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성씨)

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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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고려 이전
1.2. 고려
1.4. 친일
1.5. 항일
2. 출신 인물
2.1. 조선시대 인물
2.2. 27세손
2.3. 28세손
2.4. 29세손
2.5. 30세손
2.6. 31세손
2.7. 32세손
2.8. 33세손
2.9. 34세손
2.10. 항렬 미상
2.10.1. 민씨를 예명으로 쓴 사람들
3. 가상 인물

1. 개요

본관은 여흥(驪興) 뿐이며, 여흥은 현재의 경기도 여주시이다. 시조는 민칭도(閔稱道)라는 사람인데 공문십철의 한 사람인 민자건의 후손으로 고려 초기에 중국에서 처음 건너와 정착했다고 전해지기도 하고, 여주에 있는 민굴(閔窟)이라는 동굴에서 나왔기에 민씨라고 하기도 한다. 인구는 2015년 기준으로 171,740명이며, 이 중 여흥 민씨는 159,522명이다. 나머지 본관은 모두 여흥 민씨에서 갈라져 나왔으므로, 모든 민씨는 한 집안이다. 민칭도의 증손 민영모는 두 아들이 있는데 민식의 후손이 상서공파, 민공규의 후손이 정의공파이다. 조선초기에는 상서공파에서 인물이 많이 나왔으나 후기로 갈수록 정의공파에서 인물이 많이 나왔다. 입암 민제인 집안의 비중이 크다.

실제 인구 순위는 49위 정도로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지만 가상 매체에서는 의외로 많이 보인다. 원경왕후, 인현왕후명성황후처럼 역사에 이름이 남은 여인들이 민씨이기에 등 실제 인구 빈도에 비해 비교적 접할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여자가 적은 성씨보다 이미지가 우아해 보여서인지, 가상 매체에서는 여주인공의 성씨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항렬을 철저히 지키는 집안 중 하나이고 근현대의 민씨 대부분은 시조 27~34세손 사이에 있다[1]

1.1. 고려 이전

삼국시대나 후삼국시대, 고려 전기에도 민가거 등의 민(閔)씨를 사용하는 인물들이 몇몇 있으나 이 인물들이 여흥민씨 인지는 알길이 없다. 조선왕조실록의 세종실록지리지를 보면 서흥의 토(土)성으로 민씨가 있는데 민가거의 후손들로 보이고, 영주의 토성으로도 민씨가 있는데 여흥민씨 해관지후공파로 족보에 등재는 되어있는데 조금더 고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민영모의 장자 민식의 부인이 민씨인데 마찬가지로 어느 민씨인지 알수가 없다.

1.2. 고려

이미 고려시대에 민칭도의 증손 민영모(閔令謨, 1115~1194)가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지냈고 그 후손들도 높은 벼슬에 올랐을 만큼 문벌귀족, 권문세족으로서 명성을 누렸다. 고려말에는 민제가 한 신흥 무인가문에 셋째 딸을 시집보냈는데 이때 시집보낸 딸이 후일 원경왕후, 사위가 후일 조선의 3대 국왕 태종이 되는 이방원이었다. 이방원에게는 이방간(회안대군)이라는 형이 있는데 이방간의 부인 역시 여흥민씨 판도판서 민선의 딸이다.

여말선초의 과도기에서 고려에 충절을 지킨 두문동 72현 농은 민안부와 같은 인물도 있었고, 민여익과 같이 조선의 개국에 기여해 개국공신 반열에 오르는 이도 있었다. (위에 잠깐 언급한 산청에 사는 정정한 치자항렬은 민안부의 후손일 확률이 99%이다.)

고려시대에는 왕족과 통혼이 가능한 재상지종(15개가문)에 선정되었고 이러한 전력탓인지 조선시대에도 수많은 왕후를 배출해 낸다. 정작 고려왕실과 통혼한 경우는 몇차례 없다.

1.3. 조선

중전마마를 전문적으로 배출한 희대의 명문가.

