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라이어 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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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이름

머라이어 캐리
MARIAH CAREY

분야

음악

입성날짜

2015년 8월 5일

위치

6270 Hollywood Blv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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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그래미 시상식[1]

최고의 신인상

제32회
(1990년)

제33회
(1991년)

제34회
(1992년)

없음[2]

머라이어 캐리

마크 콘

이름

머라이어 캐리 (Mariah Carey)[3]

국적

미국

출생

1969년[4] 3월 27일, 뉴욕 주 헌팅턴

거주

뉴욕 주 뉴욕

신장

175cm, A형

데뷔

1990년 1집 <Mariah Carey>

가족

슬하 1남 1녀[5]

링크

1. 소개
2. 생애와 활동
2.1. 1969 - 1989년 : 데뷔 이전
2.2. 1990 - 1992년 : 혜성같은 데뷔
2.3. 1993 - 1996년 : 화려한 전성기, 음악계 평정
2.4. 1997 - 1999년 : 새로운 변화와 침체
2.5. 2000 - 2004년 : 최악의 흑역사, 한물 간 가수
2.6. 2005 - 2008년 : 다시 한번 정상에 선 디바
2.7. 2009 - 2012년 : 전설로의 도약
2.8. 2013 - 2014년 : 두 번째 침체기
2.9. 2015 - 2018년 : 다시금 반등을 노리는 전설
3. 특징
3.1. 창법
3.2. 작사 및 작곡
4. 활동 내역
4.1. 필모그래피
4.2. 디스코그래피
4.2.1. 기록
4.2.3. 싱글
4.2.3.1. 빌보드 1위
4.2.3.2. 빌보드 2위
4.2.3.3. 빌보드 3위 ~10위
4.2.3.4. 빌보드 11위~20위
4.2.3.5. 뮤직 비디오

1. 소개

Songbird Supreme #

대중음악의 황금기인 1990년대[6]를 휩쓴 싱어송라이터.

침체기를 이겨내고 2000년대에 화려한 부활로 팝계를 재평정한 여가수이자 세계 최정상급의 가창력[7]을 보유하고 있는 가수.

명실상부한 1990년대의 탑스타이자 아메리칸 스윗하트, 빌보드의 여왕이다. 이만큼 세계적으로 성공한 여가수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8] MTV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목소리 1위에 선정되었다. 각종 매체에서 역대 전세계 여가수 가창력 순위를 따지면 대부분 순위권 안에 드는 가수이다. 음역대는 0옥타브 레#(Eb2)에서 5옥타브 라#(Bb7)까지다. 최고음 Bb7까지 올라가는 팝 가수나 소프라노들은 아주 드물긴 하지만 그래도 종종 있긴 한데 핵심은 최저음이 Eb2라는 것이다. 이는 웬만한 남자가 내는 중저음을 내는 것이다[9] . 따라서 머라이어의 음역대는 사실 엄밀하게 따지자면 콘트랄토이지만, 보이스 타입은 콜로라투라 라이트 리릭 소프라노이다. 중음역대도 비지 않는 데다가 거의 전음역대를 완벽한 발성으로 구사한다는 것이 더욱 놀라운 점이다. Hot 100 넘버원 18곡 중 잭슨 파이브의〈I'll Be There〉리메이크를 제외한 17곡 모두를 본인이 작곡한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다.

, 알앤비, 힙합의 융합에 성공한 아티스트이며 캐롤의 여제이기도 하다. 머라이어를 보고 꿈을 키운 가수들을 지칭하는 '머라이어 키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많은 가수들의 롤모델이다. 먼저 여가수 커리어의 정점을 찍은 휘트니 휴스턴의 가장 큰 라이벌이었으며, 휘트니와 함께 가장 많은 가수들에게 영향을 준 여가수이다. 머라이어 이후에 나온 대부분의 보컬리스트들은 머라이어의 영향을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무조건 받았다.[10] 특히 힙합과 팝, 알앤비를 합친 장르는 머라이어 캐리 손에서 탄생했다. [11] 그녀의 화려한 커리어 뒤에는 매우 가난했던 과거도 있었다. 이는 2집 'Make It Happen'의 가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자신의 재능을 바탕으로 노력을 해서 성공한 자수성가, 인간 승리의 표본들 중 하나이다.

전 세계 1억 7천만 이상의 앨범 판매고와 2억 장 이상의 레코드 판매고를 가지고 있으며 여가수로는 2위[12], 미국에서는 RIAA 기준으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마돈나에 이어 앨범 판매고 여가수 3위에 해당한다.[13] 1991년부터 측정하는 사운드스캔 기준으로는 전체 가수 중 3위, 여가수 중 1위이다.[14] 전 세계를 통틀어 음반 판매(앨범+싱글) 순위 8위에 빛난다. 30세에 이미 빌보드 Hot 100 차트 넘버원을 15곡이나 만들어냈으며 38세까지 18곡을 만들어 내면서 비틀즈에 이어 엘비스 프레슬리와 공동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대중음악)[15], 알앤비[16], 가스펠[17], 소울, 힙합[18], 발라드[19], 어덜트 컨템포러리, 댄스[20], 라틴[21], 클럽[22], 록 음악[23], 컨트리[24], 레게[25] 등 갖가지 장르를 넘나드는 크로스오버형 가수이다.

Hot 100 18곡의 1위뿐 아니라 그 하위 부류인 알앤비/힙합 차트에서는 10곡의 넘버원, 팝 차트에서는 6곡, 댄스/클럽 차트에서는 17곡,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에서까지 7곡의 넘버원을 뽑아내며 빌보드의 메인 차트들 중 록 차트와 컨트리 차트를 제외한 모든 차트에서 1위곡을 뽑아냈다. 특히 그녀의 곡〈One Sweet Day〉는 루이스 폰시의 'Despacito'와 함께 빌보드 Hot 100차트 16주 간 1위를 차지해 최장기 1위 기록을 세웠고 현재까지 깨지지 않는 기록이 되었으며, 그녀의 곡 <We Belong Together> 또한 14주 1위로 이 부문 공동 2위를 기록 중이다.

빌보드 선정 1990년대 Artist of the Decade에 선정되었고, 빌보드 선정 1990년대 Song of the Decade에는 <One Sweet Day>, 빌보드 선정 2000년대 Song of the Decade에는 <We Belong Together>가 선정되었으며 이는 모두 머라이어의 곡이다. 그녀의 캐롤곡〈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는 매년 11월부터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빌보드 Hot 100에 50위 이상으로 재진입을 하는 기염을 토한다. 또한 이 곡은 피지컬 판매량 1,400만 장, 디지털 판매량 350만 건으로 약 1,700만 장의 싱글 판매고를 올렸다. 이는 피지컬로는 전체 10위이며, 피지컬 + 디지털로는 전체 8위이다.

미국뿐만이 아닌 아시아에서도 인기 있는 가수로서 유럽에서 인기가 비교적 약하다는 점을 아시아 지역의 엄청난 인기로 보완한다. 특히 한국과 일본에서 인기가 대단했다. 한국에서 캐럴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는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흘러나오고 있으며 곡 〈Hero〉는 영어 교과서에도 실렸다. 머라이어는 한국에서 약 430만 장을 팔아치우며 가장 많은 앨범을 판매한 여자 가수이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팝송이 대중가요만큼이나 주류음악이었던 90년대 초중반에 데뷔와 전성기를 맞이한 것이 크다. 음악도 한국인에 정서에 딱 들어맞는 발라드 위주의 사랑 노래들이기도 하다.

전성기 시절 일본에서의 인기는 엄청나다. 세계 2위인 일본 음반시장에서 가장 성공한 팝가수이다. 그녀의 앨범 《#1's》는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해외 앨범이며 3위, 4위, 8위에 그녀의 앨범들이 포진되어 있다. 3집 <Musicbox> 부터 베스트앨범<#1's> 까지 무려 5연속 앨범 밀리언 인증을 받았다. 부진했다던 2집 <Emotions>마저도 밀리언 인증을 받았다. 게다가 도쿄돔 공연을 《Daydream》시절 3일, 《Butterfly》시절 4일, 《Rainbow》시절 2일분 모두 매진시키면서 총 9회분의 공연을 다 매진시켰다. 매진시킨 관석수를 합쳐 보면 45만 석이다. 오리콘 위클리 앨범차트 1위 6회, 오리콘 위클리 싱글차트는 2위 1회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일본에서만 1,700만장의 앨범 판매고로 일본 내 해외 가수 앨범 판매량 1위이다. 나무위키의 이 문서도 다른 유명 팝가수들의 문서에 비해 내용이 꽤 많다. 웬만한 국내 가수들보다도 많은 수준이다.

머라이어의 노래들은 〈Hero〉와 같은 몇몇 곡들을 제외하면 난이도가 매우 높다는 것이 특징이다. [26] 특히 팬들이 꼽는 미친 난이도 노래는 〈Butterfly〉, 〈Outside〉, 〈Lead the Way〉, 〈Fly Like a Bird〉, 〈Anytime You Need a Friend〉, 〈There's Got to Be a Way〉, 〈Whenever you call〉, 〈If It's Over〉, 〈Can't take that away (Mariah's theme)〉 등이 있다. 그 이유는 음역대가 너무 넓기 때문이다. 옥타브를 낮춰 부르면 저음도 덩달아 낮아지고, 그렇다고 올려버리면 고음이 덩달아 더 올라간다. 심지어 노래 절정부에서 고음 애드립을 마구 난사하다가 저음역대로 뚝 떨어지는 기교까지 간간히 존재한다. 이러한 기교는 따라하기도 힘들 뿐 아니라 목이 순식간에 나갈 수 있는 위험한 기교이다. 고무줄 몸매의 소유자로, 지금은 40대의 아이 엄마이기에 살이 쪘지만 다이어트를 하면 몸매가 드러난다.[27]

엄청난 워커홀릭으로 유명하다. 데뷔 때부터 끊이지 않는 프로모션 등으로 몸이 남아나질 않았다. 그런데도 건강상의 문제로 한 번 쉬지 않고 12년 동안 활동했으니. 하지만 결국 'Glitter' 활동 당시 건강상의 문제가 생겨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는 앨범을 좀 쉬어가면서 내는 듯 하지만 역시나 엄청난 프로모션으로 유투브에서 머라이어 캐리를 치면 정말 타 가수와는 비교가 불가능한 수의 라이브 영상이 나온다. 이러한 워커홀릭 덕분에 머라이어 캐리는 10년만에 빌보드 Hot 100 1위를 15곡이나 만들어 냈다. 1990년대 빌보드의 경우에는 디지털 다운로드의 개념이 없던지라 라디오가 순위를 좌우했다. 대형 소속사의 가수인 데다가 엄청난 프로모션을 뛰는 머라이어 캐리가 순위가 높은 것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 그리고 내리막길을 탄 후에도 화려하게 복귀하여 1위곡을 3곡이나 더 만들어냈다.

머라이어 캐리의 디스코그래피를 주시하다보면 머라이어 캐리가 얼마나 워커홀릭인지 알 수 있다. 1990년 데뷔부터 2010년까지 1996, 2000, 2004, 2006, 2007년을 제외하고 모든 해에 앨범을 발매했다. 하지만 1996년에는 두 개의 넘버원 싱글 'One Sweet Day' 와 'Always Be My Baby' 활동, 2000년도에는 역시나 넘버원 'Thank God I Found You', 2004년엔 컴백의 준비, 2006년에도 넘버원 'Don't Forget About Us' 활동을 하였다.

머라이어 캐리가 제대로 쉰 해는 2007년밖에 없다. 2011년은 임신과 해산, 2012년에는 정규 앨범 작업과 여러 제품을 런칭하고 광고하는 등 무엇이든 쉬지 않고 일을 했다. 2013년에는 큰 부상을 당해 강제로 쉬었지만, 쉬는 김에 새 앨범의 추가 작업에 몰두, 아메리칸 아이돌의 심사위원을 지냈다. 2014년엔 정규 앨범 활동을 했고 2015년엔 라스베가스 공연과 베스트 앨범을 발매를 했다. 2016엔 Sweet Sweet Fantasy Tour(SSFT)로 유럽을 순회했으며 2017년엔 라이오넬 리치와 공동 미국 투어를 진행했다. 연말에 새 앨범 발매 예정과 더불어 영국, 호주 등에서 크리스마스 콘서트 등 내년까지 스케줄이 꽉 차 있다.

