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毛澤東思想, 'Maoism'

1. 개요
2. 특징
2.1. 농촌 중심
2.2. 당군 중심
2.3. 반엘리트주의
3. 평가
4. 각국의 마오이즘
5. 참고 자료

1. 개요

마오쩌둥을 따르는 공산주의의 분파. 따라서 모택동주의, 마오쩌둥주의라고도 한다. 《마오쩌둥 어록 선집》에 이 사상의 핵심이 담겨 있다.[1]

2. 특징

마오이즘은 중국 공산당의 혁명 전략에서 모델을 따왔다. 주로 도시 노동자, 혁명가들로 이루어진 정당(政黨) 중심 혁명을 주장했던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와는 달리 농촌농민을 혁명의 중심으로 삼았다. 마오이즘의 대표적 경향을 따진다면 바로 이 부분이다.

1920년대 혁명 투쟁 과정에서 형성되어 정강산 투쟁, 중화소비에트공화국, 대장정, 국공 내전,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 등을 거치면서 완성되었다.

2.1. 농촌 중심

얼핏 보면 그냥 노동자를 농민으로 바꾼 것 뿐 아니냐 싶지만, 사실 서구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농민이 본질적으로 소부르주아지적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혁명의 근간이 되기 어렵다고 본다. 근대 이후의 공업이 생산하는 제품들은 기존의 수공업품들에 비해 더 많은 양과 더 많은 작업양을 요구했기에 대규모 공장을 통한 협업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데 비해 농업은 개인이나 가족단위로 이루어질 수 있고, 이 때문에 농민은 자신과 가족이 경작할 땅을 나눠주는 토지개혁은 지지하지만 그 이상의 사회적 소유관계 재설정은 원하지 않고, 특히 농토를 공유화하려는 시도는 자기 땅을 빼앗아가려는 것으로 받아들여서 공장이나 기업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본가들과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 이유.[2] 이는 19세기 당시 선거에서도 프랑스를 비롯한 주요국가에서는 농촌이 보수적이고 도시가 진보적인 성향을 띄는 선거결과가 나왔던것에 기인한 것으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이러한 선거결과나 농촌지역에서의 왕당파나 가톨릭 등의 세력이 큰 세를 얻는 현상을 보고 분석하면서 나온 결론이다.[3]

그런데, 어째 집단농장에 더 환장하는 것은 마오주의다...(!?) 농민과 농업을 중시한 만큼 대상을 공산화 하는 것에 더 철저한 관심을 기울였다는 거지만.... 마르크스-레닌주의 정치세력들은 공업 생산기반의 "공산화"에 중점을 두었고, 농촌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것에 비해 마오주의 정치세력들은 농업 생산기반의 공산화를 가장 중시했던 것. 자영농업을 선호하는 농민들을 배려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때문에 당시 소작농들의 경우 지주의 땅을 몰수하여 소작농들에게 분배하는 정책에 환호를 내지르다가 더 나가서 집단농장을 하자는 정책이 나오자 당황한 경우도 많다.[4]

이 점이 유럽과는 달리 산업 발전이 늦어지고 도시화가 진행되지 않았던 아시아, 아프리카제3세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졌다. 변변히 근대적인 거대 도시라고 할 만한 지역이 없기 때문.

단, 마오주의가 집단농장에 강한 애착을 보이는 것이 꼭 산업화 기반이 늦게 형성된 중국의 역사적 상황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고 이론적인 이유도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본격적인 혁명 이전의 마르크스주의가 이론적으로 “잉여생산물이 발생하는 사회에서 사유재산의 개념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연구했다면 러시아 혁명이 벌어지고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공산주의 이론가들 사이에서도 현실세계에서 사유재산이 없어지기 위해서는 잉여생산물 자체가 없어지는 거 외에 방법이 없다는 사고방식이 퍼지기 시작했고 스탈린주의와 마오주의는 양측 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받아들인 형태로 봐야 한다.

그나마도 유럽 각국에게 적성국으로 인식된 소련의 경우는 적어도 국방력을 위한 잉여생산물의 필요성은 인정하는 입장이었으나[5] 비슷한 종류의 지정학적 위협이 적었던 중국의 경우는 모든 형태의 잉여생산물에 부정적이었고 이로 인해 스탈린주의의 5개년 계획마저도 비판하게 된다. 결국 잉여생산물의 존재에 대해 극단적으로 비판적인 마오주의의 입장에서 집단농장에 대한 긍정은 필연적인 수순이었던 것이다.

