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 대법원

1. 개요
2. 상세
3. 재판의 진행
3.1. 법무부 송무차관(Solicitor General)
4. 대법관의 성향과 '정치적인 법원' 논란
4.1. 이런 대중적 인식이 생겨난 원인
5. 현직 연방 대법관
5.1. 명단
6. 역사적인 판결
7. 역대 주요 연방 대법관 명단
8. 관련 문서

Supreme Court of the United States(합중국 최고 재판소)

1. 개요

미합중국 최고 사법 기관. 헌법 및 하위 법률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을 하는 곳으로 대한민국의 대법원·헌법재판소에 상응하는 기관이다. 여기서 발표하는 판결에 따라 미국 사회가 급변할 수 있으며 보수와 진보의 첨예한 각축장이기도 하다. 수도인 워싱턴 D.C.에 있다. 연방 대법원의 법관들의 존칭은 살아있는 정의의 화신이라는 의미에서 Justice다.[1]

2. 상세

연방 대법원은 대법원장(Chief Justice)과 8명의 대법관(Associate Justice)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임명에는 상원의 동의가 필요하다. 미국의 대법관은 한국의 대법관들과 달리 스스로 사임·은퇴하거나 범죄 행위로 인해 탄핵받지 않는 한[2] 헌법에 의해 종신까지 임기를 보장받는다(Tenure).[3] 그래서 대법관의 인준 및 임명 과정은 미국에서는 가장 어렵고 힘든 인증 과정이다.

연방 대법원의 판결은 모두 대법관 9명의 전원합의체의 판결이다. 연방 대법원은 8천에서 1만 건 정도 올라오는 상고를 대법관별로 심사하여 4명 이상이 찬성해야 상고가 허가되는 철저한 상고허가제를 채택하고 있어 1년에 재판이 80~100건 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사실상 2심이 끝이다[4] 미국의 연방법원 체계는 '지방법원 - 항소법원[5] - 대법원'이고, 여기서 처리하는 것은 (주에서 처리할 수 없는) 연방법 문제와 이와 관련된 소송[6]을 맡는다. 당연히 여기까지 오는 사건은 헌법 또는 연방법의 해석을 놓고 정치·사회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건이다.

미 헌법은 대법관의 수를 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법률로 이를 정하게 되며, 1789년 정원 6인으로 시작했다가 1807년 7인, 1837년 9인, 1863년 10인으로 늘어났고 1869년 9인으로 줄어든 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종신직이기 때문에 대법관 인원의 변동과 순환이 굉장히 느리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데, 프랭클린 D. 루즈벨트뉴딜 정책 관련 초기 대법원 판결들이 입맛대로 나오지 않자 (민주당에서 양원을 장악한 김에) 1937년 법률로 대법관 수를 늘리려는 시도를 한 바 있다.[7] 그런데 이에 위협을 느끼기라도 한 건지 연방 대법원은 뉴딜 정책에 호의적인 결론을 내기 시작하였고, 대법관을 증원하려는 계획은 (당내에서도 반발이 있어) 통과되지 못하였다.[8]

3. 재판의 진행

연방 대법원이 사건을 수리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소위 Circuit Split, 판례의 이탈이 생길 때이다. 두 개 이상의 연방 항소법원이 서로 대치하는 판결을 내린다는 뜻이다. 연방법에 대한 두 개의 판결이 나오면 연방 대법원이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으며, 당연히 상고를 수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주 동성결혼 금지법의 위헌을 가린 Obergefell v Hodges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제4·7·9·10항소법원 및 여러 미국 법원들이 미국 대 윈저 사건을 바탕으로 위헌판결을 우수수 쏟아내고 있을 때 올라온 상고는 모두 다 기각되었다가, 제6항소법원이 합헌판결을 내려서 circuit split이 생기고 나서야 상고한 케이스를 받아들였다. 왜 하급심에 위헌법률심사권이 있는거지 애당초 누가 하급심 위헌법률심사권을 인정하겠나 죄다 최고법원까지 올라가려하지 이처럼 낮은 확률을 뚫고 상고이유서(writ of certiorari, 줄여서 certiorari 또는 cert라고 한다)가 수리되면, 반대편 당사자는 물론 각종 단체나 개인들도 상고이유를 지지 또는 반대하는 참고인 의견서(amicus briefs, 줄여서 briefs)를 제출한다.

연방 대법원의 구술변론 일정은 대개 1년 단위로 미리 정해지고 대법원 홈페이지에 공개된다. 해마다 10월의 첫 월요일에 개정하여 다음해 6월말까지 재판이 계속 이어지고(구술변론은 4월 말 기점으로 끝나며, 남은 기간에는 판결선고 및 다음 개정기에 어떤 사건을 들을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하는데 집중한다.), 7월부터 9월까지 휴정기를 가진다. 보통 개정기에는 매주 월, 화, 수요일에 하루 10시, 11시 두 차례의 구술변론이 열린다. 각 사건당 1시간[9]의 구술변론 시간이 주어지고 필요에 따라서는 오후 기일을 열기도 한다. 매주 금요일에는[10] 합의(Conference)가 이루어지며, 한 달에 한 번 정도(10월~4월)의 구술변론이 없는 재판기일(Non-argument session)을 잡아서 판결선고나 간단한 결정사건 등을 처리하기도 한다.

휴정기가 다가오는 5월, 특히 6월에는 매주 월요일마다 구술변론이 없는 재판기일을 잡아서 판결선고를 하며, 6월 중순부터는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재판기일을 추가해서 판결선고를 하기도 한다. 또한 구술변론이 없는 재판기일이 월요일인 경우에는 어떤 사건의 상고를 수리하고 기각할 것인지 발표한다. 상고의 수리/기각 결정 여부는 발표되는 월요일 직전의 목요일에 이루어진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이다.

10시에 개정시각이 되면 법정의 질서를 유지하는 책임자인 마샬[11]이 연미복을 입고 일어서서 "존경하는 미국 연방 대법원장과 대법관님들이 입장하십니다. Oyez![12] Oyez! Oyez! 재판이 곧 열리니 이 영예로운 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분들은 앞으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하느님! 부디 이 나라와 이 법원을 지켜주소서![13]"라고 외치며 시작한다. 그리고 1시간 동안의 구술변론을 한 이후 매주 금요일(구술변론이 다 끝난 이후로는 매주 목요일)에 합의를 하는데, 대법관 한 명당 한 번씩만 의견을 말한다.[14] 다수의견이 정해지면 다수의견을 낸 사람 중에서 최선임자가 집필자를 지정한다.[15]

판결문 작성 과정은 판결문을 작성할 대법관을 정하는 과정으로부터 시작된다. 의견을 작성하는 대법관을 정하는 관행에 따르면 연방 대법원장은 다수의견 작성 대법관 가운데 한 명을 법정의견 작성자로 임명할 수 있다. 연방 대법원장이 반대의견에 동참하여 법정의견(=다수의견)에 속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경력이 가장 오래 된 선임 대법관이 법정의견 작성 대법관을 선정할 권한이 있다. 반대의견[16] 및 별개의견[17] 작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방식을 운영하고 있다.

법정의견의 작성의 책임을 맡은 대법관은 다른 대법관들이 의견에 동참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초고를 만든 후 초고를 재판부 전원에게 회람한다. 법정의견 초안 작성 대법관이 초안을 대법관들에게 회람하면, 다른 대법관들은 의견에 동참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여 집필 대법관에게 통보한다. 만일 대법관이 다른 제안이나 의견이 없이 법정의견에 찬성한다면 '나를 다수의견에 포함시켜 주십시오(Please, join me).'라고 메모를 보낸다. 하지만 일부의 의견에 수정을 원하는 경우에는 해당 판결문 초안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수정할 것을 요구한다. 집필 대법관은 다양한 의견 가운데 자신이 양보하고 타협할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받아들여 그 의견을 반영한다.

그리고 연방 대법원의 판결은 아무리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더라도 중계가 안 된다. 법정 내에서는 전자기기의 사용이 통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파급력이 큰 판결의 경우 언론사 인턴들이 판결문 주문을 가지고 법정에서부터 바깥까지 질주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아래 사진은 2015년 6월 26일 동성결혼 합헌 판결 직후의 모습이다.##, 발표 순간(동영상)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가 몇몇 중대한 결정을 TV를 통해 중계할 수 있게 해 준 것과는 대조적이다.[18]

3.1. 법무부 송무차관(Solicitor General)

연방 대법원의 변론은 변론 자격을 허가받은 변호사들(Supreme Court Bar)만 할 수 있다. 미국의 변호사가 전 세계의 변호사를 다 합친 것보다 많다고 할 정도인데 연방 대법원이 다루는 사건은 1년에 80~100건 밖에 안 되니, 연방 대법원에서 변론을 할 만한 사람이라면 대충 생각해도 '당대 최고의 법률가'뿐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변론 기회를 갖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법무부의 송무 차관이다. 법무부 송무 차관실은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사건에서 국가를 대리하여 변론을 한다. 당연히 당대 최고의 법률가를 송무 차관에 앉혀놓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며, 송무 차관을 마친 뒤 대법관으로 고고씽~하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흔히 법무부 송무차관을 열 번째 대법관이라고 부르며 아예 대법원 내에 송무차관실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그 예로 오바마 행정부 시절 대법관의 자리로 영전한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은 모교인 하버드 로스쿨 학장 직을 맡다가 2009년 오바마의 발탁을 받아 송무차관으로 임명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10년 대법관으로 지명되었다.

연방 대법원과 송무 차관의 관계 중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는데, 연방 대법원에 상고로 올라온 몇 사건에 대해서는 법무부 송무 차관에게 의견을 묻는다는 점이다. 이를 CVSG(Call for the Views of the Solicitor General)라고 한다. 반드시 송무 차관의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지만, 상고 여부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이 송무 차관의 의견서이다.

