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노리

  관련 문서: 게임 제작사

손노리

영문 명칭

Sonnori Corporation

창립

1998년 2월

주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로 620 블랙스톤 빌딩 5층

사이트

공식 홈페이지

1. 소개
2. 역사
2.1. 초창기 ~ 독립법인 신설 이전(1992~1998)
2.2. 독립법인 시절(1998~2001)
2.3. 로커스홀딩스, 플래너스 엔터테인먼트 시기(2001~2007)
2.4. 구름인터렉티브 시기(2007~2012)
2.5. 턴온게임즈로의 변신, 그리고 '손노리 팬덤'의 소멸(2012~2014)
2.6. 로이비쥬얼 시기(2014~2016)
2.7. 카카오게임즈 시기(2016~)
3. 여담
4. 평가 및 비판
5. 분사된 회사 및 관련 회사
6. 손노리(이원술 사단)가 개발/판매/운영/서비스한 게임
7. 관련 문서

1. 소개

한국게임 개발사, 게임개발팀.

세간에는 (주)손노리로 잘 알려져 있으나, 손노리가 독립 회사 체제로 운영되었던 시기는 독립법인으로 있었던 1998~2001년 뿐이다.[1] 나머지 기간은 게임사업본부, 게임개발팀 정도로 타 회사에 속해 있었다. 아마추어팀 → 소프트라이 → 데니암 → 판타그램 → 독립법인 손노리 → 로커스홀딩스 → 플래너스엔터테인먼트 → 구름엔터테인먼트 → 하나로드림 → CJ게임즈 → 턴온게임즈 → 로이비쥬얼(로이게임즈) → 카카오게임즈 순으로 소속을 바꿔서 총 13번, 평균 2년에 1번씩 소속을 바꾼 역마살풍운의 게임제작팀으로 볼 수 있겠다.

다만 2010년 이후에 들어와서 사실상 구분이 굉장히 어려워지게 되었는데, 손노리는 단지 겉껍데기에 불과하고, 이원술을 포함한 사실상 실질적인 인력들은 타 회사에 속해있었기 때문이다. 위의 분류는 대개 사장인 '이원술'의 거취에 따라서 결정되는 감이 있기 때문에, 이 문서에서 '손노리' 를 정의하자면 '이원술 사단'이라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한 때 CJ게임즈의 자회사인 턴온게임즈로 분리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그것을 고려하여 턴온게임즈로 쳐도 이 항목에 자동 리다이렉트 되었으나 이원술 및 임직원들이 턴온게임즈를 퇴사함에 따라서 별도의 문서가 생성되어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CJ에 합병된 이후에도 임직원의 메일 도메인이 sonnori.com 인것을 봐서는 아마 어떤 형태로든 손노리로서의 정체성은 남아 있었고, 2013년 6월 기준으로[2] 現 손노리 대표이사라고 나와있으므로 별도의 법인으로 따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CJ로부터의 독립 이후 계약상으로 손노리가 CJ에 합병되지 않았다는 내용이 밝혀지면서 충격을 주기도 했다.

또한 2015년에는 과거 손노리 직원들과 함께 로이게임즈라는 이름으로 화이트데이: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2015)을 제작하였다.

PC게임으로는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다크사이드 스토리, 포가튼 사가, 강철제국, 화이트데이 등을 발매했다. 악튜러스는 그라비티와 손노리의 합작이며 자금, 홍보, 2D는 손노리가 맡고 3D와 시나리오 등은 그라비티가 맡았다.

패스워드를 물어오는 패스맨이라는 캐릭터가 마스코트이며 손노리군, 페어리요정, 와레즈 요정 등 여러가지 캐릭터를 만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박찬규(아이언노스 사장)가 연재하던 '손노리군'에 나오는 캐릭터들이다. 트릭스터에도 펫으로 출연했었다.

