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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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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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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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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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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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 S. 그랜트

러더퍼드 B. 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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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터 A. 아서

그로버 클리블랜드

벤저민 해리슨

그로버 클리블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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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매킨리

시어도어 루스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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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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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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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G. 하딩

캘빈 쿨리지

허버트 후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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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대

해리 S. 트루먼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존 F. 케네디

린든 B.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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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대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지미 카터

로널드 레이건

제41대

제42대

제43대

제44대

조지 H. W.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제45대

도널드 트럼프

※ 22.24대 미합중국 대통령인 그로버 클리블랜드는 한차례 건너뛰고 연임한 사례의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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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제44대 대통령

이름

버락 오바마 (Barack Obama)[1][2]

본명

버락 후세인 오바마 2세 (Barack Hussein Obama Jr.)

국적

미국

출생

1961년 8월 4일 (만 57세), 하와이 주 호놀룰루

신체

187cm, AB형(Rh-)

학력

푸나아우 스쿨 (졸업) (-1979)
옥시덴탈 칼리지 (편입) (1979-1981)
컬럼비아 대학교 (B.A.) (1981-1983)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 (J.D) (1988-1991)

가족

아내 미셸 오바마(1964년생),
딸 말리아 오바마(1998년생), 사샤 오바마(2001년생)

정당

민주당

임기

2009년 1월 20일 - 2017년 1월 20일

종교

기독교

서명

SNS

,

2008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
Time Person of the Year 2008

2012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
Time Person of the Year 2012

[3]

블라디미르 푸틴
2007

버락 오바마
2008

벤 버냉키
2009


2011

버락 오바마
2012

프란치스코 교황
2013


노벨평화상 수상자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901년

1902년

1903년

1904년

1905년

장 앙리 뒤낭
프레데리크 파시

엘리 뒤코묑
샤를 알베르 고바

윌리엄 크리머

국제법학회

베르타 폰 주트너

1906년

1907년

1908년

1909년

1910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에르네스토 모네타
루이 르노

클라스 아르놀드손
프레드리크 바예르

데스투르넬 드 콩스탕
오귀스트 베르나르트

국제평화국

1911년

1912년

1913년

1914년

1915년

토비아스 아서르
알프레트 프리트

일라이휴 루트

앙리 라퐁텐

수상자 없음

1916년

1917년

1918년

1919년

1920년

수상자 없음

국제적십자사

수상자 없음

우드로 윌슨

레옹 부르주아

1921년

1922년

1923년

1924년

1925년

칼 브란팅
크리스티안 랑에

프리드쇼프 난센

수상자 없음

오스틴 체임벌린
찰스 도스

1926년

1927년

1928년

1929년

1930년

아리스티드 브리앙
구스타프 슈트레제만

페르디낭 뷔송
루트비히 크비데

수상자 없음

프랭크 켈로그

나탄 쇠데르블룸

1931년

1932년

1933년

1934년

1935년

제인 애덤스
니컬러스 머리 버틀러

수상자 없음

노먼 에인절

아서 헨더슨

카를 폰 오시에츠키

1936년

1937년

1938년

1939년

1940년

카를로스 사베드라 라마스

로버트 개스코인 세실

난센국제난민 사무국

수상자 없음

1941년

1942년

1943년

1944년

1945년

수상자 없음

국제적십자사

코델 헐

1946년

1947년

1948년

1949년

1950년

에밀리 그린 볼치
존 모트

미국 퀘이커 봉사위원회
영국 퀘이커 봉사협회

수상자 없음

보이드 오어

랠프 번치

1951년

1952년

1953년

1954년

1955년

레옹 주오

알베르트 슈바이처

조지 C. 마셜

국제연합 난민고등판무관사무소

수상자 없음

1956년

1957년

1958년

1959년

1960년

수상자 없음

레스터 B. 피어슨

도미니크 조르주 피르

필립 노엘 베이커

앨버트 루툴리

1961년

1962년

1963년

1964년

1965년

다그 함마르셸드

라이너스 폴링

국제적십자사

마틴 루터 킹

국제연합아동기금

1966년

1967년

1968년

1969년

1970년

수상자 없음

르네 카생

국제 노동 기구

노먼 볼로그

1971년

1972년

1973년

1974년

1975년

빌리 브란트

수상자 없음

헨리 키신저
레득토 (수상 거부)

숀 맥브라이드
사토 에이사쿠

안드레이 사하로프

1976년

1977년

1978년

1979년

1980년

베티 윌리엄스
마레드 코리건

국제앰네스티

안와르 사다트
메나헴 베긴

마더 테레사

아돌포 페레스 에스키벨

1981년

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국제연합 난민고등판무관실

알바 뮈르달
알폰소 가르시아

레흐 바웬사

데즈먼드 투투

핵전쟁방지국제의사회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엘리 비젤

오스카 아리아스

유엔 평화 유지군

14대 달라이 라마

미하일 고르바초프

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아웅산수지

리고베르타 멘추

넬슨 만델라
프레데리크 데클레르크

이츠하크 라빈
시몬 페레스
야세르 아라파트

조지프 로트블랫
퍼그워시 회의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카를루스 벨루
조제 하무스 오르타

지뢰금지국제운동
조디 윌리엄스

존 흄
데이비드 트림블

국경 없는 의사회

김대중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국제연합
코피 아난

지미 카터

시린 에바디

왕가리 마타이

국제원자력기구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그라민 은행
무함마드 유누스

앨 고어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

마르티 아흐티사리

버락 오바마

류샤오보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엘런 존슨 설리프
리마 보위
타우왁쿨 카르만

유럽 연합

화학무기 금지기구

말랄라 유사프자이
카일라시 사티아르티

튀니지 국민4자대화기구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후안 마누엘 산토스

핵무기 폐기 국제운동

드니 무퀘게
나디아 무라드

}}}

1. 개요
2. 생애
2.1. 정계입문 이전
2.2. 정계입문 이후
3. 2008년 대통령 선거
3.1. 선거 운동의 혁명
3.2. 미국 최초의 유색인종 대통령 당선: We have overcome
4. 대통령 집권기
5. 퇴임 후
7. 이야깃거리
7.1. 인종
7.2. 스포츠광 오바마의 오바마 징크스
7.3. 2009년 노벨평화상 수상과 잡음
8. 기타
8.1. 가족
8.2. 유머 센스
8.2.1. 오바마의 "분노 번역기"
8.3. 오바마 갤러리
9. 매체에서

1. 개요

[4]

"Yes, We can! (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2008년, 첫 대선 도전 당시 슬로건이자, 두번째 임기를 마치기 바로 전에 한 고별연설 끝부분에서 언급한 말.[5] 오바마를 상징하는 구호이자 그의 대통령 인생의 처음이자 끝을 장식한 말이다.

미국의 제44대 대통령이자 미국 역사상 최초의 유색인종 대통령.

풀네임은 버락 후세인 오바마 주니어. 이 이름 자체가 다양한 배경을 암시하고 있다. 버락은 스와힐리어로 "신의 축복을 받은 자" 라는 의미이며 후세인은 무슬림인 그의 조부 이름을 딴 것이다. 그리고 오바마라는 이름은 케냐 루오족의 남자 이름이다. # 사족으로 조부는 케냐에서 독립운동혐의로 영국에서 체포되어 고문받아 불구가 되었고 아버지도 미국으로 유학왔을 때 외국에 유학간 케냐 인재라고 따로 명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즉 오바마는 케냐 무슬림 집안 출신이고 케냐 경제학자 출신의 아버지를 두었으나[6] 미국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 본인은 무슬림이 아닌, 꽤나 복잡한 성장 환경의 소유자인 셈.

미들네임인 후세인 때문에 사담 후세인과 겹쳐서 무슬림으로 오해받고 이를 노린 악성 동영상이 돌아다녔다.# 심지어 미국 대통령 선거공화당 측에서도 이를 이용한 유세를 펼쳤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의 "그는 물론 기독교인입니다. 하지만 무슬림이면 어떻습니까?" 발언으로 전화위복.[7] 이후로 공화당은 저 유세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도 미국민의 12% 정도는 오바마가 무슬림이라고 믿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다(…)[8]

참고로 미국은 헌법상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청교도들의 이주에서 시작한 것도 있고 대체로 청교도가 많아 가끔 착각하는 듯 하지만 헌법상으로는 국교가 없다. 그럼에도 사회적으로 기독교를 매우 숭상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헌법 자체가 개신교에 바탕하여 쓰여졌다고 국민들이 생각하고[9] 그로 인해 전통적으로 선서나 맹세 등 중요한 건 웬만하면 다 성경[10]에 대고 하기 때문이다.[11] 또 역대 대통령들 중에서도 가톨릭 교도인 존 F. 케네디를 제외하고는 전부 개신교 신자였다.

