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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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러시아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으로 전쟁 도중 탈퇴

러시아 제국
Россійская Имперія
[1]

국기[2]

국장

1721~1917

표어

Съ нами Богъ![3]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노라!)

국가

하느님, 차르를 지켜주소서!
(Боже, Царя храни!)

영역[4]

동유럽, 북아시아, 캅카스, 중앙아시아
루스카야 아메리카(1799~1867)
중국 북부, 몽골, 신강, 페르시아 북부, 발칸(영향권)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1704~1728)
모스크바(1728~1732)
상트페테르부르크(1732~1917)

국토 면적

23,700,000 km² (1866년)
22,800,000 km² (1914년)

인구

175,100,000 명 (1914년)

정치체제

전제군주제

국가원수

황제(차르)

언어

러시아어(공용어)
기타 각 지방 언어들

종교

러시아 정교회(국교)
이슬람, 유대교, 가톨릭, 개신교, 불교 등

주요 사건

(1682년 표트르 1세의 즉위)
1721년 제국 선포
1812년 조국전쟁 발발
1853년 크림 전쟁 발발
1861년 농노제 폐지
1904년 러일전쟁 발발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 발생
1906년 헌법 제정, 두마[5] 설립[6]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1917년 러시아 혁명, 제국 멸망

통화

루블

성립 이전

루스 차르국

멸망 이후

러시아 공화국

[템플릿이미지출처]

1. 개요
2. 역사
2.1. 모스크바 대공국
2.2. 러시아 제국
3. 국가
3.1. Гром победы, раздавайся!
3.2. 러시아인의 기도
3.3. 하느님, 차르를 보호하소서
4. 같이 보기

1. 개요

1721년, 표트르 대제가 세운 이후부터 제1차 세계 대전 도중 러시아 혁명(1917년 3월)에 의해서 제정이 붕괴될 때까지 존재하였던 러시아의 제국을 말한다.

국토를 보면 상당히 흠좀무스러운데, 당시 시대만 해도 영연방 대영제국 다음으로 크고 아름다운 동구권의 국가였다. 그리고 이때가 러시아 역사상 영토가 가장 컸을 때[8]인데, 정작 이 때는 영국에 밀려 세계에서 가장 큰 국가가 아니었지만[9] 이보다 영토가 훨씬 작아진 지금은 러시아는 다른 열강이 식민지를 거의 다 잃은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다.[10] (위 사진의 녹색 부분. 연두색 부분은 지배당했지만 어느 정도 소규모 자치가 있던 지역이다. 단 조금 조심해서 봐야하는 게 러시아 제국이 진한 녹색으로 칠해진 부분을 동시에 점령한 적은 없다. 중앙아시아 점령은 알래스카 매각 이후에 이루어졌다.) 3개 대륙(유럽, 아시아, 북아메리카)에 영토를 가지고 있던 나라였다.[11]

넓은 의미에서는 표트르 대제 이전 로마노프 왕조의 시작까지, 또는 루스 차르국의 성립 시기까지도 거슬러 올라가 러시아 제국으로 보기도 한다. 왕정시대의 러시아와 이후 소련의 일부인 러시아 공화국을 구분하기 위해 "제정 러시아"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현재까지도 많이 쓰이는 표현.

2. 역사

2.1. 모스크바 대공국

제정의 시초는 키예프 공국의 일파인 모스크바 대공국에서 시작된다. 15세기 이반 3세몽골의 지배에서 벗어나 인근에 널려있던 수많은 소국들을 통합하여 연합체적인 모습으로 러시아를 키워나갔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이반 3세의 뒤를 이은 이반 뇌제는 기존의 대공이라는 명칭 대신 차르(짜르)라는 칭호를 사용하면서 나름대로 통합적인 국가의 모습을 갖추어 중앙집권적인 "루스 차르국(Царство Русское)"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이 당시의 '차르'라는 개념은 러시아 내에서만 머물러 있었던 데다가 권력도 그리 강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결국 이반 4세가 죽은 후 러시아 내부는 혼란 시대라고 불리는 동란의 시기에 빠져들게 되었다.

