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사바스(밴드)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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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블랙 사바스
BLACK SABBATH

멤버

오지 오스본, 토니 아이오미, 기저 버틀러, 빌 워드

입성 연도

2006년

후보자격 연도

1996년

후보선정 연도

1997년,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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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사바스의 주요 수상과 헌액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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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음악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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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헌액

1950년대: 엘비스 프레슬리, 클리프 리처드 & 섀도우즈
1960년대: 비틀즈, 롤링 스톤스
1970년대: 밥 말리,
1980년대: 마이클 잭슨, 마돈나
1990년대: U2, 로비 윌리엄스

2005년 헌액

핑크 플로이드
유리드믹스
아레사 프랭클린
지미 헨드릭스
밥 딜런
조이 디비전 / 뉴 오더
더 후
킹크스
블랙 사바스
오지 오스본

2006년 헌액

제임스 브라운
레드 제플린
로드 스튜어트
브라이언 윌슨
본 조비
프린스
더스티 스프링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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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 스톤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100명

85위

85위

86위

제임스 타일러

블랙 사바스

투팍 샤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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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년 라인업. 왼쪽부터 기타토니 아이오미 / 보컬오지 오스본 / 베이스인 테리 '기저' 버틀러 / 드럼인 빌 워드

2013년에 다시금 모인 원년 라인업. 왼쪽부터 토니, 오지, 기저 순이다.[2]

Black Sabbath

1. 개요
2. 역사
2.1. 오지 오스본 보컬 시절
2.3. 딥 퍼플 콜라보 & 토니 아이오미 1인 체제
2.4. 토니 마틴 보컬
2.5. 디오의 복귀, 토니 마틴의 복귀 그러나...
2.6. 오지와 20년 만의 재결합, 디오와 다시 함께한 Heaven And Hell
2.7. 인고의 끝에 나온 신보
2.8. 공식 해체
3. 디스코그래피
3.1. 정규 앨범
3.2. 라이브 앨범
4. 기타
4.1. 기독교와 사이가 나쁘다?
4.2. 대중 매체에서 나온 그들의 노래들
4.3. 세대를 구분하지 않는 인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끝내주는 리프는 블랙 사바스가 이미 다 써먹었어. 너희들은 그걸 빠르게 연주하거나 느리게 연주하거나 거꾸로 돌리거나 할 뿐이야. - 롭 좀비[3]

1. 개요

블랙 사바스는 역사상 최초의 헤비메탈 밴드 중 하나이자 최고의 헤비메탈 밴드 중 하나다.[4]

통산 앨범 커리어만 봐도 5천만장을 넘는 판매고를 올린 상업적으로도 대성공한 길게 말하면 입이 아픈 밴드. 1968년에 판매된 비틀즈White Album에 수록된 Helter Skelter, 크림헤비메탈 적 사운드의 단초를 제공한 밴드들은 있어왔지만 헤비 메탈의 헤비함의 시초는 블랙 사바스라 해도 좋다.

락의 르네상스 시절인 70년대에는 동시대의 라이벌인 두 밴드 딥 퍼플이나 레드 제플린에 비해 음악성이 한 수 아래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 이유는 복잡한 구성의 두 밴드의 음악에 비해 비교적 단순하고 직선적인 음악을 했고, 레드 제플린과 딥 퍼플은 원래부터 이름난 프로페셔널 뮤지션들 혹은 대중적으로는 몰라도 영국 음악계에서는 누구나 다 인정하는 베테랑들이 만든 밴드였지만 블랙 사바스는 4명 모두 완전 무명의 20대 초반 젊은이들로 구성된 밴드였기 때문이다.[5]

결국 비교적 신생 뮤지션이던 블랙 사바스는 짧고 굵게 활동하다가 76년에 해체한 딥 퍼플이나, 이보다 4년 더 밴드를 지속했지만 드러머 존 본햄의 사망으로 인해 이른 시기에 해체한 레드 제플린에 비해, 8,90년대까지 꾸준하고 왕성한 활동을 통해 둠 메탈이나 스래쉬 메탈 등 다양한 메탈이 탄생하는데 영향을 준 것은 물론, 주다스 프리스트, 메탈리카, 너바나 등 이후에 등장하는 모든 헤비 록 아티스트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또한 Paranoid나 Iron Man같이 80년대 헤비메탈 전성기의 원형을 제시한 곡들을 꾸준하게 만들어왔고 헤비메탈 밴드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세웠다는 점도 크게 평가되었다.

