유명했던 짐 코넷은 드웨인 존슨의 첫 경기를 보고는 평론가 데이브 멜처에게 "저 친구는 5년 내 프로레슬링 업계 최대의 스타가 될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2016.8.7 트윗
  20. [20] 참고로 락은 WWE 역사상 최초의 3세대 레슬러 집안 출신이다.
  21. [21] 당시 데뷔 프로모에서도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할 정도로 착하고 어리숙해 보이는 락이 나와서 가문의 영광을 살리겠다는 모습을 보였다.
  22. [22] 리키시의 예전 링네임.
  23. [23] 여기 한가지 비화가 있는데 새로운 신예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락키 마이비아를 묻고, 헌터 허스트 헴슬리를 밀어주기 위해 클릭이 작당을 벌였다. 하지만 브렛 하트가 이를 간파한 뒤 자신이 잡을 하겠다고 해서 별 문제 없이 지나갔다.
  24. [24] 빈스 맥맨은 인터뷰에서 잘 생기고, 기초도 튼튼한 선수에게 관중들이 대체 왜 그러는지 도저히 이해를 못 했다고 한다.20년이 지난 지금도 잘 생기기만 하고 기초도 없는 놈한테 관중들이 왜 야유를 보내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다. 사실 그럴만도 한게 이전까지는 미남형의 레슬러의 인기가 상당했기 때문이었기도 하고.
  25. [25] 이 당시 애티튜드 시대는 그야말로 '남자들의 프로'였다. 더구나 이때는 프로레슬링이 '선역이 악역에게 승리한다'는 동화형식에서 레슬러 한명 한명이 자신에게 맞는 캐릭터성을 부여받고 이와 연관한 기믹을 연기하는 것으로 컨셉을 변화시키던 과도기였기 때문에 성인남성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다.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의 경우, 한동안 금발미남 레슬러 기믹으로 지내던 것을 이 시기를 기점으로 텍사스 출신 배드 애스로 전환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다.
  26. [26] 게다가 전환하는 시기 역시 마침맞았고 여기에 락의 개인신상에 어울리는 기믹을 선사함으로서 현실성을 높인 캐릭터를 선사한 것 역시 신의 한수로 간주되었다.
  27. [27] 당장 당시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이었던 랜디 새비지는 훗날 WWE 챔피언의 자격을 얻을 정도의 인기를 구사하고 있었다.
  28. [28] 이 때 락은 수뇌부에게 자신이 마이크웍을 할 시간은 딱 30초만 달라고 했다. 수뇌부는 새파란 애송이가 마이크웍 시간을 요구하는게 어이 없었지만, "고작 30초니까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시간을 배정해주었다. 그리고 전설로...
  29. [29] 맨 처음 더 락에게 악역전환과 NOD 가입을 제안한 것은 짐 로스 였고, 인터뷰에서 빈스가 처음에 더 락을 악역 전환 시킨 뒤 NOD에 가입시킬려고 할 때 굉장히 조심스럽게 락에게 물어 봤는데 락은 굉장히 기뻐했다고 한다.
  30. [30] 단순히 경기에서 진 정도가 아니라 경기 대도록 일방적으로 쳐맞는 스쿼시 매치만 했다.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샴락에게 비오는날 먼지나게 쳐맞다가 마지막에 앵클락 당하고 탭치거나 중간에 가끔 반칙으로 한두대 때리는게 고작이거나 그나마도 없을 정도로 쳐맞기만 했다.
  31. [31] 바로 이 때 그 유명한 "Know your role, and shut your mouth!!!"가 떴다.
  32. [32] 당시 WWF에서 작가로 일했던 브루스 프리처드는 당시 스티브 오스틴으로부터 "저 친구가 눈썹을 올리고 유행어 몇 개 읊는다고 겟오버할 거 같지는 않은데.."라는 소감을 들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프리처드가 말하길, 본래 어느 레슬러가 겟오버하기 시작하면 그 당시 최정상급 스타가 꼭 딴지를 걸기 시작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오스틴의 말을 듣고는 락이 확실히 대박을 치고 있구나하고 실감을 했다고 한다. 그는 The Sun과의 인터뷰나 스티브 오스틴 팟캐스트에서 해당 일화를 밝혔다.
  33. [33] 이를 위해 여유증을 없애기 위한 수술을 받았다.
