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스트리트 보이즈

전성기

2013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헌액되어 별을 받는 모습

1. 멤버
2. 소개
3. 그룹 결성
4. 데뷔
5. 활동
5.3. 1999년 3집 Millennium
5.4. 2000년 4집 Black & Blue
5.5. 2001년 베스트 앨범 The Hits: Chapter One
5.6. 2002~2004년 휴식기 & 닉 카터 솔로 활동
5.7. 닉 카터 부진의 이유?
5.7.1. 시기상의 불운
5.7.2. 관리 실패
5.8. 2005년 5집 Never Gone
5.9. 2006년 브라이언 솔로 활동
5.10. 2007년 6집 Unbreakable
5.11. 2009년 7집 This Is Us
5.12. 2011년 NKOTBSB
6. 디스코그래피
6.1. 정규 음반
6.2. 비정규 음반
6.3. 싱글
6.3.1. 빌보드 1위
6.3.2. 빌보드 2위
6.3.3. 빌보드 3위~10위
6.3.4. 빌보드 11위~20위
6.4. 기타

1. 멤버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멤버

Kevin Richardson

Howie Dorough

Brian Littrell

A.J. McLean

Nick Carter

케빈 리처드슨(Kevin Richardson)

생년월일: 1971.10.3

신체 : 185cm

하위 도로우(Howie Dorough)

생년월일: 1973.08.22

신체: 170cm

브라이언 리트렐(Brian Littrell)

생년월일: 1975.02.20

신체: 173cm

A.J. 맥린(A.J. McLean)

생년월일: 1978.01.09

신체: 175cm

닉 카터(Nick Carter)

생년월일: 1980.01.28

신체: 183cm

2. 소개

명실상부한 보이밴드계의 본좌

세계 최고의 보이그룹이자 보컬 그룹

90년대 전세계 팝의 아이콘, 역사상 가장 성공한 보이밴드

미국의 5인조 뮤지션 그룹. 약자는 BSB로 줄여 쓴다.

H.O.T.,동방신기,빅뱅이 우리나라 보이밴드 끝판왕들이라면, 백스트리트 보이즈는 전세계를 넘어 그야말로 역대 최고를 논하는 아이돌계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다. [1] 이들이 없었다면 현재 전세계적으로 득세하는 수 많은 보이밴드들은 거의 존재할 수 없었을 거라고 봐도 무방하다.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전세계적으로 유행했던 틴팝 음악의 효시 격인 그룹. 90년대 초반 갱스터 랩과 그런지 락에 밀려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으나, 이들이 전지구적인 인기몰이를 시작한 이후 팝 음악계는 10, 20대 취향의 틴팝음악이 대세가 되었다.[2] 나름 팝 음악계에 한 획을 그은 슈퍼 밴드라 할 수 있다.

1992년도에 결성하여 1996년도에 그룹 이름과 동일한 명칭의 앨범 '백스트리트 보이즈'로 데뷔. 원래 5인조로 출발한 그룹으로써 케빈 리처드슨을 필두로 닉 카터 & 브라이언 리트렐 & AJ 맥린 & 하위 도로우 5인의 멤버로 이루어졌다. 멤버 각자의 부침이 있었고 그룹의 리더 케빈 리차드슨이 2006년에 개인사를 이유로 탈퇴했었으나 2012년 4월에 재합류했다. 아이돌임에도 장장 20년 넘게 멤버 교체없이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는 흔치않은 케이스. 결성 당시에는 나이들이 상당히 어렸는데,가장 나이 많았던 케빈마저 25세일 정도였다.

As long as you love me, I want it that way, Shape of my heart등 여러 명곡을 쏟아냈지만 일반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노래는 원빈이 나오는 맥주 광고에 cm으로 삽입되었던 THE ONE[3]이라는 노래였다. 90년대 팝 음악에 관심이 있는 국내 청취자라면 의자춤을 보여줬던 As long as you love me가 더 친숙하겠지만 요맘때 쯤 국내 팝시장은 완전 죽어있던 터라 국내 일반 청취자들 중에서는 이 노래로 이 그룹을 알게 된 경우가 많았다. 훗날 일본 애니메이션인 하나다 소년사에서도 이걸 주제가로 쓰기도 했다. 주제가를 자체적으로 만들기 귀찮았나?

