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릴린 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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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먼로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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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소니언 선정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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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스미소니언 재단의 잡지, 스미소니언 매거진이 “미국사 가장 중요한 100인의 인물”을 선정했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을 뽑았기 때문에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도 많다.
미국 역사를 총망라해서 뽑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인물들도 있다.

개척자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헨리 허드슨

아메리고 베스푸치

존 스미스

조반니 다 베라차노

존 뮤어

메리 웨더 루이스
윌리엄 클라크

새커거위아

키트 카슨

존 웨슬리 파월

닐 암스트롱

혁명가 & 저항가들

마틴 루터 킹

로버트 E. 리

토마스 페인

존 브라운

프레드릭 더글러스

수전 B. 앤서니

W. E. B. 두 보이스

테쿰세

타탕카 이오타케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

말콤 엑스

대통령들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율리시스 S. 그랜트

우드로 윌슨

에이브러햄 링컨

제임스 매디슨

앤드루 잭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로널드 레이건

조지 W. 부시

첫 여성들

포카혼타스

안나 엘리너 루스벨트

힐러리 클린턴

마사 워싱턴

오프라 윈프리

헬렌 켈러

소저너 트루스

제인 애덤스

이디스 워튼

베티 데이비스

사라 페일린

범법자들

베네딕트 아놀드

제시 제임스

존 윌크스 부스

알 카포네

빌리 더 키드

윌리엄 M. 트위드

찰스 맨슨

와일드 빌 히콕

리 하비 오즈월드

러키 루치아노

존 딜린저

예술가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앤디 워홀

프레데릭 로 옴스테드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

잭슨 폴록

존 제임스 오듀본

조지아 오키프

토머스 에이킨스

토마스 내스트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안셀 애덤스

종교인들

조셉 스미스 주니어

윌리엄 펜

브리검 영

로저 윌리엄스

앤 허치슨

조너선 에드워즈

L. 론 허버드

엘런 화이트

코튼 매더

매리 베이커 에디

빌리 그레이엄

팝 아이콘들

마크 트웨인

엘비스 프레슬리

마돈나

밥 딜런

마이클 잭슨

찰리 채플린

지미 헨드릭스

마릴린 먼로

프랭크 시나트라

루이 암스트롱

메리 픽포드

제국-건설자들

앤드루 카네기

헨리 포드

존 데이비슨 록펠러

존 피어폰트 모건

월트 디즈니

토머스 에디슨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하워드 휴즈

빌 게이츠

코르넬리우스 밴더빌트

스티브 잡스

운동선수들

베이브 루스

무하마드 알리

재키 로빈슨

제임스 네이스미스

아놀드 슈워제네거

타이 콥

마이클 조던

헐크 호건

짐 도프

세크리테어리엇

빌리 진 킹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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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골든 글로브 시상식

여우주연상 - 뮤지컬 및 코미디

제16회
(1958년)

제17회
(1959년)

제18회
(1960년)

로절린드 러셀
(앤티 맘)

마릴린 먼로
(뜨거운 것이 좋아)

셜리 맥클레인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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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마릴린 먼로
MARILYN MONROE

분야

영화

입성날짜

1960년 2월 8일

위치

6776 Hollywood Blv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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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먼로
Marilyn Monroe

본명

노마 진 모텐슨(Norma Jeane Mortenson)[1][2]

국적

미국

출생

1926년 6월 1일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사망

1962년 8월 5일 (향년 36세)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직업

배우

신장

166cm

활동

1945 –1962

배우자

짐 도허티 (1942 – 1946)
조 디마지오 (1954 – 1955)
아서 밀러 (1956 – 1961)

서명

1. 개요
2. 상세
5. 기타

1. 개요

마릴린 먼로는 미국의 배우 및 가수다. 1950 ~ 60년대에 주로 활동하였으며, 20세기 가장 위대한 연예인 중 한 명이자 섹스 심벌(Sex Symbol) 등의 수식어로 불리울 정도로 대중문화사에서 상징적인 존재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으며 많은 뒷 이야기를 낳았다. 금발 미녀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2. 상세

