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중숙계

맏 백

버금 중

아재비 숙

끝 계

1. 개요
2. 용례
2.1. 백(伯)·맹(孟)·원(元)•곤(昆), 장남
2.2. 중(仲·中)·차(次), 차남
2.3. 숙(叔), 삼남
2.3.1. 승(升), ?
2.4. 계(季), 사남
2.5. 또 다른 서열 유(幼)·치(穉, 稚), 막내
3. 기타

1. 개요

중국에서 이름이나 , 별명 등을 지을 때 사용하는 항렬. 장남, 차남, 3남, 넷째(막내)를 의미한다. 백부 · 중부 · 숙부 · 계부 등 가족 구성원의 호칭에도 사용된다.

형제간의 서열을 정리하는 용어는 높은 순으로 '백, 중, 숙, 계'이다. 백 대신 맏이란 뜻의 맹(孟)을 쓰기도 한다. 예외가 있는데, 5형제의 막내인 마속은 자에 '유(幼)'가 들어가며, 하후영은 막내는 아니지만 어린 나이에 사망해서인지 자에 '유'를 사용했다.[1] 주이주환의 차남인데 자에 계(季)를 썼고, 제갈정제갈탄의 막내아들인데 자에 중(仲)을 썼다. 백은 맏이라는 뜻이고 계는 막내라는 뜻이기 때문에 아들이 두 명이면 첫째는 백아무개, 둘째는 계아무개가 된다. 5남 이상인 집안의 경우 임의의 글자를 지어서 붙였다.

가족 관계에서 형제를 확인할 수 없는 없는 인물이라도 몇 번째 아들인지를 추측해볼 수 있다. 동탁은 자가 중영이고, 그 동생 동민은 자가 숙영이다. 형제 둘이 항렬을 따랐으므로, 동탁과 동민 형제에게는 큰형이 하나 더 있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동탁(董擢)이라는 형이 있으며 자는 맹고(孟高)로 이 법칙을 잘 따른 작명이다. 유언의 아들 유장 4형제는 유장 빼면 자가 불명이지만 4남 유장의 자가 계옥이므로 그 위의 3형제가 백-중-숙을 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사마의 집안의 경우 자에 이것을 도입했는데 장남인 사마랑이 백달, 차남인 사마의가 중달, 삼남인 사마부가 숙달인 식이다.

그러나 손견이나 동탁의 사례처럼 형제마다 맹(백)중숙계에 다른 글자를 붙였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3형제의 자가 백옥-중옥-숙옥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더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손견의 아들들 같은 작명법은 자와 이름을 서로 부합하게 짓다 보니 그런 것으로, 백중숙계를 빼고 보면 사령서(책)와 부절(부), 권세(권)와 모략(모), 돕다(익)와 돕다(필), 바루다(광)와 돕다(좌)로 상당히 잘 호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유장 형제를 더 파고들면 유모와 유장은 이름에 구슬옥변이 들어가지만 유범유탄은 그렇지 않으므로[2] 더더욱 그렇다.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다. 사실 백중숙계를 써서 자를 지은 사람보다 쓰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다. 대표적으로 제갈근(자유子瑜) - 제갈량(공명孔明) 형제는 이 법칙을 따르지 않았다. 그리고 유방 형제처럼 백중숙계 중 한 글자를 빼고 쓰는 경우도 있다.

2. 용례

※문단명에서 소개하는 용례와 차이가 있는 경우 추가 설명.

2.1. 백(伯)·맹(孟)·원(元)•곤(昆), 장남

2.2. 중(仲·中)·차(次), 차남

2.3. 숙(叔), 삼남

2.3.1. 승(升), ?

자료에 따라 승과 숙이 혼용되는 인물이 있다. 이는 叔과 升의 소전이 서로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혼동된 것으로, 升 자체는 형제의 서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위의 인물들은 현재 升을 표준으로 삼고 있으며, 이것이 당초 叔을 오독한 것인지, 혹은 그 반대인지는 알 수 없다.

2.4. 계(季), 사남

  • 마량
  • 배수
  • 사마욱
  • 손광
  • 양홍
  • 여개
  • 오질
  • 유방 - 삼남인데 季를 썼다. 유방과 두 형 3형제는 叔 없이 伯-仲-季 순인 것.
  • 유장
  • 육강
  • 조등
  • 종회 자 사
  • 주이문 - 주환의 차남인데 仲이 아닌 季를 썼다.
  • 진교
  • 최염
  • 하후위
  • 계찰: 수몽의 막내 아들로 합려에게는 5촌 아저씨가 된다. 총명하고 덕이 높아 형제들이 왕위를 양보하려 했으나 끝내 사양하였다. 계찰이 북방에 사신으로 가던 도중 서나라의 군주를 알현했을 때 서나라의 왕은 계찰이 가지고 있는 보검을 내심 탐냈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계찰은 그 마음을 읽었으나 여정이 험난했기에 몸을 지켜야 하는 고로 검을 지금 주지는 않고 나중에 돌아올 때 주리라 맘 먹고 있었다. 그러나 임무를 마치고 귀국길에 다시 서나라에 들렀을 때 왕은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계찰은 무덤을 참배하고 돌아가는 길에 무덤가에 있던 나무에 보검을 걸어놓고 떠났다. 따르던 종자가 왜 그러느냐고 묻자 이미 줄 마음을 먹었으니 더이상 내 검이 아니라는 말을 남겼다. 여기서 계찰괘검이라는 고사성어가 유래됐다.

2.5. 또 다른 서열 유(幼)·치(穉, 稚), 막내

3. 기타

일본에도 이 비슷한 작명법이 있는데, 장남에게 타로(太郎)나 이치로(一郎), 차남에게 지로(次郎 혹은 二郎)를 많이 붙이는 편이다. 이에 대한 에피소드로, 창씨개명 당시 조선 총독이 미나미 지로(南次郎)였는데, 나는 미나미 지로보다 형이라는 의미로 미나미 타로로 개명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삼남, 사남, 오남으로 이어지는 경우에는 그냥 숫자를 붙여서 사부로(三郎), 시로(四郎), 고로(五郎)라고 짓는다. 단순히 지로라고만 하지 않고 그 앞에 한 글자 더 붙여서 ●+지로라는 이름으로 짓기도 한다. ex) 신타로, 신지로.

정약용이 지은 아동용 한자 교습서 아학편에도 이 네 글자가 같이 나온다. 지석영이 영어를 덧붙인 판본에서는 각각 영어로 ( Eldest / Second / Uncle / Tender )로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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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후술하다시피 자와 이름은 서로 부합하게 짓기 때문에 아마 이름의 뜻이 갓난 아이 영嬰이라서 자에도 어릴 유를 넣은 것 같다.
  2. [2] 자의 작명법 중 하나는 이름의 부수만을 따오는 것이다.
  3. [稚叔] 3.1 3.2 稚와 叔을 둘 다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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