롤링 스톤 선정 100대 아티스트에도 포함되어 85위를 기록했다.

2. 역사

2.1. 오지 오스본 보컬 시절

1968년 영국 공업지대(버밍엄)에서 어스(Earth)라는 이름으로 결성되어 활동하다가[6] 같은 이름의 밴드가 존재한다는걸 알게 되면서,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기저 버틀러가 '우린 좀더 오싹한 이름으로 어필하는게 어떨까?'라는 의견과 함께 현재의 블랙 사바스라는 이름을 제시했고, 멤버들 전원이 찬성을 하며 1969년부터 블랙 사바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1970년 2월 13일 금요일에 셀프 타이틀 1집을 발행했고, 평론가들의 악평과 분명 망할거라는 점성술사의 예언에도 불구하고 대 히트를 쳐서 본격적인 헤비메탈의 탄생을 알렸다.

사실 무서운 느낌이 나는건 1집에서 첫번째 곡인 Black Sabbath뿐이지만, 다른 곡들도 70년대 음악이라곤 믿을수없는 파워가 느껴진다. 파격적인 기저의 베이스 솔로로 포문을 여는 'N.I.B'[7],10분도 넘는 길이의 대곡 'The Warning'등을 포함한 수작이었다,

초창기 멤버는 오지 오스본 (보컬), 토니 아이오미 (기타), 기저 버틀러 (베이스), 그리고 빌 워드 (드럼).

멤버들 개개인에 관해 추가적인 소개를 좀더 하자면, 오지 오스본은 특유의 음울한 음색과 강렬한 무대매너로 밴드의 프론트맨 역할을 잘 해내었고, 메인 송라이터도[8] 겸 리더인 토니 아이오미는 17살 무렵 공장에서 일하던중 오른손 손가락 두개의 끝을 잘렸음에도[9] 플라스틱을 녹여 골무처럼 손가락 끝에 붙인뒤에 계속 기타를 연주했고 손가락을 섬세하게 쓰기 힘들다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기타를 반음 낮춰 튜닝했다. 이후 다운튜닝은 메탈의 상징이 되었다. 끝이 플라스틱이라 자기 손가락이 어디에 닿는지도 모를텐데 능숙하게 기타를 치며, 피아노, 신디사이저는 물론 플룻 등 관악기까지 연주한다..[10] 베이시스트 기저 버틀러는 "기관총 베이스"라고 불릴 정도로 강력한 핑거 피킹과 더불어 베이스 기타에 오버드라이브를 건다는 획기적인 발상을 최초로 시도하였고 작사를 전담하여 밴드 특유의 악마적인 이미지를 정립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드러머 빌 워드 역시 다른 드러머들보다 무겁고 힘있는 사운드로 밴드의 기둥을 확고하게 잡아주었고, 70년대 후반의 블랙 사바스의 음반에서 한 곡 이상씩 리드 보컬을 맡아서 근사한 보이스의 노래 실력을 선보이기도 했다.[11] 또한 매니저와의 불화로 밴드 스스로 매니지먼트를 할 때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덕분에 오지 오스본의 해고 통보를 한 장본인이기도 해서 오지 오스본과의 사이가 틀어지게 된다.