정신장애가 있는 모친의 사생아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고아원과 양부모 집에서 양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등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힘든 환경에서 도피하고자 같은 학교 연극반이었던 제임스 도허티와 16세 때 결혼했지만, 이런 결혼이 늘 그렇듯이 4년 만에 헤어졌다. 먼로를 맡아 기르던 위탁 가정의 부모가 멀리 이사를 가는데, 법적인 문제로 먼로를 데려갈 수 없고 그렇다고 아직 어린 소녀를 그냥 내버릴 수도 없어 후다닥 결혼을 시킨 거라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방위산업체에서[3] 페인트 분무기를 뿌리는 일을 하다가 부대 사진 작가의 눈에 띄어 모델이 되었다. 달력의 누드 모델로 일한 것이 계기가 되어[4] 1947년 <쇼킹 미스 필그림>이라는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여 스크린에 데뷔한다.

그 후로도 단역을 전전하다가 1950년에 <아스팔트 정글(The Asphalt Jungle)>, <이브의 모든 것(All About Eve)>에 출연하여 배우로서의 자질을 인정받는다. 53년에 <나이아가라>의 주연을 맡아 폭발적 인기를 얻게 되는데 20세기 폭스는 엉덩이를 흔들며 걸어가는 먼로 워크를 중심으로 화려한 선전을 전개, 그녀를 세계적인 섹스 심벌로 만들었다.

이후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 <돌아오지 않는 강>, <7년만의 외출[5]>, <버스정류장>, <왕자와 무희>, <뜨거운 것이 좋아>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6.25 전쟁한국주한미군 부대를 방문한 마릴린 먼로

금발백치미인 컨셉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실제로는 똑똑했다고 한다. 다만, 사람들이 자신의 백치미적인 모습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공적인 자리에서는 백치미 "연기"를 했다고 한다. 게다가 먼로의 위탁 부모들 중 한 가정이 흑인 지역을 출입하는 집배원이었기에 자연스럽게 흑인들과 어울렸던 먼로는[6] 영화계 데뷔 후에도 흑인 아이들과 한 컵에 담긴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먹는 모습을 보이고[7] 양부모에게 성추행 당한 과거를 고백하며 여성 운동에도 많이 관심을 가지는 등 '모든 인간은 타고난 인종과 성별에 관계없이 평등하다'는 당대 사회에서 상당히 진보적인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마릴린 먼로가 <율리시스>를 읽다>라는 유명한 사진에는 그녀가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인 율리시스를 읽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다. 진짜로 읽었는지 궁금했던 한 영문과 교수가 기자에게 문의한 결과 진짜였다고... 물론 이 책을 읽는 것이 똑똑함의 척도가 될 수는 없지만, 영미문학계에서 이 책이 지니고 있는 권위와 책이 가진 괴랄한 난이도를 생각하면 이 책을 완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집념과 교양은 대단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마릴린 먼로는 평생 백치미 컨셉에서 벗어나 진정한 연기력을 키우고 싶어했다고 한다.[8] 실제로 로렌스 올리비에 또한 먼로가 자신이 이제껏 공연한 여배우들과 비교해서도 전혀 뒤지지 않는 재능과 열정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원래 이 영화는 로렌스 올리비에와 비비안 리 부부를 주연으로 하려 했지만, 막판에 나이든 비비안 대신 상대적으로 어린 먼로에게 기회가 돌아간 것. 먼로의 매력에 위기감을 느낀 비비안 리가 영화 촬영 기간 내내 현장에 머물면서 감시를 했지만, 결국에는 비비안 리마저 먼로의 인품과 지적 매력, 유머 감각에 감탄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멍청한 금발 미녀"라고만 기억하고 있다. 그녀가 똑똑하면 안 된다고 믿고 싶었던 기자들은 먼로가 "도스토예프스키죄와 벌의 역할을 맡아 보고 싶습니다."라고 하자 한다는 질문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스펠링은 아냐?"였다고.