3. 그룹 결성

1992년 켄터키 렉싱턴에서 사촌지간이던 케빈 리처드슨과 브라이언 리트렐은 지역 교회나 학교축제에서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플로리다 올랜도 출신의 AJ와 하위가 만나 연예계 진출을 노리고 있었고, 후에 닉 카터가 하위와 AJ와 합류하면서 3명의 트리오가 되었다. 케빈 리처드슨이 올랜도로 이사를 오면서 낮에는 알바를 하고 밤에는 음악 활동을 하다가 우연히 이들 3명과 합류하게 되었고 케빈은 같이 활동하던 사촌 브라이언을 소개하면서 5인조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때 당시 루 펄먼[4]이라는 제작자가 보이그룹을 모집하는 공고를 냈고, 이들이 여기에 합격하면서 본격적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 올랜도의 시장서울 시장할 때 그것이 아니다. 남대문 시장의 그것이다. 이름 백스트리트 마켓에서 따와 그룹 이름은 백스트리트 보이즈로 결정.

4. 데뷔

1993년 5월 올랜도에서의 지방 공연으로 데뷔.

매니저와 계약을 맺었지만 음반을 내기 위해서는 음반사와 계약을 맺어야 했는데 이것이 문제였다.[5]

1993년은 LA 폭동 이후 떠오른 갱스터 랩과 너바나커트 코베인 사후에 쏟아져 나온 얼터너티브 록 그룹이 주류였던 시대였다. 비록 뉴 키즈 온 더 블록[6]이라는 걸출한 보이밴드가 있었으나 오래가지 못하며 인기 부진을 이유로 해체되었고 미국에는 보이밴드는 이제 한물 갔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음반사 앞에서 오디션을 보며 계약을 맺는 것을 정말 힘든 과정이었으나[7] 다행히 Zomba[8] 레이블과 계약을 맺으면서 음반을 출시하게 되었다.

5. 활동

5.1. 1996년 1집 Backstreet Boys(앨범)

1995년 미국에서 데뷔싱글 We've Got it Goin' On을 발매하였으나 모두의 예상대로 판매는 극히 부진했다. 이유를 따지자면 위에 서술한 대로 보이밴드가 미국에서는 한물 간 장르로 여겨 라디오에서 틀어주려 하지 않았고 반응도 시원찮았다는 것.

결국 빌보드차트 69위라는 매우 부진한 성적을 받아들여야 했고, 이에 회사에서는 유럽으로 고개를 돌려보기로 한다. 그리고 싱글을 발매하였는데 네덜란드,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유럽 5개국 나라 차트 톱5 안에 드는 쾌거를 달성했다.

이를 기반으로 유럽에서 활동이 시작되고, 유럽 투어를 돌면서 1996년 미국을 제외한 나라에 1집 앨범 'Backstreet Boys'를 발매하였다.[9] 이 데뷔 앨범은 유럽 각종 차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면서 3백만 장을 팔았다. 이렇게 유럽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었지만 아직은 그들의 시대까지는 아니었다. 아직은...

이 시기에 발표된 노래

We've Got It Goin' On

Get Down (You're The One For Me)

I'll Never Break Your Heart

Quit Playing Games (With My Heart)

Anywhere For You

5.2. 2집 1997년 Backstreet's Back, Backstreet Boys(앨범)

1997년 2집 Backstreet's Back을 발매했다. BSB의 초창기 히트곡 As Long As You Love Me, Everybody, Quit Playing Games (With My Heart) 등이 나온 앨범이다. 이 중에 특히 As Long As You Love Me는 유럽 차트를 석권하다시피 하였다.

싱글을 발매하는 족족 유럽 차트 상위권을 휩쓸자 매니지먼트는 드디어 미국으로 돌아가서 활동을 재개하기로 결정. 실제로 미국 활동 전 이미 캐나다에서의 인기는 이미 폭발하고 있었고 유럽,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국가에서도 인기를 휩쓸고 있었다. 첫 무대의 쓴 경험과는 상반되게 금의환향하면서 복귀하게 된 것이다.