모스크바는 이반의 살아 남은 외아들과 결혼한 여자의 오빠인 보리스 고두노프(1598~1605 재위)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그의 치세는 스웨덴과 싸워 이긴 짧은 전쟁 기간을 제외하고는 태평시대였으며, 근대화와 표준화 정책을 추구했다. 그러나 몇 가지 문제가 미해결로 남았으며 특히 대귀족의 불만과 반대는 해소되지 않았다.

대공위 계승권자임을 주장하는 첫 번째의 이른바 '가짜 드미트리'가 폴란드의 지원을 받아 모스크바로 진격했다. 가짜 드미트리의 지원군은 쉽사리 격퇴당했지만 고두노프도 몇 주 후에 죽고, 대귀족들이 고두노프 가문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 드미트리를 차르로 추대했다. 이어 '혼란 시대'(1606~13)가 뒤따랐다.

모스크바 대공국의 중심부는 혼란에 빠지고, 드미트리가 끝내 암살당했으며, 2번째의 가짜 드미트리가 나타났고, 폴란드가 침략해 왔다. 모스크바의 세력집단들은 폴란드에 대항하기 위해 결집했으며 1613년에 류리크 왕조의 외척인 미하일 로마노프(Михаи́л Рома́нов)를 차르로 선출했다. 이때부터 로마노프 왕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러시아의 위상은 낮았고 서구는 로마노프 가를 러시아의 황제로 인정하지 않았다.[12]

로마노프 왕조가 정치적인 안정을 이루고 경제와 사회의 질서를 회복하기까지는 10년 이상이 소요되었다. 정치적 회복은 중앙정부 관료들의 존속과 국정을 맡은 소수 독재자에 힘입은 바가 컸다. 그후에 이루어진 발전은 17세기 이들 집단의 성장과 통합, 그리고 순조로운 세력 확장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혼란시대 말엽에는 대귀족과 전문 행정가가 관료의 기능을 맡았으나 그후 100년도 안 되어 모든 상인계층·귀족계층·성직자들이 도처의 관료직을 차지했다. 중앙기관의 세력이 다른 모든 정치·사회 집단을 압도하며 쉽사리 확장될 수 있었던 이유는 지방기관이 취약하고 독립된 교회나 사회적 권력이 없었던 데 있었다.

이러한 과정은 1649년의 대법전에 반영되었고 이 법전이 1833년까지 러시아 법의 기초가 되었다. 이 법전은 교회를 국가의 관할하에 두고 농노제를 법제화했으며, 군주에 대항하는 '언행'죄를 조목조목 열거했다. 정치적으로 17세기에는 폴란드와 수차례에 걸친 전투 끝에 동(東)우크라이나를 병합했다.

한편 1650년대에는 총대주교 니콘이 전례를 간소화하고 그리스어 원전과는 너무 달라진 교회 서적을 바로잡았으며, 성직자의 사목기능을 강조하는 등 종교의 개혁을 단행했다. 그러자 러시아 정교회 내에 분열이 생겼으며, 각 교파와 지역에서는 대대적인 반란이 일어났다. 정부는 개혁가 편에 서서 '복고신앙파'를 억압했다.

이반 뇌제 ~ 표트르 대제 시기의 자세한 역사는 루스 차르국 문서 참고.

2.2. 러시아 제국

표트르 1세가 즉위하면서부터 러시아는 급속도로 바뀌었다. 표트르 대제의 등극은 향후 2세기 동안 러시아를 지배하게 될 사회적·제도적·지적 동향을 예고하고 확립하는 일대 사건이었다.

