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몽골국
Монгол улс
ᠮᠣᠩᠭᠣᠯ ᠤᠯᠤᠰ

국기

국장

국가 정보

면적

1,564,116km²

인구

3,171,065명(2019)

수도

울란바토르

최대도시

울란바토르

공용어

몽골어

건국

1911년 12월 29일 (으로부터 독립 선언)
1924년 11월 26일 (몽골 인민 공화국 수립)
1992년 2월 13일 (헌법 개정, 국명을 몽골국으로 개칭)

정치체제

이원집정부제, 단원제, 다당제, 단일국가

민주주의 지수

167개국 중 62위[결함있는민주주의]

대통령

할트마긴 바트톨가

임기

2017년 7월 10일 ~

총리

오흐나긴 후렐수흐 (Ухнаагийн Хүрэлсүх)

임기

2016년 7월 7일 ~

민족 구성

몽골인 92%[2], 오이라트인 4%, 카자흐인 4%

국교

없음(정교분리)

종교 분포

불교 60%, 무속신앙 38.6%, 이슬람교 3%

GDP(명목)

127억 2400만$(2018) #

1인당 GDP(명목)

4,097$(2018) #

화폐단위

투그릭(төгрөг)

국가

몽골 국가 (몽골어: Монгол Улсын төрийн дуулал)

국제연합(UN) 가입

1961년

위치

몽골 여행 비디오 가이드

1. 개요
2. 국가 상징
2.1. 국호
2.2. 국기
3. 자연
3.1. 지리
3.2. 기후
3.3. 생물
9. 사회
9.1. 언어
9.2. 인구
9.3. 교육
11. 대외 관계
11.1. 중국과의 관계
11.2. 대만과의 관계
11.4. 미국과의 관계
11.5. 영국과의 관계
11.6. 스웨덴과의 관계
11.7. 이탈리아와의 관계
11.8. 한국과의 관계
11.8.1. 탈북 루트
11.10. 터키와의 관계
11.11. 헝가리와의 관계
11.12. 베트남과의 관계
11.13. 기타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12. 국외 주요 몽골인 거주 지역
12.2. 러시아의 부랴티아
12.3. 러시아의 칼미키야
12.4. 러시아의 투바
13. 창작물에서의 몽골
14. 둘러 보기

1. 개요

중국의 북쪽, 러시아의 남쪽에 위치한 동아시아내륙국. 중앙아시아로 분류되기도 한다. 정식 국명은 몽골국(Монгол Улс, 몽골 울스). 수도는 울란바토르. 공용어몽골어. 화폐 단위는 투그륵.

2. 국가 상징

2.1. 국호

언어별 명칭

한국어

몽골/몽골국

중국어

蒙古/蒙古国

일본어

モンゴル/モンゴル国

영어

Mongolia

러시아어

Монголия

프랑스어

Mongolie

스페인어

Mongolia

포르투갈어

Mongólia

이탈리아어

Mongolia

아랍어

منغوليا

힌디어

मंगोलिया

정식 국가명칭은 Монгол улс으로, 로마자 표기로 하면 Mongol uls이며 이는 '몽골국(國)'이라는 의미이다.

몽골이라는 국가명은 물론 민족명 몽골에서 유래했는데 '용감한' 이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몽골이 사서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중국 당나라 시대로, 실위 부족 중 하나인 몽올(蒙兀)이라는 명칭으로 나타난다. 이때는 흑룡강 상류(아르군 강 하반)의 초원 지대에 있었던 군소부족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북송 시절부터 강성해지며 이 때 중국에서는 몽고(蒙古)란 명칭으로 불렀다.[3] 몽골이 가장 잘나갔던 원나라 시절 공식 문서에도 몽골을 한문으로 표기할 일이 있으면 중국인과 몽골인 전부 '몽고'라는 표기를 썼으며 오늘날 중국에서도 몽골을 이렇게 표기한다. 그러나 '몽(蒙)' 자가 어리석다는 뜻으로 많이 쓰이고 '고(古)' 자도 낡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몽골 사람들은 이 표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비록 단순한 음차에 불과하지만 중국에서 음차할 때도 가급적이면 좋은 의미의 한자를 갖다 쓰는걸로 보아 오랑캐니까 일부러 안 좋은 뜻의 글자를 가져왔다는 면이 있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몽고라고 해왔지만 1991년에 외래어 심의를 통해 '몽골'도 표준으로 올렸으며 이후 현대의 몽골(나라이든 민족이든)을 대부분 '몽골'로 표기한다. 하지만 예전부터 워낙 몽고라고 많이 써 왔기 때문에 몽골 제국 등 역사적 의미로서의 '몽골'은 지금도 몽고라고 많이 표기하는데, '몽고'에 비하적 의미가 있다는 지적이 있어 차츰 역사적 의미로도 몽골로 대체해 나가고 있다. 일례로 2007년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서 이전까지 몽고 제국이라 표현했던 것을 몽골 제국으로 수정했다.

2.2. 국기

몽골의 국기. 빨강-파랑-빨강의 깃발 왼쪽의 몽골의 상징인 소욤보 문양이 들어가 있다.

1911년부터 1921년까지 사용된 복드 칸국의 국기. 소욤보 문양은 이때도 쓰였다.

1921년 혁명 당시의 국기.

1930년대의 국기. 이때 빨강-파랑-빨강의 체계가 갖추어 졌고, 다만 이때는 세로로 되어 있었다.

1940년부터 1992년까지 쓰인 몽골 인민 공화국의 국기. 지금의 국기의 모티브가 되었다. 다른 점은 소욤보 문장 위에 별이 있다는 정도.

2.3. 국가

3. 자연

3.1. 지리

국토가 매우 크다. 세계 17위이며 한반도의 7배가 넘고,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을 모두 합친 것과 맞먹는다.

내륙국이다. 바다와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서 건조하고 일교차가 큰 극단적인 대륙성 기후를 띤다. 또한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한랭하다. 최고봉 후이텡 봉은 4,374m에 달하며 최저점도 518m로, 국토 평균 고도는 1,580m. 수도 울란바토르도 해발 1,350m에 위치해 있다.

지형은 서북쪽이 높고 동남쪽이 낮다. 서쪽 끝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과의 접경지역에 매우 높은 알타이 산맥이 존재하며, 중부에는 비교적 낮은 항가이 산맥이 존재한다. 그보다 더 동쪽엔 항가이 산맥보다 낮은 헹티 산맥이 있다.참고 남동부는 낮고 평평하지만 거의 전 지역이 사막으로 덮여 있는데 그 유명한 고비 사막이다. 사막 외곽엔 초원이 있으며 북부 지역엔 시베리아 비슷한 타이가 숲지대도 있다.

호수도 몇 개 존재하는데 서북부 옵스 호(Увс нуур)웁스는 염호로 제주도 2배 크기 정도이며 몽골에서 가장 큰 호수이며 (사람은 잘 안간다), 옵스 호보단 약간 작은 훕스굴 호(Хөвсгөл нуур)는 관광지로 유명하다.

