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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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줄거리
2.1. 시간의 흐름
2.2. 등장인물
3. 비판
4. 후속편(?)
5. 번역 문제
6. 명대사
7. 그 밖의 이야기
8. 영화
8.1. 평가
8.2. 소개
8.3. 제작 비화
8.4. 출연한 배우들의 후일담
8.5. 국내 개봉 및 방영
8.6. 고증오류?
8.7. 영화와 원작의 차이
9. 미디어 믹스
9.1. 연극
9.2. 뮤지컬

1. 개요

초판 표지

Gone With The Wind

미국소설가 마거릿 미첼이 쓴 유일한 장편소설이자 대표작. 이 한 편으로 마거릿 미첼은 세계 문학사에 한 획을 긋는 작가로 등극했다. 1936년 출판되었고 이듬해에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은 출간되기까지 매우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1929년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으나 수백여 곳의 출판사에서 모두 거절당했기에 줄곧 마거릿 미첼의 집에 묻혀 있었다. 그러다 그녀의 친구인 파커슨 부인의 권유로 원고를 맥밀런 출판사의 담당자에게 넘겨줬는데, 담당자는 처음 원고만 보고도 질려버렸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소설은 초판 출간 당시 1037쪽에 달하는 양이었고, 그게 원고가 되다 보니 분량은 트렁크 하나에 가득 찰 지경이었다. 그래서 담당자는 '다음에 보겠음' 하며 그 원고를 물리쳐버렸는데, 끈질긴 파커슨 부인은 그 담당자가 뉴욕으로 돌아가는 열차의 좌석에 이 트렁크를 놓아두고 '꼭 읽어주시죠' 라는 메모를 남겼다. 담당자는 이를 무시했는데 이번엔 또 셔틀 심부름꾼이 인편으로 메모를 전했다. 이것도 무시당했지만 그 뒤 또 전보가 날아오자 결국 담당자는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뉴욕에 도착할 때까지 그 어마어마한 원고를 읽고 당장 출판계약을 신청했다고 한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애틀랜타에서 뉴욕까지의 거리는 약 900마일 내외로, km로 따지면 1400~1500 km 내외다. 현대에도 자동차를 몰고 달리면 중간에 멈추지 않고 달리기만 해도 거의 12~13시간은 잡아야 하는데, 1900년대 초반 증기 기관차가 끄는 열차는 현대의 자동차보다 느렸다. 거기다 열차 특성상 중간역에 멈추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거의 하루가 걸리기 때문이다. 이 정도 시간이면 다 읽는 것은 별로 무리는 아니다. 물론, 재미있었으니까 더욱 그랬을 것이다. 재미있고 몰입도가 강하면 술술 읽히니까. 재미없는 책을 꾸역꾸역 읽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겠지만 시간이 엄청나게 많이 걸리는 일이 허다하다.

처음 이 소설의 제목은 마지막에 나오는 대사인 "내일은 또 다른 내일"(tomorrow is another day) (이 대사는 우리나라에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로 번역되었다. 일본에선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분다'로 번역함.)이었는데, 이 담당자가 제목을 바꿔보길 권해서 19세기 싯구에서 따온 지금의 제목이 되었다고 한다. 이유는 당시 내일이라는 제목이 들어간 책이 워낙에 많아서 이 제목으로는 주목받지 못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신의 한 수

그리고 대단한 호평을 들으며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작품으로 마거릿 미첼은 퓰리처상을 받았으며[1], 이 작품에서 주인공인 스칼렛 오하라가 마셨던 음료가 그녀의 이름을 딴 칵테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스칼렛 오하라(칵테일) 문서 참고.

한국판은 1953년에 양원달 역으로 처음 출간되었다. 저자 서문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49번째 역본이라고 하며, 그 이전에 나온 일본어판이 이미 시중에 상당히 풀려 있었다고 한다. 위의 명대사가 어떻게 번역되었는지는 해당 대사가 실린 마지막 권이 출간되지 않았기에 영원히 알 수 없다. 다만 동일 역자가 다른 출판사에서 다시 낸 판본을 보면 “결국, 내일이란 또 하나의 날이 아니냐?”로 번역했다.

여담으로 북한에서도 매우 유명한 소설이다. 자유롭게 책이 팔리는데 북한에선 미국 여성이 고달프다는 것으로 이 소설을 이해한다고 한다. 즉 미국을 까는 용도로 쓰이는 셈.[2] 물론 나온 지 80여년이 지난 소설인데다가 배경이 150여년 전 일이기에 현대인들의 인식과 차이가 엄청난 건 당연하다.

탈북자의 증언에서는 다른 면으로 여러 모로 충격을 안겨 준 소설이었다고 한다. 스칼렛 오하라라는 여성의 정열적인 면모와 그 정열을 유감없이 행동으로 옮기는 자유로운 모습에 오히려 충격을 받았다나.

2.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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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내용은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여주인공 스칼렛의 인생 역정이다. 스칼렛 오하라는 조지아주 클레이턴 카운티 존스보로 근처에 있는 타라 농장을 소유한 대농장주인 제럴드 오하라의 장녀로, 예쁜 얼굴과 매력을 능수능란하게 휘둘러 남자들의 관심과 인기를 한몸에 모으는 어장관리의 달인 16살 소녀이다. 그러나 그녀가 진심으로 사랑한 남자는 따로 있었으니, 이웃 윌크스 집안의 애슐리 윌크스였다. 그러다 애슐리가 자기 사촌 멜라니와 정식으로 약혼한다는 소식을 접한 스칼렛은 그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자 애슐리는 스칼렛을 사랑하지만 결혼은 자신과 성격이 비슷한 멜라니와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고 고백한다. 화가 난 스칼렛은 애슐리의 뺨을 때린다. 그런데 이 광경을 레트 버틀러가 본의 아니게 모두 훔쳐보게 된다. 레트 버틀러는 애슐리에게 차인 스칼렛을 놀리고, 스칼렛은 화가 나서 뛰쳐나가고 만다.

스칼렛은 애슐리와 멜라니에 대한 질투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멜라니의 오빠인 찰스의 구혼을 받아들인다. 얼마 안 가 남북전쟁이 터지고 애슐리와 찰스도 의용군에 입대하게 되는데, 찰스는 전장에 가보지도 못하고 병으로 죽어버려 스칼렛은 졸지에 딱 6주 동안 결혼 생활을 한 뒤 애까지 딸린 미망인이 된다. 그 후 스칼렛은 애틀랜타에 있는 죽은 찰스와 멜라니의 고모인 피티팻의 집에 가서 지낸다.

전쟁은 계속되고 남부는 갈수록 피폐해져가며, 일찍이 소녀시절 스칼렛에게 구애하며 친하게 지냈던 동네 청년들 대부분이 전사한다. 그리고 북군이 아틀랜타까지 밀어닥친다.[3] 북군이 애틀랜타를 포위공격해서 애틀랜타가 불타는 지경에 이르자[4] 스칼렛은 갓 출산한 멜라니를 데리고 고향인 타라 농장으로 도망친다. 이 과정에서 큰 도움을 준 것이 바로 레트 버틀러였다. 그는 찰스턴 출신의 철저한 현실주의자로, 젊은 시절 일으킨 모종의 사건 때문에 집안에서 쫓겨난 후 도박으로 연명하다가 남북전쟁을 기회로 삼아 밀수무역 및 필수품의 매점매석으로 부를 축적한 인물이었다. 스칼렛은 그를 싫어하는 한편 자신과 비슷한 현실주의적 성격에 은근히 끌리게 된다. 이미 한참 전부터 스칼렛 일가를 보살펴주던 그는 애틀랜타를 탈출하여 타라로 도망치는 중에도 스칼렛과 멜라니를 위해 온갖 일을 다 해주며, 스칼렛과 멜라니를 타라 근교까지 데려다준 뒤 스칼렛에게 작별의 키스를 남기고는 그가 그토록 증오했던 남부 정부군에 입대하러 떠난다.

타라에 돌아왔으나 그곳은 더 이상 스칼렛이 알던 안락한 장소가 아니었다. 농장은 황폐해지고, 가축은 모조리 도둑맞고, 노예들은 죄다 도망치고, 3년 동안 수확해서 쌓아둔 15만 달러 어치에 달하는 목화는 모조리 불타버렸다. 아틀랜타 포위전 동안 이 근처에서 북군과 남군의 주력이 맞붙는 전투(Battle of Jonesborough)가 벌어졌는데, 그동안 북군이 타라 저택을 사령부로 사용했던 것이다. 셔먼의 원래 방침대로라면 불태워버렸겠지만 스칼렛의 어머니 엘렌과 여동생들이 병을 앓고 있다는 이야기에 불태우는 대신 사령부로 징발해버린 것.

집이 불타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지만 집에는 옥수수 한 톨 남지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 엘렌은 장티푸스로 죽었으며, 아버지인 제럴드는 그 충격으로 정신이상을 일으킨다. 스칼렛은 여동생 둘과 의지가 되지 못하는 아버지, 거기에 멜라니와 멜라니의 아들, 주인집에 대한 의리로 끝까지 남아있던 흑인 노예 몇 명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가련한 처지가 된다. 이 과정에서 힘겹게 따두었던 얼마 안 되는 목화와 이웃들이 나눠준 가축같이 조금 남은 재산마저 북군에게 약탈당하는 등 스칼렛은 갖은 시련을 겪는다. 이 부분에서 스칼렛은 단독으로 빈집털이를 하러 가택침입한 북군 탈영병을 직접 쏴죽이기도 한다.