4. 대법관의 성향과 '정치적인 법원' 논란

  • 소위 대법원의 '성향'에 대해서는 미국에서 말이 많은 편이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보수-진보'로 대법관의 성향을 분리하는 건 부정확한 분리법이라는 말을 인터뷰에서 자주 함으로써 소위 '정치적' 성향에 따른 분류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냈다. 본인이 리드하는 법원이 미국인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는지 여부와 자신의 법원의 유산(legacy)[19]에 대해 신경을 쓰는 편이다 보니 이런 건 당연하다. 자신의 이름이 걸려있는 법원인데 연방 대법원도 정치적 집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대중의 의견이 달가울 리가 없을 터.
  • 여기에 대한 항변으로, 로버츠 대법원장은 대법원에서 올라오는 케이스의 반 정도는 만장일치로 결정나는 편이며, 확실한 다수라고 볼 수 있는 8:1이나 7:2로 결정난 사건까지 집어넣으면 약 70% 가량의 사건이 커버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그런 것들은 성향 및 이념의 영향을 덜 받는 케이스들이니까 그렇지"라며 반박당하는 상황.(자세한 건 분열된 법원/정치적인 법원 관련 링크 참조)
  • 또한 우리는 행정부나 입법부와는 다르다라고 항변하지만, 미국 언론이나 미국인들이 눈에 불을 키고 집중하는 케이스들은 정치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뜨거운 감자인 사건들이고[20], 이런 사건들은 십중팔구 성향에 따른 5대 4[21]로 결정난다.
  •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 본인은 'swing vote(부동표)'라 불리는 걸 아주 싫어한다고 한다. 근데 보수-진보 넷이서 팽팽히 맞설 때 케네디가 어느 쪽 손을 들어주냐에 따라서 다수/소수가 결정나는 게 밥먹듯이 일어나는 마당에 swing vote라고 불리는 건 어찌보면 필연이다. 이 패턴은 메릭 갈랜드 또는 2016년 11월에 당선되는 대통령이 지명한 법관이 대법원에 가기 전까진 계속 될 것이다. 보수 셋, 진보 넷인 상황이지만, 케네디가 어디로 가냐에 따라 진보 측이 이기거나 4-4로 항소법원 판결이 번복되지 않거나[22] 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즉 어느 법원에서 올라온 판례냐에 따라서, 그리고 케네디가 어느 편을 들어주냐에 따라서 보수 진보 측이 울거나 웃을 수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 가령 2016년 3월에 결정된 Friedrichs v. California Teachers Association은 4-4로 결정이 났다. 캘리포니아 주 선생님들은 매년마다 노동조합비를 의무로 내야 한다.(노동조합 회원이던 아니던) 단, 1977년에 결정난 Abood v. Michigan Board of Education이라는 판례에 의거하여 노동조합 회원이 아닐 경우 노동조합비는 월급협상하는 데에만 쓰일 수 있으며, 정치적인 영역에(가령 노동조합에 친화적인 후보를 지원하는데 쓴다던지) 쓸 수는 없다.(대법원 측은 이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보았다.) 레베카 프리드릭스를 비롯한 9명의 선생님들은 이 비용 내는 것도 표현의 자유에 위배된다며 소송을 넣은 것이다. 캘리포니아는 주 법으로 월급협상에 있어서는 모든 선생님을 포함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노동조합원이던 아니던) 즉 프리드릭스 측이 승리했다면 노동조합이 월급협상할 힘도 줄게 되는 상당한 반노동조합 성향의 판결이 나게 되었을 거라는 것이다. 여기선 4-4 판결로 인해서 제9항소법원의 판결이 그대로 서게 되었고, 노동조합 측은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대법관들의 성향을 본다면 긴즈버그, 브라이어, 소토마요르, 케이건은 California Teachers Ass'n의 편을, 로버츠 대법원장, 스컬리아, 케네디, 토머스, 얼리토 다섯은 프리드릭스 측의 편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컬리아 대법관이 갑자기 사망해버렸고, 결국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다수의견을 만들어내는데 실패해서 4-4가 되어버렸을 거라는 추측이 유력한 편이다. 패한 프리드릭스 측의 변호사는 재구술변론을 청원하긴 했지만, 이게 수리될 확률은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결국 6월 28일에 재구술변론 청원이 기각됨으로써 이 케이스는 종결되었다.
    • 반면 United States v. Texas (2016)의 경우 오바마 정부 측이 패배해서 대법원에 올라온 사건이기 때문에, 여기서 4-4로 결정이 난다면 오바마 정부의 이민행정명령 위헌판결을 받아내길 바랬던 보수성향의 주 정부들이 승리하게 된다. 결국 다수 의견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4-4로 주 정부들이 승리하게 되었다. 오바마 정부는 재구술변론 청원을 접수했다. 대법원은 스컬리아의 사망으로 남겨진 빈 자리를 채우기 전까지는 검토하지 않을 생각인건지 청원 수리 및 기각 여부를 결정짓지 않은 상황이다.
    • 4-4로 비긴 경우 패한 측은 다시 구술변론을 할 것을 청원할 수 있다. 4-4 결정이 난지 25일 내로 청원하면 된다. 하지만 이 청원이 수리될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다. 법상 패한 측에 선 4명과 이긴 측에 선 대법관 최소 1명이 사건을 재검토하는데 동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8명 중 5명의 대법관의 찬성표를 얻는 건 쉽지 않다.
  • 언론이 특정한 사건의 대법원 구술변론에 대해 집필할 때 유난히 케네디 대법관이 어느 편에 더 질문을 많이 던졌고, 어떤 질문을 던졌는지의 여부에 집중하는 게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보수주의 대법관 중 나머지 셋과는 달리 강경보수로 분리는 되지 않는 존 로버츠 대법원장[23]에게 집중이 가는 경우도 있다.
  • 로버츠는 오바마케어가 관련된 두 사건(오바마케어 보험의무가입 조항 위헌 여부오바마케어 연방 정부 보조금의 정당성 여부)에서 진보진영과 뜻을 같이 한 전적[24][25]이 있어서 그런지 언론이 케네디와 더불어 소위 swing vote 중 하나라고 여기는 때도 있지만 케네디만큼은 아닌 편.
  • 뒤집어 말하면 "나머지 6명 또는 7명은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지 뻔하니까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죠"라는 소리다. 언론도 언론이지만, '뜨거운 감자'인 사건의 경우 패턴이 뻔히 보이다 보니 일어나는 폐해로, 정치적 집단이라는 비판은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러다 보니 "역사상 가장 분열된 법원(the most polarized court)" 또는 "역사상 가장 정치적인 법원(the most politicized court)"라는 오명을 피해갈 수가 없게 되었다.
  • 2015년 연방 대법원에서 동성결혼을 합헌 판정(Obergefell v. Hodges)을 내릴 때와 오바마케어 연방정부 보조금의 합법성[26]을 심리한 사건에서도 이러한 정치적 싸움이 두드러졌다. 다수의견 판결문과 더불어 반대 소수의견서가 함께 공개되었는데, 말이 판사들의 판결문이지 정치계의 독설로 가득찬 논설로 보일 지경. 특히 스컬리아의 동성결혼 관련 소수의견은 심하게 표현하면 트롤링 수준이다.(오바마케어 사건에서 쓴 반대의견도 시쳇말로 트롤링 수준 맞다.) 반대편에 선 네 명의 대법관이 각각 반대의견을 쓴 보기 힘든 사례이기도 했다. 클레런스 토마스는 노예였던 흑인도 존엄성(dignity)이 있었다는 이해하기 힘든 생각을 반대의견에 써서 물의를 빚었다. 토머스는 결혼의 존엄성을 이유로 다른 인종과의 결혼을 금지한 버지니아 법을 위헌 판결 내린 사건인 Loving v. Virginia 사건 때문에 지금 부인[27]과 결혼할 수 있었던 주제에 결혼의 존엄성을 이유로 동성결혼 합헌한 의견에 반대했다고 좌파들의 비웃음을 샀다.
  • 반대의견 중에서는 대법원장의 반대의견과 각 주가 결정하도록 놔 두어야 한다는 얼리토 대법관의 반대의견이 있었다. 근데 로버츠는 일부다처제도 합법화가 될 것이다, 옛날부터 유지되어 온 결혼의 정의가 다섯 명의 변호사가 바꾸어 버렸다, 민주적인 절차에 부쳐져야 했다[28]는 식의 의견이라 논란이 되었다. 동성결혼 반대 대법관들과 찬성 대법관 및 테드 올슨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헌법해석 방식에(법적 보수냐 진보냐 여부에 따라(judicial conservative vs. judicial liberal)) 대한 차이에 기인한다. 정치적 보수/진보와 법적 보수/진보는 차이가 있다. 2010년에 은퇴한 전직 대법관 존 폴 스티븐스만 봐도 이념적으론 진보로 평가받지만 본인은 judicial conservative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인종차별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남부 주에서 시민권법이 시행되었을 당시 흑인 상대 인종차별을 유지하고자 했을 때 다수의 백인이 썼던 주장이 바로 로버츠 대법원장의 반대의견(및 대법원에서 뒤집힌 제6항소법원 다수의견)의 핵심, 즉 민주적인 절차에 부쳐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논리라면 '분리하되 평등한'(Plessy v. Ferguson) 인종차별 정책 위헌판결을 내린 Brown v. Board of Education도 부정하는 꼴이 된다.(자세한 것은 얼 워렌, 흑인민권운동 항목 참조) 민주적인 절차에 부쳐지지 않았으니까. 인종차별 철폐에 반대한 남부 백인들이 주권리(States' rights) 및 민주적인 절차라는 미명하에 반대했기 때문에 21세기가 된 지금에도 'states' rights' 라는 문구는 정치적으로 상당히 민감한 문구 중 하나이다. 실제로 주권리민주당/딕시크랫이 민주당에 맞서서 독자적으로 대통령후보를 낸 적도 있고 말이다. 헌법학자 한 명은 민주적 및 정치적인 절차가 동성결혼을 지지하는 민중 다수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할 때, 특히 소수의 권리가 침해당한 경우에는 사법부가 이걸 해결할 수도 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미국뿐만 아니라 사법부가 나서서 소수자의 권리 신장을 이뤄낸 사례는 매우 많다.
  • 일부 보수적인 법관들, 특히 스컬리아는 오리지널리즘의 신봉자로서, 그 법논리에 따르면 수정헌법 14조내에 문언상 존재하지 않는 동성결혼의 '권리'는 헌법이 쓰여졌을 당시에 Founding Fathers는 수정조항 14조를 썼을 당시에 동성결혼의 '권리'를 염두해두고 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헌법적 권리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스컬리아 대법관은 이 논리를 들어서 수정조항 제14조는 여성을 차별로부터 보호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가 논란을 빚기도 했다.
  • 대법원이 정치적인 집단으로 보이길 바라지 않는다면서 법관들 사이의 화합을 주장하지만, 정작 정치적으로 민감한 케이스에서는 반대의견을 벤치에서 읽기까지[29] 했다.
  • 스컬리아와 반대의견 둘은 트롤링 수준이긴 했지만 스컬리아가 쓴 의견답게 화려한 문체들(…)은 꽤 있었다.[30] 한 밴드는 트롤링 수준까지 간 스컬리아의 두 반대의견을 비꼬는 의미로 스컬리아의 반대의견에 나온 표현들로 노래를 만들기까지 했다. 감상은 여기서 가능하다.

4.1. 이런 대중적 인식이 생겨난 원인

연방 대법원이 정치적인 집단이라 여겨지게 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는 의회에서 진행되는 대법관 청문회에서 정치적 이슈를 일으키는 판결에 대해 찬성하냐 반대하냐고 질문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낙태법이다. 미국은 낙태를 전면 불법화하는 법을 제정할 수가 없는데, 이는 1973년 로 대 웨이드(Roe v Wade) 사건의 판결 때문이다. 40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미국 상원에서는 대법관 청문회가 진행될 때마다 "Roe v Wade를 뒤집으실 겁니까?"라는 질문이 꼭 튀어나온다. 그럼 지명받은 자는 "사건이 법원으로 올라온다면 그 때 판결을 내릴 것이며, 지금은 그거에 대한 답을 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 다른 뜨거운 감자로 넘어가다가 나중에 또 저게 튀어나오는(…) 식으로 진행된다. 라이스 대학 100주년 기념 이벤트에 초대받은 존 로버츠 대법원장도 청문회가 좀 더 의미 있는 청문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상원의원들도 자신들의 정치적 성향에 맞춰서 투표를 하는 게 대부분이다 보니 지명 인준 절차도 정치판 싸움이 되고, 그로 인해 연방 대법원 또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공화당 상원의원인 린지 그레이엄 의원이 이 점을 지적하면서 "성향을 보기 이전에 대법관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를 먼저 봐야한다고 말하였다.[31]

두번째는 대법관 당선자들이 로클럭 Law Clerk을 지명할 때, 자신의 성향에 맞는 사람을 지명하기 때문이다. 로클럭이란 한국의 재판연구원에 대응되는 직책으로 판사가 자료를 보기 전에 그 자료들을 정리하는 업무를 한다. 즉, 과장 좀 섞어서 언론의 게이트키퍼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면 된다. 로클럭들에게는 어떤 성향의 판사 밑에서 일했는가가 경력이 되는데, 후임 판사들은 로클럭의 경력에서 자신과 같은 성향의 판사가 있는지 보고 고용한다.

2010년 9월에 쓰여진 이 기사에 의하면, 2010년 6월까지 재임했던 대법관들 중
  • 가장 강경보수라 여겨지는 클레런스 토마스 대법관은 20여 년 동안 고용한 로클럭 84명 모두가 공화당 대통령이 지명한 판사 밑에서 로클럭을 했었다.
  • 또 다른 강경보수 성향인 앤토닌 스컬리아 대법관은 2005년 이래로 민주당 대통령이 지명한 판사 밑에서 로클럭을 한 이를 고용하지 않았다.
  • 스티븐스(2010년 6월에 은퇴), 긴즈버그, 소토마요르 대법관에 의해 고용된 로클럭 중 공화당 대통령이 지명한 판사의 비율은 12~35% 정도였다고 한다.
  • 진보성향의 브라이어 대법관은 성향에 관계없이 로클럭을 고용한 유일한 대법관이다(보수:진보 로클럭 비율이 50:50).

이는 1980년대의 대법원과는 차이가 크다. 1969년부터 1986년까지 대법원장을 역임한 워런 버거 대법원장 같은 경우 브라이어 대법관처럼 보수/진보 성향의 로클럭을 50:50으로 고용했다. 중도보수 성향의 제7 항소법원 재판관인 리처드 포스너 판사는 진보성향의 윌리엄 브레넌 대법관 밑에서 로클럭을 했었다. 어느 성향의 판사의 밑에서 로클럭을 했었는가(=로클럭이 진보 성향인가 보수 성향인가)가 중요한 리트머스 테스트가 되어버린 이 시점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5. 현직 연방 대법관

도널드 트럼프 집권 시기를 기준으로 현직 대법관들을 성향으로 분류하면 보수성향은 존 로버츠 대법원장, 클레런스 토마스 대법관,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 닐 고서치 대법관, 브렛 캐버노 다섯 명, 진보성향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 이렇게 넷이다.

2016년 2월 13일(현지시각)에 앤토닌 스컬리아 대법관이 갑자기 사망하여 공석이 생겼다. 당시 퇴임을 코앞에 둔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공석을 채우기 위해서 DC항소법원에서 19년간 판사로 재직한 (2013년부터는 최고 판사(Chief Judge)로 재직) 메릭 갈랜드(Merrick Brian Garland)를 차기 대법관으로 지명했으나, 공화당이 오바마가 누굴 지명하던 간에 청문회도 없을 것이며, 투표도 없을 것이다. 2016년이 대통령 선거해이기 때문에 다음 대통령이 뽑도록 해야 됨이라고 뻐기면서 무산되었다.안습의 레임덕 결국 앤토닌 스컬리아 대법관의 빈 자리는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2월 1일, 제10연방항소법원 판사인 닐 고서치(Neil Gorsuch)를 지명하면서 채워졌다.

5.1. 명단

* 존 로버츠(John G. Roberts) 대법원장

현직 17대 연방 대법원장. 꽤 보수성향이지만 나머지 셋이 원체 보수여서 그나마 덜 보수로 분류된다. 다른 보수성향에 비해서 더 부드럽고 협상에 더 적극적이기도 하다.[32] 또한 본인이 잘못 결정된 판례를 뒤집고자 할 때는 확 뒤집기 보다는 점진적으로 뒤집어나가는 걸 선호한다.[33] 이전의 판례를 존중하는 stare decisis를 최대한 따르려는 대법관으로, 이게 존중되지 않으면 보통법 체계의 안정성이 깨지게 된다고[34] 청문회에서 밝힌 바 있다. 어떻게 보면 정치적 보수가 아닌 말 그대로 과거 및 전통을 존중하는 보수주의적인 대법관이라고 볼 수 있겠다. 배스킨라빈스에서도 자신이 익숙한 초콜렛 칩 맛 아이스크림만 고수해서 먹을 정도로 자신이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는 걸 불편해했다고 친구가 밝힌 적도 있으니 뭐.(…) 초콜렛을 상당히 좋아한다고 한다. 초콜렛을 담아두는 그릇이 빌 때마다 채워두는 것이 대법원장 비서 임무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 클래런스 토머스(Clarence Thomas)

흑인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법관 중 가장 강경보수로 평가되는 인물.[35] 대법관 임명 과정 중에 스캔들 때문에 곤혹을 겪었다.(Anita Hill 성추문) 이 성추문 때문에 꽤나 아슬아슬하게 통과된 대법관으로 남아있다.[36] 유일하게 재판연구관을 뽑을 때 비교적 하버드, 예일, 스탠포드 외의 로스쿨 출신들을 많이 뽑는 편이다. 다만 공화당 대통령이 지명한 판사 밑에서 일한 학생들만 로클럭으로 뽑기로 유명하다.

*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

현직 연방 대법관 중 강경진보, 급진적인 좌파로 평가되는 인물. 특히 인종관련 문제와 여성의 권리 관련된 사건에서 묻고 따지지도 않고 진보적으로 투표한다. 재직 중인 대법관 중 최고령이다. 2018년 대법원 건물에서 나오다 넘어지고 나서 병원에 입원했고, 퇴원은 했으나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난민법 개정을 막기 위해서 긴즈버그 대법관은 병원에서 표를 던졌다는 보도가 나왔고#, 대법원 의장 존 로버츠도 행정명령을 통해 난민법을 개정하는 건 위헌이라고 결정하여, 총 5:4로 트럼프 대통령의 난민법 개정을 막았다. 2019년 1월 7일, 작년에 받은 암 수술 후유증으로 대법관으로 임명되고 나서 처음으로 공판에 참여하지 못했다.#

* 스티븐 브라이어(Stephen G. Breyer)

전반적으로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지만, 헌법 수정 조항 4조(불합리한 수색 및 사생활 침해를 금지하는 조항)에 관련된 이슈에서는 오히려 보수파와 뜻을 같이 하기도 한다. Maryland v. King에서도 보수성향 대법관 셋과(로버츠, 토머스, 얼리토) 같이 메릴랜드 주의 편을 들어주었다. 오히려 강경보수인 스컬리아가 나머지 진보대법관과 함께 반대편에 섰다.[37] 시민들이 민주적인 과정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쪽으로 법을 해석해야 한다는 소위 "Active Liberty" 철학을 가진 대법관이어서 의회가 통과시킨 법을 무효화시키는 판결을 내리는 걸 최대한 지양하는 대법관이기도 하다.