1990년대 이래로 사막화로 고심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3.2. 기후

기후는 몽골 전 지역이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건조하고 연교차가 극단적으로 크며 겨울이 추운데, 서북쪽으로 갈수록 연교차가 커지고 남쪽으로 갈수록 건조해진다. 몽골 서부 올랑검은 1월(-32.1℃)과 7월(18.9℃) 평균 기온의 차이가 51℃에 이르며, 동부 처이발상도 1월(-20.5℃)과 7월(19.8℃) 기온 차이가 40℃에 달한다. 강수량은 다르항(357mm)이나 므릉(207mm) 등 북부 지방이 사잉샹드(111mm)나 달랑자드가드(126mm) 등 남부 지방보단 많은 편이다. 열대야는 없지만 일교차를 고려했을 경우 여름철 낮 최고기온은 한국과 별 차이 없거나 더 더울 수도 있다.

겨울엔 조드(ᠵᠤᠳ, зуд/Zud)라 하는 혹한이 찾아와 큰 피해를 준다. 조드가 일어날 때마다 가축이 죽는데, 1944년엔 700만 마리의 가축이 죽는 극심한 혹한이 있었고, 최근 2010년에도 서북부 옵스 지역에서 50일 동안이나 기온이 -55℃ 밑으로 떨어지는 등의 혹한으로 전국 가축의 17%인 200만 마리의 가축이 죽었다. 역대 최저 기온은 앞에 말한 옵스 지역에서 기록된 -58℃라고. 이런 혹한과 눈보라 때문에 인명피해도 발생한다고 한다. 고대로부터 몽골인들을 괴롭히던 자연재해로 이런 몽골 속담도 있을 정도다. "전사는 화살 한 발에 죽고 부자는 조드(зуд) 한 번에 망한다." 의미는 역시 자만하다 재수 없으면 한 방에 훅 가니 조심하라는 것. 몽골판 죽창드립

수도인 울란바토르는 전 세계에서 가장 추운 수도다. 모스크바보다 더 춥다. 1월 평균 최저 온도가 영하 27도라 한다. 이쯤 되면 그냥 대놓고 시베리아 수준인 걸 넘어서 이르쿠츠크나 노보시비르스크 같은 남시베리아보다도 추운 수준이다. 실제로 나라 자체가 시베리아 남쪽에 바로 붙어 있고 수도도 시베리아에서 가깝다.

울란바토르는 파리와 비슷한 위도이지만 기온차는 울란바토르와 파리가 비슷한 위도인지 인식하기 힘들 정도다.[4] 멕시코 만류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유럽에서 러시아를 빼면 거의 극지방까지 올라가도 이런 날씨 보기 힘들다. 참고로 스웨덴 키루나(북위 67도)의 겨울 평균 기온도 여기보다 훨씬 따뜻(?)하다. 사실 몽골의 추운 기후의 원인을 찾아보면 대륙 한가운데란 위치 외에도 해발고도가 높은 편인 것도 원인. 수도 울란바토르도 해발 1,350m의 고지대이다.

훕스굴 주 터성쳉겔(Тосонцэнгэл)이란 곳에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기압이 기록되기도 했다. 1,085.6hPa.

3.3. 생물

고생물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는 땅만 파면 공룡 화석이 나오는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프로토케라톱스오비랍토르, 벨로키랍토르, 피나코사우루스, 사이카니아, 테리지노사우루스, 타르보사우루스, 사우롤로푸스, 갈리미무스 등 인지도가 꽤 높은 공룡들이 몽골 고비사막에서 발견되었다.

게다가 몽골의 몇몇 지층은 백악기 때부터 사막이어서 간단한 손도구만으로도 지층이 쉽게 제거된다. 대신 그 유명한 타르보사우루스가 산출된 백악기 지층인 네메그트 층은 예외적으로 사막 지층이 아니라 범람원 지층이었다.

공룡 이외에도 히아에노돈이나 엔텔로돈, 곰포테리움, 파라케라테리움 같은 흐산다골 지층의 신생대 포유류의 화석도 꽤 유명한 편이다. 또한 몽골의 동물 화석들은 갓 죽은 동물 뼈처럼 하얀색을 띠고 있어서 이들의 유해가 그리폰과 같은 중앙아시아 신화 속 환상종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몽골에 서식하는 포유류는 대륙에 중심으로 사는 종이며 마못이나 땅다람쥐 등 설치류와 토끼가 많다. 초원에는 몽골가젤이나 사이가 영양 등 우제류가 있으며 몽골야생마와 야생 당나귀도 서식한다. 털이 길고 혹이 두 개인 쌍봉낙타도 많이 사는데, 중동의 단봉낙타가 야생은 거의 없고 대부분 사람이 키우는 개체만 남은 것과 달리 쌍봉낙타는 야생에도 존재한다.[5] 맹수로는 주로 늑대가 많은데 약 1만 마리 수준이다. 그 밖에 눈표범이나 불곰, 여우도 존재한다.

조류로는 검독수리, 독수리 등의 맹금류는 물론 우리나라나 인도 등지에서 겨울을 나는 철새들이 번식을 위해 찾아오기도 한다.

4. 행정구역

5. 역사

몽골의 역사
Монголын түүх

고대 시대

중세 시대

근현대 시대

몽골 제국의 역사를 제외하면 부족들 간 대립의 역사였다.

청나라로부터 독립한 후 복드 칸을 옹립했고,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가 몽골에 들어와 남은 중국 세력을 몰아냈으며 이 운게른을 격퇴한 담딘 수흐바타르의 지도하에 독립 및 공산화되었다. 그러나 소련의 식민지급 간섭기를 거치고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하여 허를러깅 처이발상 등 비롯한 친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의 지배가 한동안 계속된 뒤 자체적으로 민주화되었다.

6. 정치

7. 군사

8. 경제

9. 사회

휴대 전화 보급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초원과 사막이 중심인 국토 지형과 소수지만 존재하는 유목민들을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한 이야기는 아닐 듯. 대신 공업기술과 생산력이 부족해서 거의 수입에 의존한다. 그 넓은 국토 전역에서 최소 전화는 다 터진다. 초원 한가운데에서도 3G/최소 2G는 터지는편. 몽골에서 몽골어키릴 문자로 표기하지만 불편하다 보니 핸드폰으로 문자나 페이스북 등을 이용할 때는 그냥 로마자로 쓴다. 유목민의 경우 발전기나 무전기를 이따끔식 사용하곤 한다. 장거리 운전시에도 차량간 연락을 무전기로 한다.

유목민들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말을 타기 때문에 말을 잘 모는 편이다. 어린이들도 등자안장없이 말을 타고 다닐 수 있는 편. (어디까지나 유목민 한정) 그러나 이들도 좀 되는 거리를 이동할땐 차량과 오토바이 타고다닌다. 트럭에 게르 해체한것과 말들을 싣고 다니는게 압권.

최근 한국인 여행객들이 많이 늘고 있다.

