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탈리카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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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메탈리카
METALLICA

멤버

제임스 헷필드, 라스 울리히, 클리프 버튼, 커크 해밋,
제이슨 뉴스테드, 로버트 트루히요

입성 연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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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왼쪽부터 제임스 헷필드, 깨알같이 모터헤드 셔츠를 입고 있는 론 맥거브니, 라스 울리히, 데이브 머스테인.

1982년. 왼쪽부터 故 클리프 버튼, 데이브 머스테인, 라스 울리히, 제임스 헷필드.

1986년. 왼쪽부터 故 클리프 버튼, 커크 해밋, 라스 울리히, 제임스 헷필드.

1990년. 왼쪽부터 제이슨 뉴스테드, 제임스 헷필드, 라스 울리히, 커크 해밋.

2004년. 뒷쪽의 왼쪽부터 로버트 트루히요, 제임스 헷필드, 커크 해밋, 앞쪽의 라스 울리히.

1. 소개
2. 디스코그래피
3. 로고
4. 멤버
4.1. 현재 멤버
4.1.3. 로버트 트루히요
4.1.4. 라스 울리히
4.2. 이전 멤버
5. 음악적 위치
6. 내한
7. 기타

1. 소개

80년대 헤비메탈 그 자체를 상징하는 아이콘[2]

언더씬의 신화

미국록밴드. 주된 장르는 헤비메탈, 그 중에서도 스래쉬메탈이라고 불리는 장르이다. 2017년 현재까지 정규앨범 10장을 발매하였고, 그래미 어워드를 8번 수상했다. 2003년에는 'MTV Icon'에 선정되었고, 2009년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커리어 통산 1억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한 밴드이다. 멤버들의 평균 나이가 50대를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시절의 패기 못지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그야말로 명실상부 최정상급 밴드다.

밴드명 작명 일화가 두 가지 있었다. 유력한 것은 라스 울리히의 설. 밴드가 결성되기 이전 라스 울리히가 어느 친구와 서로 메탈 밴드 이름 짓기를 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그때 그 친구가 지어낸 이름이 메탈리카였고 한순간 그 이름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던 라스가 "그 이름은 별로"라고 하고 다른 밴드명을 정하게 한 후, 자신이 메탈리카라는 밴드명을 가져갔다는 설이다. 페이크 앤 스틸! 두 번째는 제임스의 설. 친한 친구가 메탈 전문 잡지명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을 제임스가 훔쳤다고 한다.둘 다 도둑질

사실은 위의 두 가지 설이 섞인 것으로 밝혀졌다. 메탈리카 멤버들의 전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Killing Time>[3]에 따르면 라스가 친구의 헤비메탈 매거진 이름을 같이 고민하면서 지극히 덴마크인스러운 괴악한 이름들을 내놓았고, 그 친구는 Metallica라는 이름을 후보에 올린다. 라스는 잠깐의 머리회전을 거쳐 Metal Mania라는 이름이 더 나을 것 같다고 친구를 설득하고 결국 그렇게 된다. 그리고 그 친구는 몇년 후 전미를 강타한 메탈밴드 Metallica에 라스 이 놈이 드러머로 있다는 사실을 알고 멍때렸다고.

2. 디스코그래피

Discography

1983

1984

1986

1988

1991

<img src="http://is5.mzstatic.com/image/thumb/Music/v4/0b/9c/d2/0b9cd2e7-6e76-8912-0357-14780cc2616a/source/100000x100000-999.jpg" width="100%" />

<span style="text-shadow: 0 0 10px #FF2400;color:#FF2400"> Kill 'Em All

<span style="text-shadow: 0 0 10px #8FCAFF;color:#ffffff"> Ride The Lightning

<span style="text-shadow: 0 0 10px #FF0000;color:#FFF0F5"> Master of Puppets

<span style="text-shadow: 0 0 10px #FFFFFF;color:#000000"> ...And Justice For All

<span style="text-shadow: 0 0 10px #2F4F4F;color:#000000"> Metallica

1996

1997

2003

2008

-

<img src="http://is5.mzstatic.com/image/thumb/Music/v4/4f/96/c3/4f96c30f-af27-f525-8873-048fee872928/source/100000x100000-999.jpg" width="100%" />

<img src="http://is5.mzstatic.com/image/thumb/Music/v4/06/2d/b0/062db07a-eb08-c5b6-5b43-438212dda5d2/source/100000x100000-999.jpg" width="100%" />

<img src="http://is5.mzstatic.com/image/thumb/Music/v4/ea/4e/4d/ea4e4d60-8be6-89b0-8f76-df350c53876a/source/100000x100000-999.jpg" width="100%" />

-

<span style="text-shadow: 0 0 6px #F4A460;color:#808080"> Load

<span style="text-shadow: 0 0 6px #FFA500;color:#FFFFFF"> Re<span style="text-shadow: 0 0 10px #FFA500;color:#808080">load

<span style="text-shadow: 0 0 10px #FFA500;color:#DC143C"> St. Anger

<span style="text-shadow: 0 0 10px #BC8F8F;color:#C0C0C0"> Death Magnetic

TBA

※ 앨범아트를 클릭하여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

  • 정규 앨범 (괄호안의 판매량은 미국내의 판매량만 개재)
    • 1집 - Kill 'Em All (1983) 미국 내 3백만 장 판매 (1999년에 RIAA 인증 3x Platinum을 달성)
    • 2집 - Ride the Lightning (1984) 미국 내 5백만 장 판매 (1990년 닐슨 사운드 스캔 도입 이후 판매량은 430만 장. RIAA 인증 5x Platinum)
    • 3집 - Master of Puppets (1986) 미국 내 6백만 장 판매 (1990년 닐슨 사운드 스캔 도입 이후 판매량은 450만 장. RIAA 인증 6x Platinum)
    • 4집 - ...And Justice for All (1988) 미국 내 8백만 장 판매 (1990년 닐슨 사운드 스캔 도입 이후 판매량은 5백만 장. RIAA 인증 8x Platinum). 스래시메탈 밴드로서 메탈리카 팬들은 이 앨범을 끝으로 더 이상 메탈리카 음악을 듣지 않는 경우가 많다.
    • 5집 - Metallica (앨범 자켓이 검은 색이라 'The Black Album'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1991) 미국 내 1천 6백만 장 판매. RIAA 인증 16x Platinum이자 다이아몬드. 스래시 메탈은 아니지만 시원시원한 맛이 있어서 대부분의 팬들이 여기까지는 괜찮게 본다. Load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호평이 지배했었다.
    • 6집 - Load (1996) 미국 내 5백만 장 판매 (RIAA 인증 5x Platium)
- 음악의 변화가 너무 심했다. 그 전까진 국내에 CD가 없었으나, Load는 CD로 발매했으며, 그 CD를 사서 들은 사람들은 분노했다. 이때 메탈리카를 떠난 팬들도 많다. 메탈리카의 명곡 대부분이 1집에서 5집 사이에 있다.
  • 비정규 앨범
    • 1987년 The $5.98 E.P.: Garage Days Re-Revisited[4]
    • 1998년 Garage Inc.[5][6]
    • 2011년 Beyond Magnetic[7]

  • 라이브 앨범 및 비디오
    • 1987년 Cliff 'Em All[8]
    • 1993년 Live Shit: Binge & Purge[9]
    • 1998년 Cunning Stunts
    • 1999년 S & M[10]
    • 2009년 Français Pour une Nuit[11]
    • 2009년 Orgullo, Pasión y Gloria: Tres Noches en la Ciudad de México
    • 2010년 The Big 4 Live from Sofia, Bulgaria[12]
    • 2012년 Quebec Magnetic[13]

3. 로고

1982년 데뷔 당시의 데모앨범부터 5집까지 사용한 팀 로고. 삐죽빼죽 제멋대로인 느낌을 살려 스래쉬 메탈 밴드 로고의 정석으로 꼽힌다. 초기에는 위의 로고를 썼고, 2집쯤 이후로 아래의 3D화 된 로고또한 쓰였다. 아무래도 메탈리카의 전성기 시절 로고이다 보니 요즘 들어서도 메탈리카 상품 등에서 쓰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세히 보면 M과 A가 완전한 대칭을 이루지 못한다. 으아 강박증 이 폰트가 특유의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는지 Fear of God 같은 패션 브랜드도 차용하기도 한다.

6집부터 8집 활동 전까지 사용한 로고다. 뭉툭하고 말쑥한 폰트를 쓰며 얼트 & 하드 서던 록으로 전향했음을 보여준 상징적 로고다.

또한 이전 로고의 M자 4개를 배치하여 만든 마크를 함께 사용했다.

8집 활동시기동안 사용한 로고다. '00년대 초반 하드코어 펑크 기반의 뉴메탈의 느낌이 반영되었으며 원년 로고처럼 공격적인 느낌을 살리긴 했으나 앨범이 흑역사(...)가 되며 공식 로고로는 사실상 최단명했다.

2008년도 9집부터 사용중인 로고다. 원년 로고를 현대적 감각에 맞게 약간 다듬어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결국 얼트고 서던 록이고 뉴메탈이고 뭐고 가장 잘나갔던 시절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로 보인다. 중간에 A와 C의 자형이 신경쓰이는 사람이 몇 명 있을 거다.

10집 Hardwired... To self-destruct 활동을 하면서 사용하는 로고이다.