머라이어 캐리는 팬과 안티 등에게 불리는 별명이 다양한데, 대표적인 애칭으로는 본인의 애칭인 미미(MiMi)가 있다. 국내 한정으로는 팬들이 자주 줄여서 부르는 머랴 등이 있다. 하지만 의외로 머캐라고는 줄이지 않는데 어감이 좋지 않기에 안티들이 좋아하는 별명인 멀캐와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멀캐는 PC통신 시절 머라이어 캐리 팬들이 부른 별명이긴 하지만 이상하게 안티들이 많이 사용하면서 팬들은 싫어하는 별명이 되었다. 그 외에는 누가 붙인 것인지 알 수 없는 미미겅듀라는 별명도 있다. (...) 요즘은 팬들도 머라이어가 공주병스러운 짓을 하면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한편 머라이어 본인의 학창 시절에는 Mirage(신기루)라고 불렸다고 한다.

2. 생애와 활동

2.1. 1969 - 1989년 : 데뷔 이전

힘들고 가난한 환경 속에서 가수의 꿈을 키운 뉴욕 소녀.

아일랜드백인 미국인 어머니와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베네수엘라인 혼혈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28] 그녀의 어머니는 오페라 가수였다. 부모가 세 살 때 이혼하여 어머니와 살게 되었다. 이때 집안 환경이 막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그녀의 2집에 수록된 <Make It Happen>의 가사를 들어보면 알 수 있듯이 매우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신을 신발도 없었고 배고픔을 잊기위해 일부러 잠들려고도 했었다고 한다. 머라이어에겐 언니가 있는데 이 언니는 아동 성추행을 당하고 나중에 매춘부가 되어서 가수 지망생이던 머라이어에게 용돈을 주면서 지원해 주기도 했다. 나중에 이런 사실이 머라이어를 곤란하게 했다. 1990년대 후반 미국의 방송인 바버라 월터스와의 인터뷰에도 이에 대한 언급이 잠깐 나온다. 머라이어 캐리의 오빠는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언니가 문제였다. 성공한 이후 머라이어는 언니가 바른 길을 가기를 원했지만 지원해준 돈은 흥청망청 써버리고 여러모로 머라이어를 힘들게 했다. 아마도 머라이어가 토미 머톨라와 에미넴 다음으로 가장 싫어하는 인물일 듯. E=MC² 앨범의 〈I Wish You Well〉에서 잘 되기를 빌었다.[29]

뉴욕으로 이사한 후에는 가수 브랜다 K. 스타의 보조 가수로 활동했다. 물론 각종 아르바이트도 뛰었는데 웨이트리스 일을 하다가 머라이어 자신의 자존심 센 성격을 못이겨 때려치고 손님들의 코트를 받는 등의 일을 했다고 한다. (...) 그리고 잠깐 헤어숍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헤어숍 원장이 '에코'라는 별명을 붙이려 하자 화가 나 그만두었다는 얘기도 있다. 이후 머라이어는 #1's 앨범에서 브랜다의 〈I Still Believe〉를 리메이크해 은혜를 갚았다. 브랜다와 함께 어느 파티에 갔다가 콜롬비아 레코드사의(현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SME) 토미 머톨라를 만나 데모 테이프를 건네주었는데 머톨라는 파티를 떠난 후에야 노래를 듣고 감명해 다시 파티에 돌아가 보았으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 결국 머라이어를 다시 찾아내 음반 계약에 성공했다. 콜롬비아에선 머라이어를 그 당시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여가수였던 휘트니 휴스턴의 대항마란 타이틀로 머라이어의 데뷔를 준비한다.[30]

2.2. 1990 - 1992년 : 혜성같은 데뷔

데뷔하자마자 대중들의 인기를 쓸어모은 머라이어 캐리.

1집 《Mariah Carey》 활동 시절.

1990 NBA FINAL 경기에서의 《America the Beautiful》 열창.[31]

캐리는 1990년, 셀프 타이틀 앨범 《Mariah Carey》로 데뷔한다. 앨범 수록곡 모두에 본인이 작사, 작곡에 참가했으며 평단의 환영을 받았다. NBA 파이널 경기에서〈America the Beautiful 〉을 열창하면서 화려한 첫 무대를 치뤘다.[32] 이 공연 이후 데뷔 싱글인〈Vision of Love〉는 본격적으로 차트를 치고 올라가서 1위를 해내며 신고식을 제대로 치뤘다. 판매량은 미국 내 Riaa 기준 900만 장 인증을 받고, 세계적으론 1,500만 장 가량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 앨범으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이 앨범에서만 빌보드 Hot 100 1위 곡을 4개나 뽑아내면서 1위 곡을 가장 많이 배출한 데뷔 앨범 타이틀을 얻는다. 1위 곡들은〈Vision of Love〉, 〈Love Takes Time〉, 〈Someday〉, 〈I Don't Wanna Cry〉. 이에 그래미도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Best New Artist 상을 수여하게 된다.

데뷔 앨범은 그래미 수상 이후 빌보드 앨범차트 11주 연속 1위를 했고, 1991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되었다. 당시에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차트에서는 1위 행렬에 앨범은 주구장창 팔려나갔고 각종 시상식을 휩쓸어 버리는 기염을 토하는 인기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데뷔하자마자 정상에 오른 탓에 엄청난 논란들 또한 따라붙게 된다. 가족이나 친척 중에 유명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데뷔 전 커리어라고는 인지도 낮은 가수의 백보컬을 했던 것이 전부였던 갓 20대 흑인 소녀가 순식간에 음악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니 당연하다.

2집 《Emotions》 활동 시절.

2집 타이틀곡 〈Emotions〉 앨범 버전. [33]

1991년 국내에는 돌고래 (Whistle, 하이노트) 소리로 유명한 곡 〈Emotions〉가 수록된 2집 앨범 《Emotions》을 발표하지만, 1집의 성공에 뒤따른 논란들이 터져버린다. 결국 소포모어 징크스를 이기지 못하며 평단에게 기교만 있는 앨범이라고 가차없이 까이며 판매량도 미국 내 450만 장, 월드와이드 800만 장으로 추락하게 된다. 초반엔 1집의 여파로 첫 싱글 〈Emotions〉가 1위에 오르는 성공을 거뒀지만 2번째 싱글인 〈Can't Let Go〉가 표절 시비에 휘말리면서 차트 2위에서 멈춰 버린다.[34] 3번째 싱글인 〈Make It Happen〉이 5위까지 가며 그럭저럭 체면치레를 하긴 했으나, 앨범의 부진을 면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립싱크 의혹과 함께 대리 가창으로 그래미에서 <Best New Artist> 상을 받은 밀리 바닐리처럼 다른 사람이 불러 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흘러 나왔으니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이러한 립싱크 의혹과 그녀의 라이브 실력에 대한 의문이 앨범의 부진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데뷔 당시 싱어송라이터라기엔 모델이나 영화배우를 연상케 하는 외모도 이 논란에 한 몫을 했다.

그러자 머라이어는 다음 해 MTV를 통해 라이브 공연을 열어 충공깽을 시전했다.[35][36][37] 이 공연을 앨범으로 발매한 라이브 앨범인《MTV Unplugged》는 빌보드 앨범차트에서 3위를 찍었고 이날 공연에서 리메이크한 잭슨 파이브(Jackson 5)의 곡인 〈I'll Be There〉는 빌보드 Hot100 1위를 찍는 기염을 토하면서 머라이어의 6번째 1위 곡이 된다. 결국 앨범은 전 세계 700만 장 이상이 팔려 나갔다. 다음 해인 1992년에 소속사 사장이었던 토미 모톨라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된다. 약 20살 연상의 소속사 사장과 결혼하게 되면서 인기가 식을 줄 알았으나 토미 모톨라와의 결혼은 그녀의 전성기의 신호탄을 날리는 것이었다.

2.3. 1993 - 1996년 : 화려한 전성기, 음악계 평정

앨범만 내면 몇천만 장 팔던 시절, 싱글만 내면 1위 찍던 시절.

3집 《Music Box》 활동 시절.

그 후 1993년 하반기, 머라이어 캐리 최고 흥행작이자 32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린 앨범 《Music Box》를 내놓는다. 첫 싱글 〈Dreamlover〉는 6주만에 차트 정상을 탈환하고 8주 1위를 거머쥐었고, 두번째 싱글인 〈Hero〉도 덩달아 1위를 기록하게 된다. 그리고 머라이어의 세계적 인기를 한층 더 높인 〈Without You〉가 초대박을 쳤다. 비록 빌보드에선 더블 싱글 발매로 인해 3위에서 6주씩이나 머물렀지만, 유럽과 아시아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 후 가스펠 곡인 〈Anytime You Need A Friend〉 등 싱글들이 연달아 히트를 치면서 미국 내에서 다이아몬드 인증을 받아낸다.

이 앨범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어 미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아시아 지역에서의 인기는 거의 신드롬에 가까웠다. 일본에선 오리콘 기준 밀리언 인증을 받으며 150만 장 가량의 판매량을 기록했고 한국에서도 판매고 100만 장을 찍는다. 국내에서 팝 앨범 100만 장 판매량의 기록은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 둘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38] 하지만 이 시기는 휘트니 휴스턴의 <보디가드> OST앨범이 한창 세계를 폭격하고 그 여파가 남아있던 시기라서 시상식들에서 상들을 휘트니에게 넘겨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Dreamlover>가 1993년 연간차트 8위, <Hero>가 1994년도 연간차트 5위, <Without You>가 연간차트 17위를 거머쥐면서 소포모어 징크스를 완전히 이겨버렸다.

캐럴 앨범 《Merry Christmas》 활동 시절.

이렇게 《Music Box》가 대박을 치고 1994년 가을, 루서 밴드로스 옹과 함께 부른 〈Endless Love 〉[39]가 빌보드 2위까지 치고 올라가면서 성공을 이어간다. 그리고 1994년 겨울, 크리스마스 앨범계의 전설로 평가받는 《Merry Christmas》를 공개한다.[40] 수록곡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는 국내외 많은 가수들이 따라불러 매년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캐럴 음원 차트를 점령해버려 빌보드 지에서도 역대 크리스마스 송 No.1으로 선정했다. 이 전설적인 캐럴 앨범은 총 1500만장이 팔려나가면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캐럴 앨범이 되었다.[41] 1995년 상반기까지의 인기로 볼때 머라이어는 아직 휘트니의 아성을 완전히 넘진 못했다. 비록 3집으로 전세계 음악 시장의 정상권에 올라 휘트니와 투톱을 달리긴 했지만 보디가드 앨범으로 초대박을 친 휘트니의 인기를 따라잡기에는 아직 강력한 한방이 부족했다. 머라이어는 1995년 하반기 희대의 명반을 가지고 컴백한다.

4집 《Daydream》 활동 시절.

발매 1달 전 팬들의 빗발치는 요구로 앞당겨서 발매한 첫 싱글 <Fantasy>는 마이클 잭슨의 <You Are Not Alone>에 이어 빌보드 역사상 두번째이자 여가수 사상 최초로 핫샷 데뷔곡[42]이 되었다. 이 곡은 이틀 동안 무려 38만 장이 팔려 나갔고, 라디오 공개는 이후에 했기 때문에 오로지 판매량 집계만으로, 그것도 단 이틀만의 판매량 집계로 1위에 올랐다. 심지어 핫샷 데뷔 후 1~2주 버티고 하락하는 다른 핫샷 데뷔곡들과 달리 이곡은 8주 동안이나 정상을 지켰다. 그렇게 리드싱글의 대성공을 바탕으로 1995년 10월, 《Daydream》이 발매되었다. 이 앨범도 역시 다이아몬드 인증을 받으며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 이 앨범의 후속싱글도 성공을 거두면서 본격적으로 3대 디바의 빌보드 쟁탈전이 벌어졌다. 이때 <Fantasy>의 두달 간 차트 독주 이후 1위를 뺏은 가수가 바로 휘트니 휴스턴이다. 휘트니 휴스턴의 <Exhale>이 머라이어 캐리의 <Fantasy>를 끌어내리고 핫샷 1위 데뷔를 한다.

하지만 휘트니 휴스턴이 차지한 1위의 기쁨도 잠시, 머라이어 캐리와 보이즈 투 멘이 함께 부른 〈One Sweet Day〉가 빌보드 정상을 16주 동안이나 차지하며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빌보드 차트 최장기 1위 곡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43][44][45] 그리고 머라이어 캐리의 <One Sweet Day> 를 끌어내린 곡은 바로 셀린 디온의 <Because You Loved Me> 이다. 이 곡이 6주 동안 1위를 차지하는 동안 머라이어의 3번째 싱글인 <Always Be My Baby> 가 나왔다. 이 곡은 셀린 디온 덕분에 핫샷 1위 데뷔를 놓치고 2위로 데뷔를 했고, 게다가 셀린 디온에게 밀려 4주 2위 이후 1위를 드디어 거머쥐고 장기집권을 하나 싶었더니 2주 1위, 또 다른 곡에 밀려 5주 2위를 하며 총 9주 2위를 기록해 머라이어의 최장기 2위 곡이 된다.