여담으로 오바마 재임 시절 그의 경호팀이 경호작전 시 사용하는 코드네임(Code Name)은 '이단자(Renegade)', 즉 이슬람으로 개종한 크리스천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참고로 오바마가 직접 골랐다. 다만, 흑인 문화에서 'Renegade'는 'Go against the system'[12]이라는 의미도 담겨있다. 제이지에미넴의 곡 'Renegade'등 흑인 문화에서 renegade는 대개 이런 의미로 쓰인다.

2. 생애

1961년 하와이로 유학 온 케냐 출신 유학생 아빠와 백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다.[13] 하지만 그의 부모는 2살 때 이혼했고 오바마는 하와이에서 외조부모 밑에서 자라났다. 한때 어머니의 재혼으로 인도네시아에서 거주했던 경험도 있다.

흑인에다가 무슬림 집안 출신이지만 성장 배경은 백인 및 아시아계와 함께 한 독특한 점은 후의 그에게 상당한 이득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미국 흑인 중 다수를 차지하는 서아프리카 출신이거나 그 후손도 아니다. 어머니가 백인이라고 흑인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미국에선 혼혈인은 자기 정체성에 따라 민족이 정해진다.

그 개인만의 가족 관계는 아내 미셸 오바마와 딸 둘.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4번이나 결혼해서 이복 형제들이 여럿이며 어머니 쪽으로도 이부 여동생이 있으며[14] 조부모 쪽으로도 재혼 관계가 있는 모양이라 윗대로 가면 약간 가족 관계가 복잡하다. 심지어 이복 형제 중 한 명은 중국에서 꼬치집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다. [15] 중국 유학생들은 거의 다 이 체인점에서 양꼬치엔 칭따오를 한다. (간판에 오바마 사진도 있다.)

2.1. 정계입문 이전

1980년의 버락.

부모의 이혼과 자신의 인종 정체성에 대한 혼란 등으로 고등학생 시절 마약을 하기도 했었고 이것이 후의 정계 진출 이후에 발목을 잡았지만 오히려 이를 숨기지 않아 정직한 정치인으로 인정을 받는 요소가 되었다.

1980년대엔 리사 잭이라는 사진작가의 포트폴리오에 참여하기도 했다. 관련 글 친구나 가족들에겐 주로 배리(Barry)라는 애칭으로 불렸다고.

푸나호우 고등학교 농구부 에이스 시절의 오바마. 사진상에서는 혼자만 흑인이라서 굳이 누구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학생으로서는 공부와 운동을 대단히 잘했다. 오바마는 푸나호우 고등학교 시절 운동을 아주 잘했으며 특히 농구는 거의 운동선수 급으로 잘해서 재학 중이던 푸나호우 고등학교 농구부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다. 다만, 풀타임 주전은 아니었다. 위의 사진도 2학년 시절 2군팀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그래도 3학년 때는 1군 멤버였다.[16] 그의 고등학교 친구들이 그의 농구실력에 대해 논하면서 그가 "주전이었어야 했다"고[17] 한걸 보면 오바마는 고등학교 시절 주 챔피언에 오를 정도로 강한 팀의 식스맨 정도의 선수로, 프로진출을 노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일반인으로서는 굉장히 잘하는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담이지만 오바마 내각은 유독 스포츠인들이 많았는데 이 중 교육부 장관인 Arne Duncan은 비록 호주리그이긴 했지만 프로선수 출신이었다!

일찌감치 어머니의 영향으로 약자와 소수계층에 대한 관심을 가졌던 오바마는 로스앤젤레스의 옥시덴탈대학교에 입학하고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대학 1학년 때도 마리화나를 피며 히피 문화에 심취한 나태한 학생이었다한다. 그러다 우연히 '투자철회운동'을 접하고 정치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빡세게 1년 공부하고 콜럼비아 대학교 편입해 정치학을 전공으로 졸업한 후 지역사회 조직가로 활동하다가 하버드 로스쿨에 진학해 법무박사(JD) 학위를 취득한다. 하버드 로스쿨 역사상 최초로 하버드 로리뷰 (법률 학술지)의 편집장을 흑인이 맡은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그 날고 긴다는 학생들만 있다는 하버드 로스쿨에서도 상위 10% 의 성적인 학생들만 받는다는 마그나쿰라우데(magna cum laude)를 받고 졸업했다. 그가 대통령 선거에 나간다고 선언했을때 그의 하버드 로스쿨 동창중 한명인 Hill Harper는 버락은 우리 하버드 로스쿨 동기중에서 최소한 가장 뛰어났었던 학생중 한명이거나 아니면 가장 뛰어났었던 친구였다고 회고 하였고 또한 그를 가르쳤던 교수중 한명인 Laurence Tribe 헌법학 교수는 버락은 내가 이제까지 가르쳤던 모든 학생중 가장 뛰어난 학생중 한명이었다고까지 회고하였다. 역시 오바마를 가르쳤던 하버드 로스쿨 교수였던 Charles Ogletree은 정말로 똘똘하고 또 겸손하였던 학생이였다고 회고했다. [18] [19] [20] 하버드 로스쿨은 우선 미국 최고의 로스쿨 중 한곳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선거기간만 되면 정치인들이 성지처럼 다녀가는 미국 법조계/정계에서는 핵심 중의 핵심. 미국 로스쿨 법률 학술지 중 가장 파워가 있는 게 하버드 로리뷰. 따라서 오바마가 편집장이 된 것 자체로도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첫번째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21]을 하버드 로스쿨 재학 중 썼는데 쓰게 된 이유도 로스쿨 입학 전 시민단체 활동 등의 이유도 있었지만 자신이 흑인 최초 하버드 로리뷰 편집장이 되어 엄청난 유명인이 되었기 때문. 이후 시카고의 흑인 빈민가들을 위한 사회운동가로서, 그리고 1997년부터는 일리노이 주 의회 상원의원으로서 활동하였고 시카고 대학교 로스쿨의 인기 헌법학 교수로서 재직하기도 했다.

하버드 로스쿨 학생 시절 랑델 도서관(Langdell Library)에서

2008년 대선 전후를 통해 반토막이나마 학부를 보낸 콜럼비아 대학측에서는 오바마를 초빙하려고 애를 썼지만 출신 로스쿨인 하버드는 신나게 갔으면서 콜럼비아 쪽에는 별로 보이지도 않아 재학생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본인 말에 의하면 콜럼비아 재학시 인종차별에 대해 심도 있게 배웠다고 했는데 그게 본인이 안 좋은 꼴을 당해서 콜럼비아에 대해서는 나쁜 기억만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루머도 돌았기도 하다. 그래도 학생들에겐 마냥 인기가 좋았는지 선거기간 내내 자발적인 오바마 지지 전단지가 콜럼비아 캠퍼스 내에 휘날렸으며 대선 당일 자정 즈음 오바마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당시 캠퍼스 내에 있던 학생들이 모두 학교 정문 앞 116번가 앞으로 뛰쳐나와 그 길로 할렘까지 행진했다.

2.2. 정계입문 이후

1996년 정계에 입문하고 난 이후에 2000년에는 일리노이주 하원의원후보에 도전했지만 경선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전화위복으로 2004년 흑인으로선 세번째로 일리노이주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오바마를 전 미국에 알리게 된 계기는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로 이때 오바마는 찬조연설로 일약 전국적인 스타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3. 2008년 대통령 선거

이후 2007년 2월, 4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것을 선언하고 본격적으로 민주당 경선레이스에 돌입한다.

사실 민주당 경선에서 오바마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힐러리의 당내 기반이 워낙 견고한 데다가 오바마는 힐러리 클린턴에 비하면 거의 신인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오바마는 겨우 초선 상원의원이었다. 그런 탓에 민주당 경선은 사상 유례 없는 치열한 혈전을 치뤘지만 오히려 이것이 흥행요소가 되어서 오바마를 유력 후보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초기엔 힐러리가 경선이 뜨거워져야 본선 경쟁력도 더 높아지기에 오바마의 출마와 선전을 부추겼지만 오바마가 이겨버렸다. 안습. 힐러리 클린턴은 매우 인기 없는 전쟁이 되어버린 이라크 전쟁에 찬성표를 던진것이 큰 치명타였다. 또한 버락 오바마가 민주당의 큰 세력이 된 소수인종들에게서 (특히 흑인) 많은 지지를 받은것도 깜짝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다.

힐러리와 오바마의 지지율 추이. 보면 9월달, 경선 3달 전까지도 힐러리 클린턴에게 뒤지고 있었다는것을 볼 수 있다.

