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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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子
멍쯔, 맹자, Mencius


우측 상단의 온전한 다섯 글자는 추국아성공鄒國亞聖公,
잘린 두 글자는 맹가孟軻이다.

가(軻)

자여(子輿), 자거(子車)

출생

기원전 372년, 추(鄒)[1]

사망

기원전 289년, (84세), 노나라

직업

정치가, 사상가

부모

아버지: 격(激)

1. 개요
3. 맹자의 후손
5. 기타

1. 개요

천하의 가장 넓은 자리에 거(居)하고

천하의 가장 바른 자리에 서서

천하의 가장 위대한 도(道)를 실천할 줄 알아야 한다.

뜻을 얻으면 사람들과 함께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혼자서라도 그 도[2]를 행한다.

그러므로

부귀도 그를 타락시킬 수 없고

빈천도 그를 비굴하게 할 수 없으며

어떤 폭력도 그를 굴복시킬 수 없다.

이것을 일컬어 대장부라 한다.

《맹자》〈등문공 장구 하(下)〉

하늘은 큰 일을 맡기고자 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먼저 그 사람의 마음과 의지를 고통스럽게 한다.

그의 몸을 수고롭게 하고

굶주림에 시달리게 하며

그의 처지를 궁핍하게 하니

하는 일마다 어긋나게 만든다.

이는 인내하는 성품으로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까닭에

그가 할 수 없었던 일을 더욱 잘 할 수 있게끔 한다.

《맹자》〈고자 장구 하(下)〉

중국 전국시대 중기의 철학자, 정치가, 정치사상가로 그 본명은 가(軻)이다. '사람은 사람다워야 한다'는 공자의 인(仁)[3] 사상을 현실 정치에 적용하기 위해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인물이며, 그 과정에서 마음 속 '인(仁)'을 행하는 주된 방법으로써의 '의(義)'를 부각시켰다.

주자는 그를 진(秦)나라 이전 유학의 마지막 적통으로 평가했으며, 그 영향으로 인해 오늘날까지 흔히 공자와 함께 공맹(孔孟)으로 함께 언급되어 유교의 대표 인사로 꼽히고 있다. 때문에 그를 표현하는 호칭 역시 공자에 준하는 '아성(亞聖)'[4]으로 불린다. 그의 대표적인 제자로는 만장과 공손추 등이 있다.

부당한 권력에 대한 백성의 저항을 옹호하고, "왕의 권력은 백성들이 부여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등 그가 살았던 시대에 비해 매우 진보적인 주장을 한 인물이다. 맹자의 이러한 사상은 계몽주의 이후에 나타는 사회계약론과 굉장히 닮아 있다. 사실상 근대 서양에서 사회계약론이 태어나기 수천 년 전에 선행해서 등장한 민(民) 본위의 사상이다.[5]

원 문종 3년(지순至順 원년, 1330년)에 추국아성공(鄒國亞聖公)[6]으로 추봉(追封)되었고, 이것이 현재 성균관 대성전 등지의 공문 사당(孔門祠堂) 위패에 표기되는 공식 존호다.

라틴어로는 멘치우스(Mencius)[* 이 표현은 대략 16세기 예수회의 문서에서부터 비롯되므로 고전 라틴어 독법이 아니라 교회 라틴어 독법을 따라 'ci'를 '키'가 아닌 '치'로 읽는 게 옳을 듯하다. 영어 발음으로는 물론 ['mɛnʃiəs(멘시어스)\].]라 한다. 공자(Confucius)와 함께 라틴어화된 이름으로 널리 불리는 둘 뿐인 중국 학자다. 묵자(墨子) 역시 'Micius'로 칭하기도 하나 널리 쓰이진 않는다.

2. 사상 및 영향

  자세한 내용은 맹자/사상 및 영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맹자의 후손

공자의 후손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쪽도 나름대로 관직을 배출한 인물들이 있다.

맹자의 직계 후손 중에는 후한에서 태위를 지낸 14대손 맹욱, 삼국시대 때 촉나라에서 문관을 지낸 16대손 맹광과 오나라 사람인 18대손 맹종이 있으며[7], 55대손 맹희문(孟希文)이 명나라 경태 3년(1452) 한림원 오경박사(翰林院五經博士)의 직위를 받은 이래 후손들이 직위를 세습했다. 청나라에서도 이어진 한림원 오경박사 직위는 73대손 맹경환(孟慶桓)까지 직계로 세습되었으며, 그가 광서 20년(1894)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동생인 맹경당(孟慶棠)이 뒤를 이었다.

이후 청나라가 멸망하고 중화민국이 수립되면서 직위명이 아성봉사관(亞聖奉祀官)으로 개칭되어 세습이 이어졌고, 2009년 대만 정부가 아성봉사관 직위를 무급제로 바꾸었다. 2014년 3대 아성봉사관이었던 75대손 맹상협(孟祥協)이 세상을 떠난 후 맹상협의 조카인 76대손 맹영계(孟令繼)가 4대 아성봉사관으로 뒤를 잇고 있다.