* 새뮤얼 얼리토(Samuel A. Alito)

판사로서의 지적 능력은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연방제3항소법원 판사 재직 당시 강한 자(정부 및 경찰)의 편을 적극적으로 들어준 패턴 때문에 청문회 때 문제가 되었다. 또한 성차별주의자 및 인종차별주의자들 동문 집단인 Concerned Alumni of Princeton[38]의 멤버였다는 게 밝혀져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 본인은 공화당 정부에 있는 직업에 지원을 했고 멤버라는 걸 밝히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 당시엔 그렇게 했다고 했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그래서 그런지 세번째로 많은 반대표가 나왔다.(58-42)

* 소니아 소토마요르(Sonia Sotomayor)

Affirmative action이 없었다면 자신은 여기에 없었을 거라면서 이건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국민투표로 affirmative action을 폐지한 referendum을 무효화시켜야 한다고 올라온 소송(Schuette v. BAMN)에서 자신의 뜻대로 안 되었을 때도[39] 강렬한 어조로 반대의견을 벤치에서 읽었다.[40] 인터뷰에서 Schuette 케이스에 썼던 반대의견은 Fisher v. University of Texas Austin 라운드 1에서 쓰기로 한 반대의견[41]을 여기서 썼다고 한다. Fisher 라운드 1은 좀 더 rigorous한 테스팅을 적용해서 다시 심리하라는 의견을 내고 연방항소법원으로 보내는 것으로 일단락 지었다. 소토마요르의 격렬한 반대의견을 읽고 분위기가 너무 험악해지겠다 싶다고 생각한 다수파 대법관들이 결국 물러나서 협상한 게 저 결과였다고 소토마요르가 밝혔었다. 브라이어와 캐스팅 보트인 케네디가 협상을 주도했다고 한다.#

* 엘레나 케이건(Elena Kagan)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더불어서 화합을 주도하는 대법관 중 하나라고 한다. 이렇기 때문에 케이건 대법관은 대체로 만장일치인 의견을 집필하곤 한다곤 하고, 다수의견으로부터 집중을 분산시키거나 다수의견을 약화시킬 수도 있는 보충의견을 쓰는 걸 최대한 지양하는 편이기도 하다.대법관 중 위트 있는 의견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닥터 수스의 우화를 반대의견에 인용하기도 하였으며, 스파이더맨 로열티 관련 소송이었던 Kimble v. Marvel Enterprise 다수의견에서도 스파이더맨 관련 노래를 인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만화책 덕후로 알려진 케이건의 덕력이 여기서 제대로 터져주었다.## 다수의견 원문. 위트에 있어서는 스컬리아 대법관 못지 않다는 평.또한 세대 차이 때문에 새로운 테크놀로지나 비디오 게임 등에 덜 익숙한 다른 대법관들과는 달리 이에 대한 이해도 뛰어난 편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 주 비디오 게임 규제법 관련 사건이었던 Brown v. Entertainment Merchant Association 사건에서도 스컬리아 대법관이 "모털 컴뱃이 뭥미"하는 동안에 케이건 대법관은 구술변론에서도 이 게임 얘기가 나왔을 적에 문제 없었다고 한다.그리고 2010년부터 2017년 4월까지 가장 서열이 낮은 대법관이었기 때문에, 대법관 9명이서 같은 방을 쓰면서 일할 때 누군가 노크하면, 모두가 막내인 케이건을 쳐다보면서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투표 세는 것, 합의 내용 기록하는 것도 다 케이건 대법관 몫이다. 1994년부터 2006년 1월까지 (9월에 렌퀴스트 대법원장이 사망하기 전까지 2006년 1월에 얼리토 지명이 통과되기 전까지) 멤버십에 변함이 없었기 때문에 브라이어는 이 일을 11년간이나 꼬박 맡아서 해야 했다.(…) 케이건 대법관은 4월 10일에 닐 고서치가 새 대법관으로 공식 취임하게 되면서 이 자리에서 벗어났다. 어느 나라든지 막내 직원이 힘든건 마찬가지인가보다…. 대법원 카페테리아에 Frozen yogurt 기기가 들어온 것도 케이건이 frozen yogurt 덕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청문회에서 상원의원들과 코미디 쇼(?)를 찍기도 하였다 카더라.비판받는 부분도 존재하는데, 발언의 자유(freedom of speech)에 대해 증오 발언(hate speech)는 법적으로 금지되어야 한다고 판결한 적이 있다. 증오 발언은 케이건의 말로는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발언까지 포함된다는데,[42]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수정 제1조를 아예 무시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미국은 다른 나라보다 발언의 자유를 전통적으로 중요시해왔기 때문에[43] 이런 비판도 이해가 된다.

* 닐 고서치(Neil M. Gorsuch)

오바마 대통령이 지명한 메릭 갈랜드의 청문회를 끝까지 진행하지 않고 버틴 덕분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스컬리아의 공석을 채울 연방 대법관을 지명할 수 있게 되었다. 토머스 하디먼, 닐 고서치, 윌리엄 프라이어 셋 중에서 지명은 고서치에게 갔고, 민주당 상원의원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치게 되었다. 공화당은 결국 민주당 필리버스터를 무효화하기 위해 nuclear option[44]을 동원하면서까지 지명 통과된 비교적 드라마틱한 인준 과정을 가쳤다. 꽤나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대법관이어서 그런지, 민주당에서 반대가 꽤 격렬[45]했다. 찬성 54표[46], 반대 45표로 클레런스 토머스에 이어서 두 번째로 많은 반대표를 받은 대법관이 되었다. 새뮤얼 얼리토가 세 번째로 많은 반대표를 받은 대법관으로 내려앉은(?) 건 덤. 이제는 브렛 캐버노 대법관이 반대 48표[47]로 클래런스 토마스] 대법관[48]과 동률이 됨에 따라 고서치는 세 번째, 얼리토는 네 번째로 내려앉았다.

* 브렛 캐버노(Brett M. Kavanaugh)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브렛 캐버노(Brett Kavanaugh)가 상원의 인준을 받아 미국 연방 대법관이 됐다.# 비록 부시 정권 시절 이메일 해킹과 관련하여 의회 앞에서 위증을 했다는 혐의와 고등학교 시절 집단 성폭행을 했다는 폭로가 있었지만###, 캐버노의 집단 성폭력을 폭로한 여성 3명 모두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고 목격자도 없었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제프 플레이크 의원이 요청한 FBI 조사도 기간과 범위의 한계가 있기는 했지만 성폭행 증거가 나오지 않았고 끝내 50:48로 상원의 인준을 받는 데 성공했다.[49] [50] 상원 청문회에서 힐러리 클린턴과 민주당에 대한 음모론을 거론하면서까지 민주당을 비난하고, "남에게 한 대로 되받게 되는 법(What goes around comes around)"이라며 민주당에게 경고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앞으로 공화당에게 유리한 쪽으로 결정을 내릴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상원 청문회에서 캐버노의 태도를 본 2,400명의 법학 교수들은 "브렛 캐버노는 법관에게 필요한 공정성과 법을 다룰 기질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법원에 앉을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또한 미국 연방 법원도 상원 청문회에서 캐버노 대법관이 보여준 비윤리적 행동에 대한 신고를 받았다. 조지 H.W. 부시가 임명했던 캐런 핸더슨 법관은 대부분의 고발은 사소하다고 판단하여 기각했지만, 12개의 고발에 대해서는 타당하다며 연방 대법원으로 보냈다. 연방 대법원장 존 로버츠는 12개의 고발 내용을 제10 항소구의 법원장 티모시 팀코비치에게 보내어 재검토를 명령했다.#

