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마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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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의 동서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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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동부(동로마 제국)

(동)로마 제국[1]

서부(서로마 제국)

서고트 왕국

동고트 왕국

부르군트 왕국

프랑크 왕국

수에비 왕국

반달 왕국


서로마 제국의 최대 강역이자 그나마 국력이 어느 정도 남아있었던 395년 동서 분할때의 영역이다.

이후 로마 제국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 카르타고와 이탈리아를 비롯한 서방속주의 일부 영토를 탈환하는데는 성공하지만, 끝내 서로마 전 지역을 되찾지는 못한다.

사진출처

서로마 제국의 대략적인 영토변화

1. 개요
2. 상세
3. 역사
3.1. 스틸리코와 아이티우스
3.2. 최후의 순간

1. 개요

로마 제국의 분할로 만들어진 국가로, 395년 1월에 테오도시우스 1세가 사망한 후 그의 두 아들이 제위를 승계하면서 분열된 로마 제국 중 서부지방이다.

2. 상세

아르카디우스는 제국 동부를, 호노리우스는 제국 서부를 맡게 되었다. 그런데 제국은 훨씬 이전부터 동-서 양 영역에 각각의 황제가 군림하며 통치하는 체제가 지속되어 왔다. 디오클레티아누스 치세 이후, 이미 동-서에 각각 정제와 부제가 있었으며, 한동안 콘스탄티누스 1세콘스탄티우스 2세, 율리아누스 치세하에서 통일된 적은 있었지만, 이후 다시 양쪽의 영역으로 분할 통치되고 있었다. 사실 테오도시우스 1세의 통일도, 참제 에우게니우스를 토벌한 394년 9월부터 불과 수개월에 불과했던 찰나의 기간이었다. 제국의 분할 통치가 영속화되었다는 의미에서 395년을 흔히 분열의 시기로 말하는 것일 뿐이다. 물론 이후에도 동-서 두 제국은 '하나의 로마'라는 보편적 인식을 유지했으며, 5세기의 다사다난했던 정세 속에서 지속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유대 관계를 유지했다.

분할 이전부터 경제력이나 군사력 면에서 우위를 점했던 제국 동부[2]와는 달리 제국 서부는, 오늘날과는 달리,[3] 당시에는 경제력도 볼품없었고 게르만족의 침공에 항상 시달려야 했다. 제국 분할 이후 50여년 간 서로마는 스틸리코콘스탄티우스 3세[4], 아이티우스 같은 걸출한 사령관들의 노력으로 어떻게건 지탱해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죽고 난 후 무력한 황제들이 연달아 등장하고 플라비우스 리키메르, 오레스테스 등의 실권자가 황제를 쥐락펴락하였으며 결국 서로마는 무력하게 멸망했다.

3. 역사

크게 몇 개의 시기로 나눌 수 있다.

1. 스틸리코의 섭정시기 (395~408)

2. 호노리우스의 삽질과 1차 로마 약탈 (408 ~ 410년)

3. 플라비우스 콘스탄티우스의 재건시기 (411~421)

4. 이베리아와 북아프리카 상실 (422 ~ 433년)

5. 아이티우스의 집권기 (433~454)

6. 두번째 로마 약탈과 혼란기 (454 ~ 457년)

7. 마지막 제국 재건 시도 (457~468)

8. 종말 (468~476)

3.1. 스틸리코와 아이티우스

호노리우스의 재위 동안(395~423) 전반 13년은 최고사령관(마기스테르 우트리우스크 밀리타이) 스틸리코가 전권을 쥐었다. 반달, 프랑크, 알레만니 등 게르만 부족들은 얼어붙은 라인강을 건너 제국 영내로 이주하였고, 이것이 갈리아와 히스파니아, 그리고 북아프리카의 상실로 이어지면서 제국에 치명타가 되었다. 라인강 방어선이 허무하게 돌파당한 이유는 스틸리코가 이탈리아 방위를 위해 라인강에 주둔하고 있던 제국군을 빼냈기 때문이다. 그러다 스틸리코의 숙청과 게르만족 병사에 대한 학살, 그리고 고트족의 침입으로 제국 중심부가 혼란에 빠지면서 갈리아의 제국군을 지원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이것이 파국으로 이어진다. 408년 스틸리코가 숙청된 뒤, 410년 서고트족에게 첫 번째 '로마 약탈[5]을 당했는데, 기원전 390년의 그것에서 무려 800년만의 재앙이었다. 그리고 천년 뒤, 로마는 비슷한 상황에 또 빠지고 만다(...)

423년 호노리우스 황제가 죽은 뒤 425년에 조카 발렌티니아누스 3세가 즉위했다. 451~452년에는 유명한 훈 족의 아틸라가 침공해 갈리아와 북이탈리아를 휘젓기도 했으나 이 공격은 아이티우스가 여러 게르만 부족과 연합해 저지했다. 그러나 아이티우스는 보니파키우스와 항상 갈등을 겪었고, 발렌티니아누스 3세에 의해 살해당한다. 그런데 발렌티니아누스 3세도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에게 암살당했다. 아이티우스도 죽고 발렌티니아누스 3세도 죽자, 455년 반달족이 두 번째 '로마 약탈'을 자행했다. 이때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도 허무하게 살해당하고 만다.