게임 중에 여러가지 패러디가 많은 것도 특징. 예를 들면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이 소돼지와 아이들이라는 이름으로 찬조출연한다든가, 어스토나 포가튼 사가 등에서는 당시 유명 대전액션게임캐릭터가 찬조 출연하는 식이었다. 다크사이드 스토리에서도 마찬가지로 유명 대전액션게임 캐릭터가 기술을 가르쳐주는식으로 나온다. 그리고 발매하는 게임마다 지긋지긋한 발매연기를 한다는 것도 전통이라면 전통이다. 예를 들어 포가튼사가의 발매 연기 짤방은 전설이 되었으며, 악튜러스 역시 약 1년간의 발매연기로 인해 '위자드소프트 소비자 대책 모임(약칭 위소모)' 라는 사이트가 나왔을 정도다. 이게 국산게임의 고질적 풍토인 수많은 발매연기[3]와 수많은 버그의 시작이 되었다.[4]

2. 역사

2.1. 초창기 ~ 독립법인 신설 이전(1992~1998)

1992년 인천에서 아마추어 프로그래머들이 모여서 게임을 만들기로 결정한다. 처음에는 슈팅 게임을 제작하려고 하다가 비전이 없다고 판단하여 RPG로 방향을 선회, 그렇게 RPG를 제작하던 도중 게임 개발사인 소프트라이의 정식 개발팀으로 편입되어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를 발매한다.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는 당시 게임계를 바꿨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대박을 쳤지만, 정작 그 이익과 영광은 소프트라이가 독차지하였다. 손노리팀은 개발 중 과로로 인해 팀원 중 2명을 제외한 모든 팀원이 병에 걸렸고, 팀장이었던 이원술 조차도 이 때 걸린 폐렴으로 군면제를 받았을 정도였는데도 소프트라이는 불과 100만원 가량의 보너스만 주었다. (개인당인지 팀 전체인지는 불명)뿐만 아니라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의 툴을 이용하여 포인세티아라는 괴작을 만드는 만행을 저지른다.

이런 영향때문인지는 몰라도 손노리팀은 소프트라이를 떠나 다크사이드 스토리 개발때는 데니암(현 어뮤즈월드)에서, 그리고 포가튼 사가 개발때는 판타그램에 소속되어 게임을 개발하였다. 다크사이드 스토리는 평은 좋았으나 불법복제 여파(베타테스터 버젼이 퍼졌다)도 컸기에 흥행에서 참패하고 만다.

2.2. 독립법인 시절(1998~2001)

이런 셋방살이를 청산한 건 1998년 무렵인데, 이은석의 화이트데이 개발사에 따르면 13명 정도로 매우 작은 규모로 시작하였다. 과거와는 달리 각 개발 팀에 고정된 인력이 2~3명이었고 나머지는 투잡, 쓰리잡을 뛰었다고. 다만 2001년 종합법인 신청 당시 손노리의 자산규모는 55억, 사원은 50명 가량으로[5], 중소기업인 것은 변함이 없으나 적어도 견실히 성장한 벤처기업 수준으로 성장하게 된다. 당시 게임사중에서는 10위 안에 들어가는 규모였다고.

여튼 독립법인 전환 이후에 독립적인 게임 개발, 제작이 가능해지면서 동시에 3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이것이 강철제국, 악튜러스, 화이트데이이다. 이 3개 게임은 상업적으로 큰 흥행을 하지 못했지만 다양한 팬층을 확보하는 초석이 되었다. 특히 강철제국은 대만, 악튜러스는 일본에 수출되며 대외적인 판로도 확보하였다.

특히 이 당시 손노리는 일본에 지사(Sonnori Japan)을 두어 악튜러스, 화이트데이드림캐스트용 버전도 개발하고 있었으나 드림캐스트가 몰락하면서 개발 및 발매가 취소된 것으로 보인다. ###

하지만 개발자들이 주축이 된 손노리는 경영까지 맡기 어려웠고, 특히나 이 3개 게임로 인지도가 높아진 덕에 여러 기업과의 협약, 투자 체결로 인해 중소기업에 지나지 않았던 손노리가 이런 요소까지 동시에 책임질 수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굳이 멀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 시기 악튜러스화이트데이의 발매가 임박 해 오자 손노리에서는 악튜러스보다는 화이트데이의 개발에 집중하게 되고, 그만큼 악튜러스의 담당파트의 개발이 지지부진해졌다는 증언이 있다.[6]

결국 손노리는 게임개발에 집중하기 위해 2001년 로커스홀딩스(현 넷마블)에 피합병, 로커스홀딩스 손노리게임개발본부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다.

