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제플린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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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레드 제플린
LED ZEPPELIN

멤버

지미 페이지, 로버트 플랜트, 존 폴 존스, 존 본햄

입성 연도

1995년

후보자격 연도

1995년

후보선정 연도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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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제플린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

Led Zeppelin

출신지

잉글랜드 런던

멤버

지미 페이지 (기타)
로버트 플랜트 (보컬)
존 폴 존스 (베이스)
존 본햄 (드럼)

장르

하드 록, 블루스 록, 포크 록, 헤비메탈, 로큰롤

활동기간

1968년 ~ 1980년
재결성: 1985년, 1988년, 1995년, 2007년

데뷔

1969년 앨범 ‘Led Zeppelin

링크

공식 사이트

1. 개요
2. 역사
2.1. 결성
2.2. 도약
2.3. 전성기
2.4. 황혼기
2.5. 해체
2.6. 해체 이후
3. 재결성(?)
4. 평가
5. 표절 문제
6. 음반 목록
7. 이야깃거리

1. 개요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1968년도에 처음 활동을 시작하여 하드록의 시대인 1970년대를 주름잡던 전설적인 록밴드이며 또한 70년대의 하드록/헤비메탈의 상징이다. 4명의 멤버 모두 각자 맡은 분야의 탑클래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천재적인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중 음악 역사상 음반 판매량이 전체 가수를 따져도 6위(약 3억 장 추산)이고, 록에 관련된 아티스트만 꼽자면 비틀즈엘비스 프레슬리, 엘튼 존에 이은 역대 4위이다. 거기다 음악적인 성취도도 높은 전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 있는 록밴드 중 하나이다. 하드록과 헤비메탈 계열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특히 기존 하드록을 헤비메탈로 발전시킨 밴드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2] 그들의 뛰어난 음악적 완성도와 서정성으로 인해 세기가 바뀌어서도 여전히 높은 인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딥퍼플과 블랙 사바스와 함께 70년대 하드록/헤비메탈의 초기 3인방 밴드이다.

2. 역사

2.1. 결성

소위 세계 3대 기타리스트[3]가 모두 거쳐간 것으로 유명한 역사적인 밴드인 "야드버즈"(Yardbirds)의 기타리스트였던 지미 페이지가 제프 벡 등 당시의 멤버들이 모두 떠나고 밴드가 해체되자, 자신이 리더가 되어 새 밴드를 이끌고 가기로 한 데에서 밴드의 역사가 시작된다.

1968년 지미 페이지는 "밴드 오브 조이"등에서 활약한 보컬리스트 로버트 플랜트드러머 존 본햄, 그리고 세션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유능한 베이시스트이자 키보디스트존 폴 존스를 영입하고, "뉴 야드버즈" (New Yardbirds)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곧 "레드 제플린" (Led Zeppelin)이란 밴드명으로 바꾼다. 이 레드 제플린이라는 밴드명을 지어준 건 더 후의 드러머 키스 문이었다. [5]

로버트 플랜트를 영입할 때 나온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 지인에게 보컬리스트로 로버트 플랜트를 추천 받고 로버트의 공연을 찾아가 지켜본 지미는 로버트가 노래 실력과 수려한 외모 모두 최고 수준인데도 무명 가수인 것이 이해가 안 가서 성격에 문제가 많을 거라고 짐작했다고 한다. 안 그러면 저런 훌륭한 조건을 갖췄는데도 아직까지 좋은 밴드에 스카웃이 안되고 무명일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 과거 야드버드 시절, 실력은 좋았으나 성격이 까탈스러웠던 멤버들 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했던 지미는 성격이 이상하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같이 밴드 생활 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고 먼저 로버트의 성격을 알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당시 지미가 머물던 보트하우스로 로버트를 초대해서 며칠간 같이 생활하면서 지켜봤는데 로버트의 성격이 매우 친화적이고 편해서 같이 일하기에 딱 좋은 성격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즉 실력, 외모, 성격 모두 흠잡을 데 없었던 것. 그래서 지미는 당연히 로버트와 같이 밴드를 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6]

2.2. 도약

1969년 1월에 발표된 데뷔앨범인 "Led Zeppelin"은 불과 30여시간만에 녹음되었다고 한다. 당시 유행하던 사이키델릭 록블루스 성향이 짙은 앨범이지만, "Good Times Bad Times", "Communication Breakdown"과 같은 짧고 날렵한 하드 록 넘버도 있다. 그리고 사이키델릭 록의 절정인 "Dazed And Confused"에서 지미 페이지는 바이올린 활로 일렉기타를 연주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 적이 있다. 레드 제플린이라는 밴드로서는 데뷔앨범이지만 멤버들이 워낙 록계에서 이미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이라서 첫 앨범부터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었고, 명반으로 추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표지의 떨어지는 비행선 그림은 1930년대 폭발해 떨어져 수많은 사상자를 낸 독일의 비행선 힌덴부르크 호를 그린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을 참조.