리드싱글인 <Fantasy>가 단 9주 만의 집계로 1995년 연간차트 7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다.[46] 심지어 그 다음해 연간차트에서도 50위 안에 들면서 위력을 증명했다.<One Sweet Day>는 1995년도 12월부터 1위를 했기에 1996년 연간차트에서는 아쉽게도 2위에 머물렀다.[47] <Always Be My Baby> 역시 1996년 연간차트에서 5위에 오르며 머라이어는 한 앨범에서 연간차트 탑텐을 3개나 배출하기에 이른다.

1996년, 이 해에 머라이어의 인기는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영역에 이르렀다. 일본 도쿄돔 5만석 공연 3일분, 그러니까 15만석을 3시간만에 매진시키는 기염을 토하고 미국에서도 잘 나가는 가수만 한다는 뉴욕 Madison Square Garden 공연도 매진시키며 첫 월드투어는 대성공을 거둔다. 또한 그래미 어워즈에서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는 기염을 토했으나, 정작 수상에는 실패했다. 머라이어 캐리의 당시 인기나 기록들은 타 가수들이 접근하기 매우 힘들만큼 독보적이었다. 상업적인 음악과 소속사 사장과의 결혼 등으로 평단의 평가는 박했다. 하지만 제너럴 부문뿐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수상하지 못했다는 건 머라이어로서는 굉장히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1996년 그래미 어워드 당시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기도 했다.[48] 그리고 이 시상식의 여파로 이후로 2005 그래미 어워드 이전까지 단 한번도 그래미 시상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당시 그래미 수상 기록과는 상관없이 인기가 워낙에 엄청났기 때문에 라이벌이라 할 만한 가수가 없었다. 셀린 디옹이 엄청난 속도로 치고 올라왔으나 아직은 인기에 격차가 있었고 80년대를 풍미했던 마돈나자넷 잭슨은 여전히 강했지만 최전성기는 지난 상태였다. 라이벌이었던 휘트니 휴스턴은 여가수 역사상 최대의 커리어를 낸 보디가드 앨범 이후 공백기가 너무 길었으며[49] 30대 중반의 나이에 접어든 시점이기도 했고 상술한 차트 전쟁에서 머라이어에게 11주 동안이나 밀려서 2위를 했기에 머라이어의 독주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토미 모톨라의 앨범 판매량을 위한 싱글 발매 억제 때문에 4번째 싱글은 발매하지 않았다. 앨범은 전세계적으로 2500만 장이 팔렸다.[50] 본국인 미국에서도 두번째 다이아몬드 인증을 받았다.

2.4. 1997 - 1999년 : 새로운 변화와 침체

아직은 탑스타, 그러나 가파르게 하락하는 인기.

5집 《Butterfly》 활동 시절.

토미 모톨라와의 별거를 인정한 머라이어 캐리는 다음 앨범인 5집 《Butterfly》에서 디바의 이미지에서 완전히 탈피해 탱크톱과 킬힐 등 자신이 원래부터 하고 싶었던 섹시 컨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과도한 노출로 인해 상당히 비난을 받았는데 미국가수가 왠 노출로 비난을 듣냐 할수있지만 당시 데뷔 7년간 이런 수준의 노출은 없었고 청순한 이미지가 쌓여 거물급이 된 그녀였기에 거부감이 생겼고 덕분에 흔들린 팬들도 이시기에 많았다. 비난은 그렇다쳐도 외모는 절정기에 다다랐고, 많은 팬들도 이 시절의 외모를 황금기로 생각한다. 앨범은 일반적인 기준으론 대박이지만 그전의 머라이어의 흥행을 기준으로 본다면 중박을 쳤다. 미국에선 전작에 비해 반토막이 난 500만 장을 팔았다. 월드와이드 기준으론 1500만 장 가량 판매했다. 또한 평단과 매체로 부터도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51] 전작 <Daydream>의 후파와 여전히 하늘을 찌르는 인기덕분에 첫 싱글 <Honey> 는 핫샷 데뷔를 해 머라이어 캐리는 현재 독보적인 핫샷 1위 데뷔곡 최다보유 가수이다. 두번째 싱글 <My All> 은 아쉽지만 놀랍게도 2위로 데뷔하는 기염을 토했고 다음 주에 바로 1위를 차지하지만 첫 1주 1위 곡이 되고 만다. [52] 1998년 투어의 도쿄돔 공연 4일분을 1시간만에 매진시키면서 머라이어의 일본인기는 1998년에 인기절정을 찍게된다. 특히 이 때의 도쿄돔 공연은 머라이어가 퍼포먼스에 집중한 것을 알 수 있다.[53]

베이비 페이스의 제작 아래, 휘트니 휴스턴과 함께 《이집트 왕자》의 삽입곡인 〈When You Believe〉를 내놓아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이 곡은 언론에 의해 라이벌로 회자되던 두 사람이 함께한 첫 작업이자, 그간의 불화설을 종식시키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화제성에 비해 차트에서는 비교적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 이 곡은 1998년 하반기에 머라이어의 첫 베스트 앨범(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빌보드 1위 곡 위주로 수록곡이 선정되어, 머라이어는 베스트 앨범이라고 칭하지는 않았다.) #1's에 수록되었다. 휘트니 휴스턴과의 신곡을 포함한 4곡의 신곡과 13곡의 1위곡, 브라이언 맥나잇과의 듀엣곡을 수록한 이 앨범은 전 세계 최대 20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고 보고있다. 유럽에서도 200만장 가량의 높은 판매량을 보였고 일본에서는 오리콘 기준 280만장가량이 팔리면서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해외앨범이 되었다. 앨범의 싱글 <I Still Believe> 는 4위를 기록했다.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한국의 6.25 전쟁 당시 마릴린 먼로의 위문 공연을 컨셉으로 촬영되었다.[54]

6집 《Rainbow》 활동 시절.

그리고 그 다음 해인 1999년, 음악의 다양성을 앞세운《Rainbow》 앨범을 내놓으나 리드싱글인〈Heartbreaker〉에서 보인 소녀 취향[55]과, 과도한 노출로 인해 언론에서는 연일 그녀를 향한 비판을 쏟아냈다. 앨범 판매량은 전작들에 비해 떨어졌지만 여전한 인기덕분에 미국에선 300만 장을 팔았다. 1000만 장을 팔았고 <Heartbreaker>와 <Thank God I Found You>[56], 두 곡의 1위곡을 만들어내며 15곡의 1위 곡을 보유한 가수가 되었다. 동시에 1990년대에 한 해도 빠짐 없이 싱글을 1위에 올려놓은 가수로 기록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 해 빌보드에서 선정한 1990년대를 빛낸 아티스트 1위에 랭크되었다. Billboard Music Award 에서 <Artist Of The Decade>를 수상한 머라이어는 수많은 가수들과 대중들의 기립박수와 환호 속에서, 그녀를 향한 루머와 수많은 이야기들을 언급하며, 그것들을 잊으라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동시에 팬들을 향한 감사와 사랑도 잊지 않고 강조했다. 이는 머라이어 최고의 수상소감으로 꼽힌다.

2.5. 2000 - 2004년 : 최악의 흑역사, 한물 간 가수

대중들에게는 한물 간 가수, 언론에겐 끝나버린 커리어라는 말을 듣던 진정한 흑역사.

7집이자 사운트트랙 앨범 《Glitter》 활동 시절.

2000년 소니와 결별하고 버진 레코드와 8000만 달러라는 상당한 금액에 계약을 했다.[57] 그 후 2001년, 반자전적 내용을 다룬 영화 《글리터》를 발표했다. 새로운 소속사였던 버진 레코드는 그녀와 그녀의 영화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뉴욕 전역에는 머라이어가 주연한 새로운 영화와 그 OST와도 같은 새 앨범의 홍보물이 깔렸을 정도였다. 머라이어 역시, 하루에 4시간만 잠을 자며 음반과 영화 작업에 매진했다. 그러나, 후반으로 갈수록 엉성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연기력이 도마에 올랐고, 결국 그녀의 명성에 비해 영화는 흥행에 참패하는 수모를 겪었다. 골든 라즈베리 수상은 덤이었다. 동명의 음반이 발매되던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쌍둥이 빌딩을 비롯한 미국 본토가 공격 당하는 초유의 사태인 9.11 테러가 터지는 악재가 일어난 데다가, 싱글의 뜨뜨미지근한 반응 때문에 음반 역시 참혹할 정도로 저조한 판매량을 기록했다.[58] 이와 관련해서 경악할 만한 사진이 있으니 이것이다.[59]

머라이어는 이 앨범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후유증인지 그 이후 머라이어는 글리터에 관한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60] 첫 싱글이었던 <Loverboy>는 싱글 덤핑 공세로 빌보드 싱글 차트 최고 2위를 기록했지만 반응이 좋지는 않았다. 거기다 후속 싱글인 <Don't stop>은 차트 진입에 실패했고 그나마 <Never too far>가 당시 9.11 테러 추모 열기 속에 <Hero>와 함께 라디오에서 재생되며 80위권에 진입했다. 판매량은 사운드 스캔 기준 65만 장을 팔았다.[61] 게다가 당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일했던 머라이어는 이상한 행동들을 보이다가 결국 과로로 쓰러져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어 입원하면서, 모든 활동이 잠시 정지되기도 했다. 그녀가 병원에 입원하자, 가십지와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 자살설/자살시도설을 제기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쓰러지면서 깨진 유리 잔으로 인해 그런 루머가 생겼다. 머라이어의 관계자는 독실한 기독교인인 머라이어는 자살 루머에 대해 그런 일은 절대로 있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8집 《Charmbracelet》 활동 시절.

영화와 음반의 연이은 실패로, 결국 버진 레코드는 2800만 달러의 위약금을 물어주고 머라이어와 계약을 해지했다. 머라이어는 버진 레코드와 잘 합의하여 계약을 종료하고 유니버셜로 소속사를 옮겼다. 2002년, 유니버셜에서의 첫 작품이었던 《Charmbracelet》은 2집 《Emotions》이후 업템포의 곡이 첫 싱글이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발라드인 <Through The Rain>이 첫 싱글이었다. 이 앨범 사운드 스캔 기준 110만장 정도가 팔리며 이전 앨범보단 나아졌지만 여전히 판매량이 저조했다. 싱글컷 된 <Through the Rain>은 빌보드 81위를 기록하고 <Boy>는 언더 차트에 기록될 정도로 차트 성적 역시 암담했다. 또한 언론에서는 연일 비난에 가까운 목소리를 쏟아냈지만, 머라이어는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머라이어의 커리어 상 역대 최대 규모의 월드 투어 역시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62] 덕분에 한국에서도 내한공연이 성사되었다. 서울뿐 아니라 부산에서까지도 공연을 했는데 서울 공연은 굉장히 혹평을 받았지만 부산 공연은 호평을 받았다.[63]

무엇보다 이 시기는 그전의 머라이어에겐 전혀 없었던 일이 닥쳤는데 바로 살이 찐 것이다. 머라이어는 데뷔 초기에는 너무도 마르고 가녀린 몸매의 소유자였으며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보기 딱 좋을 정도로 날씬했고 90년대 후반엔 운동으로 인해 건강미를 뽐내는 몸매였다. 따라서 노출을 해도 전혀 문제가 없었으나 2000년대가 들어서면서 스트레스를 비롯한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살이 찌기 시작했다. 게다가 노출도 그전보다 심해졌으니 팬들과 대중은 생전 처음보는 머라이어의 살찐 외모를 보고 놀랐으며 평론가와 언론들은 머라이어의 자기 관리 부실을 비난했다. 거기다 이 시기부터 목소리 악화가 시작되어서 부분 립싱크의 빈도가 급격히 높아졌다. 사실 이 시기의 두 앨범의 판매량이 각각 200만 장이 넘어서 뭐가 그리 망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때의 음반시장은 현재보다 훨씬 컸다. 저 정도 실패로 본다면 현재 음반시장에선 30만 장대 판매량으로 보는 게 맞을 듯하다.