2.3. 로커스홀딩스, 플래너스 엔터테인먼트 시기(2001~2007)

2001년 로커스홀딩스에 자발적으로 합병된 후에는 온라인 게임으로 개발을 선회하여, 트릭스터, 팡야, 카툰레이서, 몬스터 꾸루꾸루등을 개발한다. 화이트데이와 악튜러스의 드림캐스트 이식, SCEK의 8억 투자로 PS2용 소울리스를 통해 콘솔게임 개발을 하려 시도했지만 정작 시작도 전에 기술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으로 판단한 투자사의 투자 철회로 고스란히 비용을 돌려주고 소울리스는 무산되었다.

하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암울한 상황은 아니었으며, 손노리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팀원을 보유하던 시기였다.

구체적인 인원은 파악되지 않지만 플래너스엔터테이먼트로 이동할 시점에 엔트리브가 50명여명의 규모로 분사하였다고 하는데, 만약 양 회사가 비슷한 규모로 분사를 했다 감안한다면 로커스홀딩스 시절에는 약 100명 가량이 소속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는 법인 당시보다 약 2배가 증원된 규모.

그러다 손노리 게임 개발본부가 플래너스 엔터테이먼트로 소속을 옮기게 되면서 엔트리브와 분사하게 되는데, 손노리는 카툰레이서, 몬스터 꾸루꾸루를 가져가고 엔트리브는 팡야트릭스터를 가져갔다. 이후 엔트리브는 팡야와 트릭스터로 간신히 먹고 살다 프야매앨리샤가 대박을 치면서 일약 중견 게임제작사가 되고, 엔씨소프트가 1000억이라는 거금을 주고 인수하게 된다.

반면 손노리의 추락은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손노리가 가져갔던 카툰레이서와 몬스터 꾸루꾸루는 얼마 안가 서비스를 종료하게 되었고 그라비티와 함께 야심차게 준비했던 스타이리아는 부분 유료화조차 하지 못한 채 정말 대차게 말아먹었다. 손노리의 최대 흑역사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당시의 홈페이지는 망한 홈페이지가 아닌 정상적인 게임회사 홈페이지. 그래도 다른 게임회사 홈페이지와는 다르게 커뮤니티 게시판 같은 것이 존재하여 일부 팬들은 여기서 활동했다. 과거에 알바가 연재했던 게임회사 내부 이야기를 NDS용 게임개발 기획자 중 한 명이 1달에 한 번 꼴로 그렸으나 개발이 바빠졌는지 업데이트가 안되더니, 결국 퇴사하고 다른 게임사로 이직했다는 씁쓸한 이야기가 있다.

2.4. 구름인터렉티브 시기(2007~2012)

이후에는 구름 엔터테인먼트로 자리를 옮겨 어스토니시아 온라인의 개발을 천명했다. 그 과정에서 자사의 포터블 게임 제작팀인 아이언노스를 분사해야 했는데, 아이언노스의 분사 이후에도 포터블게임을 포기할 수 없었는지 위기일발!! 대우주연합 공식지정 천연기념생명체 제 522-8934호 지구인 구조 대작전!! (약칭 '지구대') 라는 NDS중 가장 긴 이름이 될뻔한 괴악한 센스 [7] 등으로 게임을 개발하고 있었으나 이내 결국 빛을 보지 못했다. [8]

하지만 3차 CBT까지 마친 상황이던 어스토니시아 온라인이 구름엔터테인먼트의 경영적자와 더불어 경영진의 비리 같은 대형 사건이 터지면서 3차 CBT를 끝으로 개발 중단 위기에 처하게 된다.

또한 나중에 밝혀지는 이야기지만 당시 인력 중 일부가 퇴사하여 가치온 소프트라는 회사를 만들고, 화이트데이의 개발을 시작하였다. 2014년에 손노리가 작업에 동참하게 되고, 2015년에 화이트데이의 리메이크판을 공동으로 출시한다.

