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행

조상제한서

조흥은행

상업은행

제일은행

한일은행

서울은행

빠른은행 서울은행

서울銀行

Seoul Bank

1959 ~ 2002

1959년에 창립하여 2002년까지 존재했던 대한민국의 시중은행. 과거 조상제한서로 불리던 5대 시중은행 중의 하나였다.

1959년 12월 1일 서울은행이라는 지방은행로 창립되었으며, 창립 당시 영업구역은 서울특별시경기도 일원이었다. 1962년 4월 남포동부산지점을 신설하면서 전국은행으로 인가받아 시중은행으로 전환했다. 1976년 8월 2일 한국신탁은행과 대등합병하여 '서울신탁은행' 으로 변경하였고, 1995년 6월 1일에 서울은행으로 은행명을 환원하였다. 서울신탁은행 시절의 약칭은 조상제한서 단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탁은이었다. 조상제한? 자매품으로 환은이 있는데 이 은행도 나중에...... 1995년 6월 1일 서울은행으로 행명이 돌아온 이후에는 서은이라는 약칭을 사용하였다. 당시 본점은 현재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2가 국민은행 명동영업부 바로 옆에 있는 명동1가 IBIS(이비스) 앰배서더 호텔 자리다.

1997년 외환 위기로 인해 제일은행과 함께 급격히 부실화되었고, 해외매각 우선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즉 정부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서울은행의 해외 매각을 추진하겠다고 IMF에 약속했던 것. 이를 이행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1999년 HSBC와의 계약이 꽤 희망적으로 돌아가고 있었으나 서울은행의 자산과 부채를 평가하는 문제에 대해 HSBC 측이 국제 기준으로 평가하겠다고 하자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금융감독원의 기준을 적용하기로 합의했다"'면서 실랑이를 벌였고, 기어이 판을 엎어 버렸다. 사실상 매각 무산. 더 어이없는 것은 15조 원의 공적 자금이 투입된 제일은행을 고작 5천억 원이라는 헐값으로 사모 펀드인 뉴브리지캐피털에 매각한 것. 이것도 1999년의 일이다.[1] 이 무렵에는 씨티은행도 서울은행의 인수를 추진했지만, 판이 엎어져 버렸다.

결국 대한민국 정부는 서울은행에 추가로 공적 자금을 투입해서 경영을 우선 정상화시킨 후 해외 매각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으며, 2000년에는 독일 도이체방크에 경영을 위탁하고 도이체방크대한민국 대표였던 강정원 씨를 은행장으로 선임하는 등 경영 개혁을 단행한다. 강정원 행장은 하나은행과 합병이 결의된 2002년 11월 주총을 앞두고 사임했다.

2001년 서울은행은 CI를 대대적으로 바꾸고 "푸른은행 서울은행"이란 캐치프레이즈로 영업하였으나[2], 월드컵이 끝난 직후 하나은행에 인수, 합병되면서 창립 43년 만인 2002년 12월 1일에 간판을 완전히 내리게 된다. 당시 김대중 정권은 서울은행의 해외 매각이 여의치 않자 차라리 대한민국 국내 우량 은행에 인수시켜서 대형화하는 게 좋겠다는 심산이었고, 규모를 불리고 싶었는데 2001년 한미은행과 2002년 제일은행 인수에 번번히 실패했던 하나은행이 때마침 서울은행을 인수한 것.[3] 하나은행은 2002년 8월 19일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는데, 이 때 인수 경쟁을 벌인 곳 중 하나가 론스타였다.

참고로 남대문로2가 국민은행 명동영업부 바로 옆의 명동1가에 있었던 서울은행의 본점 건물은 한동안 하나은행 명동영업부로 운영되다가, 2003년 12월에 매각이 결정되면서 구 하나은행 명동지점 위치로 이전하였다. 옛 서울은행 본점 건물은 2004년 5월 1,200억 원에 한 투자업체에 매각되었고, 리모델링을 거쳐 2006년명동 IBIS 앰배서더 호텔로 재개장했다.