이 시기는 마이클 잭슨, 휘트니 휴스턴,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암흑기와 함께 팝 역사상 가장 큰 암흑기로 뽑힌다. 그나마 머라이어의 경우는 저 셋의 경우보다 그나마 나았던 것이 머라이어는 이후 재기를 해서 어느 정도 흑역사를 만회하는데 성공했으나 마이클과 휘트니는 아예 세상을 떠나버렸고, 브리트니도 재기를 사실상 하긴 했으나 아직 예전의 떠올랐던 시기를 되찾은 것이라고 하기엔 조금은 부족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흑역사 시기에도 절치부심하며 그녀는 꾸준히 재기를 노렸다. 버스타 라임스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오랜만에 빌보드 차트 3위에 들었고, 패티 라벨에게 보컬 관련 조언을 구하는 등 재기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2004년 12월, 머라이어 캐리는 디즈니랜드에서 공연을 가졌다. 이 공연은 이듬해로 예정된 머라이어 캐리의 컴백 앨범을 기대하는 많은 팬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그녀는 이 공연에서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를 불렀는데, 그간의 비난들을 비웃는 듯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보이스의 리턴이라는 평도 받았다.

2.6. 2005 - 2008년 : 다시 한번 정상에 선 디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드라마틱한 재기, 순식간에 전성기의 인기를 되찾은 머라이어 캐리.

9집 《The Emancipation of Mimi》 활동 시절.

이듬해인 2005년, 첫 싱글 〈It's Like That〉이 공개되면서 언론과 대중들은 다시 한번 그녀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머라이어는 지금까지 시도했던 힙합 + R&B 보컬의 완성과도 같은 세련된 음악을 선보였던 것이다. 이 곡은 빌보드 16위에 안착하면서 재기에 대한 기대를 더욱 부풀렸다. 이어 발매된 앨범 《The Emancipation of Mimi》는 머라이어 캐리의 앨범 첫 주 최다 판매량을 갱신하면서 과거 디바로서의 머라이어가 아닌, 트렌드를 이끄는 전설과 같은 인물로 컴백했다.

두 번째 싱글 〈We Belong Together〉는 무려 14주 동안 빌보드 1위를 차지하면서 그 해 미국 내 최고의 히트곡으로 기록됐다. 심지어 이 곡은 빌보드 Hot100 차트 2000년대 결산 1위까지 거머쥐었다. 당시 <We Belong Together>는 빌보드 차트 기록을 연이어 경신하는 경이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어 세 번째 싱글 〈Shake It Off〉가 당시 1위를 하고 있던 <We Belong Together>와 함께 나란히 2위를 기록, 자신의 곡으로 차트의 1위와 2위를 모두 차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어 머라이어 캐리는 신곡과 리믹스 네 곡을 묶은 《Platinum Edition》을 발매하여 싱글 〈Don't Forget About Us〉 마저 1위에 올려놓는 괴력을 발휘한다. 앨범은 한 해동안 496만 장이 팔려 나가며 그 해 미국 1위, 세계 2위의 판매량을 보였으며 총 1200만 장이 팔려 나갔다.

이 앨범으로 수많은 상을 거머쥔 머라이어는, 데뷔 이후 인연이 없던 그래미 어워즈에서도 R&B 부문 3개의 상을 모두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1996년 그래미에서 마지막으로 〈One Sweet Day〉의 무대를 선보인 이후 한 번도 그래미에 참석조차 안한 머라이어가 10년 만에 그래미 무대에 올랐다. 10년 전에는 비록 최정상의 가수였으나 6년차 가수였던데 반해 이 당시 머라이어는 16년차의 어엿한 레전드 가수였다. 그래미 무대가 끝난 후 거의 모든 관중들이 기립박수를 쳤다. 평론가들은 지금까지 머라이어가 시도했던 힙합 + R&B의 완성판과 같다며 호평했다.

10집 《E=MC²》 활동 시절.

3년 후 2008년, 첫 싱글 〈Touch My Body〉가 발표되고 엄청난 다이어트와 함께 뮤비가 화제가 되어 여가수 첫 주 최고 디지털 판매량 기록을 갱신하며 1위를 차지하게 된다. 현재까지 마지막 1위 곡인데 이 곡까지 18곡의 1위곡을 가져 비틀즈에 이어 두 번째로 1위 곡을 많이 배출해낸 가수로 등극했다. 솔로로는 공동 1위. 이어 새 앨범 《E=MC²》가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2005년에 갱신했던 개인 첫주 최다 판매 기록을 다시 또 갱신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전작의 성공 공식을 답습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이는 1995년 'Daydream' 앨범 당시에 있었던 비판이기도 했다. 전작에 비해 상업적인 면이 더 보였지만,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기에는 확실히 유리해 보이는 앨범이었다. 그러나, 돌연 두번째 싱글이었던 'Bye Bye' 뮤직비디오 촬영 무렵 비밀리에 진행된 닉 캐논과의 결혼과 함께 활동이 흐지부지 되면서 이 앨범은 350만 장 정도가 팔려나가며 전작과 같은 히트를 기록하지는 못했다.

2.7. 2009 - 2012년 : 전설로의 도약

현역에서 전설로의 연결다리.

11집 《Memoirs Of An Imperfect Angel》 활동 시절.

2010년 모습.

2009년 머라이어 캐리는 〈Obsessed〉로 복귀한다. 이 곡의 가사와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준 머라이어의 남장으로 언론과 대중들은 에미넴을 향한 디스곡이라고 추측했지만, 머라이어는 부정했다.[64] 이 싱글은 단 한번의 프로모션으로 다운로드 120만 건이라는 수치를 남기며 의외로 선전하지만 7위에 그친다. 그 후 발매된 11집 앨범 《Memoirs Of An Imperfect Angel》은 전작들과 달리, 차분한 듯한 보컬과 약간은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는 편곡 등으로 대중들에게 어필하지 못하며 2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고 후속 싱글들도 성적이 좋지 못해 흥행에는 실패했다. 이때 한국으로 프로모션 차 방문해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했다. 공연은 아쉽지만 립싱크였다.

2010년 《Memoirs of An Imperfect Angel》의 리믹스 앨범 《Angels Advocate》가 발매된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얼리샤 키스, NE-YO, 니키 미나즈, 메리 제이 블라이즈, R. 켈리, 구치 메인, 릴 웨인, 트레이 송즈, 루다크리스 등 여러 힙합 & 알앤비 아티스트의 피처링 녹음까지 완료했으나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취소되었다. 본작은 머라이어 커리어 사상 가장 이질적인 미완성작으로 남았다. 그 후 두 번째 크리스마스 앨범 《Merry Christmas Ⅱ You》를 발매해 활동하였다. 이 무렵, 그녀의 임신설이 제기 되었는데 머라이어는 그 루머에 대해 일절 이야기 하지 않다가, 그해 백악관에서 진행된 크리스마스 공연에서 오바마 부부에게 처음으로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렸고 이후 언론에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 보도되었다. 물론 그 전부터 워낙 살이 쪄서 팬들과 언론, 대중들은 그녀가 임신한 사실을 모를 수 없었지만 말이다. 2011년 5월 머라이어는 예정 일자보다 조금 늦게 쌍둥이를 출산하였고 남자 아이의 이름은 모로칸 스콧 캐넌, 여자 아이의 이름은 먼로 캐넌[65]이라고 한다.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 12의 심사위원이 된 머라이어.

2012년 7월, 아메리칸 아이돌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이후 니키 미나즈와 디스전으로 화제가 되었고 결국 한 시즌만에 하차했다. 2012년 8월 초에 새로운 싱글이 발표되었다. 싱글 제목은 〈Triumphant (Get 'Em)〉이며 피쳐링으로는 릭 로스와 미크 밀이 참여했다. 평론가들은 이 곡이 너무 객원 래퍼들에게 의존한 나머지 머라이어의 보컬이 묻혀버렸다는 점을 공통으로 지적했다. 이러한 점은 〈Triumphant (Pulse Radio Remix)〉에서 그녀가 전곡을 혼자서 부르면서 희석되었으나 라디오 에어플레이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이 싱글에 대한 일반 대중의 반응은 한마디로 '무관심'이었다. 익명의 한 음악 관계자는 "만약 사람들이 머라이어의 신곡을 찾아서 듣고 악평을 했다면 그래도 최소한 사람들이 머라이어에 대해 여전히 관심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라도 하죠. 머라이어의 〈Triumphant〉는 그런 악평조차도 많지 않았습니다. 라디오에서 잘 틀어주지도 않았죠. 40세가 넘은 여가수가 팝 신에서 여전히 관심을 받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라고 말했다.

2.8. 2013 - 2014년 : 두 번째 침체기

예전에 비해 많이 식은 인기, 그러나 현역 가수 못지 않게 여러 활동을 이어간다.

12집 《Me. I Am Mariah... The Elusive Chanteuse》 활동 시절.

2013년 2월 19일에는 디즈니 영화 《OZ》의 사운드트랙으로 실리게 될 〈Almost Home〉이라는 곡이 발표되었다. 이 곡은 머라이어 캐리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들어볼 수 있다. 2013년 5월 6일, 하반기 발표 예정인 앨범 《The Art of Letting Go》에 수록될 새 싱글 〈#Beautiful〉을 발표하였다. R&B 신성으로 떠오르는 미겔(Miguel, 2013년 〈Adorn〉으로 그래미어워즈 Best R&B송 수상)' 과 함께 한 미드템포의 곡으로 Hot 100 차트 15위까지 오르며 선전했다. 싱글 발매 직전 공개된 뮤직비디오에선 다시 고무줄처럼 살이 빠진 모습으로 여전한 실력을 보여주었고 여러 평론가들에게 2013년 'Song of the Summer'라는 호평을 받으며 곧 발표될 새 앨범에 대한 기대치를 높였다. 해당 싱글은 빌보드에서도 15위에 오르는 등 선전할 듯 했지만 부족한 홍보와 리믹스 뮤직비디오 촬영 중 팔에 부상을 입고 활동 중단과 함께 앨범 발매 역시 연기되었다. 말이 부상이지, 넘어져 갈비뼈가 금이 가고 팔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였다. 운동을 하지 못해 체중 증가는 덤이었다. 거기다 굿모닝 아메리카 공연으로 립싱크 논란이 한 차례 더 터졌다.

2013년 11월 11일 이벤트형 싱글인 〈The Art Of Letting Go〉가 발표되었다. 모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리스닝 파티라고 속이고 라이브를 하며 나타나 팬들을 놀래키는 영상이 유명하다. 2014년 2월 14일 발렌타인 깜짝 싱글 〈You're Mine (Eternal)〉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두 싱글 모두 전자는 100위권에도 들지 못했고 후자는 88위에 그쳐 《Charmbracelet》의 싱글보다도 처참한 성과를 보였다. 그러던 중 드디어 5월 앨범 발매 소식이 들렸으나 그동안 딱히 리드싱글이라 불리는 싱글이 없어 걱정을 샀지만 앨범 자체에 집중을 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4년 만인 2014년에 정규앨범 《Me. I Am Mariah... The Elusive Chanteuse》발매했다. 어린 시절 스케치북에 본인을 그린 그림에 <나. 나는 머라이어다(Me. I Am Mariah)>라 써놓은 것에서 모티프를 얻었다고 한다. 머라이어 캐리의 음악을 많이 들어온 사람, 즉 팬들은 이 앨범을 머라이어 캐리 역사상 가장 완성도 높고 통일성 있는 고퀄리티 앨범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 소속사 데프잼과의 마지막 작품이니만큼 적절한 지원과 매니지먼트가 구비되지 않아 허공에 던져놓고 손을 놓은 상태이다. 발매 후 거의 한달이 지났는데도 싱글이 없는 상태이다. 앨범을 통째로 들을 사람만 들으라는 전략일 수 있겠으나, 첫 주 판매량으로 끝나버리는 요즘의 음반시장에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아예 활동의 시도도 하지 않았으니 망했다고도 말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곡의 난이도는 거진 별 다섯 개씩으로, 진성과 휘슬 모두 본인의 역대 최고음이 한번씩 더 등장한다. 3옥타브 라 (A5), 5옥타브 솔# (G#7) 둘 다 〈Heavenly (No Ways Tird / Can't Give Up Now)〉라는 곡에서 등장한다. 부상으로 인한 회복기간 동안 믹싱에도 여러 번 상당히 공을 들여 완성도가 높다.