2.5. 턴온게임즈로의 변신, 그리고 '손노리 팬덤'의 소멸(2012~2014)

결국 매각 관련 기사가 뜨는 등의 우여곡절 끝에, 구름 인터렉티브에서 전 넷마블 사장이었던 방준혁이 운영하는 인디스앤에 인수되었다. 인수할 기업이 있을까 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있었지만, 적어도 망해가는 구름 인터렉티브보다는 나을 테니 팬들은 대체로 반기는 편이다.

이후 구체적인 행보를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우나, 여러 자료를 종합해 보면 하나로드림에서 CJ게임즈의 개발팀으로 재편되었다가, 2012년 6월에 턴온게임즈라는 사명으로 변경하고 CJ게임즈에서 분리출자, CJ의 100% 자회사 형태로 재편되었다. 그리고 어스토니시아 온라인을 포함한 기존 PC게임 개발 대신 모바일게임 개발을 시작하였고, 그 결과물로 다함께 차차차를 출시하게 된다. 또한 스톤에이지의 운영도 담당하게 되었다.

표절건으로 손노리 팬덤은 물론 손노리 게임을 했던 올드유저나 손노리 게임을 하지않은 어린유저들도 모두 손노리를 비판했고 일반유저나 손노리 팬덤에게도 손노리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나빠졌다.

이후

2013년 9월 1일까지 "어스토니시아 온라인 애니메이터 및 이펙터 모집합니다." 라는 내용으로 채용 공고가 올라왔다.# 내부적으로 드랍된 분위기 였으나 턴온게임즈가 적자를 내면서 모바일 게임 사업과 동시에 온라인 게임 사업도 다시 같이 진행한다는 방향으로 흐른 모양이다. 아직까지 개발하고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두어야 할 것 같다.

2013년 하반기 들어서 어스토니시아 온라인의 개발이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된 듯하며, 모바일게임으로 전환한 어스토니시아VS가 출시 되었으나 흥행에 실패하였다.

게다가 손노리 입장에서도 팬들을 최대한 끌고 가는 입장을 유보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는데, 그것은 팬층을 노리고 만들었던 수 많은 게임보다 팬들을 져버려가면서, 그리고 표절이라 욕먹으며 만들었던 게임의 수입이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특히나 회사 외적으로는 과거와는 달리 CJ는 모바일로 수익을 낸 턴온게임즈에게 당연히 모바일로 그만큼의 수익을 강요 할 것이며, 회사 내적으로는 원조 손노리의 멤버는 거의 없는 상황에서 구 손노리 팬들이 그토록 바라던 구작 리메이크나 후속작을 내 놓겠다는 여론이 형성 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 실제로 2012년 어스토니시아 온라인 카페의 마지막 채팅에서 이원술 팀장의 입에서 어스토니시아 온라인은 사실상 개발이 취소되었고, 손노리의 구작 리메이크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내용이 나왔다. 그나마 화이트데이에 대해서만 리메이크 의지를 표명했었으며, 당시에는 가능성을 희박하게 봤었으나 다행히도 화이트데이의 리메이크판이 결국 발매되었다. 하지만 정작 기뻐해야 할 화이트데이 카페는 예상만큼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

표절작품에 의한 이탈과 결속력 저하, 거기다가 노리노리어스토니시아 온라인 팬카페의 침체가 가속화 되어가고 있으며 악튜러스 팬카페측은 이미 구작 리메이크 보다 기존 게임에 대한 연구 및 김학규 사장측 게임으로 콘텐츠를 강화하고 있고 화이트데이 팬카페측은 비슷한 종류의 동인 게임인 스케어 같은 대체제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즉, 구 손노리 체제를 받치고 있던 팬카페들과 손노리와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상황. 물론 개개인 단위의 동원력은 아직도 꽤나 건재한 편이나, 적어도 과거 손노리팬 카페 역할을 했던 카페들은 예전만큼의 호응을 하고 있지 않다.