4. 멤버

사용하는 장비는 /사용 장비 참고

4.1. 현재 멤버

4.1.1. 제임스 헷필드

James Hetfield. 해당 항목 참조.

4.1.2. 커크 해밋

Kirk Hammett. 해당 항목 참조.

4.1.3. 로버트 트루히요

Robert Trujilo. '로버트 트루히요'라고 표기한다.[14]. 짧게 줄인 거고 본명은 로베르토 아구스틴 미겔 산티아고 사무엘 트루히요 베라크루스(Roberto Agustín Miguel Santiago Samuel Trujillo Veracruz)이다.

오지 오스본[15] 등 여러 밴드를 거친 베이시스트. 2001년 제이슨 뉴스테드가 탈퇴하면서 메탈리카의 베이시스트 자리는 공석이 되었고 임시변통으로 프로듀서인 밥 록이 8집 녹음과정에서 베이스를 잡았다. 이 앨범의 녹음이 거의 완료된 2003년경 로버트는 오디션을 통해 메탈리카의 4대 베이시스트를 맡게 된다.

오디션 당시 기존 멤버들[16]은 '클리프 버튼이 지금 경쟁한다 해도 뽑히기 힘들 정도', '참가자 중 연주에 가장 여유가 있었다(라스)', '연주하면서 우리와 호흡이 잘 맞았고, 클리프 이후로 그런 핑거 피킹은 처음 봤다(커크)', '핑거 피킹이 무슨 피크 연주 같다(제임스) 그게 마음에 들었으면 제이슨은 왜 잘랐죠'는 등 칭찬 일색.2분 57초부터 라스와 커크의 코멘트. 오디션 곡은 그가 직접 고른 Battery. 메탈리카의 수많은 스래시 넘버 중에서도 가장 빠르고 격렬하기로 손에 꼽는 곡을 완벽히 연주해냈다. 특히 For Whom The Bell Tolls에서 다른 후보들이 아마추어로 보일 만큼 엄청난 기량을 선보였는데, 메탈리카 특유의 중후함과 조합이 맞으면서도 기타 소리를 잡아먹을 듯한 연주로 멤버들을 뻑가게 만들었다. 특히 메탈리카의 경우 드럼, 기타의 사운드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라이브에서 베이스의 역할은 어느 밴드보다 중요하고 전임 베이시스트 둘과 로버트는 그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17]

기본적인 연주 스타일은 핑거 피킹. 메탈리카의 거의 모든 곡을 묵직하게 소화해내며 강한 근력과 자비없는 스트랩길이 파워풀한 베이스 출력이 더해져 피킹에 맞먹는 헤비한 느낌을 낸다. 그리고 메탈리카에서는 그런 곡이 적어 짧은 솔로로 간혹 맛만 보여주지만 슬랩 연주도 달인의 경지이다. 오지 오스본 밴드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매우 그루브 있는 연주도 들려준다. Infectious Grooves 시절 노래를 들어보면 슬랩핑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제이슨 뉴스테드가 베이스를 맡던 시절 스타일이 맞지 않아 그냥 제이슨이 싫었던 사실상 영구봉인되어 있던 명 연주곡 Orion을 부활시킨 계기가 된 연주자이기도 해서 영입 후 짧은 시간에 팬들에게 좋은 눈도장을 팍팍 찍으며 고정 멤버로 자리를 굳혔다. 특히 2006년 내한공연에서 보여준 트루히요의 Orion 연주는 백미.[18]

연주 스타일과는 별개로 비주얼과 퍼포먼스가 굉장히 유니크(...)하다. 우선 우락부락하고 그을린 얼굴과 길고 다부진 팔, 떡 벌어진 어깨와 두툼한 허벅지, 수염과 긴 머리를 다 조합해 한마디로 퉁치자면 유인원. 후술하는 바와 같이 퍼포먼스 또한 외모에 수렴해서(...) 팬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고릴라 같다고 놀린다. 유튜브에 업로드 된 2006년 서울 공연 영상 댓글 중에는 "저 베이스 든 유인원은 누구냐"는 댓글도 달리곤 한다. 험상궂어보이는 외모와 달리 멤버들끼리 찍은 영상을 보면 잘 웃으며 아주 재미있고 대인배 느낌이 드는 사람이다. 실제로 한 성격 하기로 유명한 잭 와일드나 음악인이 아니었다면 정신병자 취급 받았을 오지 오스본과 함께 밴드 생활을 한 경력만 봐도 이 사람이 보통내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그가 메탈리카에 처음으로 들어간 시기도 제임스 헷필드가 알코올 중독에 빠지며 밴드 내 알력다툼이 격렬했던 때였다.

그의 인터뷰만 봐도 알 수 있다시피 한 개성하기로 유명한 음악인과 함께 지내며 존중할 줄 아는 자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멤버들과 불화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퍼포먼스 이야기를 하자면 위의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 베이스가 무릎까지 내려올 정도로 스트랩을 길게 늘어뜨리고 무릎을 굽혀 반쯤 웅크린 채로 연주하는데, 심지어 'For Whom the Bell Tolls' 등 미디움 템포 메탈을 연주할 때는 무릎을 구부린 채로 점프하거나 쪼그린 채로 오리걸음을 (...) 개방현을 연주하는 파트에서는 풍차돌리기 (......) 를 하기도 하는 등 기행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밥 먹듯 펼친다보다 보면 침팬지 같다. 잠깐 보기에는 웃길 뿐이지만 이 짓을 두시간 반씩 해낸다는 점에서 이 양반의 다리와 허리 근력을 짐작해볼 만도 하다. 변강쇠 또한 오만상을 찌푸리며 연주하는 통에 유인원스러움(...)이 극대화되는 편. 무대 의상은 합류시점부터 2015년까진 주로 농구 저지에 반바지, 종아리까지 올려신은 양말과 운동화(또는 슬리퍼). 패션 테러 5집 이후로 주로 검고 스키니한 의상에 구두를 신는 다른 멤버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튀었다. 그래도 2016년 즈음부턴 검은색 진을 입는 등 멤버들과 어느정도 패션을 맞추어서 이전만큼 튀진 않는다. 어찌됬건 저런 로버트 특유의 퍼포먼스들이 메탈밴드에 굉장히 잘어울린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2017년 홍콩 공연 모습)

기타도 잘 친다. 통기타 하나로 즉석에서 플라멩코 리프를 만드는데 제임스가 그걸 보고 뻑간다. 뒤늦게 그 자리에 들어온 커크는 그걸 듣고 딴다고 매의 눈을 하고 있었다(...) 기타리스트들이 베이시스트한테 기타를 배우는 안습의 상황. 생계걱정을 해야겠는걸.

다만 박력있는 핑거 피킹에 어울리지 않게 백업 보컬로서의 역량은 제이슨 뉴스테드의 빈 자리를 완벽히 채우지 못한다는 평. 제임스 헷필드의 목이 맛이 가는 와중에도 뉴스테드가 메탈리카 소속으로서 말년까지 혼자 대악마스러운 성량의 그로울링을 뽐내며 고군분투 한 것에 비해 트루히요는 목을 긁는 톤을 제대로 내지 못해 두 멤버는 상당히 자주 비교된다.[19] 메탈 밴드 보컬이라기 보다는 밝은 분위기의 힙합 크루의 하울링에 가까운 음색. 알콜 중독과 거듭된 공연으로 일찍 목이 가버린 헷필드가 제대로 된 성량을 선보이지 못하는 와중에 백업 보컬로서 뉴스테드와 색채가 확연히 다른 트루히요가 영입되면서 메탈리카의 전체적 보컬 출력이 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데에 이견이 없는 편. 제이슨이 제임스와 자웅을 겨루듯 마이크 볼륨을 한껏 높였던 과거에 비해 트루히요의 배킹 보컬은 곡을 대충 듣다보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볼륨이 낮게 설정되어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일단 유튜브에서 Creeping Death나 Fuel의 서울 라이브를 봐보자 이 양반 생각난다 장르가 다르잖아 얘네 장르파괴자 아니었나

여담으로 제임스 헷필드가 원형탈모, 라스 울리히가 앞머리 후퇴, 커크 해밋이 해가 갈수록 눈에 띄게 숱이 줄어가며 가늘고 희끗희끗해지는 등 젊은 시절의 머리를 잃어가는 것에 비해 로버트 트루히요는 혼자 검고 풍성한 장발을 자랑하고 있다. 메탈리카의 자존심을 담당한다! 그러나 2016년 기준으로 로버트도 슬슬 하얘지고 있다. 이대로 백탈리카가 되는 건가

2017년 내한공연 직전 인터뷰에서 "형이 사랑한다" 횽이... 솨뢍... 한다! 라고 말하기도 했으며(이 영상은 유니버셜 뮤직 공식 페이스북에 있다.) 작별 인사를 할 때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기도 했다. 캄사합니돠아! 언제나 인삿말 후에 팔을 활짝 벌리고 해맑게 웃는다

아들 타이 트루히요 역시 베이시스트로 2017년 현재 필디 대신 의 투어를 돌고 있다. 근데 12살이다. 흠많무

4.1.4. 라스 울리히

Lars Ulrich. 출생지인 덴마크 발음으로는 라스 울래그, 주 활동지인 미국식 영어 발음으로 라즈 얼리크[20], 동명이인이 가장 많은 독일식으로는 라스 울리히라고 발음한다. 전세계에 흔해빠진 게르만-노르딕 계열 이름 중 하나로 발음에 별로 일관성이 없으며 동아시아권에서는 주로 독일식으로 읽는다. 키는 166cm로 멤버 내 최단신이다.