일찌감치 공화당 후보로 결정된 존 매케인과 사상최초 흑백대결로 관심을 끈 이번 대선에서 8월 전당대회 이후 세라 페일린을 지명하여 단숨에 관심을 자기 쪽으로 돌려버린 매케인에게 뒤지기도 했으나 9월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시작된 미국 금융위기에서 차분하고 안정적인 대응과 대안제시로 결국 승부의 흐름을 자기 쪽으로 돌리는데 성공했고 11월 4일 대선 투표일까지 별다른 이변 없이 대선은 오바마의 승리로 연결되었다.

존 매케인과의 여론조사 평균

그리고 미국은 새로운 역사를 썼다.

3.1. 선거 운동의 혁명

오바마의 2008년 선거 운동은 오바마에 대한 지지여부를 막론하고 미국의 많은 정치 분석가들로부터 "지금까지 내가 본 것 중 최고"라는 평을 들었는데 초기부터 선거 운동시 기본적인 메시지와 기본 전략을 처음부터 확실히 정하고 인터넷[22]과 지역적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해 수많은 유권자들과 연락을 취해 수많은 자원 봉사자들을 모아 방대한 조직망에 짜넣어 미국 정치 역사상 전례 없는 엄청난 선거 자금을 대부분 일반 유권자들로부터 벌어들였다(기부자당 기부량 평균이 약 50불). 오바마 진영은 길고 험난한 선거 기간에도 큰 실수를 범하지 않았고 기본 전략에 큰 변화 없이 충실했으며 거대하고 효율적인 선거 조직을 통해 엄청난 양의 선거 자금을 벌어들였고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메시지를 유지해 전체적으로 매우 절제되고 안정적인 선거 운동을 벌였다. 이는 경선 기간 중 선거 자금을 서투르게 관리해 금전적으로 홍역을 치른 클린턴 진영이나 중심적인 메시지를 정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의 공격용 메시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페일린을 영입하는 도박을 했으면서도 결국 중심을 잡지 못한 매케인 진영과 크게 비교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 두 진영은 이후 내부 분열로 심한 홍역을 앓았다.

미국 정치판이 돈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이지만 오바마의 선거 운동은 차원이 다른 정도였다. 미국 연방 정부는 주요 정당 후보들을 위해 대선 선거 자금을 지원하는데, 이게 좀 복잡해서 설명이 필요하다. 미국 선거 운동 기간은 굉장히 길다. 몇 달간 이어지는 경선에서 피터지게 싸운 뒤에 각 당의 후보가 맞붙는데, 연방 선거 지원은 경선이 끝나고 본선 과정에 이르러서야 이뤄진다[23]. 사실 이 단계에 이르면 선거 캠프도 지치고 자금도 바닥난지라 웬만한 후보는 얼씨구나 하고 연방 정부 지원금을 받는데…오바마는 이걸 거절했다. 연방 정부 지원금을 받으면 캠프로 직접 들어오는 기부금이 제한 되는데, 정부에서 주는 푼돈 받느니, 차라리 그냥 우리가 벌어서 쓰지라는 계산을 내린 것. 참고로 저 연방 정부 지원금을 거절한 본선 후보는 오바마가 처음이었다. 그만큼 기부금 네트워킹이 탄탄하고 캠프의 능력에 자신감이 있었기에 저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오바마는 매케인의 두 배를 기부금으로 벌어들였다. 무려 7억 8천만 달러[24]. 이쯤 되면 인간 ATM이다.

오바마의 승리를 이야기할 때 보통 미국민의 변화를 위한 갈망이나 부시에 대한 반감을 들며 이것이 정해진 승리였다는 의견이 있지만 어떤 감정이나 사상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을 효율적으로 동원하지 못하면 정치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바마는 그것을 매우 효율적으로 수행해내는 조직을 창설하고 유지해냈고 드물게 닥쳐온 위기에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응해냈다. 이것은 그의 정치가와 조직의 장으로서의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다.[25]

3.2. 미국 최초의 유색인종 대통령 당선: We have overcome[26]

2008년 11월 4일, 당선 수락 연설을 하기 전
연단에서 가족과 기뻐하는 오바마

오바마의 당선이 확정된 날, 영국 가디언[27]지의 표지
와우![28]

오바마의 부계가 아프리카 혈통이어서 흑인으로 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백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것이 대통령이 되는 데에 방해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 초기에는 많았지만 개표 결과분석에 따르면 오히려 흑인인 것이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는 데에 큰 힘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백인 중에서 48%가 오바마를 지지했지만 라티노의 66%, 흑인들의 98%가 오바마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4. 대통령 집권기

5. 퇴임 후

퇴임 후에는 워싱턴 D.C에서 개인 사무실을 열 예정이다.# 또 캘러라마에 93억 원을 주고 새집을 샀는데, 이 지역은 이방카 트럼프 부부와 렉스 틸러슨 등이 살고 있는 부유한 동네이며 또 집은 그 동네에서도 두 번째로 비싼 집이라 한다.

같은 대통령 후보였던 존 매케인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추모연설을 하였다.

6. 평가

7. 이야깃거리

7.1. 인종

아버지가 캐냐 출신 흑인이고 어머니는 백인인 1세대 혼혈, 즉 하프다. 절반은 백인인지라 첫 흑인 대통령이라기보다는 첫 유색인종 대통령이라는 지적이 있지만 미국에 '순수한' 흑인은 얼마 없다. 대부분 20~30% 정도는 백인 피가 섞여있다. 미국 흑인 상당수가 흑인이라고 해도 피부가 짙은 황색이나 갈색에 가까운 것도 그 때문이다. 오바마가 흑인이라는데에 이견을 제시하는 것은 지극히 일부의 의견이고 일단 본인 스스로가 흑인이라고 하고있으므로 사실상 논외.

이런 식의 흑인 분류는 원래 악명 높은 한 방울 규칙(One-drop rule) 에서 시작되었다. 흑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여있다면 흑인이라는 것으로 '순수한 백인의 피' 에 유색인종의 피가 섞일 경우 피가 '더럽혀지는' 것으로 보는 인종차별적인 법칙. 오바마의 경우에는 백인 어머니에 의해 길러진 것도 '반쪽 흑인'의 이미지에 한몫하는 듯하다.

7.2. 스포츠광 오바마의 오바마 징크스

스포츠광이기도 해서 그 중에서도 자신의 연고지인 시카고 관련 팀들의 팬이다. 이제까지의 대통령들이 주로 야구 팬이었던 것처럼 야구도 좋아하는데 시카고 화이트삭스 팬이기도 하여 워싱턴 내셔널스의 시즌 개막 경기에 화이트삭스 모자를 쓰고 시구를 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2009년 카디널스의 부시 스타디움에서 열린 올스타게임에 화이트삭스 저지와 모자를 쓰고 시구를 하고 마크 벌리퍼펙트 게임을 했을때 격려 전화를 하는 등 화이트삭스 광팬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이후 US셀룰러 필드에서 시구를 한 적은 없다(2005년 상원의원일 때 시구를 했다).[29] 또 2012년에 케빈 유킬리스가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 되자 표 텃밭인 보스턴에서 '"유킬리스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농담을 했다가 야유받은 적도 있다. 축구도 좋아해서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당시 미국이 치르는 경기들을 모두 직관했다. 또한 콜로라도 라피즈 구단으로부터 유니폼을 선물받는데 등번호가 10번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아싸! 리오넬 메시랑 등번호가 같다!며 환호하기도 했다.

아이스하키도 역시 시카고를 연고로 하는 시카고 블랙호크스의 팬인데, 재임 중 3번이나 우승해서 오바마를 기쁘게 하는 팀이라 하더라….

농구광이기도 하다. 농구로는 시카고 불스, 풋볼로는 시카고 베어스 팬이다. 2010년 추수감사절 연휴에는 농구 경기를 하다가 입술 부위를 12군데나 꿰메는 부상을 입었을 정도. 물론 보는 것도 좋아해서 NCAA 경기를 관람하거나 항공모함에서 연 적도 있다! NCAA는 3월의 광란 (플레이오프 혹은 포스트시즌) 때 항상 대진표를 채우는걸로 유명한데, 이걸 ESPN에서 Baracketlogy라는 이름으로 세그먼트를 해서 매년 틀어준다. 정확도는 그리 높지도 않고, 우승팀을 맞춘것도 1번, 2009년 첫 임기 첫해때였다. 심지어 1969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 재임중에 건설한 백악관 지하의 1개 레인짜리 볼링장을, 2009년 취임하고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밀어버리고 # 거기에 농구장을 건설했다가 볼링협회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

선거에 출마했을 경우, 개표 직전에 농구 시합을 벌이면 당선된다는 징크스를 갖고 있다. 존 매케인과의 대통령 선거에서도 오바마는 지인들을 불러모아 농구 시합을 실시했는데 당선되었고 밋 롬니와의 최후반 선거 경합을 벌일 때 역시 그랬다.