먼로가 생전에 이러한 이미지로 고착된 것은 고아로 자란 데다가 불행한 결혼 생활로 그녀가 평생 가지고 있던 정서 불안과 두려움 및 약물 중독에서도 기인했는데 <뜨거운 것이 좋아>를 촬영할 때는 서랍장을 열면서 "버번 위스키 어디 있어요?"하는 단순한 대사를 무려 59번이나 NG를 내서, 결국 서랍 안에 대사를 적어 놓았지만 어느 서랍에 컨닝 페이퍼를 넣었는지 몰라서 모든 서랍에 넣은 후에야 대사를 말했고[9] 먼로의 마지막 완성작 <The Misfits>에서는 번번히 촬영장에서 지각을 해서, 클라크 게이블과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불쾌해했다고 한다.

애정 결핍과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무시하고 몸뚱이로만 보던 영화계의 시선 때문인지, 자신을 알아주고 이해해주려던 사람들에게는 아주 친절했다고 한다.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그 당시에도 유색인 팬들이나 유색인 국가 방문 시에도 예의 바른 태도로 좋은 말을 들었다.

심지어 당시 후진국 중에서도 후진국이던 한국에서도 잘했다고 한다. 아직도 한국 방문 시 한국인 팬이 보여주는 자신에 대한 신문 기사를 즐겁게 보는 먼로의 사진이 남아 있다. 한국어를 모르니 기사 내용은 당연히 몰랐겠지만 흐릿하게나마 보였을 신문 속 사진을 보고 내용을 짐작은 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먼로 방문 환영 현장에서 한국 영화인 대표로 나선 최은희[10] 팔짱 끼고 추운데서 벌벌 떠는 먼로의 사진이 남아 있다.

3. 결혼이혼

첫 결혼은 1942년, 16세 때 항공사 정비공으로 일하던 짐 도허티와 치렀다. 이 결혼은 당시 먼로의 위탁 부모가 다른 주로 이사를 가야 하는데 먼로를 데려가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일어난 일이었다. 한마디로 차마 아직 미성년인 여자아이를 내버려 두고 가기가 미안해서 이웃의 청년과 급하게 짝을 맺어 준 것. 짐의 부모, 특히 어머니가 먼로가 성실하고 정숙한 처자라고 환영을 하며 결혼을 빨리 치루도록 종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4년 만에 먼로가 모델 일을 하는 문제로 헤어졌다. 훗날 짐 도허티는 "여전히 먼로를 사랑합니다만, 먼로에게 빠진 것은 아니에요"라는 말을 남겼다.

이후, 먼로는 전설적인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와 두 번째 결혼을 했으나 결혼 274일 만에 이혼했다. 디마지오는 이미 전성기가 끝난 상태였고 먼로는 한창 절정의 인기를 누릴 때였는데 이것이 한 때 야구선수로서 큰 영광을 누리던 디마지오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유명한 일화로 먼로가 많은 청중에 둘러싸여 환호를 받으면서 "이 기분을 당신은 모를 거예요"라고 하자 디마지오가 "잘 알아"라고 대답한 일이 있었다.

디마지오는 자신의 열등감에 대한 분풀이로 먼로에게 가정폭력을 저질렀고, 야구 배트까지 써서 마릴린 먼로를 상습적으로 폭행하기에 이르렀다. 어찌나 맞았는지, 이 시절의 먼로는 얼굴의 멍을 감추기 위해서 늘 짙은 화장을 해야 했다고 한다. 결국, 법원에 이혼장을 내밀면서 "그가 날 때릴 권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라고 이야기를 했다.

이들의 사이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상황에서 실시한 한국 위문 공연부터 본격적으로 틀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부상으로 쉬어야 했던 디마지오가 전지훈련 겸 팬 사인회로 먼로와 함께 일본에 갔는데, 계획에 없이 한국의 최전선 장병 위문 공연 제의가 들어왔고 먼로가 거기에 응해서 둘이 위문공연을 했다.[11] 이 위문 공연을 본 후부터 디마지오는 먼로를 계속해서 닦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영화 7년만의 외출 촬영 현장에 따라간 디마지오가 먼로가 환풍기 씬을 찍는 것을 보고 먼로에게 화를 내서 둘이 큰 소리로 다투는 모습이 알려지기도 했다.[12]

조 디마지오는 마릴린 먼로 사후 매주 3번씩 먼로의 무덤에 꽃을 바치며 그녀를 그리워했다. 유언 중에 "이제 먼로를 다시 만날 수 있겠군."이라는 말도 유명하다. 또한, 케네디 가문의 형, 동생과 먼로의 스캔들을 사실이라고 믿어서 평생 케네디 가문을 증오했고, 케네디 대통령과 악수도 거절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지켜줬어야 하는 건데 그러지 못했다고 평생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물론, 아무리 시대를 감안한다고 쳐도 그가 저지른 가정 폭력이 완전히 정당화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조 디마지오의 친아들마저도 훗날 이에 대해 증언하며 아버지를 비난했을 정도였다.