결국 전쟁은 남부의 패배로 끝나고 전쟁터에 나갔던 인물들도 하나둘씩 돌아오기 시작한다. 스칼렛은 전쟁이 끝났으니 모든 고생이 끝났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크나큰 오산이었다. 이른바 '재건 시대'로 불리는 북군에 의한 군정시기가 도래했던 것이다. 노예제가 폐지되고 남부의 농장주들은 과거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완전히 잃고 만다. 타라 농장도 과중한 세금으로 인해 빼앗길 위기에 처하는데, 스칼렛은 레트 버틀러가 막대한 재산가가 됐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게 몸을 팔아서라도 돈을 구해올 의향으로 애틀랜타로 향한다. 그러나 레트 버틀러는 공교롭게도 북군에 의해 수감되어 있는 상태여서 돈을 줄 수가 없었다. 실망하고 나오던 스칼렛은 마침 여동생 수엘렌의 애인인 프랑크 케네디를 마주치고 대신 그를 꼬여낼 결심을 한다. 스칼렛은 수엘렌이 새 애인을 사귀었단 거짓말로 프랑크 케네디를 속여 NTR한 뒤 그의 재산으로 타라를 지켜낸다. 스칼렛은 남편 프랑크 케네디가 잡화점을 경영하는 방식이 영 못마땅하자 프랭크가 인수할 예정이던 제재소를 자신이 가로채서 인수한 뒤 직접 경영에 나서고, 찰스가 유산으로 남긴 땅에 술집을 지어 임대하는 등 상당한 사업 수완을 발휘한다. 그러나 경영일에 바빠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홀몸으로 나다니던 스칼렛은 흑인 슬럼가에서 성추행을 당한다. 마침 과거에 타라 농장에서 일하던 빅 샘이 도와줘서 무사히 빠져나온다. KKK단에 관계하고 있던 프랑크 케네디는 스칼렛이 성추행당한 것을 보복하러 갔다가 살해당하고 만다. 그 뒤 스칼렛은 레트 버틀러의 청혼을 받아들여 다시 재혼하게 된다.

레트 버틀러는 스칼렛을 처음 본 순간부터 반해 있었고, 스칼렛을 진심으로 사랑했으나 스칼렛은 그때까지도 애슐리의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레트 버틀러에게 안길 때도 스칼렛은 그것이 애슐리였으면 하고 생각하는 지경이었으니 결혼 생활은 점차 금이 가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그들의 첫딸인 보니 버틀러가 다섯 살의 나이로 낙마해 죽은 사건이 파국에 이르는 계기가 되었다. 뒤이어 애슐리의 부인 멜라니가 사망하는데, 스칼렛은 멜라니의 죽음으로 비로소 멜라니의 선의를 깨닫고 애슐리에 대한 환상을 버린다. 동시에 자신이 레트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이미 스칼렛에게 정이 떨어져버린 레트 버틀러는 별거를 요구하고 그녀의 곁을 떠나간다. 스칼렛은 절망에 빠지지만, 여태껏 절망적인 일에 맞닥뜨렸을 때마다 생각했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다'를 마지막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5]

2.1. 시간의 흐름

  자세한 내용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연대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2. 등장인물

  자세한 내용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등장인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비판

19세기 중반 당시 남부의 생활상을 잘 버무려 묘사해낸 작품이지만, 작중에서 남부를 미화하고 당시 노예제도에 대한 비판이 없는 시각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6] 전체적으로 비춰지는 내용만 봐도 북부의 횡포에 힘들어지는 남부의 상황이 자세히 묘사되고, 자유인이 된 흑인들이 백인 여성들을 상대로 수많은 성폭력을 저지른다는 내용이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기술되는 등, 철저히 남부의 시각으로 작품이 그려지고 있다.

인종차별이나 노예제도를 옹호하거나, 남부를 정당화시키려는 주장이 직접적으로 들어간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작품 자체가 남부의 시점으로 진행되다보니 위의 요소가 큰 비판점 없이 그대로 작품 내에 녹아든 것이다. 북부측을 지지한 흑인 노예들을 게으르고 멍청해서 밭일이나 하던 하급 검둥이로 묘사하고, 성실하고 똑똑한 고급 검둥이는 노예제도가 사라진 뒤에도 주인에게 충성을 다했다는 식으로 묘사되는 부분이 많고, 전반적으로 흑인 노예들을 '아이 같아서' 현명한 백인들이 돌봐줘야 할 대상으로 묘사하며, 옛 노예 소유주이던 남부 백인들 중 일부가 자신들이 소유한 노예가 다치거나 병에 걸리면 돌봐준 것을 내세워 남부인들은 흑인 노예들을 잘 돌봐주는 인물로, 북부인들은 흑인들을 선동해서 바람을 불어넣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 무책임한 인물로 묘사하는 경우 역시 아주 많다. 뿐만 아니라 인종차별주의 범죄집단인 KKK를 자기보호를 위한 자경단 쯤으로 묘사하는 등 요즘 시각으로 보면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이 많다.

그리고 (20세기 미국의 가장 첨예한 갈등요소였던)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비판에 가려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인종 외에도 다른 계층간의 차별 문제 전반에 대해 차별적인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힘든 작품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백인 캐릭터에 대한 묘사에서도 남부의 백인 농장주 계층이 대체로 긍정적으로 묘사되는데 비해 재산이 없는 백인 쓰레기(화이트 트레시) 계층이나 농장주에게 고용되어 임금을 받고 일하는 백인(남자라면 농장을 관리하는 사무직, 여자라면 가정교사 등), 백인 소농 계층(노예를 거느리지 않고 직접 농사를 짓거나, 노예를 소유하더라도 한두명 정도만 소유한 계층), 북부 출신의 양키 등에 대한 묘사는 몹시 부정적인 경우가 많고, 명문가 출신의 인물과 그렇지 못한 인물 사이에서 혈통과 족보를 근거로 하는 차별적 경향도 상당히 강하게 드러난다.

결국 작품의 이런 차별주의적 면모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작품이 (제목에서 드러난 것과 같이) 북부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바람과 함께 사라진 남부의 문명과 사회상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 아련함을 주제로 하고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 작품 내에서도 남부 사회가 가지고 있던 모순과 문제점들에 대한 비판은 분명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러한 비판들의 초점은 당시 남부 사회의 악함 보다는 약함에 맞춰져 있는 것. 위에서는 작품 내에서 kkk단이 자기보호를 위한 자경단쯤으로 묘사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지만... 사실 kkk단은 실제로 남부의 전통과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 (초법적으로) 일어선 자경단이 맞다. 다만 현대인의 관점에서 그 전통과 가치관이 지킬 가치가 있기는 커녕 오히려 당장이라도 청산해 버려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kkk단이 범죄단체로 여겨지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남부에 대한 추억을 기리는' 부분은 남북전쟁 자체에 대한 해석에도 영향을 끼쳐서 남북전쟁 당시 남부의 명분을 어느 정도 정당화하고, 전쟁이 발생한 요인으로 당시 노예 문제 및 인종 차별의 심각성을 희석시키고 경제적 요인과 같은 부수적인 요인들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면모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는 이 소설 및 영화 뿐만 아니라, 남북전쟁을 전후한 남부를 배경으로 한 창작물 중 적지 않은 작품들이 나타내는 부분이다.

이 점에서 본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가 받고있는 비판은 영화 ,<국가의 탄생>에 대한 비판과 유사한 면이 많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국가의 탄생>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보다 인종차별 문제에서 훨씬 심한 비판을 받고 있는 작품이지만, 사실 감독인 그리피스 자신은 당대 기준으로는 딱히 인종차별적 성향이 두드러지는 인물도 아니었고, 오히려 어떤 측면에서는 역시 당대 기준에서 오히려 탈 인종차별주의적인 면모까지 보여준 인물인 것. 이는 결국 두 작품 모두 '사라져가는 미국 남부의 문명, 남부 사회에 대한 향수'를 주제로 하고 있고, 따라서 '미국 남부 사회의 가치관과 전통을 위협하는 것' 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남북전쟁 이전의 미국 남부 사회는 영화의 오프닝에서 직접 언급되는 것처럼 '기사도가 살아있는 마지막 땅' 이고 '용감하고 신사적인 기사들과 아름다운 귀부인, 주인과 노예를 마지막으로 볼 수 있던 땅', 즉 전근대적 귀족주의가 최후의 맹위를 떨치던 땅이라는 점에 있다. 작가 자신은 남부의 문명을 귀족적이고 낭만적으로 묘사하고 이를 파괴하는 북부와 흑인들의 영향력은 야만적이고 천박하게 묘사했지만 정작 현대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남부의 전근대적 낭만주의와 귀족주의보다 북부의 근대적 합리주의와 평등주의를 훨씬 정당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마거릿 미첼은 당시 미국 남부의 악덕 자체를 옹호한 인물은 아니지만, 미국 남부의 가치관을 옹호함으로써 그 가치관의 일부이던 인종, 계급척 차별주의와 같은 악덕까지 옹호하였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 것.