6. 역사적인 판결

  • 1857년 드레드 스콧 대 샌드퍼드 사건(Dred Scott v. Sandford)
당시 흑인 노예였던 드레드 스콧이 자신의 주인을 상대로 걸었던 소송이다. 드레드 스콧은 자신이 주인을 따라 노예제 폐지 주에 왔으므로 자유인이라고 주장했으나, 연방 대법원은 그의 소송을 기각했다. 그 이유인 즉슨 노예들은 미국 헌법의 보호를 받지 않으므로 소송을 걸 권리가 없으며, 노예는 사유재산이므로 정부가 그를 풀어주는 것은 사유재산권 침해라는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이 판결은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고, 분노한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표가 에이브러햄 링컨에게 결집하게 만들어 남북전쟁에 간접적으로 원인을 제공했다. 다수의견을 쓴 로저 터니 5대 연방 대법원장은 남북전쟁의 발발을 막기 위해서 이런 의견을 썼다고는 하지만 결국엔 이게 남북전쟁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 의견 하나 때문에 터니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법관하면 무조건 언급된다. 좀 더 자세한 사항은 남북전쟁 배경 항목 참조.
  • 1896년 플래시 대 퍼거슨 재판(Plessy v. Ferguson)
8분의 7 백인혈통, 8분의 1 흑인혈통이던 흑백혼혈 호머 플래시란 사람이 백인전용 객실에 타고 있다가 차장에게 적발되어 흑인전용 객실로 쫓겨난 일이 있었다. 플래시는 이에 격분해 루이지애나주 법원에 이를 고소했으나 패소하자 다시 연방 대법원에 자신에게 패소 판결을 내린 루이지애나 주 법관 존 하워드 퍼거슨을 고소했다. 그러나 연방 대법원은 '분리화된 평등(Seperate but equal)' 이라는 개념을 내세워 흑백분리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9명 중 오직 한 명만이 반대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존 마셜 할란. 이 때문에 후대에 'The Great Dissenter(위대한 반대자)'라는 별명을 가진다.[51] 그리고 훗날 얼 워렌 대법원장을 필두로 한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사건(Brown v. Board of Education of Topeka)에서 만장일치로 이 판례가 깨진다.
  • 1952년 조셉 버스틴 대 윌슨 재판(Joseph Burstyn Inc. v. Wilson)
이탈리아 영화 기적의 상영을 두고 빚어진 논쟁에서 연방대법원은 영화가 법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보호받을 권리가 있는 예술적 매체라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1915년의 Mutual Film Corporation v. Industrial Commission of Ohio 판결을 뒤집었으며, 1965년 얼 워렌이 판결을 내린 Freedman v. Maryland과 더불어 미국의 영화 검열에 전환점을 찍은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 1953년 공화당 소속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에 의해 '미국 연방 대법원에 필요한 정치, 경제, 사회적 입장을 나타내 왔다.'며 임명[52]받은 검사출신에 공화당원, 골수 보수주의자인 얼 워렌은 대법원장이 되자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진보적이고 역사적인 판결을 이끌었다.[53]
    • 인종 차별 문제의 개선 -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사건(Brown v. Board of Education of Topeka)[54]에서 공립학교에서의 그 당시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던 '분리하되 평등하다(Seperate But equal)'의 인종 분리를 '분리된 교육시설 그 자체가 불평등' 이라는 위헌 판결을 만장일치로 내려, 종전의 플레시 대 퍼거슨 사건을 폐기하였다.
    • 범죄 혐의자의 인권 개선 - 미란다 사건(Miranda v. Arizona)에서 미란다 원칙을 확립하였다.
  • 개럿 대 대일리 사건 (Garratt v. Dailey, 1955년)
불법행위에 대한 중요한 판례이다. 불법행위가 성립하려면 고의성이 있어야 됨을 확립했다.5살 남자아이였던 브라이언 대일리(피고)는 어른이었던 이웃인 나오미 개럿(원고)를 만나러 원고의 누이인 루스 개럿의 집을 방문했다. 방문했던 시간 중에 원고가 의자에 앉으려 했고 피고가 의자를 움직여 개럿은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로 인해 개럿은 고관절 부상 및 기타 상해를 입었다. 개럿은 이에 폭행을 이유로 대일리를 고소했다. 이 사건을 접수한 워싱턴 주 법원은 개럿의 고소를 기각했고 개럿은 연방 대법원에 항소했다. 연방 대법원은 개럿이 대일리의 고의성을 입증할 수 있다면, 대일리가 비록 만 3세의 어린아이일지라도 폭행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다고 결론내렸다. 대일리의 폭행 의사를 증명할 필요는 없고 그저 개럿이 의자에 앉으려 할때 의자가 없으면 넘어질 것을 대일리가 알았거나 이해하였음을 입증할 수 있으면 되었다. 루스 개럿은 원고가 앉으려 할때 피고가 의도적으로 의자를 빼고 있었다고 증언했으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고는 원고가 넘어지지 않게 하려고 의자를 밀어주려 했다고 증언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사건은 피고가 어린 아이여서 충분히 빠르게 의자를 밀지 못해서 넘어지는 걸 막지 못해서 일어난 것이라고 법원은 결론내렸다. 연방 대법원은 대일리에게 고의성이 없었으므로 폭행죄에 대하여 무죄로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동시에 개럿의 손해도 인정하여 개럿에게 11,000달러[55]를 배상하도록 명령했다.
  • 에퍼슨 대 아칸소 사건 (Epperson v. Arkansas, 1968년)
진화론을 주 공립 학교에서 가르치는 걸 금지시킨 희대의 법안을 위헌 판결 내린 사건이다. 이 판결 이후 일부 주에서는 진화론과 창조론을 같이 가르칠 것을 명시하는 법을 통과시켰는데, 이 법은 에드워드-아귈라드 재판에서 위헌 판결이 나게 된다.
  • 리어리 대 미국 연방 정부 사건(Leary v. United States, 1969년)
티모시 리어리(1920~1996)는 심리학 전공자와 1960년대 히피 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름 정도는 들어보았을 법한 사람이다[56].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하버드 대학교 교수라는 훌륭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던 유능한 심리학자이자 화학자였으나, 상습적으로 마약을 복용하여 미국 내에서 오랫동안 논란이 되었던 사람이다[57]. 1969년에 대마초 소지 혐의로 체포된 그는 1937년에 입법된 '대마초 조세법(Marihuana[58] Tax Act)'가 원래 취지와는 달리 사실상 형법으로 기능하고 있기에 자기부죄금지(self-incrimination)를 보장하는 미국 5차 수정헌법(the 5th amendment)에 어긋난다며 헌법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연방 대법원에서 이를 위헌이라 판단하여 대마초 조세법은 폐지되었으나, 대신 보다 강력한 Controlled Substances Act(금지약물법)이 1970년대에 제정되어, 미국 정부는 본격적으로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7대 2로 낙태의 권리가 미국 헌법에 기초한 '사생활의 권리'에 포함되어 보장받을 수 있다는 판결이다.이 사건의 원고인 여성은 텍사스주 구석구석을 떠도는 순회서커스단의 매표원 여성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동네 불량배들에게 납치되어 윤간을 당하였고 덜컥 임신까지 하게 되었다. 이에 이 여성은 낙태를 위해 병원을 찾아갔다. 그러나 낙태를 금하고 있던 텍사스주 낙태법[60] 때문에 의사는 낙태수술을 거부했고, 이 주법에 대해 위헌소송을 제기하라며 이 젊은 여성에게 수술 대신에 변호사를 소개시켜준다. 이 사건이 대법원에 올라오는 단계에서 Roe는 출산을 하게 된다. 이로 인해 비록 Roe의 임신상태는 종료되었으나, 임신이 다시 반복될 수 있어 다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구체적 사건성이 인정되어 이 사건 소송이 계속 진행되었다. 결국 7대 2로 이 법은 위헌 판결을 받았다. 이 당시 다수의견을 쓴 대법관이 해리 블랙먼 대법관이다.판결내용은 소위 3.3.3 원칙이다. 먼저, 임신 초기 3개월은 여성의 권리를 더 우선하여 여성의 독자적 판단으로 병원에서 낙태가 가능하다. 이후 임신 4~6개월 사이에는 산모의 건강에 무리를 끼치거나 위험이 있을시 가능하다. 그리고 임신 6개월이 초과되면 태아가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생명으로서 통증을 느끼는 단계로 접어들어, 태아의 독자생존성을 존중하여 사실상 낙태가 어렵다. 이 판결로 인해 미국 내에서 낙태를 완전히 금지하는 법률은 모조리 폐지되었다. 아래에 나오듯이 이 판례는 두고두고 연방 대법관들을 괴롭히는 사건이기도 하다. “연방 대법원이 다루는 사건은 낙태 사건과 낙태 외의 사건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파장이 얼마나 컸을지는 잘 알 수 있다.하지만 2019년 들어 앨라배마 주는 주의회에서 낙태를 사실상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가결하였고 주지사가 이를 서명하여 공포하였다. 이 법에 따르면 강간과 근친상간으로 된 임신도 예외없으며 낙태 수술을 한 의사는 최대 99년형까지 살게된다. 앨라배마 주 뿐만 아니라 아니라 보수가 절반 이상인 다른 주에서도 비슷한 법안을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낙태는 반대하나 성폭행과 근친상간, 산모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경우 등 3가지는 예외라고 선을 그었다. 여기서 해당 법안은 낙태를 금지시키는 의도 보다는 Roe v. Wade 판결을 뒤집으려는 어그로의 성격이 강하다고 한다. #
창조설 추종자들과 과학자들이 정면으로 충돌한 재판이며, 이 재판의 결과로 창조설은 분명한 종교적 주장이며 따라서 미국 내 공립학교에서 창조설을 가르치는 것은 물론이고 진화론과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 역시 종교적 행위라는 근거가 만들어졌다.'
  • 허슬러 사건(허슬러 잡지 대 제리 팔웰 (Hustler Magazine v. Falwell), 485 U.S. 46 (1988))
이 사건은 미 수정헌법 제1조의 표현의 자유에 관한 미국 대법원의 유명한 판결이다. 포르노 잡지 허슬러 발행자인 래리 플린트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복음전도사이자 기독교 근본주의자였던 제리 폴웰 목사 간의 사건이다. 이 사건은 개인간의 소송으로 시작되었으나, 미국사회에 상대방 취향에 대한 관용 논란, 표현의 자유 논란, 사상의 자유 논란으로 확대되었다. 사건은 80년대 허슬러 잡지 내 어느 패러디물에서 제리 폴웰 목사가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남자들끼리의 난교파티에 참가했다는 글을 비롯하여, 버거 대법원장이 폴웰 목사에게 입으로 오럴섹스를 요구했다는 글을 게재하였다. 이어 다음 패러디 기사로는 폴웰 목사가 술에 취해 파리가 들끓는 재래식 화장실에서 성적으로 문란한 어머니와 섹스를 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리고 패러디 기사 맨 마지막에 이것은 페러디이니 만큼, 사실이 아니며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마시라 는 문구도 추가로 삽입했다. 폴웰 목사는 그의 패러디에 분노하여 그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데, 그에 맞서 래리 플랜트는 알란 아이삭맨 변호사를 통해 사실이 아니라고 적시한 점과 공인을 향한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며 표현의 자유를 외쳤다.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보장을 외치며 법정 투쟁을 계속하였다. 래리 플린트의 법정투쟁은 미국 연방정부 헌법 수정조항 제1조인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위한 싸움으로 확산되면서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지지하는 많은 미국 저명인사들이 그를 응원하였다. 그는 법정에서 계속 이 한마디를 외쳤는데 이는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였다. 결국 미국 연방 대법원의 대법관들은 수정헌법 1호는 공인의 경우 그러한 패러디에 대해 명예 훼손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의미한다고 판결했으며, 래리 플린트는 나 같은 쓰레기를 보호한다면 모두 보호받을 것”이라고 했다. 자세한 내용은 영화 래리 플린트 (The People VS Larry Flynt) 참고
  • 2008년 워싱턴 DC 대 헬러 재판(District of Columbia v. Heller)
미국인들의 무기소지의 권리를 명시한 수정헌법 2조를 둘러싼 재판이다.강력 범죄율이 높은 워싱턴 DC는 자택 내에서의 총기보관에 관련해 엄격한 규제[61]를 가하고 있었는데, 해당 법률이 수정헌법 2조를 침해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당시 미국에서는 수정헌법 2조가 '주(州, state)가 민병대를 가질 권리를 의미하는 것인지, 개인의 자기방어권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는데 이러한 논쟁이 연방 대법원까지 도달하게 된 것이다. 총기규제 찬성측에서는 수정헌법2조는 주의 민병대 소집 권리이기에, 어느 정도의 총기규제를 허용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총기규제 반대측에서는 수정헌법 2조는 개인의 방어권을 포함하고 있으며 워싱턴DC의 총기규제는 위헌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연방 대법원은 워싱턴DC의 총기규제가 수정헌법 2조를 침해한다고 판결해, 총기규제 반대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미국의 총기규제 논란에 크나 큰 영향을 미친 판결이다. 여담으로 소송을 제기한 헬러는 자신이 원하는 총기를 얻지는 못했다. 그가 소유하고 싶은 총기는 반자동 피스톨이었지만 워싱턴 당국은 판결속에 구체적인 지침이 없음을 이용해 그가 원하는 총기를 기관총으로 규정. 금지시켰다. 이런 워싱턴 당국의 규정은 헌법상 개인에게 허용된 총기는 권총이나 엽총 정도라는 전통적인 인식과 부합하는 것이었다. 헬러는 이것에 반발해 다시 소송을 걸었지만 2010년 3월 워싱턴 지방법원에서 기각되었다.
  • 2012년 NFIB(전국 자영업 연합) 대 시벨리어스 재판(National Federation of Independent Business v.Sebelius)
2010년 3월 오바마 대통령이 발효시킨 오바마케어를 둘러싼 재판이다. 2012년 공화당이 중간 선거에서 민주당을 몰아내고 연방 하원 다수당이 되었다. 이에 따라 공화당이 집권한 26개 주의 검찰총장들을 비롯하여 각종 민간단체까지 오바마케어에 대한 위헌소송을 각자 제기했고 곧 이 관련소송들은 중소기업의 로비 단체인 전국 자영업 연합에 의해 통합된 뒤, 오바마 케어의 실무자인 캐서린 시벨리어스 보건부 장관에 소송을 제기하는 형식으로 연방대법원에 제소되었다. 2012년 6월 28일 연방대법원은 5대 4로 아슬아슬하게 오바마케어를 합헌이라고 판결을 내렸다. 오바마케어에 대해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쓴 다수의견은 보험의무 가입과 벌금조항이 의회의 통상관련권한의 적법한 역할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헌법이 인정한 의회의 징세권한 내에 있다는 것이다. 즉 세금으로 보자는 것. 반면에 반대의견을 쓴 안토닌 스칼리아 대법관 外 3명은 의회를 대신해서 새 법률을 만들면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대 윈저 사건'. 미국 연방 결혼보호법이 위헌 판결을 받으며 미국 모든 주(정확히는, 기존에 동성결혼을 위법하게 판단했던 14개주)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었다.
  • 2019년 6월 17일: 갬블 대 미국 사건 (Gamble v. United States)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관련된 사건이다. 중범죄(felony) 경력이 있던 Gamble은 총기를 소지하고 다니다가 깨진 자동차 꼬리등을 보고 차를 세운 경찰에 의해 발각되었는데, 이는 연방법과 주법을 둘 다 위반하는 범죄였다. 그래서 주 법원과 연방 법원에서 재판을 두 번 받아야했는데, Gamble은 주와 연방을 따로 취급함으로써 두 번 재판 받음에도 불구하고 일사부재리의 원칙에는 위배되지 않는다는 원칙인 "separate sovereigns doctrine"을 폐기할 것을 주장하며 연방대법원에 소송을 청구했다. 이건 트럼프 대통령과도 관련이 깊을 수 있는 사건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은 연방제이다 보니 연방정부와 연방 내에 있는 주 정부들이 공존하는 체제이다. 고로 연방법과 주법에 저촉되는 죄를 저질렀다면 연방법원과 주법원 양쪽에서 재판을 받아야 하지만 일사부재리의 원칙에는 저촉되지 않는다. 즉, 이 separate sovereigns exception이 폐기가 된다면, 이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개인적인 승리이다. 만약 연방 대법원에서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이유로 Gamble 측의 손을 들어주면,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게이트로 유죄 판결을 받은 본인의 전 측근들을 사면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사부재리의 원칙으로 주 정부에서 같은 범죄로 다시 기소할 수 없게 된다.# 더 나아가서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법을 어겨서 기소됐다 해도, 스스로 사면할 수 있고, 이렇게 되면 트럼프 대통령을 주 정부에서 기소할 수 없게 된다.[62] 고로 브랫 캐버노 대법관이 이 사건 심리에 참여한다면 트럼프에게 유리할 수도 있다고 전망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12월에 구술변론이 열린 사건은 6개월이 지나서야 결정이 났는데, 브랫 캐버노를 비롯한 무려 7명의 대법관이 연방정부의 손을 들어주면서 separate sovereigns exception은 살아남게 되었다. Separate sovereigns exception을 폐기할 것을 주장한 대법관 둘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과 트럼프가 지명한 또 다른 대법관인 닐 고서치 대법관이었다.
  • 2018년 6월 4일: 마스터피스 케이크 샵 대 콜로라도 민권 위원회 사건 (Masterpiece Cakeshop v. Colorado Civil Rights Commission)
2012년, 콜로라도에서 한 동성애 커플은 한 빵집의 주인인 잭 필립스를 상대로 콜로라도 민권 위원회 측에 불만을 접수하였는데, 이는 필립스가 자신의 종교적 시념을 이유로 동성애 커플의 결혼식에 쓰일 케이크를 만들길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필립스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다). 콜로라도 민권 위원회 측이 동성 커플의 손을 들어주었고, 이에 불복한 필립스가 법원에 소송을 냈지만 콜로라도 주 대법원까지 콜로라도 민권 위원회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연방 대법원에서 이 판결을 7대 2로 뒤집은 것이다. 하지만 이 뉴욕 타임즈 기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63], 가게나 사업체가 종교적 신념이나 표현의 자유 등을 이유로 서비스를 거부할 수 있다/없다의 여부는 확실히 답하지 않았다.[64] 판결문은 대체로 콜로라도 민권 위원회 측에서 잭 필립스의 종교적 신념에 대해 중립적인 관점에서 다루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동성커플도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와 한 개인의 종교적 신념 또한 존중을 해야하기 때문에 콜로라도 민권 위원회 측은 중립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의무를 지키지 못했음을 비판하였다. 즉 접수된 불만을 접근하는 방식에 있어서 종교적 표현의 자유 조항(Free Exercise Clause)을 콜로라도 주가 위반을 했기 때문에 콜로라도 민권 위원회 측의 결정을 뒤집은 것이다. 필립스 측 또한 동성결혼에 아예 케이크 외 어떤 상품도 팔기를 거부했다면 콜로라도 주 차별금지법 위반이고, 연방 대법원에서도 패소할 것이라고 인정하였다. 그러나 동성결혼을 위한 자신의 스킬이 담긴 케이크를 만든다는 건 자신이 이 동성결혼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표현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고, 이건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반한다는 논리를 펼쳤다.9~11페이지 참고 게다가 사건이 시작한 2012년에는 콜로라도 주는 동성결혼을 합법화 하지 않은 시기였을 뿐만 아니라, 미국 대 윈저 사건(2013) 및 오버거펠 대 호지스 사건(2015) 판결문이 발표되기 이전이던 것도 판결이 대법원에서 뒤집힌 요소 중 하나이기도 했다. 동성결혼이 합법이 아니었기 때문에 종교적 신념으로 거부해도 콜로라도 주 차별금지법을 위반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해된다는 것. 다수의견은 LGBTQ 인권을 신장하는 다수의견을 집필했던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이 집필하였고, 모든 보수성향 대법관(로버츠 대법원장, 토머스 대법관, 얼리토 대법관, 고서치 대법관) 및 진보성향 대법관 둘(브라이어 대법관, 케이건 대법관)이 다수의견을 지지하였다. 가장 엄격한 정교분리를 주장하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과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이 소수였다. 진보성향 내에서도 종교에 대한 관점이 나뉜다는 걸 보여준 사건으로, 보수 다섯 + 브라이어 + 케이건 vs 긴즈버그 + 소토마요르 구도는 Trinity Lutheran Church v. Comer 사건과 American Legion v. American Humanist Association 사건에서도 등장하게 된다.

7. 역대 주요 연방 대법관 명단

4대 연방 대법원장. 역대 연방 대법원장 중 가장 높이 평가받는 인물 중 하나. Marbury v Madison 판례를 통해서 헌법재판권한을 확립해 대법원의 위상을 높였기 때문이다.재밌는 건 우연히 대법원장에 오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토머스 제퍼슨민주공화당(반연방파))에게 패한 존 애덤스 대통령은 제퍼슨이 취임하기 전에 반연방파의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기 힘들게 하려고 연방당 출신의 판사를 대법원에 앉히려고 했었다. 존 러틀리지는 상원 대다수가 지지했던 제이 조약을 반대하는 기행[65]을 벌여서 상원 눈 밖에 나는 바람에 임명 거부가 되어버렸고, 3대 연방대법원장이었던 올리버 엘즈워스는 건강 문제가 심각했다. 결국 제1대 연방대법원장을 역임하고 뉴욕 주지사를 지내고 있던 존 제이(John Jay)에게 연방대법원장 자리를 맡아줄 의향이 있냐고 편지를 써서 보냈지만 "거긴 할 일도 없는 지루한 자리여서 다신 할 생각 없다"는 내용의 거절 의사를 밝혔다. 이 편지를 존 애덤스 대통령에게 가져간 사람이 바로 국무장관이었던 존 마셜이었던 것. 존 애덤스는 편지를 받아보고 잠시 좌절해 있다가 "그럼 존 마셜 당신을 지명해야 되겠군요"라고 해서 연방 대법원장에 오르게 되었다. 이후 Marbury v. Madison 사건을 비롯한 영미법 체계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 판례들을 34년(1801~1835)에 거쳐서 작성하게 된다.

5대 연방 대법원장 1836년 앤드루 잭슨 대통령에게 임명받은 존 마셜 대법원장의 후임자. 1864년 사망할 때까지 대법원장 직을 지켰다. 악명 높은 드레드 스콧[67] 사건의 다수의견을 썼다. 자신은 남북전쟁의 발발을 막기 위해서 이런 의견을 썼다고는 하지만 결국엔 이게 남북전쟁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 의견 하나 때문에 터니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법관하면 무조건 언급된다. 전임자와 후임자의 평판이 매우 크다남북전쟁 이후 터니의 입지는 땅바닥으로 추락했다. 전쟁 초기, 존 메리멘이라는 사람이 메릴랜드주에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 연방에서 탈퇴하도록 부추겼다. 대통령 링컨은 메릴랜드 같은 접경주(접경주란 남북전쟁 당시 북부지역과 남부지역의 경계에 있던 주로서 메릴랜드주 이외에 델라웨어주, 버지니아주, 웨스트버지니아주, 미주리주 등이 이에 해당한다)가 연방에 남아 있어야만 전쟁에 이길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존 메리멘의 행동을 엄하게 다스리려고 작정하였다. 그는 연방군에게 메리멘을 체포하여 연방감옥에 수감토록 하였다. 메리멘은 로저 터니에게 일반인인 자기는 군사법원이 아닌 민사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헌법상의 권리가 있음을 인정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터니는 메리멘의 청을 받아들였으나 링컨은 가볍게 그의 결정을 무시해 버렸다. 로저 터니는 격노하여 민사재판을 받을 일반인의 권리를 중지할 수 있는 것은 의회만이 할 수 있다고 항의하였으나, 이때는 그 누구도 링컨과 대적할 어느 힘도 없었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를 지켜본 한 언론인은 이렇게 썼다. “남북전쟁 동안에 워싱턴에서 대법원장 로저 터니보다 서글픈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1864년 10월 12일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조셉 스토리
18대 연방 대법관. 주니어 대법관[68]으로 가장 오랫동안 있었다. 렌퀴스트 대법원장이 사망하지 않았다면 이 기록을 스티븐 브라이어(얼리토 대법관이 2006년 3월 1일 이후에 대법원에 합류했더라면)가 갈아치울 수 있었다고 한다. 최장기록과는 29일 차이였다고 한다. 이런 기록 갱신은 하기 싫다구요--
  • 존 마셜 할란
44대 연방 대법원장 '분리하되 평등하게'를 내세워 흑백을 분리한 인종 차별 판결을 내린 악명 높은 Plessy v. Ferguson 사건에서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져서 'The Great Dissenter(위대한 반대자)'라는 별명을 가진 대법관이었다. 입법자의 의도에 충실하게 헌법을 해석해야 한다는 사법자제론을 주장하면서도 민권에 대한 의견은 진보적이었다. 그의 손자도 연방대법관을 지냈는데, 이름도 존 마셜 할런(John Marshall Harlan)으로 같다.