1992년 라이브때 멤버들끼리 포지션을 아예 맞바꿔서 다이아몬드 헤드의 Am I Evil?을 커버했던 적이 있었는데, 보컬을 맡았던 라스는 오지 오스본액슬 로즈 그리고 이기 팝을 적절히 섞은듯한 광란의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아무래도 이런거엔 능력이 있었는듯. 마이크 포트노이 도 모 인터뷰에서 '이런저런 비판이 있지만 그의 무대 장악력만큼은 굉장히 존경한다.' 고 말한 바 있다.

연주력이 부족한 드러머로 데뷔시절부터 꾸준히 까이는 기믹이 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이는 사실이 아니고 아주 명 연주가 급은 아니지만 수십년간의 프로 뮤지션 생활을 했는데 당연히 굉장히 잘친다. 메탈리카의 데뷔작인 Kill'em All 때도 당시 다른 샌프란시스코 출신 스레쉬메탈 밴드들과 비교해도 크게 뒤떨어지는 연주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다만 그렇다고 대단히 훌륭한 개성이 부각되는것도 아니다. 박자감에는 실제로 약간 하자가 있었는지 5집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프로듀서인 밥 록이 라스가 박자를 잘 못 맞춰서(...) 메트로놈을 놔두고 계속 연습을 시켰다는 일화가 유명하다.[21] 데뷔 10년차 연습생 1980년대와 90년대 영상을 보면 템포가 어긋나는 부분에서 어떻게는 자신의 포지션인 리듬 기타로 매꿔보려고 제임스는 숨이 넘어간다. 유튜브에서 Lars drum fail을 검색하면 많은 영상이 나오니 시청할 수 있다. 인트로부터 어긋나는 템포 그리고 큰 미스가 없더라도 살짝 박자를 이탈하는 미미한 실수는 라이브 영상을 집중해서 들으면 엄청나게 많이 들을 수 있다.[22]

그가 플레이한 기타 히어로 드럼 영상은 아직까지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테이크 1에서 5까지 인트로에서 계속 실패하는 건 기본이요, 테이크 6에서 쉴 새 없이 두드렸는데도 결과는 Failed, Try Again. 심지어 바탕곡은 4집의 The Shortest Straw(...) 엄청 빠르거나 어려운 곡도 아닌데 자기 곡의 박자를 못 맞추는 건 아주 심각한 문제다.나 이런거 되게 빨리배움ㅋ 본인곡인데?

몇몇 곡을 라스의 연주 스타일로 커버해놓은 영상이 유튜브에 적잖이 떠돌아다니는데, 뜬금없이 들어가는 차이나 심벌에, 생뚱맞은 필인, 라이브 중에 하는 퍼포먼스 등이 참 좋지 않은 의미로 인상적이다.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 26초 부분이 이 영상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https://youtu.be/_MnYTN2Lf98 — 뭔가 이쯤되면 라스흉내가 유튜브 드러머들 사이에서 유행화 되는거 같기도 하다

자기의 우상인 모터헤드의 레미 킬미스터를 초청해 모터헤드의 곡을 공연을 했었다. 연습 때 제임스가 "저희 어때요, 모터헤드 멤버가 될 수 있을까요?"라고 장난식으로 물어봤는데, 레미가 가차없이 "드러머 빼고 다 좋아"라고 정면에서 까였다(...)

젊은 시절에는 딸리는 박자감을 정신 나간 듯한 고속 난타와 귀가 쩌렁쩌렁 울리는 파워풀한 연주[23]로 커버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연주 속도나 더블 베이스를 연타할 힘이 줄면서 전체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그나마 그런 기량마저 급격히 하락했다. 전성기 당시 배터리 라이브와 지금의 배터리 라이브 속도를 비교하면 템포도 더 느려지고 라스가 연주할 노트도 엄청나게 줄었다. 2010년대 들어서는 더블 베이스 연타가 오래 들어가는 곡들은 라이브 셋리스트에 거의 안 넣는다. 심지어 멀쩡한 곡에서 더블 베이스 연타를 빼버리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Battery.] 무슨 지거리야!!! 슬레이어데이브 롬바르도와 비교하자면 안습... 하긴 옛날부터 데이브랑 비교하긴 좀 그랬었다(...). 메탈리카가 슬레이어 3집의 Raining Blood를 커버해 연주할 때 라스는 드럼 파트의 45%를 생략해 지금 내가 슬레이어의 곡을 듣는 건지 메탈리카 신곡을 듣는 건지 헷갈리게 할 정도이며[24] 2004년 다운로드 페스티벌 공연에서 부상당한 라스를 대신해서 데이브 롬바르도가 몇 곡을 연주한 영상에는 댓글에 노골적으로 "메탈리카에 드러머가 생겼다.", "난 라스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100배 정도 낫다.", "이대로 갑시다!" 등 칭찬일색이었다. 요약하자면, 젊은 시절에는 자기 마음대로 드럼을 패느라 제대로 된 연습을 하지 않았고, 그 이후에는 자기의 인기에 취해 연습하지 않았으며, 이제는 나이먹어 연습할 생각도 안 하는 꼴이 되었다. 사실 연습 안 한다고 본인도 인정했고. 라이브 때 체력관리를 위해 조깅 정도만 하고 감각을 잃지 않으려 대충 시간 날 때 몇 번 두들기기만 한다고 한다.[25]

한편으로는 이것이 메탈리카가 90년대 이후에 보여주고 있는 방향성이라고 변명을 하기도 한다.[26] 기량 파워겠지, 이 양반아[27]이 떨어지기 한참 이전인 90년대 중반부터 메탈리카는 얼터너티브와 서던 록을 결합한 음악을 시도했는데, 이때는 때려부수는 듯이 난타하며 '우리 노래는 난폭하다'라고 외치는 듯한 1차원적인 공격적 넘버들을 버리고 '80년대식 스피드 메탈이 아니어도 우리는 여전히 헤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듯한 곡들을 전면 배치했었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탐탐을 6~7개씩 주렁주렁 달고 다니던 야성적인 드럼 셋이 단 몇 년 만에 대폭 간소화되었고 적은 숫자의 악기들로도 상당히 괜찮은 연주를 보여주었다. 다만 다시 진면목을 보여줘야 할 9집 이후의 행보에서 80년대 스타일의 연주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린 듯한 처참한 모습을 자주 보이고 있는데, 그냥 단순히 90년대부터 갈수록 기량이 떨어지는 거라고 비판해도 쉴드쳐 줄 개인팬이 없어 라이브 영상이 공개될 때마다 죽도록 까이고 있다.

다른 프로 드러머와 비교하여 작곡, 작사 능력은 뛰어날지 모르겠지만 드러밍 테크닉적으로 프로라는 말을 붙여주는 것은 비슷한 나이대의 다른 드러머에게 실례될 수준으로 기량향상이 없다. 특히나 비슷한 연배인 데이브 롬바르도(슬레이어), 찰리 베넌티(앤스랙스), 닉 멘자(메가데스), 가 사무엘슨(메가데스), 진 호글란(다크 앤젤), 스콧 트래비스(레이서 X) 등의 스래시/파워 메탈 드러머들이 메탈 드럼계에 입지전적인 인물들이라 이들과 지속적으로 비교를 당한다.

뿐만 아니라 앨범이 거듭되면 거듭될수록 작곡 면에서도 리스너들에게 거세게 난타당하고 있다. 제임스와 함께 대부분의 작곡을 맡고 있는데 자꾸 3집 시절의 영광을 돌이키고 싶은지(...) 혼자 대곡을 만드는 데에 집착해서 8집 이후 메탈리카 앨범의 밸런스를 못 맞추고 있다.[28] 별다른 리프 전환이나 변주가 있는 것도 아닌데 곡들마다 무차별적으로 평균 6~8분 분량으로 잡아늘려놓는 바람에 집중도와 퀄리티가 떨어지는 동시에 라디오에서 틀 수 없는 분량의 곡들이 되어버리는 등 앨범 흥행이나 홍보 등 여러 방면에서 애매해지게 하는 원흉.

이런저런 비판이 있지만, 특유의 스타일이 메탈리카의 음악을 규정짓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데, 작곡가로서는 좋은 평가를 받는다. 드러머의 실력과 안정감은 라이브 연주를 하는 드러머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29]기에 이제 새 드러머를 구해야하지 않을까라고 팬들은 생각하지만 그래도 메탈리카스러운 드러머를 구하는 건 쉽지 않고, 또 라스의 엉성한 드러밍도 이젠 적응이 된 팬들이 많은지라...

일본의 헤비메탈 밴드 VOW WOW극렬한 빠돌이로도 유명하다. 데뷔 전부터 공연장도 찾으며, VOW WOW가 낸 전 앨범을 모두 다 소장하고 있다.

라스 울리히는 대단한 순수미술 애호가이며 음악가인 부친 토벤 울리히 덕에 색소폰 연주자 덱스터 고든대부(가톨릭)로 두었다. 그래서 드럼 연주 역시 일반적인 스래쉬 메탈들에 비해 멜로디와의 적절한 밸런스를 따르고 있다. 본인은 당시에 삭막했던 덴마크의 락, 메탈 씬에서 벗어나 멜로딕한 전개를 할 수 있게끔 드러밍을 하고자 했다고 한다.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와도 사이가 좋으며, '라스를 찾으려면 오아시스 공연장에 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오아시스의 음악을 좋아한다.[30] [31]

또한 그는 드럼을 잡기 전엔 음악가인 동시에 프로 테니스 선수였던 아버지 토벤의 영향으로 테니스를 했었으며 드럼 플레이 때 그때 기른 체력이 도움이 됐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그런 거 없고 조루지만(...)