팬들은 뛰어나다고 평가하지만 대중의 평가는 참담하다. 머라이어 캐리 최악의 흑역사. 앨범은 미국에서 첫주 판매량 5만 장을 찍고 차트에서 광탈했고,[66] 현재까지 미국에선 사운드 스캔기준 12만 장, 월드와이드로 30만 장 가량을 판매했다. 전작이 200만 장을 판매한 것에 비하면 1/15의 안습한 판매량을 보이고 있으며 다른 여가수들의 판매량에 비교해도 적은 편이었다. 싱글도 15위까지 올라간 〈#Beautiful〉을 빼면 모두 부진을 면치 못했다. 분명 나쁜 음반은 아니다. 깔끔하게 잘 빠진 앨범이고 그 전까지 머라이어가 보여주던 트렌드를 쫓아가기만 하던 행보와는 달리 음악적인 성찰이 담겨있어 평은 상당히 좋다. 완성도 높게 잘 짜인 앨범이지만 나쁘게 평가하자면 모든 곡이 다들 비슷비슷하게 재미가 없다는 말도 되고, 실제로 킬링트랙이라 할 만한 곡이 없어서 결국 흥행에는 실패하게 되었다.

앨범이 망한 데엔 앨범 자체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일단 리드싱글인 <#Beautiful>의 경우만 해도 꽤 오랜 공복기를 깨고 나오는 것임에도 무려 24위로 차트에 데뷔한 후 15위까지 치고 올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부상과 여러 이유로 인해 앨범이 1년이나 연기되었고 이 사이에 리드싱글로 모였던 대중의 관심도 많이 식어버렸다. 게다가 소속사에서는 이 앨범이 머라이어의 소속사에서의 마지막 앨범이라 그냥 나 몰라라 식으로 프로모션을 잡아주지도 않았다.[67] 팬들이 보기에는 앨범의 실패 원인이 머라이어와 앨범의 문제보단 앨범발매의 연기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던 홍보 활동에 있었다고 본다. 때문에 머라이어가 정말로 소위 말하는 한물 간 가수가 될지는 다음 정규앨범이 말해줄 거라고 말한다.[68] 에픽레코드의 사장 L.A 리드가 머라이어의 커리어를 살릴 수 있다고 자신해 그와 계약하려 했으나 계약금이 한화 3억이라는 처참한 계약금이었다. 계약이 취소됐다는 소문이 잠깐 돌았지만 결국 에픽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했다.

2014년 록펠러 센터에서 공연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바이브레이션이 아예 되지 않고 유튜브에선 반주를 제외한 영상이 돌아다니며 그녀의 목 상태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전작의 처참한 실패도 있어서 대중들에게 이미지가 많이 좋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69] 하지만 'Beacon Theater'에서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처음으로 선보였는데 3년 동안의 콘서트 중 가장 좋은 컨디션을 선보였다.[70]

2.9. 2015 - 2018년 : 다시금 반등을 노리는 전설

2015년 4월 27일에 베스트 앨범의 리드싱글 <Infinity>가 공개되었고 5월 15일엔 그 동안 1위를 한 곡들과 신곡 Infinity가 수록된[71] 베스트 앨범《#1 To Infinity》가 발매되었다. 'Billboard Music Award'에서 <Vision Of Love>를 불렀으나 역시나 그녀의 목 상태로는 더 이상 부를 수 없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러나 그 후의 TV 쇼들에서는 훌륭한 라이브를 선보이며 아직 그녀가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후 진행된 라스베가스 'Infinity show'에서 공연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그 동안의 1위 곡을 부르는 콘서트인데, 현재 머라이어의 목 상태로 'Daydream' 앨범이나 'Butterfly' 앨범의 곡을 잘 소화해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거의 20년 간 부르지 않은 1집 곡들[72]을 불러 팬들의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놀라운 것은 그녀의 라스베가스 공연 1회당 페이가 역대 1위였던 셀린 디온을 제치고 1위가 되었다는 점이다. 허나 투어성적이 제니퍼 로페즈만도 못해서 지금도 이 금액을 유지하는지는 의문이다.

2015년 8월 5일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름을 새겼다.[73] 2015년 8월 중순, 트위터에 자신의 최대 암흑기 시절[74] 곡인 <Through The Rain> 가사의 일부인 "I Can Stand Up Once Again For My Own"을 올리면서 자신도 재기의 뜻이 있다는것을 밝혔다. 이후 TV 쇼들에서 체중 관리도 많이 하고 목 상태도 확실히 좋아진 상태를 선보이며 다시 반동을 노리고 있다. 실제로 머라이어 캐리의 경우 살이 찌거나 목상태가 안 좋으면 보는 사람이 불편할 정도로 위축되어 있는 모습을 보이는 편인데[75] 체중 관리와 함께 목 상태가 다시 좋아지면서 과거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 팬들을 안심시키고 있다. 물론 전성기의 미친 가창력에는 비교할 수 없지만 솔직히 전성기의 머라이어 캐리를 이길 수 있는 보컬리스트가 몇이나 되겠는가?

2015년 12월에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 공연을 열었다. 작년에 했던 장소인 'Beacon Theater'에서 공연을 했는데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를 비롯한 자신의 크리스마스 시즌 송들을 공연했다. 베이비페이스와의 듀엣 곡도 있다. 비록 예전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최근 다이어트와 목 관리를 꾸준히 하더니 라이브 실력이 많이 좋아졌다. 내년에 새 앨범으로 컴백 예정이라고 한다.[76]

2016년 3월, 'SWEET SWEET FANTASY' 유럽 - 아프리카 투어를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큰 인기를 얻지 못한 유럽에서의 뜬금없는 투어인 만큼 영국에서 시작한 투어는 영국 'Glasgow'에 첫 공연을 가졌다. 첫 공연은 총 좌석 수 3,850석 정도로 적었다. 그래도 '런던 O2 아레나'의 16,076석 중 94% 가량 판매했다.[77] 투어는 남미까지 연장되었다.

2016년 6월부터 9월까지의 라스베가스 투어를 마친 머라이어는 미드 엠파이어에 캐스팅되어[78] 출연 배우 주시 스몰렛과 함께 OST인 'Infamous'를 제작했다. 음원은 29일 공개되었다. 대중성과는 약간 동떨어진 느낌이기 때문에 차트 성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으나 음악 자체는 꽤 잘 뽑아냈기에 팬들은 나름 만족하는 중이다. 새 앨범 싱글이 아닌 드라마 OST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머라이어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미국 아이튠즈 22위에 오르는 등 예상 외로 크게 선전하고 있는 중이다.

2015년부터 호주에서 4순위의 부자인 제임스 패커와 연애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 제임스 패커가 자신의 쌍둥이 아이들을 잘 챙겨주는 모습에 머라이어가 감동한 듯하다. 2016년 2월, 꽤 긴 연애 끝에 제임스 패커와 약혼을 했다. 만약 결혼한다면 팬들은 벌써 3번째 결혼이니만큼 머라이어의 행복을 빌어주고 있다. 비록 제임스 패커가 미란다 커와의 연애 때문에 안 좋은 소리가 많지만 말이다. 결국 10월 말 제임스 패커와 파혼했다. 파혼 과정에서 여러 잡음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79] 2016년부터는 13살 연하의 백댄서 브라이언 다나카와 와 연애중이라고 한다. 또한 남미 SWEET SWEET FANTASY 투어의 3개국 일정이 취소되었다.[80] 하지만 나머지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하였다.

2016년 8월 자 인터뷰에 따르면 누군가 머라이어의 앨범 컨셉을 당시 시점으로부터 2달 전에 훔쳐서 발표했다고 한다. 즉 약 6월 즈음에 앨범 발매를 한 가수가 머라이어의 앨범 컨셉을 훔쳐서 자기가 사용한 것. 추정되는 가수로는 아리아나 그란데 등이 있다. [81] 여름부터 촬영 중이던 머라이어의 리얼리티 쇼 《MARIAH's World》가 12월 방영됐다. 비록 제임스 패커와의 파혼으로 담을 예정이었던 결혼식은 담지 못하게 되었지만, 머라이어의 일상이나 콘서트 활동 등이 방영되니 팬으로서는 꽤 기대될 따름이었으나 매니저 스텔라가 최순실마냥 행동해 보기 싫다는 팬이 많다.

M.A.C와 합작 화장품 출시 기념 광고 출연 및 화보 사진.

2016년 12월 5일에는 VH1 DIVAS에 출연했다. 머라이어 외에 패티 라벨, 티아나 테일러, 샤카 칸 등이 출연했다. 하지만 한 곡만 부르고 사라졌다. 2016년 역시 Beacon Theater에서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진행했다. 이쯤 되면 매년 진행할 예정인 듯하다. 상단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M.A.C와 합작으로 화장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16년 12월 31일에 공연한 신년 전야 행사(New year's eve)에서 불성실한 태도를 보여 전세계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자세한 것은 머라이어 캐리/논란 참조.

2017년 2월 3일 이벤트성(일 가능성이 높은) 싱글이 발매됐다. 제목은 《I Don't》. YG가 피처링을 했다. 유례없이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하는 등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신년 전야 행사 탓인지 피처링 탓인지 발매 하루도 안 되어 아이튠즈 6위에 오르며 뜬금없는 선전을 하고 있다. 잡지 롤링 스톤즈의 인터뷰에 따르면 다음 정규 앨범을 발매할 계획이 없다고 한다. 물론 당장 계획이 없다는 것이지, 평생 앨범을 내지 않을 거란 소리는 아닌 듯하다. 라스베가스 공연 계약 기간 동안은 싱글로만 활동할 계획인 듯 하다. 2월 16일 신년전야 논란 이후 Jimmy Kimmel Live에 출연하여 새 싱글 I Don't (feat.YG)와 데뷔곡 "Vision of Love"를 불렀다. 논란 이후라 그런지 긴장한 모습이 눈에 띄게 보인다. 전성기 시절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이지만 라스베가스 공연보다 더 잘 불렀다.

'Dubai Jazz Festival'에서의 열창.

이후 2월 23일 'Dubai Jazz Festival'에서 아직은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7년 4월 10일자로 공식적으로 차기 앨범 계획을 발표하였다. 올해 말 발매될 예정인 차기 앨범은 엘 에이리드의 에픽 레코드와 머라이어의 자회사 BUTTERFLY MC 레코드가 공동 파트너십을 맺어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

2017년 7월 8일 라스베가스의 공연에 출연했는데, 급격히 체중이 늘어난 모습으로 등장하여 충공깽을 선사하였다. 미국의 한 매거진은 머라이어 캐리의 몸무게가 263 lbs (약 119kg) 에 육박하며, 당뇨, 고혈압 등 건강 문제도 우려되는 상태라고 보도했지만, 한국에서만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올 뿐 미국 현지에서는 별다른 기사가 나오지는 않고 있다. 반대로, 팩트 체크를 전문으로 하는 가십캅에서 이 것은 악의적으로 왜곡된 기사라는 사실을 밝혔다.[82] 또한 전혀 무리 없이 리오넬 리치와 공동으로 투어를 하고 있다. 2017년 10월 19일 LA에 위치한 머라이어 캐리의 맨션에 도둑이 들어 5만 달러(한화 약 5600만원) 상당의 물건이 없어졌다고 한다. #

2017년 겨울 매년 역주행을 반복하던 불후의 명곡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빌보드 Hot 100 9위를 기록하며 발매 23년 만에 탑텐을 찍은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지게 되었다. 90년대, 00년대, 10년대 연속 탑텐 곡을 배출한 가수 반열에 합류했으며 머라이어에게 28번째 탑텐을 안겨주었다. 여러모로 몇 년 동안 빌보드 차트에서 부진하던 것만 보던 팬들에게는 간만에 기쁜 소식이다.

2017년 12월 23일 트위터에 Take 2.라는 글과 함께 작년에 망쳤던 NYE 공연에 다시 출연함을 알렸다. 2017년 12월 31일 데뷔 싱글인 Vision of Love와 Hero를 열창해 굴욕을 떨쳐 내었다. 'Vision of Love' 무대에서는 공연 중간 즈음에 모든 음향이 일시정지(paused) 되었다. 물론 의도적인 일시정지였지만, 작년의 음향 문제가 오버랩되며 잠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 문제를 떠올리게 함과 동시에 자신의 건재함을 드러내려는 의도로도 해석된다.

'Hero' 전체 무대에서 'the way' 부분만을 사전녹음본(pre-recorded version)으로 처리했다. 본 공연에서도 리허설 때와 마찬가지로 그녀가 립싱크할 때 나는 쥐어짜는 듯한 소리(squeak)가 났다. [83] 그 이후 캐리의 마이크 볼륨을 줄였는지 'the way' 중간 부분부터는 괴상한 소리가 멈춘다. 그리고 줄어들어 있는 마이크 볼륨 때문에 'And then a hero comes along' 첫 부분에는 캐리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84] 또한 'the way' 부분을 부를 때에 교묘하게 카메라에 찍힌 캐리의 입이 가려져 있는데, 그녀가 마이클 잭슨처럼 카메라 구도에까지 관여한다는 사실과 그녀의 처참한 립싱크 실력을 감안하면 이는 의도된 것으로 사료된다.

