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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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언어별 명칭
3. 어원
3.1. '빨치산'에서 왔다는 설
3.2. '빨강'에서 왔다는 설
4. 대한민국에서
4.1. 기원
4.2. 역사와 용례
4.3. 현대 사회에서의 남용
5. 대중매체에서

1. 개요

야, 이 빨갱이 새끼야!!! 너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 상하이 조, 야인시대 65화

너희들은 정신 개조를 해야 한다. 이의들 있는가? (수감자들: 없습니다!) 이 세상에 할 게 없어 빨갱이 짓을 했나? 빨갱이가 뭔가? 부모도 형제도 없다고 난 들었다.

- 김두한, 야인시대 59회에서 감방에서 집단 린치를 가하려 했던 극좌 계열 수감자들을 때려눕힌 후 얼차려를 부여하며[1]

똑똑히 새기라우. 내래 빨갱이 잡는 거 방해하는 간나들은, 무조건 빨갱이로 간주하갓서!!

- 박처원(김윤석), 영화 1987에서 자신의 일을 방해하는 상관에게 하극상을 가하며 한 대사

공산주의자를 비하하는 말.

현대에 와서는 일반적으로 '공산당원' 또는 '극좌적 사상을 갖고 있는 사람'(혹은 그렇게 몰아붙이고 싶은 사람들)을 뜻하는 증오, 경멸조가 매우 강한 속어로 쓰인다.

2. 언어별 명칭

언어

내용

한국어

빨갱이

영어

Reds, Commie(파생어 Charlie),
Pink[2], Pinko(주로 미국)

러시아어

партизан

일본어

アカ(아카)

중국어

共匪(공페이), 赤色分子(츠써펀쯔)

독일어

Roten, Bolschewik

베트남어

Cộng, Bọn cộng sản

3. 어원

빨갱이의 어원은 두 가지 설이 있다.

3.1. '빨치산'에서 왔다는 설

이 설에 의하면 빨갱이는 러시아의 '파르티잔'[3]에서 변형된 '빨치산'이 나중에 빨갱이로 변한 것이다.

외국에서 사용되는 빨갱이와 유사한 경멸적 어휘들 역시 역사적 맥락이 크게 다른 이상 단순하게 다 퉁쳐서 빨갱이라는 어휘와 유사한 것으로 사용할 수는 없다. 빨갱이라는 어휘는 철저히 한국 현대사와 한국어 어휘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빨갱이라는 어휘가 담은 복잡한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조센징이 그렇듯 말이다.

3.2. '빨강'에서 왔다는 설

대부분의 공산주의 국가의 국기는 붉은 바탕에 낫과 망치 같은 상징이 그려져 있었는데, 이것에 대해 반감을 가진 민간인들이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증오와 경멸을 담아 그들을 빨갱이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다. 민간인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자들과 정치적으로 대립하던 자본주의자들도 그들을 그렇게 부르기도 했다.

국어사전에도 빨갱이의 잘못된 표현으로 빨강이가 올라와 있다. 외국에서도 공산주의자를 비하하는 별명이 빨강색과 관련된 것을 보면 빨강색을 뜻하는 빨강이가 빨갱이로 변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4. 대한민국에서

대한민국 한정으로는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에 의거하여 이북 5도를 불법 점령한 반(反) 국가단체의 일원 또는 북한 정권의 사상을 공유하는 자 또는 북한 정권에 협조하거나 굴종하는 자[4]를 경멸하는 말로 쓰인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에서의 빨갱이는 해외에서의 빨갱이보다 일본에서의 비국민에 근접한 어감을 가진 단어라고 할 수 있겠다.

4.1. 기원

요사이 유행하는 말 중에 '빨갱이'라는 말이 퍽 유행된다. 이것은 공산당을 말하는 것인데 수박같이 거죽은 퍼렇고 속이 빨간 놈이 있고 수밀도 모양으로 거죽도 희고 속도 흰데 씨만 빨간 놈이 있고 토마토나 고추 모양으로 안팎 속이 다 빨간 놈도 있다. 어느 것이 진짜 빨간 놈인 것은 몰라도 토마토나 고추 같은 빨갱이는 소아병자일 것이요. 수박같이 거죽은 퍼렇고 속이 붉은 것은 기회주의자일 것이요. 진짜 빨갱이는 수밀도같이 겉과 속이 다 희어도 속 알맹이가 빨간 자일 것이다. 중간파나 자유주의자까지도 극우가 아니면 '빨갱이'라고 규정짓는 그 자들이 빨갱이 아닌 빨갱이인 것이다. 이 자들이 민족분열을 시키는 건국 범죄자인 것이다.