소년 시절 모스크바에 살던 서유럽인들과 아주 가까이 지냈던 표트르 1세는, 반 정도는 아시아 국가라 해도 좋았던 러시아를 서구 세계의 일원으로 편입시키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서구화 정책을 통해 급격하게 러시아를 서유럽화 시키기 위해 힘쓰는 한편, '임페라토르(Император)'를 러시아 군주의 칭호로 채용하고, 정식으로 러시아 제국이라는 국호를 제정하여 절대왕정의 기틀을 다졌다. 엄밀한 의미에서 '러시아 제국'이라고 하면 이 시기부터를 의미한다.

표트르 대제는 귀족들에게 서유럽인들처럼 수염을 깎고 서유럽식 의복을 입고 댄스와 파티에 참석하며 커피 마시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는 조치를 내렸다. 이는 한 세대 남짓 만에 러시아의 교육받은 귀족을 유럽 상류사회의 일원으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본격적으로 러시아의 교육과 문화생활에서 새 시대의 출발점이 되었다. 표트르 대제는 처음으로 세속 교육을 대폭 도입하여 모든 국가공무원에게 의무적으로 교육받도록 했다.

표트르 1세 치하에서 대북방전쟁의 승전으로 스웨덴이나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영향력을 일소하고, 예카테리나 2세 시대를 지난 이후 19세기 초 나폴레옹의 주력을 괴멸시키고 프랑스군을 꺾은 러시아는 마침내 서방국가들로부터 강대국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유럽을 평정하게 되면서 이제서야 다사다난했던 러시아도 숨통이 좀 트이는가 싶었지만 현실은 시궁창.

러시아의 실체는 속빈 강정에 불과했다. 인구의 대부분(80~90%)이 문맹에 가난한 농노 상태였던 데다가[13] 국가의 모든 권력이 전제군주인 차르에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유럽처럼 자본주의의 활성화, 중산층의 대두, 과학혁명과 같은 변화를 경험하지 못하였다.

나폴레옹 전쟁의 상처를 빈 체제로 유럽 각국들이 씻어내자마자 러시아의 존재감은 병풍 수준으로 크게 위축되었고, 식민지 팽창과 부동항 확보도 시원찮아 영국끈질긴 견제 앞에 맥을 못추고 비틀거렸다. 크림 전쟁러일전쟁이 대표적인 사건. 거문도 사건을 보면, 머나먼 동쪽의 조선에서도 영국의 직접 견제가 이루어졌을 정도라는 걸 알 수 있다. 영국의 대러견제는 거문도 이후로 영일동맹, 러일전쟁 등으로 직접 손을 쓰기보다는 일본의 스폰서로 나서는 간접적인 형식으로 바뀌어서 제정 러시아 붕괴 및 세계대전 전간기까지 지속된다.

비록 표트르 1세가 이룩한 사회개혁은 단기적으로는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봉건적, 권위주의적인 사회구조를 개선할 생각은 조금도 안 했기에 오히려 이게 강화되는 결과만 초래했고 러시아가 변화하는 유럽 역사의 일반적인 흐름에 동참하지 못하고 훗날 자멸하는 데 일조하였다. 특히 1900년대에는 세율 90%공산주의?라는 고세율과 지배층의 사치와 무능으로 러시아 민중들 고통은 심화되었으며 이러한 민중들의 불만에 제국은 피의 일요일 사건 같은 억압책만 고집하면서 러시아는 극도의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무리하게 참전한 1차 세계 대전에서 러시아가 간신히 대포 한발 쏘면 독일은 10발 넘게 쏘는 등 한심한 국력으로 참패의 연속을 겪다가 분노한 러시아 민중들이 마침내 러시아 제국을 무너뜨리게 된다.

3. 국가

3.1. Гром победы, раздавайся!

(?~1833) 승리의 천둥이여, 울려라! (Гром победы, раздавайся!)

1833년까지 불려진 비공식 국가다.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던 가브리야 데르자빈(Гавриил Романович Державин)이 작사했으며 작곡은 오시프 코즐로브스키(О́сип Анто́нович Козло́вский)가 맡았다. 러시아 장군 알렉산드르 수보로프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이즈마일 요새를 점령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노래다.1833년 공식 국가의 등장으로 대체되었다.

