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와 미츠하루

이름

미사와 미츠하루(三沢光晴)

생년월일

1962년 6월 18일

사망일

2009년 6월 13일

신장

185cm

체중

110kg

출생지

일본 사이타마 현 코시가야 시

피니쉬 무브

에메랄드 플로전
타이거 드라이버[1]
타이거 드라이버 91[2]
엘보 어택
타이거 수플렉스

테마곡

스파르탄 X (쾌찬차 메인 테마 음악 어레인지)

별명

초세대의 기수[3]
미스터 삼관
엘보우의 귀공자,[4] 방주의 맹주
에로 사장[5]
언터쳐블
좀비 미사와

1. 개요
2. 학창시절
4. 사천왕 시대
6. 사망
7. 에피소드
8. 기술
9. 둘러보기

1. 개요

"지방으로 가면 타이거 마스크 2세였던 미사와, 초세대군으로 점보 츠루타와 싸우던 미사와,

그리고 텔레비전의 프로레슬링의 중계가 충실했던 시절의 미사와 미츠하루를 보러 오는 관객들이 있어.

그런 사람들이 1년에 한번밖에 지방에 오지 않는 프로레슬링 흥행을 보러 오는데, 만약 내가 나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생각하겠어?"

일본프로레슬러.

1990년대 전일본 프로레슬링(全日本プロレス)의 사천왕[6]이자 일인자로 활약했으며, 자이언트 바바 사후 단체를 떠나 2000년 프로레슬링 NOAH를 창단했다. 이후 사장겸 선수로서 프로레슬링계를 장악한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레전드이자 왕도 프로레슬링의 상징.

2009년 6월 13일에 시합 도중 부상(경추골절)을 당해 47번째 생일을 불과 일주일 남짓 남겨두고 생을 마감했다.

2. 학창시절

중학생 때 프로레슬링 중계를 보고는 자기가 더 뛰어나게 할 수 있다고 자부하며 장차 프로레슬러가 되는 꿈을 품었다. 중3때 담임과 진로 상담 때 프로레슬러를 고집해서 담임이 아마추어 레슬링 명문고에 넣어줬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운동신경이 탁월해서 중학 시절엔 체조부에서 활동했는데, 그 덕에 프로레슬러가 된 뒤 링 위에서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여줬다. 고등학교에선 레슬링부에 가입했고, 아마추어 레슬링에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당시 "올림픽 출전도 가능하다"는 평가를 들었지만 거부하고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단한다. 당시 레슬링부 1년 후배가 훗날 최고의 라이벌이자 싸우는 연인이란 애칭이 붙을 정도로 숱한 명시합을 벌인 "데인저러스 K" 카와다 토시아키였다.

고교 2년 때 학교를 때려치우고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단할 각오로 찾아갔으나, 전일본 에이스이자 대학을 나왔던 점보 츠루타를 만나 '고등학교 졸업하고 와도 충분하다'는 소리를 듣고 단념했다.

3. 전일본 프로레슬링 입단

고교 졸업 후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단한 미사와 미츠하루는 뛰어난 레슬링 실력과 체조를 기반으로 하는 유연성, 천부적인 센스 등으로 사장 자이언트 바바의 눈에 들었다. 당시 연습생 급료는 5만엔이었는데 특별히 미사와 미츠하루만 7만엔을 준다거나, 멕시코 해외 원정이 걸려 있던 루 테즈배 쟁탈 리그전에서 부상으로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자이언트 바바의 백줄 특별 후원으로 멕시코 원정을 가기도 했다.

멕시코에서 한창 경험을 쌓던 미사와 미츠하루는, 돌연 자이언트 바바의 호출을 받고 몰래 귀국해서 동료인 카와다 토시아키와 함께 훈련을 받았다. 당시 신일본 프로레슬링(新日本プロレス)에서 199승 2무 1패를 기록한 주니어 헤비급의 전설인 초대 타이거 마스크가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한 뒤 판권[7]을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사들였고, 미사와 미츠하루에게 타이거 마스크 2세라는 엄청난 기믹을 부여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킥 기술은 미사와 미츠하루보다 오히려 연습상대였던 카와다 토시아키가 크게 늘었고, 이후 카와다의 스타일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주니어 헤비급의 본좌로 군림한 초대 타이거 마스크처럼 미사와 미츠하루도 타이거 마스크 2세 초반에는 주니어 헤비급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별 재미를 보지 못했고, 결국 부상으로 결장한 사이 체중을 대폭 늘려 헤비급으로 전향한다. 그제야 비로서 '전투기'라는 평가를 받았던 타이거 마스크와 달리 '중폭기'라는 별명을 얻으며 타이거 마스크 2세가 나름대로 히트를 치게 된다.