2.2. 당군 중심

정당이나 정치조직보다 게릴라 중심의 당군을 더 중요시하는 특징 역시 이런 농민 중심 혁명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복잡한 도시 내에서 노동조합, 정치조직이나 지하조직, 언론등을 기반으로 하여 세력을 넓힌 서구 마르크스주의에 비해 마오주의자들은 인구밀도가 낮은 농촌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고, 다수의 농민을 세력기반에 포섭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넓은 활동영역이 필요했다. 이 점에서, 게릴라 및 군대의 형태로 광범위한 영역을 차지할 필요가 있었던 것.

즉, 서구 마르크스주의 정파들의 목표가 정치적인 영향력을 확장하여 정부를 장악하는 것이었던 반면 마오주의자들의 목표는 군사력을 통하여 영역을 직접 지배함으로써 정부를 만드는 것에 가까웠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도 기존의 정부를 그대로 접수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고, 자신들의 정부가 기존의 정부를 '대체'해야 한다고 생각했던데 비해 마오주의자들의 경우는 기존 정부로부터 영역을 빼앗아서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것에 가까웠다

이런 특징은 중국사에서 연이어 벌어졌던 태평천국 운동같은 농민반란과 밀접적인 관계가 있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농민반란의 전통이 아주 강한 나라이고, 특히 한족 왕조로써 중국사와 중국의 정체성 확립에 큰 영향을 남긴 한나라명나라의 경우 초대 황제가 농민 반란 주동자였던(즉, 농민이 주축이 된 반란으로 성립된) 왕조인 점이나 한/명의 전대 왕조였던 진/원이나 심지어 한나라 자체도 농민반란으로 쇠약해져서 멸망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중국의 역사에서는 농민 반란의 영향력이 아주 강했고, 마오이즘 역시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영향 이상으로 중국의 농민반란 전통에 기반한 부분이 크다는 것. 게다가 오랜 역사동안 세계 최강대국이자 최선진국 중 하나였던 중국이 근대 이후 세계의 환자로 전락하면서,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여 중국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게 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서구의 사상적 요소를 흡수하여 기반으로 삼은 태평천국 운동과 마오이즘 사이에 공통적인 특징이 상당하다는 점 역시 알 수 있다.

2.3. 반엘리트주의

마오주의는 스탈린주의와 달리 반엘리트주의이다. 스탈린주의 (또는 레닌주의)는 전위당을 이끌어가는 소수의 직업적 혁명가의 역할을 중요시했고,[6] 이 점은 나중에 러시아에서 공산체제 성립후에 특유의 관료주의로 변화하지만, 마오주의는 이런 소수의 엘리트주의보다는 대중의 집단적 행동이나 각성을 중시한다. 그리하여 마오쩌둥의 군사사상은 군에서도 장교라는 엘리트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래 계급이 없다가 국방부장 펑더화이의 주도로 도입되었으나, 이렇게 어렵게 도입된 계급제도는 후에 다시 실권을 찾은 마오쩌둥이 다시 폐지했다. 마오주의에서 이런 반엘리트주의가 극단적으로 강조되면서 반지성주의로까지 변질돼 벌어진 참극이 바로 문화대혁명이다.

3. 평가

한국에 흔히 스탈린이 정립한 마르크스-레닌주의세계 공산주의 운동을 지배한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지만, 사실 고전적인 스탈린식 마르크스-레닌주의로 혁명을 이룬 예는 러시아밖에 없다. 동유럽과 북한은 혁명이라기보다는 소련군 진주로 공산화된 것이고, 실제로 냉전 이후 제3세계의 공산 반군들은 대부분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마오주의를 이용해 혁명 운동을 벌였다.[7][8]

세계적으로 보면 의외로 이 사상을 표방하는 반군이 많다. 이미 쿠바베트남은 마오쩌둥이 정립한 게릴라 전술로 공산화된 대표적 나라고, 베트남 공산당은 중월전쟁 직전까지 마오주의를 호찌민주의와 함께 당의 정강으로 삼았다. 중국과의 사이가 악화되자 마오주의는 삭제(…). 마찬가지로 체 게바라도 마오쩌둥에 심취해 있었고, 이 때문에 소련은 쿠바를 벗어나 제3세계에서 혁명 운동을 하는 게바라에게 매우 냉담하게 대했다. 심지어 체 게바라의 포코 이론 자체가 마오주의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이어 캄보디아, 라오스도 마찬가지다. 네팔의 왕정 폐지에도 마오주의자들이 큰 역할을 했다. 남미와 아프리카에서도 마오주의를 표방하는 반군이나 혁명 조직이 상당수 있었다.

