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 FC


2018-19 시즌 참가 클럽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뉴캐슬 유나이티드

레스터 시티

리버풀

맨체스터 시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번리

본머스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사우샘프턴

추가바람

아스날

에버턴

왓포드

울버햄튼 원더러스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첼시

카디프 시티

크리스탈 팰리스

토트넘 홋스퍼

허더즈필드 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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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8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

레알 마드리드
(Real Madrid)

리버풀
(Liverpool)

리버풀 FC

Liverpool F.C.

정식 명칭

Liverpool Football Club

별칭

레즈 (The Reds)

창단

1892년 6월 3일

소속 리그

프리미어 리그 (The Premier League)

연고지

머지사이드 주 리버풀 (Liverpool)

홈 구장

안필드 (Anfield)
(54,074명 수용)

라이벌

[[에버튼 FC|에버튼 FC]] - 머지사이드 더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노스웨스트 더비[1]

구단주

펜웨이 스포츠 그룹 (Fenway Sports Group)[2]

감독

위르겐 클롭 (Jürgen Klopp)

주장

조던 헨더슨 (Jordan Henderson)

부주장

제임스 밀너 (James Milner)

공식 홈페이지 및 소셜 미디어

[3]

공식 스토어 및
팬카페, 팬페이지

[4] [5] #[6]

우승 기록

프리미어 리그 (1부)
(18회[7])

1900-01, 1905-06, 1921-22, 1922-23, 1946-47, 1963-64, 1965-66, 1972-73, 1975-76, 1976-77
1978-79, 1979-80, 1981-82, 1982-83, 1983-84, 1985-86, 1987-88, 1989-90

EFL 챔피언십 (2부)
(4회)

1893-94, 1895-96, 1904-05, 1961-62

FA컵
(7회)

1964-65, 1973-74, 1985-86, 1988-89, 1991-92, 2000-01, 2005-06

EFL컵
(8회 / 최다)

1980-81, 1981-82, 1982-83, 1983-84, 1994-95, 2000-01, 2002-03, 2011-12

FA 커뮤니티 실드
(15회)

1964, 1965, 1966, 1974, 1976, 1977, 1979, 1980,
1982, 1986, 1988, 1989, 1990, 2001, 2006

UEFA 챔피언스 리그
(5회)

1976-77, 1977-78, 1980-81, 1983-84, 2004-05

UEFA 유로파 리그
(3회)

1972-73, 1975-76, 2000-01

UEFA 슈퍼컵
(3회)

1977, 2001, 2005

클럽 기록

최고 이적료 영입

버질 판데이크 (Virgil van Dijk)
(2018년, From 사우스햄튼 FC, 7000만 £)

최고 이적료 방출

필리페 쿠티뉴 (Philippe Coutinho)
(2018년, To FC 바르셀로나, 1억 600만 £)

최다 출장

이안 캘러핸 (Ian Callaghan) - 857경기 (1960-1978)

최다 득점

이안 러쉬 (Ian Rush) - 346골 (1980-1987 / 1988-1996)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
(8회)

샘 레이볼드 (1902-03)
잭 파킨슨 (1909-10)
이안 러쉬 (1983-84)
존 올드리지 (1987-88)
마이클 오언 (1997-98, 1998-99)
루이스 수아레스 (2013-14)
모하메드 살라 (2017-18)

2017-18 시즌 유니폼 킷

HOME

GK HOME

AWAY

GK AWAY

THIRD

메인 스폰서

슬리브 스폰서

유니폼 메이커

1976-77 ~ 1977-78 유러피언 컵 우승팀

FC 바이에른 뮌헨

리버풀 FC

노팅엄 포레스트 FC

1980-81 유러피언 컵 우승팀

노팅엄 포레스트 FC

리버풀 FC

아스톤 빌라 FC

1983-84 유러피언 컵 우승팀

함부르크 SV

리버풀 FC

유벤투스 FC

2004-05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

FC 포르투

리버풀 FC

FC 바르셀로나

영국 유일의 빅 이어 영구 소장 클럽[8]