이후 먼로는 극작가 아서 밀러와 3번째 결혼을 한다. 아서 밀러는 '세일즈맨의 죽음'을 쓴 희곡 작가였으니, 말 그대로 당대 최고의 지성과 당대 최고의 육체의 만남으로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 결혼도 곧 실패로 끝난다. 밀러가 매카시즘에 휘말려서 고생한 것이 이혼 사유 중 하나다. 사족으로 밀러가 매카시즘에 휘말렸을 때 의원 한 명에게 '당신의 아내인 먼로와 사진을 찍게 해주면 당신을 사면해주겠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 밀러는 단호하게 거절했다고. 그녀가 죽은 뒤에 밀러는 '전락 이후(After the Fall)'라는 작품을 발표하고 여기서 그녀를 끝까지 도와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죄책감을 드러내었다.[공연영상]

밀러와 이혼 후 촬영 중에 대본을 못 읽을 정도로 각성제 및 음주를 하여 정신이 망가진 먼로는 이런 저런 추문에 휩싸였다. 결국, 영화 촬영을 고의로 펑크내고 존 케네디 대통령 생일잔치에 참가해서 노래를 부르는 추문을 일으켜서 바로 영화 촬영장에서 해고되었고 이후 은둔 생활을 하였다. 80년대 후반 발견된 미공개 사진이나 디마지오 아들의 회고에 의하면 은둔생활 동안 약물을 끊고 재기의 노력을 했다고 한다. 케네디 대통령 생일 잔치에서 먼로는 속옷도 입지 않고 꽉 끼는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서 "Thank You Mr. President"라는 자작곡을 불렀는데 좌중이 그 매력에 경악했다고 한다. 케네디는 그 많은 기자들이 있는 와중에 먼로와 마지막 만남을 가졌다.

당시 무대 뒤에 서 있던 케네디 대통령의 경호원은 케네디 암살 50주년을 기념해서 한 인터뷰에서 "내 기억에 남은 것은 그 여자의 엉덩이와 고혹적인 목소리 뿐이었어. 그리고 그 때의 내 나이에는 그 정도로 충분했지."라는 말을 남겼다. 그때 기자 하나가 달려들어 사진을 찍어 댔는데 미국 정부에 의해 압수되었고 그중 일부만 공개를 허락 받았다.

한편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는 마릴린과 존 케네디 대통령의 사이를 눈치채고 있었고, 남편의 생일 파티에 마릴린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격노하여 "당신 혼자 가세요."라고 쏘아붙이고는 말을 타러 갔다. 그리고 얼마 후에 마릴린이 죽었다는 소릴 듣고 매우 기뻐했고 남편과의 사이도 다시 상당히 진전되었다고 한다. 이때 입었던 드레스는 1999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대략 14억에 팔렸으며, 2016년 11월 줄리어스 옥션 경매에 다시 부쳐져 이번에는 대략 20~30억 선에서 낙찰되었다. 그에 앞서 2016년 9월 25일부터 10월 22일까지 미국 뉴저지 주 저지시티의 마나 컨템퍼러리 아트센터에, 10월 29일부터 11월 6일까지 아일랜드 뉴브리지에 있는 스타일 아이콘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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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 형제와 한자리에서 찍힌 유일한 사진

당시 꽉 끼었다는 드레스를 입은 사진

Happy Birthday Mr President

4. 사망

마릴린 먼로의 죽음을 알리는 로스엔젤레스의 한 신문지

1962년 8월 5일 가정부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의해 그녀의 방 침대에서 나체로 죽은 채 발견되었는데,[14] 공식적으로는 수면제 과다 복용에 의한 사망으로 되어 있다. 사건 현장에는 수면제 통이 널브러져 있었으며 전화기를 꼭 붙잡은 채 엎드려 있었다고. 실제로 죽기 직전으로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지인은 그때까지 그녀가 죽을 거라고 예상은 못 했다고. 이때가 향년 36세다.