멕시코에서 활동할 당시 선배가 택시를 드롭킥으로 세워라하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드롭킥을 날렸는데 택시를 뛰어넘었다는 말을 듣고 혹은 멕시코에서 국제전화로 자이언트 바바와 대화하던 도중 바바가 너 탑 로프에 올라갈 수 있냐?하고 묻자 하고 답했더니 바로 뽑았다는 등 여러 일화가 루머로 돌았다.

미사와 미츠하루는 자기 스타일에 맞지도 않는 타이거 마스크 2세로 계속 활동하다가 결혼을 하면서 정체를 슬쩍 밝혔고, 결국 1990년에 선수들이 대규모로 탈단하던 상황에서 태그 경기를 벌이는 도중 갑작스레 카와다 토시아키의 도움을 받아 마스크를 벗어던지면서 만천하에 자신의 정체 '미사와 미츠하루'를 밝혔다.[8]

마스크를 벗은 이후 엘리트 코스를 밟는다. 미사와 미츠하루란 이름으로 활동한 직후 지금도 '일본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강력한 사나이'로 회자되는 점보 츠루타한테 핀폴승을 거두는 이변을 일으킨다. 비록 롤업으로 따낸 승리였지만 당시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에이스이자 당대 최강의 외국인 용병들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천하무적 점보 츠루타를 상대로, 아직은 신인에 불과한 미사와 미츠하루가 승리를 거뒀다는 것에서 엄청난 일이었다.

당시 시대상황은 '신인류'라고 표현되던 개성 넘치고 자기 할 말은 확실히하는 일본의 신세대들이 문화적 아이콘으로 대두되어 신인류 붐이 폭발하던 시기였고, 타이거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당당히 톱을 노리겠다고 선언하던 미사와 미츠하루의 모습에 신인류들이 그야말로 엄청난 지지를 보냈다. 이러한 분위기는 경기 전부터 열광적인 미사와 콜과 함께 전일본의 에이스이자 80년대를 상징하는 기성세대 최강의 프로레슬러 점보 츠루타보다, 미사와 미츠하루의 입장에 더 많은 환호성을 보냈다.

결국 미사와 미츠하루가 점보 츠루타를 이긴 대이변 후, 카와다 토시아키와 코바시 켄타의 무등을 타고, 현장 관중들의 그야말로 광적인 환호와 지지를 받는 모습은 기성세대에 도전하는 신인류의 대표로 그의 위치를 각인시켰으며, 시류에 맞춰 '초세대군'이라는 스테이블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그 이후 초세대군(超世代軍)이라는 당시 최고 신인들로 구성된 스테이블을 결성하여 리더로 활동한다. '점보를 이긴 사나이'라는 칭호는 타이거 마스크 시절 미드카더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미사와 미츠하루에게, 단체의 에이스로 거듭날 수 있는 바탕을 깔아주었고, 3년 뒤 점보 츠루타와 대등하게 싸울 정도로 강력했던 외국인 선수 '불침함' 스턴 한센을 꺾고 생애 처음으로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정점인 삼관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한다.

4. 사천왕 시대

1990년대 전일본 프로레슬링은 미사와의 시대였으며, 당시 전일본 사천왕 가운데 일인자는 자타공인 미사와 미츠하루였다. 라이벌로 꼽힌 카와다 토시아키, 코바시 켄타 등은 미사와 미츠하루에게 승리를 거두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카와다가 미사와한테 싱글전에서 첫 승리한 건 데뷔 15년만인 1997년 4월 19일이었다. 그나마 미사와 미츠하루가 전에 코바시 켄타와의 30분 무승부 경기를 치루고 나서 파김치가 된 상태에서 거둔 승리였다.[9] 코바시 켄타는 2000년 4월 15일에 처음으로 미사와 미츠하루를 꺾는 데 성공했다(...). 상대 전적은 압도적으로 미사와 미츠하루가 높을 정도로, 사천왕으로 불리기는 했지만 미사와와 다른 세 선수의 위상에는 그야말로 넘사벽의 차이가 있었다.