2.6. 로이비쥬얼 시기(2014~2016)

2014년 3월 15일 손노리 사이트에 접속한 결과 화이트데이의 스마트폰 이식버전 소개영상이 나왔었다. 하지만 언론에 공개된 직후 메인 화면을 다시 원상복구 하였다. 그리고 화이트데이라는 시기에 맞춰서 SNL 게임즈에서 화이트데이를 패러디한 'GTA 화이트데이'편을 방영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4년 7월 29일, 이원술 대표가 CJ게임즈에 사표를 제출하고 퇴사했다.###

표면적으로는 CJ 계열의 게임제작 자회사들의 통폐합으로 인한 체제재편의 사이에 새로운 도전을 위해 퇴사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작품 개발과 관련하여 CJ측과 갈등이 있었거나, 혹은 어스토니시아VS의 실패와 더불어 다함께 차차차의 표절 논란에 부담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여기에서 CJ가 손노리를 통폐합 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단지 임직원의 이직 그리고 손노리의 IP를 갖게되었고, 법인 손노리는 계속 유지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9]

이때 퇴사시에 화이트데이IP만 갖고 나온 것으로 보인다.[10][11]

참고로 회사명을 로이게임즈로 쓰던 시절도 법인명은 손노리를 그대로 쓰고 있었다. 이는 법인 등기부를 보면 2014년 7월로 되어있는 것에서 확인 가능하다. 즉 로이게임즈라는 법인이 따로 존재한 적은 없고 그냥 2014년7월~2017년 7월까지 사용된 상호명이다. 이 사실은 사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는데 네이버의 로이게임즈의 검색결과가 손노리로 나오는 것에 의문을 품은 화이트데이 팬카페의 회원이 네이버에 문의를 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그 와중에 2014년 8월 손노리 홈페이지가 화이트데이의 로고로 바뀌었다. 3월달에 출시 이야기가 나왔던 모바일 버전의 티저인 것으로 보인다. 그랬는데 어느 날부터 홈페이지 접속이 안 되고 있다.

2015년 11월 19일, 오랜 기다림 끝에 로이게임즈에서 모바일로 화이트데이: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 리메이크가 발매되었다. 표절논란은 가라앉지 않았으나 한 때 한국 상위급의 PC 패키지 게임 회사의 부활과 콘솔 진출 선언을 통해 팬들에게 응원을 받고 있다. 화이트데이: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2017) 항목 참조.

2016년 1월에는 이끼의 작가 윤태호와 손을 잡고 '로이코미' 를 설립한다. 미생을 기반으로 한 모바일용 게임을 만든다고. 다만 2017년 7월 기준으로 후속 보도가 없는 상황이다.

2.7. 카카오게임즈 시기(2016~)

2016년 NZIN(현 카카오게임즈)의 전략투자를 통해 로이게임즈는 카카오게임즈의 자회사가 된다. 덕분에 회사명만 보면 로이비주얼의 자회사인데 소속은 카카오게임즈인 애매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2017년 7월 14일 손노리 창립 25주년에 맞춰 회사명을 다시 손노리로 바꾸게 된다.

2018년 2월 카카오게임즈의 2018년 사업전략 발표 행사를 통해 VR 테마파크등 오프라인 매장을 타겟으로 한 VR 게임, 화이트데이: 담력시험이 처음 소개되었고 4월에는 해당게임의 운영이 시작되었다.

3. 여담

  • 로커스 홀딩스 게임사업부 당시의 손노리 홈페이지는 괴악한 센스가 엿보였는데, 당시의 '자칭 엘리트 알바 (이 알바는 나중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가 홈페이지에 올린 일기를 통해 회사 정문에 손노리 '게이'사업부라고 적혀 있는, 즉 게임의 '임'자에서 ㅁ이 떨어진 사진을 공개하여 사람들을 폭소하게 만들었다.