데뷔 앨범과 달리 약 1년 동안의 준비기간을 거쳐서 12월에 발표된 두번째 앨범 "Led Zeppelin II"는 블루스 색채가 약간 적어진 대신 스트레이트함이 강해진 하드 록 성향이 강조되었으며, 헤비 록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러면서도 중간에 여러가지 사운드를 실험한 곡 "Whole Lotta Love"는 이 앨범 중 가장 유명한 곡이며, 남성적이고 허스키하고 날카로우면서 바이브레이션이 강한 로버트 플랜트의 보컬은 이후 러쉬의 게디 리 부터 머틀리 크루의 빈스 닐, 한국의 김종서 까지 수많은 하이톤 록 보컬리스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또한 후반부 쯤에 수록된 "Moby Dick"은 역사상 최고의 드러머중 하나인 존 본햄의 솔로연주를 만끽 할 수 있는 이 앨범의 숨겨진 명곡으로 추앙 받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을 참조.

본 앨범에서는, 60년대 포크 록밴드 버팔로 스프링필드를 음악적 이상으로 여겨 도노반이나, 로이 하퍼와도 협연한 지미 페이지의 포크적 취향이 잘 드러난 앨범으로, B면은 아예 모두 목가적인 브리티시 포크 록으로 이루어져있다. 하지만 간결한 느낌의 Immigrant Song이나, 그루브감이 엄청난 리프의 "Celebration Day", 로버트 플랜트의 한서린 목소리가 전율을 일으키는 비장감의 극치인 "Since I've Been Loving You" 등등 헤비 록 측면에서도 괜찮은 곡들이 많다. LP시절 앨범표지는 입체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종이 원반이 상판 내부에 들어있고, 이걸 바람개비처럼 빙빙 돌리면서 그림을 바꿔 볼 수 있는 구조. 돈있는 위키니트는 당장 LP를 사보도록 하자[7]

자세한 내용은 항목을 참조.

2.3. 전성기

제목이 없는 앨범으로 유명한데, 앨범 제목대신 각 멤버들을 상징하는 괴이한 부호가 적혀있다. 보통은 "Led Zeppelin IV"라고 부른다. 이들의 가장 성공한 앨범이며, 레드 제플린하면 바로 떠오르는 불후의 명곡인 "Stairway to Heaven"[8]이 들어있다. 이 앨범부터 신비주의와 민속음악에 탐닉하는 그들의 오컬트적 취미가 여실히 드러난다.[9] 지미 페이지는 흑마술과 크로울리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70년대에 오컬트 전문 서점과 전문 출판사를 매입하여 소유하기까지 했을 정도.

또한 지미 페이지는 중동인도의 사상, 음악에도 심취했다고 한다. 그래서 혹자는 레드 제플린을 마지막 히피 밴드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런 취향이 드러난 곡이, 브리티시 포크 록밴드 "페어포트 컨벤션"의 여성 보컬 "샌디 대니"가 참여한 "The Battle Of Evermore"이며, "Stairway to Heaven"도 그런 경향이 드러난 대표적인 곡이다. 이런 신비주의적이고 서정적인 포크 성향의 음악들 외에도, 하드 록적인 면에서 실력을 유감없이 드러낸 "Black Dog", "Rock And Roll" 등의 곡이 수록되었다. 그리고 데뷔 초부터 계속 추구한 고전 블루스를 현대적으로 리메이크하려는 노력은 그루브감의 탄력이 굉장한 "When the Levee Breaks"으로 이어진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을 참조.

5집 "Houses of the Holy"는 전작들의 블루스 록, 하드록, 포크 지향과는 달리 프로그레시브 록으로의 지향성이 드러나 있다. 벌거벗은 금발소녀가 자이언트 코스웨이를 기어오르는 선정적인 앨범커버로도 유명하다. [10] [11][12]

로버트 플랜트의 하이톤 보컬의 최전성기를 보여주는 장엄한 헤비 록 대곡인 "The Song Remains the Same"으로 시작해, 킹 크림슨을 연상시키는 서정적인 멜로트론 음이 인상적인 아름다운 곡 "The Rain Song", 레게의 영향을 짙게 받은 "D'yer Mak'er", "Dancing Days", 베이스의 펑키한 연주와 괴랄한 리듬의 드럼이 돋보이는 "The Crunge" 등의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 앨범의 최고의 곡은 음울하고 몽환적인 "No Quarter"이며, 존 폴 존스의 로즈 일렉트릭 피아노 연주의 독특한 사운드가 인상적이다.

레드 제플린 최초의 더블 앨범으로, 그 많은 곡의 양만큼 그들의 음악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명반이다. 주로 헤비 록적인 스트레이트함이 강조된 기타리프와, 절정에 이른 존 본햄의 파워풀한 드러밍이 돋보이는 곡들이 주류를 이루며, 그 중 최고봉은 Josh White의 곡을 커버한 10분에 이르는 대곡 "In My Time of Dying"이다.[13] 하지만 신비주의와 민속음악에 대한 열정도 대단해 "Kashmir"[14]같은 대곡도 있고, 서정적인 슬로우 넘버 "Down by the Seaside", "Ten Years Gone" 같은 곡들도 있다.

2015년 2월 리마스터 버전으로 출시되었다. CD, LP 하이 레졸루션 오디오 포맷으로 만나볼 수 있다.