여담으로 라스 울리히의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밴드는 메가데스(...) 호랑이 새끼를 키웠구나

독설가 기타리스트로 유명한 잉베이 맘스틴은 스래쉬 메탈 분야에서는 메탈리카가 최고라고 평가했었고, 라스는 대단한 드러머라고 칭찬했었다.[32]

2016년 미국 대선 때 트럼프가 당선되면 덴마크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설마 메탈리카 해체는 아니겠지

4.2. 이전 멤버

  • 론 맥거브니(Ron Mcgovney) - 베이스 (1982년)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제임스 헷필드의 친구였고 메탈리카의 원년 멤버 중 한 명이다.[33] 차를 소유하고 있어서 밴드의 매니저를 도맡아했고 메탈리카의 초기 데모도 그의 지하실에서 녹음될 정도로 밴드의 물주 역할을 했지만 데이브와 라스가 댁이 하실 말씀은 아닌데요. 그의 베이스 실력을 문제삼기 시작하면서[34] 멤버들과 충돌이 생기기 시작, 라스 울리히가 밴드의 연고지를 LA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옮긴다고 하자 당연히 이에 반발하며 탈퇴했다. 어찌보면 당시 어렵게 생활하던 시기에 베이스뿐만 아니라 매니저의 역할까지도 하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니 론의 입장에서 나머지들은 천하의 개객기들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고 당시 멤버들과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35] 이후 론은 베이스 기타와 앰프를 팔고 음악계를 떠났다가 제임스와의 친분으로 메탈리카 30주년 라이브에 출연하였다.
  • 클리프 버튼(Cliff Burton) - 베이스, 배킹 보컬 (1982년~1986년, 1986년 9월 27일 사망) 해당 항목 참조.
  • 밥 락 (Bob Rock) - 베이스, 배킹 보컬 (2001년~2003년) : 제이슨이 탈퇴부터 로버트 가입까지 베이스 공백시기에 프로듀서인 밥 락이 베이스를 연주하였다.

5. 음악적 위치

1980년대 활동을 시작한 밴드 중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스래시 메탈 밴드

위 공연은 영국의 록 페스티벌인 몬스터즈 오브 락의 1991년 유럽 투어 중, 모스크바 투시노 비행장[37]에서의 공연이다. 관객들은 적어도 10만 명 이상 몰려든 것으로 추정되었고 이렇게 많은 관객들을 통제하기 위해 구 모스크바 군병력이 동원되었다. 후에는 이 관객들과 함께 공연에 열광하는 군인들의 모습도 볼거리다. 하지만 메탈리카의 악질 팬들이 저 공연 하나로 메탈리카를 우주 최고의 밴드로 칭송하는 경우가 많으나 저기 있는 모든 사람이 전부 메탈리카만 보러온 것은 아님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저 공연에는 무려 판테라, AC/DC 등 메탈리카와 맞먹거나 능가하는 밴드도 있었다.[38] 당시 공연을 했던 밴드 중 메탈리카의 영상에서 개미 떼 같은 관중들이 잘 보였기 때문에 전설로 남은 것이지 메탈리카의 독무대는 절대 아니었으며[39] 유튜브에 남아있는 판테라와 AC/DC 공연 영상을 자세히 보면 공연에 열광하던 군인들과 개미 떼 같은 사람들이 그대로 다 있다. 즉 저 공연은 공산주의의 붕괴와 동구권 해방 직후 모스크바에서 처음 이루어진 대규모 공연이기도 하고 억압적인 공산체제가 무너지고 서구 자본주의의 과격한 음악인 메탈이 공산권의 총본산이었던 도시에서 벌어진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이 몰려든 것이다. 즉 스래시 메탈 그룹으로서 유래 없이 높은 인기를 구사하고 대중적인 스래시메탈 사운드를 구사하여 하드 록이나 메탈을 즐겨 듣지 않는 청취층을 끌어들이며 이 계통의 음악을 보급한 데에 큰 역할을 한 것만은 사실이지만 그 이상 록 전체를 정벌했다는 식의 평가는 당시 메탈리카의 인기 상승 단면만 보고 메탈리카를 과도하게 우상화한 평가이다.[40]

메가데스와 함께 스래쉬 메탈계를 이끌어가던 쌍두마차로 4대 스래쉬 메탈(메탈리카, 메가데스, 슬레이어, 앤스랙스)중 가장 대중적인 스래시 메탈 사운드를 구사했고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6집 Load부터[41] 음악성이 얼터너티브적으로 변하기 시작하여 엉터얼터리카라는 이름까지 붙었고[42] [43] 그러나 이마저도 St. Anger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듯.

블랙 앨범 이후로 발표한 정규앨범들(후술의 Death Magnetic 포함)이 5연속으로 발매 첫 주에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여 4연속인 비틀즈를 누른 록 밴드가 되었다.(물론 전체 판매량은 당연 비틀즈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최근 라이브 셋 리스트를 보면 Load, Reload의 수록곡은 다소 적게 라이브되고 있다.(Fuel과 The Memory Remains는 자주 라이브를 선보인다.) 물론 St. Anger보다는 많이 연주되고 있지만.

2008년 Death Magnetic으로 과거의 스래쉬 스타일로 블랙 앨범 이후로 무려 17년 만에 돌아왔다.[44]

2011년의 콜라보레이션 앨범 Lulu에선 벨벳 언더그라운드 출신의 고참 뮤지션인 루 리드와 함께 작업한 곡들이 실렸다. 루 리드가 보컬을 맡고 메탈리카 멤버들은 악기 연주 파트를 담당하는 식.

맨 처음 유튜브에 공개된 The View라는 곡인데, 최악이다.(...)[45] 결국 세인트 앵거 이상의 괴작으로 판명되었다.(...)

프로그레시브 락 팬들은 좋아할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프로그레시브 락 팬에 대한 모독이다.[46] 이게 어디가 프로그레시브야 거기다 판매 전에 무료로 다운 받을 수 있게 했기에 그 정체를 전 세계인이 눈치 채버렸다!(...) 가장 먼저 뚜껑이 열린 The View가 제일 고퀄이라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나머지 트랙들은 엄청난 불협화음을 자랑한다.

일반 리스너들이 이러한데 평론가들의 평도 당연히 영 좋지 않다. James 'the table' Hetfield Chop your breakfast out of TABLE!!! I AM THE TABLE!!! 신랄한 비유를 인용하자면, 사악한 메탈 키드들이 왕년에 잘 나가시던 할아버지를 스튜디오에 모셔놓고 제멋대로 놀려먹는 듯하다고.(...) 물론 메탈리카가 이젠 왕년에 잘 나가던 메탈 키드지만 이는 루 리드와 메탈리카와의 근본적인 스타일 차이에서 기인한다. 루 리드의 '읊조리는 듯한' 보컬 방식은 메탈리카의 헤비한 사운드에서는 묻히기 쉬워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Pumping Blood라는 곡을 들어보면 육중한 드럼 사운드 밑에 깔려 애처롭게 "피가 솟네~"를 외치는 루 리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강한 사운드와 약한 보컬의 조화라면 사실 다른 쪽에서 나름 개념 있게 소화했었다. 포스트락/포스트하드코어는 물론 심지어 브루탈 이모코어 같은 괴상한 장르까지. 스타일 차이 문제는 핑계에 가깝고, 그냥 허접한 앨범이었을 뿐이다. 이 멤버의 메탈리카는 세인트 앵거를 만들었었다는 걸 기억하자(...)[47]

2012년 가을의 인터뷰에서 메탈리카 멤버들은 10번째 정규 앨범을 제작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컨셉이나, 곡에 대한 구성 같은 것은 아직 확실하진 않다고. 최근 신보를 5년에 하나 꼴로 내는 메탈리카인 만큼, 2013년 하반기나 혹은 2014년까지도(...)기약해봐야하지 않을까 싶기는 했다.[48]

2014년 4월 10집이 발매가 된다면에 들어갈 신곡, Lords of Summer가 공개되었다!

물론 유튜브에서 감상 가능

2015년 4월 인터뷰에서 커크는 10집이 4집과 비슷한 컨셉의 프로그레시브한 앨범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러나 얼마 후 커크의 아이폰이 분실되면서 그 안에 들어 있던 250여 개 가량의 기타 리프도 같이 사라져버렸다. 기억나는 리프는 8개 정도 뿐이라고... 사라진 리프 중에 명곡으로 태어났을지도 모르는 리프가 있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면...아무래도 10집 발매는 더 멀어질 것만 같다. 예끼 Lords of summer니까 아무리 빨라도 2016년 여름까지는 기다려야 한다고 카더라

결국 신곡(?) Lords of summer가 나온지 2년이 다 되어가는데 신보 소식은 아직 많이 먼 것 같다.

메탈리카 사이트에서 로그인 한 뒤, 곡의 녹음 현장(매우 약간의 리프를 들어 볼 수 있다)과 곡의 일부분을 재생하는 영상을 볼 수 있다. 가입하기 귀찮으면 유투브에 'Metallica new'를 검색하자. 친절한 팬들이 알아서 올려주신다

빌보드 닷컴과의 인터뷰에서 라스 울리히가 밴드의 새 앨범은 곧 발매될 예정이지만, 올해 안에는 발매가 어려울 거라고 이야기 했다.