카와다 토시아키는 미사와 미츠하루를 꺾기 위해 삼관 파워밤[10]이라는 극악한 기술을 썼고, 코바시 켄타는 궁극 오의인 버닝 해머를 미사와 미츠하루에게 처음으로 선보였다.

미사와 미츠하루를 필두로 한 사천왕- 아키야마 준의 성장으로 훗날 5강 -의 경기력은 당대 전세계 최고였으며, 상대의 위험천만한 기술을 끝까지 받아내는 '접수의 미학'을 극대화시킨 시대였다. 이 중에서도 정점은 단연 미사와 미츠하루로, 죽는 게 아닐까 싶은 수직낙하식 필살기를 극적효과를 최대한 높이며 받아냈으며, 모든 기술을 가장 완벽하고 깔끔하게 접수하는 프로레슬러로 명성을 떨쳤다. 전성기 시절 '상대가 기술을 쓰면, 매트에 닿을 때 탕! 하는 소리가 완벽하게 하나로 모여지는 건 미사와 뿐'이라는 평을 받았다.

단순히 한 단체의 일인자일뿐만 아니라 경기 내용면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경기를 선보였다.[11] 1998년 코바시 켄타와의 삼관 헤비급 챔피언전에서는 자이언트 바바가 눈물을 흘릴 정도로[12] 격렬한 시합을 선보였고, 1999년에 카와다 토시아키와 벌인 삼관 타이틀전은 9일 뒤 세상을 떴을 정도로 건강이 나빴던 자이언트 바바가 생애 마지막으로 관람했을 정도다. '미스터 삼관', '왕도의 상징'이라 불리며 절대적인 강자로 군림했으며, 자이언트 바바가 세상을 뜨고 나서 자연스럽게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사장이 된다.

5. 프로레슬링 NOAH

하지만 자이언트 바바의 부인 바바 모토코와 갈등이 불거진다. 개혁을 꿈꿨던 미사와 미츠하루는 보수적인 바바 모토코와 사이가 수습 불가능할 정도로 벌어졌다.[13] 우수한 외국인 선수를 끌어들이기 위해 무리하게 큰 비용을 지불했지만 정작 일본인 선수는 푸대접하는 등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문제점[14]을 자이언트 바바의 수완으로 애써 억눌렀지만[15] 바바가 사망하고 미사와 미츠하루와 바바 모토코가 반목하면서 곪았던 문제들이 터졌다.

미사와 미츠하루는 2000년 6월에 전일본 프로레슬링을 떠난 후 처음에는 작은 규모의 단체를 만들고자 했는데, 자이언트 바바와 점보 츠루타 사망 이후 전일본 프로레슬링 선수들 사이에서 정신적 지주였던 미사와가 탈단을 결심하자 수많은 선수들이 뒤따라왔고, 이는 프로레슬링 NOAH(プロレスリング・ノア)라는 새로운 단체의 창단으로 이어진다.

절친한 후배였던 카와다 토시아키는 미사와 미츠하루를 따라 전일본을 탈단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불화설부터 시작해서, 카와다가 바바 모토코 부인의 편이었다거나 2인자를 탈피하기 위해서라는 등 온갖 루머가 있었지만 그 진위는 불명이다.

훗날 카와다 토시아키가 2005년 7월 18일에 프로레슬링 노아에서 다시 한 번 미사와 미츠하루와 경기를 벌이지만 이 한 번을 제외하고는 미사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카와다는 단 한번도 노아의 링에 오르지 못했다. 경기 이후 카와다 토시아키가 미사와 미츠하루에게 어필을 하는 마이크워크를 했는데, 평상시 미사와가 이런 것을 대단히 싫어하는지라 결국 폭발했다는 설이 가장 유명하지만 정작 카와다는 미사와를 대단히 존경했다고 한다.

