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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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 Literature.

1. 정의
1.1. 학문이 아니다
1.2. 예술의 일종
2. 갈래
2.1. 서정 갈래
2.2. 서사 갈래
2.3. 극 갈래
2.4. 교술 갈래
3. 언어의 장벽
4. 관련 문서

1. 정의

"문학"이란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작품으로서 시, 소설, 희곡, 수필, 평론 등을 말한다.

- 문학진흥법 제2조 제1호.

사람은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 그로 인해 안정감을 얻는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부터 정보를 얻어 학습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다.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이 의사소통이며, 이 의사소통을 발성이나 기록의 형태로 남겨 전달하는 것이 문학이다.

문학은 인간사상감정언어를 사용함으로써 표현되는 예술이다. 문자가 있는 사회라면 어디든지 존재해온 예술형식이며, 보통 문자가 없는 사회의 구전문학까지 포괄한다. 문학과 상대되는 것으로 논술, 설명서 등으로 대표되는 비문학이 있다.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는 서정(lyrik), 타자를 서술하는 서사(epik), 행동을 모방하는 극(dramatik) 이 세 가지 중 서정과 서사가 이야기, 즉 문학의 영역에 속하고 마지막의 극이 재현, 즉 구경거리(showing)의 영역에 속한다.

흔히 소설이나 , 수필 등만을 가리키는 협의로 이용되지만, 광의로서는 언어로 하는 모든 창조적 활동이 문학의 범주에 포괄될 수 있다. 노벨문학상의 문학의 의미도 사실 이러한 광의에 가까웠으며, 처칠이나 베르그송이 작가가 아닌데도 문학상을 탄 것도 그러한 경위라고 한다. 혹은 이 경우는 노벨문학상이 문학 업적 보다 아주 종종 세평이 좋은 다른 권위자에게 수여하기도 한다는 예로 자주 언급된다. 이러한 경우는 몇몇 더 있다. 철학자로는 오이겐이 있고, 역사학자로는 몸젠이 있다. 처칠은 자서전이 그나마 유명세를 탔고[1], 베르그송은 프랑스 철학자 중에서도 아름다운 프랑스어 문체를 가졌기로 아직까지도 유명하다. 그러나 둘 다, 시, 소설, 희곡 류의 글은 한편도 쓰지 않았다. 수상 거부로 남은 사르트르가 문학 활동에 적극적이었던 것과는 아주 다르다. 베르그송은 자서전도 쓰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된 사람은 밥 딜런이다. 노벨문학상의 '문학'이 얼마나 범위가 넓은지를 보여주는 사례.

1.1. 학문이 아니다

문학은 절대 학문이 아니며, 문자를 사용한 예술의 한 분야이다. 하지만 뒤에 자 하나 잘못 붙어버려 학문과 비슷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따지면 원래 더 옳을만한 말은 문예로, 문자 예술이라는 더 직관적인 이름으로 읽어야 한다고 한다. 가끔 "문학 이론"을 문학이라고 부르고 문학 작품들은 문학 이론을 써서 만들어낸 공예품 비슷한 걸로 보는 모양이다만, 대부분의 기관에선 백이면 백 예술 장르 중 하나로 받아들이고 사전적 정의로도 그렇게 나와있다. 저 문학 이론도 문예학이라고 불러야 된다는 입장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文에 學이란 말이 붙게되었을까? 우리가 지금 쓰는 개념의 문학은, 다른 말들도 거의 그러하듯이 일본에서 만들어낸 번역어이다. 사실은 문예도 그러하다. 두 말 모두 literature 라는 말이 원어였다. 이 역어가 노정한 문학, 그리고 문예의 성격에 대해서는 매우 많은 논의가 있어왔다. 사실 "문학"은 만들어진 초기부터 "문예"라는 말과 길항작용을 했다. 문학이라는 말 자체는 근대이전에 전혀 다른 의미로 쓰였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학문'을 뜻하는 단어였다. 지금 문예와 통하는 개념과는 완전히 달랐기에, 주로 이 연구는 일본에 《소설신수》 등이 등장하는 등의 일본 근대 문학의 형성기를 살피면서 견해를 주장한다. 사실 한국의 매우 많은 개념들에 대한 추적이 다 이런 식이다. 실제로 최초의 근대소설가인 이광수는 문학에 대한 개념을 정립한 〈문학이란 하오〉에서 문학을 'literature의 역어이면서 정성을 담아 예술적인 내용을 사실성 있게 전문 작가가 쓴 자유로운 내용의 글'을 문학이라고 정의하였다. 이러한 논의는 1896년 이후부터 1910년 전까지 계속되어왔고, 1910년대에 접어들면서 오늘날과 같은 의미가 정립되었다. 다만, 현대 문예이론의 추세에 따라 여성문학, 아동문학, 노동자문학 등 다양한 장르가 끊임없이 문학의 범주에 추가되고 있다.[2]