- 『독립신보』, 1947년 9월 12일자

과거 반공주의의 산물. 근래에 들어서는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종북세력'으로의 순화가 권고된다. 본래 공산주의자들을 비칭하는 말이었지만, 냉전 및 독재시대 때 정치적 반대자 및 민주화 세력을 탄압하고 사회에서 다방면으로 매장하는 낙인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지금도 널리 쓰이고 있으나 요즘은 '종북'이라는 말로도 쓰이곤 한다. 반대로 공산주의자들이 공산주의자가 아닌 사람을 비난할 때는 '반동'이라고 부른다. 위의 독립신보를 보듯이 빨갱이라는 단어는 1947년에도 쓰였던 만큼 그 역사와 용례가 오래되었다.

광복 직후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기 전 약 한 달의 공백 기간 동안 독립운동가였던 여운형이 주축이 된 건국준비위원회인민위원회는 무장 상태인 일본군과 일본 경찰을 상대로 최선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일제로부터 치안권 및 행정권을 넘겨받아 행사하였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은 일본군이 물러가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감 속에 숨죽이며 살아갔다.

그러나 미군이 진주하여 일본군을 무장해제시키고 일본군 및 일본인을 일본으로 송환한 후 국내 사정은 돌변했다. 미군정조선총독부를 접수하고 행정권을 펼치게 되는데, 이때 민족주의 계열 및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5][6][7]을 배제하고 기존 일제의 총독부 및 지방관청에 근무하던 공무원, 친일 경찰, 일본군 등을 요직에 그대로 기용한 것이다. 당시 미군정은 군정 고문 대부분을 친일파 출신이 많은 한국민주당[8]에서 충원하였는데, 특히 일제 하에서 경찰로서 동족을 체포하고 고문하는 데 앞장섰던 자들 중 80% 이상이 미군정 경찰에 다시 기용되었다.[9] 소련과 냉전 중인 미국에게는 효율적인 한반도 통치가 유일한 목표였고, 한국을 잘 알지 못하던 그들은 친일파들이 일제의 식민통치에 앞장서며 익힌 행정경험을 권력행위의 말단을 구성하는 데 동원한 것이었다.

이는 미군정이 광복한 한국에 대한 인식이 극히 부족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였다. 항복 조인식을 끝낸 하지 중장이 제일 먼저 벌인 일은 항복문서 제5항 제1호를 통해 총독부의 존속과 관료들의 유임을 결정한 일이었다. 하지는 미군정 초기부터 기자들에게 '나에게 필요한 지식을 주는 사람은 일본인 뿐'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다. 거기에 더해 일본인을 제외한 한국인을 '준 우호적' 또는 '해방된 국민'으로 대우하라는 맥아더 장군과 스틸웰 장군의 조언도 무시하고 휘하 장교들에게 한국인을 '준 적국인'으로 취급하라고 지시하는 어이없는 모습을 보일 정도였다.

하지뿐만 아니라 그의 정치 고문이었던 랭던은 한국인에게 분열, 아첨, 과도한 이기주의, 강력한 대립, 아량 부족 등이 있다며 혹평을 해댔다. 이러한 한민족에 대한 왜곡된 시선은 일본의 탓이 컸는데, 일본군 조선군사령부가 패전 후 오키나와의 미 24군단에 한반도 상황을 타전하면서 남한 사회가 공산주의 세력에 물들어있다거나 치안 질서가 문란할 대로 문란해져 있다고 왜곡했기 때문이다.[10] 이런 왜곡된 인식 속에서 미군정이 믿을 만한 건 일본인에 가장 가까운 친일파들이었던 것이다.

이때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소련이 신탁통치를 주장하고 미국이 즉시 독립을 주장했다'는 내용의 신탁통치 오보사건[11]으로 인해 우익은 한국이 즉시 독립해야 한다며 대대적인 반탁운동을 벌이고,[12] 반대로 좌익은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13]이 한반도의 남북통일정부 수립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여 3상회의 결정을 지지하게 되는데,[14] 여기서 노덕술, 김종원 등 미군정에 기용된 친일파들이 미국에 친화적인 우익세력에 편승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자 3상회의 결정 지지자들이나 단독정부 수립 반대자들을 비난할 때 '빨갱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일례로 악질 친일경찰이었던 노덕술은 독립운동가였던 김원봉을 체포해서 '빨갱이 두목'이라고 부르며 모욕을 주고 그의 뺨을 때렸고, 악질 친일군인이었던 김종원은 단독정부 수립을 저지하기 위해 동료들을 모아 평화적인 무력시위를 계획했던 조문기[15]에게 주모자 내부에 침투한 프락치를 명분으로 조문기를 빨갱이로 몰아 고문했다.