그나마 영화에서는 각색 과정에서 이런 노골적인 묘사나 차별요소를 거의 다 쳐내서 인종차별적인 요소가 원작보다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면서 우울증에 시달린 어느 흑인 청년은 후일 자신의 성을 버리고 스스로 말콤 X라 칭하게 된다(...).

4. 후속편(?)

소설이 열린 결말로 끝나기 때문에 많은 독자들이 뒷이야기를 궁금해했고, 마침내 공모 끝에 마거릿 미첼의 유족에 의해 공식인정된 알렉산드라 리플리(1934~2004)라는 작가에 의해 1992년에 후속작인 '스칼렛'이 쓰여졌다. 이 공모 당시 유명작가들이 참여했는데 시드니 셸던같은 작가도 공모에 도전했었다고 한다.

책은 잠깐 화제를 모으며 1994년에 미국 드라마 제작사 CBS에서 007로 활동했던 티모시 달튼이 레트 버틀러로 나오고 조앤 윌리 킬머가 스칼렛 오하라로 나온 4부작 시리즈로 나와 같은해 KBS에서 거의 비슷한 시기에 더빙 방영되었다. KBS는 12년동안 공중파, 케이블TV, 비디오 등에 무제한 방영을 조건으로 85만 달러(약 6억8천만원)이라는 거액을 주고 사왔는데, 본전을 뽑기위해 외화인데도 황금 시간대인 수목 드라마 대신에 꽂고 영화, 드라마 제작 비하인드 다큐까지 방영해가며 엄청나게 홍보했다. 그 결과 당시 시청률 27%를 기록하며 동시간대 타사 드라마를 위협할만큼 꽤 성공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마가릿 미첼 사후 저작재산권 소멸 전에 유족들이 수입을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7] 나름 문체가 비슷한 에로 애정소설 작가를 초빙한 건데 결론적으로 이 소설에서 스칼렛은 결국 레트와 다시 재결합하게 된다.[8] 그러나 원작에 비해 조금은 억지스러운 전개와 안드로메다로 확대되는 스케일(스칼렛이 제럴드의 고향인 아일랜드로 건너가고, 영국-아일랜드 분쟁까지 배경 요소로 추가된다)등으로 이를 후속편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스칼렛' 이외에 다시 마거릿 미첼 위원회에 의해 공식 인정된 속편으로 도널드 맥케이그(Donald McCaig,1940~ )가 2007년에 발표한 '레트 버틀러의 사람들' 이 있다. 이는 원작을 레트 버틀러의 시점에서 재해석하였고, 프리퀄도 넣었다. 역시 결말 부분에는 스칼렛과 레트가 재결합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지나치게 레트의 시각으로 그린 나머지 원작의 시니컬한 레트 대신에 정의의 사도로 그려낸 게 흠. 결국 미국에서도 그리 팔리지 못하며 소리 소문 없이 잊혀졌다.

이들 두 소설은 모두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다. "스칼렛"의 경우는 위에 서술한 본작의 번역자 장왕록 교수가 미국에서 해당 소설이 발간된 것과 같은 시기인 1992년에 딸 장영희 서강대 영문과 교수와 함께 번역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물론 전설적인 본작에 비할 정도는 못되었지만. 후자는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스칼렛과 레트로 분장한 홍보모델(다만 한국인이었다)을 내세워 책을 홍보하기도 했다. 다만 재미는 못 봤는지, 빠르게 출판계에서 사라졌다.

1992년에는 이가출판사라는 곳에서 속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라는 1권짜리 책을 낸 적이 있다. 그러나 한국인 작가가 무단으로 낸 괴작. 요즘 중국에서 나오는 해적판 후속편들과 똑같은 물건이다.

내용은 심히 억지스럽다. 스칼렛이 레트를 되찾으려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긴 하는데 영 생뚱맞고, 아예 상관없는 다른 농장 농장주의 외동딸인 마가렛이라는 아가씨가 등장, 벌칸이라는 흑인 노예와 썸 타다가 잠자리를 치르고 어화둥둥하는 것이 주된 라인이다. 이 농장은 어디 시골에 처박혀 있었는지 남북전쟁이 다 끝난 뒤에도 백인 주인이 노예들을 마구 학대하며 지내다가 노예들의 반란으로 폭망한다.[9]

비슷한 해적판으로 사랑과 영혼이라든지 죽은 시인의 사회 같은 당시 유명한 영화들의 괴작 속편들이 많이 나왔는데 하나같이 원작 팬들을 절망으로 떨어뜨릴 수준이었다. [10]

5. 번역 문제

소설판 원문에서 흑인들의 말투 같은 경우, 한국 번역판에서는 보통 사투리로 번역되는데... 소설에서 사용된 미국 남부의 흑인 말투는 억양이나 발음이 표준어와 다른 사투리라기보다는 문법이 안 맞는 영어에 가깝다. 조사가 탈락하거나, 어순이 도치되거나, 사용되는 형용사와 동사의 수가 부족하다든지. 요즘은 이걸 반영한 번역도 새로 나왔는데, 대신 가독성이 떨어지는게 큰 흠이다[11]. 또한, 다수의 번역 판본에서 존비어 처리를 남자→여자는 예사높임인 하오체, 여자→남자는 아주높임인 합쇼체 정도로 번역함으로써 생각없는 한국 번역계의 고질적인 남녀차별 문제를 반복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경우가 많다. 당시 미국 남부의 문화적 배경에 따라 신사/숙녀의 말투를 번역한다면, 양쪽 모두 서로에게 최대한의 존칭을 쓰는 것이 더 적절하고, 특히 신사와 숙녀가 대화할 때 남자가 여자보다 예의를 덜 갖추면 절대로 안 된다. 천하의 불쌍놈 취급 받는다.(...)[12]

6. 명대사

국내에선 보통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니까'가 유명한 대사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상단에서 서술되었듯이, 한국 번역가의 창작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는, 떠나는 레트를 붙잡으며 '그럼 난 이제 어떻게 하라고요?'라며 울먹이는 스칼렛에게 작별을 고하는 레트의 'Frankly, my dear, I don't give a damn(솔직히 말하면, 내 사랑, 내 알 바 아니지).' 이다. 스칼렛과의 관계에 지친 레트만이 할 수 있는 이 시니컬한 대사는 영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이자,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대사이며, AFI의 조사 결과 영화 역사상 최고의 대사 1위로 뽑힌 바 있다. 미국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명대사를 흉내내거나 패러디 할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도 이 대사이다.

여담으로 영화 제작 당시 저 대사 하나만을 위해서 검열국과 영화 제작자 측이 상당한 협상을 벌였는데, 'damn'이라는 말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13].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는 말이지만, 시대상의 상황[14]을 고려하면 영화에서 저런 말을 쓴다는 것은 EBS 교육방송 중에 ㅅ자나 ㅂ자가 들어가는 욕을 섞어 부모님의 안부를 묻는 수준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농부의 딸은 외판원과 같이 있을 수 없다, 여자가 화면에 등장할 때와 영화 제목[* 20세기 초반 개봉된 미국 영화 '똑똑한 여자들은 말을 하지 않는다(Smart Dames Don't Talk)'의 경우 Dames가 Damn과 발음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Smart Girls Don't Talk'로 제목이 바뀐 일이 있었다.]에는 욕설을 사용할 수 없다, 간통을 스크린에서 묘사하면 안 된다[15] 같은 지금의 방통위나 여성부도 한 수 접고 갈 정도로 검열이 엄격했던 시기였다. 결국 협상 끝에 저 damn을 유지하는 대신 스칼렛의 다른 대사인 '당신의 그 비열한 영혼이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받으면 좋겠네요'를 지우는 것으로 합의를 봤고,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가 되었다.

29명의 헐리우드 배우들이 연기하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명대사[16]

7. 그 밖의 이야기

  • 원작자 미첼은 이 소설 하나로 베스트셀러 작가 목록에 올랐고, 미국 문학 최대 영예인 퓰리처상도 받았으며 영화화로 인한 여러 수익까지 화려한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그 뒤로는 어떤 소설도 문학활동도 하지 않았고, 1949년 뺑소니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데 [17] 몇몇 지인들과 나눈 짧은 수필이나 시 같은 몇몇 간략한 글들 외에는 그 어떤 소설이나 책으로 낼 것들이 없었다고 한다. 출판사들이나 유족들이 혹시 돈벌이가 될까 해서 엄청 꼼꼼하게 찾아봤음에도 찾아낸 게 저거뿐이라... 그나마 그녀 살아생전 사진이나 주변 인물들 이야기를 담아서 찾아낸 수필 및 간략한 글을 넣어 미첼의 유작이라느니 온갖 홍보를 하며 책을 냈지만 그다지 팔리지 않아 묻혀졌다.
  • 사우스웨스트 항공에서는 흡연이 가능한 날개 위 스카이 라운지에서 상영한다고 한다. 물론 해당 항공사에서 유머러스하게 기내 흡연 금지를 요청하는 것.