UEFA 챔피언스 리그 5회, 프리미어 리그 18회 우승을 차지한 명문 구단[9]

1. 개요
3. 상징
3.1. You'll Never Walk Alone
4. 특징
4.1. 팀 부진의 원인: 이적 시장에서의 실패
5. THE KOP
6. 인기
6.1. 콥으로 유명한 사람들
6.1.1. 한국의 유명인
6.1.2. 해외 유명인
6.2. 별명
7.1. 우승 기록
8. 공식 파트너쉽
8.1. 공식 트레이닝 킷 스폰서
8.2. 공식 파트너
9. 스태프
10. 스쿼드
12. 둘러보기

1. 개요

잉글랜드 머지사이드 주 리버풀을 연고지로 둔 프리미어 리그 소속의 축구 클럽.

2. 역사

리버풀 FC/역사 문서 참조.

역대 크레스트 변화 과정[10]

3. 상징

구단의 상징, 라이버버드와 붉은색.

지금이야 리버풀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클럽의 상징과도 같은 붉은색이고, 100년이 넘는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 동안 그러했으나, 19세기 말 갓 창단한 리버풀의 유니폼은 초창기 에버튼의 그것과 유사한 파랑-하양 디자인을 따랐다.[11] 물론 이 유니폼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폐기되었으며, 1894년에 리버풀 시의 상징색이기도 한 빨강을 처음으로 유니폼 디자인에 채용하였다. 이때부터 1964년까지, 오늘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니폼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는 빨강(상의)-하양(하의) 디자인을 고수하던 리버풀은 당시 감독이던 빌 샹클리의 제안으로 하의와 스타킹까지 붉은색으로 물들인다.

"그(샹클리)는 온몸을 붉은색으로 물들이는 게 상대에게 위압감을 가져다줄 것이라 생각했다. 어느 날 그는 드레싱 룸으로 들어와서 로니 예이츠에게 빨간색 하의 한 벌을 건네더니, "이거 한 번 입어봐라. 어떤지 좀 보자." 라고 했다. 로니가 빨간 바지를 건네 받고 챙겨 입자 그는 "오, 로니, 장난 아니게 멋진데? 놀라워. 키가 2미터는 돼 보이네."라고 했다. 그 모습을 본 내가 제안하길, "아예 양말도 빨간색으로 해 버리죠? 모두 빨간색으로 하고 나가요." 샹클리는 찬성했고, 그것이 리버풀의 새로운 상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이안 세인트 존.[12] 그의 자서전에서.

리버풀은 유니폼 상의에 메인 스폰서 로고를 부착하고 경기에 나선 잉글랜드 최초의 클럽이라는 독특한 기록도 보유하고 있는데, 1979년 히타치와 계약을 맺으면서였다. 그 후 리버풀은 크라운 페인트, 칼스버그 등을 거쳐 현재는 가슴에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로고를 새기고 있다. 한편 칼스버그와의 스폰서십 계약은 1992년부터 2011년까지 지속되었는데, 이는 잉글랜드 프로축구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유지된 계약이라고 한다.

공식 구단 엠블럼 윗면에는 그 유명한 YNWA 문구가, 방패 안에는 리버풀 시의 문장인 라이버버드가 자리해 있으며, 양쪽의 불꽃은 안필드 밖에 위치한 힐스보로 참사 기념비에 있는 성화를 표현한 것이다.

그 유명한 샹클리 게이트. 상단에 라이버버드 문양이 보인다.

3.1. You'll Never Walk Alone

본래 1945년 로저스 앤 해머스타인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회전목마'에 등장한 곡이다.

그 후 여러 가수, 기획사들에 의해 불리고 팔렸지만, 영국 내 가장 유명한 버전은 1963년 발매된 Gerry and the Peacemakers의 You'll Never Walk Alone이다. 제목과 가사가 '어떤 어려울 때라도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감동적인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에, 발매된 후 리버풀 팬에게 많이 불리다 보니 리버풀의 응원가겸 슬로건(!)이 되었다.