  • 루이스 브랜다이스
67대 연방 대법원장. '최후의 권력 연방 대법원' 이라는 책에 따르면 브랜다이스 대법관은 1934년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미국 역사상 위대한 판사로 추앙받는다고 한다.-1916년에서 1939년까지 대법관으로 재임했다. 후임은 윌리엄 더글라스. 이미 1900년대 초반에 최저임금제와 노동시간 제한을 옹호하는 등 노동법 분야의 선구자였다. 1908년 멀러 대 오리건 주 사건에서 여성노동자의 1일 근로 시간을 10시간으로 제한한 오리건 주법을 지지하였다. 경제적 민주주의자로 대기업의 폐해를 간파하여 노조를 옹호하는 등 ‘법정의 로빈후드’, ‘민중의 변호사’로 불렸다. 위대한 반대자들(Great Dissenters) 가운데 한 사람으로 유명한 법 사상가이자 대법원 동료인 올리버 웬들 홈스와 같이 호흡을 맞추었다.너새니얼 네이선슨 교수가 재판연구관으로 처음 맡았던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당시 루이스 브랜다이스 대법관이 그에게 일련의 법률 문서를 작성하여 아침 일찍 집으로 가져다 달라고 했다고 한다. 네이선슨 교수는 사전에 부탁 받은 대로, 문을 두드리거나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그냥 문 밑으로 서류를 쓱 밀어 넣었고 스르르 빨려들어갔다고 한다.

69대 연방 대법원장. 연방 대법원장 일을 하면서 "난 내가 대통령이었던 시절 기억 못하겠음" 드립도 쳤다고 한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


  • 윌리엄 O. 더글라스
79대 연방 대법원장. 1939년 브랜다이스 연방대법관의 뒤를 이었다. 특히 표현의 자유 이슈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쪽으로 표를 던졌다. 인생사를 보면 개천에서 용난, 존경스러운 자수성가[69] 케이스이기도 하고, 결혼을 네번이나 한 특이한 인물.[70] 또 재판연구관(판사보좌관)들을 힘들게 했던 대법관이기도 했다. 종종 재판연구관들에게 욕을 퍼부었다고 한다.[71] 그의 밑에서 일하는게 참 엿 같았다고 한다. 또한 "Trees have standing"이라는 주옥같은 명언을 남긴 대법관도 이 대법관. 직역하면 '나무가 (법정에) 서다'라는 뜻으로, 환경 문제와 연관된 소송에서 나무와 같은 자연물도 소송의 권리가 있는지에 대한 발언이다. 더글라스가 처음부터 만든 말은 아니고, 이 자연물의 소송 권리를 주장한 크리스토퍼 D. 스톤(Christopher D. Stone) 교수의 논문인 'Should Trees Have Standing?'에서 인용한 것이다.리타이어 하고도 계속 대법관 일을 하겠다고 땡깡부리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더글라스 밑에서 일하던 비서와 보좌관들을 더글라스의 자리를 이어받은 존 폴 스티븐스 대법관에게 배치시키고 나서야 은퇴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화려한(…) 사생활 때문에 도덕적 문제가 있다면서 상원이 몇 번 탄핵을 시도하였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 제임스 맥레이놀즈
피어스 버틀러, 윌리스 반 데반터, 조지 서덜랜드와 더불어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을 반대해온 대법관 넷을 지칭한 "The Four Horsemen" 중 한 명이다.[72]근데 이 양반이 왜 유명하냐면 성격이 개같고 대놓고 인종차별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거기에 성차별도 대 놓고 했다. 판결문 발표해야 하는데 반대의견을 태프트에게 제출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사냥 간다고 휴가 가버려서 태프트 뒷목잡게 만들었으며, 유태인들을 지독하게 싫어했다.[73] 서열 때문에 브랜다이스 옆에 앉아야 함을 깨달았을 때 죽어도 찍지 않겠다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결국 그 해엔 대법관들끼리 사진을 안 찍었다고 한다. 유대계 대법관인 루이스 브랜다이스와 벤자민 카르도조와는 일절 얘기도 하지 않았고 저들이 집필한 의견에 서명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시계 찬 남성들은 여성스럽다고(…) 싫어했고, 흑인 변호사나 여성 변호사가 변론에 나오면 "저기 여성이 있군"하면서 의자 180도 돌려버리는 등 대놓고 혐오했다고 한다. 동료 대법관이 은퇴하면 같이 일해서 즐거웠고, 은퇴 이후도 행복하게 잘 보내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편지를 전달하는 게 전통이다. 브랜다이스가 은퇴 선언을 했었을 적에 맥레이놀즈는 그 편지에 자기 이름을 서명하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합의실에 있는 금연 사인도 이 양반의 주장 때문에 걸렸다고 한다. 이때문에 악명 높은 Dred Scott 사건의 다수의견을 썼던 로저 터니 대법원장과 함께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법관하면 반드시 나오는 이름 중 하나이다.

  • 오웬 로버츠
FDR의 뉴딜 정책 관련된 사건들이 대법원에 자주 올라오던 시절 찰스 에반즈 휴즈 대법원장과 함께 중도 성향에 있었던 대법관 중 하나였다. 반뉴딜 성향의 대법관 넷 "The Four Horsemen"에게 설득당하면서 5-4로 계속 뉴딜 정책이 저지를 당하자 열받은 FDR이 "court-packing bill"[74]을 제정하면서까지 뉴딜 정책을 통과시키려 하였다. 이건 민주당 측에서도 너무하다고 생각했는지 의회에서는 둘 다 반대하였다.[75] 오웬 로버츠가 뉴딜에 호의적이었던 The Three Musketeers와 찰스 에반즈 휴즈 대법원장 쪽으로 선회한 시기가 저 court-packing bill을 FDR이 밀어붙이던 때와 맞아떨어져서 로버츠가 친뉴딜 성향로 돌아서기 시작한 최초의 사건이라 여겨지는 West Coast Hotel Co. v. Parrish 사건에서의 로버츠 대법관의 선회는 두고두고 "the switch in time that saved nine"[76]이라고 불리게 된다. 당시 대법원장이었던 찰스 에반즈 휴즈는 FDR의 법안이 전혀 영향이 없었다며 부정하였지만 1936년 루즈벨트 대통령의 압도적인 표차의 재선과 미국인들의 뉴딜 정책에 대한 강력한 지지의 영향은 있었다고 인정하였다. 휴즈 대법원장도 이 둘을 들면서 보수 성향의 러브콜에 화답하곤 했던 로버츠 대법관을 설득시켰고 이 설득이 처음으로 먹혀들어간 게 워싱턴 주 여성근로자 최저임금법을 합헌 판결 내린 West Coast Hotel Co 대 Parrish 사건이었던 것이다.

  • 찰스 에반즈 휴즈
1910년부터 1916년까지는 대법관으로 재직했고, 1930년부터 1941년엔 대법원장으로 대법원으로 돌아왔다.1910년에 대법원장 공석이 생기는대로 대법원장 시켜주겠다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가 약속했지만 이 약속을 지키면 47세밖에 안 되었던 휴즈가 오랫동안 대법원장 자리에 있을테고, 그렇다면 자기는 영영 대법원장이 되지 못할것을 깨달은 태프트가 말을 바꾸는 바람에 대법원장이 되지 못했고 1916년에 휴즈는 1916년 대선에 도전하기 위해 사임하였다. 2016년 현재까지 휴즈는 대통령 선거를 위해서 대법관 자리를 사임한 유일한 대법관으로 남아 있다. 비교적 고령이었던 민주당 출신 에드워드 더글라스 화이트 대법관을 대법원장으로 승진시킨 것도 이런 계산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우드로 윌슨의 임기가 끝나고 워런 하딩이 임기를 시작한지 몇 달 뒤에 딱 맞춰서 화이트 대법원장이 사망한(…) 덕분에 태프트는 계획대로(…) 대법원장이 될 수 있었다. 태프트도 완전히 휴즈와 한 약속을 저버렸다고는 하기 어려운 게, 건강상 은퇴를 선언하기 전에 당시 대통령이었던 허버트 후버가 자신의 후임자로 휴즈를 지명할 것을 요구했고 이를 보장받기 전까진 은퇴를 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태프트의 바람대로 휴즈가 그의 뒤를 이었고 휴즈는 11년간 대법원장에 있으면서 뉴딜 정책 때문에 첨예하게 갈라진 대법원을 리드하게 된다. 친뉴딜 성향의 대법관 삼총사인 "The Three Musketeers"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대체로 이 셋과 뜻을 같이한 편이다. 윌리엄 렌퀴스트와 더불어 합의를 효율적으로 진행한 대법원장 중 하나라고 한다. 휴즈의 자리를 이어받은 할란 피스케 스톤이 대법원장이 되었을 땐 3~40분이면 금방 끝나던 합의 과정을 몇 시간씩이나 질질 끌었다고 한다.

  • 펠릭스 프랭크푸르터
사법소극주의(Judicial restraint)를 강조했던 것으로 유명했던 대법관. 유대인 자수성가의 대표적인 케이스.[* 공부를 기가 막히게 잘했다. 하버드 로스쿨에서[루이스 브랜다이스 대법관 이후 역대 최고의 성적으로 졸업했다.] 연방항소법원 판사로서의 명성은 대단했지만, 대법관으로서의 프랑크푸르터의 레가시에 대해선 분분한 의견이 있는 편. 사법소극주의에 반대한 대법관들을 대놓고 적으로 취급하면서 편 가르기를 해서 적을 많이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합의할 때도 대놓고 사법소극주의에 대해서 45분씩 강연할 때마다 이념적인 대척점에 있었던 얼 워런 대법관장이나 브레넌 대법관 같은 경우는 아예 회의실을 나가버렸다고도 한다. 이런 접근 방식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본인의 사법철학을 영미법 체계에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했다는 것이 중론.

  • 로버트 잭슨
프랑크푸르터와 더불어서 사법소극주의를 강조했던 대법관. 휴고 블랙과 사이가 안 좋았다고 한다.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도 미국 측 검사를 맡기도 하였다. 악명높은 백악관 행정명령 9066호를 합헌판결 내렸던 코레마츠 대 미국 사건에서 반대의견을 낸 대법관 중 하나이다.

  • 휴고 블랙
Textualism과 originalism (또는 strict constructionism)[78]을 강조하는 의견을 많이 냈던 대법관.[79] 정치인이었다. 자수성가한 인생사를 보면 야망이 오죽 컸으면 인맥을 넓히기 위해 KKK의 멤버로 활동했었다.[80] 윌리엄 O. 더글라스 대법관과 함께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이라 믿었던 대법관 중 하나였다.

검사 출신 법조인에 공화당 소속 보수 정치인이다. 법적 감각은 뒤졌고 자신도 그걸 알고 있었다. 대신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활동하면서 기른 리더십 및 자신의 떨어지는 법적 감각을 보완해 주었던 브레넌 대법관의 도움 덕분에 역사적이고, 진보적인 판결을 많이 내릴 수 있었다.

  • 워런 버거
얼 워런의 후임자였다. 자신의 서열을 이용하여서 자신이 원하는 사건의 다수 의견을 컨트롤하기 위해서 투표할 때 자신의 의견을 숨기려 들었고, 나중에 자신의 포지션을 바꿔가면서까지 다수의견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쓰려고 하는 바람에[81] 다른 대법관들이 대법원장으로서 존중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중 "I know it when I see it"으로 유명한 포터 스튜어트 대법관이 버거 대법원장을 특히 싫어했다고 한다. 게다가 합의도 효율적으로 진행하지 못해서 비판받았다.

  • 해리 블랙먼
미국 사회의 영원한 뜨거운 감자인 낙태 허용 판결인 Roe v Wade 의견을 집필하였다. 대법원에 처음 들어왔을 당시엔 보수 성향인 렌퀴스트 대법원장과 같은 편이었지만(90% 투표 일치율을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진보 성향으로 돌아서게 된다.

  • 윌리엄 브레넌 (William Brennan)
진보적인 성향을 지닌 것으로 유명했던 대법관. 소수와 약자를 보호하는 판결을 자주 냈으며, 사형 제도는 위헌이라고 일관적으로 주장해왔다.가장 대표적인 예로 1989년 성조기 훼손을 처벌하도록 한 텍사스 주 법령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라는 이유로 위헌을 선언한 것이 있다. 1984년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를 반대하는 가두시위에서 그레고리 존슨은 “미국에 침을 뱉는다”는 구호를 외치며 라이터로 성조기에 불을 붙였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외교정책을 반대하는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텍사스 주 경찰은 존슨을 국가 상징물에 대한 모독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주법에 따라 기소했고, 주법원은 존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자 존슨은 즉각 항소했으며, 항소법원은 “국기를 불태운 행위 역시 수정헌법 제1조의 표현의 자유에 의해서 보호된다”며 하급심의 판결을 뒤집었다. 이에 반발한 텍사스 주 당국이 상고하면서, 이 사건은 발생 5년 만인 1989년 연방 대법원에 올라갔고, 연방 대법원은 5 대 4로 존슨의 손을 들어줬다. 다수의견에 맞선 윌리엄 랜퀴스트 대법원장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에 맞서 성조기를 지키려고 싸웠던 전몰군인들을 상기시키며, “미국 국민이 성조기에 대해 느끼는 깊은 경외와 존경심은 국가가 의도적으로 국민들에게 심어준 것이 아니라, 이 나라 200년의 역사가 만든 것이다”라며 “성조기 소각은 미국의 역사와 정신을 훼손한 것이며, 국기에 대한 살인”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국기 소각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헌법의 보호막을 제공하는 것은 국가가 세워진 목적 자체를 위협하는 일”이라고 반대 의견을 냈다.[82] 그러나 5명의 대법관들은 성조기 소각 행위도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들을 대표해 다수의견을 작성한 윌리엄 브레넌 대법관은 “단지 사회적으로 어떤 사상이 불쾌하거나 무례하다고 판단된다는 이유로 국가가 그런 사상의 표현을 금지할 수 없다는 것이 수정헌법 제1조가 규정하고 있는 기본 정신”이라며 “국기와 관련된 경우라고 해서 예외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국가 상징물이라고 성조기 훼손을 금지한다면, 대통령 도장이 찍힌 서류나 헌법 사본의 경우는 어떨까?”라고 반문한 뒤, “특정 집단이 그들의 정치적 기호에 따라 상징물을 선택한 후 그 결정 사항을 시민들에게 강요한다면 이런 행위야말로 수정헌법 제1조가 금지하는 행위”라고 역설했다. 그가 판결문을 마무리하며 쓴 마지막 문장은 지금도 손꼽히는 명문으로 회자되고 있다. “성조기 모독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그 소중한 성조기가 상징하는 자유를 침해하는 행동이다.” 이 판결은 미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미 의회는 연방 대법원의 판결에 발끈해 상하 양원 모두 판결에 대한 비난 결의안을 채택했고, 1990년 성조기 훼손을 처벌하는 성조기 보호법을 만들어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하지만 연방 대법원은 이 법률에도 똑같은 논리로 위헌 판결을 내려 어떤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헌법의 가치를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과시했다. 이념적인 순수성을 위해서 타협을 거부하는 앤토닌 스컬리아나 클레런스 토마스와는 달리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다 얻지 못하더라도 차선책을 위해서 다른 대법관들과 협상을 선호하였다고 한다. 단 사형제도에 대해서만은 예외였다. 사형제도 위헌 판결을 뒤집은 Gregg v. Georgia를 죽을 때까지 인정하지 않았고, 사형제 관련된 상고가 기각될 때마다 서굿 마셜과 함께 기각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썼다고 한다. 서굿 마셜이 쓰고 브레넌이 서명하거나, 또는 그 반대. 하도 성향이 같아서 그런지 일각에선 "브레넌-마셜 대법관(Justice Brennan-Marshall)"이라고 묶어서 불렀다고 한다. 얼 워렌이 대법원장과는 죽이 잘 맞았던 대법관으로, 합의 이전에도 어떤 식으로 다른 법관들을 설득할지 미리 만나서 전략도 짜고 했다고 한다. 얼 워렌은 자신이 법적 감각에선 브레넌이나 프랭크푸르터에 미치지 못함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약점을 커버해 줄 수 있으면서도 성향이 비슷한 브레넌에게 자주 의지한 것. 이래서 워렌이 있는 동안 브레넌의 별명은 "연방 대법원장 대행(Deputy Chief Justice)"였다고 한다.