어쨌거나 조선이 들어선 이후 이방원은 당대의 명문가인 처가의 도움을 받아 왕위에 오를수 있었으나 이후 태종의 외척 정리의 과정에서 원경왕후는 가문이 풍비박산이 나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조선의 명문가로 자리잡아 조선 왕실과 여러 차례 혼인 관계를 맺었고, 많은 문과 과거 합격자(242명, 9위)와 대신들을 냈다. 당파로는 서인 노론에 속했다. 인현왕후가 이 여흥 민씨 가문 사람이다.[2]

하지만 놀랍게도 여흥 민씨 가문은 명문가에 속했으나 다른 가문들과 달리 영의정 자리를 얻지 못했지만 대신 좌의정과 우의정을 많이 배출했을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조선말에는 흥선대원군이 물러난 이후 명성황후 민씨, 순명효황후를 배출한 외척가문으로서 세도정치를 폈다. 애초에 흥선대원군이나 흥선대원군의 부친인 남연군부터 여흥 민씨와 결혼을 했었다. 남연군-흥선대원군-고종-순종까지 여흥민씨는 처가이자 외가이자 사돈이다. 이때의 여흥 민씨는 안동 김씨(장동 김씨)나 풍양 조씨 저리가라 할 정도로 극심한 민폐를 끼치며 탐관오리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훗날 을사조약 체결에 항거하여 자결한 민영환도 당대엔 탐관오리 중 한명으로 인식되고 있었으니... 민영환은 실제로 탐관오리라고 보기엔 힘들긴 하지만 국가가 망해가는 것에 대한 불만은 결국 왕조국가에서 최정점인 국왕으로 향하게 되는데, 정작 왕을 까지는 못하니까 대신에 주변 대신들을 돌려치는게 조선시대의 여론형성 과정이었다. 세도 정치 시기이니 자연스럽게 외척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이런 풍문들을 기록한 야담집에서는 만악의 근원처럼 묘사되게 된다. 특히 황현이 서술한 매천야록에서는 작심하고 명성황후를 공격하고 있다. 독립협회에 참여했던 황현의 입장에서 당시에는 이미 죽었지만 명성황후로 대표되는 온건개화파는 그 누구보다 미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갑신정변에 참여했던 급진개화파들의 제1 목표는, 대놓고 개화를 반대하던 이들이 아니라 급진개화파였다가 온건개화파로 노선을 변경한 민영익 같은 사람이었다. 내부 노선 선명성 대립이야말로 인정사정 없기 마련.

어쨌든 고종을 비판할 수 없으니 돌려친다고 쳐도 결국 고종이 만악의 근원인 건 변함이 없다 하겠다.

1.4. 친일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708명 중에 38명, 즉 17명 중 1명 정도가 민씨 집안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민씨 일가는 러시아에게 들이댔다가 나중에 거의 나라를 망치고 매국을 하고 결국 친일까지 했다. 황실 종친인 전주 이씨와 외척인 여흥 민씨는 일본의 대표적인 회유대상이었고, 여기에 잘도 넘어갔다. 죽도록 저항하다가 상해로 망명한 민영익이나, 역시 상해임시정부 망명 시도를 했던 의친왕 같은 인물은 무척이나 희귀한 사례이다. 자세한 얘기는 이 항목을 참조하자. 덕분에 여흥 민씨들은 세도정치로 유명한 안동 김씨들처럼 국사를 배울 때마다 씁쓸해한다. 우봉 이씨들도. 풍양 조씨는 세도정치 때 비교적 소극적인 행동을 한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여기서 열거한 가문들에 가려져서 존재감이 없다(...)

1.5. 항일

하지만 항일운동한 사람이 안 나온 것도 아니다. 사실 교과서에 소개되지만 않았을 뿐 독립운동에 참여한 사람은 소소하게 많다. 사실 같은 민씨라고 해도 성향과 상황은 제각각이라서(...).[3] 심지어 명성황후가 권력을 얻고 떵떵거리던 시절에도 가난하게 살아가던 민씨도 있었을 정도.[4] 다만 한국 근현대사에서 민씨 척족(戚族)의 부정적인 영향이 너무 강해서 묻히는 감이 있다.

  • 민용호 : 경상남도 산청군 출생으로, 강원도에서 의병장으로써 활동
  • 민종식 : 의병장으로 활동.
  • 민순호 : 문경에서 의병활동.
  • 민긍호[5] : 의병장으로 활동.
  • 민철훈 : 유인석 휘하에서 의병으로 활동하다 일제에게 사살당하였다.
  • 민영익 : 의견이 갈리지만 안중근 의사의 변호사 비용을 대주거나 하였다.
  • 민용운 : 3.1운동 당시 홍면이 계획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홍면이 총에 사살되는 것을 보고 격분하여 동료들과 함께 투석으로(...) 자전거를 타고 달아나는 일본 순사를 사살하였다.
  • 민영환 : 항목 참조. 을사조약에 반대하여 자결하였다. 건국훈장 중 대한민국장 수훈자이다.
  • 민충기 : 임시정부 요인으로 대한독립신문에 쓸 자금과 독립운동 군자금을 모으다 일제에 체포되었다. 풀려난 이후에도 항일운동을 계속하였다.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훈받았다.
  • 민치도 : 의병장에게 개인적으로 자금을 지원하였다. 그 뒤 임시정부에 전달할 목적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다 일제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이후 보석으로 풀려나왔으나 일제에 항거하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
  • 민형식 : 아버지가 일제에게서 받은 조선귀족 작위를 물려받았다. 이 때문에 친일파 708인 명단과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올라가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나인영 등의 을사오적 암살 시도 당시 군자금으로 1400환(1만 4천냥)을 지원했으며, 이것이 발각되어 유배 10년형에 처해졌다.[6] 이후 신민회에 가입하여 항일운동에 참여하였고 각종 신문과 학교, 학회에 자금을 대는 등 민족운동을 지원하였다.
  • 민치영 :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고 일제의 밀정을 처단하였다. 이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훈받았다.
  • 민춘기 : 일본 오사카에서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만주의 독립군과 연락을 꾀했으나 일제에 발각되어 체포당하였고, 곧 45년이 되어 일제가 패망하여 풀려났다.