라스는 메탈리카가 레코드 스토어 데이에 대사 자격으로서 여러 일을 해야 하며, 그 외에도 과거 발매된 ‘Kill ’EM All’과 ‘Ride The Lightning’의 디럭스 에디션 관련 작업 및 해당 앨범에 대한 홍보, 그리고 AT&T 파크 및 그 외 다른 장소에서 가질 대형 공연들 때문에 올해안에 신보를 발매하는 것은 무리일 거라고 이야기 했다. (...) 이미 팬들은 해탈했다. 라스는 또한 새 앨범은 전작 ‘Death Magnetic’보다 ‘빠른’ 앨범이 될 거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얼마 후의 라스 울리히의 인터뷰에 따르면 올 여름 새 앨범 작업이 완료될 거라고 했으며, 올해 안에 발매를 희망한다고 했는데, 최근 타이틀곡 Hardwired의 공개와 함께 2016년 11월 18일에 신보를 공개한다고 밝혔다. Hardwired... to Self-Destruct참고. 그리고 많은 팬들의 걱정대로 커크의 작곡이 하나도없다. 아이폰!!

6. 내한

대한민국에서는 1998년 4월 24일, 25일, 2006년 8월 15일, 2013년 8월 18일, 2017년 1월 11일에 내한공연을 한 바가 있다.

1998년 4월 24일, 25일 양일간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첫 내한 공연을 하여 총 3만 5천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등 엄청난 흥행을 하였는데, 이 첫 내한공연이 성사되기까지의 이면에는 그야말로 전설적인 비화들이 있었다. 1997년에 내한공연이 기획되어 계약이 성사되었다가 IMF 외환위기 사태로 환율이 배 이상으로 급등하는 바람에 계약금도 배로 껑충 뛰어 공연기획사가 엄청난 손실을 볼 상황이어서 내한공연 자체가 흑역사가 될 뻔 했으나, 기획사 측에서 메탈리카 측에 한국 환율상황 기사 스크랩을 보내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메탈리카가 자신들의 개런티를 25만 달러나 깎아주는 대인배의 면모를 보여주었고 다행히 순조롭게 첫 내한공연이 진행될 수 있었다고 한다.

종로 낙원상가 앞 시장에서 찍은 사진. 남대문시장에서 찍은 사진으로 잘못 알려져 있으나 첫 내한때 가이드가 가고 싶은 장소가 있냐고 물어보자 메탈리카가 '악기를 파는 곳을 보고 싶다'고 했고, 당시 낙원상가 앞에는 국밥집 등이 밀집한 시장골목이 있었다. 가게 앞에 걸려 있는 돼지머리를 본 멤버들이 신기해서 방문한 것.

이제는 전설 아닌 레전드가 된 돼지머리와 헷필드

뽕삘 제대로 받은 해밋

첫 내한공연에서 한국 팬들의 열광적인 떼창에 감동 먹은 메탈리카는 다시 한 번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겼고, 8년 뒤인 2006년 8월 15일 광복절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두 번째 내한 공연을 성황리에 마치며 그 약속을 지켰다.

2006 메탈리카 내한공연 당시 MBC의 공연실황. 이 영상은 그 자체로 매우 훌륭한 편인 데다가, 전세계 메탈리카 팬들에게는 거의 '필시청'급이 되어버렸다. 이 공연을 두고 항상 회자되는 Master of Puppets 기타솔로 떼창 역시 현장감은 떨어지지만 생생히 잘 들린다.

이 내한공연에서 특히 Master of Pupptes는 전 세계 메탈리카 골수팬들의 주목을 받게 되는데, 메탈리카는 90년대 이후 라이브에서 Master of pupptes를 스튜디오 버전 그대로 완주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49][50] 99년 S&M[51][52]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전무한 상태.[53] 그런데 06 내한때 무려(!) Master of Pupptes 스튜디오 버전 그대로를 완창해버린다(!!) 이후 다른 라이브에서 눈에 띄게 스튜디오 버전의 완주를 꽤 자주 볼 수 있는데, 06 내한때 관중들의 입솔로(...)에 너무나 감명을 받아서 스튜디오 버전을 계속 하는게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 공연의 오프닝을 섰던 밴드 TOOL에게는 악몽 같은 공연이었을 것이다. 무더운 날씨에다가 공연주최 측의 병크로 관객 입장도 안 된 시간에 갑자기 공연이 시작되었고 일부 무개념 메탈빠들은 달리는 곡이 없다며 밴드에게 물병을 집어 던지는 만행을 보였다. 결국 참다못한 밴드의 보컬 Maynard James Keanen은 마지막 곡 시작전에 "This is the first time in Korea and it will be the last time in Korea"라는 멘트를 했다...[54] 참고로 TOOL은 해외에서 굉장히 인기가 많은 밴드이며 미국 언론에서는 "어떻게 툴이 단독이 아닌 서포트 공연을 하는 취급을 받아야 하나?" 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55] 아이러니하게도 이 공연을 끝으로 툴 팬이 많이 생겼으며 더불어 메탈리카의 안티가 일시적으로 급증하기도 했다.(한국에서만이다.)

2013년 8월 17~18일에 열리는 현대카드 시티브레이크에 둘째날 헤드라이너로 공연했다. 공연 셋리스트 제임스의 입국지연 및 그날이 생일이었던 스탭에게 깜짝파티를 해준다는 이유로(...) 30분이나 늦게 무대에 올랐지만 대신 예정시간 2시간을 훌쩍 넘겨 공연했다.

그리고 2017년 1월 11일 수요일 오후 8시 내한공연이 확정되었다! 장소는 고척 스카이돔. 이번 공연의 기획사는 액세스로, 오프닝 무대에 게스트로 불러온 밴드는 BABYMETAL. 덕분에 양 밴드의 팬들은 각자 환호했다. 다만 BABYMETAL의 공연 때부터 사운드 상태가 영 좋지 않았고, 이 때문인지 본 공연도 30분이나 늦게 지연되었다. 지연되는 와중에도 사운드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는지 본 공연 때도 문제가 조금씩 보여서 아쉬운 점을 남겼다. BABYMETAL 반응은 2006년 오프닝 담당이었던 툴에 비하면 의외로 괜찮았으나 그리 큰호응은 얻지는 못했다. 중간에 세션멤버들이 master of puppets의 간주부분을 살짝 연주해주자 얼음상태로 지켜보던 메탈리카 팬들에게 환호성을 받았고 BABYMETAL의 곡인 Catch Me If You Can의 솔로 연주부분에서 환호를 받았다. 그리고 BABYMETAL을 보러온 일본인 무리가 있는곳에서 어느정도 환호가 있었다.

10집 발매 기념 투어라서 그런지 홍보도 겸해서인지 10집의 곡들이 유난히 많이 나왔다. 'Dream No More' 빼고 디스크1의 곡을 전부 연주했다! 그 외에 5집도 5곡이나 연주하는 등 비중이 높았고, 1,2,3,4집에서 각각 2곡 정도씩 연주되었다. 6집부터 9집까지의 곡은 하나도 안 나와서 아쉬운 팬들도 있었을 듯. 특이하게도 보통 메탈리카의 공연은 Enter Sandman이 끝난 후 앵콜 곡을 3개 정도 연주하면서 마지막을 Seek & Destroy로 장식하였는데, 이번 공연의 경우 Seek & Destroy를 끝낸 후 앵콜을 유도한 다음 Battery를 필두로 Nothing Else Matters-Enter Sandman으로 공연을 마무리하였다.

7. 기타

최근에 메탈리카 멤버들이 최고급 남성정장 브랜드인 브리오니의 모델이 되었다. 이미지를 보면 알겠지만 간지 작살. 링크

너 고소! 뜨끔

라스 울리히의 주도로 2000년도에 냅스터와 이용자 30만 명을 불법 다운로드고소미먹인 일이 있었다.[56] 결국 냅스터는 서비스를 중지했지만 당시 리스너들은 메탈리카를 좋게 보지 않았다. 저작권 개념을 설명하는 책에는 이 이야기가 예시로 들어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 일에 대해 림프 비즈킷는 메탈리카를 비꼬았고 RATM의 톰 모렐로는 냅스터를 홍보하였다. 슬레이어의 게리 킹은 고소할 시간에 드럼 연습을 더 하라며 충고를 시전하였다. Global Metal이라는, 전세계 메탈신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서는 라스를 인터뷰하면서 이란 등 메탈 음악이 금지된 국가에서 인터넷을 통한 무단공유로 메탈신이 성장, 유지되는 것에 대해 그 견해를 묻는 극딜을 시전하기도 했다. 여기에 당항하며 떨떠름하게 좋은 일이라고 대답하는 라스의 표정이 압권.

백괴사전에서도 이걸 비꼬고 있는데, 라스 울리히와 미국음반산업협회가 무슨 매카시급의 인간말종으로 묘사되어 있다.(...) 자기가 만든노래에 자기가 저작권을 행사하는것도 욕먹을짓인가?