2.4. 황혼기

이 시기에 로버트 플랜트가 교통사고를 당해 휠체어에 앉아 녹음했다고 하며, 엎친데 덮친격으로 그의 아들이 사망하고 존 폴 존스가 밴드를 일시적으로 탈퇴하는 등 밴드의 결속력에 잠깐 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곡들의 주류는 고전, 뉴올리언스식 블루스들을 그루브감을 높여 재해석한 헤비 블루스로, "Nobody's Fault But Mine", "Royal Orleans" 같은 곡들이 그렇다. 하지만 프로그레시브 록적인 대곡인 "Achilles Last Stand"나 침울한 블루스 "Tea For One"같은 곡도 실려있다.

그들의 들을 위해서 그들의 음악과 생활을 다룬 영화사운드트랙이며[15], 좋은 앨범이지만, 그들의 당대 맞수였던 딥 퍼플Made in Japan 앨범과 비교해서는 연주적으로나 녹음적으로 헛점이 많다고 얘기되는 앨범이며, 이 후 그들이 명예회복을 위해 "BBC Session"이나 "How The West Was Won" 등의 초기시절 쌩쌩했던 라이브 앨범을 내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카더라. 하지만 원곡보다 훨씬 길게 연주되며 사이키델릭 삘이 만빵인 지미 페이지의 기타연주와 주문을 외는건지 알 수 없는 주술사스런 로버트 플랜트의 보컬이 빛나는 "Dazed And Confuzed"는 굉장하게 느껴진다.

8집 "In The Through The Outdoor"는 실상 그들의 마지막 앨범이다. 당시 대중음악계에서 유행하던 뉴웨이브적인 성향에 가까운 곡들이 주류이며, 로버트 플랜트의 보컬은 이전의 날카로움은 완전히 없어진 대신 느끼하고 끈적거리는(...) 목소리로 바뀌었다.

자세한 것은, 항목을 참조.

2.5. 해체

1980년, 드러머 존 본햄이 사망했다.

지미 페이지의 윈저 저택에서 스크류 드라이버를 마시면서 과음하다가 골아 떨어진 뒤에 다음날 일어나지 못한 것이다. 의료진의 검시 결과, 심하게 취해 정신 없이 자던 중에 구토를 했고 그 토사물이 목에 걸려 질식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언론에서는 존 본햄의 후임으로 "코지 파웰"이나 ELP의 "칼 파머" 등등이 후임 드러머로 거론되었지만, 남은 멤버들은 "존 본햄이 없는 레드 제플린은 의미가 없다"고 하여 밴드의 해산을 발표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물욕과 명예욕에 의한 이전투구와 배신이 넘치는 음악계에서 보기드문 의리있고 깨끗한 결단이라고 하여 칭송했다. 하지만 실은 존 폴 존스가 밴드에서 한번 탈퇴한 적이 있었던만큼 실질적인 해체 이유는 존 본햄을 대체할 드러머가 없다는 것이었다. 과장이 아니라 "Stairway To Heaven"이나 "Moby Dick"에서처럼 강약 조절과 리듬 조절이 탁월했던, 그야말로 레드 제플린 음악의 척추 역할을 했던 드러머는 존 본햄밖에 없었다.

9집 "Coda"는 그들이 해산된 직후 발표되었으며, 그동안의 미발표곡 중 수작들을 골라모아서 발표한 것이다. 그래서 전체적인 통일성이 부족한 잡탕 앨범이라 평가절하되었지만, 훌륭한 곡들도 꽤 있다. 존 본햄의 드럼 연주곡인 "Bonzo's Montreux"와 다이내믹한 진행의 대곡 "Wearing And Tearing", 광기어린 지미 페이지의 기타연주가 돋보이는 "I Can't Quit You Baby" 리허설 버전, 미니멀스러운 리프의 어쿠스틱 곡 "Poor Tom" 등이 눈에 띈다.

모든 앨범은 2014년 6월 리마스터 버전으로 출시하였으며 CD, LP 포맷 그리고 하이 레졸루션 오디오 24Bit/96kHz 음원으로도 출시되었다.

2.6. 해체 이후

밴드 해산 후에 로버트 플랜트와 지미 페이지는 제프 벡과 함께 "허니 드리퍼스"라는 밴드를 이끌기도 했고, 로버트 플랜트는 솔로 활동으로도 어느 정도 흥행에 성공했으며, 지미 페이지는 배드 컴퍼니폴 로저스, 플랫리스 베이스의 달인 "토니 프랭클린" 등과 함께 "더 펌"이란 밴드를 조직하기도 하고, "콜로세움"의 보컬리스트 "크리스 팔로우" 등과 함께 몇 장의 훌륭한 작품을 내기도 했다. 또 딥퍼플 출신의 "화이트 스네이크"의 보컬리스트 "데이빗 커버데일"과 "Coverdale And Page"란 앨범도 발표하였다, 딥퍼플레드 제플린 의 결합으로 큰 화제를 모은 이 앨범은 초기 레드 제플린적 감성으로 돌아간 음악을 들려주었다.[16][17]

존 폴 존스는 이후 꾸준히 세션계에서 활동하며 R.E.M., "디아만다 갈라스" 등의 앨범에 참여하였고, 후기 킹 크림슨을 연상케 하는 전위적인 프리재즈, 프로그레시브 계열 솔로 앨범들을 발표하였다.