러시아어

한국어 번역

1

Гром победы, раздавайся!
Веселися, храбрый Росс!
Звучной славой украшайся.
Магомета ты потрёс!

승리의 천둥이여, 울려라!
찬미하라, 러시아의 용감함을!
러시아의 영광은 밝게 빛난다.
우리는 무슬림을 흔들어 놓았다네.

후렴

Славься сим, Екатерина!
Славься, нежная к нам мать!

이에 찬양하라, 예카테리나를!
찬양하라, 우리의 온화한 어머니를!

2

Зри, премудрая царица!
Зри, великая жена!
Что Твой взгляд, Твоя десница
Наш закон, душа одна.

보아라, 지혜로운 여제 폐하를!
보아라, 위대하신 여인을!
그대의 생각과 결정은
곧 우리의 법이며 유일한 마음이라네.

3

Зри на блещущи соборы,
Зри на сей прекрасный строй;
Всех сердца Тобой и взоры
Оживляются одной.

보아라, 빛나는 대성당을,
보아라, 이 아름다운 구조를.
너의 모든 마음과 눈이
하나되어 살아 움직이게 한다네.

3.2. 러시아인의 기도

(1816~1833) 러시아인의 기도 (Молитва Русских) 갓 세이브 더 퀸?![14]

실제로 1815년 버전의 멜로디는 영국 국가를 차용했다. 러시아의 몇몇 학자들은 작곡가를 알 수 없다고 주장하기는 하는데 솔직히 너무 비슷하다.

러시아에서 국가(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гимн)라고 불릴 만한 노래가 최초로 등장한 것은 1815년경으로 추정되는데, 이때는 알렉산드르 1세가 제위에 있었으며 나폴레옹의 침략을 막아낸 조국전쟁과 같은 큰 전쟁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때문에 자연스레 차르를 중심으로 한 애국적인 가사가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어

한국어 번역

1

Боже, Царя храни!
Славному долги дни
Дай на земли!
Гордыхъ смирителю,
Слабыхъ хранителю
Всехъ утешителю -
Всё ниспошли!
Гордыхъ смирителю,
Слабыхъ хранителю,
Всехъ утешителю -
Всё ниспошли!

하느님, 차르를 보호하소서!
영광된 이에게 장구한 시대를
누리게 하소서!
자랑스러운 정복자에게,
영광스러운 수호자에게,
모든 이들의 위로자에게,
모두에게 강림하셨나이다!
자랑스러운 정복자에게,
영광스러운 수호자에게,
모든 이들의 위로자에게,
모두에게 강림하셨나이다!

2

Перводержавную
Русь православную
Боже, храни!
Царство ей стройное!
Въ силе спокойное!
Всё жъ недостойное
Прочь отжени!
Царство ей стройное!
Въ силе спокойное!
Всё жъ недостойное
Прочь отжени!

한처음의 권력인 제권을
정교회 루스를
하느님, 보호하소서!
이 땅에 평온과
평화의 왕국을 이루소서!
모든 악을
물리쳐주소서!
황제의 나라가 조화롭도록,
그 힘 안에 안온토록!
모든 가치 없는 부도덕은
멀리 태워버리소서!

3

О, Провиденіе!
Благословеніе
Намъ ниспошли!
Къ благу стремленіе,
Въ счастье смиреніе,
Въ скорби терпеніе
Дай на земли!
Къ благу стремленіе,
Въ счастье смиреніе,
Въ скорби терпеніе
Дай на земли!

오, 하느님의 섭리여!
영광이 깃들도록
우리에게 강림하셨나이다.
선을 위한 정진을,
기쁨 안에 겸손을,
슬픔 안에 인내를,
이루게 하소서!
선을 위한 정진을,
기쁨 안에 겸손을,
슬픔 안에 인내를,
이루게 하소서!