'''{{{#d00027 When you walk through a storm
(당신이 폭풍을 뚫고 지나갈 땐)

Hold your head up high
(당신의 고개를 높이 들어요)

And don't be afraid of the dark
(그리고 어둠을 무서워하지 말아요)

At the end of a storm
(그 폭풍의 끝엔)

There's a golden sky
(황금빛 구름과)

And the sweet silver song of a lark
(종달새의 달콤한 지저귐이 있으니까요)

Walk on through the wind
(바람을 헤치고 걸어요)

Walk on through the rain
(빗속을 헤치고 나가요)

Though your dreams be tossed and blown
(당신의 꿈이 이리저리 치이더라도)

Walk on, walk on
(걸어요, 계속 걸어요)

With hope in your heart
(희망을 당신의 가슴속에 품고)

And you'll never walk alone
(그럼 당신은 절대 혼자 걷지 않을꺼에요)

You'll never walk alone
(당신은 절대 혼자 걷지 않을꺼에요)

Walk on, walk on
(걸어요, 계속 걸어요)

With hope in your heart
(희망을 당신의 가슴속에 품고)

And you'll never walk alone
(그럼 당신은 절대 혼자 걷지 않을꺼에요)

You'll never walk alone
(당신은 절대 혼자 걷지 않을꺼에요)}}}'''

또한, 상기 해놓은 바처럼 다른 응원가와 달리 대중 음악에서 유래하였기 때문에 지역성이 없어 다른 클럽들이 쓰기에도 가사가 전혀 문제가 없다. 실제로 리버풀에 한정된 응원가가 아니라는 꽤나 흥미로운 점이 있다.[13] 스코틀랜드의 셀틱 FC부터 독일의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FSV 마인츠 05, TSG 1899 호펜하임을 넘어 심지어 저 멀리 일본의 FC 도쿄(!!!)를 포함한 다수의 클럽들이 YNWA를 응원가로서 쓰고 있다.[14] 실제로 이런 클럽들과 프리시즌에 경기를 가질 때에는 사이좋게 YNWA 문구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고, 팬들도 유럽 클럽 대항전을 제외하고는 별로 마주칠 일이 없기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리버풀 팬들과 도르트문트 팬들은 YNWA 응원가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과 클롭 감독을 사랑한다는 점에서 양 측 모두 상대 팀에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15-16 시즌 유로파리그 8강전 리버풀과 도르트문트의 경기에서 양 팀 팬들이 YNWA를 합창하는 훈훈한 진풍경이 펼쳐졌다. 역사에 남을 명경기가 펼쳐진 것은 덤.

4. 특징

2000년대 중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FC, 아스날 FC과 함께 빅4로 불리웠지만 1989/90 시즌 리그 우승을 마지막으로 리그 우승이 없고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에는 최다 우승 기록까지 맨유에게 빼앗겼다. 과거에 통합 20년 정도를 2부리그에서 놀았는데 이것 때문에 빅4에 5번 강등된 팀이랑 같이 있는게 창피하다고 디스당하기도 했다.

리버풀의 최전성기라 할 수 있는 1970년대 중반~ 1980년대 중반 케니 달글리시이안 러쉬, 달글리시와 함께 스코틀랜드 축구 역사상 올타임 넘버원 레전드인 그레이엄 수네스를 앞세운 화끈한 공격축구로 유럽과 잉글랜드를 평정했지만 1990년 일어난 힐스버러 참사로 인해 달글리시가 사임한 이후 00-01 시즌을 제외하고 베니테즈가 취임하기 전까지 이렇다할 특유의 색깔을 보여주지 못하며 리그 중상위권에 머물러왔다.

베니테즈가 취임하고 4-2-3-1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한 공수간격을 극단적으로 압축시킨 역습 축구로 돌풍을 일으키며 챔스와 FA컵 우승을 기록했지만 정작 리그 우승은 기록하지 못했으며, 브렌던 로저스 역시 루이스 수아레즈를 앞세운 공격축구로 한 시즌 반짝 돌풍을 일으켰지만 그게 로저스가 보여준 전부였다.

