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린 디옹

이름

셀린 마리 클로데트 디옹
(Céline Marie Claudette Dion)

국적

캐나다

생일

1968년 3월 30일

신장

173cm

배우자

르네 앙젤릴(2016년 1월 14일에 사망)

공식 홈페이지

링크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이름

셀린 디옹
CELINE DION

분야

음악

입성날짜

2004년 1월 6일

위치

6841 Hollywood Blvd.

역대 그래미 시상식[1]

올해의 노래상

제35회
(1998년)

제36회
(1999년)

제37회
(2000년)

Sunny came home - 숀 콜빈

My heart will go on - 셀린 디온

Smooth - 산타나

1. 소개
2. 경력
2.1. 1980년대: 데뷔, 유럽 최고의 인기 가수
2.2. 1990년대: 최고의 전성기, 세계 3대 디바
2.3. 2000년대: 라스베가스의 여왕
2.4. 2010년대: 현재진행형 전설
3. My Heart Will Go On
4. 여담
5. 음반
5.1. 영어 앨범
5.2. 프랑스어 앨범
5.3. 라이브 공연 및 앨범
5.4. 싱글
5.4.1. 빌보드 1위
5.4.2. 빌보드 2위
5.4.3. 빌보드 3위~10위

1. 소개

Queen Celine[2]

세계를 흔들었던 최고의 디바 중 한 명

캐나다 퀘벡 출신의 가수배우이다. 흔히 셀린 디옹과 셀린 디온이라는 표기가 혼용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이른바 3대 디바인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보다는 인지도가 조금 떨어지는 편이다. 이 항목도 3대 디바 중 가장 늦게 작성되었다. 이유는 알려진 대로 뜬 시기가 가장 늦었으며 더불어 음반도 내느라 빌보드에 집중하지도 않았고, 실제 디옹이 슈퍼스타로 떠오른 3집 활동 시기는 1990년대 초 휘트니 휴스턴머라이어 캐리의 전성기보다 늦은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 쪽 인기는 타 디바들에 비해 엄청나게 높다. 프랑스어가 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싱글을 2백만 장 이상 판매한 기록을 보유한 여성 아티스트이며, 1억 6천만 장의 앨범을 판매, 앨범과 싱글을 합친 판매량은 2억 장이 넘는다.

흔히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와 함께 3대 디바로 불렸다. 비단 한국뿐이 아니고 전세계적으로 그랬다. 보통 인기나 음반 판매량 면에서 셋 중 가장 뒤쳐지는 막내 이미지가 크다.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가 정상급의 가창력에 미모까지 겸비하여 연기 활동을 하는 등 압도적인 스타성을 만들었던 데 반해 셀린 디옹은 딱히 미인이라고 하기 어려운 평범한 외모를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흔히 머라이어 캐리보다 먼저 데뷔했음에도 셋 중 가장 막내라고 하는데 뜬 시기가 영어권에 한정했을 때 머라이어보다 늦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두 디바가 자신의 스타성에 함몰하여 마약에 빠져서 재기하지 못하고 사망하거나, 소녀 컨셉과 섹시 컨셉을 커밍아웃한 뒤 장기간의 슬럼프에 빠지는 동안 셀린 디옹은 오직 노래에만 집중하였고, 다른 두 디바가 부침을 겪는 동안에도 자신의 장기인 가창력을 거의 상하지 않게 보존하여 2010년대에도 활발히 공연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셋 중 가장 모범생, 공무원 스타일의 디바였던 셈이다. 다만 또한 그렇기 때문에 MOR, 이지 리스닝 계열의 '듣기 좋고, 가창력을 뽐낼 수 있는 팝 발라드'에 고착하여 음악적으로는 크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기도 했다.

2. 경력

2.1. 1980년대: 데뷔, 유럽 최고의 인기 가수

프랑스어를 주로 쓰는 캐나다 퀘벡 주에서 태어나 12살 때 'Ce n'etait qu'un reve (그것은 단지 꿈이었을 뿐)'이라는 곡을 작곡하고 녹음했다. 셀린의 오빠는 이 곡의 데모 테이프를 '르네 앙젤릴'이라는 매니저에게 보냈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이 오지 않자 자동 응답기에 "당신은 그 곡을 들어보지 않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들어봤다면 연락을 안 했을 리가 없으니까요."라고 남겼다. 데모 테이프를 들은 후 르네는 그 즉시 셀린에게 연락을 했고, 자신의 집을 저당 잡히면서까지 셀린의 앨범을 제작하게 되었다. 이 때 시작된 인연은 이후 부부의 인연으로까지 이어진다. 남편 르네 앙젤릴은 2016년 1월 14일, 암투병 끝에 사망했다. 여기에 언급된 오빠도 이틀 후 1월 16일 암으로 사망한다.

