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경백

Markgraf

(영) Margrave (Marcher Lord)

邊境伯

1. 소개
2. 예시
3. 변경백인 캐릭터

1. 소개

프랑크 왕국·신성 로마 제국국경 방비를 위하여 군사 식민으로 설치한 변경 구역인 변경주(Mark)의 사령관으로서 800년경 카롤루스 대제때 도입되었으며 황제 혹은 왕으로부터 변경주를 봉토로 받았을뿐만 아니라 관리 구역 안에서 행정·군사·사법상의 최고 권력을 위임받았다. 원래는 임명직이었으나 직위가 세습됨으로써 작위화되어 강력한 영방(領邦) 군주로 성장하였다.

이 작위는 백작(독-Graf, 영-Count)에서 파생한 것이었지만 다른 일반 백작위보다 더 우위에 있는 것으로 여겨졌으며, 프랑크 왕국의 분열 이후에도 로만-게르만 문화권이었던 서유럽의 변경으로서 비기독교도였던 마자르족이나 여타 슬라브인 등을 상대해야 했던 신성 로마 제국에서는 주요 고위 귀족 중 하나가 되었다. 이들 독일의 변경백들은 다른 나라의 후작(Marquis)과 동급으로 간주되었다.[1][2][3]

기존의 백작에서 변경백이 분화하였듯, 한편에서는 신성 로마 제국이 선거로 황제를 뽑게 되고, 황제가 특별한 중심 거점 없이 전국을 일정하게 순회하면서 궁정백이라고 하는 직위도 생겼는데, 이러한 궁정백에 대비하여 부중백(府中伯)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신성로마제국이 동쪽으로 그 영역을 확대하였고, 동시에 폴란드와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들도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라틴화하면서 기존의 변경주 또는 변경백작령들이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게 되었고, 그 결과 변경백은 다른 제후들이 가진 타이틀의 일부가 되거나 공작 등으로 승격되면서 사라지게 된다.

이 제도는 원래 프랑크 왕국 및 신성 로마 제국 고유의 것이었으나 후에 프랑크 왕국과 크게 상관 없는 잉글랜드 왕국에도 비슷한 칭호가 등장한다. 노르만 정복 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국경에 영지를 가진 노르만 귀족들을 변경제후(Marcher lord)로 두었는데, 이들은 아직 복속되지 않았던 웨일스인들의 침입에 맞서 변경을 방어하는 대가로, 봉건제도 하 다른 잉글랜드 영주들과는 다른, 광대한 자치권을 가졌고, 한편으로는 웨일스 토착 유력가들과 혼인하면서 세력을 키웠다. 이들중 한명인 펨브로크 백작 리차드 드 클레어는 잉글랜드 국왕 헨리 2세의 지지로 아일랜드를 침공하기도 했다. 후에 에드워드 1세가 웨일스를 정복하고 이 지역에 있던 웨일스 공국(Principality of Wales; Tywysogaeth Cymru)을 왕실로 흡수, 웨일스 전체가 잉글랜드 국왕의 지배로 들어서면서 이들의 지위는 명목상으로만 존재하게 됐다.

번역시 prince/fürst와 더불어서 번역자를 곤란하게 만드는 작위 중 하나이다. 많은 경우 fürst를 공(公)으로 번역하지만, 이를 후(侯)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marquis의 경우는 후(侯)로 번역하면서도 신성로마제국에서의 특수성이 다수 반영되는 markgraf의 경우는 변경백(伯)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까닭에 원어가 아닌 역어만 쓰인 경우 후작(fürst)와 후작(Marquis)을 혼동할 여지가 생기고, 여기서 이것을 다시 동아시아의 오등작과 혼동하면서, "후작과 동급이거나 오히려 후작보다 상위"라는 오해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fürst를 오등작에 대응하기를 포기하고 아예 제후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동아시아에도 이와 비슷한 직위가 존재했다. 고려의 병마사, 당나라절도사, 무로마치 막부의 수호 다이묘 등이 그것이다. 원래 오등작의 후작 역시 본디는 군주를 일컫는 칭호였으나, 공 · 백 · 자와는 구별되는 변경백의 의미로서 작위에 편입되었다. 변경백, 궁중백은 로마의 원로원 속주/황제 속주로 비교되기도 한다.