프로레슬링 노아는 코바시 켄타, 타우에 아키라, 미사와 미츠하루 등 거물급 선수들과, 아키야마 준을 비롯한 신예 에이스, 그리고 마루후지 나오미치KENTA 등 젊은 주니어 헤비급 선수들로 구성되어있었다. 이들이 수많은 명경기를 만들어내면서 급속도로 성장하여 최단시간(4년) 도쿄 돔 흥행 기록을 달성했다. 당시 프로레슬링 NOAH는 데이브 멜처 뿐만 아니라 일본 내 프로레슬링 매체에서도 호평할 명경기들을 양산했는데, 미사와 미츠하루도 두 번 GHC 헤비급 챔피언을 지내면서 수많은 명경기들을 뽑아냈다. 당시 가장 유명한 경기는 2003년 3월 1일 일본 무도관에서 펼친 GHC 헤비급 타이틀 매치인 對 코바시 켄타전으로, 이 경기는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2003년 올해의 경기에 이름을 올린다.

하지만 세대교체에 계속 실패하면서 몇몇 유명한 선수들이 장기간 정상에 군림하며 팬들은 식상함을 느꼈고, 코바시 켄타의 부상 및 새롭게 밀어주던 리키오 타케시가 막장행보를 걸으면서 차츰 기세가 수그러든다.

이미 골병 몸 상태가 상당히 나빴던 미사와 미츠하루는 몇번이고 선수 일선에서 물러나려하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된다. 2006년말에 자신이 다시 한 번 나서서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오르지만 예전에 비해 눈에 띄게 떨어진 기량을 보였다. 그럼에도 상대 피니쉬 무브를 모조리 킥아웃하고 승리를 따내는 모습에 팬들은 질타를 쏟아내며 급기야 독좀비라고 농담처럼 비꼴 정도였다.

1년 넘게 GHC 헤비급 챔피언으로 활동할 때 2007년 친구에게 "이제 은퇴를 하는 게 어떠냐"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몸 상태가 악화되었다. 아키야마 준은 당시를 회상하며, 힘들단 소리 한 번 않던 미사와 미츠하루가 "요즘은 좀 힘들다"는 소리를 할 정도로 버거워했다고 인터뷰했다. 그럼에도 악착같이 버텨서 당시 미국 ROH에서 10개월 이상 승승장구하던 모리시마 타케시한테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을 넘겨주고 다시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런데 모리시마 타케시 역시 기대 이하의 기량을 펼친데다 뜬금없이 WWE에 진출한다는 말을 꺼내고는 진짜로 WWE에서 다크 매치를 치루는 등 계속 상황이 꼬인다. 결국 GHC 헤비급 챔피언 벨트는 켄스케 오피스[16] 선수인 사사키 켄스케한테 넘어가고, 프로레슬링 노아는 2007~2008년 내내 난항을 겪는다.

6. 사망

미사와 미츠하루의 사고 직후 장면.

2009년 시오자키 고가 ROH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낸 후 일본으로 복귀하고 나서도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성장하자 미사와 미츠하루는 좋지 않은 몸을 무릅쓰고, 시오자키 고와 태그팀을 맺어 밀어주기 시작한다. 하지만 신체상태가 매우 나빠진 상태에서 강행군을 지속하다보니 결국 시합 중 최악의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2009년 6월 13일, GHC 헤비급 태그팀 챔피언십을 치르던 도중 사이토 아키토시의 고각도 백드롭을 접수할 때 컨디션이 안 좋았던 미사와 미츠하루는 낙법에 실패하여 경추신경이 절단된다. 백드롭을 맞은 직후 미사와는 "몸이 움직이지 않아"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의식을 잃었다. 경기를 관람하던 수많은 팬들이 경악에 빠졌고, 많은 팬들이 미사와 콜을 외쳤으며, 당시 경기장에 있던 모든 선수가 뛰쳐나와 그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봤다. 당시 몸상태가 안 좋았던 아키야마 준은 기어서 미사와 미츠하루의 상태를 보러 가다가 선수들의 제지를 받고, 함께 구급차를 탔다고 한다.

그는 10분간 응급처치를 받았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고, 병원으로 실려갔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한 채 6월 13일 세상을 떠났으며 거의 즉사에 가까웠다.

평상시 무척 활달한 사람이었고,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거물이자 여러 프로레슬링 선수들에게 영감을 준 인물인데다가 북미나 멕시코 등지에서도 유명한 프로레슬러여서, 그의 죽음은 프로레슬링계에 충격을 주었다. WWE, TNA, ROH 등 미국 유명 프로레슬링 단체에서 유감을 표명했고, 당시 거의 모든 일본 프로레슬링 단체가 흥행을 시작하기 전에 미사와 미츠하루 추모식을 거행했다.