프랑스어권에서 꾸준한 인기를 얻으면서 1982년 'Tellement J'Ai d'amour pour Toi'라는 곡으로 일본 야마하 국제 콘테스트에서 금메달을, 'Ne partez pas sans moi'란 곡으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그랑프리를 따기도 했다. 이 노래는 본인이 노래를 했다. 작사는 그리스인, 작곡은 스위스인이 했고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ESC) 1998에서 스위스 국가 자격으로 출전했다. # 이 우승에 얽힌 비화가 있다. 마지막 판정 직전까지 2위였던 스위스가 1점 차이로 영국을 역전하며 우승했다. ESC 1988 판정은 각 나라마다 10국가에 1-12점씩을 주었는데 마지막 유고슬라비아 심판에게 6점을 받아서 최종 137점을 얻은 스위스의 셀린 팀이 우울해하고 아직 점수 호명이 안된 영국이 좋아라하면서 영국의 우승이 확정되나 싶었는데 마지막까지 영국의 이름이 나오지 않으면서 결국 디옹이 우승을 거두었다. 호명 직후 셀린의 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유럽 전역에만 국한되어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셀린이 마이클 잭슨의 공연을 보고선 '나도 저 사람처럼 슈퍼스타가 되고 싶다.'고 말하자 르네가 영어로 앨범을 녹음해야 가능할거라고 충고했다. 그때부터 셀린은 가정 교사를 두고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2.2. 1990년대: 최고의 전성기, 세계 3대 디바

결국 1990년 영어로 된 데뷔앨범 'Unison'을 발표했다. A-ha와 같은 가수의 프로듀서였던 크리스토퍼 넬을 주축으로 제작된 이 앨범은 당시 유행하던 댄스곡과 락발라드가 적절히 배합된 앨범이었다. 첫 싱글 '(If There Was) Any Other Way'는 빌보드 싱글차트 35위에 올랐지만 셀린의 이름을 제대로 알린 것은 다른 발라드 곡 'Where Does My Heart Beat Now' 였다. 빌보드 싱글차트 4위까지 오른 곡으로 빌보드 연말차트 37위에 랭크되었다. 이곡은 폭발적으로 터져나가는 발성의 락발라드로 그녀는 가창력을 인정받으며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와 함께 디바 대열에 동참하게 된다. 그러나 인정받았다는 것은 그녀의 가창력일뿐, 상업적인 측면에서 이때까지는 저 둘과 비교할 바가 못되었다. 디옹 스스로도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Where Does My Heart Beat Now'는 알아도 누가 그 노래를 불렀는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노래가 아닌 자기 이름을 알린 것은 'Beauty and the Beast'부터 였다고 말했다. 그래도 앨범이 미국에서만 100만 장 이상이 팔려 영어권 데뷔에 성공했다.

이후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의 주제가를 피보 브라이슨과 듀엣으로 부르고 이라크전에 참전한 미군들을 격려하는 곡인 'Voices That Care'에서도 여성 솔로파트를 맡는 등 인기가 날로 더욱 높아져 갔다. 여세를 몰아 발표한 2집에서도 'If You Asked Me To', 'Nothing Broken But My Heart', 'Love Can Move Mountains' 등의 히트곡이 터져나왔다. 이곡들은 셀린과 많은 작업을 한 여류 히트메이커 다이안 워렌의 곡들로 모두 빌보드 40위권에 안착했다. 또한 프린스가 작곡해준 with this tear는 그녀의 가창력이 폭발력 뿐 아니라 섬세함이 더해짐을 증명해준다. 이 앨범에서는 멜로디 메이커 월터를 주축으로 만든 앨범으로 1집보다 훨씬 감성적인 멜로디를 선사했다. 무엇보다 'Beauty and the Beast'가 아카데미에서 주제가상을 받은 것이 셀린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데에 큰 공을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Where Does My Heart Beat Now (Live)

Beauty and the Beast (Live)

하지만 셀린을 세계적인 슈퍼 스타이자 디바로 만들어 준 앨범은 3집 'The Colour Of My Love'였다. 1집에 참여했던 보디가드를 통해 한창 주가를 올리던 히트맨 데이비드 포스터를 주축으로 한 앨범으로 첫 싱글 'The Power Of Love'는 그녀의 첫 빌보드 싱글차트 1위 곡이 되었고,[3] 그 밖에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주제가 'When I Fall In Love'을 통해 다시 영화 듀엣곡으로 중박정도 사랑을 받고 misled 같은 곡으론 댄스에도 도전했다. 특히 'Think Twice' (영국 차트 1위)같은 곡은 미국에서는 망했지만 영국에서는 그녀의 대박 히트곡이 되었다. 전세계적으로 1,800만 장 이상이 팔렸다. 국내에서는 'The Power Of Love'가 TV는 사랑을 싣고의 주제가로 쓰이기도 해서 인지도가 높다.