  34. [34] 다만 일부 시각에서는 흑인 혈통이 있기는 하지만 사모안 혈통도 섞여있는 더 락을 순수 흑인 챔피언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시각도 있다. 부친인 락키 존슨 역시 백인 혼혈이기 때문. 이 때문인지 WWE 최초의 흑인 챔피언을 코피 킹스턴으로 알고 있거나 그렇게 보는 사람도 있다.
  35. [35] 촌철살인의 멘트와 거기에 겉맞는 얼굴표정과 말투, 때로는 빈정거림이나 비꼼을 적절하게 섞어서 얘기하는 솜씨가 정말로 죽여주는 실력이었다.
  36. [36] 당시엔 레슬매니아, 로얄럼블, 섬머슬램, 킹 오브 더 링 같은 대형 PPV를 제외하고 PPV의 이름이 다 정해지지 않았고, ~~: 인 유어 하우스 식으로 정해지곤 했다.
  37. [37] 맨카인드와 아이큇매치를 비롯한 대립관계 당시의 복장이 삼선 츄리닝바지에 넉넉해보이는 검은색 셔츠인데 이게 당시 수술한 지 얼마 안된 때라 흔적을 가리기 위해서라고. 그래도 워낙 간지가 나서 지금 이 복장의 락을 그리워하는 팬들도 많다.
  38. [38] 뜻하지 않게 보였다
  39. [39] 참고로 이 때 더 락은 다른 레슬러들의 견제를 많이 받아서 레매 15를 앞두고 다른 선수들이 빈스에게 락은 아직 너무 어리다거나 실력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방해하려 했으나, 결국 스티브 오스틴 본인이 락에게 함께 메인 이벤트를 맡을 것을 부탁하면서 일단락.
  40. [40] 무려 8.4%. 지금은 4%만 나와도 대박이란 걸 생각하면 정말 엄청난 수치다.
  41. [41] 그런데 이전 상황을 보면 락이 빈스에게 락 바텀을 가한 이유가 있었다. 위에 언급한 레슬매니아 17에서 빈스와 오스틴의 연합으로 패배하고 타이틀을 빼앗겼던 일이다. 셰인과 스테파니도 이를 근거로 빈스가 락을 데려오지 못 할 것이라 디스했다.
  42. [42] 피플스 엘보우는 로프 반동을 한 후, 공격하는 기술이기 때문에 누구에게 기술을 시전할 지는 당장은 알 수가 없으나 당시 영상을 자세히 보면 빈스는 로프에 조금 더 가까운 곳에 쓰러진 반면, 셰인은 완전히 링 한가운데에 쓰러져 있었다. 피플스 엘보우는 보통 상대를 링 한가운데에 쓰러뜨리고 사용하는 기술임을 생각하면 이미 이 때부터 셰인이 피플스 엘보우를 맞는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해당 영상을 자세히 보면 락 바텀을 맞고 쓰러진 셰인이 쓰러진 상태에서 조금씩 링 한가운데로 조금씩 움직인다. 여담으로 원래 피플스 엘보우는 시전하기 전에 팔꿈치 패드를 관중석에 던지지만, 이 때 락은 사복을 입고 있어서 패드 대신 선글라스를 관중석에 던졌다.
  43. [43] 이 때, WWF 복귀를 선언하면서 한 말이 그 유명한 "Finally, The Rock has come back!!!!! To the WWF." 이 전에도 더 락의 대표 유행어 중 하나였지만 보통은 쇼가 열리는 지역을 붙여서 하는 말이고 관중들도 그렇게 말할 것이라 생각하고 락보다 먼저 자신들의 지역을 말했다. 그러나 락은 이 사이에 말을 멈추고 WWF로 바꿔서 말하였기에 더욱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참고로 이 말을 하기 전까지 락은 링 위에서는 물론, 이 전에 경기장에 도착하고 나서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복귀 후 처음으로 내뱉은 대사가 바로 이 대사였던 것.
  44. [44] 이 때 당시 헐크 호건은 악역이고 더 락이 선역이었다. 그런데 헐크 호건의 인기가 너무나도 넘사벽이었던지라 오히려 선역이었던 더 락이 야유를 받은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45. [45] 거의 반삭에 가까운 헤어스타일에 가죽 재킷과 고급 선글라스를 걸치고, 왼쪽 어깨에는 사모아 전통 문신을 추가해 등장했다. 이듬해에는 왼쪽 가슴까지 문신이 확장되었다.