위르겐 클롭이 부임하고 나서는 게겐 프레싱을 기반으로 한 압박축구가 이식되었으며, 비교적 성공적으로 안착하며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4.1. 팀 부진의 원인: 이적 시장에서의 실패

괜찮은 정통 스트라이커는 리버풀에만 오면 조용해진다

헤이젤 참사힐스버러 참사가 연이어 터지게 되고 그레이엄 수네스, 로이 에반스 감독 체제에서 리빌딩까지 실패했지만, 제라르 울리에 감독이 취임하며 부진이 어느정도 수습이 되는듯했다. 그것이 바로 00/01시즌 FA컵, 리그컵, UEFA컵[15], 커뮤니티 실드, UEFA 슈퍼컵의 5관왕으로 증명이 되었다. 프랜차이즈 스타 마이클 오언은 이때 발롱도르까지 수상했다. 리그에서도 3위를 기록했지만, 오언과 에밀 헤스키투톱은 30골을 합작하며 스트라이커가 약하다는 평가는 받는 팀이 아니었다. 오언은 다음시즌에도 19골을 터뜨리며 팀의 리그 준우승을 이끌었지만, 헤스키가 부진했고, 2위임에도 팀득점 67점으로 1위 아스날의 79득점, 3위 맨유의 87득점에 비하면 저조한 득점력을 보이기 시작하며, 리버풀의 스트라이커 잔혹사가 시작이 되었다.

02/03 시즌을 앞두고 월드컵에서 맹활약을 펼친 세네갈의 연쇄살인마라는 별명을 가진 공격수 엘 하지 디우프를 1000만 파운드에 영입을 했다. 전 소속팀인 리그앙의 RC 랑스에서도 두시즌동안 18골을 뽑아낸 검증된 공격수였고, 월드컵에서 세네갈을 8강으로 이끈 맹활약을 했기에, 기대를 모은 영입이었으나, 두시즌동안 리그 55경기에 나와서 3골, 리그컵 7경기 나와서 3골 총 79경기에 출전해서 6골을 넣는 최악의 부진을 선보이며,[16] 결국 04/05시즌에 볼튼 원더러스로 임대를 떠났고, 거기서는 리그 9골을 터뜨리며 완전이적을 해버린다. 400만 파운드에...리버풀은 5위로 추락하여 챔스도 못나갔으며, 이듬해 간신히 4위를 기록하며 챔스복귀에는 성공한다. 유스출신인 오언 꾸준히 19골, 16골을 기록해주고 있었고, 01/02시즌에 320만 파운드에 영입했던 밀란 바로시가 02/03시즌 총 12골을 넣어주었다. 그런데, 원더보이 마이클 오언마저도 시즌 종료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게 된다. 퇴물 취급받던 에밀 헤스키마저 버밍엄 시티로 이적하게 되면서 리버풀의 공격진은 그야말로 멸망하게 되었다.

오언과 디우프가 사라진 04/05시즌 리버풀은 드디어 라파엘 베니테스가 감독으로 부임하였으나, 이미 공격진이 멸망된 상황. 바로시 혼자 분투한 시즌이었다. 지브릴 시세를 당시 리버풀 클럽 레코드인 1450만 파운드에 영입은 했지만, 영입한지 얼마안되 다리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게 되었고, 두시즌동안 리그 13골의 그냥 그런 활약을 보였다. 유로 2004에서 맹활약하며 득점왕에 오른 바로시가 간신히 9득점을 올렸을뿐. 이스탄불의 기적이 아니었으면 진짜 멸망한 시즌이었다. 그러나 밀란 바로시 조차 다음시즌인 05/06시즌을 부상으로 통채로 날려버렸다. 04/05때 닐 멜러라는 반짝 스타가 갑툭튀 하긴 했지만, 그야말로 반짝 스타였을분.