The Power Of Love (Live)

Beause You Loved Me (Live)

All By Myself (Live)

My Heart Will Go On (Live)

아카데미 주제가 상을 탈 때의 공연. 디옹이 차고 있는 목걸이는 영화에 나오는 그 보석이 맞다.

이런 활발한 영어 앨범 활동 중에도 그녀는 꾸준히 프랑스어 앨범을 발매했는데 특히 1995년 발매된 D'eux는 프랑스어 앨범 역대 최고 판매량을 기록한다. 프랑스의 국민가수 장자크 골드만이 메인 프로듀싱한 이 앨범은 프랑스 내에서만 4,412,100 장이 팔렸으며 세계적으로 1000만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 앨범의 인기가 워낙 대단해서 프랑스에선 44주 간 앨범차트 1위를 차지했다. 그녀의 다음 앨범인 Falling into you 역시 이 앨범에 밀려 2위를 차지했을 정도이다.

4집 'Falling Into You'는 미국에서만 1천만 장 이상이 팔렸으며 전세계적으로는 3,20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Because You Loved Me', 'It's All Coming Back To Me Now' 그리고 국내에서 오빠 만세로 잘 알려진 'All By Myself' 등이 히트했다. 디온의 커리어에서 가장 성공한 두 앨범 중 하나인데, 5집이 'My Heart Will Go On'에 집중된 인기라고 한다면, 4집은 'Because You Loved Me'가 대표적이긴 하지만 비교적 고루고루 인기를 얻었다. 3집 때까지 머라이어 캐리에 밀려 콩라인이던 셀린 디옹은 이 앨범으로 소니에서 가장 중요한 가수로 위치가 격상되었다. 'Because You Loved Me'는 영화 '업클로스 앤 퍼스널 (Up Close And Personal)'에 삽입되어 메가 히트를 쳤고 빌보드에서 6주간 1위를 했으며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에서 거의 1년 동안 랭크되어 있음은 물론, 그래미 어워드에서 'Album Of The Year'를 수상했다. 당연히 투어도 대박을 쳤으며 첫 내한 공연도 이때 이루어졌다.

셀린 디옹의 최대 히트곡 "My Heart Will Go On."

다음 해 발표한 5집 'Let's Talk About Love'도 무려 천만장 이상이 팔렸으며 전세계적으로 3,100만 장이 넘게 팔렸다. 특히,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인 'My Heart Will Go On'은 셀린 히트곡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이 무렵 그녀의 앨범이 1초당 1장씩 팔려나간다는 통계자료까지 나왔으니 말 다한 것이다. 게다가 타이타닉의 OST 역시 3천만장이 넘게 팔렸는데, 이 앨범은 'My Heart Will Go On' 이외의 트랙이 전부 클래식 음악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사실상 한 곡의 힘이 컸다. 사실 본 앨범에서도 완성도와는 별개로 싱글은 'My Heart Will Go On'을 제외하면 별로 히트한 싱글이 없었다.

게다가 곡의 싱글마저 미국에서 한정판으로 풀어버리는 바람에 순식간에 매진이 되었다. 소니의 대표적인 병크 중 하나인 듯. 그런고로 그 해에는 'My Heart Will Go On'이 수록된 5집과 타이타닉 OST 양 쪽 모두 3천만장이 넘게 판매된 것이다. 그야말로 엄청난 기록. 보통 2~3년 틈을 두고 앨범을 발표하는 것이 일반적인 팝계에서 다작을 하면서도 이렇게 메가 히트를 시켜버렸으니 그야말로 리즈 시절을 달렸다.

이후 크리스마스 앨범과 베스트 앨범을 발표했다. R. 켈리와의 듀엣 'I'm Your Angel'이 빌보드 차트 1위를 하는 등 역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미국 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캐롤 음반들 중 하나이다.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로 유명한 머라이어 캐리의 캐롤 음반보다도 미국 내 판매량이 근소하게 앞섰으나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머라이어의 앨범이 더 잘팔려서 지금은 추월당했다.