그렇게 친일파 출신이 중심이 된 한국민주당, 서북청년단, 그리고 친일 군경은 이승만에 협력하게 된다. 당시 우익의 중심 인물로는 김구, 김규식, 이승만을 꼽을 수가 있었는데, 김구와 김규식은 외세에 의존하지 않는 민족의 단결을 강조하고 친일파 청산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친일파들과는 성향이 맞지 않았다. 하지만 이승만은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만큼 명백한 친미세력이었고, 1945년 12월 17일 방송을 통해 "공산당과 타협은커녕 애국자면 누구나 목숨을 내놓고 싸워야 한다"고 말한 명백한 반공주의자였으며,# 1946년 11월 연설에서는 "친일파 문제는 우리 환경이 해결할 수 없으니 극렬 친일분자라도 기회를 주어 민족에게 복리될 공효를 세우게 되면 혹 일후에 장공속죄할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 만큼 친일파 청산에도 비협조적이었기에 이들은 이승만에 협력하게 된 것이다.#

기회주의자, 악덕 지주, 친일파, 매판자본가의 정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던 한민당에게 이승만은 자신들의 치부를 덮을 최고의 간판이 되어주었다. 이승만에게 있어서도 김구의 한국독립당, 김규식, 안재홍의 국민당, 여운형의 조선인민당, 김원봉의 조선민족혁명당(이후 인민공화당으로 개칭), 박헌영조선공산당에 대항해 자신이 없는 국내 지지기반이 필요했고, 한민당에게 막대한 정치자금을 제공받으면 다른 독립운동가들보다 상대적으로 우월한 정치활동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들과 협력하게 된다. 결국 좌파, 중도파, 민족주의 계열 우파가 불참한 남한만의 단독선거가 치러짐으로써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다.

4.2. 역사와 용례

1940년대의 남부 조선에서 볼셰비키, 멘셰비키는 물론, 아나키스트, 사회민주당, 자유주의자, 일부의 크리스찬, 일부의 불교도, 일부의 공맹교인, 일부의 천도교인, 그리고 주장 중등학교 이상의 학생들로서 사회적 환경으로나 나이로나 아직 확고한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잡힌 것이 아니요, 단지 추잡한 것과 부정사악한 것과 불의한 것을 싫어하고, 아름다운 것과 바르고 참된 것과 정의를 동경 추구하는 청소년들, 그 밖에도 XXX과 XXXX당의 정치노선을 따르지 않는 모든 양심적이요 애국적인 사람들 이런 사람을 통틀어 빨갱이라고 불렀느니라.

- 채만식, 『도야지』, 창비사 '문장' 27호, 1948년 10월

'빨갱이'란 단지 공산주의 이념의 소지자를 지칭하는 낱말이 아니었다. '빨갱이'란 용어는 도덕적으로 파탄 난 비인간적 존재, 짐승만도 못한 존재, 국민과 민족을 배신한 존재를 천하게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는 어떤 비난을 하더라도 감수해야만 하는 존재, 누구라도 죽일 수 있는 존재, 죽음을 당하지만 항변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 김득중, 『빨갱이의 탄생 - 여순사건과 반공국가의 형성』, 본문 중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반공주의를 이용한 빨갱이 몰이는 공고해져 갔다. 친일파 처벌을 위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하여 노덕술을 검거하는데, 이승만 정권은 자신들의 지지기반이었던 친일파들을 보호하고자[16] 반민특위를 주도하던 소장파 국회의원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국회 프락치사건에 엮어 구속시킨다. 그러자 친일파들은 반민특위 청사 앞에서 "공산당과 싸우는 애국지사를 잡아간 반민특위 위원들은 공산당이다"라고 말하며 시위를 벌였고, 결국 반민특위는 해산된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동족을 체포하고 고문하는 것도 모자라 독립군을 토벌하는 데 앞장섰던 친일 군경이 대한민국 군경에 그대로 유입되면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던 일본군과 특별고등경찰의 반공 구호가 일부 수정되어 그대로 이식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실제로 일본군 군부는 방공 협정 체결을 추진할 정도로 반공주의자들이 매우 많기도 했었다. 어쨌든 국회 프락치사건으로 인한 반민특위의 실패는 민족반역자 처단을 무산시켰다.[17]

