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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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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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분류
3. 선사 시대 종족들
4. 선사고고학
5. 선사 유적
5.1. 한반도의 선사 유적
5.2. 해외의 선사 유적
5.2.1. 나무위키에 항목이 있는 유적
5.2.2. 나무위키에 항목이 없는 유적

1. 개요

先史時代 / Prehistory

선사 시대란 인간 생활에 대한 문자 기록이 없던 시대를 일컫는다. 이 시대는 문헌 등이 전무하고 오직 유적, 유물 등을 거쳐서만 해당 역사를 유추해야 한다는 난관이 도사린다. 문헌 사료 이외의 역사 연구 방법이 많이 등장한 근래에는 선사 시대라는 용어 대신 '문자 사용 이전 시대' 내지 '문해 이전 시대'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기록하기 위해서는 문자가 필요하므로 문자의 발명과 시기를 같이 하지만, 기원전 5300년 경에 제일 처음으로 등장한 것으로 초기의 문자는 상징적이고 주술적인 용도로 쓰여 이를 통해 인간 생활을 파악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제일 이른 것은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 등지에서 최초로 쐐기문자 계열의 기록이 출현한 것으로 본다. 문자 기록의 시기는 문명권마다 다른데, 오스트레일리아와 같은 경우 1788년 유럽인이 도래하기 이전까지 문자 기록이 존재하지 않았다.

비록 문자는 없었으나 언어호모 사피엔스 이후로 늘상 존재했으므로, 신화전설 등 몇몇은 선사 시대로부터 구전된 것도 있다.

2. 분류

일반적으로 도구를 기준으로 삼아 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 시대로 나눴으나, 이후 세계 선사 시대의 역사를 다양하게 연구하면서, 이는 보편적인 구별 기준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구리의 사용과 청동의 사용이 시작된 시간 간격이 때로 천 년이 넘을 정도로 상당함이 드러나면서 영국 학자들이 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전환되는 시대를 가리켜 '구리 시대'(Chalcolithic age/Copper Age)라는 시대 구분법을 제안했으나, 아직 석기-청동기-철기 3시대 구분법과 별개의 독립된 시대로 공인받지는 못하고 있다.[1]

이러한 구분법에서는 '주된 도구'가 뭐냐에 따라서 혼동의 여지가 있다. 특히 청동기 시대에는 청동의 희귀성으로 인해 대부분의 도구는 여전히 돌로 만들어졌다. 일례로 피라미드를 세우고 엄청난 문화를 발전시켰던 이집트인들은 석기만으로 생활했고, 아메리카아메리카 원주민들도 거의 석기만을 사용했다. 그러나 기술적인 면에서 초기부터 구리를 사용했던 이집트와 역시 구리 제련술을 개발한 잉카 제국마야 문명은 엄밀히 따져보면 청동기 시대에 속한다.

석기 시대는 보통 구/중/신석기 시대로 나눈다. 구석기 시대는 돌을 깨서 만든 뗀석기(타제석기)를, 중석기 시대는 해빙기가 오면서 작아진 동물들을 잡으러 비교적 작은 잔석기(세석기)를 썼다. 신석기 시대는 돌을 갈아 만든 간석기(마제석기)를 썼다. 청동기 시대에는 최초의 금속 도구를 썼으나 청동기의 생산량이 부족하여 제기와 군사용으로만 썼고, 대량 생산이 가능해져 농기구에도 금속을 사용하게 된 철기 시대가 오면서 군사력과 경제력이 엄청나게 발달하며 대부분의 지역에서 역사 시대가 시작되었다.

문자가 일찍 등장/도래한 문화권에서는 청동기 시대부터 역사 시대가 시작되며, 대부분의 경우 철기 시대에 역사 시대를 맞는다. 한편 다른 대륙과의 문명 접촉이 늦었던 아메리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는 야금술의 등장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이러한 식으로 다루기 어렵다.

3. 선사 시대 종족들

선사 시대의 종족들은 크게 유목 민계, 정착 민계, 수렵 채집 민계로 나눌 수 있다. 정착 민계는 정착하여 조와 피, 기장, 보리, 이후 밀과 쌀을 제배하는 민족으로, 소위 말하는 인류의 4대 문명 발상지를 바로 이들이 만들었다. 단, 현재에는 독자적으로 문명을 창조하는 인류 문명의 발상지가 그 외에도 여러 곳이 존재하여 4대 문명설은 폐기되었다. 이들은 농경에 종사하여 처음으로 잉여 식량을 생산하고 비축하는 데 성공했으나, 수렵 채집에서 얻는 다양한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하여 평균적인 영양 상태가 오히려 악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유목 민계는 좋은 초원을 돌아다니며 방목 등을 거쳐 발달한 민족이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유목민 계열 민족은 지금도 존재하는 베두인, 투르크인, 유대인들과 몽골인들이 있다. 수렵 채집 민계는 짐승을 사냥하고 과일과 곤충, 초본류를 채집하여 살아갔고, 사실 인류가 등장할 때부터 원래 생활했던 방식이었다. 수렵 채집민 계열은 종종 식량 공급이 안정적이지 못했지만, 이들은 다양한 영양분 섭취를 통해 평균 키가 160에 불과한 농경민에 비해 큰 키인 이미 평균 키 170을 찍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거인이다. 대신 이들은 부양할 만한 인구수가 정착민과는 비교하지 못할 만큼 적었다. 보통 수렵 채집 민계와 유목 민계가 모여 유라시아의 대다수 기마-유목 민족을 만들었으리라고 여긴다.

4. 선사고고학

문자가 사용되기 이전의 시대를 연구하는 고고학. 사실 고고학의 정의로만 보자면 고고학의 특성에 가장 충실한 시대라고 할 수 있으나, 기록이 나타난 후의 시대, 즉 역사 시대에 대한 연구에서도 고고학적 방법론을 적용한 역사 고고학 개념이 있어서 이에 대비되는 선사고고학이라는 용어를 주로 유럽일본, 한국 고고학계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애초에 도구를 통한 시대 구분 자체가 덴마크의 고고학자인 톰센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니... 한국에서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원삼국시대)가 이 기간에 해당된다.

인류학계에서는 이 시기의 석기 문화를 올도완 문화, 아슐리안 문화, 무스테리안 문화 같은 식으로 이름 붙이기도 했다.

5. 선사 유적

5.1. 한반도의 선사 유적

5.2. 해외의 선사 유적

5.2.1. 나무위키에 항목이 있는 유적

고고학 관련 정보 참조.

5.2.2. 나무위키에 항목이 없는 유적

산티야나 델 마르 인근에서 발견된 동굴. 변호사 마르셀리노 산스 데 사우투올라의 딸이 벽화를 우연히 발견했다. 이후 <알타미라 동굴과 스페인 북부의 구석기시대 동굴 예술>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피카소는 벽화에 감탄하며 "우리들 중 누구도 이렇게 그릴 수는 없다. 알타미라 이후 모든 것이 쇠퇴했다"라고 극찬했다.

추가바람.


  1. [1] 게임 엠파이어 어스에서는 이를 받아들여 석기 - 청동기 사이에 '순동기 시대'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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