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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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미래당 대표}}}

초대
박주선
유승민

비대위
김동철

2대
손학규

국민의당 대표
바른정당 대표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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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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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border:0px solid; margin:-12px; margin-top:-2px; margin-bottom:0px"

1대
구자옥

2대
이해익

3대
김영기

4대
이익흥

5대
최헌길

6대
최문경

7대
윤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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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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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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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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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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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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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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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대
김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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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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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대
손학규

32-3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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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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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대
이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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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오충일

2대
손학규

열린우리당 의장 통합민주당(2008년) 대표



1대
정세균

비대위
박지원

2대
손학규

통합민주당(2008년) 대표 민주통합당 대표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기 광명시)

제14대
윤항렬[1]

제14대
손학규

분리
남궁진[A]
손학규[B]

통합
남궁진[A]
조세형[B]

제16대
손학규
[4]

제16대
전재희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기 광명시 을)

분리
손학규[5]

제15대
손학규
[6]

제15대
조세형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기 성남시 분당구 을)

제18대
임태희[7]

제18대
손학규

제19대
전하진

}}}

제31대 경기도지사

제2대 바른미래당 대표
손학규
孫鶴圭 | Sohn Hak Kyu[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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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

1947년 11월 22일(72세)

출생지

미군정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시흥리
(현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

본관

밀양 손씨

거주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구기동

최종 학력

옥스퍼드 대학교 정치학 박사

병역

육군 병장 만기전역

신체

170~1cm, 67.9kg, AB형

가족

배우자 이윤영, 슬하 2녀

종교

개신교(한국기독교장로회)

의원 선수

4

의원 대수

14, 15, 16, 18

소속 정당

[[바른미래당|{{{#!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0B4B4; font-size: .8em"

바른미래당}}}]]

현직

바른미래당 대표

경력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장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제14대 국회의원(경기 광명)
제15대 국회의원(경기 광명 을)
보건복지부 장관
제16대 국회의원(경기 광명)
제31대 경기도지사
대통합민주신당 대표
통합민주당 대표
민주당 대표
제18대 국회의원(경기 성남 분당 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국민의당 상임고문
국민주권회의 의장
바른미래당 대표

외부링크

공식 홈페이지팬카페 학규마을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1. 개요
4. 손학규 징크스
4.1.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직전 정계 복귀
4.3. 바른미래당 대표 출마 선언
4.4. 또 다른 징크스
5. 평가
6. 논란
6.1. 20대 총선 더불어민주당 선거 지원요청 거부
6.2. 당 운영 관련 논란
6.3. 당 대표 사퇴 발언 번복 논란
6.4. 기타
7. 선거 이력
8. 소속 정당
9. 저서
10. 여담
11. 틀 둘러보기

1. 개요

△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한국정치인. 전 학생운동가, 민주운동가, 교수. 현재는 바른미래당의 당 대표.

제33대 보건복지부 장관과 제31대 경기도 도지사를 지냈고, 과거 민주당 대표를 역임하기도 한 거물급 정치인이다. 사실상 대통령, 국무총리 빼고 어지간한 자리는 다 해 봤다. YS키즈의 일원 중 한 명.(이명박, 이재오 등의 인물들도 이에 포함된다.)[9]

17대 대선, 18대 대선 모두 민주당계 정당의 유력 후보였으나 두 차례 모두 당내 경선 패배(2위)로 후보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19대 대선에서 당적을 변경하여 대선후보 경선에 나갔지만 탈락하며 대선 주요 후보로 거론된 11년, 3회의 대선 동안 한번도 후보도 되지 못한 정치가가 되었다. 역대 없는 기록(...) 1997년 15대 대선 이래 야당 인생만 20년에 또 5년을 추가하게 되었다.[10]

2014년 재보궐선거에서 낙선한 이후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군 만덕산에서 은둔하며 지냈으나, 꾸준히 복귀설이 흘러나왔다. 덕분에 붙여진 별명이 '만덕산'이다. 이전까지는 만덕산으로도 들어올 수 있었으나 지금은 분리가 되었다.

2016년 4월 20대 총선 직전 더불어민주당에서 복귀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이를 거부했고 결국 복귀 타이밍을 놓쳤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패배하면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문재인안철수가 사퇴하게 될테니 그 빈 공간을 자신이 채우면 된다는 작전이었던 것 같으나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행보가 꼬였다..