BSB는 유럽에서 발매하였던 1집, 2집의 히트곡을 묶어서 미국판 1집 'Backstreet Boys'를 발매하였고, 그리고 미국에서만 14 x플래티넘(당시 플래티넘, 다이아몬드 인증은 각각 100만장, 1000만장이었다)이라는 어마어마한 판매량을 기록, 다이아몬드 음반으로 등극했다.[10][11] 총 판매량은 전세계 도합 2200만장추정.[12]

이 시기에 Quit Playing Games (With My Heart)는 BSB가 미국에서 낸 역대 싱글 중 가장 높은 2위를 기록하였다. BSB는 TV 활동보다는 콘서트와 같은 공연 수입에 많이 의존하는 방식을 택했고, 이에 따라 앨범 판매량은 굉장히 높았으나 싱글 판매량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이는 같은 기획사인 엔싱크와 브리트니 스피어스도 마찬가지. (근데 이쪽은 그래도 빌보드 1위곡이 있다. 엔싱크는 2집의 2번째 싱글인 It' gonna be me로 1위를 차지했고,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이후에 부활을 제외하더라도 처음 낸 Baby one more time부터 1위.)

이 시기에 발표된 노래

Everybody(Backstreet's Back)

As Long As You Love Me[13]

All I Have To Give

5.3. 1999년 3집 Millennium

BSB 인기의 최정점을 찍은 앨범. BSB 최고의 히트곡 I Want it That Way가 수록된 앨범으로 유명하다.[14]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는 1, 2집 때 발표한 As Long As You Love Me이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 3집의 I Want It That Way를 BSB의 대표곡으로 여긴다. 미국에서는 6위를 기록했고 유럽차트 1, 2위를 석권했다. 2집에서 얻었던 인기가 3집에서 제대로 폭발한 셈.앨범은 유럽과 미국에서 거의 1, 2위를 다투었고 미국 판매량 13x플래티넘(실질 판매량은 1220만장추정으로 자기들 앨범중에서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다) 전세계 도합 3000만장이상(추정)라는 어마어마한 판매고를 올렸다.

한편 브라이언은 어릴적부터 앓았던 심장 질환을 다스리기 위한 수술을 받았고, 다행이도 쾌차한 듯 쭉 활동을 이어나갔다.[15]

이 시기에 발표된 노래

I Want It That Way

Larger Than Life

The One

Show Me The Meaning Of Being Lonely

5.4. 2000년 4집 Black & Blue

BSB의 마지막 히트 앨범. 대표곡으로는 Shape Of My Heart가 차트 9위에 오르며 앨범에서 낸 싱글 중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미국에서의 판매량은 8x플래티넘(실질 판매량 540만추정). 음반 판매량이 잘 나오던 시절임을 감안해도 높은 판매량이지만, 그 전 두 앨범이 천만 장을 넘었던 BSB로써는 상당히 아쉬운 성적이었다. 전세계 도합 판매량은 1600만 장.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하필 같은 시기에 비틀즈의 미국/영국의 넘버원 히트곡만 모은 베스트 앨범 '1'이 나와버리는 바람에 몇주동안 2위로 밀리는 안습한 일도 있었다. 이걸 두고 죽은(엄밀히 말하면 해체된 밴드지 존 레논을 제외하곤 죽은 건 아니지만)비틀즈가 산 BSB를 밀어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또한 이 시점이 바로 BSB가 내부적으로 굉장히 안 좋았던 시기이다. 할머니의 죽음으로 큰 슬럼프를 겪던 AJ는 약물에 의존하기 시작하여 제대로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AJ의 약물 중독으로 인해 공연 활동이 일시적으로 중단되고, 그룹 멤버들 간에 다툼이 발생한다.

