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성(삼국지)

이 문서는 판청, 판청구, 판청 구, 번성구, 樊城이라고 검색해도 들어올 수 있다.

1. 개요
2. 정사에서의 모습
3. 삼국지연의에서의 모습
3.1. 서서의 계책부터 장판파 전투까지

1. 개요

현 후베이성 샹양 (양양)시에 있는 성으로 한수를 사이에 두고 남쪽에 양양성이 있고 북쪽에 번성이 위치한다. 이곳하면 뭐니뭐니해도 삼국지의 번성 공방전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 이곳에는 적토마와 관우의 상도 있다고 한다.

삼국시대 이후에는 묻히는 감이 있지만, 본래 형주라는 곳 자체가 북중국과 남중국을 연결하는 중요한 요충지여서, 이후에도 양양성과 함께 형주 지역에서도 최고의 요새로 꼽혔다. 몽골이 남송을 대대적으로 공격할 당시에도 양양 공방전 당시 양양을 지원하는 가장 중요한 거점이었고, 두 성의 연계 때문에 몽골군은 6년이나 양양 공방전에 매달려야 했다. 몽골군이 양양성을 함락시키는 데 성공한 것도 번성을 먼저 집중공격해서 함락시킨 뒤에야 가능했다.

2. 정사에서의 모습

후한 말에 형주를 지배한 유표의 영역이었다가 유표 사후 조조의 남정으로 이후 조조의 영토... 나아가서는 위의 영토로 계속 유지되었다. 219년에 관우가 북벌을 하여 이곳을 포위하면서 번성 공방전이 발발하며 홍수의 발생과 구원하러 온 우금의 7군이 대패하면서 위기에 처했으나 서황의 구원과 오의 강릉 침공덕에 함락을 면한다.

3. 삼국지연의에서의 모습

3.1. 서서의 계책부터 장판파 전투까지

첫 등장은 유비가 조조군 3만에 맞서 싸우는 장면에서 등장한다.조인은 팔문금쇄술을 써서 유비를 물리치려 하나 서서는 계책을 써서 조조군을 물리치고 조인은 다시 번성으로 달려가나 관우가 이미 이 성을 빼앗은 뒤였고 조인은 허도로 도망친다. 서서가 떠난 뒤 하후돈이 다시 쳐들어 오나 유비는 제갈량의 계책으로 하후돈의 대군을 격파한다. 이에 분노한 조조는 50만 대군을 이끌고 남진하게 되고 유비를 설득하기 위해 서서를 보내나 유비는 거절한다. 결국 조조는 모든 병력을 동원해 번성으로 진격하고 유비는 제갈량의 진언에 따라 조조군이 오기 전에 번성을 버리고 양양으로 간다. 이후 조조는 번성에 진입하고 이때부터 번성은 다시 조조의 영토가 된다.

본래 번성은 양양의 바로 북쪽에 딱 이웃하는 위치에 있으며 신야에서는 남쪽에 위치하는 만큼 줄곧 유표의 영토였다. 때문에 유비가 신야를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조인이 번성을 점거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조인이 번성을 지키고 서서가 계책을 써서 이를 빼앗았다는 건 나관중의 지리적 착오로 생긴 삼국지연의의 창작내용일 뿐이다.

3.2. 번성 공방전

유비가 한중왕(漢中王)에 오르자 분노한 조조는 즉시 백만 대군을 이끌고 유비와 결전을 벌이기로 하나, 사마의의 계책에 따라 오나라의 손권과 동맹을 맺는다. 그리고 조조와 손권은 관우가 지키는 형주부터 치기로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유비와 제갈량은 즉시 관우에게 번성을 공략해 기선을 제압하라 고 명령한다. 관우는 이 명령에 따라 번성을 공격한다. 그리고 침착한 지휘와 재빠른 공격을 함으로써 드넓은 양양 고을을 점령하고 조인의 저항을 받지 않고 번성을 포위하였다. 이에 조조는 우금과 방덕을 보내 관우군을 물리치고 번성을 구원하게 한다. 그러나 폭우 때문에 오히려 우금은 형주성에 갇히고 방덕은 처형된다. 이 소식에 조조는 손권에게 관우의 뒤를 치게 하고 서황에게 5만 군사를 주어 관우의 기세를 꺾게 한다. 관우는 손권에게 배후를 찔렸고 그럼에도 번성을 공격한다. 이때 조조가 보낸 서황의 원군과 싸우다가 조인마저 번성을 나와 협공하는 바람에 결국 관우는 번성의 포위를 풀고 퇴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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