또한 제주 4.3 사건여순사건도 극단적인 반공주의를 이용한 빨갱이 몰이의 확산에 영향을 끼쳤다. 대한민국을 비판 혹은 부정하는 움직임이었기에 정부는 자신들의 존속을 위해 철저한 탄압을 가했다. 또한 이 사건들에 공산주의자들이 어느 정도 개입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용해 '공산주의의 해악성'을 널리 선전했다. 특히 여순사건은 대한민국의 반공체제를 구축하게 하는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군대 내의 반정부 반란은 정부를 경악시켰고, 사건 진압 후 이승만은 "남녀아동까지라도 일일히 조사해서 불순분자는 다 제거하라"고 말할 정도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후 군대 내에서 대대적인 숙청이 이루어졌고,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들의 만행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빨갱이=사람이 아닌 존재'처럼 상정됐다.[18]

이런 과정을 거쳐, '빨갱이'라는 말은 소위 죽여도 되는 사람을 만드는 낙인으로 사용되었다.[19] 당시 이승만 정권은 '좌익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전향시켜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로 보도연맹을 조직하고 중도~좌파 계열 정치인들을 반강제적으로 가입시켰고,[20] 가입 숫자를 늘리기 위해[21] 가입자들에게 고무신과 같은 생필품을 나누어주었고 농사에 필요한 비료를 우선 배급해서 좌파와는 아무 인연이 없는 주민들도 가입하도록 유도하고서는 6.25 전쟁이 발발하자 보도연맹 가입자들이 북한군에 협력할 수 있다는 명분을 들어 이들을 모두 학살했다.

독재정권은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자신들의 권력을 위협하는 세력을 향해서도 '빨갱이'라는 단어를 남용했다. 당장 국회 프락치사건으로 인한 반민특위 파괴, 그리고 숙군이 정부 수립 직후에 발생했다. 이 일로 반(反) 이승만 세력과 소장파가 정계와 군대에서 대거 제거되었다. 전쟁 중에는 김구의 독립통일정부 수립노선을 따랐던 전호극 소령을 여순사건에 연루되었다고 거짓 혐의를 덮어씌워 살해했고,# 친일파 청산과 평화통일을 신조로 삼던 최능진을 정부 수립 직후에는 혁명의용군 사건으로 처벌했다가 6.25 전쟁 중에는 끝내 처형했다. 1959년에는 진보당 사건을 일으켜 '평화통일, 영세중립국가, 사회민주주의식 개혁'의 꿈을 말하던 조봉암을 간첩으로 몰아 사법살인을 자행했다. 비단 이승만뿐만이 아니었다.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부독재 정권 때는 인혁당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이 있었으며, 기타 묻히고 잊혀진 사건까지 포함한다면 셀 수도 없을 정도다.

정치권력 독점뿐만 아니라 민간인을 처형하거나 학살하기 위한 명분으로도 '빨갱이'라는 단어가 사용됐다. 대표적인 예로 이승만 정권 때는 보도연맹 학살사건을 포함하여 제주 4.3 사건 당시 양민학살, 여순사건 당시 양민학살, 거창 양민 학살사건 등이 있으며, 박정희 정권 때는 동백림 사건, 이수근 이중간첩 사건, 서창덕 납북어부 간첩사건, 김복재 조총련 간첩사건, 박춘환 납북어부 간첩사건, 유럽 간첩단 사건, 민청학련 사건, 울릉도 간첩단 사건, 문인 간첩단 사건, 형제 간첩단 사건, 학원 침투 간첩단 사건, 정규용 납북어부 간첩사건,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 등이 있었고, 전두환 정권 때는 광주 학살, 부림사건,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 깃발사건,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있었다. 독재정권 당시 위와 같은 공안사건의 담당자들은 혐의가 옅거나 억울한 사람들을 고문해서 허위자백서에 사인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런 고문 담당자들의 대표적인 인물로 이근안정형근이 있다.[22]