이 당시 그녀의 베스트 앨범 'All The Way'를 발매하는데 2,400만 장이라는 베스트 앨범으로선 믿기 힘든 판매량을 기록한다. 다만 여기엔 신곡 7곡이 포함되어 있었다. 90년대 중반 이후의 그녀의 네 장의 앨범(4집, 5집, 캐롤 음반, 베스트 앨범)은 96~99년 4년간 1억장을 돌파했고, 여기에 타이타닉 OST는 포함조차 되지 않았으니 90년대 후반은 그야말로 셀린 디옹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어느날 남편 르네가 후두암에 걸려 활동을 중단하면서 남편 병간호에 나섰다. 다행히 르네의 병은 호전을 보였으며 시험관 시술로 아들까지 얻는 겹경사를 맞았다. 개인 새생활이 안정을 겪으면서 6집 'A New Day Has Come' (1200만장 그해 판매순위 2위.) 와 7집 'One Heart' (600만 장)가 연이어 발매되었지만 예전만한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래도 라스베가스에서 장기 공연을 하면서 여전한 가창력을 발휘했다. 그 해에 전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이 판 앨범 (1위는 에이브릴 라빈, 두 앨범간 판매량 차이도 얼마 없었다.) 을 중박으로 평가하는 것이 어불성설이긴 하나, 그 전 앨범들에서 워낙 압도적인 판매량을 보인 것과 대비되는 점, 또 6집에서는 전작들과는 달리 차트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한 싱글이 없었다는 점이 상대적인 저평가를 받는 이유인 듯하다.

앨범도 앨범이지만 라이브 활동이 인상적인 디바로도 꼽힌다. 2007~09년의 'Taking Chances Tour' 는 역대 라이브 투어 중 11위(여성 중 3위. 그 위의 2개는 어느 여왕님(!))의 수입을 거둬들였다.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아예 라스베이거스에 공연장을 새로 지어 레지던스 쇼 형식의 공연을 하고 있다. 2003~07년의 'A New Day' 에 이어 2011년부터는 'Celine' 을 진행 중이다. 2019년(!)까지 계약된 상태다. 셀린디옹의 콘서트 티켓은 2000~2009년에만 7.2억 달러, 환율 1,000원만 잡아도 7200억이 넘게 팔렸다. 또한 2006년쯤에 셀린 디옹의 목소리가 가라앉는다는 말이 나왔고 그것을 라스베이거스의 건조한 공기 때문이라고 여겨서 아예 공연 장소에 가습기를 설치했다.

프랑스어와 영어 양쪽으로 나뉘어진 음악 활동으로 인해 라이브 투어 또한 세트리스트를 영어권 대상과 프랑스어권 대상으로 나누어 진행하고 있다. 프랑스어권 세트리스트가 영어/프랑스어 곡이 대략 반반 섞인 구성인 데 비해 영어권 세트리스트는 한두 개 정도의 프랑스어 곡만이 포함되는 차이를 보인다. 이유는 불분명하다. 아마도 역대 프랑스어 싱글 중 유일하게 영국 차트에 들었기 때문인 듯. 늘 끼는 곡은 'Pour que tu m'aimes encore'. 2008년 서울 공연 당시 셀린의 코멘트는 '한 곡 정도는 프랑스어 곡을 불러야 해요' 였고 당연하게도(!) 관객의 호응은 공연 전체에서 최하를 달렸다.

캐나다 퀘벡 주 출신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 외에 일본 로컬 활동 이력도 특이한 점으로 꼽을 수 있다. 특히 일본에서 드라마 주제곡으로 사용된 'To Love You More' 는 서양인으로는 12년만의 오리콘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했고 'Be the Man' 은 아예 일본어판 싱글이 처음 발매되었다. 근래에는 2007년 'Taking Chances' 앨범의 'A World to Believe in' 에서 이토 유나와 듀엣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인기를 반영해서 월드 투어의 일본 방문시에는 도쿄 돔오사카 돔 기본 방문. 'Taking Chances Tour' 에서는 일본 공연 입장료가 대한민국보다 훨씬 저렴하고 전체 개최국 중에서도 밑에서 2번째였을 정도이다. 내한 활동 경력으로는 2008년, 1997년에 이은 두번째 내한 공연을 펼쳤고, 뛰어난 가창력으로 관객들을 감동시킨 바가 있다.

2.3. 2000년대: 라스베가스의 여왕

힙합알앤비로 갈아탄 머라이어 캐리나 별세한 휘트니 휴스턴과는 달리 2000년대 이후에는 위에서 설명한 대로 공연과 투어에 집중하며 앨범은 간간이 내고 있다. 2003년 이후 라스베가스에서 계속 진행 중인 그녀의 쇼는 이미 라스베가스의 상징이 되었다. 엘비스 프레슬리 이래 라스베가스의 최고 거물 가수로 등극했으며 그녀 이후 브리트니 스피어스나 제니퍼 로페즈도 라스베가스 쇼에 참여하지만 그녀만한 실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2003년 그녀의 활동은 싱글과 프로모션 활동보다는 콘서트와 공연에 집중하는 형태라 싱글컷 실적이야 없지만 여전히 'Taking chances'와 'Loved me back to life' 앨범 역시 350만 장, 150만 장의 준수한 판매를 보이고 있다.

