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홀리데이

미국재즈 가수. 본명은 엘리노라 고프 해리스(Eleanora Gough Harris).

태어날 당시 아버지가 누군지 몰랐기에 어머니인 세디 페이건의 성을 따라 '엘리너 페이건'이라 불렸다.

세라 본, 엘라 피츠제럴드와 함께 재즈 3대 보컬리스트로 종종 거론된다. 1915년 미국 볼티모어(필라델피아라는 설도 있다.)생, 1959년 마약중독으로 사망.

1. 생애

태어날 당시 아버지는 16세, 어머니는 13세였다. 어머니는 슬럼가 거리의 창녀였으며, 그녀 역시 그러한 어린 나이에 창부의 삶을 살았다. 슬럼가에서 태어난 그녀는 그후로 사촌의 집에서 학대받으며 자랐으며, 1929년 클럽에서 인정받는 가수가 되기전까지 2번의 강간과 감옥생활을 경험했다. 최종학력은 초등학교 5학년.

그녀가 처음 강간을 당했을때, 상대는 40대의 백인이었고 그녀는 10살이었다. 허나 경찰은 백인을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흑인인 그녀를 불량소녀로 몰아서 감호소에 집어넣었다. 감호소에서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고 풀려나온 그녀는 나온지 얼마되지 않아서 다른 흑인 남자에게 또 다시 강간을 당했다. 결국 살던 곳에서 나온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뉴욕할렘 가로 갔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창부의 일뿐이었다. 15살까지 할렘가에서 창부로 일하던 그녀는 성행위를 강요하던 흑인의 말을 듣지 않다가 매춘행위로 고발되어 다시 감옥으로 들어가게 된다.

감옥에서 나온 이후, 창부의 생활을 접은 채 백인의 집에서 하녀생활을 하던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는 곧 찾아온 미국의 대공황 속에서 다시 일자리를 잃었다. 결국 방세를 갚지 못해서 길거리에 내쫓길뻔한 그녀는 거리의 포즈와 제리즈라는 나이트클럽의 댄서 오디션을 보러 갔지만, 춤을 한 번도 춰본 적이 없는 그녀는 오디션에 붙지 못했다. 그걸 가엾게 여긴 클럽의 피아니스트가 노래를 한번 불러보라고 했고, 빌리 홀리데이는 노래를 시작했다.

그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은 그 광경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뒤늦게 그같은 분위기를 감지했다. 홀 전체가 숨을 죽이고 있었다. 만약 누가 핀이라도 하나 떨어뜨렸다면 그것은 마치 폭탄이 터지는 소리 같았을 것이다."

그때 얻은 '빌리 홀리데이'라는 이름은 그녀가 좋아했던 배우 빌리 도브의 빌리와 아버지인 클래런스 홀리데이의 성 홀리데이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녀의 아버지 클라렌스 홀리데이는 당시 빅밴드 플레처 핸더슨악단의 벤조연주자로 알려져 있었는데, 처음엔 빌리 홀리데이를 자신의 딸로 인정하지 않았으나 그녀가 명성을 얻고 돈을 벌기 시작하자 아버지임을 자처하며 돈을 얻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천하의 개쌍놈.

그 처참한 인생의 역경속에서 뉴욕의 클럽에서 그 노래를 인정 받기 시작했으며, 1933년 당시 스윙의 왕이라 불리던 베니 굿맨, 평론가였던 존 해먼드와의 만남으로 18세의 나이에 음반을 내고 본격적으로 재즈 가수로서의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한다. 팬들이 그녀의 음색에서 가장 먼저 얻을 수 있는 것은 말기 감성을 쥐어짜는 그녀의 우울한 감성이지만, 초기에는 듀크 엘링턴, 카운트 베이시와 같은 스윙밴드의 보컬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런 그녀의 음악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곡은, 역시 1939년 폐렴에 걸렸음에도 흑인이라는 이유로 병원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부른 기이한 열매(이상한 열매, Strange fruit)# 영상 # 영상2 # 가사다. 루이스 앨런의 시에 노래를 붙인 이 곡은, 흑인들이 백인에게 폭력을 당한 다음 나무 위에 목이 매달려 있는 풍경을 묘사한 곡이다.[1] 그 이후 이 노래는 여류 작가인 릴리언 스미스에 의해 소설로 발표, 1944년 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으며, 빌리 역시 이 곡으로 1944년 에스콰이어 재즈보컬상을 수상한다. 이시기 마약하던 시절의 맬컴 엑스와 친했다는 말이 있다.

이러한 활동에도 그녀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1941년 첫 번째 남편인 제임스 먼로와 결혼했지만 심한 마약 중독자였던 그의 남편 때문에 그녀는 외려 마약 중독자의 굴레에 빠져들었고, 두 번째 남편인 존 래비는 그녀의 사랑보다는 돈만을 갈취하는 남편이었다. 세 번째 남편 역시 마약과 무기혐의 소지 때문에 여러 번 옥살이를 거듭한 범죄자로 평생 홀리데이를 괴롭혔다. 그 외에도 그녀는 베니 굿맨, 오슨 웰스 등과 연애를 했지만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고, 결론적으로 그녀는 자신의 일생 가운데 제대로 된 사랑을 단 한번도 하지 못한 불행으로 가득찬 삶을 산 여자였다.