특히 스탈린주의 동구권이 붕괴한 후에는 유러코뮤니즘, 트로츠키주의와 함께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삼대 계파를 이루고 있다. 대체로 공업화 정도가 높은 국가에서는 유러코뮤니즘과 트로츠키주의[9], 낮은 국가에서는 마오주의가 영향력이 큰 편. 이는 빈부 격차가 크며, 농업 비중이 높은 국가들에서는 아무래도 마오쩌둥 당시에 중국화한 마오주의가 실정상 맞을 수밖에 없기 때문.

예를 들어 마오주의자들이 무척이나 혐오하는 화폐 경제 체제를 보더라도 사실 전 세계적으로 은행 통장이든, 집에 숨겨둔 비상금이든 양수의 화폐 자산을 가진 사람의 비율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또 더욱 놀라운 사실은 자산보다 빚이 더 많은 사람, 즉 음수의 화폐 자산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은행을 중심으로 한 화폐 유통 체계에 편입된 사람의 비율조차 40%가 채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10][출처필요] 그 외의 사람들은 설령 화폐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단순히 노동의 대가로 받아 다른 상품과 교환하는 수단으로 이용할 뿐, 축적의 수단으로 사용할 여지는 갖지 못하고 있다. 이런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설령 화폐가 당장 폐지된다고 하더라도 당장 통장에 돈을 넣어놓은 사람들만큼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동구권 붕괴 이후에도 여기저기에서 마오주의를 표방하는 반군들이 사라지지는 않는 데에는 이런 배경도 있는 것.

그런고로 21세기에 마오이즘을 표방한 단체는 대부분 저개발 국가나 산간 오지(...)에 있다는 태생적 한계가 있기도 하다. 마오이즘을 넘기 위해 도시 게릴라 전술이 잠시 개발된 적이 있으나, 이것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4. 각국의 마오이즘

의외로 흔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우선 종교가 아닌 이념을 따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종교, 이념, 사회적 집단에 속한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쉽고 사고방식이 유연하기에 그만큼 게릴라전을 잘 한다. 현지 주민과의 관계도 종교에 기반을 둔 자들보다 양호한 편이다. 특히 카스트 제도 등으로 고통받는 사회일 경우 마오이즘은 미친 듯이 퍼져나가게 된다.

정작 현재 중국에서는 박해를 받고 있는 이념이다.[12] 명문대인 북경대 소속 학생이 마오이즘을 보급하려다 체포되기도 했다.기사. 마오쩌둥 체제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중국 마오쩌둥주의 공산당도 있으나 본국으로부터 금지당했다.

제3세계 각국에서 마오이즘을 추종하는 혁명조직이 형성되었으며 중국은 이러한 세력들을 전략적으로 지원하였는데, 중소 분쟁의 영향으로 마오이즘을 따르는 공산당들은 소련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공산당들과 대립하는 일이 많았다.

팔레스타인의 무장단체 중 팔레스타인 인민 해방 전선은 마오이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후에 마오이즘을 표방하는 팔레스타인 해방 민주 전선이 갈려져 나갔다. 두 단체 모두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에 참여하고 있다.

네팔에서는 게릴라전을 통해 왕정을 전복하는데 1등공신이었다. 2008년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정이 수립되자 2008년 선거로 집권했다. 하지만 당내 내분으로 2013년 선거에서 레닌주의 공산당에 의석 반수를 잃으며 참패했다. 그래도 2018년 현재 유력정당이며, 현재 반다리 대통령도 전에 이 정당 소속이었다. (현재는 무소속) 자세한 건 네팔 문서를 참고할 것.

그 밖에도 인도 동부 차티스가르 주 및 웨스트벵골 주 등 여러 주에도 마오이즘 반군 낙살라이트(Naxalite)[13]가 있는데 이들도 장난이 아니다. 뻑하면 경찰이 전투하다가 몇 명이 전사했다는 기사가 날 정도. 2009년만 해도 이들 테러에 민, 경 합쳐 인도에서 906명이 죽었다. 참고로 파키스탄과 으르렁거리고 미국이나 유럽도 끼어들지 못하는 화약고인 잠무 카슈미르에서 그 해 사망자가 민, 군 합쳐서 132명이라는 걸 생각하면 카슈미르보다 더한 내전급이다. 2011년 통계로 20년동안 1만 6천명이 넘게 죽은 걸로 나올 정도이며 정부에서는 아예 이스라엘에서 UAV를 구입해 반군들을 감시하고 있다.