1998년부터 대한축구협회를 후원하였으며, 이는 합병 후 하나은행에 그대로 인계되었다. KEB하나은행으로 바뀐 현재도 대한축구협회의 스폰서 중 하나다.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제일은행과 함께 부실 은행의 대명사로 인식되었는데, 제일은행이 2000년 9월 1일부터 당행 간 ATM 수수료를 전격 면제하자 서울은행도 이에 질세라 2001년 3월 19일부터 당행 간 ATM 수수료를 폐지했다. 그러나 1년 9개월 만에 하나은행에 완전히 먹히면서 수수료 지옥이 확대되었다.(...) 그래도 합병 기념으로 수수료 면제 행사는 해 줬다.

여자 실업 농구단을 운영한 적이 있었는데, IMF 사건이 터진 후 1998년 2월에 해체했다. 서울은행 여자농구단 참고. 그 전에는 외환은행이 여자 농구단을 해체했고, 두 은행이 하나금융지주에 넘어온 후 2012년에 신세계 쿨캣 농구단을 인수하여 부천 하나 외환 여자농구단이 창단되었다. 물론 현재의 부천 KEB하나은행은 계승한 팀이 다르긴 하지만....

1969년부터 1994년까지 실업 축구 팀도 운영했으며, 축구단도 신탁은행과 서울은행이 따로 있다가 1976년에 합병하면서 축구단도 통합되었다. 이 팀을 거쳤던 대표적인 선수로는 분데스리가 진출 전의 차범근이 있었다.

서울은행 법인 자체는 통합 하나은행이 이어받아 2015년 8월까지 존재했다. 그러나 2015년 9월 1일 외환은행하나은행이 통합한 KEB하나은행이 존속 법인을 외환은행으로 정하면서 서울은행은 정말로 사라지고 말았다. 사실 서울은행은 그저 조상제한서의 일원이었다는 역사성 말고는 별다른 가치가 없는 데 반해, 외환은행대한민국 최고의 외환 전문 은행이라는 브랜드 가치가 훨씬 큰 것을 감안하면 이해할 만한 결정이긴 하다만.....

서울은행 출신의 금융인으로 하나은행 충청사업본부장을 역임한 함영주 씨는 2015년 9월에 출범한 통합 KEB하나은행장으로 선임되었으며, 서울은행 출신으로는 최초의 행장이라고 한다.그런데 통합되면서 자기 고향이 소멸된 건 안습 현장 영업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던 함영주 행장이 피인수된 은행 출신으로 피인수 직원의 입장을 직접 겪은 적이 있다 보니 같은 입장이 될 외환은행 직원들의 심정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과, 출신 성분을 가리지 않는 공평한 인사에 대한 기대감과 균형을 도모하게 될 여지로 인해 내정 당시 직원과 노조로부터 좋은 반응을 보였다.


  1. [1] 이 부분은 두 말할 나위 없는 김대중 정권의 최대 실책 중 하나로 거론된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고.
  2. [2] 이 녹색 CI는 상당한 레어템이다. 대한민국 최단명 은행 CI로 기록에 남을 만하다.
  3. [3] 이후로도 똑같은 일이 계속 있었다. 실제로 충분히 독자 생존이 가능했던 조흥은행도 원래는 분할 매각에 의한 점진적 민영화가 추진되고 있었으나 2002년에 갑자기 신한금융지주에 통째로 매각하는 방향으로 선회했고, 2006년에 완전히 합병되었다.(그래도 주식가치 덕분에 조흥은행은 완전히를 넘어 오버해서 공적자금을 회수했지만....) 외환은행 역시 해외 금융기관으로의 매각에 금융 당국이 온갖 딴지를 걸다가 론스타와의 복잡한 사건 후 기어이 하나금융지주에 인수시키고, 몇 년 뒤 완전합병 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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