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현

5.18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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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06.19 ~ 1982.10.12

민주화의 새벽 기관차[1]

나는 보았습니다 / 낮이고 밤이고 일 년 삼백예순 날 / 햇살 한 줄기 제대로 못 구경하던 그들이 / 푸르고 푸른 오월의 하늘 아래서 / 입이 째지도록 하품을 하고 / 겨드랑이에 날개라도 돋친 듯 기지개를 켜는 것을 //(……) 당신의 죽음으로 박관현 동지여 / 우스운 당신 한 사람의 죽음으로 / 만 사람이 살게 되었습니다 / 노예이기를 거부하고 싸우는 인간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김남주,「한 사람의 죽음으로-박관현 동지에게」

1. 일생
1.1. 유년시절
1.2.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1.4. 투옥과 단식투쟁
2. 기타
3. 참고자료

1. 일생

1.1. 유년시절

1.2.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전남대학교에 입학한 박관현은 1978년 12월부터 2개월 동안 광주 서구 광천동 지역의 노동실태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들불야학에서는 윤상원과 함께 노동자와 학생들을 가르쳤다.

1.3. 서울의 봄5.18

제가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 박관현이올시다. 이 우레와 같은 박수와 여러분의 함성이 전 국토와 민족에게 다 들릴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큰 목소리로 외쳐봅시다. 우리가 민족민주화 횃불대행진을 하는 것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고, 이 횃불과 같은 열기를 우리 가슴속에 간직하면서 우리 민족의 함성을 수습하여 남북통일을 이룩하자는 뜻이며, 꺼지지 않는 횃불처럼 우리 민족의 열정을 온 누리에 밝히자는 뜻입니다. 이런 뜻에서 우리 광주시민, 아니, 전남도민, 아니, 우리 민족 모두가 이 횃불을 온 누리에 밝히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1980년 5월 16일, 전남도청 앞 민족민주화성회 연설

10.26 사태 이후 서울의 봄이 오면서 전국의 각 대학들은 다시금 활발하게 민주운동과 학생운동에 나섰다. 전남대학교 또한 그 변화의 물길 가운데 서 있었다. 박관현은 1980년 4월의 총학생회 선거에서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되었다. 총학생회장으로서 그는 한 달 후에 있던 민족민주화성회를 주도했다. 거기서 박관현은 일장 연설을 한 후 "휴교령이 발동되면 정오에 도청 앞 광장에 모이자"고 말했다.

하지만 곧 신군부가 계엄령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면서 그를 포함한 학생지도부는 검거 대상으로 들어갔다. 박관현은 동지들과 함께 급히 도피했다. 그는 먼저 전남 여수로 갔다가 서울의 동생 집을 통해 인근 친척집에서 은신하게 된다. 제수의 소개로 한 공장에서 일자리를 얻기도 했다.

신군부에게 잡히지 않고 박관현은 1년 정도 버텼다. 하지만 그는 5.18 때 죽어간 친구들을 떠올리며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나는 숨어서 사는 놈'이라는 독백도 자주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현상금을 노리는 누군가의 밀고로 인해 1982년 공장으로 출근하던 길에 체포되었다.[2]

1.4. 투옥과 단식투쟁

박관현은 재판에서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1982년 7월부터 "5.18 진상규명, 재소자 처우 개선"을 외치며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50일 간 3차에 걸친 단식투쟁이 이어졌고, 끝내 그는 급성심근경색과 급성폐부종 증세를 보이며 1982년 10월 12일 숨을 거뒀다.

그의 유언은 이러했다.

3천만 우리 민족을 위하는 길이라면 내 목숨을 바치겠다. 재소자 2천 명의 처우가 개선되도록 하였으니 내 할 일은 다 했소. 어머니, 나는 죽어도 좋아요.

그가 사망한 후 10월 13일부터 11월 초까지 전남대에서는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항의시위가 크게 열렸으며, 서울의 여러 대학들도 이에 동참하여 박관현의 사인을 규명하라고 외쳤다. 광주교도소의 양심수 40여명도 단식농성을 벌이며 신군부의 폭력성을 규탄하기도 했다.