존 및 로버트 케네디 형제와 친밀한 관계였던 사실로 미루어 보아 그녀의 죽음에 마피아 조직이 개입된 모살설도 끊임없이 나돌고 있다. 실제로 로버트 케네디와 정말로 친했다고 한다. 소문의 진상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조 디마지오는 이 소문을 사실로 믿었고, 평생 케네디 일가를 증오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지켜줬어야 하는 건데 그러지 못했다고 평생 죄책감에 시달렸다 한다.

다만 위에서 언급된 디마지오는 스스로 폭행 문제도 있는지라... 누가 누구를 지켜 때리지나 마 재클린 케네디가 먼로의 사망에 연루되었다는 카더라도 암암리에 퍼져 있었다.전직 CIA 요원이 자신이 먼로를 살해했다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는 해외 기사가 있었으나 그 기사가 게시된 웹사이트는 가짜 뉴스를 올리는 사이트였다. #

한국에서도 생전에 유명 배우로도 알려져 있다 보니 대한뉴스에서도 사망 소식을 전할 정도이다. #

5. 기타

나는 샤넬 넘버 5를 입고 잠들고 파이퍼 하이직 한잔으로 아침을 시작해요[15]

1953년 5월 한 인터뷰에서 남긴 말

  • 마릴린 먼로는 산소를 마시듯이 샴페인을 즐겼다고 한다. 샴페인 중 그녀가 선택한 최고의 샴페인은 바로 파이퍼 하이직이었다. 그녀는 욕조에 샴페인을 부어 호사스러운 목욕을 즐겼을 정도로 파이퍼 하이직에 남다른 애정을 가졌다고 한다.