4. 맹자가 지은 책, 《맹자》

  자세한 내용은 맹자(경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기타

  • 맹자는 묵적의 겸애설과 양주의 위아설을 극렬히 비판하였다. 《맹자》 등문공 하편에서.. "성왕이 나오지 아니하여 제후들이 빙자하고, 초야에 있는 선비들이 멋대로 의논하여, 양주와 묵적의 학설이 천하에 가득해서, 천하의 학설이 양주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묵적에게 돌아갔네, 양씨는 자신의 지조만 위하는 위아설을 주장하였으니 이는 임금을 무시하는 것이요, 묵씨는 똑같이 사랑하는 겸애설을 주장하였으니 이는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일세, 아버지를 무시하고 임금을 무시하는 것은 바로 금수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묵적은 묵가, 양주는 도가 [8]의 대표적인 학자이다.
  • 배병삼 교수는 <맹자, 마음의 정치학>에서 “맹자한테 씌워진 게 위민(爲民)이니 민본주의니 하는 것인데, 맹자의 사상은 위민도 민본도 아닌 철저한 여민(與民)주의.”라고 말한다. ‘위하지 말라, 다만 함께하라’가 맹자 정치사상의 핵심이라는 것.
동중서가 말한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의 '삼강'은 신민과 자식, 아내가 군주, 아비,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지배와 복종의 윤리이자 통치자 중심의 ‘위민’ 정치론이고, <맹자> ‘등문공 상’ 편에 나오는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의 오륜은 부모와 자식, 군주와 신하, 남편과 아내, 윗사람과 아랫사람, 친구 사이의 상호 존중과 소통을 강조하는 상호적인 쌍방의 윤리이자 상호성을 특징으로 하는 ‘여민’ 정치론이다라고 말하였다.#


  1. [1] 현 산둥성 추현
  2. [2] 의로움(義)을 말한다.
  3. [3] 仁=人+人으로 '사람 인' 두개가 모여서 만들어진 회의자 이다. 사람은 사람다워야 한다는 뜻. 君君臣臣父父子子를 해석할 때,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며,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라고 해석하는 것처럼, 仁=人+人은 '사람은 사람다워야 한다'라고 해석한다.
  4. [4] 성인(聖人)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만큼 훌륭하다는 뜻으로 주자(朱子)가 칭하였다. 본래 이 칭호는 안회(顔回)를 가리키는 것이었으나, 후한 말의 조기(趙岐)가 제자서(諸子書)의 하나로 취급되던 《맹자》의 가치를 재조명하면서 맹자를 "직이불거 곡이불굴 명세아성지대재자야(直而不倨, 曲而不屈, 命世亞聖之大才者也.): 곧으면서도 거만하지 아니했고, 굽으면서도 비굴하지 아니했던, 일세의 걸물로서 성인에 버금가는 큰 재목이었다."라 평하여 최초로 맹자를 아성의 느낌으로 표현하였고, 후대의 주자가 이를 수용한 것이다. 아성의 칭호는 조기와 주자에게서는 다만 '성인에 견줄 만한 이'라는 의미로 쓰였으나, 성리학적 도통론(道統論)에 근거해 맹자를 성인의 반열로 공인한 원조(元朝) 이후로는 공식적으로 '제2의 성인', 즉 '공자(孔子)에 버금가는 성인'이라는 의미가 정착되었다.
  5. [5] 다만 맹자의 주장을 민주주의라고 하기는 힘들고 민본주의民本主義라고 해야 옳다. 다만 김대중대통령은 이 민본주의를 바탕으로 동양도 민주주의를 성공할수 있는 사상적 토대가 될것이라 주장했으며 실제로 한국에선 맹자와 민주주의를 연관시키는 경향이 강하다.
  6. [6] 추(鄒)라 함은 중국 전국 시대(戰國時代)에 존재했던 맹자의 고향 나라의 이름이다. 몇몇 학자들은 이 추나라를 노(魯)나라의 종속국으로 비슷하게 여기고 있지만, 당장 《맹자》 본편만 참고하더라도 '추나라와 노나라의 교전이 있었다'는 대목이 있으므로, 추나라는 다만 소국이었을 뿐 분명한 자주권을 확보하고 있던 노나라의 접경 국가였다고 여기는 것이 타당하다. 국(國)이라 함은 말할 필요도 없이 '~나라'의 뜻. 아(亞)라고 함은 '버금가다'는 의미로, '공자께 버금가시는 분'이라는 극존숭(極尊崇)의 표현이다. 성(聖)이라 함은 앞의 '아'를 받아 '~ 성인(聖人)'의 의미로 연결되어 '공자 다음가시는, 제2의 성인', 즉 '아성(亞聖)'을 맹자의 고유 칭호로 만든 것이다. 공(公)이라 함은 쉽게 말해 공작(公爵). 앞에서 굳이 추나라(鄒國)를 언급한 것은 바로, 이 '공작'이 제후의 작위이므로 반드시 거할 나라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맹자는 자기 고향 나라의 영주로 봉해진 셈.
  7. [7] 참고로 이들은 활동년대가 비슷하다.
  8. [8] 주자는 맹자집주에서 양주를 도가 출신이라고 밝혔다. 양주의 극단적인 개인주의는 도가의 밑바탕에 깔린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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