로버트 플랜트는 2000년대 이후로 미국 컨트리 음악에 심취하여 컨트리 계열의 음반들을 발표하기도 했다.

3. 재결성(?)

레드 제플린의 재결성 여부는 이후 록계에서 언제나 뜨거운 이슈였으며, 1985년 라이브 에이드 공연 때 나머지 세 멤버가 모여 레드 제플린의 곡을 연주한 적이 있었다. 이때 드러머는 제네시스(밴드)의 드러머이자, 솔로가수로 유명한 필 콜린스로, 그가 드러머로 가입하며 레드 제플린이 재결성된다는 루머가 돌았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는 않고, 지미 페이지와 로버트 플랜트가 "Page and Plant"라는 밴드를 결성해, 중동인도의 민속음악적 느낌으로 레드 제플린의 곡을 재해석한 곡들과 약간의 신곡을 가미한 어쿠스틱 언플러그드 앨범 "No Quarter: Jimmy Page and Robert Plant Unledded"[18]나, 이전의 레드 제플린 취향의 서정적인 블루스 취향이 많이 발현된 "Walking Into Clarksdale" 등의 앨범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지미 페이지는 서던 록 취향의 신진밴드 "블랙 크로우즈"와 레드 제플린의 곡들을 연주하기도 했다.

2007년 9월 12일, 같은 해 12월 10일에 열린 아틀란틱 레코드사의 공동 설립자로 수많은 뮤지션을 발굴했던 "아흐메드 에트레군(Ahmet Ertegun)"의 추모 콘서트에 존 본햄의 아들인 제이스 본햄을 드러머로 둔 레드 제플린이 재결성 공연을 갖는다는 소식에 많은 팬들이 기대했고, 이후 공연이 이루어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전설'의 재결성을 기대했다.

이후 2008년, 지미 페이지가 레드 제플린의 "Gratest Hits 'Mothership'"의 홍보를 위해 도쿄에 방문한 자리에서 '새로운 월드투어'를 계획중이다.'라고 발표하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레드 제플린의 공식적인 재결성을 기대하게 되었고, 이후 재결성은 거의 확정적인 듯 싶었으나, 2008년 중순에 로버트 플랜트가 GQ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재결성 투어 및 2007년 공연에서 그가 느낀 불쾌감을 이야기하면서 뭔가 엇나가게된다.

결국 플랜트와의 재결성 협상이 결렬된 페이지와 존스, 본햄은 '뉴 레드 제플린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플랜트 없이 새로운 레드 제플린을 꾸려가려 했으나, 팬들의 적잖은 비난 여론 때문이었는지, 2008년 말에 "프로모터", "하비 골드스미스"와 지미 페이지는 이 계획이 '레드 제플린과 관계없는 새 프로젝트'라고 언급했다. 허나, 이 프로젝트마저 지미 페이지의 매니저 로버트 맨쉬가 "'몇몇 보컬들을 불러 테스트를 해봤지만 밴드는 프로젝트에 적합한 보컬을 찾을 수가 없었다.'라는 말이 나오면서 계획은 완전히 끝났다. 현재 그들은 어떠한 향후 계획이 없는 상태다."라고 밝힘으로서, 재결성에 관한 모든 것들은 현재 완전히 없었던 일이 되어 버린 상태이다.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페이지와 존스가 새 보컬로 염두해 뒀던 후보들 중에는 에어로스미스의 스티븐 타일러와 얼터 브릿지의 마일스 케네디가 있었다고.

하지만 2012년도까지 계속 월드 투어를 하면서 공연을 하는 것을 보면 재결합만 하지 않았을 뿐 계속 레드 제플린으로서 활동은 하는 중이다. 잠시동안이긴 했지만 페이지와 플랜트의 사이가 좋아져 2012년엔 생존한 세 멤버들이 함께 공식 석상에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2013년엔 플랜트가 인터뷰에서 재결성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했으며, 2014년엔 리마스터링된 과거 앨범들의 재발매가 이루어지면서 다시 한번 팬들의 기대를 모았지만, 플랜트가 BBC와의 인터뷰에서 '레드 제플린의 공연이 다시 열릴 가능성은 0에 가까움' '페이지에게 지쳤다' 같은 언급을 하면서 결국 다시 한번 재결성은 결렬되었고, 공연은 성사되지 않았다.

2007년의 공연 이후로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레드 제플린 멤버들이 함께 공연한 적은 없으며, 모두 각자의 활동을 하고 있다.

4. 평가

"레드 제플린의 음악은 록이면서도 록이 아닌 그 무언가이다."

-핫뮤직 편집장 음악 평론가 조성진

비틀즈, 롤링스톤즈 등과 함께 역사상 손꼽히는 전설적이고 위대한 밴드로 평가받는다.