  • 배우 나문희가 그녀의 담당 성우를 했다고 한다.
  • 입가에 있는 점이 매우 유명하다. 흔히 애교점이라 불리는 그것을 먼로점이라고 따로 불릴 정도.
  • 금발은 염색한 것이다. 노마 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머리가 갈색이다. 그보다 더 전인 아주 어렸을 적의 사진들을 보면 머리 색이 밝았다.#, 서양인의 경우 어릴 때는 머리가 금발이었다가 자라서 더티 블론드가 되거나 갈색 머리가 되는 경우가 흔하다. 동양인도 비슷하게 어릴 때는 모발이 가는 갈색 머리였다가 자라면서 짙은 색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녀의 사망 이후 부검에서도 체모가 갈색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 아담할 것 같은 이미지와 달리 키가 166cm으로 의외로 크다. 현재 기준으로는 미국 여성으로서는 평균 정도에 불과하지만 당시엔 지금보다 체격이 훨씬 작은 시대였다. 당시 대한민국 남성 평균 신장이 160cm, 미군의 평균 신장이 174cm이었으니 마릴린 먼로는 현재로 따지면 170 초반에서 중간 가량에 해당하는 키였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워낙 키가 큰 여배우들이 많았기에 비슷한 세대의 여배우 중에선 그리 큰 키는 아니다.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에 함께 출연한 제인 러셀만 해도 170cm이라 먼로가 작아보였고, 비슷한 세대의 그레이스 켈리오드리 햅번 등도 170cm 가량이었다. 잉그리드 버그만은 175cm, 살짝 더 윗세대인 캐서린 헵번은 173cm이다. 작은 체구로 유명한 비비안 리도 163cm.
  • 빈센트 반 고흐의 유작을 한국인 경호원에게 선물해주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그녀의 성미를 생각한다면 있을법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명확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소문의 수준에 머무르는 상황. 근데 이 대작품이 한국인 손에 들어온 것도 의문 진실은 저 너머에 결국 사실무근으로 결론났다. 빈센트 반 고흐 진품 한국인 소유 사건 항목 참조.
  • 한국에도 방문했었다. 관광이 아닌 한국전쟁 당시 미군 위문 차.
  • 유튜브의 그녀의 팬이 주기적으로 올리는 영상 아카이브가 있다. 희귀한 영상이 많으니 관심이 있는 위키러들은 들어가보자.
  • 영국의 록 음악가 엘튼 존과 그의 작사 파트너 버니 토핀은 1973년에 마릴런 먼로를 추모하는 노래 Candle In The Wind를 발표했다. 정확히 말해서 마릴린 먼로에게 바치는 내용이면서도 명성의 대가에 대해서 말하는,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모든 재능을 펼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다.
  • 여가수 머라이어 캐리가 마릴린 먼로의 소문난 광팬이다. 특히나 상술한 먼로의 불우한 처지와 심경에 깊이 공감하며 자신과 어느 정도 동일시하는 경향마저 보인다. 뉴욕 양키스의 데릭 지터와 염문설을 뿌린 것도 흑백혼혈이라는 유사한 인종적 배경 외에 조 디마지오의 대체자로서의 이미지를 간구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I Still Believe>뮤직 비디오 역시 먼로의 한국 위문 공연에 대한 오마쥬이다. 또 먼로 관련 기념 물품이 경매에 나올 때마다 비용을 아끼지 않고 구입하라고 평소 에이전트에게 단단히 언질해 둔다고 하는데, 이렇게 해서 손에 넣은 물건 중 하나가 생전 먼로가 소유했던 흰색 그랜드 피아노였다. 어찌나 애지중지하는지 (지금은 이혼했지만) 남편 닉 캐넌이 무심코 웃옷을 피아노 위에 걸쳐놓았을 때도 적잖이 화를 냈었다고 한다. 심지어 딸 이름조차 먼로라고 지었을 정도(..) 덧붙여 위치는 다르지만 두 사람 다 입가에 애교점이 있는 대표적 유명 인사로 손꼽히고 있다.
  • 안나 니콜 스미스가 시대적 기준으로 큰 키(마릴린 먼로 166cm, 안나 니콜 스미스 180cm)에 속하는 데다가 풍만한 외모는 물론이고 파란만장했던 인생사까지 마릴린 먼로와 겹친다는 평이 많다. 그리고 둘다 같은 잡지에서 표지모델을 했다는 것도 겹친다.
  • 인생사가 대한민국의 배우 최진실과 상당히 유사하다. 둘 다 한 시대 정점의 여배우였던 점과 야구선수(마릴린 먼로는 조 디마지오, 최진실은 조성민)와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40살을 채우지 못한 나이(마릴린 먼로는 36살, 최진실은 39살)에 사망한 것이 동일하다.