몽골은 비엔나 협약국으로 비엔나 협약국에서 발급되는 국제운전면허증으로 운전이 가능하다. 한국인은 90일 이하의 단기 여행 비자로 몽골을 방문할 경우, 주 몽골 한국대사관에서 수수료 4달러를 내고 공증을 받으면 된다. 공증은 바로 발급되며, 이것만 있으면 운전기사나 가이드가 없어도 렌트카 및 자가용 운전이 가능하다. 장기비자인 경우에는 2015년부터 법이 바뀌어 몽골 면허를 취득해야만 한다. 물론 시험은 몽골어(...)로 본다.

휴일의 개수가 적은 것으로 유명하다. 몽골에 휴일이 없는 달은 4월, 5월, 8월, 9월, 10월로 다섯 개나 되며 2월은 해에 따라 다르다. 대체휴일제는 없다. 그런데 학교는 많이 쉰다.

9.1. 언어

몽골어가 공용어이다. 몽골 서부의 카자흐족들은 카자흐어만 사용하며 몽골어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중국의 내몽골 자치구의 몽골족은 자신들을 몽골인이라고 칭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어를 대다수가 사용하고 있다.

옛날엔 구 소련의 영향으로 러시아어가 주요 외국어였다. 몽골어가 키릴 문자를 쓰고 구 소련의 영향을 받아 공산국가가 된 점도 크다. 그러다 소련 붕괴 이후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중국어, 한국어, 일본어 등 주요국가의 언어도 배우는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2007년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몽골을 방문한 이후, 러시아어도 학교에선 필수 외국어로 지정되었다.

한국에 외국인 노동자로 일하다 온 사람이 많고 유학생들도 많으며 몽골 자체가 1990년대 후반 이래로 한국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한국어를 익히는 사람이 많다. 애초에 영어 통역보다 한국어 통역을 구하기가 더 쉽다. 한국인보다 한국어 잘하는 사람도 있다

9.2. 인구

몽골의 고민은 넓은 국토에 비해 인구가 너무 적다는 점이다. 남한 면적 15배가 넘는 넓은 나라임에도 인구가 300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참고로 인천광역시와 비슷한 인구다.[6]

세계적으로 땅은 넓은데 인구가 너무 적은 경우로 언급된다. 300만 인구조차 그나마 이 정도로 많이 늘어난 것이다. 2009년의 몽골의 인구 밀도대한민국에 적용하자면, 남한 땅 전체에 인구가 16~17만 정도로 한산한 것과 동일한 밀도이다. 1 제곱킬로미터당 1.7명이란 인구 밀도로 인해 독립 국가로서는 세계 최고로 밀도가 낮은 지역에 속한다.[7](국가별 인구 밀도 순위 문서 참고) 참고로 몽골의 가축의 수는 도합 7천 5백만 마리가 넘는다. 그리고 몽골내에서 사는 몽골인보다 내몽골(중국 자치구)에서 사는 몽골인(중국 국적)이 훨씬 많다. 내몽골에 사는 몽골인은 500만명을 넘는 정도.

그래도 출산율이 2명대 중반수준을 기록하고 있다보니 인구 증가율 자체는 상당한 편이고 고령화 진행속도가 상대적으로 더딘 게 위안. 2015년 1월에는 300만 명을 드디어 돌파했다. 인천광역시 전체 인구수는 매우 적지만, 각종 통계자료를 보면 21세기 후반에는 4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실 최고 전성기인 몽골 제국 시절에도 몽골인 인구는 굉장히 적었는데, 원나라 시절 몽골인은 지배계급이면서도 전체 인구의 1.5%에 불과했다. 덕분에 한족의 반란을 우려해서 부엌칼도 10가구당 한 자루만 허락하는 등 가혹한 억압을 시행해야 했다(...).

출산율을 감안하면 앞으로 인구가 크게 증가할 전망이지만, 오늘날의 몽골 지방은 한랭 건조한 기후에 영토도 초원과 사막이 대부분이고 큰 하천이 없어 농경에 불리한 지리적 조건 탓에 인구 부양 능력이 어느 정도까지 따라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영토가 아직도 남아돌지만, 주력 산업인 목축업 자체가 원래 광대한 방목지를 요구하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인구 밀도를 넘어서면 다른 나라보다 한계점이 일찍 찾아올지도 모르는 환경이다.

몽골인 중에는 몽골족이 주류지만 서쪽엔 카자흐족이 많이 산다. 몽골 서부 바잉을기 아이막의 경우 주민의 90% 이상이 카자흐족이다. 그야말로 흠좀무 그 외에도 투바인, 에벤키인, 러시아인, 중국인도 일부 거주하고 있다.#

수도권 인구 집중이 굉장히 심각하다. 수도 인구가 전 인구의 3분의 1이다. 최대도시 울란바토르는 인구가 백만 명이 넘는데 제2도시 에르데네트의 인구는 고작 9만 명. 나머지 지방도시들은 1, 2만 명이면 큰 도시에 속한다. 한국이었다면 울란바토르는 광역시 정도 인구는 되는 정도로, 한국에 있었어도 대도시 중 하나 정도는 되겠지만, 제2도시 에르데네트의 9만 명은 한국에서는 도시 취급도 못 받는 정도 규모이다. 이 정도면 한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읍인 남양주시 화도읍과 인구가 비슷하다. 그리고 몽골의 모든 기간시설이 울란바토르에 집중되어 있지만, 인프라가 부족하다보니 백만 명이 넘는 인구를 감당하기에는 여러 모로 굉장히 버겁다.[8]

9.3. 교육

소련이 존재하던 시기에 몽골에서는 소련의 막대한 지원에 따라 국토 전역에 초등학교가 설립되었다. 하지만 몽골 특유의 유목생활로 인해 취학률은 70%를 넘지 못했고 90년대 중반부터는 일부 초등학교에 기숙사를 설치해서 학생들을 취학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등교육은 거점(각 주에 2~4개교)에 설치하여 기숙학교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초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 중에서 시험을 통해 입학생을 받는다.

몽골의 대학들은 수도인 울란바토르에만 있으며, 전부 국립대학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울란바토르에 소재한 대학에는 1942년 소련 당국에 의해 설립된 국립종합대학(National University)이 있다. 의학부, 수리과학부, 인문학부, 어문학부, 외국어문학부, 경제학부, 외무학부, 경영학부, 법학부, 사회학부, 언론정보학부가 설치되어 있으며 외국어문학부에 한국어학과가 설치되어 있고 의학부 부설 병원이 설치되어 있다.

1925년 몽골 공산정부 수립 직후 설립된 중앙사범대학(Central Education College)도 있다. 이외에도 90년대 초반 몽골 교육부의 대학 다양화 정책에 따라 국립종합대학에서 분리되어 설치된 국립과학기술대학(National College of Science and Technology)은 1950년에 별도로 설립된 과학기술대학이 있었지만, 대학 다양화 정책에 따라 국립종합대학의 이공학부를 떼어 내어 기존의 과학기술대학과 통폐합하였다.

그 밖에도 국립농경대학(National Agriculture College), 국립보건대학(Health Science University) 등이 있다. 이 국립보건대학은 국립종합대학 내의 의학부와는 별개의 학교로 기존의 한 곳이던 의료 인력 양성 기관을 다양화 하기 위해 설립한 대학이다. 국립종합대학의 의학부는 말 그대로 의사만을 양성하지만, 이 곳에서는 간호인력과 의료행정 인력도 함께 양성한다.

