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안구

안양시 일반구
밑줄은 시청 소재지.

일반구

만안구

동안구

만안구 법정동

법정동

안양동

석수동

박달동

萬安區 / Manan-gu

만안구
萬安區 / Manan District

국가

대한민국

광역자치단체

경기도

기초자치단체

안양시

면적

36.6㎢

시간대

UTC+9

인구

254,198명
(2018년 2월 기준 주민등록인구)

인구밀도

6945.30명/㎢

구청 소재지

안양동

구청장

이강호

국회의원

만안구: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5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만안구청 홈페이지

만안구청 전경. 주소는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로 128(舊 안양동 530). 원래 안양시청이었다.[1]

1. 개요
2. 역사
3. 지리
4. 교육
5. 정치
6. 경제
7. 하위 행정구역

1. 개요

경기도 안양시의 서부에 위치한 일반구. '18.2월 기준 인구는 254,198명행정자치부 주민등록 인구통계 1992년 안양시 구제 실시와 더불어 동안구와 같이 설치되었다. 구가 설치된 1992년 당시 안양은 갑·을 선거구로 나뉘어 있었는데, 이 중 갑 선거구 전역과 을 선거구의 안양 7·8동을 더해서 만안구로 편성되었다.

이름은 조선 정조가 하사한 다리 이름인 '만안교'에서 따왔다. 안양의 서쪽이므로 '서안구(西安區)'도 검토되었으나[2], 정조의 애민(愛民) 및 부친에 대한 효심(孝心)을 기리기 위해 '만안구'로 정했다고 한다. 실제로 동안구에 대응하여 만안구 지역을 '서안양' 내지는 '서안'으로 부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3]

2. 역사

안양시 만안구 행정구역 변천사

시흥군 군내면
(始興郡 郡內面, 1896)

시흥군 동면 / 서면
(始興郡 東面 / 西面, 1914)

안양읍 신안양리 / 박달리
(安養邑 新安養里 / 博達里, 1963)

안양시
(安養市, 1973)

안양시 만안출장소
(安養市 萬安出張所, 1989)

안양시 만안구
(安養市 萬安區, 1992)

과천군 하서면
(果川郡 下西面, 1896)

시흥군 서이면
(始興郡 西二面, 1914)

안양읍 안양리
(安養邑 安養里, 1949)

원래 시흥군에 속했던 지역으로 광명시서울특별시 금천구와 동계인 곳이다. 그래서 이 구의 박달동은 광명 및 시흥과 인접해 있다. 시흥시에 독자적 경찰서가 생기기 전엔 광명서와 안양서부서 즉 현 만안서가 치안업무를 맡아 주었다. 현재도 광명역이 있는 소하리 일대는 관습적으로 안양 소하리로 불린다.

서울-안산 간 진입 루트 중 영등포 쪽에서 진입할 경우 여기를 지나간다. 석수역관악역을 지나고 박달동에서 광명시 시계로 넘어가 광명역을 거친 후 사독터널을 거쳐 시흥시 목감으로 진입, 다시 목감에서 안산시 선부동으로 내려간다. 물론 보편적인 루트는 과천선을 따라 가는 과천-평촌-산본 경유 루트로 강남 및 서울 도심에선 이렇게 간다.

다만 위 표에 나온대로 역사가 좀 복잡한 구석이 있는데 안양동 일대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과천군 영역이었다. 흔히 조선시대 당시 시흥군 영역이었다고 하는 것은 석수동, 박달동일대. 그래서 과천시나 동안구와 다르게 표가 조금 복잡한 편에 속한다.

3. 지리

지역적으로는 옛 금천(시흥)현과 과천현의 혼합 지대이다. 여기도 역사가 꼬였네 석수동과 박달동은 구한말까지 금천(시흥)현 관할이었고, 안양동은 과천현 관할이었다. 1963년에 서면(현재의 광명시) 관할이었던 박달동과 동면(현재의 금천구) 관할이었던 석수동이 안양읍으로 넘어오면서 오늘에 이른다.

참고로 경부선이 만안구를 관통한다. 안양시에서 경부선 지하화를 제안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 자세한 것은 경부선 전철 지하화 문제 참고.

4. 교육

구 내에 경인교육대학교 경기캠퍼스, 안양대학교, 성결대학교,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연성대학교(구 안양과학대학) 등이 자리잡고 있다.