  • 서굿 마셜
최초의 흑인 대법관. 마틴 루터 킹과 더불어 흑인 인권을 높이는데 엄청난 기여를 한 법조인이며 오바마의 롤모델이 되기도 했다. 린든 B. 존슨 대통령과 절친한 관계였는데 두 사람 사이에서 벌어진 일화도 여러가지 의미로 대단하다. 자세한 내용은 린든 존슨 문서를 참조. '분리하되 평등하게' 라는 말도 안되는 개념을 내세워 인종차별을 정당화한 플레시 대 퍼거슨 판결을 깨트리는 사건인 1954년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재판 당시 변호인으로 참여해 이를 깨는데 일조했다. 볼티모어 워싱턴 국제공항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 포터 스튜어트
영화 연인들에 대한 재판 Jacobellis v. Ohio에서 그것이 외설물이 아님을 서술하는 근거 중 한 구절인 I know it when I see it으로 유명한 대법관이다. Hardcore pornography를 정확하게 정의하기가 힘들다는 걸 솔직하게 인정한 구절이다. 재임 기간 내내 중도 성향을 유지했다.

  • 존 폴 스티븐스
연방 대법원에서 세 번째로 오래 재직한 대법관이자 가장 공정한 재판관으로 이름이 높다. 1947년 연방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일하면서 프레드 빈슨 대법원장과 처음 인연을 맺었고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1975년 12월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지명으로 대법관에 임명되어 35년 6개월간 재임했다. 고령임에도 조지 W 부시에게 대법관 지명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은퇴를 미루다 오바마가 당선 된 뒤 2010년 6월 90세의 나이로 은퇴했다.프레드 빈슨, 얼 워런, 워런 버거, 윌리엄 렌퀴스트, 존 로버츠, 이렇게 5명의 연방 대법원장과 함께하며 60여 년간[83] 법조인으로 활동한 현대 미국 사법사의 산증인이자 역사이다. 미국 사회를 변화시킨 굵직한 사건들의 판결에 얽힌 이야기와 더불어 그들과 함께한 연방 대법원 시절의 개인적 경험과 평가를 담아 회고록이 '최후의 권력 연방 대법원'이란 책이다.행정법 Chevron deference를 창시한 것으로 유명하다.[84]중도보수에서 시작했다가 진보쪽으로 옮겨간 케이스다. 법원에 있다 보면 새로운 것들을 배우게 되다보니 자연스럽게 성향이 바뀌게 된다고 하면서, 열린 마음을 거론하기도 하였다. 소수 인종 우대 정책(어퍼머티브 액션)에도 반대하는 의견을 내다가 나중에 가서는 찬성 쪽으로 바뀌기도 하였다. 윌리엄 랜퀴스트, 존 로버츠 대법원이 보수화하면서 진보 대법관의 지도자로 활약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소수자 인권, 여성의 권리, 실질적 적법절차상의 자유권, 형사 피의자의 권리 보호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보수적 다수의견과 대척점에 서서 강한 목소리를 내었다. 많은 사건에서 자신의 소신과 개성이 담긴 소수의견을 발표하였고, 다수의견보다 더 논리적이고 짙은 호소력으로 ‘위대한 반대자들’의 계보를 이었다.표현의 자유에 관련해서는 대체로 수용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애국심에 관련된 케이스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특이한 스탠스를 가졌던 대법관이기도 하다. Flag burning을 금지하는 법도 제1수정조항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결해왔다.[85] 그리고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대치되는 상황, 측 federalism 관련 사건에서는 일관적으로 연방정부의 편을 들어주었다. 대표적인 예 중 하나가 Gonzales v. Raich 사건으로, 마리화나가 합법인 주에서도 연방법에 위배되므로 연방정부 측에서 처벌할 수 있다는 다수의견을 집필하였다. 반대표는 산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 및 주 권리에 호의적인 입장을 자주 보여왔던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과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 이렇게 셋이었다.2019년 7월 16일 뇌졸중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99세(한국 나이로 100세)에 세상을 떠났다.

최초의 여성 대법관. 1981년에 임명된 중도보수 성향의 대법관이었다. 단 affirmative action은 현재는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었기에 이를 반대하는 대법관이 여럿 있었음에도 대부분의 affirmative action이 오코너가 있는 동안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합의 중에도 극보수 성향의 앤토닌 스컬리아가 affirmative action을 강하게 비판했을 때도 "니노(앤토닌의 애칭), affirmative action이 아니었으면 난 여기 없었을 거야"라며 불편한 심기를 표현한 적이 있다고 한다. 2003년에 오코너 대법관은 25년 후인 2028년에는 어퍼머티브 액션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기를 기대한다며 어퍼머티브 액션을 영구적으로 시행할 수는 없고 근미래에는 어퍼머티브 액션이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는 어퍼머티브 액션이 필요하지만 영구적으로 시행할 수는 없고 한시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과 같이 일을 할때 1997년 변론에서 저명한 중견 변호사가 둘을 헷갈려서 오코너를 보고 긴즈버그 대법관님 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법정 정면 판사석에 긴즈버그와 제법 거리를 두고 앉아 있던 오코너는 즉각 속기록 수정을 지시하며 “저분이 긴즈버그 대법관입니다. 나는 오코너 대법관이고요”라고 응수했다.오코너는 취임 후 12년간 갑자기 볼일이 급할 때 개인 화장실이 있는 집무실까지 뛰어가야 했다. 1935년 지어진 옛 건물인 대법원은 원래 여자화장실이 적은 데다 대법관들이 변론을 위해 법정에 입장하기 전 법복으로 갈아입는 탈의실 부근은 아예 여자화장실이 없었던 탓이다. 그러다 긴즈버그가 들어오면서 비로소 탈의실 곁에도 여자화장실이 생겨났다. 오코너와 긴즈버그가 힘을 합쳐 “당장 화장실 보수공사를 시작하라”고 대법원장을 압박한 결과였다. 후임에도 보수적인 성향의 대법관이 자신을 잇길 바래서 공화당 대통령이 있을 때 은퇴하고 싶다고 밝혔으며, 본인 자리는 여성 대법관이 물려받길 바란다고 했지만 결국엔 새뮤얼 얼리토가 이어 받았다.

  • 윌리엄 렌퀴스트
제16대 대법원장. 자주 보수적인 성향을 보였고, 특히 school prayer를 무조건 합헌이라 판결내릴 정도로 강경 보수성향이었다. 후임자 존 로버츠 대법원장에 의하면 법을 공부하지 않은 시민들도 읽기 쉬운 의견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상당히 보수적인 성향이었지만 리더쉽은 뛰어났던 대법원장이었다. 다수의견을 컨트롤하고 다른 대법관들이 원하지 않는 케이스를 다른 대법관들에게 넘기고 좋은 케이스만 자기가 가져가는 치사한(…) 행동으로 미움을 산 전임자인 워런 버거와는 전혀 달랐다. 자신이 소수파에 있더라도 자신의 서열을 이용하여 다수파를 컨트롤하려 들지도 않았으며, 집필자 지정에 있어서도 각 대법관이 의견 집필할 기회를 줄 때도 최대한 공평하게[86] 했으며, 합의 때도 모든 대법관이 한 번씩 의견을 말하기 전까진 두 번 이상 말하는 걸 금지할 정도로 공정성에 있어서는 칼 같았다고 한다. 대법관들이 합의할 시간을 너무 짧게 준다고 불평하기도 했지만 렌퀴스트는 차도남 같이 "오랫동안 떠들어 봤자 의견 바꾸지도 않을 게 뻔한데 질질 끌어봤자 무슨 소용임"하며 쿨하게 짤라버렸고, 이로 인해서 합의도 상당히 효율적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념적으론 극보수였지만 성격은 꾸밈없으며 느긋하고 부드러웠기 때문에 이념을 넘어서서 다른 대법관들과 잘 어울렸고, 의견 집필 과정에서 한 대법관이 반대하는 대법관에게 지나치게 공격적인 메모[87]를 보낸 걸 알게 되었을 땐 감정 상하지 않게 다독이고 타이르는 등 리더십 하나만은 대법원장 중 가장 뛰어났다고 봐도 손색이 없다. 구술변론 때도 변호사에게 불 꺼지면 바로 짤라버리는 등 가차 없었단다. 이런 쪽에서 좀 더 관대한 현 대법원장인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는 대조적이다. 이념적으론 반대편에 있는 윌리엄 브레넌 대법관은 윌리엄 렌퀴스트를 "자신이 같이 일한 대법원장 중 가장 성공한 대법원장"이라고 평했다. 자신이 성향으로 따지만 얼 워렌 대법원장과 더 맞았지만 말이다. 본인도 어떤 대법원장으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효과적인 관리자(administrator)로 기억되고 싶다는 답변을 하기도 했다. 렌퀴스트의 대법원장 지명이[88] 통과되었을 때 이념에 상관 없이 모든 대법관들이 이를 환영한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전임자가 눈엣가시 같은 워런 버거였으니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 앤토닌 스컬리아
연방 대법관 중에 클레런스 토마스와 함께 강경보수로 평가받던 인물. 30년 가까이 재임하면서 대법원 보수의견의 대들보, 기둥 역할을 해 왔었다. 재판연구관(판사보좌관, law clerk)을 뽑을 때 학벌을 많이 보는 편으로 알려져 있다.[89] 금태섭 변호사의 말(저서 '디케의 눈'에서 인용)에 따르면 미국 로스쿨의 최종보스 격이라고 한다. 강경 보수 성향이면서도 판결문에서 나오는 논리력이 대단해서 반박하기조차 만만치 않은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2015년 동성결혼판결 반대의견이나 King v. Burwell 사건 반대의견은 법적 논리력은 없고 화가 나서 ranting하는 수준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한다. 한 법 교수도 스컬리아와 저런 의견을 읽고 저게 쿨하다고 생각하면서 저런 스타일을 따라하는 학생들이 걱정된다는 우려를 SCOTUSblog에 표현한 바가 있다. 또한 2015년 12월 9일에 열린 Fisher v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라운드 2 구술변론에서도 흑인들은 좀 랭킹이 낮은(slower-track) 학교에 가는 게 낫지 않겠냐는 식의 발언을 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016년 2월 12일 밤 또는 13일 새벽(현지시각)에 갑자기 사망하였다. 사망 원인은 취침 도중 일어난 심장마비.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에 누군가 스컬리아를 살해한 것 아니냐는 음모론도 일어나고 있는데[90], 일단 유가족들은 음모론 자체를 부정하였고 부검을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미 의회 의원들과 대법관 담당 의사(Attending Physician)인 브라이언 모나한은 스컬리아는 여러 건강문제를 안고 있었다고 밝혔다. 비만부터 시작해서 수면무호흡증(sleep apnea), 고혈압, 만성 폐쇄성 폐질환(chronic obstructive pulmonary disease), 관상동맥질환(coronary artery disease), 퇴행성 관절염(degenerative joint disease), 당뇨병 등을 안고 있었고, 찢어진 어깨근육을 수술로 치료하기엔 몸에 무리가 갈 것이라 판단되어 재활하는 수준에서 끝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수면무호흡증과 관상동맥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엔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죽을 위험이 있다고 한다. 게다가 흡연자이기도 하였다. 자세한 기사는 여기서 읽어볼 수 있다(영문)

흔히 경제문제는 보수, 사회문제는 진보적인 판결을 내린다고 평가받는 이름만 로버츠 코트의 캐스팅 보트. 사실상 실세 2015년 6월, 동성결혼을 미국 전역에서 합법화시키는 판결에서도 역시 캐스팅 보트를 행사.[* 케네디가 작성한 판결문의 마지막 문단은 요즈음 미국에서 결혼 서약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고 한다.# {{{#!folding 해당 문단

결혼보다 심오한 결합은 없다. 결혼은 사랑, 신의, 헌신, 희생 그리고 가족의 가장 높은 이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혼인관계를 이루면서 두 사람은 이전의 혼자였던 그들보다 위대해진다. 이들 사건들의 일부 상고인들이 보여주었듯이, 결혼은 때로는 죽음 후에도 지속되는 사랑을 상징한다. 동성애자 남성들과 여성들이 결혼이란 제도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을 오해하는 것이다. 그들은 결혼을 존중하기 때문에, 스스로 결혼의 성취감을 이루고 싶을 정도로 결혼을 깊이 존중하기 때문에 청원하는 것이다. 그들의 소망은 고독함 속에 남겨지지 않아야하고, 문명의 오래된 제도로부터 배제되지 않아야할 것이다. 그들은 법 앞에서 동등한 존엄을 요청하였다. 연방헌법은 그들에게 그러할 권리를 보장한다.

연방 제6 항소법원의 판결을 파기한다.

이상과 같이 판결한다.

(No union is more profound than marriage, for it embodies the highest ideals of love, fidelity, devotion, sacrifice, and family. In forming a marital union, two people become something greater than once they were. As some of the petitioners in these cases demonstrate, marriage a love that may endure even past death. It would misunderstand these men and women to say they disrespect the idea of marriage. Their plea is that they do respect it, respect it so deeply that they seek to find its fulfillment for themselves. Their hope is not to be condemned to live in loneliness, excluded from one of civilization’s oldest institutions. They ask for equal dignity in the eyes of the law. The Constitution grants them that right.

The judgment of the Court of Appeals for the Sixth Circuit is reversed.

It is so ordered.) 원본 p33}}}] 중도보수로 분류되지만 국제법 참고에 더 적극적인 대법관이어서 보수성향에게 비판을 받는 대법관이기도 하다. 2018년 6월 27일에 전격적으로 연방 대법관에서 은퇴하겠다고 발표했다. 후임으로는 상당히 보수 성향이 강한 인물이 내정될 것으로 예상되었고, 7월 9일도널드 트럼프는 예상했던대로 보수 성향이 상당히 강한 브랫 캐버너(Brett Kavanaugh) 현 워싱턴 D.C 연방 항소법원 판사를 후임으로 지명했다.