인도 공산당 CPI/CPM 합법투쟁파와도 사이가 좋지 않다. 의회민주주의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이들이 낙살라이트에게 공격당하기도 하고 역으로 공격하기도 한다.

이들이 활동하는 차티스가르 주에 상당수 사는 소수민족들은 인도에서 가장 가난하며 이들의 재산인 땅도 억지로 빼앗기는 판국이라 낙살라이트들 지지가 장난아니다. 게다가 이 곳은 석탄이나 광물자원, 심지어 다이아몬드까지 있는 곳이기에 바로 낙살라이트가 군비를 얻을 겸 활동을 자리잡은 곳이다. 물론 인도 정부로서도 이 막대한 자원을 그냥 놔둘리 없지만, 힘없는 이들 땅을 헐값으로 빼앗아가는 게 문제. 2014년 인도 진보계열 야당 의원들이 낙살라이트를 스스로 만드는 게 정부라며 부조리한 보상 정책을 전면 수정할 것을 결의해 이 지역 사람들이 기뻐하나 했지만 막대한 로비를 휘두르는 대기업들, 현지 부유층의 반발에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결의안을 머뭇거리고 있고 낙살라이트는 테러로 저항하고 있다. 그래도 2007년과 2013년 낙살라이트 활동 권역과 테러 활동이 줄어들긴 했다. 위키백과 낙살라이트 항목

인도 측 고민이라면 저 광물자원 판매수익이 꽤 좋아서 나날이 낙살라이트가 무장 수준이 높아지는 점이다. 이젠 IED까지 마구 만들어 인도군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다. 그나마 카스트 문제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없애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에 심하게 망가진 편은 아니다.

또 페루에서도 마오이스트 반군이 활동하던 때가 있었고, 필리핀에서도 NPA라는 이름으로 마오이스트 반군이 활동하고 있다.

미국에도 60년대에 마오이즘에 영향을 받아 흑인 급진주의 무장단체가 출현하였다. 흑표당 항목 참조.

5. 참고 자료

  • 마오쩌둥 어록 - 정식 이름은 "마오 주석 어록"이다. 국제적으로 성경과 더불어 가장 많이 팔린 책. (...) 해당 문서 참고.
  • 중국 여인(La Chinoise) - 장 뤽 고다르의 영화. 지금 보면 다소 아스트랄한 작품이다. #
  • 신민주주의