다른 두 디바와는 달리 가창력 논란이 거의 없는데 이 점을 생각하면 적어도 '3대 디바' 논쟁에서는 최후의 승자는 셀린 디옹일지도 모른다. 예술성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약물 중독으로 목소리가 완전히 망가진 휘트니 휴스턴, 벨팅가성의 사용, 지나친 워커홀릭 프로모션으로 컨디션에 따른 가창력 기복이 심해진 머라이어 캐리와는 달리 아직까지도 전성기의 가창력을 잘 보존하고 있다. 오히려 파워는 전성기보다 조금 떨어졌을지 몰라도 전성기보다 더 깔끔한 목소리, 기교, 그리고 고음역대에서의 편안하고 완벽한 소리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목소리가 변하지 않았다고 말하면 어불성설일 것이고 20, 30대 당시의 카랑카랑한 미성에서 서서히 10년대의 깊고 굵은, 따스한 목소리로 변해왔다.

머라이어 캐리랑 휘트니 휴스턴은 소울 스타일 창법이었는데, 이쪽은 믹스 보이스가 뭔지를 똑똑히 보여준다. 셀린 디온의 대표곡인 'I surrender가 사례다. 듣다 보면 머리가 아플 정도.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는 사생활에서도 구설수가 나왔는데, 이쪽은 남편인 르네 앙젤릴과도 사이가 좋다. 물론 구설수는 나오지도 않았다. 약물이나 술에는 입도 대지 않고, 스스로를 빈틈없이 다스렸기 때문이다. 휘트니 휴스턴이 숨을 거두었을 때, 나온 인터뷰에서 마약이 그녀의 모든 것을 뺏어갔다고 화냈다. 더구나 흥청망청거리는 분위기가 싫어서, 뒷풀이 파티에도 안 간다고 한다.

2.4. 2010년대: 현재진행형 전설

2010년대에도 앨범을 간간히 내고 있는데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동시대 가수 중 이정도 판매량을 기록하는 가수는 없는 편. 발매했다하면 100만 장은 기본으로 넘겨주고 있다. 특히 2010년 이후 발매된 두 장의 프랑스어 앨범 Sans attendre와 Encore un soir는 프랑스에서만 연속으로 80만 장을 넘게 팔며 프랑스의 국민 가수급 위엄을 보여주는 중. 싱글 실적이 없다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2016년에는 프랑스 싱글 차트에서 9년만에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안드레아 보첼리와 The Prayer를 같이 불렀다.

2017년에는 디즈니 미녀와 야수 실사영화의 OST 'How Does A Moment Last Forever'를 불렀다. 91년 피보 브라이슨과 불렀던 미녀와 야수(애니메이션)의 주제가 'Beauty and the Beast' 이후로 무려 25년 만에 동일 작품의 실사화에서 다시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4] 시간의 흐름과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발라드이며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흐른다.

영화 공개 이후로 라스베가스 쇼에서 처음으로 'How Does A Moment Last Forever'를 공개하는 셀린 디옹. 벨과 같은 노란색 드레스를 입고 아이처럼 떨려 하는 셀린 디옹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곡이 끝난 뒤에 자신과 비슷한 노란색 드레스를 입은 소녀를 무대 위로 불러내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드레스가 워낙 예뻐서 공연 전에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고.

정말 긴장되면서도 들뜨는 기분인데요. 25년 전에 저는 운 좋게도 마법 같은 영화 미녀와 야수참여했어요. 저의 연예계 생활 중에 가장 대단한 순간 중에 하나였답니다. 진심으로 감사하지요. 그리고 25년이 지나서, 디즈니가 저에게 다시 한 번 요청했어요. 미녀와 야수의 실사영화 버전에 참여해서 노래를 녹음해 줄 수 있겠냐는 거였죠. 관객 여러분도 제 입장에서 생각해 보시면 알겠지만... 제가 어떻게 거절하겠어요? 자, 지금 들려들일 신곡은 '어떻게 한 순간이 영원이 될까요(How Does A Moment Last Forever)'입니다. 오늘 콘서트에서 관객 여러분께 최초로 들려드릴게요.

2018년에는 뜬금없이 데드풀 2의 OST를 불렀다. 약을 거하게 빤 뮤직비디오까지 공개했다. 무대에 난입한 데드풀의 더러운 춤사위와 노래가 끝난 뒤 데드풀과 셀린의 대사가 일품. 셀린이 의외로 코미디 연기도 잘 한다며 팬들도 좋아하는 분위기이다.

데드풀 : 셀린! 진짜 끝내줬어. 내가 살면서 본 공연중에 최고인 듯.

셀린 : 고마워!

데드풀 : 아니, 내가 고맙지... 근데 다시 찍어야 되겠어.

셀린 : 음... 왜?

데드풀 : 그게 너무 좋단 말이지. 이 영화 데드풀 2라고. 뭔 타이타닉 같은 명작도 아니고... 지금 10점 만점에 11점 수준이거든? 5점이나... 최대로 해봤자 5.5점 정도로 맞춰 주면 좋겠네.