8. 영화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작품상

제11회
(1939년)

제12회
(1940년)

제13회
(1941년)

우리들의 낙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레베카

Gone with the Wind (1939)

긴설명 필요없이 이 영화는 1939년에 개봉했다.

현재까지의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역대 흥행순위 1위의 영화이다,

8.1. 평가

인플레이션 적용 기준 영화 역사상 최고의 흥행작.[18]

제12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감독상·여우주연상[19]·여우조연상[20]·각색상·컬러촬영상·편집상·미술상·명예상·기술공로상 수상, 남우주연상[21]·여우조연상[22]·특수효과상·음악상·음향녹음상 노미네이트.

1989년 미 국립영화등기부 등재.[23]

2007년 미국 영화 연구소 AFI 선정 100대 영화 6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앞으로도 여러 번 재개봉될 것이다. 좋다. 문명은 사라졌지만 잊혀진 것은 아니니까.

로저 에버트[24]

정점에 달한 할리우드의 제작능력과 자신감이 빚은 기념비적 걸작

이동진[25]

8.2. 소개

해당 영화에 대해 한국은 이전 저작권법에 명시된 50년을 적용, 영화는 1989년에 저작재산권이 소멸되었고, 원작도 1999년에 소멸되었다. 따라서 한국에서 영화의 저작권은 소멸되었다.

원작이 대히트를 치면서 1939년 12월 15일에 영화가 개봉되었다. 2차 세계대전도 발발하기 전에 러닝타임 3시간 50분짜리 영화를 풀컬러로 제작했고, 제작비는 600만 달러를 들였는데 당시에는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엄청난 제작비였다. 2년 뒤 만든 디즈니환타지아가 230만 달러 제작비로 만들었다가 망하고 제작비 회수하느라 22년이나 걸렸던 걸 생각하면 이 영화의 제작비가 얼마나 엄청난지 알 수 있다. 1537%에 달하는 해당 기간의 미국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1939년 당시 600만 달러는 2012년의 9천8백만 달러와 맞먹는 구매력을 갖는다. 참고로 같은 해에 건조가 시작된 사우스 다코타급 전함의 건조비가 약 400만 달러였는데 당시 미해군 1회계년도 예산의 거의 절반이었다. 그런데 2009년에 나온 아바타는 제작비 2억 4천만~ 3억 달러였는데? 영문 위키에서는 600만 달러는 과장이고 실제로는 385만 달러 정도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이 정도도 엄청난 제작비이긴 하다.

영화도 원작처럼 어마어마한 흥행을 거두었다. 첫 개봉에서만 1억 9000만 달러 이상.[27] 2017년 물가로 환산하면 18억 달러가 넘는 어마어마한 기록이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가 북미에서 흥행몰이한 결과가 9억3천6백만 달러인것을 감안하면 정말 상상이상의 기록이다. 더불어 이후로도 재개봉으로 전세계에서 2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추가로 벌어들이며 3억 9천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다. 또한 26년이나 미국 및 세계 영화 극장 흥행 1위를 지켰었다. 이 기록은 1965년에서야 사운드 오브 뮤직이 깼다. 참고로 타이타닉은 13년만에 아바타에게 미국 및 세계 극장 흥행 기록이 깨졌던 걸 생각하면 이게 얼마나 당시 대박을 거둬들였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물가변동을 고려하면 여전히 전미 흥행 1위의 기록을 지키고 있다. 80년전 영화인지라 집계의 어려움 때문인지 물가변동을 고려한 월드와이드 기록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1989년, 1998년, 2016년 재개봉까지 포함해서 물가 상승율을 빼면 4억 달러이다.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3시간 58분. 그때도 그렇지만 지금과 비교하면 대단히 긴 러닝타임이다. 이 때문에 영화 자체를 1부와 2부로 나눠 중간에 휴식 시간(인터미션)을 둘 정도이다. 1, 2부가 나눠지는 부분은 스칼렛이 타라로 돌아온 후 밭에 있는 무를 캐먹다가 절대로 굶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부분이 끝나고 나서이다. 요즘은 이렇게 긴 영화를 만드느니 그냥 두 편으로 잘라 버리기 때문에 이제 이런 휴식시간이 있는 영화는 없다.

영화는 원작의 스토리를 거의 그대로 따라가지만 역시 영화에 원작의 방대함을 다 넣을 수는 없었던 듯 하다. 원작에 비해 조연이나 단역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잘리거나 비중이 많이 축소되고, 중간중간 이야기도 축소하거나 과감히 제외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영화가 원작에 비해 딸리지는 않는다. 원작을 알고 봐도 영화가 손색없게 보일 정도로 각색이 상당히 잘되어 있다.

아카데미에서 이 영화와 대결한 영화는 프랭크 카프라(1897~1991)가 감독,제작한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Mr. Smith Goes to Washington)"였는데, 아카데미 11개부문에 후보로 올라 대결하다가 모두 패배하고 오리지널 각본상 하나에 만족해야 했다. 원작이 있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이 상을 탈 수 없었기에 겨우 수상한 것이다[28]. 이때 프랭크 카프라 감독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나온 해에는 당신의 최고 걸작을 만들지 말라."라는 명언을 남겼고, 이 명언은 1997년 7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타이타닉에 밀려 수상을 거의 하지 못한 LA 컨피던셀의 감독인 커티스 핸슨이 다시 한번 인용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 비행기의 날개 위에는 스카이라운지가 있으며 거기서 이 영화를 상영한다고 한다. 참고로 흡연구역이라고 한다.[29]

첫 상연때 아직 남북전쟁 참전자가 일부 살아있어 이 생존장병들이 특별 초대되어 관람하기도 했다.

8.3. 제작 비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캐스팅을 위한 스크린 테스트.

원작자가 처음 레트 버틀러 역에 꼽은 배우는 바실 래스본(Basil Rathbone,1892~1967)이었다. 그는 셜록 홈즈로 유명한 배우로서 사람들이 상상하는 레트 버틀러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배우였고 대중들은 압도적으로 클라크 게이블을 원했다.[30] 클라크 게이블은 대중들의 관심에 부담스러워 했고, 하필이면 바로 직전 남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 출연하기도 해서, 거절하려 했으나 캐롤 롬버드와 결혼[31][32] 하기 위해 첫 아내에게 지불해야 할 이혼 위자료에 쓸 5만 달러라는 당시에는 막대한 보너스 때문에 결국 수락하였다. 그러나 또 문제는 그의 전속계약을 맺은 MGM 영화사가 딴지를 거는 통에 셀즈닉은 수익금 절반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주기로 한 계약을 맺고 나서야 비로소 그를 출연시킬 수 있었다.

참고로 마가렛 미첼은 레트 버틀러 역에 그루초 막스를 꼽기도 했으나 명백한 조크에 불과하다. 데이빗 O. 셀즈닉은 마가렛 미첼에게 영화 전반에 대한 조언을 구하였고 그녀는 타라의 외관에 대한 비평을 한번 하였으나 무시되자 더이상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촬영 당시 여러 이야기도 넘쳐났는데, 처음 맡던 감독인 조지 큐커(George Dewey Cukor,1899~1983)는 제작자 데이빗 O. 셀즈닉과의 마찰로 인해 빅터 플레밍으로 교체되었다. 조지 큐커는 무척 자상했기에 여배우들에게 상냥했던 반면[33] 빅터 플레밍은 슈퍼 마초 감독으로 유명했기에 교체 소식을 들은 비비안 리는 무척 슬퍼했다고 한다. 그런데 플레밍도 셀즈닉과의 마찰로 촬영을 중단했는데 셀즈닉이 가소롭다는 듯이 '세상에 감독이 당신밖에 없나?' 라는 투로 다른 감독을 알아보자 백기를 들고 제발로 찾아와 사과를 하고 다시 감독을 맡게된다.

주연 여배우가 확정되기도 전에 촬영을 시작했다. 첫 촬영은 킹콩 등 기존 영화의 세트에 적당히 판자를 붙여 실루엣을 만든 뒤 모두 불태우면서 시작되었다. 어차피 기존 세트를 헐고 새로 만들어야 하니, 아예 불태워버리면서 그 상황을 촬영해서 애틀랜타가 파괴되는 장면에 쓴 것이다. 이 때 스칼렛이 계속 얼굴을 가리고 있는데, 아직 스칼렛 역의 배우가 확정되지 않았으므로 대역 배우가 얼굴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촬영이 끝난 뒤 감독에게 다가온 에이전트[34]가 영화 촬영장에서 구경하던 한 여인을 감독에게 소개하면서 "감독님, 스칼렛 오하라입니다.''라고 말했고, 즉시 감독은 오디션을 실시하여 해당 여인을 스칼렛 오하라로 캐스팅한다.거의 낙점되었다가 졸지에 탈락한 폴레트 고다드

미쳤다는 소리 들어가면서 이걸 제작한 당시 37살 야심찬 젊은 제작자 데이빗 O. 셀즈닉(1933년판 킹콩도 그가 제작했다)은 늘그막에 내가 뭐하자고 이걸 제작했는지라며 자주 중얼거릴 정도로 이 영화에 대하여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그 뒤로 만드는 영화들마다 반드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비교당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이런 말 하는 이들에게 마구 화도 내고 이후 도박과 폭음으로 인하여 1965년 초라하게 세상을 떠났다.