갈짓자 행보로 비판받기는 해도, 인성이나 능력면에서는 반대편 진영에서도 인정할 정도다. 거꾸로 말하면 큰 인성 결함이나 논란이 될 사건이 없는데도 어느 순간부터 정치인으로서 매력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다.

△ 손학규

2. 일생

항목이 길어져 분리되었다. 해당 항목 참조.

3. 손학규계

민주당(2008년) 시절에는 손학규계를 이끄는 당내 대주주 중 한 사람이었다. 만덕산으로 은둔한 이후에도 손학규계는 건재하여, 20대 총선 직후까지만 해도 언론에서는 손학규계를 14명[11] 정도로 꼽았다.

하지만 이후의 엇박자로 손학규를 따라 실제로 탈당한 현역 정치인은 이찬열 의원과 박우섭 인천 남구청장 단 두 명 뿐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당내 결속을 위해 손학규계를 대폭 끌어안았고#,결국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문재인의 승리로 끝나면서 사실상 손학규계는 와해된 상황이다.

4. 손학규 징크스

타이밍의 마술사, 손학규

허핑턴 포스트###

정치 행보를 보일 때 심사숙고를 하는 편이다. 심사숙고 자체는 문제가 안 되는데, 결정을 내리는 시점을 전후해서, 더 큰 일이 터져서 행보 자체가 묻혀버리는 경우가 많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하도 타이밍이 절묘한 경우가 잦다 보니 타이밍의 마술사라는 반어적 별명이 붙었고 여러 언론에서 언급되기도 했다. # ## ### 아예 '손학규가 움직이면 나라에 큰일이 터진다'는 농담까지 나올 정도다.

다음은 손학규 징크스의 구체적 사례들을 나열한 것이다.

물론 징크스라는 것이 대개 그렇듯 몇몇 경우는 보는 관점에 따라 부적절한 사례를 억지로 끼워맞추는 확증편향성이 있으니 그점을 감안해서 볼 필요가 있다.

4.1.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직전 정계 복귀

제20대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하면서 정계 복귀 타이밍은 제대로 꼬여버렸고, 결국 2016년 10월 20일에 만덕산이 내려가라고 한다며 개헌론을 꺼내들고 정계 복귀를 선언하였다.

그런데 그 직후인 10월 24일에 최순실 태블릿 보도가 터지면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 때부터 손학규의 별명은 만덕산이 되었으며, '만덕산'이라는 명사는 '무슨 결정을 하면 바로 큰일이 터져 아웃 오브 안중이 되어버리는 상황'을 말하는 정치적 용어가 되었다.

4.2. 국민의당 입당

탄핵 정국에서 국민의당의 호남계 의원들은 안철수에 대항할 만한 당내 대선 주자로, 안철수계 의원들은 경선 흥행을 위한 카드로서 손학규를 1순위 영입 대상으로 두고 있었다. 손학규는 2017년 2월 17일 국민의당에 합류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에 의해 구속, 수감되었다. 게다가 며칠 전부터 북한에서 미사일을 날려보내고 김정남이 죽어버리는 등 북한발 뉴스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여론은 손학규에게까지 관심을 줄 여유가 없었다.

4.3. 바른미래당 대표 출마 선언

2018년 8월 8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바른미래당의 당대표 출마 선언을 했다. 치욕과 수모를 감내하고서라도 당을 위해 헌신하며 양 극단의 정치를 끝내겠다는 요지의 연설을 남겼다. 하지만 세간의 관심은 이번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에 쏠려있는듯. 실제로 JTBC는 아예 대놓고 손학규 징크스를 운운하며 이번엔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기도 했다.

4.4. 또 다른 징크스

민주계 정당으로 옮긴 후 대선 후보 경선에 3회 참여했는데, 자신은 경선에서 탈락하고 경선에서 손학규를 이긴 후보는 본선에서 낙선하는 징크스가 있다.

5. 평가

"자신만의 브랜드를 보여주기에 부족했다”

2007년 1월 10일 경향신문 "손학규 인터뷰 평가"#

경력이나 능력은 출중한데, 시류에 어둡고 정치적 감각이 떨어진다. 총리나 장관 같은 임명직 관료에 맞는 사람이 선출직을 노리다 보니 생기는 비극(?)의 주인공. 즉, '뽑히면 잘 할 거 같긴 한데, 뽑힐 일이 없으니 의미가 없다'는 전형적인 예시라 할 수 있다.

