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골제

벽골제(碧骨堤)

홈페이지

1. 소개

1963년 1월 21일 사적 111호 지정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용성리에 위치한 백제시대 때 축조된 저수지 둑. 이름의 유래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 김제의 옛지명인 벽비리국, 벽골군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한자의미 그대로 '푸른뼈(碧骨)의 둑' 이라는 설이 있다. 전자에 따르면 푸른뼈라는 해석은 벽골, 볏골, 혹은 그와 비슷한 발음의 순우리말을 이두표기하는 과정에서 민간어원이 붙고 그에 끼워맞추기 위한 해석 및 설화가 만들어진 것이 된다. 유홍준 교수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실린 전승에 따르면, 축조공사가 순조롭지 않아 고민하던 공사감독관의 꿈에 선인이 나타나 '푸른 뼈'를 넣어 다지면 무너지지 않을거라고 하여, 말의 뼈를 넣어 지으니 둑이 완성되었다고 하여 벽골제라 이름지었다 한다. 벽골이라는 단어를 푸른 저수지 물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하는 견해 또한 존재한다.

한국 최고(最古)의 저수지 둑이며 서기 330년 백제 왕조의 비류왕 27년에 처음 축조된 것으로 기록되었고 서기 790년에 통일신라 원성왕 6년때 증축. 이후 고려현종, 고려인종, 조선 태종등 4차례에 걸쳐 개축을 거쳤다가 세종 2년에 홍수로 무너졌다. 일제강점기 1925년에 동진수리조합에서 농지관개용 간선수로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훼손이 있었고 1975년에 복원되어 현대에 공개되었다.

둑의 길이는 김제 포교리와 월승리 사이 남북으로 일직선을 이룬 거대한 길이이며 이 곳이 수문지임을 알려주는 석주(石柱)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수여거, 장생거, 중심거, 경장거, 유통거의 5개 수문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 남아있는 수문은 장생거와 경장거 2개소이다. 벽골제 유적지에 있는 수문은 장생거다. 제방 너머로 수로가 지나가고 있지만 수문바로 뒤에도 제방을 쌓아놓아 실제 수리시설로 가동할 수는 없다. 벽골제 중수비의 기록에 따르면 벽골제가 운용되던 시기에는 수문 양쪽의 석주에 느티나무 널을 놓고 그 위에 도르래를 설치하여 물이 흐를수 있도록 해놓았다고 한다.

2. 전설

축조 당시 해수가 유입되어 곤란하던중 푸른 뼈를 묻으라는 신령의 조언을 따라 벽골제를 축조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벽골제 근방에 신털미산이라는 작은 동산이 있는데 이 산은 벽골제를 만들던 인부들이 짚신에 묻은 흙을 털어내다가 점점 쌓인 흙더미라고 한다. 김제에 살고있던 벽골제 하류의 수호신 백룡과 중류에 살고 있던 재앙신 청룡은 서로 대립하는 사이였고, 벽골제는 이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갔다. 벽골제가 무너지면 농민들의 생명줄이 끊길 판, 이때 김제 태수의 딸인 단야가 스스로를 벽골제에 바쳤고 그것을 보고 탄복한 청룡이 물러나 평화가 도래했다는 전설이 있다.

3. 벽골제 단지 조성

벽골제를 중심으로 벽골제 농경문화 박물관, 단야각, 단야루 등이 있으며 무자위, 용두레, 방아, 농악같은 전통 농경문화를 체험해볼 수 있는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김제를 배경으로 아리랑이라는 소설을 쓴 조정래의 아리랑 문학관과 문학비가 있으며 그외 지역 예술인들의 서화들도 전시되고 있다. 김제시는 벽골제 유적 발굴과 세계유산 등재에 장애요인이었던 용수로 이전을 고려하고 있으며 2016년부터 실시설계 이후 이설공사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한다.

4. 지평선 축제

지평선 축제 홈페이지

1999년 1회를 시작으로 매년 가을(9~10월)에는 벽골제에서 지평선 축제를 연다. 주된 테마는 드넓은 지평선과 어우러지는 김제의 전통 벼농사문화. 지역 신화를 재구성한 대규모 야외공연과 농경축제다운 먹거리 장터가 메인이고 농촌에서 행해져오던 줄다리기, 쥐불놀이, 연날리기, 농악 등의 풍년 기원행사들이 이벤트로 마련되어있다. 언제부턴가 규모가 커지면서 시내 크고 작은 단체, 학교들의 행사나 대회도 같이 이루어지고 지역축제의 격을 상징한다는 마라톤 대회도 열리고 있다.

초기에는 허허벌판에 돌 두개만 서있는 3일짜리 허전한 축제였지만 해가 지나고 지역문화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벼농사라는 컨셉에 걸맞는 컨텐츠들이 하나 둘씩 추가되어왔다. 지금은 질도 규모도 성장한 나름 유니크한 개성을 지닌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다만 김제가 그리 화려한 도시는 아니기 때문에 축제와 하나된 도시를 기대하고 즐기려는 기대는 하지 않는것이 좋다. 축제장을 벗어나면 말 그대로 지평선 너머 쭉 펼쳐진 깡촌을 볼 수 있을 것이다.[1] 축제의 세일즈 포인트가 '농촌에 대한 향수'다 보니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인듯 하다. 주차장은 넓은 편이지만 피크때는 역시 자리가 없다. 2014년 축제부터 주차장을 유료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벽골제까지 가는 도로도 좁은 편이기 때문에 교통이 편리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5. 관련항목


  1. [1] 김제의 논 면적은 전국 1위다. 전형적인 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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