  1. [1] 마오쩌둥 어록과 선집을 혼동하는데, 이 둘은 전혀 다르다. 어록은 마오쩌둥의 여러 저작과 연설문에서 간지나는 구절만을 뽑아놓은 일종의 잠언집에 불과하지만, 선집은 마오쩌둥 사상의 핵심이 담겨있다. 마오쩌둥 선집에서도 가장 핵심이 되는 글 3편을 노삼편(老三編)이라고 하며, "위인민복무(인민을 위해 일하자)", "우공이산", "기념백구은(닥터 베쑨을 추모하며)"이다.
  2. [2] 이에 비하면 공장 노동자들은 생산 시설의 공유화에 별다른 저항감을 가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공장이 국가 소유가 되건, 조합 소유가 되건 애초에 자기 것이 아니었고 혼자나 가족끼리 운영할 수 있는것도 아니니 거부감을 가질 이유가 없는 셈.
  3. [3] 한국에서는 이를 여촌야도라고 불러졌다.
  4. [4] 마오이즘은 아니지만, 러시아 혁명에 관련된 공산주의 유머 중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착한 공산당원들이 지주에게 땅을 뺏어서 우리에게 나눠주었는데, 나쁜 볼셰비키놈들이 와서 그 땅을 다시 뺏어갔다." (...)
  5. [5] 사실 마오쩌둥과 달리 스탈린의 경우는 실제로 스탈린 본인이 위와 같은 이론적 견해를 가지고 집산화를 추진했는지 여부는 전혀 명확하지 않다. 현대의 사회주의 연구가들도 중국이 아닌 스탈린 치하 소련에서의 집산화는 스탈린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러시아의 시대적 한계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즉 당시의 러시아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 사회가 농노제 없이 운영될 수도 있다는 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진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트로츠키가 축출 당한 사건을 폭정의 시작으로 보기도 하나, 정작 그 트로츠키야말로 농업을 반드시 집산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밀어붙였던 인물이며 이 부분에선 스탈린보다도 더 적극적이었다.
  6. [6] 현대 노동운동에서 블라디미르 레닌의 사상적 위치가 예상 외로 그다지 절대적이지 않은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다. 레닌 시기에 성립한 엘리트주의로 인해 노동조합의 역할이 부록 수준으로 밀려났다는 비판이 있기 때문이다.
  7. [7] 자력으로 집권한 유고슬라비아요시프 티토알바니아엔베르 호자조차도 항독 게릴라전으로 집권했으니, 고전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와는 무관하게 집권한 것이나 다름 없다.
  8. [8] 20세기 이후 대부분의 산업화된 선진국에서는 사회복지제도의 구축, 국가의 개입을 긍정하는 수정자본주의 개념의 도입등으로 인하여 공산주의 혁명 운동의 위세가 크게 위축되고, 제도권 정치 내에서의 개혁을 주장하는 사회민주주의 계열 정당들이 혁명적 공산당의 자리를 대체하였다. 즉, 고도로 산업화되고 도시화율이 높은 국가들에서는 공산주의 혁명이 시도될 가능성이 크게 낮아진 것. 따라서 공산주의 혁명이 시도되던 국가는 주로 농업비중이 높고 도시화율이 낮은 국가들이었고, 이런 환경에 더 적절한 노선은 마오주의였던 것.
  9. [9] 이는 남한도 마찬가지이다. 남한 운동판에서 레닌주의를 표방하는 단위들은 전국 노동자 정치 협회(노정협)이나 노동사회과학연구소(노사과연) 정도를 제외하면 어떠한 형태로든 범(凡)트로츠키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노동자 연대(이쪽은 그냥 마르크스주의로 정체화하고, 정통 트로츠키주의와는 거리가 있다), 볼셰비키 그룹, 혁명적 노동자당 건설 현장 투쟁 위원회(노건투), 사회변혁노동자당(변혁당) 일부에 이르기까지. 변혁당은 트로츠키주의 + 유러코뮤니즘 + 스탈린과 트로츠키 모두 반대하는 레닌주의가 어지럽게 혼재하고 있다. 사회진보연대와 전국학생행진이 루이 알튀세르의 입장을 따른다는 점에서 범마오주의로 분류할 수도 있지만, 이쪽은 정통 마오이즘과는 거리가 멀다.
  10. [10]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을 해서 받는 임금이 통장으로 입금되고, (신용 카드를 사용하던 현금을 인출해서 들고 다니건) 소비를 위한 지출 역시 은행을 통해 하는 식으로 모든 수입과 지출이 은행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화폐 유통 체계에 편입된 사람의 수가 세계 인구 중 절반이 조금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체계에 편입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수입과 소비가 세계 규모의 화폐 유통 체계의 일부가 되고, 수입과 지출, 자산과 신용이 모두 은행을 중심으로 한 표준적 화폐 체계로 계량되고 측정될 수 있다. 이에 비해 다른 60%의 사람들은 이 체계에 편입되어 있지 않으므로, 화폐를 사용하더라도 다른 재화와 자유롭게 교환 가능한 일종의 만능 교환 재화로써 사용하는 것이지 화폐 유통 체제의 일부는 아니라는 것.
  11. [출처필요] 11.1
  12. [12] 중국 정부로부터 박해 받고 있는 마오주의의 발상지가 중국이다. 중국 정부에서 마오주의자들을 박해하는 이유는 현 중국 정부에서 도입한 시장경제체제에 걸림돌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고 현재 중국 공산당에서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인사들의 대다수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책 세대들이며 마오쩌둥 집권기 후반부에 일어난 문화대혁명에 대해 중국 공산당에서 해당 사건에 대한 언급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보니 마오주의와 마오쩌둥을 광적으로 추종할 경우 문화대혁명까지 언급되는 동시에 마오쩌둥의 부정적인 행적까지 언급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13. [13] 인도에서는 마오이스트를 부르는 용어로 마오이스트하고 낙살라이트를 혼용해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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