하드록의 기조를 지켜나가면서도 고전 뉴올리언스 블루스, 사이키델릭 블루스, 아메리칸 포크록, 브리티시 포크 록, 중동과 인도의 민속음악, 프로그레시브 록, 훵키, 레게, 뉴웨이브 등 수많은 음악적 자양분을 받아들여온 레드 제플린의 음악은 급변하는 최신 음악 조류와도 늘 함께 하며 뒤쳐지지 않았고, 지루한 매너리즘에 빠지지도 않았다. [19]

대중적 취향과 너무 동떨어지고 난해한 실험이 지나친 프로그레시브 록처럼 오버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혁신성이 너무 부족하여 과거와 똑같은 기성품적인 록음악만 반복해서 찍어내듯 만드는 밴드처럼 고루하지도 않은 매우 중도적인 음악을 해왔다. 이런 면에서 당대의 음악적 유행과 조류에 아랑곳 하지 않는 실험과 파격으로 자기들만의 음악 세계를 계속 급진적으로 변화시켜온 더 후같은 밴드에 비해 일부에선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그리고 펑크 록 밴드들에게는 거리의 생생한 현실과는 동떨어진 장황한 노래만 부르고 잘난척 허세나 부리는 엘리티즘 공룡 밴드라며 공격당하기도 했다. 평가는 각자의 몫이다.

레드 제플린의 앨범은 독특한 앨범 커버아트로도 유명하며, 3집과 6집은 커버가 요리조리 접히고 열리고 움직여 다른 모양으로 만들 수 있는 게이트폴드 커버, 5집, 7집, 9집은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커버 디자인으로도 유명한 "힙그노시스"의 디자인으로 이색적인 예술성을 선보인다.

5. 표절 문제

레드 제플린의 음악은 워낙 많은 곡들이 표절[20] 의혹을 받아서 오리지널리티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21] 물론 표절 문제 등 당시에 있었던 잡음들은 시간이 워낙 오래 지나면서 자연스레 잊혀지고 어쨌든 듣기 좋은 곡들이라는 결과물만 남았기에 지속적인 인기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고 있다. 비슷한 예로 오아시스도 활동 당시엔 표절 때문에 비난과 조롱을 많이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그런건 갈수록 잊혀지고 결과물만 남아서 별 태클 없는 인기와 거물이라는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쨌든 전성기 시절의 주요 앨범들에서 수많은 표절은 저지른 것은 사실이므로 냉철하게 바라본다면 창의적인 창조자라기 보단 솜씨 좋은 장인, 내지는 빼어난 편곡자이라는 비아냥도 있다.

레드 제플린이란 위대한 밴드의 이러한 불명예스런 이면은 당시 평론가들과 뮤지션들의 비판거리가 되었다. 롤링 스톤즈의 키스 리처드는 지미 페이지가 훌륭한 기타리스트인건 인정하지만 훌륭한 ‘작곡자’는 아니라고 비판했고, 지미 헨드릭스크림의 진저 베이커도 레드 제플린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원작자들의 표절 고소나 항의가 있을 때마다 지미 페이지의 대처가 매우 신속하고도 똑똑했다는 것. 즉 표절 시비가 1심과 상소로 인한 상급심 등으로 장기간 이어지며 언론의 화제와 주목을 끌기 전에 바로 다음의 두 가지 방식 중 하나로 문제를 조속히 종결짓곤 했다.

한 방식은 크레딧을 원작자에게 아예 줘버리거나, 제플린의 일정 기여분을 인정받아내어 원작자와 제플린의 공동작곡자로 변경시키는 것. 또 다른 방식은 크레딧은 그대로 제플린으로 두되, 거액의 보상금을 원작자나 사망한 원작자의 후손에게 줘서 합의를 보는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플린에겐 수많은 표절시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상호간 다툼으로 재판이 길게 이어진 것은 별로 없다. 많은 경우를 합의금 제공을 통한 법정외 합의[22]로 조용히 종결지어서 원작자로 하여금 결국 고소를 취하하도록 조치했기 때문이다.

● 아래는 표절의혹이 있었던 곡들의 일부에 관한 내용이다. (물론 처음 발매시부터 원작자를 제대로 밝혀서 커버곡임을 명시한 곡들은 당연히 표절곡이 아니니 포함되지 않았다.)

  • Babe I'm Gonna Leave You : 앤 브레든 (Anne Bredon)의 곡을 커버한 곡인데 처음엔 허가도 받지 않고 크레딧도 Trad. arr. Jimmy Page로 적었었다. 브레든 측이 고소하자 긴 법정공방 끝에 Bredon/Page/Plant로 수정.
  • Black Dog : 플리트우드 맥 (Fleetwood Mac)의 "Oh Well"과 유사. 하울링 울프 (Howlin' Wolf)의 "Smokestack Lighting"에서도 일부 차용.
  • Black Mountain Side : 메인 기타의 리프가 스코틀랜드의 포크뮤지션인 Bert Jansch의 "Black Water Side"와 같다. 물이 산으로 바뀌었다
  • Boogie with Stu : 리치 발렌스의 "Ooh My Head"에 기초해서 만든 곡으로서, 크레딧을 Bonham, Jones, Page, Plant, Ian Stewart, Mrs Valens 공동으로 명기하여 리치 발렌스의 어머니 Mrs Valens를 넣었으나, 이렇게 저작권 출판사측의 허락도 안 맡고 그냥 어머니만 끝에 슬쩍 넣은 건 제대로 된 크레딧 처리가 아니고 저작권 침해라며 리치 발렌스의 출판사로부터 표절 고소를 당해서 이 역시 출판사측 요구대로 합의금을 주어 해결했다 [23].
  • Bring It On Home : 윌리 딕슨 (Willie Dixon)이 작곡하고 Sonny Boy Williamson II가 1963년에 발표한 원곡을 변형시킨 곡. 역시나 허가도 안 받았고 작곡자도 Plant/Page로 표기. 딕슨 측이 고소하자 거액의 합의금을 줘서 법정외 합의를 봄.
  • Bron-Y-Aur Stomp : 위에서도 언급되었던 Bert Jansch의 The Waggoner's Lad가 원곡이다.
  • Custard Pie : Sleepy John Estes With Hammie Nixon의 "Drop Down Mama", Bukka White의 "Shake 'Em On Down", Blind Boy Fuller의 "I Want Some Of Your Pie" 이 세 블루스 곡을 조합한 곡. [24]