결국 활동 중단에 들어갔고 리더 케빈이 AJ의 호텔 방문을 부수고 들어가 재활 치료를 권유하는 사태까지 가게 된다. 다행이도 재활 치료 후 2001년에 공연을 재개하며 나름 유종의 미를 거두며 B&B 시절의 활동을 종료하게 된다.

이 시기에 발표된 노래

Shape Of My Heart

The Call

More Than That

5.5. 2001년 베스트 앨범 The Hits: Chapter One

미발표 신곡 1곡 Drowning과 그동안의 히트곡 12곡을 모아 냈다. 1993년 이후 끊임없이 활동을 하였던 BSB는 이 앨범을 낸 후 4년 동안 휴식기를 가지게 된다. 미국에서 백만 장이 팔렸으며 Drowning이 빌보드 28위에 올랐고, 그 외 나라에서 상위권을 차지했다.

이 시기에 발표된 노래

Drowning

5.6. 2002~2004년 휴식기 & 닉 카터 솔로 활동

다른 멤버들은 딱히 주목할 만한 활동을 하지 않았고 팀 내의 마스코트 닉 카터가 락 앨범을 내며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엔싱크저스틴 팀버레이크와 비교하면 안습 그 자체였다. 어찌 그렇게 됐누? Now Or Never라는 제목으로 2002년에 발매한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 17위와 판매량 50만 장이라는 기대 한참 이하의 성적만을 내는 데 그쳤다. 유럽에서의 성적도 중위권에 머무르며 신통치 않았던 건 마찬가지. Help Me라는 첫 싱글이 그나마 주요 차트에 이름을 올렸지만, 그 뒤의 싱글들은 완전히 묻혀 버렸다. 오히려 형 닉의 후광으로 솔로 활동을 하던 애런 카터가 쏠쏠한 인기를 얻고 있던 때였다.

이 시기에 발표된 노래

Help Me

Do I Have To Cry For You

I Got You

5.7. 닉 카터 부진의 이유?

닉은 사실 팀 내에서의 인기를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십대 닉의 얼굴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비교되는 경우가 많았고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머리가 커지는 것도 똑같다, 여성팬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았다. 때문에 사실상 닉은 BSB의 얼굴마담이었다. 닉 카터 본인은 활동 시작하기 전에 자신의 인기를 바탕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닉의 솔로 앨범 실패의 이유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5.7.1. 시기상의 불운

2000년대 초반에 이미 백스트리트 보이즈는 베스트 앨범을 끝으로 저무는 해였고, 당시 떠오른 넬리, 에미넴, 50센트 등 이미 미국 음악계는 팝에서 다시 흑인 음악으로 이동하는 시점이었다. 그런 시점에서 장르를 락으로 정한건 음악 시장의 흐름을 읽지 못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기존의 밴드들도 근근히 앨범을 내는 판인데, 락으로 장르 변경했단 자체가 무모한 도전이다. 엔싱크저스틴 팀버레이크가 팝의 동향을 영리하게 판단하여 최고의 흑인 프로듀서 팀벌랜드와 함께 작업을 해 시대에 부응하는 음악을 만들어낸 것과는 대조되는 부분. 저스틴은 또한 간지나는 춤과 비트, 본인의 섹시미를 무기로 하여 자신만의 스타일을 정립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에서 300만 장을 팔고 해외에서도 여러 차트의 정상에 올라선 것이 그를 증명한다.

반면 닉 카터는 본인이 어릴 적 좋아하던 80년대 락을 전면으로 내세웠는데, 앨범의 작곡진들을 보면 그렇게 공감하기는 어려운 느낌이었다. BSB의 수많은 히트곡을 만든 맥스 마틴을 프로듀서로 하여 뭔가 80년대 락 스타일스러운 곡을 만들었지만, 흑인음악으로 완전히 판도가 바뀐 미국 음악계 트렌드를 읽지 못해 맥스 마틴의 작곡은 점점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또한 80년대를 강조하고 싶었다면 본 조비저니 등과 같은 팝 메탈 밴드의 곡을 받았으면 모를까, 여전히 틴팝 작곡가들에게 곡을 받았기 때문에 스타일도 거기서 거기였다. 같은 시기에 성공을 거둔 에이브릴 라빈에 비교하는 이들도 있지만 라빈은 조숙하고 반항적인 십대 소녀의 이미지를 내세우며 성공했다. 반면 닉 카터는 대중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자신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려고 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이미 보유하고 있던 인기를 바탕으로 그냥 시도해본 꼴이 된 셈이다.