같은 맥락으로, '국어국문학과'도 '국어-국문학-과'로 읽어야 한다. 상당히 오랫동안 이 문서의 이 부분에서 '국어-국문-학과'로 읽어야 한다고 나와 있었는데, 이는 틀린 서술이다. '국어국문학과'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는 학과[3]이며, '국어국문학'은 국어학과 국문학을 합쳐서 이르는 말이다. '국어학'은 국어를 연구하는 학문이고, '국문학'은 국문학 그 자체 혹은 국문학을 연구하는 학문을 뜻한다. 국어국문학과의 영문 번역명도 Department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이다. 이전 문서에서 '국어국문학과'를 '국어-국문-학과'로 읽어야 한다면서 든 근거가 음성 언어(말, 어[語])와 문자 언어(글, 문[文])가 합쳐져서 언어라는 한 체계가 된다는 것인데, 애당초 문자 언어는 음성 언어를 시각화한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음성 언어에 종속된 2차적인 존재이며, 따라서 언어의 근본은 음성 언어이다. 문자 언어는 물리학-양자역학의 관계처럼 음성 언어의 하위 분류일 뿐이므로 둘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고,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도 없다. 옛 교육과정의 초등학교 국어는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의 네 영역으로 나뉘었다. 듣기와 말하기는 음성 언어에 속하고 읽기와 쓰기는 문자 언어에 속하지만 구분 없이 '국어'라는 한 교과였던 것이다. 따라서 '국어국문학과'가 '국어-국문-학과'라는 서술은 완전히 틀렸다.

더욱 큰 문제는 대한민국의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문학과목의 교육방식이다. 한 사람의 인생 방향을 한방에 갈라버리는 수능시험, 그리고 이 보다 더 지독한 공무원시험을 위해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르치는 문학은 학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학문처럼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문학을 포함한 예술은 절대 흑과 백, 0과 1로 나뉠 수 없지만, 문학작품을 통해 독자가 느낄 수 있는 감정까지도 정해진 답처럼 주입시켜버리는 이 현 세태가 학문이 아닌 문학을 학문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것 이다.

1.2. 예술의 일종

따라서 일각에서 사용하는 이른바 "문학과 예술"이라는, 문학을 예술로부터 분리하려는 시도 역시 엄연히 잘못된 것이다.[4]

대한민국에서는 문학진흥법에 문학을 예술의 하위분야라 엄중히 규정하고 있으며,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문학을 예술의 하위분야로 규정한다..## 또한 대한민국예술원법에 따라 대한민국예술원에도 역시 문학분과가 포함되어 있다.

또한 프랑스에서는 헤겔의 미학 연구에서 쓰였던 연극, 회화, 건축, 문학, 음악의 기본 예술에 근대에 무용을 넣은 6개의 기본 예술을 지칭하며, 리치오토 카누도가 7번째 예술을 영화로[5], 8번째는 논란이 많은데, 라디오와 텔레비전과 사진이 끊임없이 자웅을 겨뤄, 프랑스 내에서도 상당히 혼용되고 있다. 문화부에서는 사진이라고 했지만 프랑스국립사진센터가 엮여서 또 다른 이야기가 많다. 9번째는 만화가 확고하게 언급되는 상태. 그리고 제 10의 예술이 뭐냐는 주제도 상당히 떡밥이 되는 모양. 하여튼 프랑스에서는 제 n의 예술이 각각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흔히 쓰인다.

호칭

해당 문화, 예술

기타

제1의 예술

연극

제2의 예술

회화

제3의 예술

무용

제4의 예술

건축

조각을 포함한다. 서구권 조각이 건축물 장식에서 시작되었기 때문.

제5의 예술

문학

제6의 예술

음악

제7의 예술

영화

리치오토 카누도가 영화를 제7의 예술로 정의함.

