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2세

영국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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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스터 왕조

에드워드 3세

리처드 2세

헨리 4세

왕호

리처드 2세
(Richard II of England)

별칭

보르도의 리처드
(Richard of Bordeaux)

생몰년도

1367년 1월 6일 ~ 1400년 2월 14일

재위기간

1377년 6월 22일 ~ 1399년 9월 30일

대관식

1377년 6월 17일

서명

1. 개요
3. 평가
4. 부인들
5. BBC 드라마

1. 개요

에드워드 3세손자이자 흑태자 에드워드와 조안의 차남이다. 이었던 앙굴렘의 에드워드가 요절하면서 사실상 에드워드 3세의 장손이자 흑태자 에드워드의 외아들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1381년 와트 타일러의 난을 진압하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의회와의 불화는 심화되었다. 의회와의 마찰은 1386년 양 세력을 중재하고 있던 그의 숙부 곤트의 존이 카스티야 왕위계승 문제로 떠난 시기에 표면화 되었는데 의회는 국왕의 최측근 중 하나인 서퍽 백작 마이클을 탄핵하고 11인 위원회를 개설하여 '당분간' 국왕의 활동을 감시하게 하였다. 물론 리처드 2세는 이러한 결정을 왕권에 대한 도전이라고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의회파들을 제거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의회파의 우두머리격인 5인의 청원파 중 한 명이자 막내 숙부인 글로스터 공작 우드스톡의 토마스 역시 리처드의 측근들을 탄핵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갈등은 1388년 신변의 위험을 느낀 리처드 2세가 일시적으로 의회에게 굴복함으로써 종결되었다. 이후 1397년까지 양 측은 표면상으로는 화목하게 지내게 된다.

1397년, 8년의 시간동안 자신의 추종자들을 강력하게 결속시키는 데 성공한 리처드 2세는 강경한 태도를 취하여 5인의 청원파중에 우드스톡의 토마스를 투옥, 살해하고 애런들 백작 리처드 피츠앨런을 반역죄로 처형해 버렸으며 워릭 백작 토머스 뷰챔프를 추방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해 9월 남은 2인의 청원파 중 한 명이였고 곤트의 존의 차남이자 랭커스터 공작인 사촌형 헨리 볼링브로크가 청원파들에 대한 처분이 부당함을 주장하자 그 역시 추방해 버린다.

2. 역관광

1399년 곤트의 존이 죽자 리처드 2세는 헨리에게 넘어갈 랭커스터 가의 영지마저 몰수하였다. 여기까지는 좋았다.[1] 그러나 리처드 2세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실수를 했는데...

그해 5월 정국이 아직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 방문계획을 세웠고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떠나버렸다. 이는 반란의 기회만을 엿보던 의회파에게 결정적으로 틈을 준 것이나 다름이 없었고 결국 그가 추방하였던 헨리를 필두로 하는 반란군이 잉글랜드로 침입하여 왕좌를 찬탈하는 데 성공한다.

이 소식을 들은 리처드 2세는 1399년 8월 급히 잉글랜드로 돌아오나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헨리에게 항복한다. 그는 즉위한 헨리 4세에 의해 폰티프랙트 성에 감금되어 약 4개월 후에 그 곳에서 죽었다. 전해 내려오는 바로는 음식을 먹지 않고 스스로 굶어 죽었다고 하는데, 헨리 4세가 음식을 제대로 주지 않아서 굶겨 죽였다는 말도 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처드 2세'에서는 헨리에게 제거당했다고 하지만 근거는 없다. 리처드 2세가 후계자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하면서 흑태자의 후대는 단절되었다.

3. 평가

리처드 2세는 옷차림[2]은 물론 외모와 머리모양에 신경을 쓰는 멋쟁이였으며 규칙적으로 목욕을 했고(드문 행위는 아니었다. 중세인들은 흔한 편견보다는 훨씬 더 목욕을 좋아했다. 목욕문화가 쇠퇴하는 것은 16세기 이후의 일이다) 손수건을 고안하기도 했다. 성격은 성미가 급하고 신경질적이며 발작적으로 폭력적인 기질을 보였지만 어머니나 아내와 같은 가족, 측근 등에게는 관대했다고 한다. 어린 왕이 즉위한 틈을 타 그의 숙부들이 왕위를 노리고 벌어진 분쟁은 결국 막판에 크게 터졌는데 그게 장미전쟁이다. 시인 제프리 초서의 후원자로 알려져있다.