8. 관련 문서


  1. [1] 정의(Justice)라는 표현을 연방 대법원에서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며 각 주 법원에서도 법관을 가리켜 이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미합중국 헌법에는 Justice가 아니라 Judge라고만 되어있다.
  2. [2] 'During Good Behavior(선한 행동을 하는 한)'라고 미 헌법 제3조에 규정되어 있다.
  3. [3] 종신 임명 규정은 연방 판사 전원에게 적용되는 사항이다.
  4. [4] 미국은 연방 국가라서 각 주마다 사법 체계가 별도로 존재하고, 대부분의 일반 민·형사 사건은 주 법률 체계에 따라 3심제 등(주마다 다름)을 하게 된다.
  5. [5] Circuit Courts: 이름 자체는 '순회 법원'인데, 1800년대까지는 고등법원의 역할을 하는 2심 판사들이 마차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항소심 재판을 수행했다. 1심 판결에 불복하는 항소 자체가 많지 않았기 때문. 현대에 들어서야 고정된 건물에서 2심 재판을 진행하게 되었지만 이름은 여전히 순회법원이다.
  6. [6] 그러니까 연방 정부가 당사자인 사건(연방법 위반 등으로 연방 검사가 기소하는 형사 사건 포함), 주계(州界)를 넘어가는 소송 중 소가가 7만 5천 달러를 넘는 사건(Diversity Jurisdiction), (보통 연방법이 관할하는) 파산·저작권·특허 사건 등
  7. [7] 의견 대립이 있을 만한 사건에 친정부적인 1~2인의 대법관만 추가로 투입되어도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8. [8] 이는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14명이라는 대법관 인원의 근거는 헌법이 아니라 법원조직법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법원조직법의 개정을 통해 대법관을 늘리려 할 수는 있다. 다만 지금이 대공황 시대도 아니고, 어차피 대법관에게 6년의 임기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시도를 하면 권력분립을 우습게 안다는 어그로만 잔뜩 끌게 될 것이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헌법에 정원이 정해져 있어 이러한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9. [9] 상고한 쪽 30분, 반대쪽 30분으로 철저하다. 시간 지나면 자동으로 마이크 꺼진다. 대법관과 문답하는 시간 포함으로 30분씩이니 매우 짧다. 이건 항소심도 마찬가지이다. 단, 2015년 4월 29일에 열린 Obergefell v Hodges 사건의 경우에는 이례적으로 1시간이 아닌 2시간 30분 가량의 구술변론이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한 구술변론에 두 가지 이슈(동성결혼 금지법의 위헌 여부, 그리고 동성결혼이 합법인 주에서 이루어진 동성결혼을 합법화가 되지 않은 주에서 인정해야 할 의무가 있는지의 여부.)를 커버했기 때문이다. 또한 대법원장의 재량에 따라서 시간이 더 주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오클라호마 독극물 주입 사형 방식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Glossip v Gross 사건이 그 중 한 예. 위헌이다 아니다 여부를 가지고 대법관들이 하도 말을 많이 해서(그리고 자기네들 사이에서도 언쟁이…) 합헌을 주장하는 오클라호마 주 송무차관이 자기 할 말을 제대로 못했다고 생각해서 시간을 더 준 케이스. 물론 형평성을 위해서 위헌을 주장하는 측 변호사에게도 변론할 시간을 더 주었다. 구술변론 때도 분위기가 험악했고, 판결선고 시에도 말로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수준이었으니 뭐…. 얼리토 대법관이 다수의견을 발표한 뒤 소토마요르 대법관과 브라이어 대법관이 각각 반대의견을 벤치에서 읽었으며, 스컬리아 대법관은 "브라이어 대법관이 '사형은 위헌일 듯 싶음'이라고 한 의견에 답을 할 필요가 있을 듯"하면서 이에 질세라 자신의 보충의견을 벤치에서 읽었다. 반대의견을 읽는 건 그렇다고 치지만 두 개의 반대의견이 벤치에서 읽히고, 무려 보충의견까지 벤치에서 읽히는 건 극히 드문 사례이다. 스컬리아는 대통령의 휴회임명권을 둘러싼 NLRB v. Noel Canning 사건 의견 발표시에도 "다수의견이 결론에 도달한 이유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보충의견을 벤치에서 읽기도 하였다. 결과론적으로는 9:0이었지만 법적인 논리에선 5:4로 결정난 케이스로, 이유에서 첨예하게 대립한 사례이다. 일부 언론에선 말만 보충의견이지 거의 반대의견 같이 들렸다고 평했다고 한다.
  10. [10] 구술변론이 끝나는 4월 이후부터는 휴정하기 전까진 목요일에 이루어진다.
  11. [11] 보안관(Marshal) 맞다. 죄수 호송, 도주차 체포, 법원 계호 등을 담당한다. 한국에서는 법정경위직이라 하는데 이름 그대로 법정만 지키는 눈빛이 무서운 아저씨이다. 법정경위직의 경우 방청객중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있거나 핸드폰 보고 있으면 비호처럼 날아와 옆에 서서 째려본다. 방청객 중 조폭이라도 눈 못 마주친다.
  12. [12] 프랑스 고어로서 "들으시오!" 라는 뜻이다. 연방 대법원에서 일어나는 일을 커버하는 웹사이트 중 하나의 이름이 oyez.org이다.
  13. [13] The Honorable, the Chief Justice and the Associate Justices of the Supreme Court of the United States. Oyez! Oyez! Oyez! All persons having business before the Honorable, the Supreme Court of the United States, are admonished to draw near and give their attention, for the Court is now sitting. God save the United States and this Honorable Court!
  14. [14] 존 로버츠 대법원장의 전임자였던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이 고수한 규칙. 또한 의견 집필에 있어서도 모든 대법관이 한 번 씩 의견집필을 하기 전까진 어느 누구에게도 두 번 이상 집필자를 지정하지 않을 정도로 공정하게 합의를 진행했다고 한다. 렌퀴스트 밑에서 일을 했었던 존 로버츠 대법원장도 이를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15. [15] 대법원장의 경우 얼마나 그 자리에 오래 있었나 여부에 상관 없이 최선임이어서 대법원장이 다수에 있을 경우 대법원장이 집필자를 지정할 수 있다. 이를 이용해서 투표 시 자신의 의견을 바꿈으로써 다수의견을 자기 뜻대로 컨트롤하려고 했던 워런 버거 대법원장을 다른 대법관들이 눈엣가시처럼 여겼다고 한다. 게다가 매주 이루어지는 합의도 제대로 리드를 하지 못해서 비효율적인 리더라는 비판을 받은 것도 덤. 후임자인 렌퀴스트 대법원장은 합의를 효율적으로 진행했을 뿐만 아니라, 소수에 있더라도 전임자처럼 자신의 서열을 이용해서 다수파를 컨트롤하려고 들지도 않았다. 이념적으로 강경보수였던 렌퀴스트와 정 반대편의 이념을 가지고 있던 대법관들도 렌퀴스트의 대법원장 임명을 환영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16. [16] Dissent 또는 dissenting opinion이라고 불린다.
  17. [17] Concurring opinion, an opinion concurring in the judgment, an opinion concurring in part, an opinion concurring in part and dissenting in part 등이 있다. Concurring opinion의 경우 다수의견에 동의하지면서도 그 의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첨언하는 의견이다.(우리나라로 따지자면 보충의견) An opinion concurring in the judgment의 경우 다수의견의 결론에는 동의하지만 결론에 도달한 법적 이유에는 동의할 수 없는 대법관이 작성하는 의견이다.(우리나라로 따지자면 별개의견) Concurring in part and concurring in the judgment는 다수의견의 결론 일부에 동의하면서도 나머지에는 포함되길 거부하는 의견이다. 2018년 1월 28일에 결정된 District of Columbia v. Wesby에서 다수의견은 경찰관에게 공무원 면책권(qualified immunity)가 적용된다고 판결함과 동시에 경찰관의 행위는 헌법 수정 제4소항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소토마요르와 긴즈버그 대법관은 공무원 면책권에 있어서는 다수의견과 뜻을 동조하지만 위헌 여부는 결정할 필요가 없었고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동조의견을 작성했다. 어쨌든 경찰관은 면책권이 보장된다는 결과 및 경찰관을 고발한 시민이 패한다는 결과 전체에는 동조하기 때문에 concurring in part인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타입의 별개의견(concurring in part and dissenting in part)은 다수의견의 일부 결론에는 동의하지만, 나머지 부분에선 정 반대의 결론을 내렸을 것임을 설명하는 의견이다.
  18. [18]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박근혜 대통령 탄핵, 통합진보당 해산, 신행정수도의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 위헌심판, BBK 특별검사법 위헌심판 이렇게 5차례 생중계를 했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애매하게 병립하는 현실 속에서, 외부와의 소통 면에서 우위를 점하려 하기 때문.
  19. [19] 로버츠가 대법원장이기 때문에 로버츠가 대법원장으로 재임한 기간에 내린 판결들은 'Roberts Court(로버츠 법원)'의 '유산'으로 여겨진다.
  20. [20] 예전에는 주로 낙태 및 동성결혼이었고 지금은 총기규제, 오바마케어, 어퍼머티브 액션 등이 있다. 이것들은 현재까지도 미국 사회에서 뜨거운 감자로 여겨지고 있는 중이다. 2015년 10월에 시작한 개정기에는 오바마케어(Zubik v. Burwell), 이민법(정확히 말하자면 오바마 정부의 불법이민자 추방을 지연시키는 행정명령에 반발한 주 정부 사이의 갈등이다. 사건 이름은 United States v. Texas), 어퍼머티브 액션(Fisher v. University of Texas II), 오바마 정부의 Clean Power Plan 이 넷이 가장 뜨거운 감자로 여겨지고 있다. 또한 뇌물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밥 맥도널 전 버지니아 주지사가 연루된 사건인 McDonnell v. United States도 뜨거운 감자라고 볼 수 있는 사건이다.
  21. [21] 물론 아닌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진보 성향 넷 + 케네디 또는 보수 성향 넷 + 케네디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건 Roberts Court(로버츠 법원)가 아니라 Kennedy Court(케네디 법원)임" "이건 그냥 케네디 1인 체제ㅋㅋㅋ"라고 비아냥댄다.
  22. [22] 4-4인 경우 사건이 올라온 법원의 판결이 그대로 affirm된다. 단, 새로운 판례가 탄생하지는 않는다.
  23. [23] 중도성향으로는 절대 볼 수 없는 보수주의자. 로버츠 대법원장도 꽤 보수적이라는 게 지배적인 견해지만, 토머스하고 얼리토가 강경보수이기 때문에 로버츠 대법원장이 온건성향인 것처럼 보이는 것 뿐이다. 미국 내에서도 논란이 많은 Citizens United 사건, 그리고 투표권리법(Voting Rights Act)의 제4b조항을 위헌판결 내린 Shelby County v Holder(셀비 카운디 대 홀더) 사건의 다수에 대법원장이 있었음을 잊으면 안 된다. 큰 법의 조그만 한 조항을 위헌판결을 내린 게 무슨 문제냐며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이게 4b조항이라는 것이다. 투표권리법에는 역사적으로 투표권리에 있어서 차별을 해 온 주 또는 카운티의 경우 투표권과 관련된 법을 발효하고자 할 때 연방 법무부에게 미리 허가(pre-clearance)를 받아야 했다. 이는 투표권리법 특별 조항(special provision)에 명시되어 있는 것이다. 4b는 어떻게 저 허가 과정을 거쳐야 하는 카운티 및 주를 선정하는가를 공식을 명시한 조항이다. 즉, 이게 없다면 특별 조항에 있는 모든 법 자체를 적용할 수 없는 투표권리법의 척추 또는 심장과도 같은 조항이다. 즉, 이게 위헌판결이 났기 때문에 남부 주들이 논란이 되는 Voter ID 법(가난한 사람들, 노인들, 학생들, 소수인종들 같이 투표소에 필요한 ID를 얻기가 쉽지 않는 이들을 투표하기 어렵게 하려는 보수 측의 전략이다.)을 맘대로 통과시켜도 연방 법무부에선 제동을 걸 수가 없게 된다는 것. 성향에 맞춰 5-4로 결정된 이 사건 덕분에 투표권리법은 사실상 식물인간이다.
  24. [24] 특히 전자의 경우는 캐스팅 보트였던 엔서니 케네디 대법관이 일찌감치 위헌쪽으로 기울어져서 위헌판결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이 되었지만 예상치 못한 보수성향의 로버츠 대법원장이 사법소극주의를 이유로 합헌쪽에 표를 던졌다.
  25. [25] 당연 보수주의자들은 대법원장에게 통수맞았다는 반응을 보였고, 2012년 오바마케어 보험의무가입 여부 판결을 내고 나서는 로버츠 대법원장 위키 페이지가 반달크리를 먹었다. 배신자 로버츠라던지, 겁쟁이 로버츠라던지.(…) 이건 2015년 6월 26일에 주 동성결혼 금지법 위헌 판결 다수의견을 쓴 케네디 대법관도 피할 수 없었던 운명이었다.
  26. [26] 일부 한국 언론에서는 합헌 여부라고 적었지만, 이건 2012년 NFIB v. Sebelius 사건과는 달리 법문 해석(statutory interpretation)이 중점이었기 때문에 합헌 여부를 가린 것이 아니다.
  27. [27] 부인은 백인이다.
  28. [28] 변호사인 테드 올슨은 "권리장전은 투표에 부치라고 있는 게 아닙니다."(You don't put the Bill of Rights to vote.) Faux Fox News 인터뷰에서 나온 말이다. 진정한 보수라면 동성결혼 합법화에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9. [29] 반대의견을 벤치에서 읽는 것은 다수의견에 매우 강하게 반대한다는 뜻이다.
  30. [30] 예: "Ask the nearest hippie"(근처에 있는 히피에게 물어봐라.(…))", "pure applesauce"(말도 안 되는 개소리. Applesauce는 baloney, 즉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등
  31. [31] 린지 그레이엄 의원은 보수성향이지만 진보성향의 대법관인 소토마요르와 케이건 대법관 지명에 찬성표를 던지 몇 안 되는 공화당 의원 중 하나였다.
  32. [32] 반면 토머스와 스컬리아는 이념적 순수성을 더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협상을 하지 않으려 든다. 협상을 해서 자신이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차선의 결과를 얻으려 했던 윌리엄 브레넌 대법관과는 대조적이다.
  33. [33] 스컬리아는 이걸 보고 가짜 사법소극주의(faux judicial restraint)라고 비꼰 바 있다.
  34. [34] "jolt to the legal system"라는 표현을 썼다.(4분 35초 전후에)
  35. [35] 흑인에 대한 대표적인 편견 중 하나로 인종차별 반대에 앞장서는 흑인들을 보면서 다른 이슈에서도 매우 진보적일 거라는 생각이 있는데 인종차별에 대한 부분을 제외하곤 보수적인 성향의 흑인들도 많다.
  36. [36] 52대 48로 지명 통과. 그 다음은 닐 고서치 대법관으로, 54 대 45로 통과되었다. 그 다음은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으로 58대 42이다. 이전에는 가장 아슬아슬하게 인준받은 대법관이라 서술되어 있었으나, 이젠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지명한 브렛 캐버노가 역시 성추문 때문 50 대 48로 겨우겨우 통과되었다.
  37. [37] 다수: 케네디, 로버츠, 토머스, 브라이어, 얼리토. 반대: 스컬리아, 긴즈버그, 소토마요르, 케이건. 굵은 글씨로 쓰여진 대법관은 의견 집필자이다. 수정 4조 관련 사건에서는 로버츠 대법원장-브라이어 대법관-얼리토 대법관 콤보(+ 가끔씩 토머스나 케네디가 끼기도 한다)가 심심찮게 보이는 편이다.
  38. [38] 지금은 해체되었지만 해체되기 전까진 프린스턴 측에서도 골칫거리로 여겼다고 한다.
  39. [39] 소토마요로와 긴즈버그는 무효화시킬 것을 주장, 나머지 여섯은 무효화 되면 안 된다고 주장. 브라이어는 보통 affirmative action에 호의적인 입장이지만 이건 민중의 뜻이기 때문에 존중되어야 한다는 입장에 섰다. 케이건은 오바마 정부 때 송무차관으로 참여한 경력이 있어서 심리에 참여하지 않았다.