제8의 예술

사진

제9의 예술

만화

프랑스에서 20세기 초 만화를 제9의 예술로 정의함./1971년프랑스의 ‘라루스 알파벳 대백과사전’[6]에서 예술로 규정.[7]

2. 갈래

갈래를 볼 때에는 유개념(Gattung)과 종개념(Art)의 두가지 범주를 볼 수 있는데, 유개념는 대분류이고 종개념는 소분류로 한다. 이렇게 볼 때 문학을 시와 소설 이런 식으로 분류하는 건 이때까지 있었던 한국의 많은 고전 문학의 갈래들을 무시하는 것이 되어서 큰 대분류로 분류하는 것이 시급했다. 옛날의 문학에선 한문학의 기준을 따른 48개의 분류가 있었지만 문학의 새로운 지평이 끊임없이 열리던 현대문학에선 적용할 수 없었던 분류였다.

그 현대 문학은 아무래도 서양의 문학 형태를 뒤따른 형태다보니 큰 형식에 대한 논의 문제가 있지 않았다. 근데 여기서 문제는 고전 문학. 아무래도 그런 틀이 있기 이전의 문학이기 때문에 쉽사리 서양의 기준에 끼워넣기 어려운 중립적인 형태 역시 상당수 존재했다는 것이 문제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관동별곡 같은 가사문학. 시인지 수필인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논의가 정말 많이 있었으며 아직까지 문학교과서에서 정하는 바 역시 계속 달라지는 둥, 국문학에서 가장 복잡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부분이다.

최초로 나뉜 건 이병기의 2구분으로 시가문학과 산문문학의 2개. 기준은 운율이 있는가 없는가로, 사실 문학의 한 특징만을 보고 너무 크게 나눈거 아닌가 하는 비판이 많았다. 김기동은 산문 장르군과 율문 장르군의 두 개로 나누었고 율문 장르군에 시적 장르와 극적 장르 두개, 산문 장르에 소설 장르, 희곡 장르, 수필 장르, 평론 장르가 모두 들어갔다. 근데 이렇게 되면 판소리계 소설과 현대 희곡이 찢어지는 불상사가 생겨서 비평이 좀 생겼다.

그 뒤 조윤제가 <조선시가사강>에서 시가, 산문으로 나누었지만 후에 <한국시가의 연구>에서는 하지만 가사가 나서면 어떨까? 하면서 형식은 운문이지만 내용은 마냥 시라고 하긴 어려운 문필 문학을 새로 만들고 가사 분류를 따로 만들었다. 근데 이렇게 되면 문필과 가사는 형식으로 분류하는 것도 아니고, 내용으로 분류하는 것도 아니고. 뭐야 이거? 이렇게 2중 적용의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그 뒤 이능우가 '애매한 문필 분류가 아니라 수필로 취급하자!'며 기존의 시, 소설에 수필 분류를 만들어 가사를 넣었다. 여기선 또 희곡이 빠져서 문제가 되었다.

조윤제는 후에 이 애매한 문필 분야를 다시 쪼개서 소설, 희곡으로 정했다. 그게 시가, 가사, 소설, 희곡의 4부문에 평론과 잡문의 부수부문. 근데 아무리 봐도 가사가 붕 뜨는 걸로 봤을 때 소설도 너무나도 협소한 영역을 포괄하다 보니까 영 좋지 않은 분류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평론과 잡문이 전 분류에선 제대로 분류 안에 갔는데 이번엔 또 빠졌다.

후에 장덕순은 서정적 양식, 서사적 양식, 극적 양식이라는, 유개념으로써의 활용을 제대로 염두에 두고 '서정'과 '서사'라는 큰 의미의 분류를 만들게 되었다. 내용적인 측면에 가장 치중한 분류를 통해서 형식 분류 역시 같이 가져오려는 목표를 노렸지만 수필이 서사적 양식에 속하게 된다는 점, 그리고 가사를 주관적, 객관적 나눠서 서정적, 서사적으로 찢는 것 역시 너무 인위적이고 애매한 것 아니냐는 반론이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 큼직큼직하게 뭉치로 분류할 수 있는 내용적 분류라는 개념은 후에 갈래 분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비슷하게 분류한 게 김윤식으로 유개념으론 '기본형', 종개념으론 '변종형'으로 정해두고 서구권 변종형을 '변종1형', 비서구권 변종형을 '변종 2형'으로 분류하고 장덕순과 비슷한 서사, 서정, 극 형식을 만들었는데, 가사는 쿨하게 서정으로 넣어두고 수필은 쿨하게 빼버린 특이한 분류를 보였다..