이들 대학의 입시에서 특이한 점은 중앙사범대학의 입시 성적이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대학교 격인 국립종합대학을 압도한다는 것이다. 졸업과 동시에 국가 공무원으로의 취직이 보장된 사범대학의 입시 성적이 그 나라의 수위(首位)대학의 입시 성적을 압도하는 현상은 아프가니스탄이나 투르크메니스탄, 케냐, 미얀마 등과 같이 경제적 사정이 열악한 국가들에서 종종 보이는 현상으로, 경제적 규모가 크지 않고 사회적으로 직업이 다양하지 않은 국가에서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가 그 학력에 걸맞은 직장을 구하지 못해 실업자로 전락하는 상황의 하나다. 동아시아권에 대학 시스템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 대학 졸업자들이 취업을 하지 못해 양산되는 고학력실업자(룸펜)와 마찬가지. 이러한 현상에는 교사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동아시아 특유의 문화도 일정 작용하는 것 같다. 실제로 몽골 내에서 가장 존경받는 직업으로 교사가 수십 년간 1위를 독점해 오고 있다.

그래서 몽골에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어려울 뿐더러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미래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중등학교 졸업자들은 직장을 구하거나 사범대학에 지원해 보는 것이 대부분이다.

9.4. 교통

10. 문화

흔히 몽골 하면 떠오르는 초원과 전통 가옥 게르

초원과는 대조적인 울란바토르 시의 모습들

11. 대외 관계

중국러시아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 있는 샌드위치 신세이며 이 두 나라에 침략당했던 역사 때문에 이 나라들을 매우 경계한다.한 때는 이 두나라를 모두 털어먹었지만..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상하이 협력 기구(SCO) 및 아시아 인프라 투자 은행(AIIB)에 참여하는 등 현실적인 이익 앞에서는 이들 국가와 협력하고 있다.

나치즘을 찬양하며 외국인을 배척하는(주로 중국인이 타겟) 네오 나치 극우 세력이 준동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 사이트에서는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테러가 잦다며 자국민에게 여행 안전 경고를 내렸다.

좀 의외겠지만 터키가 몽골에 관심을 많이 두고 있다고 한다. 몽골에 남은 흉노, 돌궐 역사를 자기들 조상 역사로 봐서인지 몽골에 있는 돌궐 재상 톤유크 유적지 발굴에 투자 및 인력을 보내는 것도 바로 터키 측이다.비석 사진 덕분에 몽골과 터키는 몽골땅의 옛 유목제국의 역사가 서로 자신들의 역사라고 키배를 벌이고 있다.

중국러시아 사이에 있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영세 중립국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근데 아시아엔 싱가포르가 있잖아 아마 안될꺼야

참고로 서양인들은 몽골을 그닥 좋아하진 않는 사람도 많다. 왜냐하면 칭기스 칸 등을 매체에서 나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철저히 뭉개진 러시아나 서아시아가 두드러지게 혐오하고 직접 대결하지 않은 서유럽은 그저 순수한 유목민들이라고 비교적 관점이 완화되며 북유럽 스칸디나비아는 인도주의 차원에서 포용하고 있다. 그리고 쿠빌라이는 상당수 매체에서 선역으로 좋게 묘사되었다.

11.1. 중국과의 관계

워낙 이쪽의 역사가 농경민과 유목민족의 싸움이다 보니 둘의 관계는 예전부터 안 좋았다. 중국에서 오랑캐라고 멸시하듯 몽골도 중국인을 "호자"(хужаа)라고 부르며 멸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몽골의 반중의식이 본격적으로 커진 것은 한족에 대해 크게 경계심을 가지게 된 근현대에 이르러서이다.

중국은 중국 내의 몽골족(내몽골인)이 몽골인보다 더 많다는 사실에 힘입어 중국 소수민족인 몽골족이 주류인 내몽골자치구에다가 칭기즈 칸이 중국인이라면서 무덤이나 여러 가지를 세워둬서 몽골국 몽골인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물론 사서에서 위치조차 알 수 없는 무덤(...)을 내몽골에 조성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논리다. 중국이 내몽골에 저런 일을 하는 것은 몽골을 중화민족에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칭기즈 칸은 오논 강 유역에서 나고 자랐으며, 그가 있던 보르지긴 씨족조차 본래는 이 지역에서 살았던 부족이다. 또한 원조 성립 이전의 몽골 제국의 수도는 카라코룸인데, 이 카라코룸은 현재 외몽골의 한가운데에 있다! 정확히 말하면 오르콘 강 유역에 있고, 알다시피 오르콘 강 유역은 셀렝게 강의 지류이며 몽골의 정중앙에 위치한 강이다. 상식적으로 몽골제국 성립 당시에는 서하, 금나라와의 접경지였던 내몽골인데 칭기즈 칸이 전투를 벌였던 곳 같은 장소라면 몰라도 무덤을 내몽골에 갖다 놓는 건 말이 안된다.

물론 몽골 제국 당시 만주~부랴트에 이르는 광역을 자유롭게 돌아다닌 이들이 몽골 키야트 부족이며 이들은 만주와 부랴트를 다 "몽골"로 인식했다. 중국의 주장대로면 러시아의 부랴트도 중화세계의 일부여야 하는데 너무 무리수이다.

게다가 생애 대부분을 몽골 스텝지대와 중앙아시아의 원정길에서 보낸 칭기즈 칸이 '중화천하'라든지 '하나의 중국'같은 것에 관심을 가졌으리라고 상상하는 것은 현대 중국 내셔널리즘의 필요에 따른 지극히 목적론적인 견강부회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중국식 칭제건원을 한 일도 없고, 중국의 제도와 문명을 따르긴 커녕 파괴할 생각이나 했으며 유목민의 삶만 고집하던 사람이 무슨 중화영웅이 된단 말인가. 그야말로 러시아의 동진이 몽골제국을 계승해 유라시아 통합을 도모한 것이었고 칭기즈 칸이 유라시아 연합의 초석을 놓았다고 주장하는 수준.

그리고 차하르 부족의 지배집단이 칭키즈 칸의 후손인건 맞지만, 칭기즈 칸이 생전에 활동하던 지역은 지금의 내몽골이 아니라 오논 강 유역과 카라코룸이 있는 외몽골이 맞으며 내몽골에 그의 무덤을 조성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이건 내몽골인이 칭기즈 칸의 후손이고 외몽골은 내몽골인보다는 거리가 있는 부족이라는 주장과는 차원이 다르며 중국이 그냥 기념을 위해 혹은 내몽골에 진짜 유적지가 있어서 저러는 건 절대 아니다.

더군다나 한국계 국가인 고구려발해의 역사적인 관점에서는 속지주의적인 관점을 견지하는 중국이 이런 문제에서 오히려 내몽골의 자하르부가 칭기즈 칸의 후손이니 이곳에 칭기즈 칸의 무덤을 조성한다는 건 전형적인 아전인수격 해석이다.