손노 리게이 사업보부

손노리 게이 사업보부

당시 내용을 보면 콜라커피를 제조하여 개발자들이 마신 적이 있다고. 맛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맥스 페인이 화제였던 당시 다음과 같은 사진을 올리고 맥스 폐인(...)이라는 이름을 붙여 정신나간 센스를 만방에 알린 일도 있었다. 깨알같은 사우스파크 목걸이
이 양반은 팡야로 유명한 엔트리브의 서관희 이사.
  • 예전에 모 잡지에서 국내 게임개발자들에게 자신에 대해서나 회사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던 적이 있는데, 거기서 가장 존경하는 (국내) 게임개발자에 대한 질문에서 1위를 한 사람이 손노리의 이원술 대표였다. 시간이 지나 손노리가 쇠락하고 신규 게임 개발자들이 많이 생겼으니 결과가 달리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게임 개발자 중에서의 명성은 아직도 상당한 편이다.
  • 플래너스엔터테인먼트 시절에는 소프트맥스와 손잡고 '노리맥스'라는 하는 업무제휴를 하기 시작하면서 공동으로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손노리와 소프트맥스 팬 모두 대작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으나 정작 나온 건 '노리맥스 영웅전'이라고 하는 모바일 게임 하나 뿐이었다. 이후 손노리가 휘청이기 시작하고, 소프트맥스도 체제개편이 이뤄지면서 소리소문없이 제휴가 끝나버렸다.
  • 여러 사정 등으로 패키지의 로망에 주었던 20주년 파티 초대장은 결국 사용할 일이 없어졌다...

4. 평가 및 비판

몇몇 게임들의 표절 논란이나 버그문제등의 개선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비판 받아야 할 대상이고, 그것이 꾸준하게 발생한 점에 대해서는 개발사의 역량 부족이 아닌지 돌아봐야 할 부분이다. 게다가 여론에 대한 미숙한 대응은 오점을 줄여야 할 시점에 오히려 문제를 하나 더 붙인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향후 부정적 요소의 극복에 더욱 어려움을 지니게 되었다.

현재 손노리의 불안정한 체제는, 1년에 한 편 가량의 게임을 출시하는 수준에 그쳤던 상황에서 새로운 것에 집착하여[12] 안정적인 팬층을 확보할 수 있는 시리즈물을 만들지 않은 점,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시도가, 위기때는 계속 이어지지 않고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와 화이트데이에 안일하게 기대었다는 점[13]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즉, 회사규모에 비해 여러가지를 중구난방으로 다루면서도 위기의 상황에서는 전작의 리메이크에만 의존하다보니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 전개된 것.

패키지 게임에 집착해서 망했다는 의견이 있으나, 손노리의 마지막 패키지 게임은 2002년에 나왔던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R이었고 패키지의 로망의 경우는 자사 게임의 합본 형태였기 때문에 이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패키지 게임 시장에 손을 뗀 시기는 적기였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온라인 게임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확실히 시기를 놓쳤고, 결국 제대로 진입하지도 못한 채 쓰러졌다.

손노리는 4년을 제외한 나머지 기간이 모두 타 회사의 개발팀, 게임개발본부 형식으로 편성되어 있었고 그마저도 손노리가 독립법인으로 있었던 4년이 최고의 리즈상황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회사의 경영 문제, 그로 인한 투자자들의 손해 문제까지 손노리에게 떠넘기는 건 지나친 비약이다.

콘솔시장 진출에 실패한 것 역시 손노리의 발목을 잡았는데, 화이트데이나 악튜러스의 드림캐스트 이식 무산[14],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의 외전격인 '소울리스'의 PS2 개발 무산이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비슷한 시기에 소프트맥스가 마그나카르타 - 진홍의 성흔으로 흥행한 걸 본다면, 콘솔 게임에 강점을 가질 수 있었던 손노리의 추락은 거기에서부터 본격화되었을지도 모른다. 뒤늦게 휴대용 콘솔 게임 개발에 뛰어들었으나 제대로 터지지 못하게 되고[15], 포터블 게임팀이었던 아이언노스가 엔트리브의 산하에 들어가면서 콘솔 개발 기술마저 상실하게 된다.

또한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부터 시작된 한국 게임의 고질적인 버그문제의 선구주자로[16], 미완성 혹은 버그투성이 게임 발매 → 이후 패치로 메우기의 관행이 고착화되는 데 힘쓴 공신 중 한 곳이기도 하다.