미사와 미츠하루 사후 그의 '고별식'에 추모행렬이 2km 넘게 이어졌으며,# 추모흥행 당시 꽃다발이 산처럼 쌓였고, 미국과 일본 등지의 수많은 프로레슬러들이 인터넷이나 언론을 통해 미사와의 죽음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CM 펑크의 경우 손목 보호대에 'MISAWA'라는 이름을 쓴 채로 경기를 뛰었다.

그는 2009년에 은퇴할 예정이었고, 1990년대 경쟁단체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에이스였던 무토 케이지와 두 번째로 태그 매치[17]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얘기는 수많은 팬들을 다시 한 번 안타깝게 했다. 카와다 토시아키는 그를 추모하기 위해 다시 한 번 프로레슬링 NOAH의 링에 섰다.

7. 에피소드

명경기를 많이 배출한 위대한 프로레슬러이고, 링 위에서 웃는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에로한 농담을 엄청 잘했다고 한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에로사장'이다. 얼마나 심했으면 섭외부장 나카타 류가 이미지 버린다고 버라이어티 쇼 등에 출연하는 것을 금지했다고 한다.

또 만화를 아주 좋아해서 심부름꾼 출신이었던 마루후지 나오미치는 한때 그를 위해서 편의점에서 만화를 사오는 것이 일과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런데 본인은 자신이 오덕임을 강력히 부정했다고 한다.

인덕이 많아서 전일본 프로레슬링을 탈퇴할 때 많은 전일본 소속 프로레슬러들이 미사와 미츠하루를 따라 나와서 프로레슬링 NOAH를 창단할 수 있었다. 또 프로레슬링의 제왕이라 불리는 타카야마 요시히로가 잠시 이종격투기로 외도하기 위해 프로레슬링 NOAH 탈단을 요청했을 때에는 초대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 결정전의 결승까지 진출시켜 위상도 챙겨주는 한편 프리 신분으로 노아에 몸을 담으면서 이종격투기에 나갈 수 있도록 조치를 해주었다. 그래서 이후에도 타카야마 요시히로가 프로레슬링 NOAH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사사키 켄스케의 켄스케 오피스 소속 선수들이 프로레슬링 NOAH에 출전했고, 후에 사사키 켄스케의 제안으로 나카지마 카츠히코가 NOAH 전속으로 넘어간 것도 미사와 미츠하루의 인덕과 무관하지 않다.

사망 2년 전, 친구에게 "만약 내가 링 위에서 죽게된다면 그때 상대에게 이걸 보내주길 바래"라면서 편지를 남겨두었다.

무거운 짐을 지게해서 미안해 ... 분명히 넌 날 믿고 전력으로 기술을 걸었을거라 생각해 ... 거기에 난 응하질 못했어. 신뢰를 배신한 형태가 되었어. 정말 미안해 .. 그럼에도 넌 프로레슬링을 계속해주길 바란다 ... 괴로울지도 모르지만 꼭 계속해주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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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까지도 생각한 선수에게 닿은 '미사와의 유언'이란. 사후 10년, 미사와 미츠하루가 남긴 것 (공국진 역)

그 편지를 받은 당사자인 사이토 아키토시는 10년이 지난 2019년까지도 언제나 투어 때마다 그 편지를 가지고 다닌다고 한다.

8. 기술

다양한 엘보 기술.

미사와 미츠하루의 엘보는 그의 상징과도 같은 기술이다. 간혹 미사와 미츠하루처럼 엘보를 주력으로 사용하는 다른 선수와 대전하는 경우, 그 묵직한 타격음만 들어봐도 격이 다름을 느낄 수 있다. 또한 타이거 드라이버, 에머랄드 플로전, 타이거 드라이버 91식 등을 다 쏟아붓고도 승부가 나지 않을 경우 그냥 엘보 한방으로 끝내는 경우도 많았다. 각종 슈플렉스를 맞고도 끄떡없이 바로 일어나서 달려드는 상대도 엘보 한방으로 무심한 듯간단히 잡아내기도 했다. 굉장히 단순한 기술이지만 그만의 카리스마와 노하우를 통해 설득력 있는 피니쉬 무브로 굳어진 케이스.