2006-07 시즌 팀의 득점력 강화를 위해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에서 한창 물이 올랐던 상태의 디르크 카윗을 1500만 파운드의 거금으로 영입했는데, 카윗의 활동량이나 팀 플레이는 수준급이었으나 정작 폭발적인 득점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리그 12골로, 득점랭킹 9위에 오르긴 했지만. 그래도 이후 오랜기간동안 리버풀에 헌신하긴 했기에 돈날린 영입이라고는 볼 수 없다. 같은 시즌 60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뉴캐슬에서 크레이그 벨라미도 영입했지만 리그 7골로 빈곤한 득점력은 해결해주지 못했다--대신 리세를 골프채로 두들겨패고, 다음 경기인 바르셀로나와의 챔스경기에서 맹활약하며 바르셀로나를 탈락시키긴 했다.그도 결국 다음시즌 바로 팀을 떠났다

결국 07.08 시즌 이적시장에서 2000만 파운드라는 클럽 레코드를 기록하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페르난도 토레스를 영입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토레스의 이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크레이그 벨라미, 지브릴 시세, 마르크 곤살레스, 루이스 가르시아, 플로랑 시나마-퐁골 등 주전급 자원 여러 명을 이적시켜야 했고, 이는 가뜩이나 당시 선두권 경쟁을 벌이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FC, 아스날 FC에 비해 얇은 스쿼드를 갖고 있던 팀의 전력을 한층 더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네덜란드의 신성 라이언 바벨 역시 1400만 파운드의 거금을 들여 영입했지만, 정통 스트라이커도 아니었고, 4년간 리버풀에서 딱히 한것도 없었다.

그리고 토트넘 핫스퍼에서 로비 킨을 데려왔으나 6개월만에 반송 처리했고, 토레스를 5000만 파운드에 넘기고 데려온 앤디 캐롤 역시 실패했다. 다만 AFC 아약스에서 2650만 파운드로 사온 루이스 수아레스가 월드 클래스의 기량을 보여주며 리버풀의 스트라이커 잔혹사는 여기서 사라지는 듯 했으나 수아레스를 FC 바르셀로나로 보내고 대체자로 영입한 마리오 발로텔리크리스티안 벤테케가 실패하며 잔혹사는 계속 되었다.

클롭 감독 부임 후 펄스 나인을 사용하며 9번 롤을 소화하는 선수 없이 경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클롭 체제 하에서 톱의 룰을 수행하고 있는 피르미누가 매우 좋은 모습을 보여줌에 따라 이러한 저주도 곧 잊혀질 듯 하다.

5. THE KOP

콥(Kop)은 리버풀 FC의 서포터즈를 통칭해 부르는 단어이다. 안필드를 가득 메운 콥들의 열정적인 응원은 리버풀에겐 큰 힘을, 상대편에겐 상당한 부담감을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리버풀 입장에선 든든한 서포터즈이지만 영국에선 헤이젤 참사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콥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1906년 리버풀이 두 번째 1부 리그 우승을 한 후 구단에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새로 만든 스탠드에 보어 전쟁 때 많은 리버풀 출신 병사들이 전사한 곳의 지명인 스피온 콥(Spion Kop)을 추모의 의미로 붙인 것에서 유래한다. 1960-61시즌에 2부 리그로 강등되었던 리버풀이 우승을 하며 1부 리그로 승격된 후 1962-63 시즌 블랙풀과의 시즌 첫 경기를 치렀는데, 이 당시 안필드에 입장한 5만 여명의 팬들 중 절반이 넘는 수의 관중이 골대 뒤의 스피온 콥 스탠드에 모여 리버풀을 외쳤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당시 최고의 인기인 비틀즈[17]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덩달아 옆에 있던 다른 팬들도 같이 노래를 부르며 열정적으로 응원했고, 이런 열정적인 응원을 본 사람들이 스탠드의 이름을 따 리버풀의 서포터즈를 콥이라고 통칭하게 되었다.