5. 정치

19대 대선 만안구 개표 결과

정당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격차

투표율

후보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1위/2위)

(선거인/표수)

득표수
(득표율)

70,454
(42.08%)

35,189
(21.02%)

38,671
(23.10%)

10,990
(6.56%)

11,275
(6.73%)

+ 31,783
(△18.99)

78.13%

안양1동[4]

42.66%

19.92%

22.95%

7.42%

6.64%

△19.71

81.98

안양2동

40.51%

24.01%

22.59%

5.76%

6.58%

△16.50

71.55

안양3동

42.00%

21.64%

22.74%

6.64%

6.36%

△19.26

73.53

안양4동

38.65%

25.72%

23.20%

6.19%

5.81%

△12.93

74.84

안양5동[5]

36.68%

27.24%

23.49%

5.92%

6.28%

9.44

71.01

안양6동

39.63%

24.03%

23.54%

5.78%

6.59%

△15.60

71.84

안양7동[6]

45.10%

17.86%

22.61%

7.52%

6.63%

△22.49

81.41

안양8동[7]

40.27%

22.55%

23.48%

5.96%

6.86%

△16.79

73.71

안양9동

38.68%

23.23%

25.03%

5.96%

6.56%

△13.65

74.52

석수1동

42.26%

22.23%

22.14%

6.87%

6.16%

△20.03

81.29

석수2동

42.22%

20.77%

23.22%

6.66%

6.71%

△19.00

78.48

석수3동

43.07%

19.61%

24.05%

5.97%

6.86%

△19.02

75.75

박달1동

40.83%

22.01%

24.21%

5.83%

6.61%

△16.62

71.94

박달2동[8]

41.91%

19.82%

23.61%

7.23%

7.05%

△18.30

80.62

후보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거소·선상투표

36.70%

18.65%

32.42%

6.42%

3.67%

△4.28

관외사전투표

47.73%

14.59%

21.80%

7.54%

7.74%

△25.93

재외투표

63.22%

5.48%

14.24%

4.33%

11.76%

△48.98

2012년 18대 대선/2016년 20대 총선(비례)/2017년 19대 대선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선거

18대 대선

20대 총선

19대 대선

증감 포인트 (대선/대선)

증감 포인트 (총선/대선)

18대 대선

20대 총선

19대 대선

증감 포인트 (대선/대선)

증감 포인트 (총선/대선)

안양시 만안구

50.81%

27.44%

42.08%

▼8.73 (-17.2%)

△14.64 (+53.4%)

48.85%

32.69%

21.02%

▼27.83 (-58.1%)

▼11.67 (-35.7%)

만안구의 정치 성향은 전국 추세와는 반대로 가고 있다. 1970년대 초에 개발이 이루어진 성남, 부천, 안양은 기본적인 도시 형성의 배경 때문에 민주당 지지세가 강했고 진보성향 운동권 단체가 활발하게 활동했던 지역이었다. 안양의 경우 성남, 부천보다 보수세가 강하기는 했지만, 전국 평균에 비하면 진보개혁 성향이 확실히 강한 편이었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태우가 32.76%를 받아 1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2위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30.06%)과 불과 2.7% 차이에 불과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26.24%)의 표까지 합하면 전체의 과반을 훌쩍 뛰어넘는 결과가 나와 독재 세력을 압도했었고, 다음해 열린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통일민주당이 두 석을 석권했다. 1990년3당 합당이 이뤄져 통일민주당이 민주자유당이라는 보수 세력으로 재편된 이후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자당 후보가 당선되었는데 그 인물이 이인제라는, 당시로서는 센세이션한 개혁적 평가를 받은 김영삼의 후계자였음을 감안하면 단순히 보수성향으로 평가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또한 같은 해 열린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김영삼, 김대중 두 후보가 불과 43표 차이에 불과할 만큼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9]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1991년)이석용 전 시장이 만안구에서 52%의 압도적인 득표율을 올리며 당선되었고,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새정치국민회의가 두 석, 자유민주연합이 1석을 가져갔는데, 자민련 한 석이 만안구의 자리였다. IMF 직후에 열린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42.63%를 얻어 이회창과 8%의 큰 격차로 승리를 했을 만큼, 이때까지 집권 여당에 반하는 민심을 족족 보여왔던 지역이다.

이후에는 민주당 지지율이 조금 더 높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후의 20년 동안 선거에서 전국 표심과 일치하는 모습을 보여왔는데, 민주당이 참패했던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민주당의 손을 들어줬다. 보수정당에 표를 몰아준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 선거는 전부 민주세력이 참패했던 선거였고, 민주당 쪽이 승리했던 선거에서는 항상 민주당에게 표를 몰아줬던, 민주당에 가까운 표심을 보여왔다.