엘보 ###

원투 엘보

엘보 스이시더##

러닝 엘보

스피닝 엘보

롤링 엘보##

파이널 롤링 엘보

원투 엘보 + 스피닝 엘보 + 러닝 엘보 콤보

엘보 + 원투 엘보 + 롤링 엘보 콤보

엘보 + 스피닝 엘보 + 원투 엘보 + 롤링 엘보 콤보

프로그 스플래쉬 #

드롭킥

플라잉 래리어트 타격 후에 옆으로 한바퀴 도는게 전매특허이다.

저먼 수플렉스 #

엘보 드롭과 스톰핑 콤보(/w 오가와 요시나리)

타이거 드라이버 ##

미사와 미츠하루가 개발한 기술로 파워 밤의 변형기. 파워 밤의 기본 자세에서 허리가 아닌 양 팔을 잡고 하는 변형 파워 봄.

타이거 스플렉스 ##

저먼 스플렉스를 변형한 기술로 뒤에서 허리가 아닌 양 팔을 잡아 던지는 기술.

타이거 스플렉스 85

타이거 스플렉스의 변형기로 한 팔로 상대의 목을 조르고 다른 팔로 상대방의 겨드랑이 밑을 통해 목을 조르는 팔을 고정한 뒤 던지는 변형, 복합 스플렉스.

타이거 스플렉스 2003

희대의 살인기. 이 기술은 2003년 3월 1일 오직 코바시 켄타와의 대전에서 '단 한 번'만 나온 기술로, 이 경기가 있기 전에 코바시 켄타는 자기 어머니에게 "미사와가 나를 죽이더라도, 원망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하나미치(프로레슬러들이 입장문에서 링으로 들어가는 통로다. 미국과는 다르게 링과 같은 높이로 설치된다.)에서 장외 쪽으로 타이거 스플렉스를 구사하기 때문에 엄청난 낙차가 존재한다. 거기다 밑은 거의 매트리스 하나만 깔아놓은 맨땅이기 때문에 엄청 위험한 기술이다.

에메랄드 플로전 ##

미사와 미츠하루의 주력 피니시 무브로, 상대방을 보디 슬램의 자세로 들어올려 어깨에 맨 뒤 수직으로 떨어뜨리는 기술이다. 일반적인 스플렉스로 들어올린 뒤 떨어뜨리거나, 2단 링포스트에서 떨어뜨리는 설붕식 에메랄드 플로전도 있다. 원래는 피니시 무브급의 강력한 기술이었으나, 미사와 미츠하루가 말년에 나이를 먹고 힘이 많이 떨어져 각도가 많이 무뎌져서, 그 강력함을 유지하지 못하게 된 이후로 욕을 꽤 먹었다. 그리고 플로젼이라는 단어가 없는 단어(...)인지라, 북미에서는 발음이 비슷한 '퓨전'이라고 부른다.

에메랄드 플로젼 개(改)

브레인 버스터(=수플렉스)로 들어올린 다음 떨어트리는 개량형 에메랄드 플로젼.

타이거 드라이버 91

미사와 미츠하루의 봉인기다. 타우에 아키라를 상대로 처음 공개되었는데, 그 위상은 코바시 켄타의 버닝 해머나 카와다 토시아키의 삼관 파워 밤, 아키야마 준의 스타네스 더스트 시리즈와 함께 프로레슬링에서 가장 강력한 기술 중 하나로 여겨질 정도다. 기술 자체는 타이거 드라이버와 비슷하지만 들어올린 자세에서 수직으로 떨어뜨린다. 양팔이 봉쇄된 상태에서 뒷목부터 수직으로 떨어지는 기술이니 알고 대비한다고 해서 받아낼만한 사이즈의 기술이 아니다.

전일본 프로레슬링 사천왕 이외에 전일본의 코지마 사토시 정도로 사용 빈도가 적은 기술이다. 타이거 드라이버 91을 받아낼 정도라면 미사와 미츠하루가 그 실력을 제대로 인정한 경우 뿐이라는 말도 있다. 그리고 코지마 사토시에게 사용하기 전까지는 설정상으로는 에메랄드 플로전보다 약한 기술이었다고 한다.