8.4. 출연한 배우들의 후일담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를 연기한 비비안 리는 이 작품으로 막대한 인기를 얻었다. 아름다우면서도 스칼렛과 일치하는 외모로 유명하지만, 연기로도 인정받는 실력파 배우다. 그녀는 이 작품의 초대박 이후로도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에 여러 번 등장하는데 특히 51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말론 브란도와 함께 보여준 극한에 다다른 연기력은 최근까지 회자된다. 이 작품으로 그녀는 두 번째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결핵과 조울증 등 건강문제를 많이 겪었으며, 영화보다는 연극 쪽 활동이 더 많았다.

당시 46살이던 레슬리 하워드는 21살의 배역을 맡기에는 자신이 너무 나이들었다는 이유로 애슐리 윌크스 역을 맡기를 거절하였으나 인터멧조에 프로듀서로 크레딧을 올릴 것을 약속받은 후에 수락하였다. 덕택에 촬영 때마다 얼굴에 화장 떡칠을 해야 했다고. 이후에 하워드는 1943년 DC-3 비행기를 타고 포르투갈로 가던 길에 나치 공군 제40전투비행전대 제5편대 Ju 88의 공격으로 격추당해 같이 타고 있던 다른 12명과 같이 죽었다. 그가 탄 비행기가 민간인이 탄 비행기였기에 이게 의문으로 남았는데, 전쟁이 끝나고 나서 드러난 사실은 나치군이 이 비행기를 격추한 것은 민간위장용 작전기로 오해했고, 거기다 윈스턴 처칠이 타고 있는 줄 알았다는 것이었다. 당시 이 비행기가 공격받을 것을 알고도 미군 측이 여기에 끼어들면 미군의 작전에 해가 된다고 하여 일부러 놔둔 것이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에 드러나서, 다른 탑승객 유족들이 분노하여 미군 측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된 바 있다.

도크: 저는 대개 같은 목표물의 사진을 두 번 찍었죠. 그 중 한 장은 늘 윗분들이 가졌어요. 제일 근사한 사진은 휘틀리 폭격기를 찍은 것이었는데, 우리 비행대대에서 처음 격추한 놈이죠. 우리는 그 첫 번째 격추를 축하하는 파티를 했다니까요! 다음 날 아침 5시 반까지요. 7시에 다시 출격이었는데 말이에요! 모두 술에 취해 비행기에 짐짝처럼 실렸지요! 휘틀리는 우리 대대가 격추한 첫 번째 목표물이었거든요. 그다음에는 4발기 리버레이터, 핼리팩스, 스털링, 서덜랜드도 격추시켰습니다. 그리고 록히드 허드슨도요. 민항기도 네 대나 격추시켰죠.

하일: 놈들은 무장 상태였나요?

도크: 아뇨.

하일: 그럼 그 놈들을 왜 쐈어요?

도크: 우리 엽총 앞에 들어오는 건 다 쐈어요. 한번은 총격을 가했는데, 거기에 큰 짐승들이 잔뜩 타고 있었던 거예요. 열일곱 명이 타고 있었죠. 승무원 네 명, 승객 열네 명이 리스본에서 오고 있었지요. 유명한 영국 영화배우 레슬리 하워드도 있었어요. 그날 저녁에 영국 라디오에서 들었거든요. 놈들은 대담한 조종사들이었죠. 민항기 조종사가 말이죠. 세상에나, 승객 열네 명이 탄 비행기를 뒤집어 버리더라고요. 어이쿠, 그놈들은 모두 비행기 천장에 매달렸을 거예요! (웃음) 그 비행기는 3200미터 상공에서 비행했거든요. 멍청한 놈들! 그 비행기는 직선으로 날다가 우리를 보자마자 커브를 돌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놈들을 잡았죠. 그리고 우리가 가진 걸 다 퍼부었죠. 오, 하나님! 놈들은 기체를 기울여 우리에게서 벗어나려고 했죠. 커브를 그리며 날았어요. 세상에, 한 대가 뒤를 좇았고 다른 한 대가 그 뒤를 따라갔죠. 우리는 아주 침착하고 냉정하게 버튼을 눌렀어요. (웃음)

하일 : 비행기가 추락했나요?

도크 : 당연하죠.

하일 : 그리고 그놈들은 탈출했어요?

도크 : 아뇨, 놈들은 모두 죽었어요.

-

- 당시 하워드를 격추시킨 Ju 88 폭격기의 승무원이었던 하인츠 도크(Heinz Dock) 상병이 동료에게 이 사건에 대하여 자랑한 내용. 연합군 정보부가 도청하여 기록하였다.[35]

그런데 그 비행기에 하워드가 탄 게 과연 오해였느냐? 이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고 있다. 하워드가 실은 미국이나 영국 간첩이라서 나치가 정확하게 노리고 제거했다는 주장도 있으며 레슬리 하워드의 아들이던 배우 로널드 하워드(Ronald Howard,1918~1996)는 1984년에 쓴 회고록인 <아버지를 찾아서>에서 아버지가 영국을 위한 스파이였다면서 아버지를 전사자로 대우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영화상에서 늘상 순하고 착한 멜라니를 연기한 여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정작 현실에선 매우 당당하고 밝은 성격이며 손해보는 걸 일절 용납하지 않고 영화사와 계약 문제로 오랫동안 소송을 벌여 승소하는가 하면 지는 걸 싫어하던 강인한 성격이라 사람들은 그녀야말로 성격이 스칼렛 오하라였다고 말했단다.[36] 워너브라더스 소속이었기 때문에 원래 멜라니 역을 맡을 수 없었으나 워너브라더스사의 사장 잭 L. 워너(1892~1978)의 아내에게 간청하여 역을 따낼 수 있었다.

하빌랜드는 만 103살이 넘은 현재도 살아있으며 프랑스 파리에서 살면서 2019년 7월 1일 103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2014년 1월 인디아 윌크스 역의 알리시아 레트가 99세로 사망하고 메이벨 메리웨더[37] 역의 메리 앤더슨도 2014년 4월 6월에 96번째 생일을 지낸 지 사흘 만에 세상을 떠나면서 이젠 하빌랜드가 현재 살아 있는 출연자 중 최고령이기도 하다. 그리고 하빌랜드와 더불어 이 영화 출연자들은 고작해야 보 윌크스[38] 역을 맡은 아역배우였던 미키 쿤(Mickey Kuhn /1932년생으로 1957년 이후로 배우에서 은퇴)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 참고로 다른 배우들의 사망일을 보면 캐린 오하라 역의 앤 러더퍼드가 2012년 6월 11일 94세로 사망했다.

첫 아카데미 흑인여우조연상이 탄생한 영화이기도 했다. 배우는 주인공 스칼렛의 하녀역을 맡았던 해티 맥대니얼(1895~1952).[39] 그때는 민권법이 지정되기 전이라 인종차별이 심하던 시절이었고 상을 탔음에도 흑인 출연진들은 시상식에 올 수가 없었다. 이때 클라크 게이블이 말도 안 된다면서 그렇게 하면 자신도 시상식 안 간다고 하는 바람에 해티는 시상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애틀란타에서 열린 첫 시사회에서도 이랬다. 이때도 클라크 게이블이 해티 맥대니얼 말고도 다른 흑인 배우들도 당연히 이 영화를 빛낸 배우들인데 그들을 피부색 때문에 못 나오게 하면 나도 시사회고 나발이고 안 간다고 따져서 흑인 출연진들이 모두 참석할 수 있었다.[40] 당시 KKK가 반발하여 게이블에게 비난 편지를 보내기도 했지만 라디오 방송에 나온 게이블은 "흑인이고 뭐고 간에 같은 영화에 배우로서 최선을 다했고 그녀가 상을 받을 자격이 있음에도 나오지 말아야 할 이유가 안된다고 생각한다."라며 조금도 기죽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클라크 게이블의 별명이 괜히 할리우드의 왕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일화 중 하나다.

결국 게이블 덕분에 시상식에 나온 그녀는 소감으로 "검둥이로서 내가 처음 나오게 되어 기쁩니다.그리고 그걸 도와준 게이블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먼 미래에는 (흑인들이) 더 많이 올라오게 되겠죠."라고 했다. 이후에 주연상까지 받은 흑인 배우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명언이자 예언인 듯. (그렇다고는 하지만 해티 맥대니얼 이후 우피 골드버그사랑과 영혼의 '오다 메' 역으로 두 번째 아카데미 흑인여우조연상을 받기까지 51년이 걸렸다...) 하지만 그녀는 이후로 배우로서 별다르게 활약하지 못하며 조연으로 간간히 나오다 사라졌다. 2006년 미국에서 그녀를 기리는 기념우표가 나오기도 했다.

그밖에 영화상에서는 아주 잠깐 나오던 스튜어트 탈레턴을 연기한 배우가 바로 조지 리브스(1914~1959)로 당시에는 이름 없던 애송이 배우였다. 이후로도 배우로선 그다지 알려지지 못했다가 1950년대 초반 TV 드라마 슈퍼맨에서 슈퍼맨을 맡아 인기를 끌면서 비로소 알려지지만 그 반대로 슈퍼맨 이미지로 가려져 철저하게 묻혀진 끝에 자살하면서 바로 슈퍼맨의 저주 시발점이 되어버렸다.

