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실 로즈

세실 로즈(Cecil John Rhodes)

(1853년 7월 5일 ~ 1902년 3월 26일)

1. 개요
2. 행적
2.1. 성공
2.2. 몰락
3. 로즈의 흔적들
4. 여담

1. 개요

"우리가 세계를 더 정복할수록 인류에게는 더욱 이득이다."

("The more of the world we inhabit, the better it is for the human race.")

대영제국케이프 식민지(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전 총리이자, 영국의 기업인, 자선사업가이다. 그는 백인우월주의에 기반한 인종주의를 강하게 지지하였으며, '앵글로색슨이야말로 가장 우수한 인종이고, 앵글로색슨에 의해 지구 전체가 지배되는 것이 인류의 행복으로 연결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러한 신념 아래 그는 아프리카 전체를 집어삼키려는 제국주의적인 야욕을 드러냈다. 로즈는 당대 가장 존경받는 위인 중 하나였으나, 다문화・다인종・다원주의가 발전한 현대에 들어서는 대표적인 영국인 침략자로 비판을 받고 있으며, 식민지 시기에 자행되었던 많은 착취와 수탈, 강제노동, 고문 및 학살의 진상이 드러나면서 로즈가 지원한 사업이나 그를 묘사한 조각상, 작품들을 제거하자는 운동도 일어나고 있다.

나는 어제 런던 이스트 엔드의 실업자 집회에 가서 '빵을 달라'는 절절한 연설만 듣고 오다가 문득 제국주의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우리는 영국의 4천만 인구를 피비린내 나는 내란으로부터 지키고, 과잉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새로운 영토를 개척해야만 한다. (중략) 당신이 내란을 피하려 한다면 당신은 제국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나는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인종이며 따라서 우리가 세계에 많이 거주할수록 인류에 좋다고 주장한다.

세실 로즈의 유언집. 내전을 벌이고 싶지 않다면 외부를 착취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제국주의를 '백인의 짐' 같은 헛소리보다 직관적으로 말하고 있다.

2. 행적

2.1. 성공

지주 출신의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선천적으로 병약해 로즈가 17세가 되던 해 아버지에 의해 기후가 온화한 남아공에 보내어 요양토록 했다. 건강을 되찾은 로즈는 동생과 함께 킴벌리에서 광업에 종사했다.[1] 그러던 중 다이아몬드를 채굴하여 얻은 자금을 기반으로 다이아몬드 채굴권 투기, 채굴장용 양수 펌프 대여업을 하여 상당한 돈을 벌어들였다. 그리고 런던의 재벌 로스차일드의 대출도 받아 1880년 "드비어스 광산 회사"[2]를 설립하였다. 드비어스 광산 회사는 킴벌리에 위치한 대다수의 다이아몬드 광산을 독점했으며, 한 때 세계 다이아몬드 생산의 90%를 독점했었다.

로즈는 드비어스 광산 회사를 통해 트란스발 공화국의 광업에도 진출하였고, 얼마 안 가서 세계 최대의 광산 재벌이 되었다. 아울러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철도·전신·신문 업계도 장악했다. 이런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계에 진출한 로즈는 1880년에는 케이프 식민지 의원, 1884년 케이프 식민지의 재무장관이 되었고, 1890년에는 마침내 총리까지 올랐다. 그리고 틈틈이 무기 및 보급품 조달을 대가로 광산의 소유권을 양도 받는 등 경제 활동에도 주의를 놓치지 않았다.

결국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1889년 본국의 정부까지 매수해 식민지의 치안•통치권을 가진 '대영제국 남아프리카 회사(BSAC)' 설립 허가를 받아냈다. 그리고 1894년 로즈는 BSAC을 명분으로 원정군을 아프리카 각지에 파견해 영국 본토의 4.5배에 해당하는 광대한 토지를 점령하여 BSAC의 지배하에 두었고, 그 토지를 로즈의 이름을 따서 로디지아라 명명했다.