6. 인기

자국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기가 많은데, 특히 동남아 쪽의 인기가 폭발적이다. 태국 전직 총리이던 탁신 친나왓이 리버풀 구단을 사려다가 실패[18]하여 맨체스터 시티 FC를 대신 샀던 일화도 유명하다.

칼스버그가 유니폼 스폰서를 하던 시절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를 여행한 이의 경험을 들어 보면 맨유보다 리버풀 서포터를 자주 만날 수 있었는데, 이 두 나라에선 이슬람 율법 때문에 주류 관련 광고를 금지하는 터라 덩달아 칼스버그가 가슴팍에 새겨진 유니폼도 판매 금지가 되어 칼스버그가 스폰싱을 하기 전 유니폼이 아직도 나와 팔리고 있다며 투덜거리던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전술했듯이 동남아쪽 인기가 많은 편이라 프리시즌 친선경기도 동남아에서 많이 가졌는데, 클롭 부임 이후 시즌 전 선수단 컨디션 관리를 위해 장거리 비행을 자제하는 쪽으로 방침이 세워져 동남아쪽 팬들의 아쉬움이 커질 전망이다.

참고로 이런 인기를 방증이라도 하듯이, 구단 공식 스폰서 9개사 중 2개사가 동남아시아 쪽에 뿌리를 둔 회사[19]이다.

6.1. 콥으로 유명한 사람들

6.1.1. 한국의 유명인

6.1.2. 해외 유명인

굵은 글씨는 리버풀 출신인 유명인이다.

6.2. 별명

리버풀이 전성기였을때는 붉은 제국이라고 불려졌으며, 리버풀 팬들을 콥이라고도 부른다. 최근에는 한국 팬들 사이에서 의적풀, 행복풀[21]이라 불리우고 있다.

7. 기록과 통계

항목참조

7.1. 우승 기록

리그 우승횟수는 18회로 리그 최다였으나, 2010-11 시즌 라이벌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19번째 리그 우승을 하면서 최다 우승이라는 명예는 라이벌인 맨유에게 빼앗겼다. 오히려 지금은 장기간의 리그 우승 실패로 인해 놀림받는 처지까지 밀려난 상태.

하지만 UEFA 챔피언스 리그는 3번째로 우승을 많이 한 팀(5회)[22]으로 잉글랜드 내에서는 1위이다.

8. 공식 파트너쉽

8.1. 공식 트레이닝 킷 스폰서

BetVictor

8.2. 공식 파트너

칼스버그

말레이시아 항공

팔켄 타이어

코나미

InstaForex

조이

차오코

알카텔

클레이모어 와인즈

9. 스태프


리버풀 FC 스태프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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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스쿼드


리버풀 FC 스쿼드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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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유소년 아카데미

오언-제라드-캐러거가 한번에 나온 영향인지 유소년 아카데미 시설이 좋은 평가를 받는 걸로 유명하다.[23][24] 2013년 6월에 UEFA에서 선정한 최고의 유소년 아카데미를 보유한 클럽에 리버풀이 Top 5, 잉글랜드 클럽중에선 1위로 선정되었다.[25]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리버풀 FC/하부기관 참고.