3.3. 하느님, 차르를 보호하소서

(1833~1917) 하느님, 황제를 지켜 주소서! (Боже, Царя храни!)

주콥스키가 작사했고 리보프가 작곡했다. 주콥스키는 앞의 <러시아인의 기도>를 작사한 사람이기도 하다. 1905년 피의 일요일에 황제의 겨울 궁전을 향해 이콘을 들고 행진했던 시민들이 불렀던 노래가 바로 이 곡이며, 1917년 혁명에 의해 제정이 무너지기 전까지 러시아의 국가로 불렸다. 그 후 소련은 인터내셔널가를 1944년까지 사용하다가 소비에트 찬가로 그 국가를 바꾸게 된다.

러시아어

한국어 번역

한국어 발음

1

Боже, Царя храни!
Сильный, Державный,
Царствуй на славу на славу намъ,
Боже, Царя храни!
Сильный, Державный,
Царствуй на славу на славу намъ

하느님, 차르를 보호하소서!
강인하고 강대한 군주여
우리의 영광 위에 군림하소서
하느님, 차르를 보호하소서!
강인하고 강대한 군주여
우리의 영광 위에 군림하소서

보줴 짜랴 흐라니!
실늬이 제르좌브늬이,
짜르스뜨부이 나 슬라부 나 슬라부 남,
보줴 짜랴 흐라니!
실늬이 제르좌브늬이,
짜르스뜨부이 나 슬라부 나 슬라부 남

2

Царствуй на страхъ врагамъ,
Царь Православный!
Боже, Царя храни!
Царствуй на страхъ врагамъ,
Царь Православный!
Бо-о-же, Царя храни!

적들의 두려움 위에 군림하소서
차르는 정교회의 수호자이시니
하느님, 차르를 보호하소서!
적들의 두려움 위에 군림하소서
차르는 정교회의 수호자이시니
하느님, 차르를 보호하소서!

짜르스뜨부이 나 스뜨라흐 브라감,
짜르 쁘라바슬라브늬이!
보줴, 짜랴 흐라늬!
짜르스뜨부이 나 쓰뜨라흐 브라감,
짜르 쁘라바슬라브늬이!
보줴, 짜랴 흐라늬!