3.2. 최후의 순간

아이티우스 사후 로마 제국의 세력도. 이미 서로마잉글랜드에서 철수하였고 반달족에게 북아프리카를 빼앗긴다. 게다가 이베리아 반도갈리아 곳곳에 야만족 세력이 눌러 앉게 되었고, 그 바람에 서로마의 영토는 누더기로 변해버렸다.

발렌티니아누스 3세가 살해된 뒤 마지막 20년은 스틸리코나 아이티우스 같은 걸출한 인물들이 어떻게든 지탱해나가던 이전 시대와는 달리 사실상 플라비우스 리키메르와 같은 게르만 출신 권신들의 입김을 받은 9명의 황제가 연달아 나타났다 사라지면서 무력하게 몰락해 가는 시절이었다. 다만 이걸 외세에 의해 망했다고 하기는 어려운 것이 게르만 출신이었던 이들 대부분은 오도아케르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정체성을 로마인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로마 제국의 간신들이지, 외세는 아니었다.

이 무렵을 전후해 서로마 제국은 갈리아,[6] 브리타니아[7], 히스파니아[8], 북아프리카의 '변경'에 프랑크족, 부르군트족, 앵글로색슨족, 서고트족, 수에비족, 반달족 등이 잇따라 침공해 정착함에 따라 점차적으로 이탈리아 일대만 다스리는 수준까지 축소됐다. 물론 최후의 순간까지도 갈리아 북부[9]과 달마티아 지역[10]을 포함해 수백만의 인구를 유지했기에 내부 개혁과 안정에 성공하면 건재할 수도 있었지만 서로마는 그러지 못하고 약해졌다.

결국 서기 476년, 게르만 족 용병 대장인 오도아케르[11]와 제국의 실권자인 오레스테스[12]가 분쟁을 일으킨 끝에 오레스테스와 그의 형제 파울루스가 오도아케르의 물리력에 제거되고, 오레스테스가 세운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퇴위당하면서 멸망했다.[13] 물론 동로마 황제의 눈치를 본 오도아케르는 로물루스의 폐위 직후, 황제의 '어의'를 콘스탄티노플로 보내면서, 자신을 이탈리아의 통치자로 인정해 줄 것을 청했고[14], 황제 제논은 확답이 아니라 애매한 말[15]로 일관했지만, 사실상 서방제국의 소멸을 인정하였다.

로마 국가 및 제정 로마의 건국자·창시자들과 최후의 황제가 이름이 같았다는 것은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다.[16] 건국 1229년 만[17]의 멸망이었다.

476년 말의 유럽

4. 샤를마뉴서로마 제국

제국 서부의 멸망 이후 300여년이 지난 800년 크리스마스날, 교황 레오 3세카롤루스 대제에게 서로마 황제의 제위를 수여한다. 서로마 제국 소멸 후에도 오랫동안 교황은 동로마 황제에게 종속된 상태였으나, 동로마가 점차 이탈리아 영토를 상실하는 과정에서 그 영향력은 약화되어 왔다. 이후 750년대에 랑고바르드족의 침공에 맞서, 프랑크 왕국피핀과 교황이 결탁하면서 결정적으로 교황청은 동로마와 작별하게 된다.[18][19] 그러나 교황과 동로마 황제·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사이의 충돌은 교황으로 하여금 독자적인 정치적 보호를 필요로 하였고 그러한 이유로 카롤루스에게 명목상의 '황제' 지위를 준 것이다.[20] 카롤루스 사후 서로마 황제 직함프랑크계 군주들 사이에 떠돌다가 훗날 오토 1세에게 가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로마 제국'을 칭하게 된다. 물론 엄밀히 따지면 대의명분에 불과하지만.

이 제국은 이후 황권의 약화와 대공위시대 등의 부침을 겪다가 합스부르크 가에 의해 부흥하기도 하고, 1453년 동로마가 멸망하고는 유일한 로마제국이 된다. 그러나16세기 종교개혁과 그로 인한 30년 전쟁, 베스트팔렌 조약 등을 거치며 볼테르가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고 제국도 아니다'라고 깔 정도의 지경에 이른다. 1806년 마지막 황제 프란츠 2세가 자진해체를 선언하면서[21] 신성 로마 제국은 무너지고 만다.