비틀즈의 노래와 메탈리카의 음악 스타일을 적절히 커버한 밀워키 출신 카피밴드 비탈리카가 그들을 카피한 대표 밴드다. 메탈리카가 소송을 걸 법도 한데 오히려 비탈리카가 자신들의 음악을 커버해줘서 무척이나 고마워했다고. 심지어 비틀즈 앨범 판권을 가지고 있는 소니뮤직에서 비탈리카에게 소송을 걸었는데 메탈리카가 비탈리카 측의 입장을 변호해줘서 이 역시 원만하게 넘어갔다. 역시 대인배 메탈리카. 오오오. 잠깐만 앞의 냅스터 이야기와는 다르잖아 뭐 이래[57] 영화 불법다운로드와 영화 리메이크의 차이라고 보면된다. 전자는 개인의 창작물을 불법으로 다운받는건데 왜 소송을 걸면 안된다는 뉘앙스를 풍기는건가? 남이 자기 돈 들여서 만든 앨범인데, 메탈리카는 유명하고 돈도 많이 벌었으니까 불법다운로드를 해도 된다는건가? 저작권에 대한 인식개선이 시급한 부분이다.

왠지는 몰라도, 스래쉬 메탈 BIG 4중에서 커버를 가장 맛깔나게 잘한다는 인식이 있다(...) Garage.inc 앨범 때문에 그런 듯.

의 BGM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비단 메탈리카뿐만 아니라 당대 미국 헤비메탈 넘버들의 영향을 골고루 받은 것에 가깝지만). 가령 둠1에서 유명한 곡인 1에피소드 맵1 BGM의 메인 기타리프는 No Remorse 혹은 Master of Puppets의 기타리프를 차용했다는 설이 중론이다. 둠의 미디 BGM 작곡자는 바비 프린스라는 사람이지만 당시 이드 소프트웨어의 쌍두마차였던 존 로메로가 메탈 리스너였기 때문에 그의 입김이 미쳤다고도 볼 수 있는 부분.

80년대 초반에 부른 Seek & Destroy와 2009년에 부른 Seek & Destroy를 비교해보면 사람 목소리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알 수 있다. (2005년이라고 나오는 것은 'We are scanning the scene in the Seoul tonight' 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 2006년 8월 15일에 우리나라에 내한 왔을 때의 공연인 듯하다. Seek & Destroy는 라이브에서 부를 때마다 원 가사의 'City' 부분을 공연하는 도시의 이름으로 바꿔서 부른다.) 링크

그리고 2011년 12월 5일부터 10일까지 30주년 기념 공연을 열었다. 그것도 81년 데뷔 때의 입장 가격 그대로 티켓 값 6달러에 이 공연에는 루 리드, 오지 오스본, 데이브 머스테인,(!!) 제이슨 뉴스테드, 롭 핼포드 그리고 초창기 멤버 론 맥거브니까지 수많은 게스트들이 나와 훈훈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기념공연 사진

4대 스래쉬 메탈밴드보다 아이유가 위대하다고 한 이들이 있다.#[58]

최근에 유럽에서 2012 European Black Album Tour라는 투어를 돌았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겠지만 셋리스트 도중 5집을 통째로 다 연주한다. 마지막 트랙 'The Struggle Within'으로 시작해서, 첫 트랙 'Enter Sandman'으로 끝나는 그야말로 5집의, 5집에 의한, 5집을 위한 투어.[59] 놀랍게도 제임스는 정변했고 라스는 역변했다 제임스의 보컬이 예전 전성기 때로 돌아갔다. 91년의 맷돌 가는 목소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로드, 리로드 때의 기량을 회복하여 2000년 이후 최상의 컨디션인듯. 라스의 드럼도 차츰 돌아가는 기미가 보인다.[60]

메탈리카가 헤드라이너가 되어 직접 여는 락페스티벌이 있다. 이름하여 Orion Festival. 메탈리카가 오리온 페스티벌을 개최하게 된 취지는 후배 밴드들을 소개하고 양성함과 동시에, 팬들에게 새로운 메탈리카의 도전과, 락페스티벌의 즐거움을 제공해주고 싶다는 취지에서 시작했다고 한다.그리고 돈도 필요하다

항상 메탈리카의 공연 때마다 등장하는 오프닝 음악은 엔니오 모리코네가 참여한 석양의 무법자OST 'Ecstasy of Gold' 라는 곡이다.

음악은 47초부터

최근 들어선 오프닝 때 아예 해당 클립을 스크린에 띄운다.

2013년 12월 8일에는 남극(!)에서 공연을 했다.

공연사진 공연영상

남극에서 공연을 함으로써 메탈리카는 지구 상의 모든 일곱 대륙에서 공연을 달성하게 된다. 하지만 오디오슬레이브처럼 쿠바에서는 아직 공연을 못 하는 듯하다.

2014년 글라스톤베리의 헤드라이너로 참여하였다 공연영상

# 모에탈리카 이들도 부녀자들의 모에선을 피할 수 없었다... 캐릭터를 상당히 잘 살려서 그렸다. 왼쪽부터 클리프 버튼, 커크 해밋, 라스 울리히, 제임스 헷필드.

메가데스의 리더 데이브 머스테인은 메탈리카에서 해고 당한 이후 자기가 만든 곡의 리프는 쓰지 말라고 했는데 The Four Horsemen과 The Call of Ktulu 등에서 머스테인이 쓴 리프를 그대로 썼다.[61] 이후 열받은 머스테인이 쓴 곡들이 Mechanix[62][63]와 Hangar 18. 그 외에도 2집의 Ride The Lightning에도 데이브 특유의 스파이더 코드가 사용된 리프가 그대로 쓰였다. 이렇게 리프들을 메탈리카 앨범에 심어버려서 이후 20년 이상 둘 사이의 관계가 매우 좋지 않았고 메가데스가 Mechanix를 연주할 때 The Four Horsemen의 인트로를 연주하고 욕하면서 엿을 먹였다. 참고로 인터뷰에서 제임스 헷필드는 자신의 보컬 스타일은 오페라 가수였던 어머니에게 리프 메이킹은 데이브 머스테인에게 화성학 이론은 클리프 버튼에게 각각 배웠다고 했다. 좋은 것만 쏙쏙 섭취

멤버들도 나름 야빠들이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홈경기에서 가끔 볼 수 있다. 근데 메탈리카는 LA 출신인데 라이벌팀을 응원한다는 게(...)[64] 그리고 2013년 마리아노 리베라의 은퇴시즌 때 리베라가 Enter Sandman을 등장음악으로 쓰는 인연으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vs 뉴욕 양키스의 인터리그 경기에서 리베라가 9회 초에 등판할 때 라이브로 Enter Sandman을 부르기도 했다.

2017년 2월 4일(현지시각) 10집 월드투어 코펜하겐 공연 때 제임스 헷필드의 목소리가 심하게 맛이 가서 노래를 제대로 못 부르는 바람에 공연이 중단될 뻔했고 제임스도 이 목 상태로 지속하기엔 비싼 돈을 주고 공연을 보러 온 팬들을 실망시킬 수 없다며 공연을 중단하려 했으나, 팬들의 응원에 힘입어 공연을 끝까지 하였다.# 다만 다음 날 공연은 아쉽게도 취소되고 말았고, 제임스의 목상태 진단에 따라 향후 투어일정에도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허나 최근 메탈리카의 인스타그램 소식을 잘 살펴보면 그렇게 큰일은 아닌 듯. 다행히 잘 회복하고 투어 일정을 무난히 소화하는 것 같다.