재즈 가수로서 성공은 했지만 인종 차별이 워낙 극심했던 시절이라 알게 모르게 차별을 많이 당했으며(연주자 아티 쇼의 부름에 클럽에 갔다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뒷문으로 쫓겨난 일화는 유명하다) 극심한 마약 중독 때문에 나중엔 듀크 엘링턴이나 마일스 데이비스에게 약값을 빌리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1950년에 들어서는 그녀의 이러한 마약중독이 그녀의 삶을 완전히 갉아먹기 시작했다. 덕분에 그녀는 이 이후 금단과 중독을 계속해서 왔다갔다 하며 스스로를 괴롭혔다. 삶의 마지막까지 녹음을 했으며 1959년 5월 맨해튼 작은 자신의 아파트에서 쓰러진 이후 10주간 입원해 있다가 44세의 나이에 삶을 마감했다.

게다가 마약중독 이후로 그녀의 목소리는 천천히 망가졌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수많은 팬들 가운데는 마약에 중독돼서 갈라진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를 오히려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한층 더 호소력이 있는 목소리로 느껴지게 된 것.

이처럼 흑인으로 태어나 사창가를 전전하며 밑바닥 인생을 살고 말년엔 약물중독으로 고생했으나 역설적으로 별명은 "Lady day". 그 별명은 보잘 것 없는 신분이지만 언제나 머리에 하얀 치자꽃을 꽂고 정갈하고 품위있게 노래를 하는 그녀에게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별명이 되어 그렇게 우리에게 남아있다.

2. 음악 성향

초기 그녀의 음색은 팬들이 기억하는 말년, 즉 그녀가 삶을 마감하면서 부른 음반 Lady in Satin에 비하면 감성을 극으로 쥐어짜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회색빛이 가득한 굉장히 특이한 보컬임에는 분명했다. 그런 그녀에게 훗날 기자들이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에게 묻자, 블루스 싱어인 베시 스미스루이 암스트롱 외에 별다른 영향을 받은 사람은 없다 라고 말한 것은, 그녀의 특이한 목소리는 다분히 천성적인 것이라는 것의 방증이다.

음악적으로는 카운트 베이시 악단에서 만난 레스터 영과의 상성이 잘 맞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빌리는 그를 향해 "프레지던트 레스터"의 약자인 "Pres"라 부르고, 레스터 영은 그녀를 "Lady day"라 부르며 서로를 존중했다. 실제로 영이 피아니스트 테디 윌슨 콰르텟과 함께한 1956년 발매된 음반명은 Pres and Teddy다.

그녀의 가창력과 정교함은 엘라 피츠제럴드에 비교할 수가 없었으며, 세라 본의 아름답고도 풍부한 음색에도 비교할 수 없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3대 여성 재즈보컬 가운데 그녀가 최고로 꼽히는 이유는 그녀의 노래에서는 가창력과 음색 같은 것을 떠나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녀의 노래를 들어보면 영어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무언가 가슴속에 피어오르는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블루스에 가장 어울리는 목소리라고도 평했다.

1957년 CBS의 텔레비전 재즈 프로그램 '재즈 소리 The Sound of Jazz'에 출연해 자작곡인 Fine and Mellow를 부르는 역사적인 영상. 말년의 연주라 목소리 톤도 많이 노쇠해지고 음역도 좁아졌지만, 얼핏 냉소적으로 들리면서도 뭔가 울컥하는 감정을 전해주는 특유의 클래스는 여전한 모습이다. 반주를 맡은 밴드 멤버들도 대부분이 재즈 계에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였다는 점에서 말년까지도 빌리가 얼마나 거물급이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

혼 섹션은 빌리의 노래에 이어지는 솔로 순서대로 벤 웹스터(테너색소폰)-레스터 영(테너색소폰)-빅 디킨슨(트롬본)-제리 멀리건(바리톤색소폰)-콜맨 호킨스(테너색소폰)-로이 엘드리지(트럼펫). 이외에도 노래가 나오는 동안 덕 치섬이 약음기 끼운 트럼펫으로 솔로 오블리가토를 곁들이고 있고, 리듬 섹션에서는 대니 바커(기타), 밀트 힌턴(베이스), 맬 월드런(피아노), 오시 존슨(드럼)이 연주하고 있다.

3. 평가 및 영향력

대체적으로 그녀의 삶이 워낙에 비극으로 점철되어 있다보니, 재즈 보컬 가운데 가장 감성을 극대화 시키는 보컬리스트로 알려져 있다. 물론 엘라 피츠제럴드나 세라 본, 카멘 맥레이, 에비 링컨과 같은 동시대의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들 역시 그다지 순탄한 삶을 산건 아니지만 확실히 빌리 홀리데이는 그중에서도 가장 굴곡많은 삶을 산 것은 확실하다. 20세기 초 흑인+여성+미혼모+창부+이혼녀+약물 크리가 경험해보진 못했지만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아픔을 공유할수 있는 지점이 있어서 인듯.

실제로 과거 비구니였던 재즈 보컬리스트 웅산은 원래 비구니(여승)였지만, 홀리데이가 부른 I'm a Fool to Want You를 우연히 듣고 비구니 생활을 청산한 뒤 재즈 보컬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국내 재즈팬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일화로, 실제로 웅산은 한국에서 빌리 홀리데이와 비슷한 느낌의 보컬로 불린다.


  1. [1] 허나 모 백인여성은 클럽에서 노래하는 빌리 홀리데이에게 이 곡을 신청하면서 "그 왜 검둥이가 나무에 매달려 죽는 섹시한 노래."(...)라고 평했다. 당시 흑인들의 대우가 어땠는지 잘 알려주는 대목. 꽤 충격이 컸는지 빌리는 이후 자서전에 그 일화를 수록한다. 물론 비판적인 논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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