특히 2012년 대선때에는 롬니가 마지막 며칠을 내내 죽을 힘을 다해 오하이오 주에서 유세전을 펼친 반면, 오바마는 그 마지막 며칠동안 일체의 정치활동을 하지 않고 역시 친구들을 불러모아 놓고는 농구 시합을 했다. 그 이후 오바마가 당선되었다. 한마디로 농구시합을 하면 무조건 당선된다는 것이 오바마 징크스이다.

2016년에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백악관을 방문했을때에도 (장난삼아) 자기는 스테판보다는 클레이 탐슨의 점프슛폼이 더 맘에 든다고했고, NBA단일시즌 최강팀의 일원이 팀을 이끌고 감독으로 오자, 오바마는 "NBA 최강팀의 일원이 온다는거는 아주 드문일이죠.. 운좋게도… 1995/1996 시카고 불스의 멤버, 스티브 커가 여기있슴다!"라고 했다.

NCAA 칼리지 풋볼 플레이오프(College Football Playoffs) 제도의 도입에 찬성하기도 했다. 2008년 당시, BCS(Bowl Champions Series) 랭킹 산정에 다소 논란이 있었는데[30] TV에 출연해서 플레이오프 제도를 도입해야 할 시기가 됐다고 말한 바 있다.

7.3. 2009년 노벨평화상 수상과 잡음

2009년 4월, 프라하에서 오바마는 "핵무기 없는 사회"라는 주제로 연설을 하여 전략무기감축협정 갱신,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 (CTBT)의 비준, 핵물질 방호와 안전을 국제적으로 논의하고 공조하기 위한 핵안보정상회의의 구상을 밝혀 핵무기 확산에 강력한 제재를 천명하였고, 그 해 노벨상(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그것도 재임 10개월만에 받았다.

이 때문에 수많은 논란이 되었다. 아직 취임 10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시점인 만큼 정책상으로도 평가받기가 모호하고 유화정책의 취지는 좋지만 아직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폴란드 자유 노조 지도자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고, 이후 초대 대통령을 역임했던 레흐 바웬사도 '축하할 일이고 기쁘지만 너무 이른데' 라는 발언을 하였고 뉴스위크CNN을 비롯한 미국 언론사도 반응이 엇갈리며 미국의 극우파들도 입에 거품 물며 노벨 심사위원들을 비난했다. 오바마 대통령 지지자들마저도 아직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은 만큼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오바마 본인도 수상 소식을 듣고는 '뭐 내가?! 벌써?!' 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당해 수상할 만한 인물이 없었다는 시각도 있으나 같이 후보로 선출된 후보들을 보게 된다면 세계평화를 위해서 오바마보다 나은 성과를 올린 사람이 과연 없는가 하는 의문점이 들 수밖에 없다.

2009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총 205건의 인물 혹은 단체가 추천되어 역대 최다 후보수였던 2005년의 199건을 약간 상회했다. 게다가 후보들 중에는 오랜 기간 에이즈퇴치운동과 인권운동에 종사해왔던 중국의 반체제 인사 후자아나 히말라야 오지에 여학교 78개를 세운 그레그 모텐슨 등 쟁쟁한 인사들이 대거 포진했다. 게다가 노벨 평화상은 노벨상 중 유일하게 단체에게도 수여가 가능한 상이다. 정 인물이 없었다면 차라리 단체를 선정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예를 들어 비정부기구인 집속탄연합(CMC)는 국제 집속탄 사용금지 협약 체결을 위해 100여개국에 파견되어 설득 작업을 벌여 큰 역할을 하였으며 이는 노벨 평화상 수여 원칙인 국가간의 우애를 돈독히 하거나 상비군을 폐지·축소하거나 평화회담을 개최하고 주장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나 단체에 가장 적합하다고도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반론도 있다. 신 전략무기감축협정 또한 '상비군을 폐지·축소'라는 조건에 충분히 해당 가능한 사안이기 때문. 게다가 같은 서방세계에서도 대놓고 반기를 드는 국가가 이나 있고, 서방세계의 맹주인 미국도 별 관심 없어서 사실상 영향력이 제로에 가까운 국제 집속탄 사용금지 협약과 달리, 신 전략무기감축협정은 세계 핵전력 1위 국가2위 국가의 핵전력을 직접 감축하는 직접적인 효력을 가진 협정이다. 세계 평화에 대한 실질적인 기여도로 따지자면 국제 집속탄 사용금지 협약 따위보다 몇 배는 위로 쳐줘야 할 것이다.

심사위원들이 오바마를 좋아해서 줬다기보다는 '부시에 대한 반감' 으로 준 게 아닐까(…) 하는 이야기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은 대통령이 된 후의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대통령이 되기 전 유색인종의 인권을 위해 노력한 일, 아니 흑인 대통령 당선 그 자체만으로 미국 내 화합에 기여한 점을 고려한 것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있다. 노벨평화상이 원래 주는 이유가 좀 모호한 상이기도 하고.

오바마가 퇴임한 이후에는 2009년에 러시아와 미국 간의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이 갱신되었기 때문에 받은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31] 사실 신 전략무기감축협정이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바는 의외로 작지 않은데, 핵전력 감축에 대한 신규 협정이 없는 상태에서 START I이 만료될 경우 미국과 러시아가 다시금 핵무기 전력을 증강하더라도 그걸 막을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32] 게다가 오바마는 학생 시절은 물론이고 상원의원 시절 대표적인 핵전력 감축론자로 유명했다. 2010년에는 공약대로 워싱턴에서 제1차 핵안보정상회의를 개최하였고, 2012년 서울, 2014년 헤이그를 거쳐 2016년까지 네 번의 회의로 이어지게 되었다.

2기 임기 막바지에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와 이란과의 핵 협상 타결이라는 빅 이벤트가 성사된 뒤에는 오바마가 충분히 상 받아간 값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 편이다.

이후 스티븐 콜베어의 레이트 쇼에 나와서 노벨 평화상 수상과 관련한 셀프디스를 하였다. 솔직히 본인도 왜 받은지 모르겠다고(...) 물론 쇼를 위한 농담이니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말자. [33]

8. 기타

  • 대통령이 된 후 여러 공식 석상에 지각을 자주 해서 빈축을 샀다. 3, 40분 지각은 기본이라는 듯.
  • 대통령 8년 동안 굉장히 머리가 희게 변했다. 아무래도 세계에서 초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의 자리에 있다 보니, 저렇게 된 듯하다.

  • 대한민국의 교육을 본받자는 이야기를 했다. 이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을 본받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바마는 한국의 "수업일수"를 본받자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의 수업일수를 본받자는 이야기는 미국 교육계에서 매우 오랫동안 논의되어온 제안이고 그리고 미국 공교육이 좀 많이 개판스러운 것도 사실이다.[34] 그러므로 "미국에도 드디어 야자가!" 하는 식으로 설레발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일부 한국과 미국의 교육전문가들은 "오바마가 제대로 잘못 알고 있다" 며 충공깽에 떨고 있다. 심지어 "한국 교육은 미국의 100년 전과 같다" 라고 평한 칼럼니스트도 있었다.
  • 2009년 아시아 순방 도중 덴노에게, G20 정상회의 도중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에게 90도 인사를 해 반대파들에게 미국의 자존심을 구겼다고 빈축을 샀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정치적 제스처라는 반응이 있다. 오바마가 겉으로는 친아시아적 외교를 진행함으로서 각국의 친미파들의 호감을 사고 배타적 정책을 펴려는 정부들을 자제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35] 실제로 중국의 경우가 어느 정도 그러하고 일본의 경우는 결국 후텐마 기지의 후폭풍이 심해지면서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이 실각했다.
  • 미국의 코미디 프로그램인 SNL에서는 오바마가 열받으면 "더 락 오바마" 가 된다고 한다(…)[36]
  • 한미동맹친선협회라는 단체가 G20차 한국에 오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국 이름을 지어주려고 하는데 이름이… # 오한마
  • 도호쿠 대지진때 "I'm confident the Jap, uh, Japan will recover and rebuild"(저는 쪽발.., 아니, 일본이 재건하리라 확신합니다) 라고 인터뷰한 게 플짤로 돌아다니고 있다.# 해당 영상 링크 실제로 일본인을 비하하려 했다기 보다는 the Japanese people(일본인들)이라고 하려다 Japan(일본)으로 말을 바꾸며 일어난 일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정황을 놓고 보면 재밌는 이야기가 가능하다.
  • 2010년 2월부터 오바마는 원자력 발전소 2기를 건설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려 하고 있었다. 1973년에 마지막으로 착공한 원자력발전소(완성은 1990년)를 근 40년 만에 다시 착공하려는 오바마 행정부의 가장 중요한 정책 중의 하나였다. 이는 8000억 달러를 투입하는 대계획으로 주목적인 탄소배출권 문제 해결을 통한 친환경 이미지 구축과 당시의 불황 극복을 위한 경제적 효과를 동시에 노린 야심찬 계획이었다. 재선을 위해 기획한 좀 규모 작은 뉴딜 정책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 모두를 날려버리는 병크를 일본이 저질렀으니 그게 바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한국에서는 오바마가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했다는 것을 별 비중없이 다루었으나 실질적으로 원자력발전소 사업은 오바마의 재선의 발판이 되는 가장 중요한 정책이었다. 오바마는 사고 이후 한동안 발전소 건설에 대해 함구하다가 한 해가 지난 후에야 다시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 도널드 트럼프가 오바마가 실은 케냐 출생인데 미국에서 태어난 것처럼 조작해서 대통령 되었다고 턱없는 음모론을 펼치자 백악관 기자단 연례만찬(White House Correspondents' Dinner)[37] 에서 "저번엔 제 출생 증명서를 공개했죠? 이번엔 제 출생 비디오를 공개하도록 하죠" 라고 말하고는 라이온 킹심바 탄생 장면을 틀었다. 그리고 한 말이