그러나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최대호 전 시장에 의해 이런 민심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이필운 전 시장의 각종 삽질 정책 및 100층 호화청사 논란, MB정부의 부정적 평가 등의 영향으로 당선된 최대호 전 시장이 평촌 위주로 지역관리를 하고, 덕천마을 재개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면서 덕천마을 논란으로 인해 큰 몸살을 앓았기 때문이다. 안양시는 구도심인 만안구와 신도심인 동안구(평촌)끼리 사이가 좋지 않아 일종의 소지역주의가 있는 지역인데, 이를 봉합하기는 커녕 오히려 확대시키고, 특히 생활여건이 좋지 않은 만안구에서 그나마 개선의 여지가 있었던 덕천마을 문제에 대해 재개발을 방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만안구의 민심이 험악해졌다. 이 여파로 인해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최대호 전 시장이 참패하게 되었다. 불과 930여표 차로 엄청난 박빙 끝에 패했는데, 동안구에서는 3% 차이로 이겼지만 만안구에서 무려 5%나 벌어지면서 새누리당에 더 표를 준 것이 원인이었다. 또한 도지사 선거에서도 새누리당의 남경필이 만안구에서 승리를 하고[10], 광역의원 및 기초의원 모두 새정치민주연합이 참패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선거는 전국적으로는 민주당이 패한 선거가 아니었지만 만안구에서는 참패를 당한 것이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진보개혁 정당들의 비례 득표율이 무려 15.68%(50.26 → 34.58)나 하락해, 보수진영 정당보다 4% 이상 높은 하락세를 보였다. 가뜩이나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민주당의 지지도마저 점점 하락하는 추세였고, 이를 이종걸 의원의 개인기로 겨우 막아내던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같은 해 10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시류가 반전되어 보수진영이 완전히 붕괴되고 전례없는 민주당의 전국적인 강세 속에서, 만안구도 이 시류를 따라가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문재인 대통령이 42.1%의 득표율로 홍준표 후보(21.0%)에 비해 두 배 가량의 득표율을 올리며 압도적 1위를 차지했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젊은 인구가 많이 빠져나간 안양 4~6동에서 40% 미만의 득표율을 올렸고, 홍준표는 재개발이 끝난 안양7동[11], 20대 1인가구가 많은 안양1동, 동네의 절반 가까이 재개발된 석수3동 및 군인 인구가 많은 박달2동을 제외한 모든 동에서 20%를 넘겼다. 특히 문재인이 40%를 넘지 못한 안양 4~6동에서는 경기도 평균치의 4% 이상 득표율 및 전국 평균을 뛰어넘는 결과가 나왔다. 물론 전체적인 결과는 더불어민주당 및 문재인의 압승이었지만 국회의원 선거구로 치면 안양권의 여섯 선거구 중 꼴찌였다. 5선 국회의원이자 전국적인 네임드 중 한 명인 이종걸 의원 지역구임에도 안양권 전체에서 꼴찌를 기록했다는 것은[12], 그만큼 만안구의 발전이 더뎠다는 것과 민주당이 이 지역에서 신뢰를 얻지 못했다는 뜻이므로 향후 정국이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문재인 후보와 홍준표 후보, 안철수 후보가 각각 앞선 지역은 다음과 같다.

만안구 : 문재인 70,454(42.08%) > 안철수 35,189(23.10%) > 홍준표 38,671(21.02%)

1위 - 문재인 <전 지역> : 안양7동(45.1%), 석수3동(43.1%), 안양1동(42.7%), 석수1동(42.3%), 석수2동(42.2%), 안양3동(42.0%), 박달2동(41.9%), 박달1동(40.8%), 안양2동(40.5%), 안양8동(40.3%), 안양6동(39.6%), 안양9동(38.7%), 안양4동(38.6%), 안양5동(36.7%), 거소/선상투표(36.7%), 관외사전투표(47.7%), 재외투표(63.2%) (14개동 + 관외투표)

1위 - 안철수, 홍준표 : 없음

2위 - 안철수 : 안양1동, 안양3동, 안양7동, 안양8동, 안양9동, 석수2동, 석수3동, 박달1동, 박달2동, 거소/선상투표, 관외사전투표, 재외투표 (9개동 + 관외투표)

2위 - 홍준표 : 안양2동, 안양4동, 안양5동, 안양6동, 석수1동 (5개동)

6. 경제

처음 방문한 사람에게는 '여기가 정말 서울과 수원을 잇는 자리에 위치한 도시인가?'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낙후돼 있다. 애초부터 민주당 텃밭이라 수원처럼 대기업이 들어선 적도 없을 뿐더러 안양동에 위치한 공단은 단순 제조업 위주인데다 대단히 낙후되어 있다. 이에 더불어 90년대부터 진행된 평촌 일대 개발로 안양에 생활권을 유지하면서 돈 좀 있던 사람들은 모두 동안구 아파트촌으로 이동해서 슬럼화가 진행돼 버렸다.