1집이 성공을 이루자, 블랙 사바스는 같은 해에 2집을 내게 되는데, 그것이 헤비메탈계 역사에서 빼놓을수 없는 Paranoid이다. 본디 앨범 제목은 War Pig[12] 가 될 예정이었지만 반전테마는 시대적 배경들도 그렇고 여러가지 원인으로 안 팔린다는 이유로 레코드사가 극구 반대했고 결국 앨범 러닝타임이 5분 정도 남아서 즉흥적으로 만든 곡인 Paranoid를 타이틀로 정했다고 한다. 명곡으로 꼽히는 War Pigs와 함께 잡지에서 역시 최고의 인기 메탈 넘버로도 꼽힌 Paranoid, 간단한 리프의 미학인 Iron Man[13]과 음침한 리프가 매력인 Electric Funeral 등이 인기를 끌었고 블랙 사바스는 수직상승의 가도를 달려간다.

이후 밴드는 3집 Master of Reality (1971), 4집 Vol.4 (1972), 5집 Sabbath Bloody Sabbath (1973), 6집 Sabotage (1975) 등의 명반들을 발표하고 긴 월드 투어를 도는 절정기를 맞이한다. 1974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대규모 락페스티벌인 California Jam 1974 의 무대에 서게 된다.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이글스, 블랙 사바스, 어스 윈드 앤 파이어, 그리고 딥 퍼플 등 영국, 미국의 슈퍼밴드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하지만 동시에 매니저와의 불화, 마약의 남용[14]으로 인해 밴드의 상태는 점점 엉망으로 치닫고 있었고 그 중 특히 밴드의 프론트맨인 오지의 정신은 점점 쇠약해져기고 있었다. [15] 설상가상으로 자신의 아버지마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되자 오지 오스본은 70년대 중반부터 밴드 멤버 중 유일하게 헤로인에 빠지게 된다. 자신의 마약 중독이 날이 갈수록 점점 심해지자 1977년, 오지는 밴드 멤버들에게 잠시 밴드에서 탈퇴하고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오겠다고 통보한다.

오지가 밴드에서 잠시 나간 동안 밴드는 사보이 브라운 의 보컬리스트 였던 데이브 워커(Dave Walker)를 영입하여 새 앨범 준비를 한다. 하지만 돌아오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던 오지가 돌아오자 밴드는 할 수 없이 데이브 워커를 내보내고 오지와 같이 작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밴드에 돌아온 오지는 자신이 없는 사이 밴드가 새 앨범의 작곡을 이미 끝내놓은 것을 보고 화를 내었고 결국 기저 버틀러는 작곡해 놓은 곡들을 듣고 오지가 흥얼거리는 멜로디 라인을 바탕으로 가사와 일부 곡들을 새로 만들어야 했다. 이러한 앨범 녹음 과정 중에 오지와 다른 밴드 멤버들의 사이는 더욱 악화되었고 결국 1978년 <Never Say Die> 앨범의 투어를 마치고 밴드 멤버들은 오지를 해고한다. 이후 오지와 다른 멤버들은 거의 20년간 서로 생까는 사이가 된다.

2.2. 로니 제임스 디오 보컬 시절

왼쪽부터 기저, 디오, 토니, 비니 어피스[16].

1980년 블랙 사바스는 새 보컬로 레인보우의 보컬리스트인 로니 제임스 디오를 기용한뒤 Heaven And Hell을 내게 된다. 보컬인 디오는 오지 오스본보다 월등한 가창력과 출중한 작곡실력을 가진 멤버로 그가 참여한 Heaven And Hell과 Mob Rules 두 앨범은 싱글 히트곡들까지 만들어내며 오지 재직시절 음반들을 능가하는 명반이라고 평가받는다. [17] 실제로 오지 오스본 재적 시절까지의 음반들만으로는 두 라이벌 들에 비해 음악적 역량에서 부족한게 사실이고, 로니 제임스 디오와 함께한 두 장의 앨범에서 토니 아이오미의 역량도 최고조에 달한다.

그러나 디오가 자신의 이름을 건 밴드를 만들려고 탈퇴한 이후의 블랙 사바스의 음반은 하락세에 들면서 크게 평가 받지 못하게 된다.