"…사실 이 발표를 제일 기뻐하고 있는 건 그일 거라 생각합니다. 이제 그는 좀 더 중요한 문제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달 착륙은 조작됐는가? 로스웰에서 실제로는 무슨 일이 있었나? 비기2pac은 어디에 있나? 같은 것들 말입니다."[38][39]

  • 2011년 5월 이루어진 넵튠 스피어 작전 모니터링 사진에서는 작전을 지휘한 마샬 웹 공군준장에게 자리를 내주고 옆에 앉아있었는데 그 모습이 그냥 동네 형(…) 그리고 중간에 지루하다며 카드게임도 하고 왔다.
  • 2011년 5월 대통령 전용차가 아일랜드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나서다가 문턱을 넘지 못하고 멈춰섰다. 백악관 경호실은 황급히 '그 차에는 대통령님이 탑승하지 않으셨다. 그건 예비차다' 라고 발표. 사족이지만 이건 딱히 차에 고장이 있는 것보다는 VVIP용 차량은 겉만 자동차고 속은 탱크라고 해도 좋을 만큼 방탄이 잘 되어있다. 물론 무게도 탱크만큼 무겁다. 문턱을 못 넘은 것은 아마도 그 때문….
  • 2011년 5월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영토를 할양하고 공존해야 한다는 연설을 하여 이스라엘로부터 강력한 비난을 받고 있다. 물론 이는 미국의 국익에 대한 현실적 손익계산이 개입된 것으로 연속적인 중동의 체제이행 이후 들어설 정부들의 반미감정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중동의 평화무드를 조성하려는 시도라는 분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아니오, 하지 마세요. 그냥 저 청년은 이 자리에 있게 해 줍시다. 가족을 걱정하는 저 청년의 열정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는 절차라는 게 있고 그 절차라는 건 여기서 소리지르는 것과는 달리 그리 쉬운게 아닙니다.

경비요원들이 이 청년을 연설장에서 쫓아내려고 할 때 오바마는 그걸 막고 오히려 이 청년에게 경의를 표하는 발언을 했다.
  •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자 오바마는 기쁠때나 슬플때나 상관없이 미국과 대한민국은 우방국가이며 미국은 대한민국이 어려울 때 도와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하며 사고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구조 작업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도와주도록 조치했다.
  • 4월 25~26일 방한시 박근혜 대통령이 질문에 대한 오바마의 답변이 끝난 후에 당황하며 머뭇거리자 "Poor president Park doesn't even remember what the other question was"(불쌍한 박 대통령이 다른 질문이 뭔지조차 기억을 못한다) 라는 농담인지 조롱인지 애매한 발언을 했다. 영상을 보면 알듯이 말 자체의 어투는 단순한 장난이라고 봐줄 수 있으나, 그 뒤 박 대통령이 머뭇거리는 게 부각되어 조롱의 의미로 부각되는 듯 하다. 오바마 정도나 되는 사람이 미치지 않은 다음에야 일부러 대놓고 깠을 리는 없겠으나, 이는 외교적 결례로 비춰질 수 있는 부분이라 백악관에서는 이 부분을 삭제하거나 자막처리하는 등 수습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그리고 언론에서는 특별한 언급이나 조치가 없다. 일부에서는 "조롱당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다만 이쪽에서 잘못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그냥 넘어간 것일 수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을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는 의심을 살 수도 있는 장면이라…
  • 2015년 1월 25일에는 북한은 결국 무너진다고 발언했다. 오바마는 북한 따위 가만 내버려 둬도 알아서 무너진다는 발언을 하면서 북한같이 폐쇄적이고 고압적이며 인권을 유린하는 나라는 오래 못간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에 북한 당국은 머리끝까지 열폭했다. 이 말을 깊게 생각해본다면 굉장히 뼈 있는 발언으로 "우리 미국은 나라를 똑바로 다스리기 때문에 멸망할 일이 전혀 없지만 너네 북한은 나라를 똑바로 못다스리고 너무 국민들을 가혹하게 굴려서 가만히 냅둬도 시민혁명으로 정권이 붕괴될 것이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 오바마는 블랙베리 마니아이다. 자신이 블랙베리를 워낙 좋아하고 중독되어있다고 밝힌 상태. 백악관에 입성해서도 블랙베리를 사용하겠다고 고집을 부려 결국 쓰게 됐지만….
  • 오바마의 목소리를 들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목소리가 엄청 굵다. 거의 시영준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목소리가 굵다.

  • 국내 가격비교 사이트인 에누리닷컴에서 오바마 닮은꼴 모델인 레지 브라운이 김정은 닮은꼴 UIUC 한인 학생인 김민용과 함께 광고모델로 출연했다.

  • 관용차로는 THE BEAST라고 이름붙여진 캐딜락을 탄다. 차체는 강철/세라믹/알루미늄 복합장갑으로 강화되었고 문은 20cm 두께 강철 / 복합장갑[40]으로 보호되며 가장 취약한 창문조차도 소총 철갑탄을 막아낸다.

  • running wild with bear grylls에서도 출연하셨다. 방영일자는 12월 24일 오후 11시.(한국에서)
  • 오바마가 반기문에 이어 UN 사무총장(!!!)에 출마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기사[41]
  • 세계자연유산로 유명한 파파하노모쿠아키아 해양국립기념물이 현재의 4배 면적인 150만㎢로 늘릴 계획을 발표한 데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아서 감사를 표시하는 뜻으로 최근 새로 발견한 물고기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이름은 토사노이데스 오바마 게다가 물고기에 오바마 대통령의 이름을 붙인 것은 이번이 두 번째라는 점이다.
  • 2016 할로윈 파티에서 임기 막바지인 레임덕으로 분장한 어린이가 나타나 화제를 모았다.#
  • 재임 중 만난 한국 대통령들과 찍은 사진 중 이명박 대통령하고는 평범하게 독대했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찍은것을 보면 무시하고있거나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보는게 많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전에도 "처음으로 남의 나라를 걱정하게 된 오바마였다."란 짤로 돌아다녔지만 터진 지금와서 다시 재평가받고 있다. 모든것을 알고있던 오황상의 예언이란 드립도 나오는 중. 또한 여권의 잠룡 반기문 UN사무총장을 보는 표정도 정색해서 영 좋지 않았다고 한다...#
  • 퇴임을 앞두고 미국과학진흥협회(AAAS)가 발간하는 과학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미국의 기후정책에 관한 글을 기고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이다.#
  • 한편 오바마가 《미국의학협회저널》(JAMA; The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에 투고한 논문 "United States Health Care Reform: Progress to Date and Next Steps" 는 학술문헌의 SNS 상의 인기를 측정하는 지표알트메트릭스(Altmetrics)에 의해 2016년의 인기 과학논문 1위로 선정되었다. 신문기사 315건, 트위터 8,943건, 페이스북 200건, 레딧 14건이 이 논문을 인용 및 언급, 공유하고 있었다고. #
  • 퇴임 후 프랑스에서 그를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려고 했는데, 이유는 기성 세대들에 대한 불신이 컸던 게 큰 원인이었다. 그러나 오바마는 결국 이에 별다른 관심조차 없었고, 대신 마크롱에게 격려만 하는 차원으로 끝냈다.
  • 퇴임 후 가족들과 함께 2017년 7월 2일에 한국을 재방문하였다. 조선일보 초청으로 방한하였으며 3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에서 열리는 행사에서 대통령 재임 기간의 경험과 리더십에 대해 연설할 예정이다. 또한 이명박 전 대통령과도 약 30분간 면담해 의견을 나눌 계획이라고. #