게다가 현재 중국의 영토 내몽골이라는 속지주의적인 관점을 완전히 버려도 내몽골인의 혈통 드립치며 칭기즈 칸의 기념비를 세우는 것도 실질적으론 개드립에 가깝다. 현대적인 의미의 몽골족과 엄연히 구분되는 오이라트인이 외몽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근대 이전의 이야기이며, 실질적으로 현대 몽골 공화국에서 오이라트인은 절대적으로 소수에 불과하다. 현 외몽골인들의 대부분은 북원 멸망 이후 칭기즈 칸의 후손인 다얀 칸의 시대에 다시 재통합된 동몽골이 나중에 다얀의 후손 보얀 칸의 시대인 16세기 말에 다시 둘로 분열되며, 이게 얼마 안 있어 이들을 차례로 복속시킨 청에 의해 고정되면서 현대의 내/외몽골이 완성된 것이다.# 한 마디로 외몽골인이나 내몽골인이나 소위 '혈통적 정당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그게 그거다. 그러므로 중국의 주장은 내몽골을 토대로 속인주의와 속지주의 중 중국에 유리한 부분만 취사선택하여 몽골을 중국사에 편입시키는 동북공정 역사관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리고 중국 극우들이 주장하는 소리는 중국 내부에서도 당연히 말이 많으며, 의식 있는 중국의 역사학자들은 원나라는 몰라도 칭기스 칸이 어떻게 중국의 역사냐고 말하면서 이런 시도를 비판하고 있다.

현재의 몽골-중국 간 갈등의 기원을 찾자면, 멀리는 원대, 일단 청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때 몽골은 중원, 티베트, 위구르 지역과 함께 청에 속해 있었다. 다만 청은 중원의 한족이 아닌 만주족이 통치하는 국가였고 오히려 후금시절 만몽 연합정권의 성격을 가지고 중국을 다시 정복했으며, 청은 주변부 지역들과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중원과 남부에서는 명나라를 계승한 중국의 천자를 칭하고, 북방에서는 몽골제국을 계승한 칸이 되는 여러 얼굴을 가진 왕조였다. 티베트는 스승의 민족으로 존중해 주었고, 위구르는 식민지 취급, 만주는 성지 취급하여 만주족 외의 민족은 출입금지, 몽골은 일찍 복속된 내몽골과 후에 정복된 외몽골을 따로 취급, 분리했고 징기스칸의 성씨를 계승하는 내몽골의 보르지긴 황족과 만주의 황족은 정략 결혼을 했으며 청의 황제는 칸위를 겸했다. 더군다나 당시 청나라와 호흡을 같이한 몽골은 내몽골이지 현대 몽골국인 외몽골이 아니다. 반면 외몽골은 준가르부를 정복한 건륭제 때에 위구르, 티베트와 함께 복속시켰고 그나마 반 독립지나 다름 없었다.

한족의 독립혁명으로 청나라가 망하고 외몽골 역시 독립을 선언하지만, 중국은 근대국가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청나라와 그 소속부 지역, 민족들의 관계에 대해 서구속령의 개념으로 이해, 도입하였다. 구 청나라의 모든 영토와 민족에 대한 지배권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주장, 위구르, 티베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국제 사회에서도 이를 승인하여 몽골을 독립국가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러던 중 소련이 몽골의 독립을 도왔으며 중화민국과 전쟁을 치르던 중국공산당을 지원하는 대가로 외몽골의 독립을 보장해준 것이다. 소련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독립국 몽골도 없었을 것이다.

중국 역시 과거에 워낙 몽골에게 당했던지라 감정이 매우 좋지 않다. 여기서는 반대로 대한족주의자들의 몽골인 폭행도 일어난다. 일단은 청나라의 영토를 운운하지만, 민족감정을 들여다보면 대놓고 '중화민국은 최초로 만주고 몽골이고 뭐고 북방을 완전히 장악해버린 한족이다' 라며 뭔가 대놓고 말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중국이 몽골을 지배하는 것을 복수 정도로 여기는 듯. 이따금 몽골인과 중국인 키배를 보면 매우 살벌하다... 어쨌든 수틀릴 대로 수틀린 골이 깊은 관계다.

하여튼 현재까지도 은연 중에 중국이 가하는 압박이 많은 탓에, 몽골인은 중국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몽골의 중국 항구 이용 불허. 내륙국인 몽골은 자원을 수출하려면 천상 타국의 항구를 이용해야 하는데, 가장 가까운 중국은 반중 감정을 가진 몽골을 좋아할리가 없어 몽골의 이러한 항구 이용 요청을 거절하고 있다. 문제는 그나마 우호적인 러시아는 이미 극동 항구가 포화 상태이다. 그래서 라선북한의 항구를 개발하려 기를 쓰는 상황이다.

거기다가 식량의 자급자족이 어려워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식량의 양 또한 많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불안감도 있다. 만리장성이 생긴 이유 역시 만리장성 이북은 농업에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은 토지와 기후를 가진 땅이기 때문. 이들을 넘어서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적인 경제 문제 또한 존재한다. 몽골의 무역 상대국을 보면 몽골의 수입의 39.9%, 수출의 84%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일 정도이니 불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

항구의 경우 홍콩에서 항구를 쓰도록 해 줘서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울란바토르-홍콩 간 화물기 및 중국을 종단하는 국제 화물철로로 다시 운송한다. 그런데 달라이 라마가 몽골을 방문하자 중국측은 반발하며 2016년 12월 1일부터 몽골에 대한 화물비 징수를 하는 등 보복에 나섰다.#

게다가 몽골의 광산전기공급도 차단시키는 등 여러 가지로 보복에 나섰고 이로 인한 타격을 입고 있다.# 결국 백기를 들었고,# 방중한 몽골 외무장관은 다시는 달라이 라마를 초청하지 않겠다고 밝혀 중국도 제재를 해제하면서 개선되었다.#

그렇지만 같은 한족계라도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등 다른 국가의 한족의 경우 중국과 달리 마찰도 없고 이렇다 할 접점이 없어 그렇게 사이가 나쁘진 않다. 몽골인이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건 직접 맞닿은 중화인민공화국의 한족들이다.

오히려 몽골인들 일부는 홍콩 독립운동을 지지하며, 싱가포르는 민족만 한족계이지 영국의 영향으로 영국식 영어가 국어고 중국대륙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도 해서 되려 이국적인 관광지로 울란바토르를 자주 찾는다.

정리하자면 적어도 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대만한테 하듯이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며 합병 의도를 보이지는 않는다. 민족과 언어가 다른 것도 있고 위쪽에 만만치 않은 러시아가 버티고 있기 때문에 이를 견제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는 듯. 만약 예전에 합병됐다면 현재의 내몽골 자치구와 합쳐져 위구르, 티베트와 비슷한 위치가 됐을 듯 하다.

11.2. 대만과의 관계

원래 중화민국은 청조의 후계국가를 자청하기 때문에 대륙시기부터 원칙적으로 몽골 전역을 자국 영토로 간주했고 현재의 몽골 정권은 소련의 괴뢰정권으로 간주했다. 이 때문에 대만 입장에서 동아시아 지역에 있는 국가는 대만, 한국, 일본 셋이 전부이다.