이런 점을 보면 한국의 단종과 굉장히 비슷한 면이 많다. 요절한 아버지로 인해 어린 나이에 왕권을 이었으며 강력한 숙부들 사이에서 휘둘리기 딱 쉬운 입장이었다. 하지만 30대까지 장성해서 나름대로 왕권 강화를 위해 숙청을 가하다가 패배한 것이니 단종과는 차이가 있다. 현존하는 공식 초상화 때문에 소년왕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망 당시의 모습을 가장 흡사하게 표현한 그의 무덤 조각을 보면 수염까지 난 장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단종과 비교한 것은 어디까지나 포지션 상 유사하다는 것이지, 단종처럼 안타깝거나 불쌍한 이미지를 주는 왕은 아니다. 사실 할 건 다 해보고 죽었다는 인상이 더 강하다. 그러나 동정론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찌되었건 그는 도유식을 통해 성별된 적법한 군주였고, 중세의 정치문화에서 그것이 갖는 의미는 현대인들의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이때문에 헨리 4세는 평생 찬탈자라는 굴레에 시달렸으며, 헨리 5세는 리처드의 장례를 정중하게 치러줌으로서 자기 정통성을 확보해야 했다.

흰사슴을 표장으로 삼은 사병 집단을 양성해서 전제정치를 시도했고, 과거 자신을 위협했던 5명의 대귀족을 복수의 명분으로 차례차례 제거해버렸다.[3] 더하여 왕의 말이 곧 국법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귀족들을 협박하거나 적당한 명분을 붙여서 영지와 재산을 마구 몰수하기도 했다.

왕이 강력한 권력을 추구하는게 무엇이 문제냐고 의문할 수도 있는데, 리처드 2세는 중앙집권국가의 왕이 아닌 봉건제 국가의 왕, 그것도 의회 중심의 정치가 발달한 영국의 왕이었다. 왕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곧 죽음이라는 협박은 봉신과 군주 간의 계약을 근거 삼아 상호존중하는 봉건제도를 전면부정하는 행위였다.

리처드 2세 이전에도 강력한 왕권을 추구한 사례는 많았고, 실제로 이루어 낸 경우도 적지 않았으나 어디까지나 의회와 귀족들을 상대로 미묘한 긴장을 유지하는 상호존중관계에서 성립했던 것이며, 그런 왕들도 여차하면 반감을 품은 귀족의 반란으로 한 방에 훅 갔다. 반면 리처드 2세는 오로지 힘에 근거한 압력과 공포를 내세워 권력의 강화를 추진했고, 이는 권리와 목숨 양자를 위협 당한 유력 귀족들의 속이 부글부글 끓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다만 리처드 2세의 추종자들이 단단히 결집해 있는 지라 자칫하면 전국적인 내전으로 불거질 가능성이 커서 참았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불만은 헨리가 프랑스에서 돌아와 적당한 명분과 교체할 후계자를 얻게 되자 급격히 폭발하고 만다.

4. 부인들

첫 부인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4세 딸 앤이었고 금슬도 좋았으나, 아이를 낳지 못하고 12년 만에 흑사병으로 사망했다. 그래서 3년 후 샤를 6세의 딸 이자벨과 결혼했지만 역시 아이를 낳지 못했다. 헨리 4세는 이자벨을 자신의 아들 헨리 5세와 결혼시키려고 하였으나 단념하고 친정으로 보냈다. 이자벨은 사촌 샤를 도를레앙과 재혼했으나, 3년 뒤인 1409년 딸 잔을 낳던 도중 죽었다.

5. BBC 드라마

BBC에서 The Hollow Crown 이라는 제목으로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2세가 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영되었다. 007 시리즈Q로 알려진 벤 위쇼가 리처드 2세를 맡았다.


  1. [1] 사실 이것도 무조건 좋은 행동만은 아니었다. 제아무리 추방된 몸이라고 해도 랭커스터의 영지는 합법적으로 헨리의 것이었고 그건 당시 영국의 법이 확고하게 보장하는 바였다. 그러나 리처드 2세는 강화된 권력을 바탕으로 영지를 몰수해 버렸는데, 이건 귀족들의 입장에서 보면 왕이 전통적으로 신성하던 국법을 깡그리 무시하고 귀족의 마땅한 권리를 무시한 행동이었다. 언제고 자신들의 영지도 마찬가지로 빼앗으려 칼을 들이밀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귀족들 사이에 퍼져나갔고, 이게 결국 헨리에게 반란을 일으킬 합당한 명분을 준 것은 물론 다수의 귀족들이 헨리를 지지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2. [2]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합한 한 벌이 제각각 거의 2만 파운드(한화 3천만원 가량)에 달했다고 한다.
  3. [3] 그 중 하나가 바로 친척이자 랭커스터 왕가의 시초인 헨리였다. 재빨리 태세전환해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한패였던 영주 아렌델을 맹렬히 비난하여 목숨은 건졌으나, 얼마 안 가 프랑스로 추방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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