8.1. 가족

아버지 버락 오바마 시니어

어머니 앤 던햄

외할아버지 스탠리 A. 던햄(Stanley A. Dunham). 오바마의 외모는 오바마의 외할아버지와 가장 닮았다는 평이 많다. 또 오바마의 작은 외할아버지에 따르면 오바마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인 "Now look, ..."과 같은 언어적 표현과 손동작들은 오바마 외할아버지로부터 배운거 같다고 한다. 오바마의 성장기에 아버지가 없었던 만큼 Male Figure로서 오바마 외할아버지가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 아내 미셸 외에도, 딸들인 말리아 오바마(1998년생)와 샤샤 오바마(2001년생)도 훗날 정계에 진출할 예정이라는 소문이 워싱턴 정계에 퍼져 있다. 말리아, 샤샤 자매가 어려서부터 이미 오바마의 각국 순방에 참여하였으며 이미 세계 각국 정상들의 눈도장을 찍어뒀다.
  • 오바마의 가족들은 전부 장신이다. 오바마 자신의 키부터 187cm인데 그의 아내인 미셸 오바마의 키가 5피트 11인치(180cm). 오바마에게는 두 딸이 있는데 2011년 오바마의 하와이 휴양사진에 찍힌 장녀 말리아 오바마(1998년생)은 이미 180cm에 거의 달했으며[42] 차녀 샤샤 오바마(2001년생) 역시 2015년을 기준으로 하면 이미 175cm가 다 되어간다. 심지어는 미셸 오바마의 오빠인 크레이그 로빈슨의 키가 198cm로 말리아와 샤샤 자매는 부계, 모계 양쪽 다 키가 크다.
오바마는 루오족 계통인데 사실 루오족이 포함된 나일로트계 민족들이 키가 큰 편이라고 한다. 여담으로 늦둥이들이다. 버락 오바마가 37세와 40세, 미셸이 34세와 37세에 본 딸.
2013년 6월 16일, 아버지의 날에 올린 사진.
미셸은 시카고에서 태어나 프린스턴 대를 졸업하고 역시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했는데 시민단체와 지역사회개발활동에서 5년간 시간을 보낸 오바마보다 3년 선배다. 로펌에서 만나 1992년 결혼.
2014년 크리스마스. 이쯤되면 오바마의 온가족의 키가 거의 차이나지 않는다. 사진상으로 얼굴이 차녀인 샤샤만 다소 통통한데 샤샤는 외삼촌을 닮았다. 그 때문에 샤샤는 아버지를 닮은 장녀 말리아와는 친자매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크게 차이난다.
2017년 6월 10일, 만 16세가 된 차녀 샤샤와 오바마 부부의 모습이 공개되었다. 미국인들도 놀랄만큼 어린 소녀의 외모는 온데간데 없이 폭풍성장한 모습이다. 현재 사샤는 워싱턴DC에 위치한 시드웰 프렌즈 고교에 재학 중이며 당분간 오바마 부부도 딸이 졸업할 때 까지 이 지역에 머물 예정이라고. 또한 장녀 말리아는 올 가을 하버드 대학 입학 예정으로 미국 10대 사이에서는 유행을 선도하는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8.2. 유머 센스

존 케네디, 빌 클린턴 대통령 등과 함께 언변이 뛰어난 대통령으로 평가받으며 연설 등에서 적절한 조크를 섞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SNS 스타이기도 하고.

오바마: "우선 유킬리스에 대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군요."

오바마 지지자들: Boo~(야유)

오바마: "제가 말하고 싶은것은 그가 양말(socks)[43] 색깔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오바마 지지자들: (웃음)

오바마: "여기서 야유를 받을지 몰랐네요. 야구 얘기를 꺼내지 말았어야 했어요. 이해합니다. 제 실수입니다. (이곳에 있는) 청중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알았어야 했는데.(웃음)"

케빈 유킬리스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된 후 가진 보스턴 연설에서 유킬리스 보내줘서 고마워요 ㅋ라는 말을 했다가 야유를 들었다(…). 이 뒤에 백악관에서는 Boo가 아니라 Youuuuuuuuk였다는 개드립으로 천조국 황제폐하를 변호했다고.


오바마: 512호 홈런을 쳤던 어니컵스가 언젠가 반드시 정상에 오르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청중: 웃음.

오바마: (참으로 안타까운 표정으로) 진심으로요.

청중: 웃음.

오바마: 화이트삭스 팬인 저도 이 점을 존경해 마지 않습니다(…).

시카고 컵스의 레전드 어니 뱅크스의 대통령 자유 훈장 수여식 중에 시카고 컵스를 돌려까기도 했다(…). 그리고 2016년,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우린 아이언맨 수트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걸 본 사람들은 농담으로 보지 않는 중(…).


여자친구 건들지 말라는 한 유권자에 대한 반응.


오바마: 제가 더 이상 출마할 선거는 없습니다.(I have no more campaigns to run.) 저의 유일한 의제는…(my only agenda..)

공화당: (박수갈채)

오바마: 맞습니다, 왜냐하면 전 둘 다 이겼거든요ㅋ (I know because I won both of them.)[44][45]

민주당: (박수갈채), (환호)


지미 키멜의 토크쇼에 출연했을 때 키멜이 "제가 만약 대통령이 되었다면, 취임식 이후 바로 51구역외계인들의 파일들을 찾아보러 갔을 거예요. 당신은 그랬나요?"라는 질문을 받자, "그래서 당신이 대통령이 될 일이 없어요."라는 시크한 대답을 날렸다.

지미 키멜: 만약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그럴 일은 없겠지만요.

오바마: 혹시 모르지.

지미 키멜: 제가 대통령이…

오바마: 나도 그럴 일 없을 줄 알았거든.

지미 키멜: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성서에 손을 올리자마자[46] 바로 51구역, UFO에 관련된 파일을 다 뒤져서 찾아볼 것 같은데요, 대통령께서도 그러셨나요?

오바마: 그래서 자네가 대통령이 될 일이 없는 거야. 그게 첫 번째로 하고 싶은 일이라니. 외계인들은 자네가 대통령이 되게끔 하지 않을 꺼야. 자네가 모든 비밀을 누설시킬테니. 걔네 꽤 까다롭거든.

지미 키멜: 많은 사람들이 지금 대통령의 표정이 조금 찌푸려진 것도 다 보고 있을거라고요. 그래서, 그것(UFO와 51구역)에 관해서 무언가를 보신 적이 있나요?

오바마: 아무것도 말할 수 없어.

지미 키멜: 정말요? 예전에 제가 빌 클린턴 대통령께 여쭤봤더니, 직접 확인해 보셨는데 아무 것도 없었다고 그러셨거든요.

오바마: 백악관에서는 그렇게 말하라고 시키거든 ㅋㅋ

그 외에도 위의 방송에서 유머섞인 모습을 보이기도.


2009 MTV 뮤직비디오 시상식에서 테일러 스위프트가 수상소감을 말하던 도중 카니예 웨스트가 난입해서 방해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 사태에 대해서 "He's a jackass"라고 했다.(오프 더 레코드였다.) 애초에 카니예 웨스트가 엄청 까일만한 행동을 했었던 것이기 때문에 오바마를 욕하는 사람은 없었다.


기자회견 마무리 짓는 멘트로 "이제 스타워즈 보러 갑니다. 고맙습니다.(Get to 'Star Wars. Thank you.)"라는 애드립을 날렸다.


2016년 신년 연설에서 "니들 지겨워하는 거 같으니까 짧게함 ㅋㅋ"이라고 말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임기 중 마지막 백악관 기자단 만찬에서 마지막으로 두 마디만 하겠다면서 마이크를 떨구면서 "Obama Out"을 외치고야 말았다(…). 랩퍼들이 주로 랩 대결 등에서 신명나게 하고 상대를 도발하기 위해 하는 마이크 드랍 퍼포먼스를 한 것.[47]


참고로 위의 기자단 만찬 당시 백악관 후를 준비하는 영상을 찍었는데 트럼프가 제기한 자신의 출신을 이용한 드립등을 이용해 코믹하게 찍었다.


2012년 3월 14일, 백악관을 방문한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내외를 예방하는 자리에서 미영전쟁을 들먹이며 캐머런을 놀리는 오바마. 받아치는 캐머런의 모습도 재미있다.

18:05부터

"오바마": 200년 전, 영국은 처음으로 이 곳 백악관을 방문했습니다. 비록 다른 이유였긴 하지만요.

청중: (웃음)

"오바마": 상당히 인상깊었죠.(They made quite an impression.)

청중: (웃음)

"오바마": 말 그대로 이 곳을 환히 밝혀주었습니다.(They really lit up the place.)(화르륵)[48]

청중: (웃음)

"오바마": 여하튼 그 후로는 잘 지냈죠.(But we moved on.)

청중: (웃음)

25:25부터

"캐머런": 이 곳에 서서 200년 전 그 일을 생각하니 상당히 당황스럽군요.