  1. [1] 로큰롤 명예의 전당의 5가지 헌액 카테고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문이자 공신력이 인정되는 '공연자(Performers)' 명단에 한하여 기록하도록 함. 나머지 부문의 헌액자들은 따로 문서 내 헌액명단에 수록해주길.
  2. [2] 다만 '메탈리카가 정말 스레쉬 메탈 밴드냐?'라는 논쟁이 존재할 정도로 장르가 많이 모호한 편이다. 분명 1집~2집 시절의 메탈리카는 스레쉬 메탈 밴드가 맞지만, 3집 이후로 메탈리카는 좀 더 대중적인 헤비메탈의 곡을 썼고, 그것으로서 지금의 위상을 차지했다. 90년대 이후로 가장 많이 팔인 앨범인 5집 Black Album은 아예 스레쉬가 아닌 데다가 9집 Death Magentic을 발매하기 전까지 얼터너티브 메탈, 뉴메탈 등 온갖 뽕짝을 실험했다. 국내외 팬들이나 평론가들의 중론으로는 1988년 And Justice For All 앨범까지를 스래쉬 메탈 앨범으로 보고 있다.
  3. [3] Sweet Savage의 곡이며 메탈리카가 강하게 영향받은 여러 곡 중 하나.
  4. [4] 메탈리카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앨범 중 최고의 레어 아이템으로 한때 30만 원을 호가하기도. 물론 지금은 'Garage Inc.' 발표로 가치가 하락하기는 했다. 팬 서비스 차원이자, 1986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베이시스트 클리프 버튼을 대신해 새롭게 영입된 제이슨 뉴스테드와의 호홉을 맞추는 차원으로 전세계 3000장만 찍어냈다. 노래는 대부분 데뷔 전 차고에서 연습하던(Garage Days) 옛날 락음악을 메탈리카식으로 리메이크한 곡들이다.
  5. [5] 'The $5.98 E.P.: Garage Days Re-Revisited'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이 앨범을 추가로 찍어달라는 메탈리카 팬들의 요청이 쇄도. 결국 이 앨범에다 각종 싱글의 B-side로 발표되었던 곡들, 그리고 그 전에 발표한 적이 없는 리메이크 곡들을 2CD로 묶어 발표한 앨범이다. 공식 스튜디오 앨범은 아니지만 Load, ReLoad로 살짝 녹아내렸던 그들의 위상이 다시금 소폭 반등하기도 했다. 고평가 받는 앨범이다. (Master of Puppets의 경우 곡도 괜찮고 메탈리카의 정체성이 가장 잘 나타나있지만, 녹음 퀄리티나 재해석의 부분에서 많이 부족하다. 애초에 리메이크 앨범인 만큼 멜로디의 완성도가 높고 그걸 상당히 뛰어나게 재해석한 거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물론 St. Anger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지만... wiki:"지못미"
  6. [6] 한국판 음반에는 Clean Version이라는 딱지가 별도로 붙어있으며 수록곡 So What의 가사 중 욕설 부분이 비프 음 처리 되어있다. 뭐가 클린이야?
  7. [7] 9집 Death Magnetic에 수록되지 못한 곡들 네 곡이 러프 믹스로 수록되어 있다.
  8. [8] 클리프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발매 됐다. 초기 메탈리카의 클리프의 절륜한 연주를 여과 없이 들어 볼 수 있다.
  9. [9] 그 유명한 1989년 시애틀 라이브와 1992년 샌 디에고 라이브, 1993년 멕시코 시티 라이브가 수록되어 있다.
  10. [10] 새디스트 & 마조히스트?? Symphony and Metallica의 줄임말이다. 메탈리카의 주옥같은 명곡들을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협연해 클래식의 장엄함과 메탈의 날카로움을 한데 묶어 만든 라이브 앨범이다. 라이브 앨범이지만 신곡도 두 곡 포함되어 있다.
  11. [11] 영어로 번역하자면 French for One Night. 실황 DVD/블루레이/Death Magnetic 앨범 포함 디럭스 에디션 세 가지 형태로 프랑스에서만 발매되었다. 그런데 뭐 수입판매되서 국내에서도 구할 수 있었다. 아이고 의미없다
  12. [12] 메탈리카, 메가데스, 앤스랙스, 슬레이어의 합동 공연 실황이다.
  13. [13] 2009년 캐나다 퀘벡 시 공연 실황이다.
  14. [14] 실질적으로는 중남미식 스페인어의 영향으로 '트루히'에 가깝게 발음한다.(자세한 건 이 문서를 참고) 그러나 국립국어원이 Trujillo를 '트루히요'라고 표기한 사례가 한두개가 아닌데다가 ll의 ㅈ 표기의 근거가 되는 연구자료도 아직 공인된 적도 없기 때문에 섣불리 '트루히'라고 표기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된다.
  15. [15] 오지와 함께 낸 앨범은 2000년에 발표된 Down to Earth. (잭 와일드와 함께 당시 오지 오스본 밴드의 사운드의 주축이었다. 오지의 첫 내한공연에도 함께 했다. (2002년 일본 부도칸 라이브 중에서 Mr. Crowley. 4분 25초부터의 연주가 아주 찰지구나 아름답다.)
  16. [16] 오디션 당시의 영상을 보면 특히 드러머 라스가 가장 마음에 들어한 티가 난다.
  17. [17] 유튜브에서 다른 멤버들이 실수한 것은 많이 나오지만 베이스는 제이슨이 1986년에 계단을 오르다 넘어진것 빼고는 없다. 베이스는 사운드가 펄펄 날아다니는 다른 악기의 연주에 묻힐수도 있지만 여러 라이브 공연에서 베이스 멤버들은 귀에 들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지 않았다.
  18. [18] 이 무렵부터 라이브로 연주하기 시작한 건 맞지만 서울 공연이 최초 해금은 아니라고 한다.
  19. [19] 멤버로 비유해 보자면 제이슨 뉴스테드가 로저 테일러 급의 백업 보컬이었다면 로버트 트루히요는 존 디콘 급이라 할 수 있다.
  20. [20] Lars라는 이름의 발음은 '라즈'이나 한국에서 죄다 라스로 발음해서 문제. 그리고 성인 Ulich도 미국식 발음으로는 "유리크"나 "유릭"에 가깝다.
  21. [21] 특히 Scott Travis 등과 같이 체력을 중심으로 정속플레이를 즐겨하는 드러머들과 라이브 영상을 비교하면 라스의 드러밍이 얼마나 불안정한지 알 수 있다. 주다스 프리스트 Hellrider 라이브 영상
  22. [22] 사실 이는 메탈리카가 클릭 트랙(메트로놈)을 쓰지 않기 때문에 더 두드러진다. 현대의 많은 드러머들은 클릭 트랙을 사용하는데 메탈리카는 이렇게 박자가 기계처럼 완벽하지 않고 조금씩 어긋나는 것도 인간의 연주의 일부분이라는 사상(이러한 사상은 클래식 쪽에서는 의외로 흔하다.)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클릭 트랙을 비롯한 메트로놈을 사용하지 않고도 거의 완벽한 박자감을 자랑하는 드러머들도 많으며 라이브에서 중간에 박자가 틀어지는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오히려 메트로놈은 장애물이 되기 때문에 프로 드러머들은 메트로놈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다. 문제는 라스의 박자감각은 조금 어긋나는 수준으로 끝나는게 아니며 정작 앨범에서는 그런 연주를 하지 않았다.
  23. [23] 라스의 드러밍은 언제나 비판받지만, 그가 유일하게 호평받는 것이 파워였다. 전성기 시절엔 연주가 아니라 걍 드럼을 때려 패는 수준(...). 물론 전성기 시절 조차 박자감이 엉성했지만 파워로 커버했다.
  24. [24] 지금이야 데이브 롬바르도의 스피드를 상회하는 드러머가 넘쳐나지만 그 시대에는 거의 최고의 스래시메탈 드럼 테크니션이었고 많은 익스트림 메탈 드러머가 롬바르도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롬바르도는 슬레이어 합류 당시 고등학교 1학년 다닐 나이였다.
  25. [25] 프로 뮤지션의 입장에서는 아주 불성실한 태도이다. 재능을 타고났다고 인정 받는 잉베이 맘스틴조차도 기타를 항상 옆에 끼고 다니면서 틈 날 때마다 연주를 하고 하루 한두시간은 제대로 된 연습을 한다.
  26. [26] 이후에도 기술되지만 세션 전문 연주자가 아니라도 '프로(Professional)' 연주자라면 적어도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여러 가지 연주를 잘 해야한다. 그리고 방향성 문제를 떠나서 불안정한 드러밍은 메탈리카 초기부터 항상 제기됐던 문제들이다.
  27. [27] 프로 뮤지션들에게는 파워도 기량이다. 특히 드러머에게 체력이 그 어느 종류의 뮤지션들보다 중요하다는 점은 메탈 드러머뿐만 아니라 드럼이라는 악기를 사용하는 뮤지션이 드럼 클리닉에서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는 대목 중 하나이다. 공연에서 연주를 하는 뮤지션이라면 연주하는 곡을 감당할 수 있는 체력은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체력을 악기 연주의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지 않고 "악기는 힘으로 치는게 아니다."라는 생각은 악기를 다루어 보지 않거나 잘 모르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 중 하나이다.
  28. [28] 곡을 같이 작곡하는 제임스에게 연대책임을 물리기에는 메탈리카 자체가 (역량과는 논외로) 라스의 독재 밴드에 가깝다.
  29. [29] 드럼의 리듬과 박자가 엉성하면 어떤 명곡이라도 라이브에서 막장이 되어버린다.
  30. [30] 갤러거 형제가 마약을 끊은 것을 계기로 자신도 마약을 그만두었다고. 2010년엔 호주 인터뷰에서 노엘이 자기네 찍은 다큐멘터리 잘 봤다고 문자 보낸 거 가지고 '최근 몇 년간 음악인생에서 최고의 날이다'라고 말 그대로 날뛰었다...