물론 몽골 역시 그런 대만을 독립을 위협하는 적으로 명목상으로만 봤다. 하지만 어차피 명목상이고 실질적인 위협은 되지 못하니 그냥저냥 지내는 관계이다. 냉전 시절부터 이미 몽골 인민 공화국은 대만보다는 중국을 현실적으로 더 적대시했다. 게다가 대만도 요즘 들어 반중감정이 두드러지는 판이니 두 나라는 2002년부터 비공식 대표부를 두고 있다.

2012년에 대만은 헌법 해석을 변경해 몽골의 독립을 승인하고 몽골 지역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사실상 철회했다. 이게 헌법에 따른 영토변경 절차를 거친 게 아니기 때문에 명분상으로도 철회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두 나라는 2002년부터 대표부를 통해 비공식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홍콩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교류를 하고 있다.

11.3. 러시아와의 관계

해당 그림은 몽골 제국 시절 슬라브계 공국들을 털어먹던 시절과 근대에 소련한테 털리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그야말로 처지가 역전됐다

북쪽 또한 만만치 않은 국가인 러시아. 다만 몽골은 러시아와 중국 두 나라에 둘러싸여있는데 그 중 러시아보다 중국을 훨씬 더 경계하기 때문에 별 수 없이 러시아에 많이 의지하는 편이다. 러시아에 대한 몽골인들의 국민감정은 매우 좋다. 2017년 기준 몽골인들의 대러 호감도는 90%에 이른다.1차출처원출처

소련 시절의 공산주의 운동 때문에 몽골의 자랑 칭기즈 칸을 지옥에서 기어나온 대마왕으로 그려내고 모든 민족 관련 문화를 부정하게 했던 70년 가까운 역사가 있다. 심지어 1960년대, 몽골의 교육부 장관이 조상의 역사를 알자며 칭기즈 칸 유적지를 발굴하고 논문을 펴내자, 관직에서 박탈하고 시골로 쫓아냈다가 죽여버리기까지 했다.

소련은 유목을 금지하고 몽골의 전통을 파괴했는데 할힌골 전투를 계기로 몽골과 만주 지역의 유목민들에게 반제국주의, 몽골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나자 몽골 전체 인구의 5%나 되는 몽골인들이 숙청 당했고 그 와중에 몽골 여인들은 러시아 남성들에게 강간당하여 동서양 혼혈[9]을 낳기도 하였다.

몽골 내 러시아인은 5% 정도로 백인인데다 이들 대부분이 과거 몽골이 소련의 위성국이었을 당시에 러시아에서 유입되어 왔고 정교회를 믿어 종교적으로나 인종적으로나 이질적이라 몽골 사람들이 매우 싫어하며 침략자 내지는 자국내 불법체류자로 인식한다.[10] 몽골인이 제일 싫어하는 건 보통은 중국인 한족이지만, 중국인 한족보다도 이 러시아인들을 더 적대하는 몽골 국민들도 있다.

게다가 부랴티아 출신 몽골인들도 많은데, 이들 역시 근현대 러시아에 뺏겨 합병된 처지이건만, 외몽골의 주류인 할하 몽골족이 아니기 때문에 미움의 대상일 뿐이다.

또한 몽골은 에너지 공급의 90%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어서 중국만큼이나 멀어질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몽골은 러시아의 키릴 문자를 혼용하고있다.

11.4. 미국과의 관계

강대국 러시아중국에 끼어있는 안습한 탓인지 지리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에 대한 감정은 나쁘지 않다. 아니, 적극적으로 친하게 지내려고 몽골이 노력한다. 특히 자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러시아와 중국으로부터 구원해줄 세력이 미국밖에 없다고 여기는지 몽골은 공식적으론 중립이라지만 실질적으론 친미국가라 할 수 있다. 미국과의 경제 교류도 굉장히 활발하며 미국인 관광객들도 몽골을 많이 찾는다.

2003년에 조지 워커 부시가 몽골에 방문할 당시 크게 환영하며 성대한 대접을 했고 여기에 부시는 "최근 들어 내가 방문하는 나라마다 나를 21세기의 아돌프 히틀러라며 욕하는 걸개와 야유가 넘쳐나기 일쑤였는데, 이렇게 나를 환영한 나라는 정말 오랜만이다."라고까지 반응하며 감사를 표했다. 방문한 부시 전 대통령은 몽골 대통령과 회담을 가져 미국과 몽골이 군사, 안보 분야에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후 몽골은 2007년과 2011년에 대통령이 직접 미국을 방문하여 양국의 협력을 다지는 협정까지 맺었다.

미국 입장에선 몽골이 친미노선을 추구하는 것이 우군을 만들어 좋은 일이고 몽골은 중-러에 대한 일종의 외교적 견제구인 셈. 그리고 몽골은 항상 미국의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특히 몽골은 이라크에 전투병도 파병하여 미군과 함께 이라크 저항세력과 실전도 치뤄 저항세력 여럿을 사살하기도 했다. 한국을 비롯한 나라들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 전투병이 아닌 평화유지군이란 이름으로 파병한 것과 달리 몽골은 미국이나 영국과 같이 소수나마 전투병을 파병했다. 이에 대하여 러시아나 중국에서 꽤나 불쾌한 반응을 보였으나 몽골이 러시아와 중국을 자극하는게 없다보니 아직까지는 적극적인 반발이나 견제를 하지 않는다. 여하튼 당시 일부에선 몽골에 미군 주둔 문제까지 나오는 거 아니냐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가 당선된 지금은.....

몽골의 유엔 가입 자체가 미국이 대만에 압력을 넣어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2019년 6월 6일에 미국 국방부는 몽골을 대만, 싱가포르, 뉴질랜드와 함께 우방국가로 명기했다.#

11.5. 영국과의 관계

1963년 서유럽 국가 중 최초로 몽골과 수교. 두 나라가 비슷한 역사를 가졌고 서로 지형이 동양의 내륙국 VS 서양의 섬나라정반대라서 어떤 영국 사람들은 은근히 몽골을 동경하곤 한다.

11.6. 스웨덴과의 관계

냉전 당시 중립국인 스웨덴이 대몽 지원을 상당히 해주었고 지금도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1.7. 이탈리아와의 관계

이탈리아와는 당연히 우호 관계이다.