청중: (웃음)

"캐머런": 우리 조상님들이 이 곳을 불태우려 했다니.

청중: (웃음)

"캐머런": 오늘 쭉 둘러보니 그 때보다는 방비를 잘 해놓으셨더군요.

청중: (웃음)

"캐머런": 이번에는 우리 영국인들에 대한 대비책을 허투루 세우시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청중: (웃음)


자신의 퇴임 직후를 걱정하는 모습의 코믹한 영상.


2016년 1월 1일 신년사를 코메디언 제리 사인필드와 함께 코믹하게 찍기도 했다.

8.2.1. 오바마의 "분노 번역기"

먼저 아래의 영상을 참조.

코미디 센트럴에서 방영한 Key & Peele이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의 "오바마의 분노 번역기"라는 스케치다. 내용인즉슨 오바마가 젠틀하게 연설하면 옆에서 "분노 번역기" Luther가 "사실 내 말뜻은 이거다 개XX들아!!"라고 번역해주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스케치.

그런데 오바마가 2015년 4월 25일 공화당 및 민주당 의원들이 잔뜩 모인 백악관 출입기자단 저녁만찬에 "분노 번역기" Luther를 데려왔다! 매해 4월 열리는 이 기자단 참석 만찬에는 대통령이 스탠드업 코미디를 선보이는 관례가 정착되어있다.

원본 영상을 보면 50:00부터 나온다.[49]

8.3. 오바마 갤러리

What's up man~ [50]

백악관을 방문한 한 소년이 오바마의 머리도 자신의 머리와 같은 느낌인지 궁금하다고 만져보고 싶다고 하자 허리를 숙여주는 오바마.[51]

(합성사진) 후진타오와의 키스.[52]

천조국의 황제를 능욕하는 (신)대륙인의 기상.(깜짝 방문한 샌프란시스코차이나타운 중국음식점에서 찍은 사진이다.)

2012핵안보정상회의를 위해 25일 새벽 방한한 오바마 미대통령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방문하여 오피오울렛에 근무하는 한국군장병을 격려하고 있다.[53]

9. 매체에서

  • 미국 NBC에서 방영한 Running Wild with Bear Grylls에 출연해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생존기술을 전해받은 바가 있다. 생태계 최강의 존재가 나오는 그 프로가 맞다.
  • 화이트 하우스 다운에서 제이미 폭스가 연기한 제임스 소이어 대통령은 딱 봐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본딴 캐릭터.
  • 내 이름은 칸에선 상원의원의 신분으로 맨 처음 등장해 칸의 행보를 예의주시하다가 대통령 당선 이후 칸을 찾아가서 그와 만난다. 근데 조지 부시는 아주 빼다 박았던 것에 비해서 내 이름은 칸에 나왔던 배우는 목소리는 좀 비슷한데 생긴 건 하나도 안 닮았다….
  • 킹스맨에선 대사는 없고 뒷통수만 나와서 해리 하트의 정체를 모른다고 확인해 준 다음에 발렌타인의 회유에 넘어가서 그의 신세계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하지만 마지막에 머리가 폭발하여 요단강을 건넌다.(…)
  • 드웨인 존슨SNL에 출연해서 더 락 오바마(...)를 연기해, 프로레슬러가 아닌 배우로서 일약 전국구 스타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 기안84의 네이버 웹툰복학왕에 우바마란 이름으로 2번 나왔다. 첫번째 등장은 별 파문이 없었지만, 2번째 등장은 오바마를 지나칠 정도로 희화하하여 큰 비판을 받았다. 일각에선 정말로 외교 문제로 번질 것이라는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일개 웹툰을 가지고 한미관계가 흔들릴 리는 없다.

  • 퓨처라마에서도 젊은 시절 피자 배달하던 모습으로 등장. 갈굼받으며 잔뜩 주눅이 든 채 "법대로 돌아가야겠어..."라며 푸념을 하는 등 초라한 모습으로 나왔는데 그걸 보고 프라이의 아버지가 "넌 저런 패배자 인생을 살지 마라"(...)라고 아들에게 한 마디 한다.