종단 정책의 일환이였던 카이로에서 케이프타운을 잇는 통신망(전신선)의 완성을 알리는 만평

그렇게 남아프리카 식민지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자타칭 남아프리카의 나폴레옹이라 불리던 로즈의 최종 목표는 대영제국의 지배하에 남아프리카를 통일한 연방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2.2. 몰락

그런 목표 하에 로즈는 트란스발 공화국을 합병할 계획을 세웠다. 트란스발의 영국인들에게 비밀리에 무기와 탄약을 보내 반란을 선동하고, 이를 트란스발 공화국이 진압 할 때 일어날 소요를 빌미로 마타베레 랜드 총독안 제임슨이 지휘하는 BSAC군을 파견해 한방에 먹어치울 계획이었다. 그러나 반란은 일어나지 않았고, 일단 국경을 넘어버린 제임슨 총독 지휘하의 BSAC 군은 보어인들의 맹렬한 반격에 당해 포위당하고 결국 전군이 포로로 사로잡힌다("제임슨 사건").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로즈뿐만이 아닌 대영제국 자체가 단체로 욕을 먹는 거대한 스캔들로 비화되어 결국 로즈는 1896년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사임한다. 그러나 이런 굴욕에 대영제국 정부 및 시민들은 복수심에 불탔고, 어느정도 영국에 대한 비난이 잦아들자 제 2차 보어 전쟁을 일으켰고, 로즈는 당연히 참전하나 졸전을 면치 못해 4개월간 포위되었고, 이로인해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더니 전쟁 종결 2개월 전 49세의 나이로 무이젠바구에서 사망한다.

현재 짐바브웨 마토보에 있는 산봉우리 World 's View Lookout에 안장되었으며, 근처 작은 기념관에 유품데스마스크가 보관되어 있다.

죽을 때 제정신이 아니었는지 알 수 없는 유언을 남겼다.

집행인들에게 전 세계에 영국 지배를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비밀 단체를 만들어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영국의 지배하에 두고 남아메리카, 팔레스타인, 중국과 일본, 말레이 반도, 그외 태평양의 섬들 중 영국령이 아닌 모든 곳에 정착민들을 보내 식민화를 추진하도록 교시되었다. 거기에 미국을 다시 영제국으로 회복시킬 것, 제국을 통합시킬 것, 그리고 전쟁을 더 이상 불가능하게 만들고, 인류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위대한 세력의 수립을 얻기 위해 식민지가 영국 의회에 대표를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체제를 마련하라 지침을 내렸다.