NYE Hero 리허설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출처는 Santiago Vera. 리허설에서는 평소 콘서트에서 쓰던 부분 립싱크를 사용했지만, 실제 공연에서는 'Hero' 무대에서의 'the way' 부분의 사전녹음 이외에는 라이브로 소화했다. 리허설 영상에서 간간히 들리는 쥐어짜는 듯한 소리들(squeaks)은 캐리가 내는 것으로, 치료를 하지 않은 결절이 있는 성대를 닫는 동시에 라이브 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힘을 주니 자연스럽게 공기가 새어 나가고, 그 공기가 이러한 소리를 만드는 것이다. NYE Live 당시 Vision of Love를 부른 후 Tea 발언을 했었는데, 그 후 뉴욕의 한 호텔에서 약 1,000명 가량에게 차를 팔았다고 한다. (...) 2017년 11월 17일 개봉한 영화 '더 크리스마스'의 주제곡인 'The Star'가 '75th Golden Globe Awards for Best Original Song(주제가상)'에 후보에 올랐으나 아쉽게도 수상은 하지 못했다.

3. 특징

3.1. 창법

머라이어 캐리/창법 항목 참조.

3.2. 작사 및 작곡

머라이어 캐리는 데뷔 때부터 작사, 작곡을 해온 싱어송라이터이다. 리메이크 곡을 제외한 모든 곡의 작사에 참여했으며 거의 모든 곡의 작곡진에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빌보드 Hot100에 가장 많은 1위곡을 배출한 여성 작곡가이다. 가끔 아무것도 모르는, 혹은 음모론자들은 대부분이 공동 작곡인 걸 보고 '한 두 마디만 만들고 이름 올려놓은 거 아니냐' 라는 말을 할 수도 있지만, Charmbracelet 투어때의 밴드 소개 시간은 전부 즉석작곡을 해 부른 것이다. 무엇보다 머라이어의 최고명반으로 손꼽히기도 하는 데뷔앨범의 대부분 곡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작곡 파트너였던 벤 마굴리스와 같이 쓴 것이고 일부는 데모 테이프에 실려 있던 것들이었다.

콜롬비아 같은 메이저 레이블의 전문가 수준에서 봐도 이미 손색없는 레벨이었다는 뜻이다. 벤 마굴리스도 대부분의 멜로디 라인은 머라이어가 쓴다고 증언한 바 있다. 비록 로열티 분배 문제와 벤 마굴리스의 편곡 실력을 탐탁치 않게 생각한 토미 모톨라의 의중이 개입해 콤비가 갈라지게 되지만 말이다. 이후 벤 마굴리스의 작곡가로서의 실적이 거의 전무한 것을 감안하면 머라이어의 송라이팅에서의 지분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중간 중간 방송에서 즉석 작곡을 흥얼거리기도 하며 2013년 팬미팅에는 'Fly Like A Bird' 반주로 즉석 작곡을 해 부르기도 했다. 또한 여러 곡의 멜로디를 보면 코드가 비슷하다.

머라이어 본인은 피아노를 칠 수는 있지만 자신을 '연주자'라 칭할 레벨은 전혀 되지 않으며 작곡 중 코드 체인지 등을 일일이 계산하고 있으면 머릿속에 떠오른 멜로디며 아이디어가 사라져 버리기에 대개 능숙한 피아노 연주자와 함께 공동작곡을 선호하는 편이라고 밝혔다. 1993년 추수감사절 특집 중 월터 아파나시에프와 피아노 앞에 앉아 함께 작곡하는 장면을 본다면 그녀의 작곡 방식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작사 또한 본인이 다 하는데, 특히 작사는 작곡과 달리 대필이라는 의심이 거의 없다. 그 이유는 작사 내용이 대부분 머라이어 캐리 자신의 상황을 썼기 때문이다. 머라이어의 주요 작사 내용은, 어렸을 적 불우한 시절(왕따)에 대한 회상[85]이나, 첫 번째 남편이었던 토미 모툴라와의 사랑 혹은 디스 이야기[86], 닉 캐논과의 사랑 혹은 디스 이야기[87] 또는 찬양(가스펠)[88] 등이 있다. 종종 무대에서 없는 노래를 즉흥(Improvisation)으로 부르는데, 그녀의 순발력, 임기응변, 상황 대처 능력과 작사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머라이어의 경우 표절 의혹이 왕년에 종종 있었다. 특히 2집의 싱글컷이 된 3곡(Emotions, Can't Let Go, Make It Happen) 모두 표절 시비에 휘말렸으며 앨범도 전작보다 흥행하지 못하게 된다. 물론 <Can't Let Go>같은 경우 시비를 제기했던 아티스트가 표절이 아니었다며 사과하긴 했다. 한 번은 머라이어 캐리의 예전 경호원이 자신이 Hero의 작사가라고 밝혀 법적 공방까지 갔지만 머라이어 캐리는 Hero를 자신의 일기장을 보다가 영감을 얻어 쓴 거라고 밝히며 일기장을 증거로 제출해 가볍게 승소해 예전 경호원을 데꿀멍하게 만든다.(...)

또한 6집 <Rainbow>의 싱글 'Thank God I Found You'도 미국의 xscape의 작곡가들과 표절 시비가 붙었다. 국내에는 이 곡이 이원진의 '시작하는 연인들을 위해'라는 곡을 표절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표절 판정을 받지는 않았다. 이미 세상을 떠나 고인인 이원진 측이 표절시비를 제기할 리 만무했다. 또한 이 일이 국내에나 알려져 있지 다른 나라에서는 알지도 못하는 일이다. 일부 인터넷에 이 곡을 장학우가 표절했고 또 그 곡을 머라이어 캐리가 샘플링했다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사실관계가 다르다. 이미 머라이어 캐리는 3집 'Dreamlover'에도 샘플링을 사용했는데 이 때 작곡가에 샘플링 한 노래의 가수도 적었다. 이는 그 뒤에도 꾸준하게 지켜왔는데 정말 이원진의 노래를 샘플링했다면 표시를 안 했을 리가 없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논란이 일어난 2000년 이후 잠잠하던 이 논란이 2007년에 다시 불 붙었고 그 불을 붙인 사람이 바로 마돈나 광팬에 머라이어 캐리의 안티로 유명한 지식인 집필자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 논란은 지금이나 예전이나 관심밖의 사항이긴 하다. 머라이어 캐리 다음 팬카페를 봐도 2000년, 2004년, 2006년 이렇게 문제제기가 된 적이 있었고 위 안티 지식인 글보단 2009년 동아일보 변희재 글이 더 파급력이 있었다. 또한 프로듀싱도 모든곡에 다 참여한다. 빌보드 1위를 가장 많이 배출한 여성 프로듀서 부문에서도 1위이다.

이를 보면 머라이어는 Fantasy 등 많은 곡들을 샘플링하여 자기만의 스타일로 편곡을 잘 하는 점을 볼 수 있다. 지금이야 팝과 힙합이 합쳐진 음악들이 많이 나오지만 90년대 초중반에는 퓨전 음악이라고 시도를 하지도 않았었다. 그러나 그 시초가 팝, 알앤비를 하던 머라이어 캐리가 <Fantasy>를 힙합 리믹스로 만든 것이 시초가 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한 곡으로 머라이어 캐리는 당시 그리고 현재 음악계의 판도를 바꾸는 또 하나의 장르를 개척한 것이다. 또한 미국의 힙합 아티스트들은 머라이어 캐리가 힙합을 대중적으로 끌어 올린 아티스트라고 인정한다.

3.3. 비판과 논란

머라이어 캐리/논란 항목 참조.

3.4. 인간관계

머라이어 캐리/인간관계 항목 참조.

4. 활동 내역

4.1. 필모그래피

  • The Bachelor (1998)
  • Glitter (2001)
  • Wisegirls (2002)
  • State Property 2 (2005)
  • You Don't Mess with the Zohan (2008)
  • Tennessee (2008)
  • Precious (2009)
  • The Butler (2013) [89]
  • 레고 배트맨 무비 (2017) - 고담 시장 역 (목소리)

4.2. 디스코그래피

4.2.1. 기록

음반 판매고 약 2억 장 이상.

역대 여가수 판매량 2위, 역대 솔로 가수 판매량 5위, 역대 전체 가수 판매량 8위.[90]

역대 빌보드 Hot100 아티스트 5위

역대 빌보드 Hot100 싱글 11위《We Belong Together》

역대 빌보드 200 아티스트 6위

역대 빌보드 200 앨범 50위《Mariah Carey[91][92]

4.2.2. 앨범

4.2.3. 싱글

4.2.3.1. 빌보드 1위

머라이어 캐리의 1위 기간을 합쳐보면 79주라는 어마어마한 기간이 나온다. 이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함께 공동 1위 기록이며 1위 곡이 하나만 더 나오면 이 기록은 바로 경신된다.

  • Vision of Love (1990 - 4주)
  • Love Takes Time (1990 -3주)
  • Someday (1991 - 2주)
  • I Don't Wanna Cry (1991 - 2주)
  • Emotions (1991 - 3주)
  • I'll Be There (1992 - 2주)

Mariah Carey - I'll Be There (Feat. Trey Lorenz, from 'MTV Unplugged')

Mariah Carey & Boyz II Men - One Sweet Day (from 'Daydream')

Mariah Carey - We Belong Together (from 'The Emancipation of Mimi')

  • Don't Forget About Us (2005~2006 - 2주)
  • Touch My Body (2008 - 2주)

참고로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는 2007년에 1위가 가능할 수치가 집계됐으나, 재진입곡을 인정하지 않아 1위가 불가능했다. 흠좀무.

4.2.3.2. 빌보드 2위

어떻게 보면 머라이어 캐리는 2위와의 인연이 별로 좋지 않은 편이다. 가수 본인 자체가 1위 곡이 많기도 한 데다가 2위 싱글들이 본인의 기록을 계속 깨먹으니 말이다.

4.2.3.3. 빌보드 3위 ~10위
  • Make It Happen (1992)
  • Without You (1994)

Mariah Carey - Without You (from 'Music Box')

4.2.3.4. 빌보드 11위~20위
  • Anytime You Need A Friend (1994)
  • It's Like That (2005)
  • Bye Bye (2008) [103]
  • Just Stand Up! (2008) [104]
  • #Beautiful (2013) [105]
4.2.3.5. 뮤직 비디오

M/V유튜브에 개설된 'Mariah Carey VEVO'에서 시청할 수 있다. Mariah Carey VEVO

머라이어의 뮤직비디오들은 거의 대부분 머라이어의 비쥬얼을 내세웠다. 실제로 머라이어의 뮤직비디오를 보다보면 스토리보단 머라이어가 노는 모습 위주로 촬영된 것을 볼 수 있다. 머라이어의 청순하고 빼어난 비쥬얼과 전성기 시절 머라이어의 달달한 분위기의 싱글들하고 잘 어울렸기 때문에 그다지 스토리있는 뮤직비디오를 만들 필요성이 없었다고 볼 수도있다. 콜롬비아 레코드 정도 되는 대형 레이블에서 뮤직비디오에 돈을 쏟는다면 쏟을 수 있겠지만 필요성을 못 느꼈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이렇게 평면적인 뮤직비디오만 만들다보니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의 실적은 머라이어 커리어 사상 딱 한번 노미네이트된 게 끝이었다. (...) 때문에 머라이어가 이 시상식에 참석한 것은 91년도 <Emotions>[106] 공연과 1996년에 상술한 한번의 노미네이션과 락 비디오 부문 시상자로 나온 것말고는 전무하다. 메이저 시상식 중에서 유일하게 머라이어랑 인연이 거의 없는 시상식인 듯하다.[107]

하지만 인기가 절정일 때였던만큼 뮤직 비디오에 입고 나온 패션들은 화제가 되었고 <Fantasy>의 뮤직비디오가 나왔을 당시엔 뮤비 속 머라이어가 입은 핫팬츠가 엄청난 유행을 타 매진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Honey> 에서 꽤 많은 공을 들여서 첩보영화같은 뮤직비디오를 만들었고 <Heartbreaker>에서는 팝역사상 통틀어도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예산을 들여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108] 대부분의 팬들이 말하는 최고의 뮤직 비디오는 바로 <It's like that> & <We belong together>. 놀랍게도 두 뮤비는 스토리가 연결되어 있다. <It's like that>에서는 약혼자[109]의 파티에서 우연히 한 남자를 보고 반하게 되고, <We belong together>에서는 약혼자와 남자를 두고 갈등하지만 결국 돈 대신 사랑을 선택하는 스토리이다. <Honey> 때부터 뮤직비디오에 나름 신경썼지만 상술했듯이 VMA에서의 수상은 커녕 후보에 든 것도 전무하다.[110]

반대로 팬들이 꼽는 최악의 뮤비[111]는 <Auld lang syne>. 폭죽이 끊임없이 터지는 합성 같은 괴랄한 배경에 4분 내내 춤추는 부한 모습의 머라이어[112]만 나온다.