4. 같이 보기


  1. [1] 지금의 철자법으로는 Российская Империя. 'и'가 아닌 'і'인 이유는 1918년의 러시아어 철자법 개정 전 표기이기 때문이다.
  2. [2] 지금의 러시아처럼 그냥 3색의 국기였다.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고 세워진 러시아의 국기는 이 시절 국기를 그대로 가져왔다. 사진처럼 국장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이게 국가 깃발로 지정된 1914년 ~ 1917년까지. 로마노프 왕조의 깃발은 색상이 다르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러시아 국기 사용이 금지되어 OAR 선수들을 응원하러 온 러시아인들이 옛 소련 국기와 함께 제정 러시아 국기를 들고 와서 응원하는 진풍경도 있었다.
  3. [3] 현재 쓰이는 현대 러시아어로는 С нами Бог!
  4. [4] 시대에 따른 영토 변화(주로 팽창)가 잦았다.
  5. [5] дума(의회). 중앙의회를 의미한다(사실 알렉산드르 2세 시절 지방의회(젬스트보)는 이미 설립되었다.). 현재도 러시아의 하원을 '국가두마'라고 한다. 물론 실권은 별로 없었고 제국의 전제군주제는 사실상 유지되었다(...).
  6. [6] 그렇다. 그전까지 러시아 제국에는 헌법이나 의회조차 없었다! 흠좀무.
  7. [템플릿이미지출처] 7.1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ED%8B%80:%EB%9F%AC%EC%8B%9C%EC%95%84_%EC%A0%9C%EA%B5%AD_%ED%91%9C&oldid=12850846#/media/File:Lesser_CoA_of_the_empire_of_Russia.svg,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ED%8B%80:%EB%9F%AC%EC%8B%9C%EC%95%84_%EC%A0%9C%EA%B5%AD_%ED%91%9C&oldid=12850846#/media/File:Russian_Empire_(orthographic_projection).svg,https://ko.wikipedia.org/wiki/%ED%8B%80:%EB%9F%AC%EC%8B%9C%EC%95%84_%EC%A0%9C%EA%B5%AD_%ED%91%9C#/media/File:Flag_of_Russian_Empire_for_private_use_(1914%E2%80%931917)_3.svg
  8. [8] 핀란드랑 폴란드 때문에 1945년 이후의 소련 영토보다 살짝 더 크다.
  9. [9] 이 당시 영국은 수많은 식민지를 보유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가진 국가였다. 다만, 동시기 내내 영국이 러시아보다 컸던 것은 아니고, 서로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대충 영국이 캐나다, 호주, 인도까지 식민지화한 시점에서 확실하게 추월한다.
  10. [10] 제정 러시아는 지금의 러시아 연방보다 인도 2개 면적만큼 더 컸다. 흠좀무
  11. [11] 러시아가 북아메리카에서 알래스카만 차지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러시아는 여기서 더 남하해서 오늘날 캐나다밴쿠버 지역과 브리티시 컬럼비아의 영유권을 두고 영국과 마찰을 빚었으며, 19세기 초에는 캘리포니아 북부까지 남하하여 샌프란시스코에서 50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포트 로스(Форт-Росс)'라는 요새를 짓기도 하였다. 스페인령 캘리포니아의 북쪽 경계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기에, 스페인에서는 자기 식민지 근처까지 모피 찾아 내려온 러시아인들을 보고 기겁했다. 포트 로스는 러시아령 아메리카의 주 수출품인 모피의 감소로 1848년에 폐쇄되었다. 맨 위의 지도를 확대해서 보면 알래스카뿐 아니라 오늘날 캐나다 영토의 일부도 녹색으로 칠해져 있으며 미국 본토인 캘리포니아워싱턴 주 북쪽에도 녹색 점이 찍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캘리포니아뿐 아니라 미국이 들어오기 전에 하와이 일부 섬까지 진출해서 요새를 쌓기도 하여 하와이 원주민들이 러시아에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심지어 아프리카에도 아주 잠깐 식민지를 세운 적이 있다! 다만 둘 다 극히 짧은 기간이었기에 러시아 제국의 영토에서 제외된다. (#, https://en.wikipedia.org/wiki/Sagallo) 하와이까지 포함하면 폴리네시아까지 4지역 제국인가?
  12. [12] 다만 이는 러시아가 다른 유럽 국가들의 눈치를 봐서 안으로는 제국을 칭하고 밖으로는 왕국을 표방했다기보다는, 모스크바 촌놈이 비잔티움 제국도 망하고 그쪽 황녀랑 결혼으로 핏줄도 대충 이어지는 것 같고 가장 큰 정교회 국가도 되고 해서 신나게 황제를 선포했지만 유럽 국가들이 그냥 씹었다고 보는 게 맞는다. 중화권과 그 근처의 외왕내제와는 성격이 다르다.
  13. [13] 심지어 이 농노제가 19세기 중반까지 지속되었다. 특히 러시아 귀족들은 재판권과 경찰권을 가지고 있어 농노들을 내키는 대로 처벌할 수 있었다. 물론 차르가 귀족을 제어할 수 있었지만 그 차르부터가 농노를 억압하니 잘 될 턱이 없다.
  14. [14] 사실 군주국에서 국가(國歌)에 '하느님, 우리 폐하 지켜주세요' 하는 식의 가사는 꽤 흔한 편이다. 당장 대한제국 애국가의 가사도 "상제여 우리 황제를 도우소서"다. 물론 이런 식의 유행(?)을 주도한 건 영국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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