  • 영국에서 <왕자와 무희>를 찍는 과정에서, 감독인 로렌스 올리비에 밑에 조수로 일했던 콜린 클락은 자신과 먼로가 특별한 관계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경험을 책으로 2편을 써 냈는데, <The Prince, the Showgirl and Me>와 <My Week With Marilyn>이다. 전자는 드라마화되기도 했고, 후자는 2011년 동명의 이름으로 영화화되었다.[16] 먼로를 연기한 미셸 윌리엄스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와 골든 글러브 여우주연상 수상이라는 영광을 안겨주었다. 그밖에 케네스 브레너가 로렌스 올리비에로, 에디 레드메인이 콜린 클락으로 출연한다. 2015년 기준으로 이 영화 스틸컷이 에디의 네이버 인물정보 사진에 올라있다 세간에는 이 영화가 실화에 기반하여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는데, 영화 속 배경은 사실이나 둘 사이의 관계는 전적으로 콜린 클락의 주장이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믿는 건 곤란하다.
  • 미드 Quantum Leap 5기 17화 "Goodbye Norma Jean"에서, 원래 역사대로라면 죽어야 하지만 샘의 개입으로 마지막 작품이 되는 영화를 찍고 영화계에서 은퇴한다. 그 후에는 어찌되었는지 모르지만 잘 살았을지도.
  • 2011년 7월, 시카고의 번화가에 있는 파이오니어 광장에 마릴린 먼로의 환풍기 씬을 재현한 대형 동상이 설치되었다. 크기가 8m나 되는 동상이며 먼로의 얼굴 표정이나 옷, 발 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굉장히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사람들, 특히 남자들의 관심이 어디에 집중되었는지는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제작자도 그걸 알았는지 판치라를 특히 정교하게 표현하는데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게다가 주변을 울타리로 막은 것도 아니고 누구든지 자유롭게 만져볼 수 있도록 완전 개방해 놓았기 때문에, 먼로의 다리에 키스하는 시늉을 하며 사진을 찍는다든지 두 다리 사이에 서서 고개를 위로 쳐들고 사진을 찍는 등 민망한 장면을 연출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너도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하게 되었다.
그리고 설치한 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누군가 허벅지 부분에 빨간 페인트를 뿌려 놓는 등 마찬가지로 민망한 방식으로(…) 동상이 훼손되기 시작했다. 당연히 고인드립 선정성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미국 날짜로 2012년 5월 7일에 철거되었다고 한다. 논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철거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2012년 봄까지만 설치해 둘 예정이었다고 한다. 이제 시카고에 가도 더 이상 볼 수는 없게 되었지만, 사진은 검색해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고 캘리포니아로 옮겨졌었다. 2014년 6월 현재 뉴저지에 있다
  • 게게게의 키타로에도 등장하는데 2기작부터 5기작까지 등장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먼로가 요괴로 나온다(...) 더 이상한 건 피이라는 웬 물고기와 파충류 닮은요괴를 남편으로 두고 있단 점(...) 이 작품에선 빌런으로 등장한다.[17]
  • 20세기 현대 미술의 대표적인 아티스트 앤디 워홀이 그녀에게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다품종 대량 생산을 많이 풍자했고 마릴린 먼로의 사진을 단순하게 다른 색깔을 여러 번 입혀서 <마릴린 먼로> 라는 제목으로 출품했다. 깡통 캔과 더불어 그의 대표 작품 중 하나이며 원작은 당연히 수십억 대를 넘는다.
  • 노래 실력도 좋아서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의 <Diamonds Are Girls Best Friends>, <Bye Bye Baby>, <When Love Goes Wrong, Nothing Goes Right>, <뜨거운 것이 좋아>의 <I Wanna Be Loved by You>와 <Through With Love>, <Running Wild>, <나이아가라>의 <Kiss>, <돌아오지 않는 강>의 <River Of No Return>과 <Down In The Meadow> 등 그녀가 영화 속에서 부른 노래로 유명하다. 이후에도 뮤지컬로 많이 리메이크 되었다. 재즈풍이나 뮤지컬 댄스풍의 사랑스러운 가사와 매혹하는 듯한 목소리가 포인트이다.