손노리는 전통적으로 참신한 시스템, 높은 퀄리티보다는 순수 국산 개발 게임, 혹은 열악한 개발환경을 감안해달라는 읍소형 마케팅과 자잘한 시대성 개그, 간간한 센스로 연명했다는 평가도 있으나 이 부분은 당시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게임제작사의 공통점이었다. 소프트맥스도 게임 홍보에 '순수국산게임' 이라는 문구를 집어 넣었으며, 손노리와 비슷한 시기를 풍미했던 가람과 바람, 오렌지소프트 등등 모두 시대성 개그가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뭐, 그래서 망한 거라고도 볼 수 있다.(…)

다만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개발 당시 게임개발하다 병에 걸려서 군대를 면제받을 정도로 개발에 집중했고, 악튜러스 개발 당시에도 공간이 없어 20명짜리 사무실에 50명을 우겨넣어 만들었다는 점 등을 본다면 실제로 열악헀던 개발환경을 단순히 읍소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리고 이 평가는 악튜러스와 화이트데이(2001년판)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 두 게임은 시스템적으로나 퀄리티로나 당시 '한국 패키지 게임 기준'으로 한 획을 그은 훌륭한 게임이었다.

한편으론 그들이 만든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의 히트로 인해 ‘국산 게임도 이제 세계를 노려볼 수 있다.’라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심어주는 데 크게 기여하였으며[17] 이후 그들이 출시한 다크사이드 스토리, 포가튼 사가, 악튜러스, 화이트데이는 당시 게임계의 가장 큰 화두가 되어 상당한 판매량 혹은 상당한 이슈를 남겼다. 또한, 비록 회사 규모에 비해 여러가지를 시도하여 어려움에 빠지긴 했지만 여러 가지 장르의 게임을 만들고, 타사와의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국내 게임계에서 이례적인 합작게임[18]을 출시하였으며, 중국, 일본, 대만 등지에 게임을 수출하는 등등 초창기 한국 게임계의 지평을 넓혔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받아야 할 부분.

종합적으로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우리나라 게임 개발사(史)에 한 획을 그었다는데는 이견이 없는 회사다.

5. 분사된 회사 및 관련 회사

  • 엔트리브 (2003년, 로커스홀딩스에서 플래너스엔터테인먼트로 이적 시 분사, 현재는 NC소프트 산하 자회사)
  • 아이언노스 (2007년, 플래너스엔터테인먼트에서 구름 소속으로 이적할 당시 분사. 사장인 박찬규 등 일부 인력은 2014년 어스토니시아VS 개발 당시 턴온게임즈에 합류하였다가, 이원술의 턴온게임즈 퇴사 이후 로이비주얼 산하 로이게임즈에 있는 것으로 추정)
  • 가치온 소프트 (2008년, 손노리에서 근무하던 직원 일부가 독립하여 설립, 화이트데이 관련 게임을 개발하다가 2014년 로이게임즈와 공동으로 화이트데이: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2015)을 출시.)
  • 턴온게임즈 (2014년, 이원술 사단의 퇴사 이후에도 별도의 회사로 운영, 이후 CJ의 게임 관련 자회사들의 합병으로 CJ 게임즈에 합병)

6. 손노리(이원술 사단)가 개발/판매/운영/서비스한 게임

  • 기타
    • 루나 시리즈 - 루나 실버스타 스토리 : 엔딩 크레딧에 '감수'했다고 되어 있다.
    • 강철제국 온라인, WAP버전
    • 팡야 : 약 70% 정도 개발된 상황에서 엔트리브와 분사되어 권리가 이관되었다.
    • 포가튼 사가 2: 게임 개발은 위자드소프트에서 했으나 감수와 일러스트레이터 제공 등을 담당했다.
    • 스톤에이지: 턴온게임즈 시절, 넷마블로부터 서비스를 위탁받아 운영했었다. 물론 이원술이 턴온게임즈를 퇴사하고, 턴온게임즈가 합병되면서 현재는 손노리와는 전혀 상관 없는 게임.
    • 화이트데이: 담력시험: VR 테마파크등 오프라인 매장을 타겟으로 하였고, HTC VIVE를 사용하는 VR 전용 게임이다.