당연히 머라이어 본인이 옛날 가수이기도 하고 머라이어의 대부분의 뮤직비디오가 90년대의 것이라서 유튜브에서의 조회수가 저조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머라이어는 현재 2억돌파 2개, 1억돌파 8개의 뮤직비디오를 보유하여 1억뷰 이상의 뮤직비디오를 10개나 보유한 셈이다.[113]이 외에도 조회수들이 상당히 높다. 20세기에 데뷔한 가수들 중에서 이 이상의 조회수를 낸 가수는 브리트니 스피어스비욘세, 에미넴 셋 뿐이다.[114]


  1. [1] 그래미 시상식의 가장 중요한 상들로 여겨지는 올해의 레코드상, 올해의 앨범상, 올해의 노래상, 최고의 신인상만이 기록되어 있다. 나머지 부문의 상들은 따로 문서 내 수상 목록에 수록해주길 바란다.
  2. [2] 원래 수상자는 R&B 듀오 밀리 바닐리였지만 1990년 11월에 본인들의 앨범에서 단 한 소절도 부르지 않은 사실이 프로듀서들과 확인이 되면서 수상이 철회됐다.
  3. [3] 원래 부계쪽 성은 Nuñez였지만 할아버지가 베네수엘라에서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미국식으로 Carey라는 새로운 성을 채택했다.
  4. [4] 프로필 상으로는 1970년으로 되어 있고 그것이 공식적인 프로필 출생년도이지만 실제 머라이어는 69년생이다. 여권 사진으로 확실한 인증이 되었다. #
  5. [5] 이란성 쌍둥이다. 아들은 Moroccan Scott Cannon이고 딸은 Monroe Cannon이다. 아들의 이름은 전 남편 닉 캐넌이 자신에게 청혼한 방의 이름에서 가져왔고 딸의 이름은 마릴린 먼로로부터 가져왔다.
  6. [6] 음반이 역사상 가장 잘 팔리던 시기였으며 온갖 희대의 명반과 명곡들이 쏟아져 나왔던 시기이다. 실력 있는 가수들이 당당히 성공할 수 있었던 시대이며 당연히 2000년대 이후 음악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7. [7] 특히나 휘슬 레지스터 발성의 창법에서는 가히 독보적이다.
  8. [8] 다섯 손가락 안엔 머라이어 외에 휘트니 휴스턴, 마돈나, 셀린 디온, 자넷 잭슨 등이 있다.
  9. [9] 사실 말이 그렇지, 일반 남성들도 이 음을 내는 것을 상당히 힘들어 한다
  10. [10] 머라이어의 노래는 보컬리스트들의 가창력 측정 기준으로 자주 쓰이며 현대의 알앤비 창법이나 팝 창법은 대부분 휘트니 혹은 머라이어의 창법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보컬 측면이 아니라 송라이팅 측면에서도 머라이어는 많은 영향을 끼쳤다.
  11. [11] 그 곡이 Fantasy ft. O.D.B이다. 힙합과 팝을 융합시켰다고 하여 Hip Hop이 아니라 Hip Pop이라고도 불리는 장르를 개척했다.
  12. [12] 셀린 디옹과 거의 비슷한 판매량이라서 2, 3위를 오간다.
  13. [13] 마돈나와는 차이가 근소한데 데뷔 시기가 7년이나 차이가 나는 것을 감안하면 머라이어의 미국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바브라와는 데뷔 시기가 30년 이상 차이난다.
  14. [14] 데뷔 앨범이 1990년 8월에 발매되어서 약간의 손해를 보았다.
  15. [15] Dreamlover, Fantasy
  16. [16] We Belong Together, Butterfly, Honey
  17. [17] Fly Like A Bird, Make It Happen, My Saving Grace, Thank God I Found You
  18. [18] It's Like That, Migrate
  19. [19] All I Ever Wanted, Reflection
  20. [20] Obsessed
  21. [21] My All, After Tonight
  22. [22] Loverboy, Heartbreaker
  23. [23] Bringin'On The Heartbreak
  24. [24] Make It Look Good
  25. [25] Cruise Control
  26. [26] 그렇다고 Hero의 곡 난이도가 낮다고 보기는 힘들다. 중간 정도 쉬운 노래를 꼽자면〈I Still Believe〉정도가 있을 것이다. 이마저도 후반부에 4옥타브 가성이 있지만 진성 부분은 무난한 편이다.
  27. [27] 그 예가 2008년 E=MC² 활동 당시이다.
  28. [28] 할아버지가 베네수엘라 출신이며 원래 성은 Nuñez였으나 할아버지가 미국에 정착 후 아일랜드계 성 Carey로 바꿨다.
  29. [29] 언니의 조카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서 그 조카는 하버드 대학교 출신 변호사가 되기도 했다.
  30. [30] 그리고 휘트니의 소속사는 콜롬비아 레코드와 같은 소니 산하의 아리스타 레코드였는데 아리스타 레코드의 사장인 클라이브 데이비스가 토미 모톨라의 업계 라이벌이었던 것이다. 그것 때문에 머라이어의 성공에 더 지원을 한 것일 수도 있다.
  31. [31] 이 공연에서 입은 드레스는 〈Vision of Love〉 뮤직 비디오에서 실제로 입은 것인데 이것을 또 입고 나온 이유는 이 드레스가 그 당시 가지고 있던 유일한 드레스였다고 한다.
  32. [32] 아무래도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인이 NBA에서 무대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소속사의 힘이 있었다고 할 수있다. 소속 레이블이었던 콜롬비아 레코드는 소니 산하 최대의 레이블이기도 했고 통틀어봐도 최대의 레이블이었다.
  33. [33] 의외로 곡의 제목을 <Emotion>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Emotion>과 <Emotions>를 헷갈리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 정식 발매 제목에는 복수형이 붙어 있다.
  34. [34] 결국 데뷔 때부터 이어온 5연속 싱글 1위의 행렬이 깨져버린다.
  35. [35] 물론 여러 번 반복해서 잘 나온 부분만 편집한 공연이긴 하다. 재공연을 하긴 했지만 잘 나온 부분을 편집한 게 아니라 첫 공연 때 'Vision of love'를 부르던 중 어머니인 패트리샤와 눈이 마주쳐 터져버린 웃음 때문에 재공연한 것이 잘 부른 부분을 편집했다고 소문이 돈 것이다.
  36. [36] 전체 재녹음(더빙)을 했다. 물론 편집하지 않은 공연도 잘 불렀지만, 미상의 이유로 재녹음을 하긴 했다. 해외 팬들은 그녀의 완벽주의나 소니의 농간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유튜브에 'Undubbed version' 또는 'Unedited version'이 존재하므로 반박의 여지는 없다. 하지만 공식 VEVO에 올라온 콘서트 영상은 모두 방송용 혹은 DVD 판매용이기 때문에 음향을 다듬을 필요가 있기도 하다.
  37. [37] 사실 머라이어의 전성기 콘서트는 전부 재녹음(더빙)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유튜브에만 해도 수많은 무편집본이 돌아 다닌다. 1992년 Unplugged, 1995년 MSG 콘서트는 아예 'Undubbed version'이 존재하고, 1993년 Thanks-giving Special, 1996년 Tokyo Dome 콘서트는 입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38. [38] 국내 여가수 기준으로도 100만장을 넘은 가수는 거의 없다. 거기다 길거리 리어카 기준 판매량까지 합치면 어마어마하게 팔았을 것이다.
  39. [39] 다이애나 로스와 라이오넬 리치가 불렀던 곡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원곡은 빌보드 Hot100 9주 1위에다가 빌보드 선정 80년대의 히트곡 중 3위에 올랐다.
  40. [40] 앨범은 여름에 만든 것이다. 스튜디오를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해놓고 앨범제작을 했다고 한다.
  41. [41] 미국기준으론 550만장가량으로 시즌 앨범기준 역대 2위를 기록한다. 또한 시즌 앨범 특성상 매년 꾸준히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다. 일본에선 뮤직박스와 보디가드 음반 판매량 기록을 사뿐히 넘어 더블 밀리언 인증을 받았고 한국에서도 꾸준히 인기를 끌어 한국음반산업협회 기준으로 60만장가량 팔았다.
  42. [42] 발매하자마자 1위에 안착하는 것을 의미한다.
  43. [43] 덕분에 휘트니의 <Exhale> 은 11주간 2위를 기록하면서 신기록 수립과 동시에 휘트니 팬들은 일제히 머라이어를 원망했다. 게다가 그 전까지 빌보드 최장기간 1위는 휘트니의 <I Will Always Love You>였다. 여러모로 휘트니 팬들에겐 욕먹는 곡이다.
  44. [44] 거기다 이 시기에 빌보드 차트 싱글 덤핑 대전이 일어난다. 2위에만 주구장창 머물렀던 휘트니를 포함해 둘에게 막혀 만년 3위를 했던 자넷 잭슨까지 덤핑을 했다는 말이 있다. 당시 연말 1위를 기록한 gansta paradise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싱글 덤핑을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기사도 있다.
  45. [45] 2018년 기준으로 루이스 폰시의 Despacito와 공동 16주 1위를 기록하고 있다.
  46. [46]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면 2014년 최고 인기 가수였던 테일러 스위프트의 리드싱글이 13주 정도의 집계로 연간 13위에 올랐다. 이것도 충분히 대단한 것이다. 하반기에 발매한 곡들은 차트인 기간이 짧고 누적 판매량에서도 상반기곡들에 밀려서 상대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이다.
  47. [47] 상대가 막강했던 것도 있다. 무려 90년대 판 강남스타일마카레나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1990년대 결산차트에서는 1위에 올랐다.
  48. [48] 물론 경쟁작들이 쟁쟁한 후보들이긴 했다.
  49. [49] 물론 보디가드 활동시절에 워낙 투어 등에 힘을 쏟다 보니 천하의 그녀도 휴식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게 너무 길어지다 보니 정규 앨범이 보디가드 앨범이 나온 지 약 6년 만에 나왔다. 물론 그 동안에 영화 OST 등으로 꾸준히 활동했으나 아무래도 정규 앨범 활동에 비하면 활발한 활동을 못 했기 때문에 인기가 어느정도 하락했다. 게다가 이 시절부터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50. [50] 전작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럽 쪽의 판매량은 낮아졌다. 그러나 아시아에서 인기는 높아졌다. 한국에선 60만 장 가량 팔렸고, 일본에서는 오리콘 기준 220만 장 가량으로 역대 해외 앨범 4위에 해당하는 판매량을 보였다.
  51. [51] 하지만 국내에선 임진모가 유명하다. 그나마 임진모는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자 받아들였는데, 1993년 이후 장르 변화로 바로 등돌린 배철수는 아직까지 데뷔 앨범으로 돌아오라며 머라이어를 극딜한다. 그녀를 놓아주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52. [52] 놀라운 점은 18곡의 1위 곡 중에서 1주 1위 곡은 단 2곡뿐이다.
  53. [53] 목상태의 악화가 시작되던 시점이라서 데이드림 시절의 엄청난 라이브를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훌륭하게 불렀다. 댄서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머라이어 본인도 가볍게 안무를 맞추고 여러가지 퍼포먼스를 시도했다. 비록 마돈나와 같은 퍼포먼스형 가수들의 공연에는 비하지 못하지만 퍼포먼스에 어느 정도 집중을 했다는 것을 볼 수 있던 공연이었다.
  54. [54] 그래서인지 1998년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 공연에서 이 노래를 열창했다.
  55. [55] 그도 그럴 것이 30대 여성이 10대 마냥 노래 부르는게 어울리지 않기는 했다. 당시 브리트니 스피어스 같은 틴팝 가수들이 뜨면서 더욱 비교되기도 했다.
  56. [56] 이 곡은 국내에 한정해서 이원진의 시작하는 연인들을 위해라는 곡과 표절시비가 붙기도 했지만 유야무야 지나갔고, 미국에선 R&B그룹 Xscape의 곡인 'One of Those Love Songs'의 작곡가들과 법정 다툼을 벌였다. 법원에선 머라이어 캐리의 손을 들어주었고 결국 작곡가들은 소송을 취하했다.