  46. [46] 영화 '둠' 촬영당시만 하더라도 이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슬림한 체형으로 바뀌어 많은 팬들에게 충격을 줬었는데, 이 당시 분노의 질주 5, 그 후 보디빌더 역을 맡은 페인 앤 게인의 출연을 위해 엄청나게 몸을 불려놓았다. 결과적으로 영화 찍으려고 몸 키웠는데 레슬링도 함께 흥행하는 효과를 낳았다.
  47. [47] 게다가 RAW 마지막에는 시나가 Thuganomic 기믹으로 락을 디스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시나를 기타 콘서트로 디스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그리고 마지막에 We will ROCK you를 즉석 개사해서 시나를 추가로 깠다.We~ wil~ we~ will~ rock you! CENA SUCKS!!
  48. [48] 지난 레슬매니아 28에서 락과 시나의 타이틀 매치 슬로건이 평생 단 한번 뿐인(Once In A Lifetime)이었다. 네티즌들이 이를 비꼬는 말.
  49. [49] 락이 예전에 WWE 챔프에 오르고 '브라마 불 벨트'를 사용하려 했으나 무산된 적이 있기 때문에 그 점에서 락의 의견이 반영된 듯.
  50. [50] 이 당시 국내에 지 아이 조 2 홍보를 겸해 내한을 했었는데 새로운 WWE 챔피언쉽 벨트도 아주 오랫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51. [51] 스맥다운 첫 회에 있었던 일이다. 둘의 싱글 매치였고, 숀 마이클스가 심판을 맡았다.
  52. [52] 고향인 플로리다에서 열렸다.
  53. [53] 주차장에 차를 몰고 들어와 인터뷰를 하던 미즈의 스포트라이트를 뺏는다. 그리고 미즈에게 인사를 하더니 옛날 영화에 나오는 수녀 꼬라지같다며 비웃는다. 그리고는 안바쁘면 자기 차나 주차 해달라고 차 키를 던져준 후 쌩깐다. 그리고 빅 쇼와 마주치는데, 처음엔 만나서 반갑다며 인사만 나누는듯 했다. 그런데 점점 말이 길어져갔고 2000년 WWF 로얄럼블(2000) 때 빅 쇼가 우승한게 맞다며 맞장구를 치더니, 당시 찍었던 영화 스콜피온 킹의 제작자가 누가됐건 로얄럼블 우승자를 캐스팅 할거라고 했다며 웃으며 속을 박박 긁기 시작한다. 만약 그때 우승했다면 온갖 영화를 찍고 스타가 된 자신의 모습이 빅 쇼 너 였을지도 모른다고 악의없는 미소와 함께 실컷 퍼붓고는 유유히 자릴 떠난다. 그걸 들은 빅 쇼가 울먹이며 노트북을 거꾸로 접어버린다.
  54. [54] 빅 쇼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라나와 마주치자 작년 루세프와의 세그먼트를 언급하며 반가워 한다. 그러다 또 말이 길어지더니 라나가 예전에 본인의 호텔 방에 찾아와 루세프랑 못해 먹겠다고 징징거린 일과, 함께 술에 취해 뜨거운 밤을 보냈다는 일까지 언급해버린다. 이걸 뒤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루세프를 보고 깜짝 놀라더니 역시 인사를 건내고 정말 유연한 아내를 얻게 되었다면서 약혼을 축하(?)했다. 그 뒤엔 팻 패터슨과 스쳐 지나가며 그의 생일을 축하하기도 했다. 그렇게 끝도 없이 떠벌거리면서 백스테이지를 지나 고릴라 포지션에 서서 그 유명한 Finally, The Rock has come back! Home... 챈트로 관객을 실컷 조련한 후에야 겨우 링으로 입장한다. 들어오자 뉴 데이 3인방에게는 왜 라마의 거시기를 머리에 붙이고 있냐고 조롱하며 끝없는 말빨을 과시했다.
  55. [55] 링에서의 세그먼트 도중 각본을 무시하고 몇몇 레슬러 복장을 따라한 팬들을 향해 애드립을 펼치기도 하였는데, 이에 대해 백스테이지에서는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다. 더 락 또는 존 시나가 아닌 다른 선수들이 저렇게 했다면 곧바로 해고를 당했을 것이라는 얘기마저 나왔다고 한다. 한편 라나에 대한 세그먼트 각본은 성차별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다만 이건 라나가 당시 트위터로 페이지와 문제를 일으킨 탓에 회사 차원에서 내린 일종의 징계라고 한다.