타우에 아키라와 링 위에서 한창 싸우는 중에 생각하고 응용해 즉흥적으로 사용했다는 설이 있다. '스모를 통해 단련해서 유연한 타우에의 몸은 충분히 받아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당시 전일본 프로레슬링이 흉기만 안 들었을 뿐이지 링 위는 수직낙하 기술의 전성시대라 불렸던만큼 인간의 육체로 벌어지는 하드코어 경기라 할 만한 수준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언플용이 아닌 진실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 마티 가너가 트리플 H의 페디그리를 잘못 접수했는데, 타이거 드라이버 91처럼 들어가서 한동안 국내에서 원조 페디그리라고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9. 둘러보기

전일본 오강

미사와 미츠하루

코바시 켄타

카와다 토시아키

타우에 아키라

아키야마 준

1996년 레슬링 옵저버 명예의 전당 헌액자

레슬링 옵저버 선정 올해의 레슬러

카와다 토시아키
(1994)

미사와 미츠하루
(1995)

코바시 켄타
(1996)

코바시 켄타
(1996)

미사와 미츠하루
(1997)

스티브 오스틴
(1998)

스티브 오스틴
(1998)

미사와 미츠하루
(1999)

트리플 H
(2000)

레슬링 옵저버 선정 올해 가장 탁월한 레슬러

레이 미스테리오
(1996)

미사와 미츠하루
(1997)

카네모토 코지
(1998)

카네모토 코지
(1998)

미사와 미츠하루
(1999)

크리스 벤와
(2000)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대립

릭 플레어 vs 테리 펑크
(1989)

미사와 미츠하루 vs 점보 츠루타
(1990)

미사와 미츠하루 & 컴퍼니 vs 점보 츠루타 & 컴퍼니
(1991)

미사와 미츠하루 vs 점보 츠루타
(1990)

미사와 미츠하루 & 컴퍼니 vs 점보 츠루타 & 컴퍼니
(1991)

제프 제럿 & 제리 롤러 vs 문 독스
(1992)

레슬링 옵저버 선정 올해의 태그팀

스타이너 브라더스
(1990)

미사와 미츠하루 & 카와다 토시아키
(1991)

미라클 바이올렌스 컨넥션
(1992)

로스 그린고스 로코스
(1994)

미사와 미츠하루 & 코바시 켄타
(1995)

미사와 미츠하루 & 아키야마 준
(1996)

미사와 미츠하루 & 코바시 켄타
(1995)

미사와 미츠하루 & 아키야마 준
(1996, 1997)

오타니 신지로 & 타카이와 타츠로
(1998)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경기

1996년

6월 7일
전일본 프로레슬링

미사와 미츠하루 & 아키야마 준 vs 스티브 윌리엄스 & 쟈니 에이스

1998년

10월 31일
전일본 프로레슬링

코바시 켄타 vs 미사와 미츠하루

1999년

6월 11일
전일본 프로레슬링

코바시 켄타 vs 미사와 미츠하루

2003년

3월 1일
네비게이트 포 에볼루션

코바시 켄타 vs 미사와 미츠하루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MVP (최우수 선수상)

스즈키 미노루
(2006)

미사와 미츠하루
(2007)

무토 케이지
(2008)


