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셜 플랜

Marshall Plan

1. 개요
2. 지원 금액
3. 평가

마셜 플랜의 1번째 장.

"어떠한 어려움을 겪더라도 우리는 함께 해야만 한다!"[1][2][3] 방향은 미국이 정할거지만

1. 개요

정식 명칭은 유럽 부흥 계획(European Recovery Program, ERP)으로, 일반적으로 마셜 플랜으로 언급된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의 황폐화된 동맹국을[4] 위해 미국이 계획한 재건, 원조 기획이다. 미국의 국무 장관 조지 C. 마셜이 제창했기 때문에 마셜 플랜 또는 마셜 계획이라고도 불리며, 공산권의 확산을 철저히 막는 것이 목적이었다.[5]

마셜 플랜은 1947년 6월에 있었던 구-미 회의에서 조직되었다. 미국은 소련과 그 동맹국에게도 '정치적 개혁과 외부 감독을 받는 조건하에' 동일한 원조 계획을 제시했었다. 사실 소련이 이 계획의 이점을 취할 것을 우려해 미국은 일부러 받아들이기 곤란한 조건을 제시했었다. 물론 소련은 제안을 거절했다.[6]

미국은 경제 협력 개발 기구에 가입한 유럽 국가들에게 유럽 부흥 계획에 따라 1947년 7월부터 4년(회계 연도 기준)간 총 130억 달러에 해당되는 경제적·기술적 지원을 해주었다. 이를 20세기 말 가치로 환산하면 약 1,300억 달러(한국 돈으로 약 100조!)에 해당된다. 역시 미국 흔한 돈지랄! 당연히 모든 서유럽 국가들은 저 놈의 몸에 생기가 돌아온다를 찍게 되면서 폭풍 재성장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대다수의 서유럽 국가들이 미국을 매우 좋아하며 냉전 기간 내에 굳건하게 미국 편에 섰고, 프랑스 같은 이단아조차도 결국엔 미국 편에 남아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또한 독일과 이탈리아 등 구 추축국도 적절히 지원하여 두 번 다시 제1차 세계대전 이후처럼 다른 마음을 먹는 불상사가 없도록 만들었다. 즉, 21세기 현재 패권국으로서의 미국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건이다.

원조가 끝난 후 독일을 제외한 모든 국가의 경제력은 전쟁 전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단 서독은 전쟁 전보다 발전했다.) 그리고 그 후 20년 간 서유럽 국가들은 유례없는 성장과 번영을 누렸다. 그리고 계획을 입안한 마셜은 이에 따른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또한 마셜 플랜은 유럽 내 각국의 관세 거래 장벽을 철폐하고 경제 수준을 맞추기 위해 설치한 기구 등을 통해 EU 등으로 대표되는 유럽 통합화의 첫번째 계기가 되었다. 본래 이것들은 미국의 경영 방식을 체계적으로 도입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한편, 소련은 마셜 플랜에 대항하기 위해 1947년에 동구권 국가들의 경제 협력 강화 계획인 몰로토프 플랜을 입안하였고, 1949년 1월부터 이것이 실행되었으며 경제상호원조회의, 일명 코메콘이라고 불리는 경제 협력 기구를 설립했다.

비슷한 시기 미국은 대한민국에도 마셜 플랜과 유사한 원조정책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이쪽도 무상원조만 44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였다.

2. 지원 금액

마셜 플랜의 지원을 받은 국가들. 적색 막대기는 지원 금액의 상대적 정도를 나타낸다. 잘 보면 애초에 2차대전에 참전하지 않았던 국가들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현재 유럽의 모든 선진국[7] 중에서 스페인핀란드를 제외하고는 마셜 플랜을 통한 원조를 받지 않은 나라는 없다.

3. 평가

20세기 말의 미국 역사가들은 마셜 플랜의 근본적 동기와 전체적 효율성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다. 마셜 플랜을 통한 이익들은 사실 시장이 경제 성장을 통해 안정될 수 있게 한 신무간섭주의 정책에 의한 이익들이었을 뿐이라는 주장. 또한 이 계획이 미국 국민들의 소중한 세금을 가지고 함부로 장난질하며 그렇게 자국에는 이익이 없고 타국들에게만 이익을 부여하며 미국의 경제에 신경을 안 쓰고 외국의 추락한 경제를 해결한 선례를 만들었다고 비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소련공산권 확산을 막고 미국의 세력권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유럽에 미국의 국력을 보여줘야 했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냉전 시대의 유럽은 미국과 소련이란 두 초강대국이 모두 신경쓰던 지역이었고, 유럽을 부흥시켜 미국의 동맹과 시장을 확보하려는 취지는 외교적인 관점에선 충분히 필요했다. 미국이 한국전쟁 당시 남한을 지원한 동기와 어찌보면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소련의 대서양 진출을 저지할 수 있었으며, 나아가 NATO를 통해 소련에 비해 압도적인 전력을 한동안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혹 미소간에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1차 전선은 유럽이니 본토인 미국에 바로 직접적인 피해가 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심리적 방파제의 역할을 해주었다. 또한 최전선에 배치된 그리스터키를 미국의 우방국으로 만들었는데, 그리스 내전으로 인해 공산주의에 염증을 느끼던 그리스와 보스포러스 해협 통행과 카르스 요구로 소련의 큰 압력을 받던 터키를 우방으로 만들며 소련의 지중해의 영향력까지 차단했다는 측면에서 자유진영 국가들의 통상과 무역 시스템을 온전히 보호할 수 있었던 것도 좋은 점으로 작용했다. 돈이 좀 많이 든 게 옥의 티지만.