현지 시각으로 2017년 8월 28일, 테네시 주 멤피스의 명소 오피엄 극장(Orpheum Theatre· 1928년에 개관했다)은 지난 34년간 이 영화를 여름 특선 영화제에서 꾸준히 선보였다가 '인종적 몰이해가 드러난 작품'이라는 비난이 계속되자 퇴출을 공표했다. 극장주 브렛 배터슨은 멤피스 흑인 인구가 63%에 달하는 점을 상기하면서 "인종차별에 대해 무감각한 작품을 더이상 상영할 수 없다"며, "영화제의 목적은 지역사회 주민들을 즐겁게 하고 교육하기 위한 것"이니 "내년부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여름 특선작 목록에서 제외시키겠다"고 밝혔다. 영화팬들은 이 영화가 당대 사회와 변화하는 시대상을 보여주는 작품임을 고려하면 시대적 분위기에 따른 또다른 예술 검열이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8.5. 국내 개봉 및 방영

명작영화를 꼽을때 항상 순위에 들어가는 작품이다. 대한민국에서도 엄청 인기 있었고 극장에서도 수십 년 동안 상시 상영되었을 정도. 젊은시절의 할머니와 어머님들의 가슴을 불지르게 했던 영화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1957년 수도극장[41]에서 최초 상영되어 8만5천명의 관객을 모았다.[42] 1972년 중앙극장에서 재상영하였다.

국내에서 마지막으로 정식 상영한 것은 1995년으로, 1989년 MGM의 필름 보관소를 매입한 CNN의 사장 테드 터너가 리마스터링하여 50주년 기념으로 공개한 버전으로 이미 1992년 2월 4일 밤에 KBS 1TV에서 새해특선으로 방영한 버젼이었다. 여기서 장면 삭제나 수정은 없고, 오래된 필름에서 새 필름으로 옮기고 바랜 색감을 다시 살리고 손상된 부분을 복원한 버전이다. 이 판을 제작하면서 더불어 50주년 기념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당시까지 살아 있던 배우들(흑인 하녀를 연기한 버터플라이 맥퀸(1911~1995)과 스칼렛 누이동생를 연기한 에블리 키예스(1916~2008)와 앤 루더포드(1917~2012.6.11) 인터뷰도 수록했는데 당시 하빌랜드는 인터뷰를 거절했다고 한다. 이 다큐멘터리도 영화 방영 하루 전날밤에 KBS 1TV로 방영된 바 있다. DVD에는 다큐멘터리뿐 아니라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한 인터뷰까지 실려 있다. 참고로 당시 국내 한 신문으로 이 영화 방영판 수입가가 70만 달러나 된다고 기사를 쓰기도 했다. 당시에는 방영 영화로 엄청나게 비싸고 주고 사왔다. 참고로 1년전인 1991년 극장 개봉영화 흥행 1위 늑대와 춤을을 동아수출공사에서 88만 달러에 사왔다는 걸 생각하면 비싸게 주고 사온 걸 알 수 있다.

이후에 SBS에서도 더빙 방영된 바있다.

KBS 성우진은 다음과 같다.

  • 송도영 - 스칼렛 오하라(비비안 리)
  • 유강진 - 레트 버틀러(클라크 게이블)
  • 김세한 - 애슐리 윌크스(레슬리 하워드)
  • 이향숙 - 멜라니 해밀턴(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 보니(캐미 킹 콘론) / 고모(로라 홉 크류즈)
  • 임수아 - 유모(해티 맥더니얼)
  • 노민 - 스칼렛의 아빠(토머스 미첼)
  • 전기병 - 스칼렛의 동생(에벌린 키스)
  • 박은숙 - 흑인 시녀(버터플라이 맥퀸)
  • 주호성 - 애슐리 아버지(하워드 힉맨)
  • 성선녀 - 미드의 부인(레오나 로버츠) / 축제 손님
  • 최옥희 - 스칼렛의 엄마(바바라 오넬)
  • 설영범 - 조나스 윌커슨(빅터 조리) / 음악가 / 군인
  • 이정구 - 프랭크(캐롤 나이에) / 간호사
  • 이종구 - 미드(해리 대번포트)
  • 이봉준 - 빅 샘(에버렛 브라운) / 해설
  • 김준 - 폴크(오스카 폴크) / 군인
  • 백순철 - 찰스(랜드 브룩스) / 미드의 아들(잭키 모란) / 군인

SBS 성우진

2011년 2월에 CGV에서 '백투더무비' 이벤트 형식으로 4개관에서 각 1회씩 상영한 적이 있다. 자막은 엉망에, 휴식시간 없음이었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이런 악조건에서도 이영화 보려고 사람들이 하도 예매를 해서 관을 크게 옮겨서 틀어주기도 했다. 오오.

1989년을 마지막으로 한국에서는 저작재산권이 소멸되었다. 법인저작물에 2003년 저작권법 개정 때 기준으로 삼은 1963년 이전 저작물이기 때문에 공표 후 50년을 적용받는다. 위 영상처럼 한글 자막이 달려서 유튜브에 올라가 있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미국은 발표 후 95년까지이기 때문에 2034년까지 유지된다.

8.6. 고증오류?

시사회에서 이 영화를 본 원작자 마가렛 미첼의 남편은 아틀랜타 기차역 앞에 남군 부상병들이 끝없이 누워 있는 광경을 보고 "우리가 저렇게 많았으면 전쟁에 안 졌지."...라며 농담을 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 부상병들의 상당수는 인형이었다. 컴퓨터 그래픽도 없던 시절이고 안 그래도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데 엑스트라 동원 비용이라도 아끼려고 인형으로 대신했다. 원거리 촬영을 해서 들통이 나진 않았지만, 손을 흔드는 정도로 움직임이 단순하다는 점과, 모형 근처에 누워 있는 다른 엑스트라가 직접 조작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8.7. 영화와 원작의 차이

  • 스칼렛의 아이들 중 웨이드와 엘라가 생략되어 보니 하나만 등장한다.

  • 이웃인 탈레턴 일가는 4남 4녀의 대가족인데, 영화에서는 쌍동이 형제만 나온다.
  • 원작에서 전쟁 중 대부분 병참부대에 배속되어 있어 부상을 입은 적이 없는 프랭크 케네디가 아틀랜타 포위전 직전 부상을 입고 야전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병원에서 간호중인 스칼렛과 만난다. 원작에서는 1864년 크리스마스 이후에야 비로소 전투부대로 전속된다. 셔먼 부대가 펼친 초토화작전 때문에 병참부대가 긁어모을 물자 자체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 아틀랜타를 탈출해서 처음 도착한 이웃집이 소설에서는 맬로리 농장이지만 영화에서는 윌크스 농장이다.
  • 귀향한 스칼렛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밭에서 무를 뽑다가 다시는 굶주리지 않겠다고 신에게 맹세하는데, 원작에서는 이 장소가 윌크스 농장에 있는 노예들의 텃밭이지만 영화에서는 타라 농장 밭이다.
  • 원작에서 프랭크 케네디는 1864년 크리스마스에 태라를 찾아와 머물 때 수엘렌과 결혼하고 싶다고 처음 고백하나, 영화에서는 종전 후 찾아와 그 이야기를 한다. 원작에서 프랭크는 이 크리스마스 이후로는 스칼렛이 세금 낼 돈을 구하러 아틀랜타에 갈 때까지 스칼렛과 만난 적이 없다. 수엘렌이 프랭크와 편지를 주고받았기 때문에 전쟁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아틀랜타에서 장사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관심이 없어서 바로 잊었다.
  • 원작에서 애쉴리는 전쟁 중인 1864년 초에 북군 진영에 침입해서 정찰작전을 수행하다가 포로가 되고, 북부에 있는 레트의 연줄을 통해 소재[43] 및 소식도 곧바로 알려지지만 영화에서는 1863년 크리스마스 휴가 때 타를랜타에 다녀간 뒤, 종전 후 귀향하다가 태라에 들른 한 남군 병사가 '스팟실바니아 전투(1864.5.19)에서 포로가 되었다'고 알려줄 때까지 소식이 끊긴다.
  • 프랭크 케네디가 죽는 날, 멜라니가 읽는 책이 원작에서는 레 미제라블[44]이지만 영화에서는 데이빗 커퍼필드이다. 애쉴리의 집에 모여 있던 사람들 중 피티팻 시고모는 미드 부인으로 바뀌었고, 아치가 맡은 역할은 마미가 한다. 레트와 함께 애쉴리를 데려온 사람은 휴 엘싱[45]에서 미드 박사로 바뀌었고[46], 인디어가 나가서 습격에 가담하지 않은 다른 의사를 데리고 오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생략되었다. 이후 북군의 추궁과 KKK단에 대한 수사 과정도 모두 생략되었다. 이 과정에서 KKK단 부분이 통삭제되면서 인종차별 묘사 문제는 원작보다 상당히 옅어졌다.[47]
  • 영화에서는 보니가 죽기 직전에 벨 와틀링이 자기를 찾아온 레트를 달래서 스칼렛과 화해하라고 주선하지만, 원작에서는 이 타이밍에 벨이 등장하지 않는다.