  • Dazed And Confused : 제이크 홈즈 (Jake Holmes)의 원곡을 야드버즈 시절 페이지가 "I'm Confused"라는 제목으로 바꿔서 연주했고, 다시 가사를 수정해 데뷔앨범에 수록했으나 자작곡으로 표시.
  • How Many More Times : 하울링 울프의 How Many More Years를 기반으로 하고 Albert King의 "The Hunter''의 요소도 섞어서 만든 곡.
  • In My Time Of Dying : 블루스 뮤지션인 Blind Willie Johnson이 "Jesus Make Up My Dying Bed"란 제목으로 처음 발표되었고 이후 밥 딜런이나 록밴드 "Fear Itself" 등에 의해 여러 스타일로 커버된 곡인데, 레드 제플린의 레코딩은 Josh White의 버전에 기초하고 있다. 이 역시 크레딧을 그냥 Page/Plant/Johns/Boham으로 했다.
  • Moby Dick : 여러 곡들에서 짜집기식 표절 의혹을 받았던 곡이었다. 결국 본햄이 드럼 솔로 시작 전 합주부분은 Bobby Parker의 "The Girl I Love"에서, 드럼 솔로부분은 진저 베이커의 "Toad" 드럼솔로를 모델로 하고, 나머지 다른 드럼 솔로 부분은 George Suranovich의 "Doggone"에서 따왔다고 인정했다. 그런데 기타 리프도 Bobby Parker의 1961년 곡인 "Watch Your Step"과 흡사하다.[25]
  • Nobody's Fault But Mine : 가스펠 블루스 뮤지션인 Blind Willie Johson의 20년대 발표곡인 It's Nobody's Fault But Mine이 원곡. 레드 제플린의 버전은 John Renbourn[26]의 1966년도 커버 버전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음.
  • Rock'N'Roll : 리틀 리처드(Little Richard)의 "Keep A Knockin'"에서 드럼 인트로 등을 따왔고, 곡 전체적으로는 70년대 플리트우드 맥이 라이브에서 커버한 "Keep A Knockin'" 버전과 흡사하다. 참고로, 지미 페이지는 초기 블루스 시절의 플리트우드 맥의 열성팬이었다.
  • Since I've Been Lovin' You : 60년대 미국의 사이키델릭 록밴드 Moby Grape가 1968년에 레코딩하여 발표한 곡인 "Never"의 가사와 곡에서 많은 부분을 가져온 곡. 원곡은 Moby Grape의 베이시스트인 Bob Mosley 가 작곡했다.
  • Stairway To Heaven : 메인 기타리프가 록밴드 Spirit의 Taurus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또 전반주의 진행이 Chocolate Watch Band의 "And She's Lonely"와 비슷하다. 조니 리버스의 "Summer Rain"와 Cartoone의 "Ice Cream Dreams"에서도 일부를 따온 것이라는 의혹이 있다. 참고로 록밴드 Spirit은 레드 제플린과 함께 한 1969년의 합동투어에서 이 오프닝 공연을 하면서 같이 다녔고 지미 페이지는 Spirit의 팬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2016년 6월에 LA 지방법원에서 열린 Spirit의 Taurus 표절건에 대한 소송에서 배심원단은 표절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 The Lemon Song : Howlin' Wolf의 "Killing Floor"를 표절했고, 가사는 로버트 존슨의 "Traveling Riverside Blues"에서 따왔다는 의혹을 받음. 하울링 울프의 출판사가 레드 제플린을 고소하자, Chester Burnett (하울링 울프의 본명)에게 크레딧을 주기로 하여 합의를 봤다.
  • Trampled Under Foot : 로버트 존슨의 곡 Terraplane Blues에 기초한 곡 [27]. 그리고 스티비 원더의 명곡 Superstition에서도 큰 영향을 받은 곡이다.
  • Whole Lotta Love : Willie Dixon의 "You Need Love"를 표절했다며 딕슨 측이 레드 제플린을 고소해서 크레딧을 주기로 하여 합의를 보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윌리 딕슨이 작곡하고 머디 워터스가 1962년에 녹음해서 발표한 'You Need Love'란 곡을 영국의 록밴드 스몰 페이시스[28]가 1966년에 꽤 변형을 가해서 ' You Need Loving'이란 제목으로 커버한 버전과 머디 워터스의 원곡을 짜깁기 한 곡이 바로 'Whole Lotta Love'다.