2.3. 딥 퍼플 콜라보 & 토니 아이오미 1인 체제

디오의 탈퇴 이후, 딥 퍼플 을 거친 화이트스네이크의 보컬 데이빗 커버데일을 먼저 컨택했으나 성사되지 않았고, 역시 딥 퍼플의 명 보컬 이안 길런을 영입해 83년 당시 딥 퍼플 + 블랙사바스의 결합으로 큰 화제를 모으며 Born Again을 내놓는다. 딥 퍼플과 블랙 사바스의 결과물 치고는 기대에 못미치는 음반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큰 기대에 못 미쳤을뿐 졸작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명반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앨범의 반응은 뜨뜻 미지근했지만 앨범 발매후 열린 Born Again tour는 대성공이었다. 이 무렵 딥 퍼플의 재결성이 논의되었고 이안 길런은 미련없이 재결성 되는 딥퍼플로 떠나버린다. 원년 멤버 빌과 기저의 연속적인 탈퇴로 밴드에는 토니 아이오미만 남게 된다. [18]

83년 본 어게인 투어 당시 기저 버틀러, 이안 길런, 토니 아이오미

이후 토니 아이오미는 블랙 사바스를 해체하고 솔로 앨범 <Seventh Star>의 제작 준비를 한다. 본래 앨범의 보컬로 오지 오스본, 로니 제임스 디오, 이안 길런 등 블랙 사바스를 거쳐간 보컬리스트와 오디션으로 뽑은 신인 보컬리스트 등 7명의 보컬리스트들을 기용하려 하였으나 스케줄과 비용 문제로 무산되었다. 대신 딥 퍼플 의 멤버였던 베이시스트이자 보컬리스트인 글렌 휴즈를 영입하여 앨범을 제작했다. 그러나 앨범 녹음이 끝난 후 돈독 오른 음반사에서 블랙 사바스의 이름으로 앨범을 발매하라며 압박, 앨범은 블랙 사바스의 이름으로 발매된다. (커버에도 Black Sabbath Featuring.Tony Iommi 라고 써져있다...) 결국 앨범은 블랙 사바스의 사운드가 아니라는 팬들의 반발로 흥행에 실패하고 만다. 사실 <Seventh Star>는 블랙 사바스 앨범이라는 이름을 건 것 때문에 너무 평가 절하되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의외로 무시못할 음반이다.

글렌 휴즈 와 토니 아이오미

2.4. 토니 마틴 보컬

<Seventh Star>가 혹평을 듣자 토니 아이오미는 본격적으로 블랙 사바스를 재결성하기 위해 멤버들을 모집하여 <Eternal Idol>의 녹음을 시작한다. 원래 보컬리스트는 Seventh Star 투어 때 글렌 휴즈가 건강 사정으로 중도하차한 후 [19] 대타로 뛰었던 신인 보컬리스트 레이 길런이었지만 레이가 멤버들간의 불화로 앨범의 믹싱만을 남겨놓은 상태에서 탈퇴했다.[20] 결국 아이오미는 또다른 신인 보컬인 토니 마틴을 급히 영입하여 앨범을 재녹음했다. 1987년 발매된 Eternal Idol은 로버트 플랜트를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고음이 매력적인 레이 길런에 최적화된 곡들을 디오를 연상시키는 토니 마틴이 노래했기에 그리 좋은 평을 듣지 못했다.

1989년 발매된 앨범인 Headless Cross에서는 거물 드러머인 코지 파웰의 영입과 더불어 토니 아이오미의 독재체제였던 작곡노선을 벗어나 코지 파웰, 토니 마틴, 제프 니콜슨등이 골고루 참여하였다. 동시에 보컬이 토니 마틴에 최적화된 곡들로 채워지면서 앨범 완성도가 전성기에 근접한 수준으로 올라갔다. 평단의 호평을 받았고 팬들 사이에서도 블랙사바스 후기 2대 명반으로 평가받는다.