2. 기타

고은 시인은 <만인보> 별편[3]에서 그를 다룬 시를 썼다. 제목은 사람 이름과 같은 '박관현'.

그 자신 그의 죽음을 늦었다고 슬퍼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그의 죽음

그가 죽어야 할 때 죽은 것

그는 광주항쟁 3년

금남로거리가 아니라

감옥에서 죽어나온 것

무등의 아들 박관현

그는 튀었다

계엄군 공수부대

광주를 누비고 있는데

그는 숨어

싸움의 때를 노리다가 또 튀었다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

그는 여수 돌산으로 건너갔다

계엄군이 학살

광주를 점령한 뒤

그는 광주의 싸움을 놓쳐버리고

목포 암태도 초란도로 건너갔다가

그해 6월

서울로 튀었다

현상수배 주요인물 박관현

서울에서 체포 직전에

또 튀었다

영세공장 노동자로 일했다

이름은 박건욱

1년 10개월 동안 숨었다가

끝내 그는 체포되었다

감옥에서

나팔꽃씨 넣은 밥 먹으며

싸우고 싸우다가

감옥에서 죽어나온 것

나이 서른살 박관현

1980년 5월 16일도청 앞 분수대에서

몇만 시민과 학도 앞에서

우리가 횃불대행진을 하는 것은

이 땅에 민주주의의 꽃을 피게 하고

민족통일을 이룩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고 사자처럼 부르짖던 박관현

그의 주검조차 빼앗겨

장례식도 못 치르고

고향땅 영광 황토산에 묻혀버렸다

어쩌자고 님은

달밤에 가시었나

아직은 우리의 밤이 아닌 달밤

아직은 우리의 새벽이 아닌 새벽

어쩌자고 님은 달밤에

새벽에 영 가시었나

그러나 박관현

무등 있어

세상의 침묵 떨쳐

무등이 소리칠 때

그가

금남로에 온다

바람 치는 금남로에 온다

조기조[4]가 쓴 시도 있다. 제목은 역시 '박관현'. 1992년 '전국노동자문학회'의 망월동 대동제에서 발표되었다.

한 남자가 묘지 앞에 앉아 있었네

죽어서 이름조차 없이

빗돌에 새겨진 무명열사의 묘

한 남자가 빗돌을 쓸며 앉아 있었네

그 남자 묘지 앞에 울고 있었네

살아서 부끄러운 이름으로

무명열사......그 이름 한 번 불러보지 못하고

그 남자 빗돌을 쓸며 울고 있었네

그 남자 무덤 속으로 들어가 누웠네

밤마다 찬 이슬 찬 서리 저리 내리는

무덤 속으로 들어가 누운 그 남자

그 이름 이제 누구에게나 성스럽네.

3. 참고자료

박관현의 일생을 다룬 기사

<새벽기관차 박관현 평전>, 최유정, 사계절, 2014

<시민 민주역량 결집한 '광주의 아들' 박관현 전 전남대 총학생회장>, 김재영, <서울신문>, 1998년 9월 17일자

<1980년대 민주화운동> 제2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1987, 920~923쪽

<한국현대사산책 1980년대편> 제1권,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03, 164~165쪽


  1. [1] 박관현 열사를 다룬 평전의 소개글#
  2. [2] 그가 체포되었을 때 은신처를 제공해주었던 제수도 붙잡혔는데, 서울로 이송되면서 이런 대화가 오갔다.
    제수 : 왜 피하지 않았느냐.
    박관현 : 죄인도 아닌데 왜 피하느냐. 죄인은 바로 신군부다. 5월 진실을 밝혀야 한다.
  3. [3] 15권 권말 부록. 주로 1980년 이후 사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4. [4] 1963년생. 충남 서천에서 태어나 1989년 <노동해방문학>, 1994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낡은 기계> <기름미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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