  40. [40] 반대의견을 벤치에서 읽는다는 건 다수의견에 강하게 반대한다는 걸 의미한다.
  41. [41] 본래는 5-3으로 affirmative action 정책이 위헌 판결 났을 거라고 했다. 보수성향+케네디 vs 긴즈버그, 브라이어, 소토마요르. 케이건은 법무차관으로 일한 경력이 있으므로 심리에 참여 불가.
  42. [42] 하지만 수정헌법 제1조 판례 중 하나인 Snyder v. Phelps에서는 발언의 자유에 찬성하는 표를 던졌다. 이 판례에서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진 대법관은 케이건이 아닌 새뮤얼 얼리토.
  43. [43] 당장에 수정헌법 제 1조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내용이다.
  44. [44] 연방판사 지명 토론을 끝내고 지명 찬반 투표로 넘어가기 위해선 과반이 아닌 상원의원 60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2013년 당시 상원 다수당이었던 민주당이 연방 항소법원 판사 지명 통과를 위해서 이걸 썼고, 2017년에는 소수당이 된 민주당의 필리버스터를 씹고 닐 고서치 지명 찬반 투표로 넘어가기 위해서 공화당이 썼다.
  45. [45]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은 인디애나의 조 도널리, 노스다코타의 하이디 하이트캠프, 웨스트버지니아의 조 맨친 3명이었다. 이들의 지역구는 공화당 초강세 지역인데다 이 셋은 2018년에 재선이 걸려 있어 유권자의 분노를 사지 않기 위해 찬성표를 던졌다.
  46. [46] 존 매케인을 제외한 공화당 의원 51명 전원 및 민주당 의원 3명. 매케인은 당시 뇌종양 투병 중이었던 탓에 지역구인 애리조나로 내려가 요양 중이었다. 결국 1년이 조금 지난 뒤 사망.
  47. [47] 50-48. 원래는 51-49, 즉 반대 49표였으나, 모종의 이유로 48표가 되었다. 그 이유는 후술할 브렛 캐버노 대법관에 대한 설명 참조. 클래런스 토마스 대법관은 찬성 52표를 얻어, 찬성률로 따지면 브렛 캐버노가 단연 최저.
  48. [48] 52-48. 찬성률은 토마스 대법관이 조금 더 높다.
  49. [49] 공화당 51명 중 딸의 결혼식 문제로 불참한 몬태나의 스티브 데인스, 기권표를 던진 알래스카의 리사 머코우스키 의원(청문 종료절차(cloture) 표결에는 반대표를 던졌다. 본 인준표결에도 반대표를 던지려 했으나, 전술한 스티브 데인즈 의원이 불참함에 따라 인준 부결은 막고자 기권표를 대신 던졌다. cloture 표결은 51-49로 통과되었으며, 머코우스키를 제외한 공화당 50인 전원과 민주당 조 맨친 의원이 찬성하고, 맨친을 뺀 민주당 48인 전원과 머코우스키가 반대했다.)을 제외한 49인에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민주당 조 맨친 의원(웨스트버지니아는 아주 유명한 공화당의 텃밭이다. 트럼프가 20%p 넘는 큰 격차로 승리한 지역. 우리나라로 치면 TK에서 민주당 인사가 개인기로 당선된 꼴이다. 맨친 의원은 올해 재선이 걸려 있어 친트럼프 유권자들의 분노를 사지 않기 위해 찬성표를 던졌다. 역시 공화당 텃밭인 노스다코타의 하이디 하이트캠프 의원도 올해 재선이 걸려 있는데, 캐버노 인준에 반대표를 던진 탓에 결국 낙선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이 찬성했으며, 맨친을 제외한 민주당 48명 전원은 반대.###
  50. [50]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개인적인 승리이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브렛 캐버노가 앞으로 있을 Gamble v. United States에서 주 정부의 주권과 일사부재리의 원칙 중 어떤 것이 합헌인지 결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세한 건 하위 항목 참조.
  51. [51] 훗날 이 사람의 손자가 되는 존 마셜 할란 2세 또한 연방 대법관으로 재직했다.
  52. [52] 그러나 훗날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워렌 대법원장을 임명한 것을 인생 최악의 멍청한 결정이라고 회고했다…
  53. [53] 세계 2차대전때 재미 일본인, 일본계 미국인들은 수용소로 강제 이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 얼 워렌 이였다. 그 정도로 보수적이였는데 내린 판결은 누구보다도 진보적이였다.
  54. [54] 흔히 'Brown v. Board of Education'으로 약칭한다.
  55. [55] 현재 가치로 약 10만 5천 달러
  56. [56] 로큰롤 광팬이었던 그는 특히 비틀즈와도 인연이 깊었던 인물이며, 그들에게 LSD를 권했던 인물 중 하나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57. [57] 그는 LSD를 비롯한 마약류에 대해 사람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마약을 통한 새로운 경험과 자아의 확장을 권장하여 훗날 리처드 닉슨 대통령으로부터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자'라는 소리도 들었다.
  58. [58] 지금은 스페인어식으로 marijuana로 표기가 굳어졌지만 당시에는 이 발음의 영어식 표기인 marihuana가 더 일반적이었다
  59. [59] 미국 판결문에 곧잘 등장하는 Roe나 Doe는 본명이 아니고 우리말의 ‘모모’에 해당하는 말이다. 소송당사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을 때 사용하는 익명의 성인 것이다. Roe는 보통 여성에게, Doe는 보통 남성에게 사용된다.
  60. [60] 이 당시 텍사스주 낙태법은 당시 대부분의 미국 주들이 채택하고 있는 전형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임신상태의 계속이 산모의 생명에 치명적일 때를 제외하고는 낙태를 전면적으로 금하고 있었던 것이다.
  61. [61] 총기를 소유하려는 시민은 집안에서만, 그것도 분해된 상태에서 소유가능
  62. [62] 그러나 트럼프가 스스로를 사면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는 있지만 진짜 사면하면 큰 역풍과 탄핵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가능성은 낮다.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도 트럼프가 뮬러를 해임하거나 사면권을 남용한다면 대통령직이 끝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트럼프의 변호사 루디 줄리아니도 트럼프가 자신을 사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63. [63] "The court’s decision was narrow, and it left open the larger question of whether a business can discriminate against gay men and lesbians based on rights protected by the First Amendment." 즉 법원의 판결이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건 아니고, 기업이 제1수정조항 권리를 이용해서 동성 커플들을 차별할 수 있는지 여부는 결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64. [64] 다수의견도 종교적이나 철학적 신념을 이유로 차별을 할 수 없다고 강조하였다. ("Nevertheless, while those religious and philosophical objections are protected, it is a general rule that such objections do not allow business owners and other actors in the economy and in society to deny protected persons equal access to goods and services under a neutral and generally applicable public accommodations law. ")
  65. [65] 이게 왜 기행이냐면, 휴회임명이 되었기 때문에 상원에서 인준을 못 받으면 금방 짤릴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속으로 인종차별은 반대했지만 남부 민주당원의 지지가 필요한 걸 잘 알고 있었던 얼 워렌은 정식으로 임명동의안이 상원을 통과하기 전까진 굳게 함구하고 있었던 것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행보였던 것.
  66. [66] Roger Brooke Taney. 테이니라고 발음할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발음은 터니라고 한다.
  67. [67] 드레드 스콧은 미육군 군의관인 존 에머슨의 노예였다. 주인인 존 에머슨의 부임지를 따라 노예제도가 금지된 일리노이 주와 미네소타 주에서도 오랫동안 거주를 하였다. 존 에머슨이 죽자 드레드 스콧은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로 돌아와 미망인 에머슨 부인을 상대로 자신이 12년 동안 자유 주에서 자유를 누려 합법적인 시민권을 지녔다며 자유인임을 선언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한다. 노예제를 반대하는 북부 주 판사와 노예제를 옹호하는 남부 주 판사들 사이에 대립이 첨예하였고, 이에 연방 대법원은 메릴랜드의 노예주였던 로저 토니 대법원장이 다수의견을 작성하여 흑인은 미국시민권을 가질 수 없으며 소송 능력이 없으므로 연방법원에 소를 제기할 권리가 없다고 판시하였다. 노예는 재산이며, 따라서 주정부는 개인의 생명과 자유, 재산을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미국 사법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판결로 평가된다. 이 판결 후 미망인 에머슨은 재혼을 하였고, 새 남편은 노예반대론자여서 드레드 스콧을 에머슨에게 팔았던 블로 가문에 다시 넘겨주었고 블로 부부는 그를 노예에서 해방시켜주었다.
  68. [68] 대법관 중 가장 늦게 들어온 대법관. 합의 때 문 열기, 합의 내용 기록, 투표 기록, 티/커피 준비 등 잡일(…)을 해야 한다.
  69. [69] 휘트먼 대학 졸업 후 하버드 로스쿨에 합격했으나 돈이 없었기에 일하면서 다닐 수 있는 컬럼비아 대학교 로스쿨로 진학했다. 기차표를 살 돈이 없어서 워싱턴 주에서 뉴욕까지 기차에서 양들을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갔다. 뉴욕에 도착해선 동전 몇개 밖에 없어서 fraternity(대학 친목조직) 형의 집에서 자야했다.
  70. [70] 그러나 Griswold v. Connecticut에서 그는 결혼의 존엄성과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Marriage is a coming together for better or for worse, hopefully enduring, and intimate to the degree of being sacred.”
  71. [71] 윌리엄 O. 더글라스, 펠릭스 프랭크퍼터, 로버트 잭슨, 휴고 블랙의 인생을 노아 펠드먼의 Scorpions이 흥미롭게 다룬다.
  72. [72] 반면 뉴딜을 합헌 판결 내리려 했던 리버럴한 성향의 대법관 셋(벤자민 카르도조, 루이스 브랜다이스, 할란 피스케 스톤)은 "The Three Musketeers"라고 불렸다고 한다.
  73. [73] 동료 대법관인 피어스 버틀러와 윌리스 반 데반터 또한 반유태주의자였다. 대법원에 유태인 너무 많이 임명하지 말라고 대통령에게 서한까지 보내기까지 했다. 이 둘과 맥레이놀즈의 차이는 전자의 경우 본인의 반유태주의를 겉으로 나타내려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74. [74] 나이가 많은 대법관 한 명 당 대통령이 공석 여부에 상관없이 대법관을 최대 6명까지 추가 임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 즉 자신이 임명한 대법관을 더 앉혀서라도 뉴딜 정책을 밀어붙이려고 한 것이다.
  75. [75] 사실 이게 통과가 된다면 공화당 민주당 양쪽에서 자기 입맛에 맞는 법원을 만들기 위해 멋대로 판사 수를 늘리거나 줄이는 게 허용되는 전례를 만들게 되기 때문에 민주당에서도 이건 너무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76. [76] 미국 격언인 "A stitch in time saves nine"을 살짝 바꾼 말이다. 미리 한 번 꼬매면 나중에 아홉 번 꼬맬 필요가 없다는 맥락의 격언으로 문제가 생기기전에 미리 막는 게 낫다는 뜻이다. 합헌여부부터 의심되는 저 법안이 통과되기 전에 딱 맞춰서 친뉴딜 성향의 판결을 내놓았으니 "9명의 대법관을 구한" 스위치라고 보여진 것이다.
  77. [77] 앤토닌 스컬리아 전 대법관은 자신은 originalist이지 strict constructionist는 아니라고 밝혔었다.
  78. [78] 일부 학자는 블랙을 originalist라고 보는 거에 반대하기도 한다. 단 권리장전을 쓰여진 그대로("literal")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strict constructionist"라고 분류되기도 한다. Originalism과 strict constructionism의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77] 이거에 대해 안다면 추가바람
  79. [79] 저 두 사법철학은 보수 성향 대법관들이 지지하는 이론이다. 그런데 휴고 블랙은 리버럴 성향으로 분리되었다는 건 아이러니.
  80. [80] 후에, 특히 대법원이 Brown v. Board of Education 사건을 다룰 때 이 과거를 정리하느라 고생이 심했다.
  81. [81] 서열에선 대법원장이 무조건 제일 위이기 때문에 자신이 다수에 있으면 집필자 지정권은 대법원장이 갖게 된다.
  82. [82]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편에 자주 서곤 했던 스티븐스 대법관도 성조기 훼손 처벌 조항에 있어서는 일관적으로 합헌을 주장해 왔다.
  83. [83] 이 중 연방대법관으로서 같이 일한 대법원장은 워런 버거, 윌리엄 렌퀴스트, 존 로버츠 이렇게 셋이다. 60년 중 연방대법관으로 일한 기간은 1975년부터 2010년까지 35년간이다.
  84. [84] 정작 본인은 당시에 Chevron이 그렇게 큰 획을 그을 줄은 전혀 몰랐다고 하버드 로스쿨에 방문했을 때 말했었다.
  85. [85] Texas v Johnson 사건 구술변론에서도 Johnson 측의 변호사가 나왔을 때도 화가 나는 걸 숨기기 힘들어했다고 한다. 본인이 2차 세계대전 베테랑이었던 경험이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있다.
  86. [86] 의견을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대법관이 있을 경우엔 어느 대법관에게도 집필할 권한을 두 번 주지 않았고, 이 원칙도 자기 자신에게 칼같이 적용했다고 한다. 의견 집필하는데 시간을 질질 끌었던 해리 블랙먼 대법관도 윌리엄 렌퀴스트 아래서는 마감기한에 맞춰서 집필 끝내야 했다고 한다.
  87. [87] 보안을 위해서 내부 메일 시스템을 쓴다고 한다. 합의 과정과 의견 집필은 발표 이전까지 철저한 비밀에 부쳐진다. 로클럭이 발표 이전에 의견에 대해 미리 불었다가는 사실상 법 커리어에 종지부를 찍는 수준의 징계가 내려질 정도이다.
  88. [88] 대법관으로 있다가 대법원장으로 올라갔다.
  89. [89] 그는 아주 솔직하게 학벌을 중시한다고 말했다: "By and large, I’m going to be picking from the law schools that basically are the hardest to get into. They admit the best and the brightest, and they may not teach very well, but you can’t make a sow’s ear out of a silk purse. If they come in the best and the brightest, they’re probably going to leave the best and the brightest, OK?” 그러나 사실 학벌은 대법관이 되기 전 하버드 로스쿨 학장이었던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이 제일 많이 보는 것 같다. 재임 후 2015년까지 케이건이 임용한 24명의 재판연구관 중 1명 빼고 모두 하버드, 예일 혹은 스탠포드 로스쿨 출신이었다. 옛날에 호러스 그레이 대법관과 올리버 웬델 홈즈 대법관은 오로지 하버드 로스쿨 출신만 재판연구관으로 선발했었다.
  90. [90] 대체로 Drudge Report 같은 보수언론에서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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