뒤이어 1990년에 발매된 Tyr도 전작 못지 않은 완성도로 호평받아 영국내에서는 전작을 잇는 흥행을 하였다. 팬들 사이에서 블랙 사바스 후기 2대 명반이라고 불릴 정도. 그러나 미국 시장에서는 흥행에 실패한다.

2.5. 디오의 복귀, 토니 마틴의 복귀 그러나...

1992년 디오와 기저 버틀러, 드러머 비니 어피스 등 Mob Rules 당시의 멤버들이 다시 모여서 앨범 Dehumanizer를 발매한다. 흥행은 괜찮았지만 평단에서는 80년대 록을 그대로 다시 가지고 왔다며 혹평했다. (팬들은 평단과 달리 괜찮은 음반이라고 평한다. 다만 토니 마틴 시절의 Headless Cross와 Tyr에 못미치는 느낌이다.) 이후 토니 마틴이 재가입하여 Cross Purposes와 Forbidden을 발매하지만 평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6. 오지와 20년 만의 재결합, 디오와 다시 함께한 Heaven And Hell

1997년 드디어 오지가 참여한 오리지널 멤버로 재결성하여 1998년에 라이브 앨범 Reunion을 내놓았다.[21] 이 앨범에는 오리지널 멤버로는 무려 20년 만에 발표하는 신곡이 두 곡 들어있기도 하다.

타이틀은 Psycho Man과 Selling My Soul. 이후 밴드는 오지 오스본이 주최하는 락 페스티벌 오즈페스트(Ozzfest) 등에서 라이브 공연을 선보이며 활동을 이어나가다가 본격적으로 새 정규앨범을 준비하던 중 오지의 솔로 활동으로 작업이 중단되자[22],

2006년 부터 별개의 프로젝트로 Dehumanizer에 이어 다시 한번 로니 제임스 디오와 만나서 Heaven And Hell이라는 이름 아래 정규 앨범과 라이브 앨범을 발표하며 활발히 활동하던 중 2010년 디오의 사망으로 해산하게 되었다.

Heaven And Hell이라는 이름은 오지 오스본과 재결성하여 활동하고 있는 Black Sabbath와 혼동되지 않도록 밴드 이름을 따로 정했다고 한다. (이름의 유래는 물론 1980년의 동명 앨범이다.)

잠시 공백기가 있은 후인 2011년 11월 11일에 오리지널 멤버로 Black Sabbath의 재결합을 선언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빌 워드의 건강이 나빠져 드럼 파트를 RATM, Audioslave 출신의 드러머 브래드 월크가 대신하게 되었다.

라이브때는 오지가 참여했던 곡들 위주로 공연되었고, 디오가 했던 곡들은 연주가 되지않았다.

2.7. 인고의 끝에 나온 신보

그리고 2013년 6월 10일 25년만에 원년 라인업으로 새 정규작 '13'이 발매되었다. 2월 '13'일에 데뷔작이 발매되었고, 앨범을 발표한 해가 20'13'년이니 의미심장한 타이틀이다. 그리고... 빌보드 200 차트에서 Hot Shot Debut[23]를 이루어냈다. 싱글커트된 곡들인 'God is Dead?와 'End of the Beginning'이 또한 뮤직비디오와 함께 공개되어 호평일색. 그러나 이번에는 토니 아이오미가 림프암(Lymphoma) 진단을 받았다...

2015년 일본 치바에서 다시 열리게 될 Ozzfest Japan에서 해체 직전 마지막 공연을 갖는다고 하지만, Ozzfest 공식 해외 트위터에서 Ozzy Osbourne만 공연한다는 정보를 올렸다가 Ozzfest 공식 일본 트위터에서 이에 대해 정해진 것이 없다는 등 페스티벌 운영에 잡음이 생기면서 팬들의 아쉬움을 불러내고 있다.

2015년 10월 현재 블랙 사바스의 마지막 월드투어의 일정을 SNS에 업로드 하고 있다. 현재 북미, 호주, 유럽의 일정만 발표됐고 아시아 일정은 차후 공개될 예정이라 한국 방문 여부는 아직 미지수.