과거 독재정권은 위와 같이 독재에 방해되는 사람들에게 행했던 반인륜적 범죄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반공교육과 반공 영화반공 애니메이션을 통해 자신들의 독재체제를 자유민주주의로 포장하고 북한이 겉으로만 채택하고 있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독재로 규정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상대 개념으로 설정하였다. 그래서 반공교육의 영향을 받은 노년층들에게는 '나 때는 북한에 사람이 안 사는 줄 알았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하고, 박사모와 같은 극우단체의 주요 연령대가 되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독재정권을 반성해야 하는 이유로 인용되며, 극단적이고 비이성적인 반공교육의 폐해라 할 수 있다.[23]

한편 이렇게 빨갱이로 정의된 사람들과 그 가족들은 참혹한 대우를 받아야 했다. 헌법에서조차 폐지된 연좌제도 이들에게는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당장 앞에 언급했듯이 고문과 가혹행위는 기본이었고 학살과 사법살인, 심지어 사적제재까지도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살아남거나 풀려났다고 하더라도 공안기관의 감시를 줄곧 받아야 했다. 또한 자식들과 친척들도 예외가 아니라서 이들도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고,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빨갱이라는 이유로 승진, 포상, 등용 등에 불이익을 받았고 결혼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어쩌다 어른 135화(당시 강사는 심용환이다.)에서 나온 바에 따르면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려 죽은 피해자의 유족들의 삶은 정말 비참했다고 한다. 늘 군인들이 따라다니며 감시해 제대로 된 직업을 못 구한데다 자식들은 빨갱이의 자식이란 이유로 심한 왕따를 당했다고 하는데, 다른 아이들이 그 빨갱이의 자식이라 알려진 아이를 철사로 묶어놓고 돌을 던지거나 목에 철사를 감고 개처럼 끌고 다니는 등 괴롭힘의 수위가 단순한 애들 장난이라고 보기에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4.3. 현대 사회에서의 남용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는 일부 극우세력이 정치 성향을 불문하고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근거 없이 폄하할 때도 흔히 쓰이는 단어로 사실상 의미가 변경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표적인 예시가 종북몰이인데, 이것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인 '좌빨'도 '좌갱이'를 의미한다. 더 심했을때는 친노까지 싸잡아 묶어 친노종북좌파빨갱이라는 그레이트 합체도 가능. 요 근래에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조작되었다고 말하는 노년층들과 박사모 회원들이 자신들과 뜻을 반대로 하는 촛불집회에 참가한 유명인들이나, 박근혜의 탄핵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싸잡아서 '빨갱이', '종북세력'이라고 비방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제는 적폐몰이라는 역공을 당하고 있다

2018년 홍준표 자유한국당 의원은 "경상도에서는 반대하는 사람을 빨갱이라고 부른다"고 말하여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2019년 3.1절 기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빨갱이라는 단어가 일제에서 유래된 친일 잔재라고 왜곡하기도 했다. 빨갱이 친일 잔재설 참조.

일부 진보진영이 2019년 한일 무역 분쟁으로 촉발된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비난하는 일부 보수진영을 '토착왜구'라고 부르며 비난하자, 보수진영이 이를 미러링하여 진보진영을 상대로 '토착빨갱이'라고 부르며 역공하기도 한다.

5. 대중매체에서

서울대학교 학생이 퀴즈 대한민국에 출연해 문제를 풀던 중 빨치산과 혼동한 일이 있다.# 시대가 바뀌면서 잘 쓰이지 않는 데다, 첫 단어가 유사해서 두 단어가 연관이 있는 것 아닌지 착각하는 사람들도 제법 많아진 건 사실이다. 그래도 반공 교육을 받은 나이대를 중심으로 국내 최고 수준의 인재인 서울대학교 학생의 역사 인식이 이 정도냐는 한탄도 나왔다. 본인도 말을 내뱉은 직후 실수했음을 깨닫긴 했지만…

사실 빨치산이란 음차가 나올 적에도 남한도 표기법이 북한의 문화어와 비슷했다. 그래서 이런 음차가 나온 것이다.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남한도 비슷하게 소비에트를 "소비에뜨"(북한은 "쏘베뜨"), 스탈린을 "스딸린"(북한은 "쓰딸린")으로 표기한 기록이 있다. 지금 러시아어 표기법대로라면 "파르치산"이 맞는 표기다. 참고로 북한은 "빨찌산"이라고 한다.