11.8. 한국과의 관계

11.8.1. 탈북 루트

몽골은 중국 인근 국가 중 태국과 함께 탈북자를 인도적으로 대우하는 얼마 안 되는 나라들 중 하나라서 중국 내 한국 대사관 진입이 어려울 경우 몽골 밀입국을 시도하기도 한다. 몽골 루트의 경우 국경만 넘으면 북송 걱정은 없고 일단 몽골 국경수비대와 만나기만 하면 한국행은 약속되어있다. 하지만 중국에서 몽골로 가기 위해선 몽골의 모래사막을 지나야 하는 문제가 있다. 영화 크로싱이나 경계(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길도 없는 모래사막에서 몽골 국경수비대에 우연히 발견되기라도 하지 못하면 죽기 딱 좋은지라 대체로 동남아(라오스-태국) 루트를 많이 선택한다. 다만 태국까지 가다가 중간에 라오스에서 잡히면 북송되기 십상이라는 것이 문제.[11]

11.9. 일본과의 관계

역사적으로 일본에 쳐들어간 적도 있었고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할힌골 전투를 치르기도 했었지만, 오늘날에는 일본과 사이 좋은 편이다. 일본 애니가 몽골에서도 방영되고 있고, 일부 오덕도 존재하고 있다. 몽골인들이 스모선수가 되는 경우도 있으며 친일 발언을 하기도 한다. 사실 중국 견제를 위하여 일본이랑 관계 개선에 정계가 노력하는 점도 크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이랑 굉장히 사이좋은 부탄과 똑같다. 부탄처럼 중국이 일본에게 당한 건 좋아라 고소해하며 일본 편을 들어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단지 중국이 싫다 뿐이지, 무조건 일본이 좋다는 게 아니며 한국 등 다른 일제에 피해를 입었던 다른 아시아 나라들과의 외교도 고려해야하기에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 문제에 대해서도 부탄처럼 그닥 일본 편을 들어주지 않고 중립적으로 대하거나 기권하며 다른 아시아권 국가들과의 관계도 신경쓴다.

2018년 12월 14일에 아베 총리는 몽골을 방문한 자리에서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해 몽골과 연대하고 양국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한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11.10. 터키와의 관계

터키는 최근 몽골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일단 튀르크부터 기원이 몽골 고원이다. 흉노, 돌궐이 발원한 곳은 서몽골의 알타이 산맥이며 흉노, 돌궐의 강역은 내외몽골과 바이칼부터 흑해카스피 해, 중앙아시아, 이란 동부에 이르렀다. 그리고 셀주크 튀르크는 돌궐어파에서 나왔다. 터키가 서쪽으로 이주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같은 뿌리였던 만큼, 돌궐어계의 후신인 터키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되찾아야 하는 곳이다. 오스만 제국이스마일 엔베르는 아예 위구르로 천도를 계획하며 몽골 고원으로의 복귀를 시도했을 정도.

물론 현대 터키 공화국은 몽골을 먹을려는 생각도 힘도 없고그러기 전에 그리스, 불가리아 등 앙숙인 주변국들부터 견제해야 한다. 그저 외몽골 내 돌궐 유적지를 복원하고 터키인들에게 답사하게 하는 것과 몽골-터키 양국의 경제 교류를 늘려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밖에는 관심이 없다. 민족적으로도 튀르크몽골인과 가깝고 언어도 가까운 관계이므로 몽골 정부도 터키와의 협력은 나쁘지 않게 보는 편. 다만 역사문제에 있어서는 흉노, 돌궐의 역사귀속을 둘러싸고 갈등이 있긴 있다. 그나마 몽골이 우호적으로 생각하는 나라가 터키이며 울란바토르에는 터키인 공동체도 있다. 반대로 이스탄불에도 몽골인 공동체가 있다. 터키 항공이스탄불에서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경유하여 울란바토르로 가는 직항을 취항 중이며 탑승률이 꽤 높은 편이다. 그만큼 교류가 많다는 얘기다.

11.11. 헝가리와의 관계

몽골 제국은 예전에 헝가리로 원정을 간 적이 있다. 그리고 터키와 마찬가지로 같은 계통이라고 여겨지는 헝가리도 나름 몽골과의 외교에 관심을 가지는 편이다.

11.12. 베트남과의 관계

베트남과는 한때 같은 공산권 국가이기도 했고 중국이라는 공동의 적으로 인해 일단은 우호 관계이다.

11.13. 기타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중국과 적대관계에 있는지 악사이친,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중국과 사이가 나쁜 인도, 필리핀 등과는 사이가 좋은 편이다. 심지어 몽골은 인도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에 필리핀과 같이 인도의 상임이사국 선정을 적극 지지할 정도이다. 그리고 중국의 영토이지만 1국2체제이며 홍콩 독립운동도 있는 홍콩과도 사이가 좋은 편. 내륙국이라 항구가 없는 몽골에서 홍콩항을 많이 빌려 쓰고 있고 경제적 교류가 활발하다. 영국령 홍콩 시절부터 경제적 교류가 꽤 있었던 것 같다. 2012년에는 부탄과 수교를 맺었는데 부탄과 몽골은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과 반중감정에서 공통점이 있어 사이가 좋다.

12. 국외 주요 몽골인 거주 지역

12.1. 중국내몽골 자치구

내몽골 자치구 문서 참고.

내(內) 자는 중국 입장에서 중국 안쪽의 몽골이므로 내몽골 혹은 중국령 몽골, 남몽골이라고 일컫는다. 중국 입장에서 이 지역과 대비해서 1번 문서의 독립국 몽골을 말할 때는 바깥 외(外) 자를 써서 외몽골 혹은 외몽고 혹은 북몽골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몽골국"이라 하여 구별하기도 한다.

이 지역 때문에 몽골도 분단국가로 보기도 하는데, 가능성을 떠나 통일을 주장하는 세력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사실 유목민족부족이 다르면 남남이나 마찬가지라 애초에 내외몽골인들끼리도 사이가 별로 좋지 않고 역사적으로도 따로 논 기간이 상당히 길기 때문에 좀 애매하다. 외몽골은 할하 몽골 및 오이라트인이 주로 살아왔고 내몽골자치구에는 징기스 칸의 진짜 후손인 보르지긴 혈통이 다스린 차하르부가 자리잡아 왔으며 이 차하르부가 원나라의 옥새를 가졌었다가 후금의 칸에게 넘겨 주었다. 할하, 차하르라는 부족 간의 차이는 매우 크다. 내몽골의 차하르 몽골어와 몽골국의 할하 몽골어의 차이는 방언 정도.

외몽골 인구보다 내몽골 인구가 더 많고 그 내몽골에는 한족 인구가 훨씬 더 많다. 한국으로 치자면 한반도의 남북한보다 중국 조선족 자치구 조선족의 인구가 더 많은데 그 조선족의 인구보다 한족이 훨씬 더 많은 꼴이다. 거기다 외몽골인과 내몽골인의 사이는 영 좋지 않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차하르 몽골족은 스스로는 몽골인인 동시에 중국인으로 인식하며 부족부터가 내몽골과 외몽골은 다르다. 물론, 자기 자신을 중국인으로 인식하는 것과 친중과는 다르다. 또한 차하르 몽골족에서도 역사적으로 몽골족 통합을 시도하려고 했던 인물이 근대에도 있었다! 비록 일본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지만 데므치그돈로브는 몽골민족 통합의 꿈을 위해 일본에 협력했던 것이며, 내, 외몽골과 나아가 소련령 부랴티아까지 통합하겠다고 했었다. 부족적 차이로 내, 외몽골이 적대하고 있는 것이지 자신이 몽골족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여간 내몽골 독립 시에 과연 외몽골과 합체를 할 것인가는 속단하기 어렵다. 의외로 꽤 오래 전부터 내몽골과 외몽골은 독립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기 때문. 더구나 몽골 역시 공산당이 집권할 때 귀족들을 잡아죽인 역사가 있어 내몽골 귀족 후예들부터가 외몽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12]

동해가 남해가 되고 황해가 대동양이 되는 마법

아울러 내몽골의 몽골족이 외몽골의 몽골족과 대립하고 있는 사실이랑은 별개로 내몽골의 몽골족들도 한족들과 사이는 영 좋지 않으며 엄연히 한족과는 다른 민족성을 가지고 있다. #

중국의 내몽골은 내몽골자치구이며 내몽골인들에게 상당한 재량권을 주고 있는 편이다.