2.8. 공식 해체

관련 기사

결국 블랙 사바스는 2017년 3월 9일 자신들의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공식 해체를 발표했다. 헤비메탈의 역사의 거대한 대들보였던 블랙 사바스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3. 디스코그래피

3.1. 정규 앨범

  • Black Sabbath (1970)
  • Paranoid (1970)
  • Master of Reality (1971)
  • Vol. 4 (1972)
  • Sabbath Bloody Sabbath (1973)
  • Sabotage (1975)
  • Technical Ecstacy (1976)
  • Never Say Die! (1978)
  • Heaven and Hell (1980)
  • Mob Rules (1981)
  • Born Again (1983)
  • Seventh Star (1986)
  • The Eternal Idol (1987)
  • Headless Cross (1989)
  • Tyr (1990)
  • Dehumanizer (1992)
  • Cross Purposes (1994)
  • Forbidden (1995)
  • 13 (2013)

3.2. 라이브 앨범

4. 기타

4.1. 기독교와 사이가 나쁘다?

요즘엔 훨씬 막나가는 놈들(예를 들자면 마릴린 맨슨)등이 많아 큰 센세이션은 안되지만 초창기의 악마적인 기믹때문에 기독교와 사이가 매우 안 좋았다. 사실 이들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24][25] 1집때는 대장장이인 오지 오스본의 아버지가 만들어준 십자가 목걸이를 멤버들이 나눠가지기도 했고 오지 오스본 본인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고 광고를 한다.(공연 끝나고 툭하면 God Bless you all이라고 한다) 3집에서는 사이비 예수쟁이들을 까며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믿음을 가져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곡도(After Forever)있었다.(물론 기독교에선 마약을 신에 비교한다고 까댔다)

뒤집어서 들으면 악마의 소리가 들린다느니, 앨범 인쇄 잉크에 피가 섞여있다느니, 모두가 사타니스트라느니 하는 소문은 전부 기획사와 멤버들이 상업적 목적으로 퍼뜨린 소문이다. 실제로 멤버들은 녹음 중에 마이크에 대고 방귀를 뀌거나 드러머 빌 워드의 수염이 불에 잘 탈것 같다고(...) 수염에 라이터로 불을 지르거나(결국 빌 워드는 얼굴 전체에 2도 화상을 입었다.) 라이브 투어 중에 호텔에서 배게싸움을 하거나 퍼포먼스 중에 뒤에 다가가서 미트스핀흉내를 내는 약간 껄렁껄렁하고 유쾌한 사람들이다.

기믹수준이 아닌, 진짜로 사탄숭배와 반기독교 성향을 띄며 범죄에까지 연루된 밴드들이 나오기 시작한건 의외로 80년대 후반~90년대에 블랙 메탈이라는 장르가 나오면서부터이다. 대표적으로 그 유명한 버줌의 카운트 그리쉬나크[26] , 메이헴의 유로니무스 등.

실제로는 사이가 매우매우 좋다 카더라 링크

4.2. 대중 매체에서 나온 그들의 노래들

2집 Paranoid에 들어 있는 Iron Man은 그 곡명 때문인지 마블 코믹스사의 아이언맨 애니나 영화의 주제곡 혹은 샘플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아이언맨 실사영화 시리즈 1편 마지막 부분에서, 토니 스타크내가 아이언맨이요할 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나오는 곡이 바로 이 곡에서 보컬을 뺀 것. 하지만 2010년 4월 국내 개봉한 영화판 아이언맨 2의 OST는 AC/DC가 담당했다(...) 그 뒤로 음악이 직접 나오진 않앗으나, 토니가 어벤져스에서 평상복으로 블랙 사바스의 머천다이스 티셔츠(8집 Never Say Die 관련)를 입고 나왔다.사진을 클릭

CSI 시즌13 마지막 에피소드 오프닝에서 투어콘서트로 등장. 에피소드 초반 등장한 기자와 인터뷰 씬에서 오지 오스본이 등장했다. 그리고 신곡 'End of the Beginning'을 선보였다.