  1. [1] 황제위 기준
  2. [2] 동로마를 12세기 말까지 경제 대국으로 지탱해주던 그리스 및 소아시아, 로마의 빵 바구니라 불리던 이집트 등 알짜배기 지역을 모두 동로마가 가져갔다.
  3. [3] 오늘날 지도로 본다면야 너 서로마 땅 먹을래? 동로마 땅 먹을래? 하면 99.99% 전자이지만...
  4. [4] 플라비우스 콘스탄티우스(? ~ 421), 421년 호노리우스와 공동황제로 통치한 인물로, 콘스탄티누스 3세의 반란을 진압하고, 이어 410년대의 혼란을 수습, 이후 서고트와 연합해 스페인의 알라니족-반달족을 공격, 스페인의 상당 부분을 탈환한다. 이 사람의 아들이 바로 발렌티니아누스 3세.
  5. [5] 옛 서적이나 외국 서적에서는 로마 '겁탈'이라고도 한다. ang?
  6. [6] 일단 408년에 라인강이 돌파당한 이후, 프랑크, 알레만니, 부르군트족이 갈리아에 정착했고, 이후 로마를 약탈한 서고트족이 아퀴타니아 지방에 정착한다. 노비오드넘(수와송)을 중심으로 한 북서부 갈리아는 여전히 로마의 통제 하에 있었고, 서로마가 멸망한 후인 486년에 프랑크족에게 멸망당할 때까지 존속하였다.
  7. [7] 383년부터 현재의 웨일즈 지역은 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나 있었다. 407년 마지막 로마군이 반역자 콘스탄티누스 3세와 함께 갈리아로 떠나고, 호노리우스 황제가 브리타니아에 대한 사실상 포기 선언을 내리면서 브리타니아는 로마 제국에서 반강제로 독립하게 된다.
  8. [8] 수에비족이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에 정착하였고, 반달족이 한때 이 지역에 정착하였으나 아퀴타니아 지방에서 밀고 들어온 서고트족에게 쫓겨나고 아프리카로 다시 이주한다.
  9. [9] 이 지역의 로마 세력은 서로마가 망한 뒤에도 수아송(서로마 시대엔 노비오드눔으로 불렸다) 왕국으로서 상당 기간 세력을 유지하였다. 갈리아 지역에서 로마 세력이 완전히 말소된 건 487년 프랑크 왕국클로비스 1세에 의해 수아송 왕국이 멸망, 국왕 시아그리우스가 처형된 뒤의 일이다.
  10. [10] 율리우스 네포스가 지배하는 반독립 영역.
  11. [11] 스키리족 출신이다. 부친은 한때 아틸라의 신하였던 에데코.
  12. [12] 로마인이며, 오도아케르의 부친인 에데코와 함께 아틸라의 신하로 일했었다. 그들의 아들대에 이르러 오도아케르가 로물루스를 폐위시켰으니, 참 기묘한 인연이다.
  13. [13] 단, 이는 로마의 서방 속주의 상실일 뿐, 로마제국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엄연히 콘스탄티노플의 황제가 건재했기 때문. 서로마제국 멸망을 로마제국의 멸망으로 보는 시각은, 근대에 이르러 동로마를 비잔틴으로 격하시켜 폄훼한 학자들의 산물.
  14. [14] 콘스탄티노플의 황제가 엄연히 군림하는데 이탈리아의 황제는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등
  15. [15] 일찍이 오레스테스가 쫓아낸 율리우스 네포스(로물루스 황제의 전임자)가 아직 (달마티아에) 건재하지 않느냐며, 네포스 복위를 말하는 것처럼 말하고는 결국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라며 사실상 오도아케르를 이탈리아의 왕(REX)으로 인정한다.
  16. [16] 이 우연 역시 형제인 동로마 제국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하여 콘스탄티노플 시대를 연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이름이 같은 콘스탄티누스 11세 때 오스만 제국에게 멸망한다.
  17. [17] 사실 이 건국년도에는 논란이 있지만
  18. [18] 여기에 더해 동로마 측의 성상파괴와 관련된 대립도 영향을 미쳤다.
  19. [19] 하지만 동로마 제국이 이탈리아한테 완전히 손을 땐 건 아니고 이후 8세기 후반에도 여전히 정치적으로 시칠리아 섬과 이탈리아 반도 남부 구두굽 부분을 쥐고 있었다.
  20. [20] 당연히 정통 로마 제국인 동로마 측에선 일개 대주교 따위가 감히 로마 황제를 멋대로 세우냐고 노발대발했고 카롤루스는 이를 인정받기 위해 동로마와 전쟁을 벌여야 했다. 다만 동로마도 개판이던 시절이라 811년 결국 카롤루스의 황제(로마 황제가 아닌 그냥 황제) 즉위를 인정하고 카롤루스는 정통성 면에서 자신보다 동로마 측이 앞선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물론 그 후에도 로마 황제라는 직함을 두고 두 국가 사이에 갈등이 많았다.
  21. [21] 나폴레옹이 멋대로 선제후를 임명하는 등 제국을 능멸하고 제국 구성국들이 나폴레옹에게 붙어 대거 제국을 탈퇴해 종국에는 제국 구성국이 3국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나폴레옹이 제국 해체를 하지않을 경우 선전포고 하겠다면서 협박하자 사실상 반강제적으로 해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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