  1. [1] 더블 언더훅 파워 밤
  2. [2] 더블 언더훅 파일 드라이버
  3. [3] 점보 츠루타나 자이언트 바바와 같은 구세대의 아이콘들을 상대하며 타이거 마스크의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나는 정상을 노리겠다"라고 당당이 선포하던 미사와 미츠하루가, 기존의 사회상과는 다른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길 원하는 신세대의 사회상에 맞아 떨어졌기에 이러한 별명을 얻게 되었다.
  4. [4] 엘보우로 스탄 한센이나 점보 츠루타, 베이더, 타카야마 요시히로 같이 자신보다 훨씬 덩치 큰 레슬러들을 쓰러뜨렸다.
  5. [5] 링 위에서의 과묵한 모습과는 다르게 의외로 말빨이 좋고 특히 야한 농담을 자주 했는데, TV에서도 자신의 첫경험이라든지 아내와의 부부생활 등을 신나게 얘기했다. 그리고 당시 노총각이었던 후배 코바시 켄타를 야한 농담으로 괴롭혔다고 한다.
  6. [6] 미사와 미츠하루, 코바시 켄타, 카와다 토시아키, 타우에 아키라. 훗날 아키야마 준을 포함해 오강(五強)으로 불린다.
  7. [7] 타이거 마스크는 1960년대 만화인데, 많은 인기를 얻어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했다. 1981년에 '타이거 마스크 2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면서 실제 프로레슬러 타이거 마스크도 등장시킨 일종의 콜라보레이션이었다.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초대 타이거 마스크(사야마 사토루)는 탁월한 실력을 발휘해 애니메이션 홍보를 뛰어넘어 프로레슬링계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8. [8] 결혼식 때 밝혔다지만 알 만한 소수 사람들이나 사전에 알았을 뿐 어디까지나 정체는 비밀이었다. 일반 팬들에겐 색다른 충격을 주었고,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원조 타이거 마스크를 잇는 설정이라 계속 파란색이 주가 되는 팬츠를 입었는데, 당일엔 에메랄드색 팬츠를 입고 경기를 뛰었다.
  9. [9] 이 시합은 미사와 미츠하루에게 너무 기울어져있던 두 사람의 대결의 무게추를 중간쪽으로 혹은 카와다 토시아키 쪽으로 돌리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후에도 카와다 토시아키는 1998년 5월 1일 도쿄돔이나 1999년 1월 22일의 삼관 헤비급 챔피언십 매치에서도 미사와 미츠하루에게 승리를 거두는데, 1997년 이전까지의 미사와 vs 카와다 경기에서의 경기의 주도권이 미사와 55 : 카와다 45정도의 백중세였다면(모든 경기가 미사와 미츠하루의 승리) 1998년 5월 1일과 1999년 1월 22일의 시합에서의 경기의 주도권의 비중은 미사와 40 : 카와다 60 정도로, 이전까지의 시합에 비해 상대적으로 카와다가 주도적으로 경기를 이끈 시합이다.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1990년대의 영상들을 순차적으로 보면 점차적으로 카와다 토시아키가 미사와 미츠하루와 대등해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10. [10] 파워 밤이지만 등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정수리로 바닥을 찍는다. 루 테즈가 사용했던 초창기 파워 밤과 비슷하여 간소밤(원조 파워 밤)이라고도 한다. 1999년 1월 22일 당시 카와다 토시아키가 자신의 필살기인 파워 밤을 시도했고, 이에 미사와 미츠하루는 프랑켄 슈타이너 내지 우라칸라나로 반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카와다는 허리힘으로 이것을 버텼고, 미사와는 그 상태에서 대롱대롱 거꾸로 매달린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카와다가 점프를 하며 무릎을 꿇으며 시전했다.
  11. [11] 저명한 프로레슬링 평론가 데이브 멜처가 선정한 별 5개 경기에 24경기를 올리며, 가장 많은 별 다섯개를 받았다.
  12. [12] 자이언트 바바는 드라마 '오싱'을 볼 때와 그 경기 때 딱 두 번 울었다고 한다.
  13. [13] 미사와 미츠하루의 죽음 이후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유명한 레프리이자 미사와의 둘도 없는 지인인 와다 쿄헤이는 "모토코씨는 미사와씨가 경영에 미숙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영의 부분은 본인이 맡으려 했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미사와 미츠하루가 프로레슬링 NOAH로 시대의 흐름을 개척하며 순항할 정도로, 경영이 나쁘지 않았다. 도쿄돔 단독흥행을 단체 개양 4년만에 그것도 무토 케이지를 불러서 할 수 있는 단체는 나오기 힘들 것이다.
  14. [14] 당시 미사와 미츠하루의 탈단을 배신으로 보던 점보 츠루타도 사정을 듣고나서 "미사와군의 심정을 알겠구만."이라고 할 정도였다. 점보 츠루타는 사망 전까지도 미사와와 전일본 프로레슬링을 굉장히 아끼는 것으로 유명했다. 당시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톱 무토 케이지의 1/3도 안되는 대전료를 받으며 온갖 살인기는 다 맞고 다니던 미사와 미츠하루였다.
  15. [15] 자이언트 바바가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탑일 때부터 있었던 일인데, 바바의 인망과 카리스마를 믿고 젊은 선수들이 따라왔기 때문에 단체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16. [16] 프로레슬링 단체라기보다는 선수 육성 도장으로, 사사키 켄스케의 부인인 호쿠토 아키라가 사장으로 있다. 다이아몬드 링으로 개칭한 후 규모는 작지만 켄스케 오피스 시절부터 있던 자체 흥행도 꾸준히 개최한다.
  17. [17] 2004년 도쿄돔 시합에서 처음 태그 매치로 싸웠다. 이후 무토 케이지 데뷔 20주년 기념 시합에선 같이 태그팀을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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