5.7.2. 관리 실패

솔로 활동 시절 무려 100kg 가깝게 살이 쪘다는 소문이 있었을 정도로 몸무게가 안습이었다. 실제로 당시 사진들을 보면 불과 3년 전 BSB에서의 모습과는 딴 사람일 정도로 심하게 망가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012년 정도에는 다시 그룹 활동을 하며 어느정도 재건했지만 떨어진 인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또한 할리웃의 사고녀 패리스 힐튼과 연애를 하며, 그나마 있었던 소녀 팬들도 많이 떨어져 나가버렸다. 스스로 자신의 인기 기반을 차버린 셈.[16]

5.8. 2005년 5집 Never Gone

앨범 타이틀이 아직 우리 죽지 않았어라고 외치는 듯하다.

12번 트랙인 케빈의 돌아가신 아버지 추모곡 Never Gone에서 이름을 따왔다. 발표 전 보이즈 투 멘과 듀엣을 한다는 소식도 있었고 유출곡들 또한 흑인음악 풍의 소울, 알앤비, 팝발라드 풍이 주류였다. 그러나 그들의 오랜 파트너 맥스 마틴이 락스타일로 가자고 내세웠고, 결국 완성된 앨범은 그간 유출곡들과는 완전히 딴판인 팝락 스타일이었다.

흑인음악 돌풍 이후 주춤하던 맥스 마틴은 켈리 클락슨, 핑크 등과 작업하며 팝락으로 다시금 재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백스트리트 보이즈와는 그다지 궁합이 좋지 않았는지 다른 작곡가의 Incomplete는 빌보드 13위를 차지하고 여러나라에서 성공을 거둔 반면, 맥스 마틴의 곡은 하위권을 해매며 별 효과를 내지 못했다.

그래도 빌보드 앨범 3위를 차지하며 미국내 백만장을 판매했고, 전세계 3백만장이라는 나름 선전한 성적표를 받아들였다. 이후에 2개의 앨범을 더 발표하였지만 오히려 이 앨범이 더 나았다 싶을 정도로 판매고는 더욱 떨어졌다.

이 시기에 발표된 노래

Incomplete

Just Want You To Know

Crawling Back To You

I Still...

5.9. 2006년 브라이언 솔로 활동

Never Gone 활동을 마치고 난 후 브라이언이 Welcome Home이라는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 기본적으로 CCM 스타일이나[17] 컨트리나 팝발라드도 포함되어 있다. 성적은 빌보드 차트 74위, 판매고는 10만 장을 기록했다. 사실 2006년 발표한 Unbreakable보다 솔로앨범이 더 나은 퀄리티라고 여겨지지만, 인기가 많이 내려간 상태여서인지 그닥 큰 반향은 없었다.

이 시기에 발표된 노래

Welcome Home (You)

Wish

Over My Head

5.10. 2007년 6집 Unbreakable

Never Gone: 사라지지 않는 Unbreakable: 깨지지 않는. 앨범 이름이 하나같이 왜 이모양?

이 앨범부터 BSB팬이라면 인기나 판매량에 대해선 그냥 잊어버리자

앨범 발매하기 전 팀내의 리더이며 흔들릴 때마다 팀을 이끌어주었던 케빈 리차드슨이 탈퇴하였다. 뮤지컬 활동을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주요 이유였다.

Never Gone이 팝락 스타일로 가면서 기존 팬들에게 이질감을 줬다고 생각했는지 이번작은 팝발라드 & 댄스 풍의 예전 스타일로 돌아왔다. 다만 BSB의 히트곡을 전부 만들었던 맥스 마틴과는 작업하지 않았다.[18] 확실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원래 스타일로 가되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다양한 작곡가들과 작업하기로 한 것으로 추정. 재미있게도 엔싱크의 인기 멤버 JC Chasez가 Treat Me Right를 써주며 보이밴드간의 의리(?)를 보여주었다.