셀린 : 귀 열고 쳐들어. 셀린 디옹께서는 11/10정도 레벨이 아니면 안 하시거든. 좀 짜지셔, 스파이더맨 씨.

데드풀 : 엔싱크나 부를걸...

3. My Heart Will Go On

처음에 셀린 디온은 'My heart will go on'을 부르고 싶어하지 않았다. 이 명곡의 탄생에는 복잡한 비화가 숨어있는데, 'My heart will go on'은 원래 보컬이 들어간 노래가 아니라 순수 악기로만 연주되는 'instrumental' 음악이었다. 여기엔 이유가 있는데 자칫 영화가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이유로 타이타닉의 감독 제임스 카메론이 "자신의 영화에 보컬이 들어간 음악을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곡가 제임스 호너는 이 원칙에 의해 'instrumental' 곡을 작곡했으나, 영화 마지막에 관객들의 마음을 감싸안아줄 보컬과 가사가 있는 음악이 필요함을 직감했고 작사가에 작사를 의뢰한 후 친분이 있던 셀린디온 측에 이 곡을 의뢰했다. 타이타닉을 감상할 때 음악에 주의깊게 집중하면 알 수 있듯이, 'My Heart Will Go On'이라는 곡을 구성하는 세 가지의 테마(오카리나 솔로, verse, 후렴)는 모두 OST의 일부로, 일종의 라이트모티프가 되어 영화상에서 반복되다가, 엔딩 크레딧에 이르러 하나의 보컬 곡으로 집대성된다.

하지만, 이미 전작 Because you loved me에서 영화 OST로 대박을 친 상황에서 (이제 와서 보면 대박이라고 말하기도 정말 우습지만) 또 다른 영화 OST를 만들고 싶어하지 않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My heart will go on을 듣고 대박을 예상했던 남편 르네 앙젤릴과 제임스 호너가 강력하게 밀어붙여서 "반드시 노래를 불러야 된다!"라고 셀린 디온을 설득시켰지만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면서 "정 그러면 데모 녹음이나 한 번 해보자."싶어서 정말로 단 한 번에 원 테이크(!)로 녹음을 한 노래가 바로 'My heart will go on'이었다.

하지만, 제임스 호너는 노래하고 싶어하지 않는 가수와 보컬과 가사가 들어간 음악을 자신의 영화에 넣고 싶어하지 않는 감독을 설득해야 되는 이중고를 겪어야만 했다, 그리하여 나온 전략이, 제임스 카메론의 기분이 아주 좋아보이는 날, 셀린 디온이 녹음한 데모를 은근슬쩍 틀어보기 시작한 것이다. 보컬이 들어간 노래를 듣자마자 예상대로 화를 내던 제임스 카메론은 노래가 절정에 달하자, My heart will go on에 반해버려서 "OK!"를 했다. 그렇게 제임스 호너의 의지가 통했고, 결국 이 노래는 역사에 남을 초대박을 터트리면서 전설이 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노래가 My heart will go on이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My heart will go on이 수록된 타이타닉 OST 앨범과 셀린디온의 정규 5집 Let's talk about love 앨범 양쪽이 모두 3천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고, 미국에서 한정판으로 그 판매량이 미비함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에서 싱글이 1600만장이 넘게 팔린 전무후무한 대 히트를 기록한다. 결국 발매후 팔아치운 My heart will go on이 들어간 음반은 총 8천만장이 넘는 셈이다. 수많은 컴필레이션, 리믹스 따윈 넣지 말자!

사실, 셀린 디온의 커리어 뿐만 아니라 POP의 역사를 전부 통털어서도 이 정도까지 역대급으로 대히트를 기록한 노래는 사실상 거의 없다. 그래서 셀린은 "Thank God, they didn't listen to me."[5]라고 표현했을 정도였다. 아무튼 영화가 개봉한 뒤 역사에 길이남을 초대박급으로 흥행을 했고 덩달아서 노래까지 대박이 터지자 부랴부랴 새롭게 편곡을 하면서 다시 녹음을 하게 되었다. 따라서 영화에 엔드 타이틀로 들어간 곡과 실제 싱글컷된 곡이 조금 다르다.

4. 여담

당연한 소리지만 세계적으로 대성공한 가수인 만큼 엄청난 부자다. 할리우드 여성 연예인을 통들어서 항상 재산 3대장 안에 손꼽힌다.[6] 2000년대 이후 마돈나, 셀린 디옹, 머라이어 캐리 이 세 명의 순위는 변한 적이 없다. 셀러브리티네트웍스에 의하면 이 세 여가수는 마돈나와 셀린 디옹, 머라이어 캐리로 마돈나와 셀린 디옹이 8억 달러, 머라이어 캐리가 5.2억 달러의 소유자라고 한다.[7] 앞으로 이들을 추월할 가능성은 있는 아티스트는 비욘세가 유일해 보인다.