이 마셜 플랜으로 유럽을 잡아먹으려던 소련의 계획이 저지되었다. 다만 미국이 아시아는 그만큼 신경쓰지 않아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의 패배와 6.25 전쟁 등이 일어나기도 했다. 마셜 플랜은 당시 국무장관 딘 애치슨의 머리에서 나왔는데, 유럽에 비해 아시아는 무관심했고, 전혀 신경쓰지 않아 중화민국이 타이완으로 쫓겨나고 대륙이 공산화되는 것을 방치했고(중국의 상실, Loss of China), 한국 전쟁이 일어난 것에 책임이 있다고 마셜과 애치슨은 미국의 보수파에게 강력히 비난받았다.

마셜 플랜을 받던 네덜란드는 이 금액들을 미국의 허락 없이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의 전쟁 비용으로 멋대로 사용하여 미국과 소련을 자극하였고, 결국 전쟁은 이겼지만 독립을 시켜줘야 하는 아이러니한 일을 겪게 된다. 프랑스와 달리 미국이 네덜란드를 압박한 것은 베트남과 달리 인도네시아는 지리적 위치상 소련이 공산주의를 퍼트리기도 쉽지 않고, 수카르노가 소련의 지원까지 받겠다고 미국을 협박했기 때문이다. 다만 네덜란드가 프랑스와 달리 독립전쟁에서 우위를 점한 것을 보면 전자의 이유가 더 큰 것으로 보인다.[10]

근래 구소련 기밀문서들이 해제되면서 마셜 플랜은 냉전의 시작점으로 역사계에서 재평가받게 되었다. 위의 전통주의적 시각과는 달리 그 이전까지 스탈린에게는 자유주의 진영과 대결할 의지가 없었다는 것이 명백히 밝혀졌기 때문이다. 물론 폐허가 된 유럽을 방치했었다면 자생적으로 공산주의가 자리를 잡을 가능성도 있었고 소련 공산당도 이를 기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기밀문서들에 의하면 소련 지도부는 2차 대전을 계기로 자국의 안전에만 관심이 쏠려서 2차 대전 종전시 획득한 세력권을 유지하고 서유럽을 힘 빠진 상태로 방임하는 선에서 미국과 유화적인 공존관계를 맺으려고 한 수 접는 태도를 견지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총본산답게 미국은 공산주의 세력이 동유럽에서 득세하는 것 자체를 위협으로 규정하여 이러한 공존을 거부했고 결국 소련의 반발을 무릅쓰고 서유럽에 마셜 플랜을 강행하여 냉전을 시작시켰다. 한편, 이렇게 마셜 플랜을 기점으로 시작된 냉전에 소련이 정면으로 대응한 것이 소련 붕괴의 주춧돌이 되었다는 시각도 있다. 다만 이런 시각에서는 기존 역사적 해석이 틀린 것 같지만 소련 역시 마찬가지로 적극적으로 완충지대를 만들기 위해 동유럽 공산화를 진행했고 초기에는 한국전쟁 개전에 소극적이었으나 그럼에도 이를 지원하며 아시아에도 공산화를 진행시키는 등의 모습을 봤을 때 냉전은 지향하는 가치가 너무 다른 두 세력 간에 필연적으로 발생한 갈등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1. [1] 마셜 플랜 당시 미국이 선전을 위해 제작한 포스터. 잘 보면 스페인의 국기가 없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건 다 프랑코 독재 정권 때문에 왕따를 당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또 다른 독재자가 지배하고 있는 이웃 나라 국기는 있네(...) 그래도 거기는 자국 국민들과 미국 정부에 민폐는 별로 안 끼쳤잖아?
  2. [2] 핀란드의 국기 또한 빠져 있다. 핀란드가 정치적 중립을 선언하여 경제적 지원을 거부하였기에 마셜 플랜에서 제외되었는데, 그럼에도 겨울전쟁등으로 인한 소련 측과의 전쟁 배상금은 5년에 걸쳐서 갚아냈다고 한다. 근성의 승리
  3. [3] 룩셈부르크 국기가 빠진 대신 트리에스테 자유 지구의 국기가 서독 국기와 이탈리아 국기 사이에 들어가있다.
  4. [4] 물론 아일랜드나 스웨덴, 스위스, 터키, 아이슬란드, 포르투갈과 같이 딱히 황폐화되지 않은 곳에도 자금을 지원했다.
  5. [5] 소련"미친! 아예 서유럽을 통째로 그냥 사시지?"라고 반발했으나, 돈을 주겠다는 데 그걸 막을 수는 없어서 멍하니 서유럽이 발전되는 걸 지켜봐야 했다.
  6. [6] 사실 소련 역시 받을 명분은 충분했다. 독일과의 전쟁을 자국의 영토에서 치렀고, 그로 인해 2,000만이란 사상자를 입었으니 나름대로 자격은 있었던 것이다.
  7. [7] 동유럽 신흥선진국 제외.
  8. [8] 원래 계획은 독일 전역을 포함했지만 소련 점유 지역에는 제공되지 않았다.
  9. [9] 이후 이탈리아유고슬라비아에 분리 합병됨.
  10. [10] 결국 수카르노는 친소련 자세를 한동안 유지했고 인도네시아 공산당도 수백만의 당원과 함께 융성했으나, 수하르토가 집권해 민간인 공산당원 가리지 않고 대학살을 저지르고 나서야 사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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