홍세화의 저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서 젊을 적 프랑스 공산당에 적을 두었다가 나이가 들면서 신좌파적[24]인 태도로 돌아선 대학교수를 두고 '루주(프랑스어로 빨간색)에서 루주-베르(빨간색-녹색)'로 돌아섰다고 하는 것을 보면 유럽에서도 공산주의자를 빨간색에 비유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듯하다.

또한, 2013년 '이슈 털어주는 남자'에 핀란드인 따루가 나와 이야기하기를 사민당의 할로넨 대통령이 집권하자 자신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빨갱이(communist) 라고 비난했다고 한다.요약글

홍세화나 따루의 예를 보면 어딜 가나 빨갱이 드립은 유효한 듯. 사실 이것의 원조는 윗동네가 아니라 소련이었기에, 냉전 당시의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빨갱이 드립을 칠 수 있다.

야인시대심영은 극장에서 공산당을 선전하던 도중 김무옥이 "야, 이 빨갱이 자식들아, 이것은 수류탄이여. 죽지 않으려면 까불지들 말드라고!" 라고 소리치며 수류탄을 던져 생명을 위협받고 백병원에서 상하이 조에게 "야이 빨갱이 새끼야!"라는 비난을 들으며 고자가 된 거시기를 내리찍혔다. 아울러 야인시대 82회에서 좌익의 앞잡이들이 죽창을 들고 경찰관 관사의 관리인을 끌고 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앞잡이 한 명이 그에게 "잔말 말고 따라와, 이 빨갱이 새끼야!"라는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했다.[25]

한현동의 만화 신 구미호에서 이북 지역에 위치한 인간과 요괴의 공존 구역 천각궁에서 단역으로 등장한 인민군복 멧돼지 요괴는 "동물로 각색된 빨갱이" 를 오마주한 것으로 보인다.

만화가 이충호가 자신의 만화인 제0시: 대통령을 죽여라에서 '빨갱이는 친일파, 또는 총칼로 정권을 잡은 쿠데타 세력이나 정권 유지를 위해 자국 국민을 학살한 자를 비판하는 상식적인 사람을 이르는 말'이란 공지를 올렸다가 큰 논란을 일으킨 바가 있다.