3. 로즈의 흔적들

  • 짐바브웨의 옛 이름인 로디지아라는 이름은 로즈의 성에서 따온 이름이며, 20세기 후반 남아공과 더불어 백인우월정책을 벌이며 세계적으로 욕먹던 나라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교회 총기 난사 사건 범인인 백인우월주의자가 인터넷에서 마지막 로디지아인이란 아이디로 활동하듯이 백인우월주의를 상징하기도 한다.
  • 600만 파운드에 달하는 막대한 유산 대부분을 옥스퍼드 대학교에 기증했고, 그 돈은 현재 '로즈 장학금'으로 사용되고 있다. 로즈 장학금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받기 어려운 장학금이자 명망있는 장학금으로 손꼽히는데,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석사나 박사 과정을 하는 동안 등록금은 물론이고 기숙사비와 생활비, 심지어 여행비까지 전액 지원해준다. 미국영연방에 속해 있는 나라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뽑는데, 로즈의 뜻에 따라 높은 학문적 성과와 야망이 있고, 봉사심과 리더십을 갖췄고, 거기다가 (필수조건은 아니지만) 스포츠를 오랫동안 해온, 그야말로 지덕체를 완벽하게 갖춘 학생들을 뽑는다.
그러나 제국주의자 세실 로즈답게 본래는 백인 남자만 뽑는 것이 원칙이었고, 1970년까지 흑인 학생, 1977년까지 여학생은 뽑지 않았다. 현재는 전세계의 우수한 인재들을 가리지 않고 뽑는다. 한 짐바브웨 출신 흑인 장학생은 "로즈가 나를 포함해 수많은 유색인종이 로즈 장학생으로 뽑힌 것을 알게 된다면 지금 관 안에서 데굴데굴 구르고 있을 것 아닌가. 내가 옥스퍼드에서 배운 학문을 조국에서 짐바브웨인들을 위해 이용한다면 그것으로 복수는 충분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2017년부터 제국주의적 악습을 타파한다는 뜻으로 장학생 선발지를 영연방 국가들만이 아닌 전세계 모든 국가들로 확대했다. 이 로즈 장학금은 심슨 가족에서도 부정적으로 나온다.
  • 2015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 대학교에는 학교의 부지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로즈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반발로 철거되었다.
  • 마찬가지로 남아공에 로즈의 이름을 딴 로즈 대학교가 있는데, 이곳의 학생들이 대학 이름을 바꾸라는 운동이 벌이고 있다.#
  • 로즈가 재산을 기부한 조국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에서도 로즈 동상 철거 운동이 불었었다#. 심지어 이중에는 로즈 장학금을 탄 학생들도 일부 있었는데, 그 중에 아프리카인 학생이 있어 '장학금 반납이나 하라'는 등의 인종차별적 비난을 들었다. 이에 대해 철거 측은 '배상금'으로 받아들였다 반론하고 있다###### 옥스퍼드 대학교와 보수 매체는 아이러니하게도 '다양성'을 명분으로 철거를 거부하고 있고, 과거 졸업한 동문 상당수가 기부금을 빌미로 협박해 철거를 무산시켰다.#

4. 여담

  • 독신주의자여서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다.
  • 로즈와 같은 시대에 살던 마크 트웨인은 제국주의에 반대해서 반어법으로 로즈를 찬양하면서 비꼬았다.
  • 프리메이슨 단원이었고, 젊은 시절 앵글로색슨 비밀결사단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기에, 각종 음모론의 소재가 되고 있다.
  • 폴란드 입헌왕국의 공작부인이자, 시온 의정서의 허구성에 대해 중요한 증언을 한 카타르지나 라지뷔우(Katarzyna Radziwiłłowa, 1858~1941)가 로즈를 스토킹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적으로 로즈에게 청혼했으나, 거부 당하자 복수 차원으로 약속 어음을 위조하여 로즈에게 빚을 떠넘기려고 했다가 남아공 감옥에 투옥되기도 했다. 장수하기는 했지만, 폴란드 입헌왕국이 러시아 제국에 완전히 합병되고 2차대전 중 폴란드가 나치 침략을 받던 차에 사망하는 등... 말년이 좋지 못하였다.
  • 2015년 짐바브웨에서 세실 로즈의 이름을 붙인 사자 세실이 사살되었는데[3] 공원의 마스코트라며 홍보해 세계적으로 어그로를 팍팍 끌어댔다. 그런데 세실을 사살한 사람은 현지인이나 흑인, 기타 제국주의의 피해자도 아닌 백인미국인치과의사였다.
  • 한국에서도 로즈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우도 있는데, 1990년대까지 한국에는 상당수의 문물이 미•일을 통해 들어왔던 탓에 식민 지배에 관해 부정적 인식이 약한 두 국가에서 세실 로즈에 대해 옹호하는 시각으로 쓰여진 책들이 한국에 들어왔던 바가 크다. 2013년에도 로즈를 옹호하는 서적들이 번역되어 출간된다.
  • 영어 모의고사 지문으로 등장한 적이 있다.


  1. [1] 당시 남아공은 광업이 흥했었다.
  2. [2] 오늘날 유명한 다이아몬드 취급 회사 드비어스의 전신.
  3. [3] 당연히 현지 흑인이 아닌 백인 관리사가 붙여준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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