지금까지의 문제점이 바로 한국 등 동아시아에서 크게 발전했던 수필계 문학의 분류가 곤란하다는 점이었다. 가사, 설, 경기체가, 가전체 등등의 픽션과 논픽션이 구분되지 않았던 상황을 도대체 서양의 기준에서 어떻게 판단할 것이냐? 특히 한국에서는 서사 문학이 각잡고 보는 예술로 취급받지 못해 하나의 고유한 갈래라는 인식도 약했기 때문에 더더욱 문제가 생긴다. 아니, 애초에 동양에서 文을 유럽처럼 문사철로 구분하지도 않았던 판국에, 서양의 문학체계를 가져와서 연구하면 모양새가 영 이상해진 것을 위에서 끊임없이 봐왔다.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등장한 것이 70년대 조동일이 만든 4갈래설. 조동일은 현재까지 한국 고전문학의 거장으로 고전문학에 대해서는 건들어보지 않은 부분이 없는 수준. 여기에서도 연구를 통해 이때까지의 갈래구분이 어설픈 기준으로 애매모호한 잡탕들을 만들어낸 것에 비추어, 이 구분은 전환표현의 방식자아세계의 대립 방식이라는 추상적인 기준을 가져와서 분류를 하기 시작했다.

우선 전환표현의 방식이란 관점에서 서정은 '비특정 전환표현', 교술은 '비전환표현', 서사는 '불완전 특정 전환표현', 희곡은 '완전 특정 전환표현'이라는 방식으로 분류하고,

자아와 세계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서정은 '작품 외적 세계의 개입이 없는 세계의 자아화', 교술은 '작품 외적 세계의 개입으로 이루어지는 자아의 세계화', 서사는 '작품 외적 자아의 개입으로 이루어지는 자아와 세계의 대결', 희곡은 '작품 외적 자아의 개입이 없는 자아와 세계의 대결'이라는 것이다. 깊이 가면 성리학까지 끌어다 쓰는 신공을 보인다.[8]

이 분류에서 가장 특기할 점은 가사수필이라는 희대의 난적을 장르 돌려막기나 땜빵 신장르같은 미봉책을 안쓰고 정식으로 분류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항상 뭐가 분류되면 반대로 뭐가 분류 안되고, 어찌어찌 분류를 한다 해도 기준에 일관성이라곤 없던 방식에서 떠나, 비록 엄청난 수준의 뜬구름이라도 예외 처리 없이 제대로 분류할 수가 있게 된 것. 거기에다가 장르를 분석하기 위한 기저가 제대로 마련되기도 했다. 분류를 위한 분류가 아닌, 국문학적 연구에 있어 큰 의미가 있을 수 있는 분류방식이 되었다. 소설는 대충 봐도 다르지만, 어떤 점에서 다른가 하느냐고 물을 때 그에 대한 국문학적 대답이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직관적이며 깔끔한 동시에 체계적이라는 점 때문인지, 초중고 교육과정에서는 대개 3갈래설 중 하나 아니면 이 방식을 통해서 가르치기 마련이다.

문제점도 당연히 있는데,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문제점은 게슈탈트 붕괴 추상적인 용어의 뜻이 명확히 정의되지 않는다는 것. '특정'이라는 표현과 '전환'이라는 표현이 특히 문제인데, 전환이라는 말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직감적으로 파악할 수도 있겠지만, 대충 용어를 정의했다간 속출하는 예외의 숲에 파묻혀버리고 만다. 그래서, 학부 수준 선에서도 제대로 이 용어들이 의미하는 바는 알아내기는 쉽지 않다. 특정은 애초에 정의가 거의 안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연구에 도움을 주기는 커녕 정의 하나하나 다시 뜻풀이를 짚어갈 뿐만 아니라 나름의 재정의도 다시 해야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또한, 비교적 명확한 개념인 자아와 세계의 관계로 규정한 것 역시 과연? 이라는 말이 나온다. 과연 진짜로 세계라는 말이 자아 반대말로 막 갖다쓸 수 있는 표현인가, 경기체가가사는 그럼 자아의 세계화인가 세계의 자아화인가 등등.