  1. [1] 실은 심영이 극좌 계열 수감자들을 매수하여 집단 린치를 가하려 했었던 것이다. 이후 심영은 한 순간에 습격을 당해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다.
  2. [2] 1950년 '핑크 레이디(Pink Lady)' 사건을 고려하면 그 이전부터 쓰인 단어로 추정된다. 핑크 레이디 사건은 1950년 상원 선거에 배우였던 헬렌 G. 더글라스가 출마했는데 경쟁 후보였던 리처드 닉슨(미국의 37대 대통령)이 그녀가 공산주의와 연관이 되어 있다며 비방한 사건을 말한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지만, 당시 닉슨은 더글라스를 가리키며 '속옷까지 다 빨갛다(pink right down to her underwear)'라는 성희롱적 발언을 공공연히 내뱉고 다녔다.
  3. [3] 정식 정규부대가 아닌 무장한 부대를 뜻한다. 이들은 주로 침략군, 정복군, 점령군, 식민주의자 등을 상대로 방어 및 공격을 수행한다. 즉, 게릴라전이나 비정규전을 수행하는 유격대를 말한다. 같은 성향을 지닌 조직을 살펴보자면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 대한민국의 의병 등이 있다.
  4. [4] 주체사상파와 같이 북한 정권을 찬양하거나, 내심 북한 정권을 무시하고 경멸하면서도 그들에게 약점이 잡혔거나 커넥션이 있어서 그들에게 굴종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5. [5] 사회주의는 경제적·지위적 불평등이 없는 사회, 즉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을 지향하는 사상으로, 여기에서 갈라져 나온 대표적인 정치사상이 공산주의마르크스주의, 그리고 사회민주주의이다. 공산주의는 급진적인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노선으로, 인민과 노동자가 계급투쟁을 통해 자신들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권력자와 자본가를 타도하고 자신들이 주체가 되어 사유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것에 기반을 두고 있고, 사민주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급격하게 무너뜨리지 않고 의회 민주주의를 통해 점진적인 사회주의를 추구하며 복지를 실현하는 것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러한 사상은 세도정치기에 이어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당시 권력자들에게 핍박받고 수탈당하던 일반 백성들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졌고, 당시 누구보다도 조국을 생각했던 독립운동가들은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독립운동을 한 경우가 많다. 예시로 공산주의 계열은 강창보, 김단야, 김무정, 김재봉, 구연흠, 권오설, 이동휘, 이재유, 임원근, 허헌을, 맑스주의 계열은 김원봉, 백남운을, 사민주의 계열은 김약수, 여운형, 장건상, 조동호, 조봉암, 조소앙, 홍명희를 들 수 있다.
  6. [6] 현재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를 자칭하고 있는 북한이 1인 독재체제를 구축하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사상들을 민주주의와 대립하는 용어로 착각하기도 하는데, 민주주의의 반대 용어는 독재권위주의이고 공산주의는 엄연히 자본주의와 대립되는 용어이다.
  7. [7] 물론 공산주의를 현실에 적용하면 경제적 이익을 모두에게 평등하게 분배하기 위해 국가가 모든 토지와 생산수단을 몰수하게 되고, 국가 지도자에게 강력한 중앙 권력이 집중된다. 거기에다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다보니 개인의 시장이 없고,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는 것이 특징인 만큼 일을 많이 하나 적게 하나 수익도 똑같기 때문에, 국민들의 생산 의욕이 저하되어 국가의 경제가 침체된다. 결국 엄청난 권력을 지닌 지도자가 국민들이 일을 제대로 하는지 감시하면서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전체주의 독재 국가로 변질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실현 불가능한 이론일 뿐 이론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단순히 '민주주의<->공산주의=독재'라고 생각한다면 이전에 언급했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독재를 원해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모순이 생긴다. 정말 그분들이 독재를 하고 싶을 만큼 부와 권력을 탐냈으면 친일파가 됐어야 했다. 김일성이 원하던 사회주의그분들이 원하던 사회주의는 엄연히 달랐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8. [8] 여기에서 한국민주당이 현대의 민주당계 정당과 같은 성향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인 것이, 한국민주당이 민주당계 정당의 시초라고는 하지만, 이는 정당의 역사성을 강조하기 위한 부분이 크고, 사실상 현 민주당계의 직접적 전신으로는 1990년대 창당한 민주당이나 새정치국민회의를 많이 꼽는다. 애초에 한국민주당은 이승만자유당과 다를 바 없는 보수 성향의 정당이었다.
  9. [9] 이때 기용된 대표적인 군인, 경찰 출신 인물로는 김종원, 김창룡, 노덕술, 백선엽, 송요찬, 원용덕, 유재흥, 이종형, 이형근, 정일권, 채병덕 등이 있다.# 이들 대부분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제주 4.3 사건, 여순사건, 6.25 전쟁에서의 양민학살에 크게 관여한 것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10. [10] 김영택, 2009, <친일세력 미 청산의 배경과 원인>, <한국학논총> 31, 502~516, 524쪽 참고.
  11. [11] 모스크바 3상회의 결과에 대한 동아일보의 오보사건으로, 실상은 오히려 미국이 '한반도 신탁통치 30년안'을 제안했고 이와 반대로 소련은 '즉시 독립'을 주장하며 회의를 시작했다. 물론 소련이 정의로운 국가라거나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보면 1945년 말 당시 한반도는 좌익세력이 우익세력보다 상대적으로 우세했고, 지리적으로 봐도 한반도로부터 바다 건너 있는 미국과 달리 소련은 대륙으로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한반도에 자국의 영향력을 최대화하는 데 딱히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 소련은 한반도보다 중국의 공산화에 더욱 신경쓰고 있었다.