전체적으로 어덜트 성향이 강해졌다고는 하지만 예전 스타일이 그대로 묻어나는, 까놓고 말하자면 발전이 없는 앨범이라고 평가받았다. 판매량도 전세계적으로 하향세를 탔고 미국 판매량은 20만 장에 그치며 옛날의 영광을 무색케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서의 판매량이 30만 장을 기록하며 오히려 아시아에서의 판매량이 더 높은 현상을 보여주었다.[19][20]

이 시기에 발표된 노래

Inconsolable

Helpless When She Smiles

5.11. 2009년 7집 This Is Us

나름 최신 트렌드에 맞추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앨범이다. 그래봤자 판매고는 영...

레이디 가가를 히트시킨 현 인기 작곡가 Redone에게 노래를 받았으며 첫 싱글도 Redone의 작품. 신곡 Straight Through My Heart가 이번 앨범의 대표적인 방향을 짐작케 해준다. 성적은 빌보드 106위. 아아 옛날이여 이 곡은 앨범 발매하기 직전 쯤에야 완성되었는데, 가장 마지막에 나온 노래가 앨범에서 첫 트랙이 되었고 첫 활동곡이 된 것은 아이러니.[21]

BSB는 그때까지의 앨범에서 타 가수와 전혀 피쳐링곡을 낸 적이 없었는데, 마지막 트랙 Helpless에서 처음으로 시도했다. 파트너는 그해 최고 인기 래퍼 Pitbull.[22] 노래는 그닥 감흥은 없지만 어쨋든 Pitbull과 함께 했다는 것이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또한 맥스 마틴을 다시 불러와 Bigger라는 한 곡을 받았다. I Want It That Way랑 비슷한 노래를 달라고 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비슷하긴 개뿔 ?

2005년 컴백 당시부터 보컬그룹으로 간다는 명분하에 전성기 시절 보였던 댄스나 그런 스타일의 노래도 거의 없다시피했다. 그러나 이번 앨범은 전성기 스타일+현 트렌드 이런 느낌이다. 변화-예전스타일-주류트렌드 이렇게 옮겨왔지만 성적은 이제 기대하지 말자.

뚝뚝 떨어져 가던 빌보드 앨범 순위도 9위를 차지하며 이제 벼랑 끝까지 왔고 다음 앨범은 10위권 밑이려나 ?? 고정팬층이 빠방한 캐나다, 일본, 네덜란드 정도를 제외하면 중위권을 해매고 있다. 미국에서 9만 8천장이 팔렸고 울나라 아이돌조차도 한국에서 더 많이 파는데 일본에서는 30만 장이 팔리면서 아시아권의 인기는 아직 저물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다.[23][24]

이 시기에 발표된 노래

Straight Through My Heart

Bigger

5.12. 2011년 NKOTBSB

윗글에 서술되어있듯이 BSB가 데뷔하기 전 전설적인 선배 보이밴드 뉴 키즈 온 더 블락이 있었다. 약자로 BSB처럼 NKOTB라고 쓴다.

원래 BSB가 활동할 당시 인기 하락으로 해체한 밴드였으나 2008년 새앨범을 내며 재결합을 선언한다. 2011년 BSB와 NKOTB가 NKOTBSB라는 프로젝트성 그룹으로 새롭게 결성하였다. 주요 활동은 공연 위주로 구성되었으며 NKOTBSB라는 이름의 앨범과 Don't Turn Out The Lights라는 이름의 싱글도 발매되었다. 퇴물 그룹 둘이 합쳐서 공연 해봐야 얼마나 성공하겠냐는 말도 있었지만 그해 공연최고수입을 올린 아티스트 16위를 차지하며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친다.