9. 미디어 믹스

9.1. 연극

여러 나라에서 뮤지컬이나 연극으로 개작해서 상연된바 있다. 저작권료는??? 한국에서도 여러 번 연극무대에 올랐다.

한국에서 처음 무대에 오른 건 1956년이다. 극예술혐의회 창립공연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무대에 올랐다.

78년 판80년 판에서는 스칼렛은 유지인, 애슐리는 임동진[48], 매미는 강부자(...)가 열연했다. 버틀러는.... 백일섭이었다(...) 주조역으로는, 이순재가 제럴드 오하라, 사미자가 벨 와틀링, 김을동이 미드부인, 전원주는 메리웨더 부인 역을 맡았다.

나중에 나온 판은 이혜영이 스칼렛 이덕화가 버틀러였다. 이 공연때 어떤 정신이상자가 나체로 무대에 뛰어든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덕화가 당황하지 않고 "남부에는 정말 미친 사람이 많군!"하고 애드립으로 넘겼다고.

9.2. 뮤지컬

프랑스에서 1956년에 뮤지컬로 제작했다. 대사나 장면 등은 대체로 영화판에 기반하고 있으나, 영화보다도 상영 시간이 절반밖에 안 될 정도로 짧은 데다가 춤과 노래를 선보여야 하다 보니 줄거리가 매우 많이 축약되었다. 게다가 작중 일어나는 사건들이 시간순으로 뒤섞이는 바람에[49] 원작이 변형되는 것을 싫어하는 격렬한 팬들은 줄거리가 다소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또한 프뮤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노예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커튼콜까지 그야말로 엄청난 인기를 모았으나, 원작의 스토리라인과 아무 상관이 없어 당시 남부 백인들을 미화했던 원작 분위기와는 배치되는 톤이기도 하다.

한국 공연은 2015년 1월에 처음 이루어졌다. 바다서현이 더블 캐스팅으로 스칼렛을 맡았고, 노예장 역할의 박송권의 인기가 폭발하며 '시강 노예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5년 11월에 2차 공연이 있었고, 스칼렛은 바다, 김지우, 김소현. 레트 버틀러는남경주, 김법래, 윤형렬, 신성우가 출연했다. 주목을 받았던 노예장 역할에 박송권최수형이 캐스팅.

2018년 5월 샤롯데씨어터에서 3연이 예정되어있다. 바다, 김보경, 루나가 스칼렛, 신성우, 김준현, 테이가 레트 버틀러 역으로 참여한다. 더불어, 레트 역과 스칼렛 역은 캐스팅 콜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오디션을 통해 1명 씩 추가될 예정

다카라즈카 가극단에서도 1977년에 창작 뮤지컬로 제작되었다. 70년도에 TV의 보급으로 인해 다카라즈카 붐이 식자 베르사이유의 장미와 함께 제작, 공연되어 리바이벌을 시킨, 다카라즈카의 또다른 상징이자 대표적인 레퍼토리가 된 작품이다. 레트 버틀러편과 스칼렛 편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남역 중심인 다카라즈카 답게 레트 버틀러 편을 공연하는 비율이 더 많은편. 또한, 신인 공연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역대 톱스타들이 한두번씩은 스칼렛 역할을 맡았다.

원작소설보다는 영화판을 기반으로 제작했기 때문에 대사와 연출, 의상이 비슷하다.[50] 다만, 원작대로 스토리를 따르되 원작이나 영화에는 없는 몇몇 오리지널 설정과 이를 반영한 대목을 추가하기도 했다. 그 예시를 몇개 들자면 과부가 된 이후 어쩔 수 없이 현실에 순응하는 스칼렛의 솔직한 속마음을 대변하는 또다른 스칼렛이 등장하거나 가문의 명예를 중시하는 엄격한 아버지로 등장하는 제럴드 오하라에, 잘 놀라고 잘 기절하는 것만 제외하면 나이 운운하며 골골대는 평범한 할머니로 등장하는 피티팻 등이 있다.

OST이자 작중내 대표적인 테마곡으로는 레트 버틀러의 테마인 목련꽃같은 그대(君はマグノリアの花の如く)가 있다.