  12. [12] 김구를 비롯한 한국독립당 세력은 미소 양군을 철수시키고 한국이 자주독립하여 한반도의 남북통일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이승만 및 한국민주당 세력은 신탁통치를 주장한 소련과 탁치에 찬성하는 공산주의자들을 배제하고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3. [13] 미소공동위원회를 통해 한반도의 남북통일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임시정부를 통해 미국, 영국, 소련, 중국의 4개국이 최장 5년간 신탁통치를 하고, 그 후 총선거를 실시하여 완전한 통일독립국가를 수립한다는 내용이다.
  14. [14] 여운형을 비롯한 조선인민당 세력은 3상회의 결정을 수용하여 한반도의 남북통일 임시정부를 수립한 다음에 신탁통치를 반대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하였고, 박헌영을 비롯한 조선공산당 세력은 한국의 해방은 자력으로 된 것이 아니므로 국제적인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으니 신탁통치를 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5. [15] 부민관 폭탄의거를 결행한 한국의 독립운동가. 그는 단독정부 반대 시위로 인하여 1년 6개월의 옥고를 치룬 것도 모자라 이승만의 눈 밖에 나게 된다. 그래서 이승만 암살 및 정부전복 음모 사건의 배후로 몰려 또다시 고문을 당하는 등 갖은 고초를 겪었다. 민족문제연구소 출범 이후 민문연 제2대 이사장에 취임하여 친일인명사전 편찬 사업에 전념하였으나, 골수종과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사망하고 만다.
  16. [16] 실제로 당시 대통령 이승만은 반민특위에 "노덕술은 기술자이므로 국내 치안의 확보를 위해 석방하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17. [17] 그래서 이승만이나 박정희, 전두환 등 독재정권을 비판할 때 '친일독재'라는 표현도 종종 쓰인다. 당시 독재정권에 협력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출신 및 후손들이 대부분인 것은 사실이다. 다만, 무조건 '보수 = 친일반민족행위자' 공식을 들이대며 보수진영을 비난 내지는 매도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부분은 고찰이 필요하다. 이전에 언급했던 김구, 김규식을 비롯한 김병로, 김창숙, 장준하, 조만식, 최능진은 자신의 권력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제거하기 위해 반공주의를 주창한 것이 아니라, 신탁통치 없는 자주독립을 위해 또는 공산주의가 결국 독재체제로 변질되는 것을 우려해 반공을 표방했기 때문이다. 다만 위와 같은 인물들이 현대 대한민국 보수정당과 같은 성향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인 것이, 위와 같은 인물들은 민족주의 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반면에,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자유한국당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현대 대한민국 보수정당의 성향은 민족주의라기보다는 신보수주의에 더 가깝다. 실제로 김구, 김규식, 김병로, 김창숙, 그리고 최능진은 이승만과, 장준하는 박정희와 정치적으로 대립하였다.
  18. [18] 이런 논리는 결국 제주 4.3 사건과 여순사건 당시 국군과 우익에 의한 숱한 민간인 희생에 주요한 정당화 기제로 작용했다.
  19. [19] 영화 실미도를 봐도 알 수 있듯이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날까 두려울 땐 '빨갱이의 소행'이라 하기도 하였다. 참고로 유감스럽지만, 이런 '정치적 포장'은 빨갱이란 단어가 생기기 한참 전에도 있었다. 역사적으로 '바깥의 적과 내통한 반역자'로 몰려 고통받거나 죽은 사례가 꽤 된다. 물론 정말로 반역죄를 저지른 사람도 있지만, 안 저지른 사람도 있음을 잊지 말자. 실제로 정부는 실미도 사건 때 실미도 요원들을 무장공비로 묘사하였고 5.18 민주화운동은 '빨갱이의 선동'이라는 식으로 표현하였다.
  20. [20] 좌익진영에 있으면서 보도연맹에 가입하지 않는 사람은 사상을 바꿀 의사가 없는 사람으로 간주되었고, 그것은 자신이 공산주의를 철회하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므로 거의 강제적으로 가입시켰다 봐도 무방하다.
  21. [21] 보도연맹 가입자가 많으면 대한민국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지역이나 집단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22. [22] 이근안은 자기 고문 대상자가 처음부터 용의자가 아니라 범인이라고 단정 짓고 범인이라는 사실을 실토하고 자백하도록 하는 데 온 힘을 다했고, 정형근은 용의자를 죽지 않을 만큼 고문하는 데 달인이었던 관계로 수사기관에서 사랑받은 인물이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 설명하는데 용의자범인은 엄연히 다른 말이다. 용의자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맞는지 아닌지 확인받아야 하는 사람이고 범인은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법적으로 인정된 사람이다.
  23. [23] 또한 이런 정책으로 인하여 훗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단어에 대해 논란이 일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일례가 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의 용어 선택을 놓고 벌어진 논쟁이다.
  24. [24] 젊은 시절에는 계급투쟁을 근간으로 삼는 마르크스주의자였으나 나이가 들면서 환경운동 등 넓은 의미의 진보운동에 관심을 갖는 신좌파가 되었다는 뜻이다.
  25. [25] 엑스트라의 실수인데 빨갱이(=극좌)들은 그들 입장에서 경찰로 추정되는 사람(좌익의 반대세력=우익)을 끌고 갔으므로 그가 빨갱이가 될 순 없다. 그 NG가 그대로 방송을 타고 나갔으니 시청자들은 어이없는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반동노무 새끼라고 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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