사실 공연수입과는 별개로 앨범에 대해서는 말이 많다. 아무리 공연을 목표로 결합한 그룹이라고 해도 앨범을 내놓으려면 신곡을 여러 개 수록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13트랙 중 신곡은 고작 2개[25]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이미 베스트 앨범으로 나온 두 그룹의 노래를 사이좋게 나눠 수록하였다. 새로운 결과물을 기대하던 사람들에게는 실망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사실 3곡이라 할수도 있는데 나머지 하나가 두 그룹의 히트곡을 리믹스한 수준일뿐이라

이 시기에 발표된 노래

Don't Turn Out The Lights

6. 디스코그래피

6.1. 정규 음반

6.2. 비정규 음반

  • The Hits – Chapter One (2001)
  • Playlist: The Very Best of Backstreet Boys (2010)
  • NKOTBSB (2011)
  • The Essential Backstreet Boys (2013)

6.3. 싱글

6.3.1. 빌보드 1위

  • 없음

6.3.2. 빌보드 2위

  • Quit Playing Games (with My Heart) (1996)

6.3.3. 빌보드 3위~10위

  • Everybody (Backstreet's Back) (1997)
  • All I Have to Give (1998)
  • I Want It That Way (1999)
  • Show Me the Meaning of Being Lonely (1999)
  • Shape of My Heart (2000)

6.3.4. 빌보드 11위~20위

  • Incomplete (2005)

6.4. 기타

[26]

활동 초기 대한민국 MBC의 음악프로그램인 인기가요 베스트 50(쇼! 음악중심의 머나먼 전신 중 하나)에 게스트 출연(!) 한적이 있다.

백스트리트 보이즈는 데뷔 이래 세 장의 베스트 앨범을 발매 했다. 2001년에 발매된 The Hits – Chapter One과 2010년에 발매된 Playlist: The Very Best of Backstreet Boys, 그리고 2013년에 발매된 The Essential Backstreet Boys이 그것. 하지만 세 장의 베스트 앨범 중 백스트리트 보이즈가 원해서 발매된 베스트 앨범은 2001년 작 The Hits – Chapter One이다. 나머지 두 장은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음반사와 계약 때문에 백스트리트 보이즈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발매 된것. 실제로 2010년과 2013년에 발매된 베스트 앨범 트랙을 보면 싱글로 컷된 노래들만 그대로 옮겨 담았고 보통 베스트앨범이면 으레 수록하게 되는 신곡조차 포함되있지 않다. [27]