< Diamonds are girls best friends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작 중 뮤지컬 노래로, 마돈나의 Material Girl의 뮤직비디오#등 많은 아티스트들의 모티브가 되는 장면이다. 마돈나도 먼로의 팬.< I wanna be loved by you >Cole Porter's "My Heart Belongs to Daddy" - Marilyn Monroe< When Love Goes Wrong, Nothing Goes Right >< Bye Bye Baby >< River Of No Return >< Down in the Meadow >


  1. [1] 모텐슨은 먼로의 모친의 두 번째 남편의 성으로, 먼로 자신이 가장 오래 사용한 성은 모친의 첫 남편의 성인 베이커(Baker)이다. 예명으로 사용한 먼로는 모친의 처녀일 때의 성(maiden name)이다.
  2. [2] 먼로의 모친은 두번째 남편과 혼인 중(1924~1928)일 때 먼로를 출산했으나 이들은 결혼 몇 달만에 별거했기에 먼로의 친부가 누구인지는 불명이다.
  3. [3] Radioplane이라는 회사에서 요즘으로 따지면 군사용 드론에 도장을 입히는 일을 했는데 이후 이 회사는 노드롭 그루먼에 병합된다.
  4. [4] 후일 먼로가 유명해졌을 때 이 사진이 공개돼서 파문이 일어났지만 대인배답게 솔직히 인정해서 별 일 없이 넘어갔다.
  5. [5] 그 유명한 환풍구이 나온다.
  6. [6] 미국 백인 사회 전반에서 인종차별 철폐가 떠오른 것은 60년대 들어서이다. 그전까지 흑인들의 인권 운동은 백인들의 지나친 억압에 대한 저항에 가까웠다.
  7. [7] 이게 "뭐 이 정도로..."가 아니다. 당시 남부에서는 버스 좌석에 화장실 심지어 식수대도 백인용, 비백인용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8. [8] 마릴린 먼로는 말론 브란도 등이 나온 뉴욕의 액터즈 스튜디오를 졸업했다. 그래도 클라크 게이블과 같이 촬영한 마지막 작품은 연기력만으로 승부한 작품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의 촬영이 끝난 후 두 배우 모두 사망.
  9. [9] 이때 공연한 토니 커티스는 먼로와의 키스는 히틀러와 키스하는 것 같은 느낌해 봤나 보다이라고 불평했다고 한다, 불평한 것은 아니다. 당시 제작진들이 먼로와의 키스를 즐기는 것 같았다고 놀리자 커티스가 발끈해서 장난으로 그냥 해본 말이었다. 실제로 커티스는 후에 이 발언은 정말 장난으로 말한 것이다고 여러 번 해명했다.어쨌든 말하긴 했다
  10. [10] 두 사람은 동갑내기다.
  11. [11] 일본 방문 당시 주일미군 사령관이 직접 방문해 주한미군 위문공연을 부탁했다. 이때 디마지오가 "그러고 싶지만 스케줄에 부상으로 못하겠다"고 하자 사령관 왈 '저는 디마지오 씨가 아니라 미세스 디마지오에게 말한 겁니다'
  12. [12] 참고로 이 영화가 한국에 개봉된 당시, 지하철이라는 개념도 없던 한국 관객들은, 머나먼 어딘가엔 땅 밑에서 바람이 올라오는 특이한 기후인줄 알았다고 한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종로 구간이 최초로 개통한 것이 1974년이었으니 당시 한국인들은 지하철의 지 자도 몰랐을 것이 당연하다.
  13. [공연영상] 13.1 https://www.youtube.com/watch?v=uSkZNAHBwKs 당시 먼로의 상태와 밀러와의 관계가 어땠는지 보여주는 부분이다.
  14. [14] 원래 나체 수면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잘 때 무엇을 입고 자느냐'는 질문에 "샤넬 No.5"라고 대답한 것이 대표적인데, 아무 것도 입지 않고 향수만 뿌린 채 잔다는 걸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 '옷을 입다'와 '향수를 뿌리다'를 영어로는 모두 wear라고 표현하니까 일종의 언어유희이기도 하다. 이 일화를 샤넬이 광고로 써먹기도 했다.
  15. [15] “I go to bed every night with Chanel No.5 behind my ears and wake up every morning with a glass of Piper-Heidsieck.”
  16. [16] 한국 개봉명은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이다. 엠마 왓슨이 조연인 분장실 스텝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17. [17] 2기작 (에피소드 23화 '환상의 기차') 에선 잘 묘사가 안 나오지만 키타로를 납치해 피이에게 넘겼다. 2기작의 먼로 모습은 먼로랑 똑같지는 않아 다행이지만.. 3기작( 에피소드 61화 '환상의 기차' )에선 아예 판박이다 먼로의 하얀 드레스와 환풍구 씬이 묘사된 걸 보면... 심지어 키타로의 리모콘 게다에 얼굴을 맞기까지 했으며 기차 안의 용암에 빠지며 피이랑 같이 버려지기까지 했다.(...) 4기작(에피소드 9화 '폭렬 기차 키타로 기관사!')의 먼로는 다른 먼로들의 그 특유한 머리 스타일이 아닌 긴 생머리의 모습으로 등장, 인간들을 흡혈귀로 만들고 키타로마저 흡혈귀로 만든다..뭐..후반엔 피이와 같이 흙 속에 묻히는 굴욕을 당했고(...), 5기작(43화 ' 요괴 미스테리 환상 열차' )엔 인간의 생기를 빨아들여 빨아들인 인간을 밀랍 인형으로 만들고 피이와 같이 젊음을 유지한다는 설정이 붙어 있다, 다른 시리즈에 비해 유일하게 굴욕을 당하지 않는 작품(?)이기도..
  18. [18] 아나 데 아르마스도 마릴린 먼로와 닮은 꼴로 자주 언급되며 인스타그램에 그녀에 대한 포스팅을 자주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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