  1. [1] 최초의 여성 퓰리처상 수상자라고 잘못 알고있는 경우도 있지만 퓰리쳐상을 맨 처음 수상한 여성 작가는 1920년에 수상한 미국 작가 이디스 워튼(1862~1937)이다.
  2. [2] 2013년 10월호 내셔널 지오그래픽지에서도 언급된다.
  3. [3] 영화가 생략해서 그렇지, 존 존스턴이 이끄는 서부 전역의 남부군은 숫적 불리함 떄문에 애틀란타 시까지 밀리기는 했어도 항상 우월환 교환비로 전투를 계속 이겼고 사상자도 북부군에 비해서 적은 편이였다. 소설에서는 밀리기만 하는 존스턴을 욕하는 스칼렛에게 레트 버틀러가 '당신도 불가능한 일을 못한다고 장군을 내쫓자는 시정 무리들과 같은 소리를 하느냐' ''장군은 좀 더 우대를 받아도 좋은 전술가이다.'라고 핀잔을 주는 대목도 있다. 그리고 소설에서도 묘사되며, 실제 역사에서도 그랬지만, 존스턴을 경질하고 대신 사령관이 된 후드 장군은 북군에 대한 무모한 정면도전을 감행하는데, 존스턴 장군이 수 개월에 걸친 후퇴전에서 잃은 병력 이상을 며칠 간의 전투로 잃어버리고 애틀랜타조차 북군에 넘겨주는 지경에 이른다.
  4. [4] 역사적으로 애틀랜타를 불태운건 북군의 셔먼 장군과 남군의 후드 장군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후드 장군이 1864년 9월 1일 애틀랜타에서 쫓겨나면서 어쩔 수 없이 81량이나 되는 열차에 실려 있는 대량의 탄약을 포함한 군수물자를 불태웠고, 이 과정에서 대폭발이 일어나 철도역 부근의 시설이 함께 부숴졌다. 다만, 이때까지는 애틀랜타시 전체가 피해를 입은건 아니었다. 진짜로 애틀랜타에 큰 피해를 준 것은 역시 1864년 11월 셔먼 장군의 명령으로, 셔먼은 엄밀히는 전쟁관련 시설만을 파괴하라고 지시했는데 여기서 전쟁관련 시설이라는건 철도나 막사, 군수공장 같은 것뿐만이 아니라, 제재소, 방앗간, 민간의 작업공방, 심지어는 창고나 막사로 쓸 수 있는 집이나 마차까지 포함되었다. 이러니 애틀랜타시 전체가 불타오른건 당연한 일이었다. 소설에서는 프랭크 케네디의 대사로 이런 배경이 명확히 언급된다. 영화에서는 후드 장군의 지시로 애틀랜타가 불타는 와중에 스칼렛과 레트가 빠져나오는 장면만 묘사되어 있다.
  5. [5] 사실 원문은 "내일은 또 다른 내일이니까"이다. 왠지 이게 밋밋하다고 생각했는지 한국 번역자인 영문학자 장왕록(1924~1994)교수가 초월번역을 했다고 하는데, 장왕록 교수의 첫 번역본인 1975년 동서문화사판은 해당 문장을 "내일은 또 새로운 날이니까"로 적고 있다. 이후 버전에서 번역이 바뀌었는지, 혹은 다른 번역가가 처음 쓴 표현인데 장왕록 교수가 번역한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었는지는 확인을 요한다. 참고로 장왕록 교수는 역시 번역가, 수필가로 유명해진 장영희 서강대 교수의 부친이다.
  6. [6] 스파이크 리블랙클랜스맨에서 이 영화의 장면을 인용해 이 영화에 대한 비판을 드러낸바 있다.
  7. [7] 당시 저작권법은 저작권자 사후 50년까지만 저작재산권을 보장했다. 미첼이 1949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1999년에 저작재산권이 소멸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1998년에 저작권법이 개정되면서 사후 70년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2019년까지 저작재산권이 유지될 예정이다. 영화는 법인저작물이라 미국에서는 발표 후 95년까지이기 때문에 2034년까지 유지된다. 한국은 발표 후 70년까지지만 소급적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전 저작권법에 명시된 50년을 적용, 영화는 1989년에 저작재산권이 소멸되었고, 원작도 1999년에 소멸되었다.
  8. [8] 마지막 문장이 스칼렛과 레트의 딸인지 후손인지가 쓴 회고이다. 드라마판은 좀 직접적으로 재결합을 암시했다.
  9. [9] 다만 남북전쟁 끝나고도 미국 시골이나 각지에서 여전히 흑인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서로 갈등하는 경우가 이후로도 수십여 년에 걸쳐 벌어졌기에 이게 순 엉터리는 아니긴 하다.
  10. [10] 이쪽의 최결정판은 "렉터스키" 박사가 클라리스 강간 생물(....)을 만들어서 펼치는 이야기인 속 양들의 침묵이다.
  11. [11] 예컨데, '무엇을 하지 않았어요'를 사투리로 '무엇을 안 했지라요' 식으로 번역하기 보다는 '무엇 했다 아니요'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당시의 흑인 말투를 정확히 구현한다는 것.
  12. [12] 당시 미국 남부는 여성의 사회적 권리에 대한 보장은 크게 부족했지만, 여성을 대할 때 예의를 갖출 것은 철저히 요구하는 사회였다.
  13. [13] 이 당시 이 대사가 얼마나 파란을 불러 일으켰는가 하면 현재 영어에서 유명한 욕설 'Goddamn'이란 말이 이 당시에는 'F***'과 비슷한 위치에 있던 말이었다.
  14. [14] 헤이즈 오피스 항목 참조.
  15. [15] 알렉 기네스 주연 '선장의 낙원(The Captain's Paradise, 1953)'에서는 두 곳의 항구(모로코와 지브롤터)에서 두 아내(이본느 드 카를로와 셀리아 존슨)를 둔(중혼) 선장이 나오는데 이것 때문에 영화 시작 직전 '이런 식으로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라는 자막을 먼저 내보내야 했고, 브로드웨이 연극이 원작인 1955년 영화 '7년 만의 외출(원제 Seven Year Itch)'의 경우 연극판에서는 주인공이 불륜을 저지르지만 영화판에서는 그런 고뇌에 시달리는 수준에서 끝냈다.
  16. [16] 남자배우가 스칼렛 오하라의 대사를 , 여자배우가 레트 버틀러의 대사를 연기했다.
  17. [17] 닷새동안 혼수상태로 입원했다가 숨졌다.
  18. [18] 인플레이션을 감안하지 않으면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1위다.
  19. [19] 비비안 리
  20. [20] 해티 맥다니엘. 아카데미 사상 최초의 흑인 수상자
  21. [21] 클라크 게이블. 그는 이영화에는 수상하지 못했지만 4년 전인 1935년 '어느 날 밤에 생긴 일'(It Happened One Night)으로 7회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바 있다. 본인 성격 또한 상운에 미련이 없었다.
  22. [22]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클라크 게이블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는 수상하지 못했지만 8년 뒤인 1947년 '투 이치 히스 오운'(To Each His Own)으로, 또 1950년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The Heiress)로 19회, 22회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2번이나 수상해내고 만다. 이는 비비안 리의 오스카 수상기록과 같다.
  23. [23] 후손에게 영구히 물려주어야 할 영화로 인정받은 것이다.
  24. [24] 그의 저서 '위대한 영화'에서
  25. [25] 더 굿 무비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남긴 한줄 평
  26. [26] 장국영의 영어식 이름인 '레슬리'는 이 배우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27. [27] 사실 1억 9000만 달러는 사실이 아닐수도 있다. 1939년 당시 1인당 영화 가격은 0.23$ 정도된다. 미국 관객수는 당시 인구의 절반이었던 6000만명 정도 된다고 하는데, 1억 9000만 달러가 아닌 총 1200~1300만 달러를 벌어들였을 가능성이 높다.
  28. [28] 사실 루이스 포스터(1898~1974)가 쓴 원작 소설이 있긴 했는데, 이게 영화 개봉당시에 세상에 발표되지 않은 상태로 작가가 직접 영화로 각색한거라 오리지널 각본으로 해석, 후보에 오른 것이다.
  29. [29] 실제로 사우스웨스트 항공사의 비행기 안 금연 안내문에 "흡연을 하실 분은 비행기 날개 위의 스카이라운지를 이용해 주십시오. 거기에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상영되고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즉 절대 하지 말라는 것.
  30. [30] 그런데 영화관련 책자나 이선영(1번성우)의 영화음악실 같은 라디오 방송에선 원작자가 소설을 쓰면서 클라크 게이블을 레트로 상상하며 썼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이걸로 아는 경우도 많았다.
  31. [31] 코미디 여배우로 알려진 배우였는데 웃기려고 하다 보니 사생활도 워낙 골때렸다고 한다. 심지어 클라크 게이블과 사귈 당시 잠자리 이야기까지 거침없이 말하기도 하고 뭔 선물을 받았네 라면서 수다를 떨었다. 그러나 결혼하면서 이런 버릇을 많이 없앴고 착실하게 사랑하며 지냈으나, 1942년 결혼한지 3년도 채 되지 않아 롬버드는 비행기 추락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그녀를 잃고 게이블은 마흔 살이 넘는 나이로 공군에 입대하여 3년동안 복무했는데, 이 당시 허락을 받아 비행기를 몰고 롬버드가 죽은 산을 수색하여 그녀의 유품 하나를 찾아내서 이걸 죽을 때까지 간직했다고 한다.
  32. [32] 영화 '미스 페티그루의 어느 특별한 하루'에서 이 여배우의 소셜비서였다는 언급이 잠깐 나온다.
  33. [33] 이에 반해 클라크 게이블은 큐커가 여배우들에게는 친절할지 몰라도 남자 배우들은 개처럼 취급했다고 회고했다.
  34. [34] 제작자인 데이빗 셀즈닉의 형이었다!
  35. [35] 출처: 공군 특별보고서(SRA) 4212, 17. 7. 1943, TNA, WO 208/4130. 《나치의 병사들》, 죙케 나이첼 및 하랄트 벨처, 김태희 옮김, 민음사, 121p에서 재인용
  36. [36] 동생 조안 폰테인(1917~2013년 12월 15일 사망)과 의절한 걸로 유명한데 특히 조안 폰테인이 1941년 자신을 제치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관계가 더욱 악화되었다. 몇년 후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아카데미상을 수상할 때 조안 폰테인이 인사를 건넸으나 매정하게 무시해버렸다고 한다.
  37. [37] 피티퍼트 해밀턴의 친구 메리웨더 부인의 딸이다. 모녀가 다 소설에서는 출연도 꽤 많고 상당한 비중이 있는 조연이지만 영화에서는 그저 지나가는 단역 정도의 비중이다.
  38. [38] 애쉴리 윌크스와 멜라니 해밀턴 사이의 외아들이다.
  39. [39] 이 부분은 2017년 12월 31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뤄졌다.
  40. [40] 해티 맥다니엘을 유모 역으로 추천한 사람은 클라크 게이블이었다. 둘은 이전부터 친한 친구 사이였다고 한다
  41. [41] 1935년 서울 중구 충무로 29에 약초좌(若草座)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어, 약초동보극장(若草東寶劇場) 혹은 약초극장이라고도 불렸다. 1946년 수도극장으로 재개관하였고, 1962년 스카라극장으로 바뀌었다가 2005년 건물 철거와 함께 사라졌다.
  42. [42] 당시 신문 기사에서 "우리는 18년 전에 개봉된 영화를 오늘에서야 보게 된 셈이다"라고 썼을 만큼 늦은 개봉이기는 하나 높은 수입가와 전란의 시기를 고려하면 이해가 된다. 일본도 1952년에 처음 상영(1942년에 일본이 싱가포르를 점령했을 때 이 영화를 보았다는 일본 기자의 회고는 있다)했고, 프랑스가 1950년, 독일이 1953년이다. 동양권에서는 영국령이었던 홍콩이 1940년으로 가장 빨랐다.
  43. [43] "록 아일랜드" 수용소에 있다고 포로수용소 이름까지 확인해주었다.
  44. [44] 작중에서는 남군 병사들이 전쟁 중에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의 제목에 빗대어 자신들을 "리즈 미제라블(리의 불쌍한 부하들)"이라는 드립을 쳤다는 묘사가 있다.
  45. [45] 영화에서는 캐릭터 자체가 생략되었다.
  46. [46] 원작에서도 미드 박사는 보복행위에 동참한 공범이었고, 도망칠 때 흩어져서 따로 집에 돌아갔기 때문에 공모 여부를 들킬 우려가 있어서 데려올 수가 없었다.
  47. [47] 원작에서는 스칼렛이 흑인 빈민촌에서 노상강도에게 성추행을 당함(단, 장소는 흑인 빈민촌이지만 강도는 흑백 콤비였다. 게다가 흑인은 말을 잡았고, 스칼렛의 몸에 손을 직접 댄 범인은 백인이었다)→프랭크가 KKK단을 동원하여 범죄 소굴인 그놈의 빈민촌을 이참에 쓸어버리겠다며 복수하러 가는 구도였으나, 영화에서는 스칼렛이 흑인 빈민촌에서 강도에게 습격당함(성추행 묘사 삭제-여기서도 스칼렛의 몸에 손을 대려고 하는 쪽은 백인이다)→프랭크가 친구들을 모아 복수하러 가는 구도로 변경되고, 이 과정에서 등장인물 누구도 인종차별 대사를 직접적으로 하지 않는다.
  48. [48] 80년 판에서는 문창길
  49. [49] 하나만 예를 들자면, 병기고에서 열린 무도회 때 멜라니가 이미 임신하고 있으며, 이 아이가 아틀랜타 탈출 때 태어난다. 즉, 임신 기간이 3년(...).
  50. [50] 극 중후반에 19세기 말의 슬림한 스타일의 버슬 드레스가 나오는 등의 고증 오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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