  1. [1] 잡지 롤링스톤은 역대 최고 보이밴드로 이미 백스트리트 보이즈를 선정한 바 있으며, 그 아래로 언급되었던 밴드들이 다름아닌 잭슨5, 보이즈 투 멘 등등.. 끝판왕 맞다.
  2. [2] 단 틴팝 음악에 대한 거부감때문에 이를 버블검 팝이라 부르며 평가절하 하는 시선도 상당했다. 래퍼 에미넴이 당대의 틴팝 스타이던 엔싱크나 브리트니 스피어즈를 가열차게 디스하며 주목받던 것도 이 시기.
  3. [3] 한국 한정. 그러나 실제 차트 상에서의 인기는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었다. 3번째 메이저 앨범 Millenium의 4번째 싱글로 빌보드 20위권에 머무른 정도.
  4. [4] 후에 횡령이라든지 성추행으로 인해 자기가 키운 그룹들한테 고소를 먹게된다.
  5. [5] 미국의 음악 시스템은 한국과는 다르다. 음반을 내는 음반사와 가수를 관리하는 매니지먼트사가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따라서 가수로 데뷔하려면 매니지먼트사와 음반사 둘 다 계약을 맺어야 한다.
  6. [6] 그 이전부터 잭슨5 같은 보이밴드가 이미 있었지만,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폭발적인 인기로 보이밴드가 미국 음악계에서 주류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 그룹은 10년 뒤 2011년 백스트리트 보이즈와 함께 NKOTBSB라는 이벤트성 그룹을 결성하였다.
  7. [7] 오디션만 보는 것이 아니었다. 지방 소도시에서 계속 공연을 하며 인지도를 알려야 했다.
  8. [8] 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엔싱크, 백스트리트 보이즈 등 1990년대 후반 미국 음악계를 휩쓸었던 가수가 모두 있던 곳이다.
  9. [9] 팝음악계에서는 데뷔 앨범이나 중요 전환점이 되는 앨범에 간혹 아티스트 이름을 그대로 내기도 한다.
  10. [10] 따라서 미국 앨범은 전세계 앨범보다 하나 전으로 친다. 예를 들면 2집을 미국에서는 1집으로 친다든지
  11. [11] 단 부풀리기가 있었는지 당시 플래티넘은 100만장이었으니 14 x 플래티넘으로 1400만장이 되어야 하지만 실질적인 판매량은 천만장을 조금 넘는걸로 집계되었다. 물론 그래도 다이아몬드 인증은 문제가 없지만
  12. [12] http://www.mediatraffic.de/alltime-album-chart.htm
  13. [13] Brian Littrell은 훗날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 나왔던 Leann과 결혼한다.
  14. [14] 이 노래는 후에 저명한 음악 잡지에서 발표한 1990년대를 대표하는 노래 탑10위권에 꼽혔다.
  15. [15] Show Me the Meaning of Being Lonely의 뮤직비디오의 첫부분에 브라이언이 수술을 받고있는 자기 자신을 보는 장면이 나오는 건 이 때문. 뮤직비디오에서는 사망하지만, 현실에서는 멀쩡하니 안심하자.
  16. [16] 어떻게 보면 비처녀 논란과 비슷하다.
  17. [17] 브라이언은 BSB 활동 때부터 CCM 관련 음악을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18. [18] 맥스 마틴의 노래가 단 하나도 없는 앨범은 이것이 유일하다.
  19. [19] 여기서 자세히 언급은 안 됐지만, BSB의 초창기 시절 유럽 말고도 아시아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특히 Backstreet's Back 앨범과 Millenium 앨범의 아시아 각 나라 팝차트에서 1~2위에 오르기도 했고, 세계판매량에서도 높은 점유율을 보이기도 했다.
  20. [20] 사실 일본의 경우 해외 팝가수에 대한 고정 팬층이 엄청나게 높다. 보이즈 투 멘이나 오프스프링 같은 90년대 가수들은 물론, 심지어 딥 퍼플, 레인보우, 에어로스미스, TOTO, 알카트라즈, 임펠리테리 같은 메탈밴드들의 충성스런 골수팬층이 두텁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활동을 안 해도 일본에서만 발표를 하는 일이 아주아주 많다. . 마치 일류 축구선수가 실력이 하락하면 중동리그로 가는 것처럼게다가 일본은 경제력도 뒷받침되는데다가 2010년대인 아직도 음반을 많이 사는 나라다. 괜히 AKB48싱글이 150만장씩 팔리고 아라시 앨범이 50만장씩 팔리는게 아니다. 그리고 오리콘차트는 음원 성적 반영조차 안한다
  21. [21] BSB 본인들은 이 노래가 앨범 막바지에 탄생하여 나온 사실에 안도했다고 말했다.
  22. [22] 최고 인기 래퍼다. 최고 실력 래퍼가 아니다(...)
  23. [23] http://en.wikipedia.org/wiki/Backstreet_Boys_discography
  24. [24] 이 때문인지 Bigger의 뮤직비디오는 일본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25. [25] Don't Turn Out The Lights와 함께 또 다른 신곡인 All In My Head는 원래 BSB의 데모곡으로 떠돌던 노래인데 NKOTBSB를 결성하며 뉴키즈온더블록과 함께 노래한 버전으로 정식 수록됐다. BSB 데모곡 버전
  26. [26] 해당 영상은 방송3사의 유튜브 정책으로 인해 차단되었으므로 우회해야만 볼수 있다.
  27. [27] 사실 The Essential로 시작하는 베스트앨범은 백스트리트보이즈만이 아닌 여러 아티스트들의 앨범명과도 일치하는데 죄가 트랙들이 인기곡만 있는 순전히 소니뮤직마음대로 발매하는 상술 앨범이다. 소리바다나 네이버뮤직등에 the essntial로 검색을 하면 별의별 유명 아티스트의 천편일률적인 앨범 자켓의 베스트앨범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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