남의 말을 안 좋게 하는 경우가 절대 없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은 이런거에 별로 터부가 없고, 오히려 디스전을 즐기기도 한다. 머라이어 캐리의 경우는 에미넴과 싱글컷을 하면서 디스전을 하기도 했다. 다만 이쪽은 오랜 기간에 걸친 에미넴의 허위사실 유포로 분노가 극에 달한 머라이어 캐리가 'Charmbracelet' 등에서 타이르다가 'Obsessed'로 디스를 시전한 것이다. 셀린 디온은 논란의 중심에 있는 연예인에 대한 인터뷰를 해도 항상 칭찬과 좋은 말로 일관한다. 예를 들면 폭망기와 재기를 반복하던 브리트니 스피어스나, 공연에서 트워킹이나, 혀를 내미는 퍼포먼스로 논란이 있었던 마일리 사이러스와 같은 경우이다. 가는 말이 고우니 오는 말도 고와서 아무와도 갈등이 없다.

유일한 갈등으로 라스베가스 공연을 처음 시작할 때 뮤즈와의 사건이 있긴 했다. 지금은 유명하지만 당시는 상대적으로 무명에 가까웠던 2003년 뮤즈에게 소니가 뮤즈 측에 돈을 주고 판권을 사서, 라스베가스 공연의 타이틀로 쓰려고 했다. 뮤즈는 거부하면서 인터뷰를 했다. 셀린 디온의 음악을 비하하고 자신의 팬들도 마찬가지로 셀린 디온의 음악을 싫어한다고 했다. 이 때도 셀린은 그에 대한 인터뷰를 하지 않고, 그냥 공연 타이틀을 'A new day'로 바꿨다.

자신에게 엄청난 부와 성공을 가져다 주긴 했지만, 정작 자신은 "고음 범벅 노래들을 콘서트에서 두 시간 동안 부르는 것이 지겹다."라고 말했다. 'My heart will go on'은 특히 너무 많이 불러서 정말 싫다고 하면서 자신이 죽을 땐 절대 틀지 말라고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에도 불러달라고 요청하면 많이 부르는 듯하다.

철저한 자기관리로도 유명하다. 콘서트를 앞두고 목 상태가 좋지 않자 아예 말을 하지 않았던 일화도 유명하다. 그 외에도 쇼 비지니스 전반에 걸쳐있는 향락적인 문화를 경계한다고 말했다. 지나친 음주나, 마약같은 것들과는 정말 거리가 멀다. 대신 그래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저택에다가 워터 파크를 만들고 신발도 3천 켤레나 사긴 하지만... 마약보다는 낫지 않은가?

유튜브 시대 이전에 전성기가 끝나긴 했지만 유튜브에서도 매우 인기가 많은 팝가수 중 한 명이다. 최근에도 유튜브 통계를 보면 현역 가수들 이상으로 조회수 총합이 잘 나온다. 재미있는 것은 셀린 디온과 관련된 유튜브 영상들 중에서 1억 뷰가 넘는 영상은 딱 3개뿐이고, 그마저도 전부 1억 2천만을 넘기지 못하며, 2개는 'My heart will go on'과 관련된 동영상이다. 아쉽게도 'My heart will go on'의 공식 뮤직 비디오 영상이 안 올라와 있기 때문인 듯 하며(공식 라이브 영상은 있다) 아마 뮤비 외에도 유튜브에서 각종 음원이나 공연 영상 등으로 조회수들이 분산되어서 집계되는 듯하다.

2014년에는 소유 부동산이 화제가 됐다. 플로리다의 7200만 달러짜리 저택을 시장에 내놓았고 3천만 달러 상당의 캐나다 성도 시장에 나왔다. 캐나다 출신이라서 그런지 당연히 NHL의 팬이다. 실제로, 레 카나디앵 드 몽레알의 인수를 시도한 적도 있다.

사생활의 유일한 잡음이라면 남편 르네 앙젤릴과의 결혼 당시에 생겼는데 다름아닌 르네가 셀린보다 26살이나 연상이었던 것이다. 셀린이 어린 시절에 치아가 고르지 못한 것을 약점으로 대중들에게 비웃음을 당하는 일이 있었는데 르네가 위로를 해주면서 용기를 주었다고. 물론 이후로 르네는 셀린의 음악 커리어를 완벽하게 외조했고 셀린 역시 암투병을 하는 르네를 음악활동을 중단하면서까지 극진히 간호하며 르네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원만한 결혼생활을 유지했다. 다만 르네 앙젤릴은 2002년에 한인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았는데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이 났으며 피해자라고 주장한 한인여성과 그 남편도 공갈협박과 범죄공모 혐의로 기소 당했으나 수사 과정에서 증거로 제시한 물증들이 충분히 수사에 활용되지 못한 점을 들어 이들 부부에게도 만장일치로 무죄평결이 났다. 단 뇌물간청 혐의는 그대로 유지하여 기소되었다.