그 외 다수가 있다.

2. 출신 인물

2.1. 조선시대 인물[7]

2.2. 27세손[9]

2.3. 28세손[11]

2.4. 29세손[12]

2.5. 30세손[14]

2.6. 31세손[18]

2.7. 32세손[21]

2.8. 33세손[24]

  • 민좌홍 : 기획재정부 민생경제정책관.
  • 민지환 : 탤런트. 개명 전 이름은 민승원(閔昇源).
  • 민진홍 : 아이돌, 모델.
  • 민홍철 : 제19, 20대 국회의원.[25]

2.9. 34세손[26]

2.10. 항렬 미상

2.10.1. 민씨를 예명으로 쓴 사람들

원래는 민씨가 아닌 사람들 기준.

3. 가상 인물

비디오 더빙판 한정. KBS판과대원방송판에서는 유리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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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산청의 집성촌에 가면 26세손(致자 돌림, 명성황후친척 아저씨 뻘이다.)인 할아버지께서도 정정히 살아계신다. 순조때에 승지를 지낸 민치재(1758~1813)의 생몰년을 감안하면 약 200년 차이가 난다.
  2. [2] 그렇다고 해서 다른 당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남인의 영수였던 민암도 있고 북인으로서 우의정에 오른 민몽룡도 있다..
  3. [3] 얼마나 성향이 제각각이냐면 근왕주의를 기치로 하여 의병장으로 활동한 민씨가 있는가 하면 친일파 민씨가 있고 사회주의하의 독립운동에 참여한 민씨도 있다.
  4. [4] 현재도 21세기 민씨들은 일부를 제외하면 가문과 종친에 대한 소속감이 거의 없다. 종친회, 집성촌 정도가 되면 다르겠지만...
  5. [5] 가족들은 대부분 카자흐스탄으로 피난을 갔는데, 그 후손 중 한 명이 데니스 텐이다.
  6. [6] 특사로 곧 풀려남.
  7. [7] 아래 항렬에 해당하는 조선시대 인물은 해당 항렬 항목에 기재.
  8. [8] 철종 시기 일어난 민진용의 난으로 항렬자를 '호(鎬)'로 바꿈.
  9. [9] 'O용(鏞)'[8], 'O호(鎬)' 항렬.
  10. [10] 그러니까 고종의 어머니와 아내는 민씨 집안 기준 자매 뻘이다.(...) 이모와 결혼한 고종.
  11. [11] '영(泳)O' 항렬.
  12. [12] 'O식(植)' 항렬.
  13. [13] 바로 아래 인물과는 같은 항렬의 동명이인이다. 그런데 나이 차이가 무려 118세(...).
  14. [14] '병(丙)O' 항렬.
  15. [15] 윗 단락에 기재 된 민희식의 조카.
  16. [16] 흑역사 2이다.(...) 경술국적. 이 한마디면 끝.
  17. [17] 역암공파 30세손 承자 항렬.
  18. [18] 'O기(基)', 'O규(圭)', 'O배(培)' 항렬.
  19. [19] 동명이인 조선의 관료는 증조부 뻘 된다.
  20. [20] 흑역사 3(...). 항목 참조.
  21. [21] '경(庚)O' 항렬.
  22. [22] 민경삼의 사촌동생. 단, 나이는 동갑으로 민경욱이 4달 늦게 태어났다.
  23. [23] 민경배의 형.
  24. [24] 'O홍(泓)', 'O원(源)' 항렬.
  25. [25] 형제들은 돌림자를 썼으나 본인은 쓰지 않았고, 그나마 가운데 '홍'자도 '泓'이 아닌 '洪'자를 썼다.
  26. [26] '동(東)O' 항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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