  56. [56] 다만 이전 경기인 딘 앰브로스와 브록 레스너의 경기가 꼴랑 10분 정도였기 때문에, 현역보다 알바에게 그렇게 많은 시간을 줬어야 하냐는 비판이 나왔다. 사실 브록도 알바
  57. [57] 이에 대해서는 후일 딘이 스톤콜드 팟캐스트에서 브록이 이 경기에 굉장히 무성의하게 임했다고 대놓고 불평했던 사실, 일반적으로 PPV에서 하이-미드카더 이상급 선수들의 대립을 마무리짓는 경기에 고작 10분을 배정하지는 않는다는 점, 브록이 옛날부터 제멋대로에 동업자 의식이 구리기로 유명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딘과 브록의 경기가 원래 더 길 예정이었으나 브록 때문에 10분짜리 경기가 되었고, 락은 그저 이로 인해 생겨난 애매하게 붕 뜬 시간을 마이크웍으로 메꿔준 것일 뿐이다'라는 음모론(?)도 있다.
  58. [58] 굳이 최고의 경기 꼭 하나를 꼽는다면 이견도 있겠지만, 레슬매니아 17의 vs 스티브 오스틴전을 제일 먼저 꼽는 편. 패하긴 했지만 엄청난 혈전을 벌였고 데이브 멜처 평점도 4.5으로 가장 높다. 오스틴 본인도 현역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레슬매니아 13에서 브렛 하트와의 경기와 더불어 이 경기를 꼽는다.
  59. [59] 땀범벅이 된 얼굴을 잔뜩 구기고 입을 쩍 벌리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아 기술을 쓰는 모습이 마치 똥을 싸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것.
  60. [60] 오스틴은 이게 너무 과해서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레슬매니아 17 때 보면 스터너를 맞고 온몸으로 백덤블링하며 나가떨어지는 락을 보면서 피식하는 모습이 찍히기도 했다. 사실 스터너에 대해 잊기 쉬운 것이, 스터너는 상대방에 얼굴을 자신의 어깨에 찍어버리는 커터 기술이다. RKO를 맞고 뒤로 넘어가는 경우가 없다는 걸 생각하자. 오스틴이 제일 맘에 든다고 하는 셰인 맥맨의 접수 또한 뒤로 넘어가지 않고 옆으로 떨어진다. 대신 무릎꿇은 자세로 그대로 뛰어서 나가떨어지는지라 무릎에 엄청난 부담이 가는 접수. 그리고 쉐인은 이 접수를 할때 반드시 무릎으로만 접수를 하는게 아니라 양 손을 바닥에 동시에 댐으로서 무릎에 가는 부담도 경감한다.
  61. [61] CM 펑크의 피니시 기술 GTS는 원래 접수하기가 쉽지 않고 KENTA의 원조 기술에 비해 동작도 밋밋하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2012년 7월 23일 RAW에서 락이 CM 펑크에게 처음 GTS를 맞을 때는 피폭 동작이 확실하고 직관적이어서 당시에 호평을 받았다.
  62. [62] 2011년 컴백 당시 RAW에서 미즈와 알렉스 라일리를 상대할 때 오랜만에 한 번 kip up을 시도했으나 나이도 들었고 전성기에 비해 몸이 많이 무거워진 상태여서 민망하게 실패하고 만다. 무리라고 판단해서인지 이때 이후로는 아예 kip up을 하지 않았다.
  63. [63] 프로레슬링은 각본이 있고, 큰 합을 짜 놓고 하지만 기술을 시전하고 접수하는 것은 진짜라 실력이 있어야 한다. 오히려 엔터테인먼트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관중들에게 임팩트를 주기 위해 진지한 격투기에서 불필요한 화려한 동작들이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부상이 발생하기 쉽다.
  64. [64] 다만 더 락은 반론도 많은데 저게 기술이 좋거나 많은 연습량를 통해서 합을 제대로 맞춰서 그런게 아니라 기술 자체를 제대로 당해 주지 않기 때문일수도 있기에.. 제대로 기술이 안들어가서 관절기가 제대로 꺾이기 전 상태에서 인상쓰고 아픈척 데굴데굴 구르기만 하면 당연히 부상은 생기지 않는다.