모데카이저의 스킬인 철인(Iron man)과 무덤의 자식들(Children of the Graves)이 밴드의 노래 제목을 붙인 것.

4.3. 세대를 구분하지 않는 인기

블랙 사바스는 1960년대 후반에 데뷔한 밴드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세대들에게 인기가 많다. 당장 블랙 사바스 공연 영상만 봐도 10대부터 50-60대가 다 모여있다. 보통 오래된 밴드들은 소수의 매니악한 신세대 팬과 다수의 올드팬들이 모이기 마련인데 블랙 사바스는 다수의 신세대와 올드팬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 오지 오스본도 재결합 공연을 보러 온 16살 짜리에게 블랙 사바스라는 밴드를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니 자기 할아버지가 들려줘서 팬이 됐다고 한다. 블랙 사바스는 굴곡이 많은 밴드였지만 세대를 뛰어넘는 곡들을 만들었다.


  1. [1] 로큰롤 명예의 전당의 5가지 헌액 카테고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문이자 공신력이 인정되는 '공연자(Performers)' 명단에 한하여 기록하도록 함. 나머지 부문의 헌액자들은 따로 문서 내 헌액명단에 수록해주길.
  2. [2] 드럼인 빌 워드는 건강 문제로 참여하지 못했다. 예전부터 여러번의 자살 시도 등 정신 건강 문제가 심했다.
  3. [3] 원문 : Every cool riff has already been written by Black Sabbath. You're either playing it faster or slower or backwards, but they wrote it first.
  4. [4] 레드 제플린, 딥 퍼플과 함께 헤비메탈 밴드의 시초로 여겨지는 밴드이며, 세 밴드 중 가장 현대 헤비메탈과 흡사한 밴드라고 할수 있다. 기수별로 락에 소울, 블루스, 펑키(funky)함 까지 다양한 장르를 믹스해서 보여주던 딥 퍼플과, 5집부터 인도 음악 등 실험적인 음악적 시도를 했던 레드 제플린에 비해 블랙 사바스는 데뷔 이래로 거의 바뀌지 않는 특유의 단순하고 암울한 사운드로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8,90년대 헤비메탈의 원형을 보여준 밴드라 평가 받는다.
  5. [5] 아이러니하게도 딥 퍼플의 기타리스트였던 리치 블랙모어는 이 밴드의 결과물들을 매우 부러워했고 질투했었다. 왜냐하니, 블랙 사바스는 자기네 밴드의 정체성을 확실하고 철저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6. [6] 원래 초창기 록/메탈 밴드들은 블루스 밴드였던 사람들이 많다. 레드 제플린도 본디 블루스 밴드의 멤버들. 하드락 자체가 어쿠스틱 사운드를 탈피한 하이템포의 블루스에서 출발했다.
  7. [7] 곡의 제목은 별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닌 수염이 뻣뻣하게 자란다는 의미를 지닌 빌 워드의 별명이었다고 한다. 멤버들이 이 제목의 뜻을 밝히기 전까지는 Nativity in Black(검은 성탄(聖誕))의 약자로 추측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던 듯.(나중에 동명의 블랙 사바스 트리뷰트 앨범이 나왔다.) 여담으로,프라이머스(밴드)의 리더 레스 클레이풀이 어릴적 가장 즐겨들으며 열심히 카피했던 곡들중 하나라고 한다.덕분에 레스 본인이 베이스 솔로 메이킹이나 작곡에 도움이 많이 됐다고 밝히기도.
  8. [8] 앨범 크레딧에는 항상 모든 멤버의 작곡으로 표기 되긴 하지만 실제로는 토니 아이오미의 단독 작곡인 경우가 많았다.
  9. [9] 아이오미는 왼손잡이라서 기타의 넥을 오른손으로 잡는다.
  10. [10] 70년대 블랙 사바스의 음반에는 그의 플룻이나 피아노, 신디사이저 연주를 들을수 있는 곡들이 많다.