12. 둘러보기


  1. [1] 국내 언론에서 흔히 사용하는 표현인 레즈 더비(Reds Derby)는 잘못된 표현이다. 두 팀 다 붉은 색 유니폼을 입는 건 맞지만 레즈는 리버풀만을 지칭하는 단어이고 맨유는 레드데빌즈이다.
  2. [2] 존 헨리가 소유한 스포츠 분야 투자 전문 기업으로 FSG라고 줄여 부르기도 한다. 보스턴 레드삭스(2002년 인수), 나스카 러쉬 펜웨이 레이싱팀(2007년 인수), 리버풀 FC(2010년 인수)를 소유하고 있으며, 펜웨이 파크안필드의 소유권을 보유하고 있다.
  3. [3] 한국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4. [4] 더 콥스
  5. [5] Liverpool FC. 카페 규모 순서 이다.
  6. [6] T.P.T.P.
  7. [7] 모두 잉글리시 풋볼 리그 시절에 우승한 것이다. EPL로 개편하고 난 후로는 아직까지 우승이 없는 상태.
  8. [8] 과거 UEFA 챔피언스 리그를 5회 이상 우승하거나 3회 연속 우승한 팀에게는 빅 이어를 영구 소장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었는데, 2009년 UEFA에서 이 규정을 폐지함으로써 향후 다른 클럽들이 이 조건을 충족해도 더 이상 빅 이어를 영구 소장할 수 없게 되었다. 현재 빅 이어를 영구 소장하고 있는 클럽은 레알 마드리드 CF, AFC 아약스, FC 바이에른 뮌헨, AC 밀란, 리버풀, FC 바르셀로나까지 총 6팀이다.
  9. [9] 잉글랜드 클럽 중 UEFA 챔피언스 리그 최다 우승팀이자, 맨유에 이어 2번째로 많은 리그 우승을 차지한 팀이다. EPL로 개편한 후로는 아직까지 우승이 없는 상태지만 잉글리시 풋볼 리그 시절의 기록도 그대로 승계되기 때문에 아무런 하자가 없는 표현이다.
  10. [10] 리버풀 시의 상징인 라이버 버드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11. [11] 사실 설립 초창기 구단의 공식 명칭도 Everton F.C. and Athletic Grounds Ltd였을 만큼, 아직 리버풀로서의 정체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고 볼 수 있겠다.
  12. [12] 리버풀의 전설적인 스트라이커이자 1980~90년대에 지미 그리브스와 방송에서 호흡을 맞추었다.
  13. [13] 단, 리버풀이 응원가로 사용한 사례의 원조이다.
  14. [14] 우연히 클롭이 YNWA 응원가를 가진 팀들만 감독을 맡고 있다.
  15. [15] 지금의 유로파 리그
  16. [16] 선수 항목에도 작성되어있지만, 매우 사생활문제도 있는 문제가 많은 선수였다.
  17. [17] 비틀즈의 멤버 모두 리버풀 출신이다.
  18. [18] 아시아, 동남아 구단주에 대한 거부감이 서포터들이나 주주들에게 꽤 컸었는데 탁신이 국고금 및 본인의 비자금으로 리버풀을 산다는 소식이 잉글랜드 언론을 통해 알려졌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19. [19] 구단 공식 항공사: 말레이시아 항공, 구단 공식 코코넛 워터: 차오코
  20. [20] MBC 아나운서국 소속 아나운서
  21. [21] 유독 강팀에는 강하고 약팀에는 한 없이 약한 존재를 보이고 있기에 의적풀, 행복풀이라고 불린다. 별명 2개 중 하나를 검색해도 들어올 수 있다.
  22. [22] 1위 레알 마드리드 CF(12회), 2위 AC 밀란(7회), 3위 바이에른 뮌헨, FC 바르셀로나와 공동 (5회)
  23. [23] 단 저 셋이 혜성처럼 등장한 이후 한동안 재미를 못봐서 결국 전임자였던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이 한차례 개혁을 하였다. 현재의 유소년 아카데미는 그 산물.
  24. [24] 사실 제라드 이후에도 유스가 배출하는 유망주의 양적인 측면에서는 여전히 세계 정상급이긴 했는데, 이상하게도 세계적인 선수까지는 성장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프리미어 리그 중하위권에는 정작 리버풀에는 드문 리버풀 유스 출신 주전선수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로 리버풀 주전층의 두께가 얇아진 것도 원인중 하나라고 봐야 할 것이다. 1군 선수가 부족하다보니 유스선수들이 빨리 1군에 빨리 데뷔하게 되고, 리그에서 뛸만한 선수들은 많이 배출하게 되지만, 세계구급 재능은 단순히 많이 뛴다고 생겨나는 것은 아니니...
  25. [25] 1위는 아약스, 2위는 바르샤, 3위는 도르트문트, 4위는 레알 마드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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