  57. [57] 역대 여가수 4위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1위는 아델, 2위는 휘트니 휴스턴, 3위는 마돈나이다.
  58. [58] 9.11이 좋지 않은 영향을 준 건 사실이겠지만, 같은 날 발매된 JAY Z의 앨범은 대박난 것을 보면 9.11때문에 망하지는 않았다.
  59. [59] 혹시나 사진 이해를 못한 위키니트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머라이어의 영화홍보 광고판 뒤로 쌍둥이 빌딩이 폭격받고 있는 상황이다.
  60. [60] 그러나 2016년 Sweet Sweet Fantasy 투어에서 메들리로 Loverboy를 부르고, 심지어 글리터 앨범을 가지고 온 팬에게 사인까지 해 주었다!
  61. [61] 하지만 흥행과는 별개로 당시 머라이어의 목 상태는 최상이었고, 또한 싱글컷 된 곡들 뿐만 아니라 All my life, Reflection, Lead the way, Last Night a DJ Saved My Life 등의 곡 모두 좋은 평을 받았다.
  62. [62] 이전 투어들이 6~15회 정도였던 반면에 이 투어는 69회나 했다.
  63. [63] 부산 공연은 당시 사스의 유행때문에 취소되었다가, 뜬금없이 서울 공연 약 9개월 뒤에 진행되었다.
  64. [64] 머라이어 캐리와 에미넴 사이의 악연은 이 시기보다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건의 발단은 에미넴이 일방적으로 머라이어 캐리와 자신은 사귀는 관계였고 변태적 성관계를 가졌다는 주장을 하면서부터였다. 이에 머라이어 캐리는 Charmbracelet 앨범에서 에미넴 디스곡으로 추정되는 'Clown'을 수록하면서 디스곡 배틀이 시작됐다는 견해도 있다.
  65. [65] 마릴린 먼로에서 따온 이름이다.
  66. [66] 빌보드 앨범차트에선 3위를 찍었다. 예전같으면 높은 순위였지만 요즘같은 앨범불황기에는 어느정도 네임밸류가 있는 가수들은 1위를 찍어야 성공한거라고 본다. 물론 쟁쟁한 가수끼리 붙는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머라이어가 이 앨범을 발매할 당시에는 머라이어와 견줄만한 가수가 전혀 컴백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67. [67] 심지어는 앨범 자켓조차 매니지먼트의 별다른 지원없이 촬영했다는 루머가 있을 정도로 말이다.
  68. [68] 최근 베스트 앨범인 <#1 to Infinty>의 싱글과 앨범 모두 성적이 좋지 못하여서 이것을 가지고 뭐라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저 앨범은 18곡이 이미 기존의 곡들이고 신곡 하나마저도 그냥 라스베가스 공연용으로 만든 곡이다. 흥행을 노렸으면 라스베가스말고 다른 방송에서 활발히 프로모를 돌았을 것이다.애초에 베스트앨범이 잘 팔리던 시기는 2000년대 초반까지로 그 이후로는 그냥 팬들을 위한 앨범이다. 때문에 베스트앨범을 가지고 망했다 뭐다 하는 것은 옳지 못한 것이다.
  69. [69] 2016년 비정상회담 박정현 편에서 미국대표 마크는 머라이어의 고음이 예전만 못 하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70. [70] Emotions Intro의 D5 벨팅, 새로운 애드립을 듬뿍 넣은 Joy To The World(Intro Bb4 음 끌기, 휘슬 애드립, Gospel Remix)와 Hero 완창, Oh Santa의 새로운 휘슬 등 2014년의 공연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은 퀄리티였다.
  71. [71] 국가마다 수록곡이 약간 차이가 있다.
  72. [72] Someday, I Don't Wanna Cry, Love Takes Time Love Takes Time~ I Still Don't Know~
  73. [73] 최근에 신년행사 논란 후 이 명패를 훼손한 사람이 등장했다.
  74. [74] 지금이 더 암흑기라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현재는 딸과 아들도 있고 연애도 하는 중이라 머라이어 본인은 정신적으로 행복한 듯 하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엔 기댈 사람도 없었고 말 그대로 밑바닥까지 추락했다.
  75. [75] 대표적인 것이 2015년 빌보드 어워즈에서의 공연이다.
  76. [76] 공연과 투어 일정이 많기 때문에 앨범 발매는 불가능에 가깝고 싱글 발매가 좀 더 유력하다.
  77. [77] 머라이어 캐리는 유럽 중 그래도 영국에서 인기가 있는 편이다.
  78. [78] 1회 분량이긴 하지만 말이다.
  79. [79] 자세한 내용은 머라이어 캐리/인간관계 항목을 참조
  80. [80] 제임스 패커와의 파혼 때문인 듯하다.
  81. [81] 머라이어 캐리 평소 몇몇 가수들이 자신의 컨셉을 모방하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한다고 했었다.
  82. [82] 관련기사, 원본기사.
  83. [83] 팬캠으로 들어보면 그 정도가 더하다. 코러스 소리에 캐리의 사전녹음 보컬은 상당 부분 묻히고, 휘슬과 같은 소리만 들린다.
  84. [84] 'comes' 부분에서야 목소리가 제대로 들렸다. 리허설 때는 이 부분도 립싱크였고, 계속해서 쥐어짜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심지어 어떤 코러스 가수가 이런 소리를 내냐고, 당장 자르라는 반응도 많았다. (...)
  85. [85] Make It Happen, Close My Eyes, Outside, Petals, Can't Take That Away 등.
  86. [86] Dreamlover,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Did I Do That, Side Effect 등.
  87. [87] Memoirs Of An Imperfect Angel의 모든 곡, Cry, Faded, Camouflage, Infinity
  88. [88] Make It Happen, Hero, Jesus Born On This Day, My Saving Grace, Fly Like A Bird, I Wish You Well, One Child 등.
  89. [89] 여러 사람들이 도대체 어디서 머라이어 캐리가 등장한거냐고 의문을 갖는다. 영화 극초반에 주인공의 어머니로 출연하며, 대사도 거의 없다. 아예 없던가? 백인 주인에게 검열삭제를 당하러 창고에 끌려간 이후로 출연이 없다가, 노년의 모습으로 다시 나오나, 실어증이라는 이유로 또 대사가 없다.
  90. [90] 월드 와이드 판매량의 경우 6위 정도부터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탑텐에 드는 것은 확실하다.
  91. [91] 이외에도 52위와 87위에 머라이어의 앨범이 올라있다. 100위안에 무려 앨범을 3개나 올렸다.
  92. [92] 이 차트들은 단순히 앨범이나 싱글의 절대적인 판매량이 아니라 빌보드 차트 내에서의 흥행 여부를 따진 것으로 보인다. 만약 판매량만으로 집계를 했다면 당연히 앨범 호황기였던 90년대 가수들이 차트를 정복해버릴 것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인듯 하다.
  93. [93] 2003 NBA 올스타전에서 코트를 떠나는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에게 'My Saving Grace'와 함께 헌정한 곡.#
  94. [94] 편집시점(2018-06-11 15:30:46) 기준 빌보드 싱글차트 최장기간 1위곡.
  95. [95] 전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킨 댄스 곡인 <Macarena>, <I Gotta Feeling>, <Uptown Funk>는 물론 다이애나 비의 추모곡 <Candle in the Wind>, 머라이어의 재기곡 <We Belong Together>, 1990년대 최고의 보컬그룹<보이즈 투 멘>의 <I'll Make Love to You>, 휘트니 휴스턴의 불후의 히트곡 <I Will Always Love You>마저도 다 15주의 벽을 넘지못하고 14주에서 멈춰 버렸다. 2017년 여름, 저스틴 비버와 엄청난 유튜브 조회수를 앞세운 곡인 <Despacito>가 드디어 21년만에 15주 1위의 벽을 뚫고 16주 1위를 달성했다. 다행히 테일러 스위프트가 엄청난 초반 화력으로 1위를 탈환해 최장기 단독 1위는 깨지고 공동 1위가 되었다.
  96. [96] 첫 2위 싱글로 아쉽게 여기서 데뷔 이후 5개 연속 싱글 1위 기록이 끊겼다.
  97. [97] 루서 밴드로스경의 싱글을 피처링.
  98. [98] 이 곡으로 11년 연속 1위를 배출해낸 기록이 깨지게 되었다. 그래도 빌보드 200에서 1위를 기록하였다.
  99. [99] 본인의 곡인 〈We Belong Together〉가 이 곡의 1위를 가로막았다.
  100. [100] 베이비페이스의 싱글을 피처링.
  101. [101] 버스타 라임스의 싱글을 피처링.
  102. [102] 1994년 노래가 2017년에 9위를 찍어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무려 발매 23년만에 탑텐을 기록했다.
  103. [103] 19번째 빌보드 1위로 기대를 모은 곡이지만 결혼등으로 인한 프로모션 중단으로 아쉽게 빌보드 19위에 그쳤다.
  104. [104] 08년 프로젝트 싱글. 15명의 여가수가 참여.
  105. [105] 19번째 빌보드 HOT100 1위가 될 수 있을거란 기대가 있었지만, 부상으로 인한 적은 프로모로 인해 불발되었다.
  106. [106] 이 공연이 머라이어가 감기로 인해 컨디션이 안 좋을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라이브와 그녀의 라이브 사상 최고의 고음인 5옥타브 라#을 냈다.
  107. [107] 당연하지만 그래미와의 관계랑은 다르다. 머라이어의 뮤직비디오가 딱히 작품성이 없었기 때문에 VMA에서의 수상이 없는 것일뿐이다. 그러나 그래미에서는 역대급 명반을 내놓았음에도 노미네이트만 주구장창 시켜놓고는 상을 거의 안 주었다.
  108. [108] 이 비디오를 본사람들은 대체 어디에 돈을 썼냐고 물을 수 있는데 비디오 속에 나온 머라이어의 얼터에고인 비앙카를 구현하는데에 상당수 돈이 들어갔다. 그 당시에는 CG 기술이 아직 발달이 크게 안되었기 때문에 엄청난 돈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109. [109] 정략결혼인 듯한 느낌을 물씬 풍긴다.
  110. [110] VMA 측이 머라이어와 사이가 나쁜 것인지는 모른다. 원래 이 시상식이 옛날부터 퍼포먼스형 가수 위주로 시상되던 시상식이다 보니 마돈나, 자넷 잭슨같은 댄스가수들과 락가수들이 상을 많이 타갔다. 현재에도 비욘세케이티 페리, 리한나, 레이디 가가 등 댄스와 퍼포먼스 위주 가수들에게 준다. 유튜브의 발달과 보는 음악의 확대에 따라 뮤직 비디오 자체의 작품성에 신경을 많이 쓰기 시작한 것도 있다. 이렇다 보니 디바형 가수들이 상대적으로 수상실적이 적다. 예외도 있는데 휘트니 휴스턴의 경우 대상 다음가는 본상격인 최고 여자 비디오 상을 탄 전적이 있다. 후배 디바인(락색채가 있지만) 켈리 클락슨도 2년 연속으로 최고 여자 비디오상을 가져갔다. 유독 머라이어에 대해서만 수상은 둘째치고 후보 전적도 1번 외에는 없다는 것이 팬들 사이에서도 의문이다.
  111. [111] 라기보단 사실 웃긴 뮤비라고 하는 팬들이 많다.
  112. [112] 당시 임신 중이었다. 그래서 확대수술로 커진 가슴이 더 크다.
  113. [113]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4억, <We Belong Together> 2억, <Touch My Body>,<Hero>,<Without You>,<Always Be My Baby>,<I Want Know What Love Is>,<My All>,Angels Cry>,<One Sweet Day>, 1억 특히 <Hero>와 <Without You>는 90년대 초반의 노래인데다가 뮤직비디오를 가장한 라이브 영상이다.또, <One Sweet Day> 같은 경우는 90년대 중반 노래인데다가 녹음하는 영상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녹음하는 장면만 나온다.
  114. [114] 그러나 이 셋은 유튜브가 발달하기 시작한 2000년대 후반에도 여전히 활발히 활동한 현역가수들이다. 머라이어는 유튜브의 발달 즈음으로 이미 중견가수였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대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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