이 밖에 특정 뮤지션의 곡들을 사실상 표절했지만 그 특정 뮤지션들에게 크레딧을 주는게 아니라 원작자를 명시하지 않고 'traditional'이라고만 해둬서 비난을 받은 곡들도 있는데, 예를들어 "Gallows Pole"[29], "Hats off to (Roy) Harper"[30] 등이 그렇다.

물론, 레드 제플린이 대단한 밴드임에는 분명하나, 이런 불명예스러운 흑역사 또한 분명히 있음을 잊지는 말자. 출처 참조 링크들

6. 음반 목록

라이브 앨범은 레드 제플린/음반 목록 참조.

7. 이야깃거리

  • 걸작 코미디 영화이자 모큐멘터리(페이크 다큐멘터리) 영화계의 레전드급 작품으로 치는 롭 라이너 감독의 1984년작 영화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 (This Is Spinal Tap)에서 레드 제플린이 여러번 패러디 된다. 이 영화는 Spinal Tap이라는 가상의 록밴드를 설정해 놓고 그게 마치 실존 밴드인 척 다루며[31] 그 밴드의 역사를 회고하는 가짜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다. 록음악계를 우스꽝스럽게 풍자하여 웃음을 주는 게 목적이라서 여러 실제 유명 록밴드들의 일화와 디테일들을 이 가상 밴드에 이입시켜서 패러디하고 있는데, 70년대를 대표하는 록밴드인 레드 제플린 역시 여러 번 패러디된다.

예를 들어, 스파이널 탭의 공연 중에 기타리스트가 기타 솔로연주를 할 때 피크가 아닌 무려 바이올린(!!!)으로 전기기타 줄을 문지르며 연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바로 지미 페이지가 바이올린 활로 기타 연주를 했던 퍼포먼스를 코믹하게 패러디한 것이다. 지미 페이지는 바이올린 '활'로 연주했지만, 스파이널 탭은 활도 아닌 바이올린 '몸통' 그 자체로 연주하는 것이니 그 황당한 모습에 폭소가 안 나올 수 없는 장면이다.그리고 스파이널 탭의 전 드러머가 광란의 파티 중에 과음하다가 토사물에 목이 막혀 질식사한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물론 존 본햄의 그리 깔끔하지 않은 사망 과정을 대놓고 패러디한 것. 근데 그 영화속 드러머의 경우는 한 술 더 떠서 의학적 검사 결과 드러머 자신의 토사물이 아닌 다른 멤버들의(!!!) 토사물이 목을 막아서 질식사한 것으로 밝혀져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나온다. 멤버들이 대체 서로 뭔 짓거리를 했다는 건지 상상조차 안 간다. 70년대를 주름 잡았던 공룡급 인기 록밴드들의 방탕한 쾌락문화를 조롱하기 위한 의도로 과장해서 풍자한 장면인데, 아무리 풍자 코미디 영화라고 해도 고인의 사망까지 코미디의 대상으로 삼는 건 심하다는 느낌도 드는 장면이다.그밖에도, 공연 중에 무대에 웅장한 스톤헨지 모형을 멋지게 등장시키려다가 일이 꼬여버려서 코미디가 되는 장면은, 레드 제플린의 1977년도 미국 오클랜드 공연 때 스톤헨지 석상 모양의 모조품을 무대에 등장시켰던 것을 패러디한 것이다.
  • 2012년에 결성되고 2017년에 데뷔한 미국 미시건 주 출신 록밴드 '그레타 밴 플릿'(Greta Van Fleet)이 레드 제플린의 재현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음악 스타일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보컬의 목소리가 로버트 플랜트와 너무 비슷해서.. 그래서인지 플랜트도 인터뷰에서 이들에 대한 질문을 받기도 했었다. 남의 음악을 표절한 밴드 일원인 사람이 자기를 대놓고 카피하는 밴드를 봤을때 기분이 어땠을지(...)[32]