5. 음반

5.1. 영어 앨범

  • Unison(1990)
  • Celine Dion(1992)
  • The Colour of My Love(1993)
  • Falling into You(1996)
  • Let's Talk About Love(1997)
  • These Are Special Times(1998) - 크리스마스 앨범.
  • A New Day Has Come(2002)
  • One Heart(2003)
  • Miracle(2004)
  • Taking Chances(2007)
  • Loved me back to life(2013)

5.2. 프랑스어 앨범

  • Incognito(1987)
  • Dion Chante Plamondon(1991)
  • D'eux(1995)
  • S'il Suffisait D'aimer(1998)
  • 1 Fille & 4 Types(2003)
  • D'elles(2007)
  • Sans Attendre(2012)
  • Encore un soir(2016)

5.3. 라이브 공연 및 앨범

  • Les chemins de ma maison tournée(1983~84)
  • C'est pour toi tournée(1985): Céline Dion en concert(프랑스어) - 1985년 5월 31일 몬트리올 Place des Arts 공연.
  • Incognito tournée(1988)
  • Unison Tour(1990~91)
  • Celine Dion in Concert(1992~93)
  • The Colour of My Love Tour(1994~95): À l'Olympia (프랑스어) - 1994년 9월 28~29일 파리 Olympia 공연.
  • D'eux Tour (1995~96): Live à Paris(프랑스어) - 1995년 10월 20~24일 파리 Le Zénith 공연.
  • Falling into You Tour(1996~97)
  • Let's Talk About Love World Tour(1998~99): Au cœur du stade(프랑스어) - 1999년 6월 19~20일 파리 Stade de France 공연.
  • A New Day...(2003~07 첫 레지던스 쇼): A New Day... Live in Las Vegas(영어) - 라스베이거스 Colosseum at Caesars Palace 공연.
  • Taking Chances Tour(2008~09): Taking Chances World Tour: The Concert(영어. 2008년 8월 12~13일 보스턴 TD Garden 공연) Tournée Mondiale Taking Chances: Le Spectacle(프랑스어. 2008년 8월 31일~9월 1일 몬트리올 Bell Centre 공연)
  • Celine sur les plaines(2008년 8월 22일) - 퀘벡 400주년 기념 공연.
  • Celine(2011~19) - 레지던스 쇼.

5.4. 싱글

5.4.1. 빌보드 1위

  • The Power of Love(1993)
  • Because You Loved Me(1996)
  • My Heart Will Go On(1997)
  • I'm Your Angel(1998)

5.4.2. 빌보드 2위

  • It's All Coming Back to Me Now(1996)

5.4.3. 빌보드 3위~10위

  • Where Does My Heart Beat Now(1990)
  • Beauty and the Beast(1991)
  • If You Asked Me to(1992)
  • All by Myself(1996)
  • That's the Way It Is(1999)

5.5.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 우승
    • Ne partez pas sans moi(1988), 스위스 - 캐나다 국적이지만 스위스인이 작곡하고 그리스인(!)이 작곡한 프랑스어 곡으로 출전. 작곡가 국적 때문에 스위스 대표로 참가할 수 있었다.

맨 위의 사진과 얼굴이 조금 다르게 보이는 건 그냥 착각 이다도시?그녀의 나이가 20세였던 점을 감안하자. 목소리가 환상적이니 들어보자.


  1. [1] 그래미 시상식의 가장 중요한 상들로 여겨지는 올해의 레코드상, 올해의 앨범상, 올해의 노래상, 최고의 신인상만이 기록되어 있다. 나머지 부문의 상들은 따로 문서 내 수상 목록에 수록해주길 바랍니다.
  2. [2] Already, the Streisand duet has become a network news story in Canada (where, in Quebec, Dion is known as 'Queen Celine')" in Nielsen Business Media, Inc (1997-11-01)
  3. [3] 당시 고전 팝 리메이크 열풍을 주도했던 데이빗 포스터답게 이곡 역시 원곡의 완성도를 한층 더 끌어 올렸다.
  4. [4] 참고로 'Beauty and the Beast'는 실사영화에서 아리아나 그란데존 레전드가 불렀다.
  5. [5] 그들이 제 말을 듣지 않았던 것에 대해 신에게 감사드립니다.
  6. [6] 다만, 오프라 윈프리나, 마사 스튜어트 같은 비지니스 우먼들을 순위에 넣느냐 마느냐에 따라 달라지긴 한다.
  7. [7] 종전 설명의 르네 앙젤릴은 이미 고인이 됐고, 최근 추정 자산은 마돈나와 셀린 디온이 8억달러, 머라이어 캐리가 5.2억 달러로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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