이 후 김수업이 노래문학/이야기문학/놀이문학/기타 문학이라는 순우리말 이름을 써서 4분류를 만들어냈는데, 엥? 이거 완전 시소설희곡+쩌리 아니냐? 라고 하기엔 기본적으로 노래문학과 이야기문학, 놀이문학은 각각 시, 소설, 희곡의 좀 더 넓은 의미를 포괄하는 단어다. 김수업의 말을 빌리면 노래 문학은 "마음속에 생겨나서 나타내고 싶은 생각이나 느낌을 제 목소리 그대로 제 입을 통하여 자기의 것으로 토로해 내는 문학", 이야기문학은 "마음속에 생겨나서 나타내고 싶은 생각이나 느낌을 마치 자기의 것이 아니고 남의 이야기인 것처럼 꾸며서 자기는 단순한 전달자에 지나지 않는 듯이 표현하는 문학", 놀이문학은 "마음속에 생겨나서 나타내고 싶은 생각이나 느낌을 남에게 시켜서 남들의 입으로 마치 그들 스스로의 것인 양 토로하게 하는 문학"이라고 정의했다. 문제는 X맨기타 문학이란 "위의 세 갈래에 들지 않는 모든 문학을 다 싸잡아 넣은 것"이라는 분류가 결국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며, 그리고 이게 엄연한 유개념으로 존재하게 된다는 것. 이렇게 되면 서로 다른 갈래간의 체계적이고 유기적인 관계가 흐려진다는 것. 이런 문제 때문에 논의상으로는 존재한대도 이 이름으로 교육이 이루어진다거나 그럴 순 없게 되었다.

이렇게 달려와서 현재의 갈래론은 3갈래론과 4갈래론의 양강 체제에 다양한 이론들이 달려 있는 상황이다.

2.1. 서정 갈래

언어를 아름답게 구성하여 심상이나 교훈을 남기는 형식이다. 언어가 만들어질 때 만들어져 사실상 문화문명의 탄생 때부터 존재해온 예술 형식 중 하나로 세계 어디서나 찾을 수 있다. 중국의 《시경》, 인도의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 그리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등 서사시, 이스라엘의 시편 등 고대 문자 문화권에서는 단연 쉽게 찾을 수 있으며 심지어 낙후된 문화권에서도 구비문학이라는 형태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2.2. 서사 갈래

2.3. 극 갈래

2.4. 교술 갈래

3. 언어의 장벽

예술로 취급되기 쉬운 다른 분야의 예술과 질적으로 다른 것이 바로 외국어. 아무리 같은 종류의 내용과 같은 종류의 영감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멜로디가 주가 되는 음악과 보기만 하면 되는 미술 등 감각에 의존하는 많은 예술과 질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 외국의 명작은 기본적으로 평가되기가 매우 어렵다. 아무리 세상에 국경이 없어졌다 한들 언어라는 건 공부하는 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문구 하나하나가 주는 느낌을 제대로 느끼려면 사실상 원어민의 경지에 도달해야 하기 때문이며, 뿐만 아니라 언어를 사용하는 지역에 대한 문화에 대해 심도있는 이해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정작 번역하는 건 또 다른 문제고 어떤 번역을 하든 완벽하게 똑같은 의미를 내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외지의 문학에 대해서는 다른 종류의 예술에 비해 접근성이 차원이 다르다.

4. 관련 문서


  1. [1] 확실히 방대하고 당시 상황을 살펴보는 데는편향된 부분을 가려낸다면 유용한 자료이며, 문장력도 훌륭하긴 하지만, 승전국의 지도자라는 권위가 없었다면 노벨문학상을 줄 정도의 작품이었나는 글쎄...
  2. [2] 라이트노벨과 같은 상업성이 짙은 문학도 대부분의 문예이론에서는 문학의 범주에서 논한다. 물론 일부는 전통적인 문예만 인정하는 견해를 보이지만, 이론의 학문적 추세는 문학(문예)이 맞다.는 것이다.
  3. [3] 대학의 학과는 '-학'을 전공하는 학과만 '-학과'로 끝나고 나머지는 그냥 '-과'로 끝난다. 정치외교학과, 물리학과, 철학과정치외교학(정치학+외교학), 물리학, 철학을 전공하는 학과이고 조소과, 동양화과, 성악과조소, 동양화, 성악을 전공하는 학과이다.
  4. [4]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번역을 잘못한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님.
  5. [5] 원래 6번째라고 했으나, 무용을 추가함에 따라 스스로 7번째로 밀어넣었다.
  6. [6]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05r3172a
  7. [7]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48553&cid=50338&categoryId=50338
  8. [8] 하지만 성리학 빠진다고 갈래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서 성리학은 장식이라는 평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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