  1. [1] 로큰롤 명예의 전당의 5가지 헌액 카테고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문이자 공신력이 인정되는 '공연자(Performers)' 명단에 한하여 기록하도록 함. 나머지 부문의 헌액자들은 따로 문서 내 헌액명단에 수록해주길.
  2. [2] 다만 레드 제플린이 헤비메탈을 최초로 시도한 것은 아니다.
  3. [3] 1970년대에 어느 일본 음악기자가 쓴 "영국의" 3대 기타리스트 라는 표현이 한국에 들어와서 그냥 '3대 기타리스트'라는 표현으로 정착된 건데, 그 이후로 한국에선 이 3대 기타리스트란 타이틀이 확고해졌지만 그 외의 나라들에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표현은 아니다. 사실상 한국에서만 널리 그렇게 부르고 있다.
  4. [4] 영어에서 "Lead Balloon"(납으로 만든 풍선)이란 공중으로 떠올라야 할 풍선을 무거운 납으로 만들었다는 것에서 '성공할 가망이 없는 허황된 계획'이란 의미이다.
  5. [5] 레드 제플린이란 밴드명은 일종의 언어유희인데, 절친한 친구였던 더 후의 드러머 키스 문과 새 밴드의 이름에 대해 논의하던 중 키스 문이 조크의 의미로 니들 밴드는 성공하지 못하고 추락할 거라며 마치 납(Lead)으로 만든 비행선 (Zeppelin)처럼 추락할 것[4]이란 의미에서 Lead Zeppelin란 명칭을 제안했고 여기서 'Lead'를 납이라는 뜻의 '레드'로 읽지 않고 지도한다는 뜻의 '리드'로 읽는 혼동이 올까봐 'Lead'에서 'a'를 뺀 "Led Zeppelin"이란 이름을 사용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추락하기는 커녕 엄청 떠버렸다.
  6. [6] 천재적이거나 전설적인 록 뮤지션들일수록 자의식이 너무 강해서인지 성격면에서 그리 좋은 경우가 별로 없다. 괴팍하고 엉뚱한 괴짜이거나, 폭력적이고 다혈질이거나, 아니면 아주 내성적인, 심한 경우는 아예 정신병을 앓고 폐인이 되어버는 식으로 극단적인 성격이 많지, 무난하고 사교적인 성격은 드물다. 그런 점에서 사교적이고 유쾌한 성격의 로버트 플랜트는 그러한 예외 중 하나다.
  7. [7] 그런데 새로 나온 리마스터드 버전에도 이런 커버 구조가 잘되어 있다.
  8. [8] 이 곡은 록 역사상 라디오에서 가장 많이 흘러나온 곡이다.
  9. [9] 집을 산 뒤에 알긴 했으나 지미 페이지는 실제로 알레이스터 크로울리의 집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10. [10] 멤버의 취향을 알 수 있다. 이게 꼭 농담은 아닌게, 지미 페이지는 실제로 어린 소녀 그루피들과 사귀는 등 그런 성적 취향이 있었던게 락계에선 이미 유명한 사실이다.
  11. [11] Giant's Causeway. "거인의 길"이라는 뜻으로, 북아일랜드 북동쪽 해변에 있는 용암지대이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다.
  12. [12] 당연히 선정적인 커버로 논란이 되기도 했으며, 발매를 불허한 나라도 있었으며, 한국같은 경우엔 속표지를 커버로 지정시켰다.
  13. [13] 이 곡에서의 존 본햄은 그야말로 압권을 달리는 드러밍을 선보인다.
  14. [14] 1999년 영화 "고질라"의 OST에 수록된 이 곡의 기타연주로 이름을 올려, 그의 이름이 힙합차트 1위에 오르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적도 있다. 이곡의 베이스 연주와 일렉트릭 기타로 만들어 낸 고질라 소리는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가 맡았다고 한다.
  15. [15] 매니저 피터 그랜트가 흑마술을 하는 장면도 나온다고 한다.(...)
  16. [16] 이 앨범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요새 그런지, 얼터너티브니 하며 연주실력은 포기하고 대충 질러대며 이미지 메이킹이나 하는 밴드들에게 록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를 가르쳐주는 좋은 선배의 표본."이다. 참고로 비슷한 시기에 나온 주다스 프리스트의 "Painkiller"에 대한 평은 록의 본질은 무엇인지 일갈하는 엄한 선배의 표본이다. - Burn지의 리뷰에서 인용.
  17. [17] 지미 페이지는 한때 레드 제플린 못지않은 슈퍼그룹 "예스"의 멤버들과 'XYZ'라는 이름으로 뭉쳤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고 한다.
  18. [18] 사실 이 앨범은 엄밀히 말하면 언플러그드는 아니다. 몇몇곡에서 지미 페이지가 일렉기타를 연주한다.
  19. [19] 이처럼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받아들였지만, 레드 제플린의 음악에 가장 기초적인 기반이 된 장르는 헤비 블루스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20. [20] 영어로는 rip off. 그 외에 plagiarism이나 piracy라는 표현도 쓰인다.
  21. [21] 영문 위키피디아에도 관련 문단이 따로 있었을 정도지만 수정전쟁으로 사라졌다.
  22. [22] out of court settlement
  23. [23] 근데 리치 발렌스의 "Ooh My Head"도 리틀 리차드의 "Ooh My Soul"의 변주곡이다.
  24. [24] 페이지는 오마주의 의도라고 변명했지만 과연 표절과의 차이와 경계는 무엇인지?
  25. [25] 그런데 Watch Your Step 역시 레이 찰스의 What'd I Say와 유사함이 지적된 바 있다.
  26. [26] 지미 페이지가 열렬히 추종했던 뮤지션이자 위에서 언급된 Bert Jansch의 음악동료이기도 했다
  27. [27] 로버트 플랜트는 이 곡이 로버트 존슨의 Terraplane Blues에 대한 트리뷰트 같은 곡이라고 밝힌 바 있다.
  28. [28] 페이지와 플랜트 모두 이 밴드의 상당한 팬이었는데, 특히 플랜트는 무대뒤 대기실까지 따라다닐 정도로 거의 스토커 수준으로 좋아했다고 한다.
  29. [29] Fred Gerlach의 동명의 곡이 원작.
  30. [30] Bukka White의 "Snake 'Em On Down"에서 가사를, 동일곡의 Mississippi Fred McDowell 버전에서 기타 연주를 따옴.
  31. [31] 그것도 시대를 풍미한 유명 인기 록밴드로 설정된다.
  32. [32] 레드 제플린의 표절 논란은 곡 전개의 유사성, 그레타 밴 플릿의 카피 논란은 사운드 메이킹의 유사성에 기인한 것이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기가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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