'변경후' 나 '변경공'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백 보다 더 높은 작위가 등장하는 경우도 있긴 하나 흔하진 않다. 다만, 공작이나 후작이 변경백의 역할을 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

2. 예시

  • 프리울리 변경백국
  • 바덴 변경백국
  • 모라바 변경백국 - 역사적으로 '모라비아'라 부르는 지역이 바로 이곳이다. 1182년 신성 로마 제국의 프리드리히 1세에 의해 설치되었으며, 보헤미아 왕국 하에서는 왕실 직할령으로서 왕국 계승자가 소유하는 곳이기도 했다. 이 후 1526년 합스부르크 가문에 병합되었다가 1918년 소멸했다.
  • 만토바 변경백국 - 현재 북부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지역 최남단에 존재했다. 568년 게르만족의 일파인 롬바르드족이 현재 롬바르디아 지역을 점령하여 롬바르드 왕국을 세운 후 774년 카롤링거 왕조의 프랑크 제국이 롬바르드 왕국을 점령했다. 만토바 변경백국은 프랑크 왕국 시절 시작되었으나 정확한 연대는 불분명하다. 이후 신성 로마 제국 시절로 이어졌다가 카를 5세가 프랑스의 이탈리아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1530년 만토바 공국으로 승격시켰다. 이후에도 만토바 공국은 합스부르크 왕조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치는 곳이었으며, 합스부르크 제국의 이탈리아 통치 거점 중 하나였다. 1797년 이탈리아의 합스부르크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출병한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원정 때 만토바 공국을 두고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간에 수차례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결국 나폴레옹에 의해 점령되어 소멸했다.

3. 변경백인 캐릭터


  1. [1] 오스트리아 대공(Archduke)과 브란덴부르크 변경백 양자의 특권을 근거로 변경백이 대공급이라 오해하기도 하지만 이는 동양과 서양의 작위체계 간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서 잘못 서술한 것으로 보인다. 동양에서는 일찍이 중앙화와 관료제가 발달하면서 관직과 작위가 분리되어 있지만, 서양에서는 관료제와 유사한 것이 일시적으로 등장하기는 했어도 빠르게 붕괴하고 분권화해버리면서 관직이 곧 작위, 즉 가산(家産)이 되어버렸다. 동양에서는 한 사람이 단 하나의 작위만을 가지지만, 서양에서는 한 사람이 둘 이상의 작위를 가질 수 있었다. 즉, 브란덴부르크 변경백은 변경백으로서가 아니라 선제후로서 특권을 누린 것이다. 선제후는 전하의 경칭을 받는, 왕에 준하는 존재로 대접받았다. 신성로마제국의 세속선제후 가문들은 거의 왕가와 같은 계급으로 간주하여 귀천상혼 없이 타국의 왕실과 혈연을 맺고 그 왕위를 계승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통상적인 변경백은 바덴 변경백 등을 볼 때 후일 공작(Duke)으로 올라서는 수준.
  2. [2] 신성로마제국에는 여타 왕국들에서는 드물었던 (또는 후, fürst)이 다수 있으며, 선제후(Kurfürst), 제국공(또는 제국후, Reichsfürst) 등 그 이상의 지위가 있다. 그중 통상의 공과 제국공보다 변경백이 우위에 있다. 애초에 유럽에는 오등작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도 했지만, 특히 계급 분화가 많이 이루어진 독일의 작위체계는 동양식의 오등작으로 억지로 엮기엔 많은 무리가 따른다. 거기다 오등작이라는 개념은 동양에서도 정확하지 않다. 항목 참조 바람.
  3. [3] 신성 로마 제국에서 "제국의~ (Reichs)"가 앞에 붙는 작위들은 중세 후기에 존재했던 황제의 직속 봉신에게 붙는 말이다. 원래 중세 작위는 관직에서 기원한 것으로, 모든 공작(Duke)과 백작(Count) 등은 군주의 직속 봉신이었지만, 유력한 영역제후들이 영역을 장악하고 확대하면서 군주의 직속 봉신으로서 백작이라는 개념이 의미를 잃게 되었고, 그러한 와중에도 독립을 지켜내었거나 나중에 황제가 직접 임명한 제후들에게는 "Reichs"를 붙이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제국백(Reichsgraf), 제국공(Reichsfürst), 제국기사(Reichsritter) 등이 있으며, 이들은 제국영방제후로서 여타 유력 제후들과 마찬가지로 제국의회에 의석을 보유할 권리를 지녔다.
  4. [4] 84화에서 토리노 변경백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았다.
  5. [5] 직위는 변경백이지만 공작으로 취급해 '규리하 공'으로 불리우며, 오히려 공작보다 상위에 준한다는 율형부사 사라말 아이솔의 유권해석이 있었다.
  6. [6] 엄밀히 말해서 변경백(Markgraf)은 아니다. 이들은 백작(Count), 공작(Duke), 공(Prince) 등 다양한 작위를 가진 귀족들의 영역으로 구성되었다. 무엇보다도, 왕국이나 제국 등 군주의 영역에서 방어를 위하여 설정되었던, 관료제적 전통에서 기원한 변경백작령과는 달리, 이들의 영역은 제국 등에서 이주해 온 사람이나 그외 잡다한 이유로 연고지를 떠나 온 사람들이 개척하였으며, 브레토니아나 제국 등에 속하지 않은, 독립적 정치제들이다. 우리말로 옮긴다면 "변경공(들)"이나 "변경후(들)"로 번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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