  11. [11] Technical Ecstacy 앨범에 수록된 It's Alright 에서 오지의 동물적인 목소리와 반대로 인간적이고 지적으로 들리는 매력적인 빌의 보컬을 감상할수 있다.
  12. [12] 원래 Walpurgis라는 제목의 매우 음침하고 사악한 가사를 가진 곡이었으나 매니지먼트가 블랙 사바스의 악마주의 이미지를 벗고자 같은 연주에 제목과 가사만 다시 써서 녹음시켰다. 원곡인 Walpurgis는 유튜브에서 들을수 있으며 가사가 굉장히 인상적이다.
  13. [13] 동명의 마블 코믹스 슈퍼 히어로와 관계없이 만든 곡이다. 다만 수십 년 후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출연한 실사판 영화 엔드 크레딧에 배경 음악으로 깔렸다.
  14. [14] 토니 아이오미는 훗날 인터뷰에서 "밴드가 인기를 얻기 시작할 때 코카인은 그저 공연이 끝난 뒤에도 공연의 흥분감을 지속시켜주고 허무감을 잊게 해주는 좋은 유흥거리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들은 코카인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15. [15] 1973년 기나긴 투어를 마치고 정신적인 안정을 위해 휴가를 내서 시골 농장에서 요양을 하던 오지는 휴가가 끝나가면서 다시 투어를 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농장에서 기르고 있던 닭들을 총으로 다 쏘아서 죽였다고 한다.
  16. [16] <Mob Rules> 시절의 드러머로 바닐라 퍼지, 블루머더 등으로 유명한 카마인 어피스의 동생이다.
  17. [17] 오지 시절은 보컬이 호불호가 갈리지만 어두운 분위기와 함께 헤비메탈의 장르의 토대가 되었다는 혁신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면, 디오 시절은 뛰어난 가창력의 보컬과 함께 곡이 다소 밝아졌지만 웅장하면서 거기에 앨범에 수록된 곡들간의 조화와 완성도가 높게 평가받는다. 허나 오지 시절을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디오의 보컬은 진정한 블랙사바스의 앨범이 아니라는 불만이 있다. 즉 취향차이
  18. [18] 이안 길런과 토니 아이오미는 절친 관계로 2010 년에도 Whocares 라는 프로젝트 밴드를 함께 하기도 한다
  19. [19] 글렌 휴즈의 약물중독이 심해지면서 투어 중반에 라이브를 할 목상태가 아니었다.
  20. [20] 이후 레이 길런은 후에 오지 오스본의 기타리스트 자리에서 해고된 제이크 E. 리와 함께 Badlands라는 밴드를 결성하였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1993년 이른 나이에 AIDS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한다.
  21. [21] 80년대 중반 이후 계속 하락세를 보엿던 블랙 사바스와 달리 오지는 랜디 로즈, 제이크 이 리, 잭 와일드 등 불세출의 기타리스트들을 기용하며 동시에 엽기적인 퍼포먼스로 화제를 불러 일으키며, 메탈계에서 절대적인 위치에 자리 잡은 상태였다. 결국 이런 저런 사정으로 다시 모인 것
  22. [22] 당시 작업중이던 곡 가운데 하나인 Scary Dreams라는 곡이 공연에서 여러 차례 연주된 적은 있다.
  23. [23] 차트 진입하자마자 1위를 차하는것.
  24. [24] 대표적인 악마주의 테마 밴드인 디어사이드의 글렌 벤튼은 결혼식을 성당에서 하는 충공깽을 선사하기도 했다(...)
  25. [25] 토니 아이오미는 부모님이 카톨릭 신자이시고, 따라서 본인도 카톨릭 신자라고 한다. 다만 종교활동을 그리 성실히 하지는 않았다고..
  26. [26] 그러나 카운트 그리쉬나크의 말로는 자기 자신은 악마주의가 아니고 북유럽 신들을 섬긴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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