  65. [65] 이벤트가 벌어지는 도시이름을 말하는데 분위기를 업시키는데 일조하는 멘트다.
  66. [66] 세그먼트 도중 상대가 대사를 치려고 할 때 강렬하게 말을 끊어 받아치는 형식이다. name을 얘기할 때는 일단 상대의 이름을 물어보고 상대가 자신의 이름을 다 말하기도 전에 이 대사를 하며 끊어버린다. 이러하다 보니 이 대사는 메인급 선수들보다는 주로 미드카더들 상대로 마이크웍을 할 때 많이 나온다.
  67. [67] 이때문에 생긴 유명한 별명중 하나가 Candy Ass Movie Star.
  68. [68] 1990년대 후반부터 더 락의 타이탄트론 인트로로도 들을 수 있는 유행어.(한 때는 "Do you smell what the Rock is cookin!"이 쓰인 적도 있다.) SBS 스포츠에서 방영될 때는 "더 락의 힘을 느낄 수 있나!"로 의역했다.
  69. [69] 5번째 시리즈의 부제는 브록 레스너의 "Here comes the pain"(고통이 다가온다!)가 채택되었으며 이 후 시리즈에서는 부제가 아예 없어졌다.
  70. [★] 70.1 오른쪽이 도전자, 밑줄이 승리자
  71. [71] 영화 진출 초기엔 링네임인 The Rock을 그대로 썼으며, 덕분에 영화 크레딧에 빈스 맥마흔이 책임 프로듀서로 올라가 있다.
  72. [72] 아놀드 슈워제네거도 같은 소리를 들었다. 그래도 주로 액션 영화에 출연해 왔기에 근육을 줄일 이유도 없었고, 그 쪽도 보디빌딩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있어서 70세가 넘은 2017년 현재까지도 매일 대여섯 시간씩 운동을 하며 상당한 근육을 유지하고 있다.
  73. [73] 이 B급은 미국의 TV 영화 혹은 중, 저예산 영화에 주로 출연하는 배우를 뜻한다. 비하적 의미의 B급이 아니라, 비유하자면 마이너 리그의 야구선수 같은 의미.
  74. [74] 흑인, 멕시칸 들 미국 내 마이너 혈통들은 정말 큰 잘못을 하지 않으면 어지간해서는 지지를 거두지 않는 편.
  75. [75] 은퇴를 공식적으로 말한 바 없는 데다가 잊을 만하면 링에 복귀하는 엄연한 현업.
  76. [76] 레슬매니아 15는 구매율 80만을 세우며 기록 경신 해 상당한 성공을 했다.
  77. [77] 당시 락은 데뷔한지 겨우 3년 덜 된 시점인데데가 아직 20대 중반이었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긴 한 셈.
  78. [78] 주로 DX 멤버들이었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트리플 H의 탐욕이 껴있다
  79. [79] 스맥다운 방영 전까지는 히트가 사실상 스맥다운의 위치였다.
  80. [80] 특히 스톤콜드에게는 그야말로 살아 숨쉬는 호구. 커리어 싱글 매치 유일한 1승이 스톤콜드의 은퇴 경기였다.
  81. [81] 거기다가 트리플 H 본인이 더 락과 자신의 관계는 음과 양 같다고 얘기할 정도로 언제나 극과 극이었다.
  82. [82] 그래서 재단활동으로 이런 어린이들을 만나 용기를 주는 사진들이 SNS에 자주 올라온다.
  83. [83] 여담으로 WWE 간부가 되어 엄청 바쁘게 사는 트리플 H도 틈틈히 식이요법 + 운동을 통해 전성기 수준의 근육질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틈틈히 하는 정도가 아니던데
  84. [84] 영화 홍보차원에서 한 말이다.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자
  85. [85] 재밌는 사실은 더 락은 마이애미 대학교 출신이고 당사자였던 케빈 켈리는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출신이다. 두 학교가 같은 주 라이벌 대학교라는 사실을 대입하면 흥미로운 구조가 된다.
  86. [86] 지금도 WWE 공식 홈페이지에는 6ft 5in=약 196cm라고 적혀있다.
  87. [87] 그러나 바클리가 196cm이라는 언급이 있지만 198cm의 마이클 조던과 바클리의 투샷에서 바클리가 더 큰게 확인되어 바클리가 196cm이라는 건 농담이고 오히려 더 클 수도 있다는 게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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