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규

朴鐘圭

1930년 ~ 1985년

박정희 대통령(왼쪽)과 함께.

1. 소개
2. 생애
3. 이야기거리
4. 미디어에서

1. 소개

청와대 대통령경호실장, 국회의원을 지낸 인물이다.

2. 생애

1930년 경상남도 창원군에서 태어났다. 1947년 국방경비대에 입대, 하사관으로 복무중 육군종합행정학교 제5기로 입교, 대한민국 육군 소위로 임관되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의 핵심요원으로 참가하여 박정희의 경호, 공수특전단 출동, 국무총리 장면 체포 등의 임무를 담당하였다.

5.16 쿠데타 후 박정희의 경호책임자로 발탁되었고 국가재건최고회의 발족과 동시에 경호대장이 되었다. 1964년에는 대통령경호실장으로 승진했다. 대통령경호실장으로 있으면서 전두환, 노태우 등의 하나회를 후원했다.

1973년 권력다툼을 하던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과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등이 윤필용 사건김대중 납치사건으로 실각하자 2인자 노릇을 하였다. 이 때, 윤필용과 이후락을 몰아내고 자신이 중앙정보부장이 되기 위해 윤필용 사건을 크게 키웠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으로 인하여 경호실장에서 물러났다.

1978년 12월에는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마산시-진해시-창원군 선거구에서 당선되었다. 이듬해인 1979년 10월 박정희가 김영삼을 구속하려 하자 지역구 민심 때문에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같은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던 신민당황낙주와 자주 접촉하였다.

1980년 5월 신군부에 의해 권력형 부정축재자로 지목되어 조사를 받고 재산을 헌납해야 했다. 이후 죽기 전까지 IOC 위원으로 지내다가 1985년 별세하였다. 그러나 노스롭 스캔들 사건에서 알 수 있듯, 재산 헌납후에도 다른이의 명의로 이미 많은 재산과 회사를 소유하고 있던터라 정재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것은 물론 전두환 대통령에게도 접근 가능했다.

3. 이야기거리

사격을 무척 좋아했으며, 별명이 피스톨 박이었다. 1970년부터 1985년 사망할 때까지 대한사격연맹 회장을 역임했다. 1978년 국제 사격 선수권대회를 유치했으며[1] 경기장으로 태릉 국제사격장을 만들었다.[2] IOC위원과 대한사격연맹회장으로 당시 국제 스포츠계에서 말빨이 통하는 거의 유일한 인물로[3] 1981년 서울 올림픽 유치에 막후에서 기여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의 별명이 피스톨 박인 이유가 단순히 총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총을 차고 다니면서 박정희의 눈에 거슬릴법한 인물은 국회의원이고 장관이고 도지사고 가리지 않고 권총을 겨누고 두들겨 패서이기도 하다. 박정희가 전라북도 현지 시찰을 갔을 때 이춘성 전북도지사가 박정희에게 불을 붙여주었는데 라이터가 고물이었는지 불이 높게 치솟아 박정희가 흠칫 놀라는 사태가 벌어졌는데 그 뿐이었다. 박정희가 다치지도 않았고 큰 소동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박종규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고 박정희가 안보는 틈을 타서 도지사를 골목으로 끌고 가서 감히 각하를 놀라게 한 죄(…)로 두들겨 팼다. 나중에 도지사가 박정희에게 정식으로 항의하였는데 박정희는 그 말을 듣고 "임자 나한테 한대 맞은 셈 치세."라고 해서 그냥 유야무야되었다고…

그런가 하면 박정희가 시찰 중에 친구를 만났고 그 친구는 무의식적으로 "야 박정희 오랜만이다!"라고 했고 박정희도 반갑다고 인사했는데 둘이 헤어지고 나서 박종규가 손을 써서 그 사람을 직장에서 내쫓아 버렸다.친구 잘못 둔 죄? 대통령이 니 친구야?! 친군데요... 나중에 그 사람이 박정희를 만날 일이 또 있었는데 박정희에게 니가 대통령이라지만 명색이 우리 둘이 친구 사인데 반말 한번 했다고 이럴 수가 있느냐라고 항의하면서 사건의 전모가 밝혀졌고 박정희는 친구를 직장에 복직시킨 다음 박종규를 불러다가 일을 이따위로 할 수가 있느냐고 질책했지만[4] 고쳐지지 않았다.

손찌검말고도 여러 과잉충성의 나쁜 사례들을 만들어냈는데 대표적인 예로 박정희가 영남대학교 근처[5]를 지날 일이 있었는데 "여기선 대학이 안보이네"라고 한마디 하자 즉시 거대한 탑[6]을 세워서 그곳을 지날 때마다 영남대가 보이게 했다고 한다(…).

박정희가 전라남도의 어느 섬에 세운 목조 주택을 보고 "내년에는 저기서 휴가를 보내면 되겠군"이라고 한마디 하자 정주영과 함께 그 목조 주택을 석조 주택으로 둔갑시킨 전력도 있어 다음해에 온 박정희가 노발대발하기도 했다.

김종필 증언록에 따르면 술에 만취하면 청와대 본관 앞에서 박정희 나오라며 소리를 지르곤 했다고 한다. 박정희는 이튿날 가볍게 꾸짖었다고 한다.

생전에 경남대학교를 소유하였으며,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당시의 박재규 통일부 장관(現 경남대학교 총장)이 그의 동생이다.

그가 사용하던 권총이 현재 목동 사격장에 있다. 설마 저 권총이 피스톨 박이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물건…?[7]

4. 미디어에서

제3공화국에서는 배우 박근형[8]이, 제4공화국제5공화국에서는 배우 김봉근이, 코리아게이트에서는 배우 정성모가 이 인물을 연기하였다.


  1. [1] 이 대회는 한국이 최초로 개최한 세계구급 스포츠 대회이다.
  2. [2] 애당초 태릉이 어떤 곳인지 생각해보자. 문화재인 왕릉 옆에 사격장을 짓는다는 자체가 요즘 시대라면 택도 없는 얘기다.
  3. [3] 김운용은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나서 국내외에서 부각되기 시작했다.
  4. [4] 사실 박종규가 사람 팰때마다 질책했지만 생각해 보면 박통의 골칫거리 중 하나가 이 사람이었을지도
  5. [5] 자동차로 경부고속도로를 지나는 중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6. [6] 넓디넓은 영남대학교 캠퍼스 가운데 유난히 멀리서 봐도 우뚝 솟은 건물이 하나 있는데 이 건물이 영남대 중앙도서관이다. 3~5층 정도의 고만고만한 건물 중에서 유독 22층이라는 초고층을 자랑하는데 2005년에 한번 리노베이션을 하여 현재는 당시 세워진 그 건물 그대로는 아니다.
  7. [7] 이 사격장과 박종규의 인연은 또 있는데, 사격장의 운영자인 박종길(국가대표 사격 선수 출신,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박종규가 발탁해 국가대표가 되었던 인물이기 때문. 박종길씨는 아예 리틀 피스톨 박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8. [8] 이후 제4공화국에서 김재규를 연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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