  31. [31] 노엘 갤러거도 메탈리카를 아주 많이 좋아한다고 한다. 단, 음악은 빼고... 그럼 뭘 좋아한다는 거야 라스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32. [32] 잉베이 맘스틴의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본인 입맛에 맞거나 친분이 있는 사이 아니면 까는 것이 기본이기에 라스와 개인적 친분이 있거나 라이브 연주는 들어보지 않았고 앨범만 듣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33. [33] 원래 라스와 제임스가 프로젝트로 밴드를 돌리고 있었는데 지지부진한 상태로 지내다가 몇 개월 후 론과 머스테인이 들어오면서 제대로 메탈리카가 시작되었다.
  34. [34] 왜 갑자기 론의 연주력을 문제삼기 시작했느냐에 대한 한 가지 설로는 클리프 버튼을 영입하기 위해 론을 쫓아냈다는 것이다. 론의 연주력을 문제삼기 전에 클리프 버튼이라는 베이시스트가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를 영입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근거지를 옮겨야 하는데 마땅한 이유를 붙여서 론을 쫓아내고 밴드의 근거지를 이동하였다는 것이다.
  35. [35] 탈퇴 이후에 메탈리카와 머스테인을 디스하는 인터뷰도 자주 했다.
  36. [36] 모터해드의 트리뷰트 밴드로 활동하던 메탈리카가 본격적인 프로 활동을 하기 위해 영입한 리드 기타리스트다. 라스 울리히의 말대로 처음 보는 오디션장에서 제임스 햇필드가 샘을 낼 정도로 출중한 기타와 작곡 실력 및 특유의 카리스마를 멤버들에게 보여줬다고 한다. 실제로 메탈리카의 초기 라이브 영상에서 데이브 머스테인과 제임스 햇필드가 서로 더 멋지게 보이려고 하는 아마추어틱하고 유치한 싸움이 대놓고 보일 정도로 두 사람 사이의 자존심 싸움이 치열했다고 한다. (데이브 머스테인 퇴출운동의 선두주자가 제임스 헷필드였다.) 물론 단순한 밴드 내 힘싸움의 희생양일 뿐인 것은 아니다. 데이브의 술버릇과 마약복용 등으로 인한 불성실함 등도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데이브는 당시 메탈리카 멤버들 모두가 매일 술과 약에 쩔어 연습을 제대로 안 했다고 하니 당시 메탈리카는 술과 약에 쩔어있었다고 보면 될 듯하다. (오죽하면 당시 메탈리카의 별명이 알콜리카였다.) 더 큰 문제는 데이브 머스테인 개별 항목에도 나와있듯이 성격이 매우 난폭한 점이다. 팬들에게 욕하는 것은 예사고 주먹질도 하는 등 이런저런 문제들을 일으키고 다녔다. 결국 데이브가 짤린 건 그나마 유한 성격의 제임스와 함께 가는 것이 나으리라는 판단 때문이었을 듯하다. 이후 데이브는 메가데스를 결성한다.
  37. [37] 현재도 투시노 비행장이 있긴 하지만,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축구팀의 홈구장인 옷크리티예 아레나가 들어서는 등 일부 부지가 개발되기도 했다.
  38. [38] 일부 국내 팬들이 저 영상만 보고 메탈리카가 록 음악 전체 세계를 평정한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지만 메탈리카의 국제적인 인지도, 인기, 앨범 판매량은 저변이 넓은 하드 록 밴드인 AC/DC를 능가할 수는 없었다.
  39. [39] 메탈리카의 인기가 가장 높았던 90년대 미국에서도 단독 공연 관객은 만 단위였으며 십만 단위를 넘지 않았다.
  40. [40] 상식적으로 보아도 메탈리카식의 음악이 록 음악계를 정벌했다면 90년대 얼터너티브, 그런지 열풍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41. [41] 블랙 앨범부터 시작된 '반 스래쉬적 정서'를 근거로 이때부터라고 하기도 하나, 블랙 앨범은 얼터너티브한 성격의 음악은 단 한 곡도 없다. 다만 그들의 음악적 전성기를 함께 했던 스래쉬 메탈의 색채가 많이 사라져, '하드하지 못하다' '강하지 못하다' 라는 비판이 있었을 뿐이다
  42. [42] 당시 락 매니아들에게 수많은 논쟁거리였는데 변화 속에서도 메탈리카 특유의 힘과 기승전결식 음악전개가 살아있다는 평도 일부 있었으나 대부분 '변절자' 라는 다소 강한 비판이 대세였다.
  43. [43] 이것은 당시 비단 빅 4의 큰형님격인 메탈리카뿐만 아니라 나머지 세 개의 밴드들도 비슷하거나 똑같은 문제를 겪었다. 메가데스는 그나마 당시 미국대중에게 친숙한 하드록과 정통 헤비메탈의 조합으로 이러한 광풍 속에서 어느 정도 버텨나가나 싶더니 마티 프리드먼과 데이브 머스테인의 음악적 방향성에 관한 다툼과 갈등으로 인해 Risk라는 함정 앨범이 탄생했고. 앤스렉스는 밴드의 특징이나 다름없던 조이 벨라도나가 탈퇴하면서 음악적 하락세를 겪기 시작하면서 이들도 어줍잖게 얼터너티브 록의 요소와 힙합적인 요소를 넣으려다 대차게 망했던 적이 있다.그나마 멀쩡했던게 슬레이어였지만 이들도 기량하락으로 예전의 Reign of Blood의 시절이나 그에 근접하는 시절로 돌아가지 못했다.
  44. [44] 물론 완성도가 가장 뛰어난 앨범으로 평가받는 1986년작 Master of Puppets와 완전히 같은 스타일은 아니다. 기본적인 뼈대는 그 시절과 동일하지만 악곡 스타일이나 편곡은 모던하다고 볼 수 있다.
  45. [45] 참고로 이들은 2009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서 처음 협연을 하였다. 그때 연주한 곡은 대부분이 벨벳 시절의 곡들이라 유튜브의 평이 괜찮았다.
  46. [46] 참고로 영문판 위키에 기재된 이 앨범의 장르는 아방가르드 메탈, 노이즈록, 익스퍼리멘탈(실험음악), 스포큰 워드(독백). 아방가르드 메탈을 제외한(메탈리카가 참여했으니까) 나머지 장르들은 거의 현재 루 리드의 음악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듣는 사람만 듣는 음악 근데 벨벳 언더그라운드 시절 팬도 이 앨범은 안 듣는다. 뭐지(...)
  47. [47] 로버트 트루히요는 예외. 로버트는 St. Anger 작업이 끝날 무렵에 들어왔기 때문에 작곡에도 참여 안했고, 연주도 안했다. St. Anger 녹음 시작할 즈음에 제이슨 뉴스테드가 밴드를 탈퇴해서 결국 앨범 프로듀서인 밥 락이 베이스를 연주했다. 흠좀무
  48. [48] 인터뷰에 따르면, 메탈리카는 어디를 가든 합주와 녹음이 가능한 장소를 마련해두고 일을 시작하고, 그런 곳에서 조금씩 만들어진 리프가 1000여 개가 넘어가는 관계로 그것들을 추려내느라 앨범이 늦고 있다고 한다.
  49. [49] 90년대 이전 라이브에서는 스튜디오 버전 완창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아무래도 젊었으니까...
  50. [50] 메탈리카 곡들 중에서도 가공할만한 속도와 분량을 자랑하는 기타솔로 파트인지라 커크 해밋이 부담감을 느껴서 완주를 하지 않는다는 설이 있긴 하다
  51. [51] 대규모 필하모닉과의 합주는 시간, 비용, 장소 면에서 너무 힘들었기에, 샌프란시스코 필하모닉 단원들이 기존의 앨범(스튜디오 버전)을 들으면서 각자 연습을 해보고 합주 때 앨범을 틀어놓고 맞춰보는 식이었다. 그러므로 라이브에서도 반드시 스튜디오 버전으로 해야 했다.
  52. [52] 당연하게도 S&M의 모든 곡은 기존 앨범에 실린 스튜디오 버전 그대로를 연주한다.
  53. [53] 98년 내한때도 솔로 직전까지만 하고 King Nothing으로 넘어간다
  54. [54] 공연을 본 관객에 따르면 키넌은 "not last"라고 말했다고 한다. 툴 팬들이여 희망을 가지자
  55. [55] 해외에서는 킹 크림슨공동 헤드라이너로 투어를 돌았었다. 이런 밴드를 서포트로 모신 것.
  56. [56] 메탈리카 쪽에서 만든 영상이 있는데 냅스터로 다운로드 받은 음악을 듣는 이용자의 방에 들어가서 물건들에 냅스터 마크를 붙이고 점령해버린다든가, 심지어 그 이용자의 여자친구의 엉덩이에 냅스터 마크를 붙이고 여자친구를 데려가는 내용이다
  57. [57] 음악가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위의 사건도 그렇고 불따라는 행위 자체가 음악가들에게 있어서 좋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살사람은 산다그래도 음반이 안팔리잖아
  58. [58] 이 곡은 사실 에서 활동하는 아재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으로, '자신들이 젊은 시절 메탈리카를 좋아했던 정도로 아이유가 좋다'라는 의미로 만들었다고 한다. 본의아니게 노래 제목이 어그로를 끌어 댓글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59. [59] 블랙 앨범 수록곡만 연주하진 않는다. 주로 Hit the Lights로 스타트를 끊고, 4~5곡을 선보이고 블랙 앨범 인트로 영상과 함께 시작되며, Enter Sandman 이후엔 3곡 정도 더 하며 마무리를 한다. 물론 공연의 끝은 Seek & Destroy
  60. [60] 그러나, 제임스는 투어 중후반이 되면 다시 상태가 안 좋아지고, 라스의 2000년도 중반까지만 해도 묵직하게 들렸던 베이스 드럼 사운드는 이제 틱틱거리는 개미소리로 들리는 것으로 보아, 결국, 나이에 따른 체력 저하는 이겨내지 못 한 것으로 보인다.
  61. [61] 앨범을 보면 작곡에 머스테인이 들어가 있다.
  62. [62] 사실은 가사만 다른 The Four Horsemen과 동일한 곡. 템포가 더 빠르다.
  63. [63] 사실 데이브 머스테인이 메탈리카를 나오기 전에 쓴 곡이다. 데모 테잎인 No Life 'Till Leather의 곡 목록을 보면 Mechanix가 있다
  64. [64] 메탈리카의 출신지는 LA지만, 클리프 버튼이 합류조건으로 샌프란시스코를 활동거점으로 삼게 된 후 쭉 샌프란시스코를 기점으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결과적으로 큰 도움이 됬는데, 당시 스래쉬 메틀의 메카로 불리던 베이 에이리어 지역이 바로 이 곳이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쟁쟁한 이곳 출신 스래쉬 밴드들과의 교류도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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