이제 여기도 낙후된 동네 좀 치워봐야 하지 않을까 싶을 시기에는 때마침 90년대 말 IMF라든지 2008년 공황 따위가 터지는 통에 재개발은 엎어지기 일쑤. 그나마 가장 슬럼화가 심했던 덕천마을을 몇 번의 좌절 끝에 어찌어찌 래미안으로 재개발했지만 보기보다 시세가 낮은데, 전철역에서 거리가 좀 되는 것도 있고(안양역과 명학역의 딱 중간인데, 이 두 역의 거리는 직선으로 2킬로미터가 넘는다.) 무엇보다 학군이 가장 발목을 잡는다. 대학교는 세 개씩이나 있으면서 정작 이렇다 할 고등학교가 없는 판국. 경기도에서 가장 핫한 과천에 인접해 있고 평촌역 인근의 공단을 IT 단지로 새로 개장하는 등 온갖 버프를 받은 동안구에 비하면 참으로 푸대접이 아닐 수 없다.

7. 하위 행정구역

7.1. 박달1동, 박달2동

법정동인 박달동은 안양역에서 광명시로 넘어가는 지역에 해당되며, 두 개의 행정동으로 나뉘어져 있다. 안양시 만안구의 다른 곳과는 달리 광명시와의 생활권 문제가 있다. 노래로 알려진 박달재는 충청북도 제천시에 있고, 이곳과는 관련이 없다.

  • 박달1동
박달시장, 박달사거리 등이 위치해 있다.
  • 박달2동
안양고, 박달초, 삼봉초, 박달중[13] 등이 위치해 있다. 서해안고속도로 광명역 IC가 위치하며 광명역과는 바로 지척이다. 박달예비군훈련장과 관동예비군훈련장도 이곳에 있다. 서초역 인근에 있던 국군정보사령부도 이곳으로 이전했다. 뉴스기사 삼봉초등학교는 박달2동에 있는 자연마을인 삼봉마을에서 따온 이름이다. 안양고/박달초 후문 쪽에는 롯데리아가 있다.

7.2. 석수1동, 석수2동, 석수3동

석수동은 안양시 최북단에 있으며, 경수대로를 통해 서울 서부권으로 진입할 수 있다. 석수동의 경계가 상당히 들쑥날쑥한데다가 경부선이 관통하고 한복판에 산이 있어서 생활권이 세부적으로 나뉘어져 있는 동네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7.3. 안양1~9동

안양 중심...이라고 하기에는 면적이 매우 넓다. 안양동 하나의 면적이 동안구와 맞먹을 정도. 그만큼 동네별 차이도 많이 나타나며, 행정동도 9개로 쪼개져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안양동 항목 참조.


  1. [1] 현 만안평생교육센터(냉천로 39, 舊 안양동 477)가 옛 만안구청 자리.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77년부터 1989년 시흥군 폐지 때까지 시흥군청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참조1 참조2 시청을 동안구(평촌신도시)로 이전하면서 구청을 옛 시청사로 이전하고, 옛 구청은 여성회관 및 청소년회관을 거쳐 평생교육센터가 되었다.
  2. [2] 동안구가 바로 '안양의 동쪽'이란 의미로 지어진 것.
  3. [3] 그 예시로 만안구의 중심부에 있는 우체국의 이름이 '서안양'우체국이다.
  4. [4] 안양역, 안양1번가가 있는 번화가 동네
  5. [5] 안양대학교가 있는 동네
  6. [6] 몇 년 전까지 덕천마을이 있었던 곳으로, 대선 1년 전 재개발이 완료되어 입주가 이루어진 곳
  7. [7] 성결대학교가 있는 동네
  8. [8] 부대가 있는 동네
  9. [9] 이것은 2018년 현재까지 시, 군, 구 단위에서 1, 2위 후보 간 표차가 두 번째로 적게 난 기록이다. 가장 표차가 적게 난 곳은 1963년 제5대 대통령 선거 당시 불과 12표 차로 희비가 갈린 강원도 평창군이다.
  10. [10] 더 놀라운 것은 이전 선거에서 더 큰 격차로 패배했던 당시 국민참여당유시민이 만안구에서 승리했다는 점이다. 즉, 경기도 민심은 전 지선에 비해 민주당 쪽으로 조금 우회했는데 비해 만안구는 새누리 쪽으로 역행한 것이다.
  11. [11] 위에 설명된 덕천마을이 바로 안양7동이었다.
  12. [12] 물론 안양, 군포, 의왕 일대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라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만안구의 이전 정치 성향 및 주변 지역과 비교해서 그렇지, 전국적으로 보면 여전히 민주당 강세지역임에는 분명하다.
  13. [13] 2017년 3월에 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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