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

갈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 농담이 아니다.

Baghdad. 이라크의 수도. 현재 인구는 약 700만명이다.

1. 역사
2. 창작물에서의 바그다드

1. 역사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중심인 도시지만, 원래 그 역할은 고대 이래로 바빌론크테시폰이 수행해 왔다. 바빌론은 바빌로니아 왕국의 도읍으로 번창했고, 크테시폰은 파르티아 왕국과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도읍으로 번영했다. 651년 사산 왕조가 멸망하면서 크테시폰은 도읍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했고, 이슬람 세계로 편입된 페르시아의 수도는 다마스쿠스(현재 시리아의 수도)로 옮겨졌다.

그러다가 750년 압바스 왕조가 흥기하여 우마이야 왕조를 멸망시키고 이슬람 세계를 장악하자 압바스 왕조는 왕가의 지지세력인 페르시아인들에게 가까운 메소포타미아 일대를 중심지로 삼고 바그다드를 세웠다.

출처는 BBC 뉴스 일러스트.

압바스 왕조 치하의 바그다드는 명실상부한 이슬람 세계의 중심지로서 화려한 문명을 꽃피웠으며, 문화, 예술, 정치, 종교의 중심지로서 번영했다. 당나라 시대까지 번영한 실크로드의 한 축으로서 바그다드는 세계적 규모의 경제교류의 핵이었다. 한때는 인구가 100만 명에 달한다고 칭해질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였다. 당시 바그다드와 맞먹는 규모의 도시는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과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 뿐일 정도. 당시 시가지는 지금의 시가지보다 10배는 컷다고 한다.

그러나 10세기 이후 지역 왕조들이 분립(分立)하면서 바그다드는 점차 정치적인 영향력을 잃고 종교적인 영향력, 혹은 통합 이슬람 세계의 상징이라는 역할로 전락해 갔다.

1055년, 셀주크 제국이 바그다드를 정복하면서 1918년까지 860년에 이르는 투르크계의 통제 하에 들어갔다. 이 영향력은 강했다 약해졌다를 반복하긴 했으나, 바그다드는 이미 이슬람 세계의 중심지 역할을 상실했다. 특히 1258년 몽골의 공격으로 바그다드가 함락되고 칼리프 알 무스타심이 피살된 사건은 바그다드의 몰락에 대한 결정타였다. 이 때 바그다드는 몽골군의 약탈과 학살로 황폐화되었으며 이 후 바그다드는 종교적 상징성마저 상실했다. 거기다 칼리프는 이집트 맘루크 왕조의 통제 하에 카이로에서 선출되게 되다가 1517년 오스만 제국이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오스만 제국에 넘어간다. 이런 상태에서 1401년에는 티무르에게 정복되면서 한 차례 수난을 겪기도 했다.

1534년 오스만 제국이 바그다드와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하면서 본격적인 터키계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이 지역의 패권은 페르시아와 오스만 제국에게 자존심을 건 대결 현장이 되었다.

1916~1918년 아랍인들의 반란과 연합군의 간섭으로 오스만 제국은 이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했고, 후세인-맥마흔 협정(1915)의 약속을 무시하고 사이크스-피코 협정(1916)에 따라 영국이 메소포타미아에 대한 통치권을 장악하면서 1932년까지 영국의 신탁통치 하에 놓였다.

그러다가 1932년에 영국이 물러나면서 바그다드는 이라크 왕국의 수도로 정해졌고, 이후 공화국으로 변한 뒤에도, 사담 후세인 독재정권이 몰락한 뒤에도 새로운 이라크의 수도였지만 2003년 이후에 반군들과의 전투로 도시 곳곳에 폭탄 테러나 미군들과의 전투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현재에는 미군이 철수한 이후로 많이 줄어들었다...싶었더니 ISIL이라는 듣도보도못한 테러집단 때문에 다시 난장판이 되었다. 그나마 바그다드가 함락되네 마네 소리가 나올 정도로 ISIL 세력이 바그다드에 근접했던 2014년에 비해 2016년에는 좀 상황이 나아진 편이다.

현재의 바그다드.

2. 창작물에서의 바그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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