  1. [1] 영어병영을 뜻하는 Barrack이 아니다. '버락(Barack)' 은 스와힐리어에서 따온 것으로 의 축복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아랍어에도 이와 같은 의미의 이름으로 무바라크(مبارك‎)가 있다.
  2. [2] 코미디언 크리스 락은 전 NBA 선수 디켐베 무톰보와 동급 수준으로 듣기만 해도 흑인인 걸 알 정도로 흑인 이름이라고…
  3. [3] 보면 알겠지만 테두리가 은색으로 채워져 있는데, 이는 타임지 역사상 4번째로, 올해의 인물 선정 표지 중에서는 처음으로 붉은 색이 아닌 다른 색으로 채워 넣었다.
  4. [4] 집권 초기에는 이렇게 흰 머리가 거의 없는 검은 머리에 생기있는 모습이라 풋풋함이 느낌이었지만…이 때만 해도 나이에 비해 꽤 동안이었다. 언뜻 보면 아내 미셸 오바마가 더 연상으로 보일 정도로.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대통령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직업인지를 보여주는 일례이자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있지만 오바마가 정말로 대통령직을 열심히 수행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다.
  5. [5] 마지막에서 2번째는 Yes, We can!(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은 Yes, We did!(네, 우리는 해냈습니다!)
  6. [6] 아버지는 원래 무슬림이었으나, 자라면서 무종교인이 되었다.
  7. [7] 정확히는 이라크 전쟁에서 죽은 아랍계 미군의 예를 들면서 기독교인도 무슬림도 훌륭한 미국인이라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실제로 미국에 거주하는 아랍 출신 기독교인에서도 제프리 후세인 압둘이라든지 가브리엘 아사드, 피터 무함마드(이 사람은 재미교포와 갈등을 빚어서 한국에서 잠깐 알려진 목사) 같은 목사가 실제로 있기에 이 이름 드립도 따져들면 역효과가 날 법했다.
  8. [8] 앨러배마주에서는 45%, 미시시피에서는 무려 52%가 무슬림이라고 믿고 있다.
  9. [9] 미국인의 대부분이 기독교, 혹은 다른 종교를 믿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10. [10] 다만 최초의 무슬림 하원 의원이 탄생하면서 꾸란 선서가 이루어졌다.
  11. [11] 오바마의 경우엔 148년 전 에이브러햄 링컨이 취임식에 쓴 성경으로 선서를 했다.
  12. [12] 시스템에 역행한다, 즉 어떤 규제도 받지 않는다.
  13. [13] 참고로 대다수의 남부주에서는 1967년 Loving vs. Virginia 판결로 뒤집어지기 전까지 인종간 결혼 혹은 성행위가 법적으로 금지되고, 주지사가 대학앞에서 흑인들은 백인들과 같은 대학 못 다닌다고 대놓고 말하던 시절이다.
  14. [14] 이부 여동생에게도 아버지의 재혼으로 인한 이복 동생들이 있다.
  15. [15] 木屋烧烤(무우샤오카오), http://www.muwubbq.com/ 꼬치집이라기보단 바베큐집에 가깝다.
  16. [16] 천하의 마이클 조던 역시 2학년까지 JV에서 뛰다가 3학년때 Varsity에 합류했다.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농구부 탈락 사건이 이때 일어난 것이다. 대부분의 1,2학년들은 JV에서 뛰지만 소수의 뛰어난 저학년들은 Varsity에서 뛰는데, 조던은 자기가 뽑힐 거라고 생각했지만 키가 더 큰 동급생이 뽑힌 것.
  17. [17] http://www.nbcnews.com/storyline/president-obama-the-legacy/obama-s-high-school-basketball-coaches-teammates-remember-barry-n700986
  18. [18] https://www.youtube.com/watch?v=_ZfEFly8ShE
  19. [19] https://www.youtube.com/watch?v=mR14k1Sna8M
  20. [20] https://www.bloomberg.com/politics/videos/2014-12-01/laurence-tribe-is-a-bit-disappointed-in-obama
  21. [21] 하버드 로스쿨 입학까지 자신의 인생에 관해 쓴 책이다. 로스쿨 재학 중에 썼으나 1995년 정치 활동 준비하면서 출간했다.
  22. [22] 특히 Twitter가 여기에서 큰 역할을 하여 오바마를 트위터 대통령이라고도 하기도 한다.
  23. [23] 경선 과정에서도 지원금을 받을 수 있지만, 그 액수가 기부금에 비하면 너무 적어서 양당의 주요 후보들은 거절하는 게 대세다.
  24. [24] 2016년 현재 한화로 약 8876억 원
  25. [25] 물론 이것이 대통령으로서의 자질과 동일시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지 W. 부시도 매우 적극적이고 효율적인 선거 운동을 해냈다.
  26. [26] 20세기 초에 태어나서 흑인들의 굴곡과 수난 시대를 모두 거처온 어느 90대 흑인 할머니가 오바마의 취임식을 보고 한 말씀이다. 사실, 단순히 "이겨냈다"라는 의미가 아니다. 격동의 20세기 중반 미국 사회, 킹 목사와 말콤X 등으로 대표되는 흑인민권운동의 상징 그 자체이자 모든 시위, 집회, 행진에서 부른 민중가요로 "We Shall Overcome"이라는 노래가 있다. 대충 한국 사회운동/운동권 진영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든지, 국제 사회주의운동에서 "인터내셔널가"와 같은 포지션. 미국에서는 너무나도 유명한 노래라 저 한 마디에 어떠한 다른 설명도 필요가 없다.
  27. [27] 타블로이드판인 G2이다.
  28. [28] 참고로 조지.W.부시의 재선 성공 때의 문구는 "Oh, God", 신이시여.
  29. [29] 이 경기가 ALCS 2차전. 피어진스키의 낫아웃 사기극이 일어난 경기이다. 여담으로 이해 화이트삭스는 AL 전체1위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달성.
  30. [30] 텍사스대학교오클라호마 대학교와의 Red River Shoot에서 승리를 거뒀으나 정작 BCS 랭킹은 1단계 밑이었다.
  31. [31] 엄밀히 따지면 New START가 2010년 4월 8일에 체결되었고 START I은 2009년 12월 5일에 만료되었으므로 그 해(2009년)에 갱신된 것은 아니긴 하다. 다만 협상을 개시한 시점으로 따진다면 2009년 5월이므로 아주 틀린 표현은 아닌 셈.
  32. [32] 전략공격능력삭감조약(SORT)이 있긴 했지만 전략무기감축협정 항목에서도 언급되었다시피 검증 관련 규정이 전무하여 실질적인 효력에 꾸준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었다.
  33. [33] 대통령직이 끝난 뒤 새로운 직업을 찾을때 있을 수 있는 면접(...)을 연습하는 꽁트 영상이다. 영상 4분 13초~20초경에 노벨상 관련 언급이 나온다.
  34. [34] 미국의 고등학교 졸업률은 75% 정도밖에 안 되며 공립학교의 경우 50%에 불과하다. 특히 디트로이트 같은 곳은 겨우 25% 정도로 한 반에 중퇴자가 4분의 3이나 된다. 반면 한국은 2008년 OECD 보고서에 의하면 97%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35. [35] 그리고 국제관례상 군주국의 국가원수에 대해서는 공화국의 국가원수가 상대를 극존중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36. [36] 참고로, 더 락 오바마를 연기한 사람은 이름에서 알다시피, 프로레슬러 더 락으로 유명한 배우 드웨인 존슨. 그리고 그 드웨인 존슨도 2017년 현재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비판이 만만치 않자 트럼프가 탄핵당할 것 또는 재선에 실패할 것을 대비해서 대통령으로 밀어주자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37. [37] 백악관 출입기자들을 위한 행사로 게스트들과 대통령이 유머 섞인 연설을 펼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38. [38] 오바마는 웃으면서 이 개그를 하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래의 넵튠 스피어 작전을 실행하러 갔다. 더욱 무서운 사실은 빈 라덴의 위치를 가지고도 농담을 했다. 레알 충공깽. 이 사실이 알려지자 오바마가 트럼프를 비웃는 짤방이 양산되고, 당시 공화당 경선주자였던 트럼프의 지지율은 급감했다.
  39. [39] 그리고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오바마는 유쾌한 분위기 에서 재치있는 단어 선택으로 트럼프를 엿먹였고 모든 사람이 다들 빵 터진 가운데 트럼프 혼자 표정이 일그러지는 모습이 카메라에 적나라 하게 찍혔다. 그리고 5년 반 정도 지난 뒤, 트럼프가 어느 위치로 올라갔는지를 보면...
  40. [40] 6호 전차 티거의 방호력이 강철 수직장갑 10cm였다. 꾸준히 향상된 복합장갑의 성능을 예상하면 아무리 못해도 M60 패튼의 전면장갑 수준이다.
  41. [41] 다만 이것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사실상 0%이다. 국제적인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유엔 사무총장은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강대국은 배제하고 미국 및 러시아(구 소련)와 관계가 무난한 제3세계 국가 출신이 맡는게 관례이다. 이것은 유엔 사무총장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다. 만일 미국이 유엔 사무총장까지 차지할려고 하면 국제사회의 큰 반발에 부딪힐 것이며, 실제 성사가 된다 해도 딱히 유리한게 없다. 어차피 지금도 미국이 세계 질서를 이끄는 유일 초강대국이니까. 게다가 오바마는 전임 부시가 혼자서 막나가다가 미국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것에 대한 반성으로 국제사회의 협력을 그 누구보다 중요시 여기고 있다.
  42. [42] 6ft에 육박했다는 걸 그렇게 해석했을 공산이 크다.
  43. [43] 보스턴 레드삭스(Boston Red sox)와 시카고 화이트삭스(Chicago White sox)의 팀명을 빗댄 언어유희.
  44. [44] 미국 대통령은 중임(두 번 당선)이 가능하며 그 후에는 대선 출마를 할 수가 없다. 조지 워싱턴이 초선 이후 재선까지 하고 다른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선이라는 선례를 만들고 자리에서 내려옴으로써 FDR 이전에는 미 대통령은 2선까지가 관행이자 일종의 관습법이었다. 근데 그걸 깨고 무려 4선을 한 어느 인물 때문에 헌법에 3선 불가 규정을 넣었다.
  45. [45] 여기서 말하는 캠페인은 자신이 출마할 대선 뿐 아니라, 같은 당원들이 출마할 중간선거 역시 자신의 임기 내에는 없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오바마 본인이 더이상 자신의 인기나 지지도를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오바마 때문에 비교적 보수적인 남부/중서부 지역구에서 질까봐 덜덜 떠는 딕시크랫(민주당내 보수파)들 눈치 볼 필요도 없으니, 이제 내가 늬들 눈치 볼 일은 없다는 의미로도 말을 한 셈.(…)
  46. [46] 취임식을 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에서는 취임식 때 성서에 손을 올리고 대통령 선서를 한다.
  47. [47] 만찬 전 4월 중순에 코비 브라이언트가 은퇴를 선언하며 'Mamba Out' 이라고 말한 것에 대한 패러디이기도 하다.
  48. [48] 미영전쟁 때 영국군에 의해 백악관이 불탄 것을 빗댄 유머다. light it up은 문자 그대로 밝혀준다는 뜻도 있지만 속어로서는 '태워버리다' 또는 '날려버리다'라는 뜻도 있다.
  49. [49] 퇴장하기 전에 '분노 통역사 필요없고 상담이나 받으셈ㅋ'이라고 말한데다가 퇴장할때에도 영부인 미셸 오바마에게 '미쳤나봐요' 말하기까지 한다. 당연히 각본이다. 정말 즉석으로 저런 콩트를 했다면 애초에 대통령이 무슨 언행을 할지 미지수인데다, 말 한마디 잘못한것 때문에 코미디언도 망할 수 있기 때문.
  50. [50] 이 사진은 청소노동자가 정규직이 되면 노동3권이 보장되면 툭하면 파업을 할 것이라 발언한 대한민국의 모 국회의원과 비교되면서 그 의원을 까는데 사용되고 있다.
  51. [51] 물론 둘 다 어느 정도는 컨셉샷이라고는 한다. 사족으로 저 아이는 백악관에서 일하다가 다른 곳으로 떠나면서 대통령과 사진을 찍으러 온 직원의 아들이라고 한다. 백악관 직원들이 떠날 때 대통령과 사진을 찍는 것이 전통.
  52. [52] 의류 브랜드 베네통(Benetton)이 '언헤이트(unhate)' 캠페인의 일환으로 제작한 광고의 일부로 합성사진이다.
  53. [53] 애초에 굳이 상관이 아니더라도 사회적 지위가 군까지 닿는 사람이 앞에 있는 것도 고역이다. 물론 이걸 의도해서 가지는 않았겠지만. 시간도 11시 59분이다. 군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점심도 늦어지고 있다(…).
  54. [54] 사실 미남, 장신, 유머감각, 쿨해보이는 행동 등 멋있어보이는 요소는 골고루 갖춘 사람이라 정책에 대한 호불호를 넘어선 팬들이 상당히 있는 편. 특히 한국에선 멋지다며 그냥 덮어놓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정책 면에서 한국인들이 좋아할만한 사람은 아니다. 애초에 이 사람은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보는 미국 대통령이기도 하고, 역대 가장 무능한 한국 대통령과 재직 시기가 겹쳐서 한국에 별 긍정적인 영향은 못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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