7. 관련 문서


  1. [1] 1992년부터 1994년 소프트라이에 흡수되기 전과 CJ로부터 독립한 2014년 8월 이후도 언급되고 있으나 1992~1994년 회사가 아니라 일개 아마추어 팀으로 운영되었었고, 현재의 로이게임즈로이비쥬얼의 자회사 혹은 관련 회사로서 100% 독립적인 개발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2. [2] 턴온게임즈 전자공시 기록에 의하면 5월 31일이 기준이지만, 편리성을 위해 6월을 기준으로함.
  3. [3] 온라인 게임이 주를 이루는 현재는 발매 후 패치로 때우는 방식으로 계승되었다.
  4. [4] 물론 변명할 건 많은데 이 항목만 봐도 셋방살이하던 이 시작은 제대로 만들어 발매하기까지 어려운 게 많았지만....
  5. [5] 현재 일본의 팔콤과 비슷한 규모다.
  6. [6] 이 부분에 있어서 악튜러스와 화이트데이 팬들의 증언은 엇갈린다. 즉, 악튜러스팬들은 화이트데이 때문에, 화이트데이 팬들은 악튜러스 때문에 다소 부실한 작품이 만들어졌다고 한 것. 하지만 화이트데이는 손노리 자체 제작이었을 뿐더러 표현하고자 했던 부분을 대체적으로 표현하였으나, 악튜러스는 제작진조차 '미완성 게임'이라는 평을 할 정도로 급하게 마무리 한 게임을 출시하게 된다. 물론 악튜러스의 부실함은 무조건 20세기에 발매해야 한다는 강박에 의한 영향이 컸다.
  7. [7] 정학히는 두뇌 트레이닝이 몇 글자 더 많다.
  8. [8] 2011년 정모에서 한 회원이 이 게임에 대해서 언급하자 이원술 사장이 '그러면 가져와 볼까?' 라고 했던 것으로 보아, 아마 상당부분 완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9. [9] 사실 위에 플레너스가 언급했는데 플레너스가 바로 과거 넷마블을 서비스하던 CJ인터넷이다. 게다기 2003년에 법인 손노리는 CJ인터넷(플레너스)에서 엔트리브와 사이좋게 분할되었고 지금까지 계속 있었던것.
  10. [10] 2016년 8월의 이원술 대표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화데의 방탈출카페 체험과 더불어 여러 질문이 나왔는데, 이때 IP 질문에 이원술 대표는 '그 많은 게임들은 IP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모두 넷마블이 갖고 있다. 나는 다만 '화이트데이'만 갖고 있다"는 대답' 하였다고 한다.
  11. [11] 이 발언을 볼 때 어스토니시아 등 다른 게임의 소유권은 턴온 게임즈를 거쳐 CJ게임즈로 흡수된 것으로 보인다. 즉 화이트 데이를 제외한 다른 게임의 소유권은 CJ게임즈와 엔트리브의 소유인 것.
  12. [12] 다만 각 작품은 표절 문제가 있었기에, 독창적이라기보단 RPG나 슈팅 위주였던 한국 패키지 게임 판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측면으로 바라보면 되겠다.
  13. [13] 후속작을 만들지 않고 전작을 우려먹었다는 의미.어스토니시아 스토리의 경우 PC(도스/리메이크 윈도우) 뿐 아니라 피처폰, GP32, PSP용으로 리메이크 되었고, 화이트데이는 PC판(2001/2017)과 피처폰, 스마트폰, PS4 용으로 리메이크/리마스터 되었다.
  14. [14] 실제로 사내에 드림캐스트 이식을 전담하는 직원이 있었을 정도였다.
  15. [15] 일단 흥행 가능성이 있었을지도 모를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2는 마이너한 기종으로 발매하였으며, 반대로 메이저한 기종이라 할 수 있는 PSP로는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의 리메이크판만 발매하였다. 물론 뒤늦게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2도 PSP로 발매 되긴 했지만 손노리 시기에 발매 된 것은 아니라서...
  16. [16] 사실 이 부분은 당시 게임계 전반의 문제였다. 이스2 스페셜의 경우는 아예 마지막 던전들을 다 만들지 않은 상태에서 발매한 뒤 이를 패치로 메웠고, 2003년에 나온 천랑열전은 겨울방학을 노려야 한다는 이유로 개발 도중에 발매했다는 루머가 정설로 통하고 있다.
  17. [17] 한국 게임의 역사 발췌 링크
  18. [18] 악튜러스, 노리맥스 영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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