내몽골 외에도 랴오닝 성허베이 성, 신장 위구르 자치구 등 중국 북부 지역 곳곳에 몽골족 자치 지역이 존재한다.

12.2. 러시아의 부랴티아

부랴티야 공화국 문서 참고.

러시아부랴티아도 러시아령 몽골 내지는 부랴트 몽골, 동북 몽골이라고 불린다. 부랴티아인들은 몽골인의 일파로 칭기즈 칸 당시부터 존재했으며 이들의 언어인 부랴트 몽골어는 몽골어의 방언에 속한다. 외몽골의 할하 몽골어 및 오이라트 몽골어, 내몽골의 차하르 몽골어와는 방언 정도의 약간의 차이가 있다(발음 및 억양 등). 많은 사람들이 깜빡하는데 부랴티아도 엄연히 "몽골"에 속한다! 즉 몽골은 독립국 외몽골, 중국령 몽골인 내몽골, 러시아령 몽골인 부랴트의 3개가 있는 셈. 부족 간의 구분이 그대로 굳어졌다고 보면 된다.

단 외몽골의 몽골인들은 이 부랴트인을 아주 싫어해 자국 내 부랴트인들에게 엄청난 차별을 가한다. 그래도 동족은 동족이라 그런지 교류는 꽤 많은 편으로, 부랴티야의 중심도시 울란우데에서는 몽골과 오가는 철도와 버스가 하루에도 수 편씩 다닌다. 또한 이르쿠츠크치타에서도 부랴트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12.3. 러시아의 칼미키야

칼미키야 공화국 문서 참고.

뜬금없게도 러시아의 유럽 지역에도 몽골계 민족인 칼미크인들이 거주하는 칼미키야 공화국이 있다. 러시아의 칼미크인들도 몽골 계통의 민족으로 러시아의 유럽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유일하게 불교 위주의 지역이다. 소련의 해체 이후에는 몽골의 지원으로 불교 사원이 지어지는 등 몽골도 칼미크족들을 지원하고 있다.

12.4. 러시아의 투바

투바 공화국 문서 참고.

여태껏 수세기동안 외몽골의 일부로 여겨지고 현 몽골지역과 역사를 함께했지만 1912년 신해혁명중에 러시아 제국이 투바를 합병하면서 결별하고 러시아 내전중에도 되찾지 못하여 투바는 미승인국이였던 독립국 투바 인민 공화국과 러시아 합병 이후 투바 자치령, 투바 ASSR 그리고 현 투바 공화국으로 떨어져있는 상태이다.

위에 소개된 부랴트내몽골의 몽골인들보다는 비교적으로 사이가 좋다곤 하지만 합쳐질 가능성은 현재로선 0에 가깝다

13. 창작물에서의 몽골

  • 문명 5에서는 공짜 DLC로 나온다. 젠장 한국은 5달런데 특성은 도시국가 공격 시 보너스. AI가 상당히 호전적이다. 문명 6에서는 흥망성쇠 확장팩으로 나온다.
  • 2007년에 몽골이라는 제목의 러시아 영화가 개봉했다.
  • 레인저스에 등장하는 세력인 테무자이의 모티브다.
  • 마기에 등장하는 민족인 황아 일족의 모티브다.

14. 둘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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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결함있는민주주의] 1.1
  2. [2] 몽골국의 경우 몽골족의 절대다수가 할하 몽골인이다.
  3. [3] 무시하는 명칭
  4. [4] 기온의 경우 위도뿐만이 아니라 격해도나 해류, 해발고도 등 다양한 기후 요인들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기온차가 위도와 상관 없는 경우는 많다.
  5. [5] 그러나 그마저도 개체수가 1천 마리가 채 안된다.
  6. [6] 여담으로 아주 넓은 땅에 인구가 적은 몽골도 있는데 이스라엘인구가 적지만 시나이 반도를 가지지 못 할 이유가 있느냐라면서 1970년대 말에 이스라엘 극우들이나 하레디들이 몽골을 예로 들며 중동전쟁에서 이집트로부터 강탈한 시나이 반도를 유지하자고 주장한 적도 있었다. 물론 이런 예를 들며 결사반대했지만 결국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를 1981년에 이집트에게 반환했다.
  7. [7] 몽골보다 더한 경우로는 포클랜드 제도, 그린란드를 들 수 있으나, 포클랜드의 경우 영국의 속령이고 그린란드의 경우 덴마크의 자치령이라 독립국이 아니다. 참고로 2위는 나미브 사막을 끼고 있는 나미비아.
  8. [8] 시내에는 도시로써 필요한건 전부 갖추지만,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바로 게르촌이다. 수도, 배관, 난방시설도 없어서, 물을 길어쓰고 추우면 난로에 타이어라도 때서 쓴다. 덕분에 겨울에 매연이 엄청나다.
  9. [9] 정작 러시아에선 유색 혼혈인을 싫어한다.
  10. [10] 대략 현재 미얀마에서 버마족, 아라칸족 등 황인계 미얀마인들과 영국의 미얀마 식민 통치 시기 똑같이 영국 식민지였던 다른 미얀마의 인접국들인 방글라데시와 인도에서 미얀마로 유입되어 온 인도-유럽 백인계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이 겪고 있는 대립관계와 비슷하다고 보면 될 듯 싶다. 다만 해외에서 태어난 러시아인들도 자국민으로 받아주는 러시아와 달리, 로힝야족은 미얀마의 이웃나라이자 언어, 민족, 문화가 비슷한 동족격 국가인 방글라데시와 인도에서도 자국민으로 안 받아주고 있다. 사실 인구도 적고 영토가 방대하여 해외에서 태어난 러시아인들을 자국민으로 받아도 아무 별 탈 없는 러시아와는 달리 인도와 방글라데시는 자국내의 자국민들조차도 인구가 폭증하는 국가인데다 경제적인 사정조차 몹시 안 좋아서 미얀마 정부의 탄압을 피해 도주해오는 로힝야족 난민들을 같은 동족이라고 해서 자국민으로 무턱대고 받아줄 수도 없는 처지인 면도 있다. 자세한 건 로힝야 문서 참조
  11. [11] 2013년 라오스 탈북 9명 청소년 사건이 있었는데, 정부와 외교, 라오스 당국, 탈북자들간의 공방이 이어졌는데, 결국 9명 모두 북송되어 라오스 루트가 붕괴되었다.
  12. [12] 외몽골에도 귀족들의 성씨가 있으나 이것은 몽골인들이 성씨를 복구시킬 때 몽골인들이 보르지긴처럼 귀족들 성씨를 많이 선택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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