사실 민주자유당에서 정치를 시작한 만큼 보수층으로의 확장성도 있고, 한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경기도도지사를 역임했다는 점에서 수도권에서의 득표력도 기대해볼 만하며, 도지사장관 재직 경험을 통해 행정 능력까지 입증했다는 점에서 '저평가 우량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2007년에는 한나라당에서 이명박과 박근혜 양강에 밀리고, 진영을 옮겨 대통합민주신당 창당에 참여하면서 유력 주자로 부상했으나 황당하게도 친노계도 아닌 조직표를 끌어모은 정동영에게 밀려버렸다. 2012년의 경우는 더욱 허망한데, 2010년~2011년 민주당 대표를 지내면서 2011년 4월 재보궐 선거에서 '험지' 분당을 당선에도 성공했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재부상한 친노계에게 장외 주도권을 내준 결과,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참신한 슬로건을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민주통합당 경선에서 문재인에게 큰 차이로 패하고 만다. 마지막 시도에서는 2016년 국민의당 창당 과정 및 20대 총선에서 애매한 태도로 일관한 결과, 대권주자로서의 존재감이 실종되기에 이르렀다.

썰전에서 이철희 소장이 말하기로는, 손학규는 대통령감이지만 정치에 무른 편이라고 한다. 이유는 너무 신사라서 즉 정치 투쟁에 밀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판에 20년 있었던 사람에게 신사라서 투쟁에 밀린다는 말은 결국 칭찬이 아니다.[13] 제대로 말하면 당내의 여론을 주도하는 코어 지지층에 인기가 부족한 스타일이다. 이제 70을 훌쩍 넘은 고령이라는 점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보수층과 수도권에서 먹히는 강점이 있다는 말이 무색하게 2014년 7.30 재보궐 선거새누리당의 신인 김용남 후보에게 깨졌다는 점[14]에서 실제 확장성에 의문이 있기는 하다.

잦은 수준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두 차례 양대 정당을 떠났기 때문에, 신뢰를 얻지 못한 것도 문제였다. 노무현 대통령을 "경제를 포기한 대통령"(일명 경포대 발언)으로 비판하고는 정작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민주신당 창당에 참여하면서 민주당 최대지분의 친노계를 자극했다는 것이다.[15] 어쩔 수 없이 건너온 철새정치인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명박 정권 교체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가 점점 오르고, 사망 이후로는 거의 절정으로 오르면서 "노 전 대통령께 결례를 범했다"고 사과를 했지만, 근 8년 간의 꾸준한 행보에도 국민의 당으로 이적할 때까지 친노계의 불신은 사라지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명박도 권좌에서 내려온 뒤에, "그 사람도 참.. 한나라당에 남았으면 대권후보까지 되었을 건데.. 괜히 옮겨가지고.."라는 말까지 했다.[16] 다만 한나라당에서 나올 당시의 손학규는 이명박의 친이계와 박근혜로 대표되는 TK보수파 양쪽 모두에게 적대당하며 한나라당 내에서 정치적으로 끝장난 상태였다. 일례로 이명박은 손학규의 탈당에 대해 "당에 남더라도 시베리아가 기다리고 있을 것"라고 냉소했을 정도.# 그러므로 훗날 이명박이 한 말은 "나한테 숙이지, 왜 탈당했느냐."' 정도의 조롱으로도 볼 수 있다.[17][18]

능력이나 청렴성에서는 비판을 받지 않는다. 친문 지지자들 일각에서조차도 그가 박쥐처럼 왔다갔다 하지만 않았어도 문재인 정부 내 요직(총리 등)을 맡았을 거라면서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

6. 논란

6.1. 20대 총선 더불어민주당 선거 지원요청 거부

손학규의 정계 복귀 전략이 완전히 망가진 최대 원인

2014년 7.30 재보선에서 낙선한 뒤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아파트 대신 전남 강진군에 있는 만덕산 모처의 초막에 칩거하고 있던 상황에서 20대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에서 손학규에게 선거 지원 요청을 하였지만 거절하였다.

당시 민주당은 매우 힘든 상황이었는데,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은 과반은 물론 180석, 혹은 단독 개헌 가능 의석인 200석도 달성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반면에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막강한 기세뿐만 아니라, 민주당에서 떨어져나간 국민의당이 민주당의 전통적 텃밭이었던 호남에서 민주당을 밀어내고 선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기 때문에 보통 위기가 아닌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민주 진영 내에서 정치적 거물이었던 손학규의 도움을 받아 조금이나마 선거의 흐름을 바꿔보자 한 것이다. 하지만 손학규는 이러한 민주당의 절실한 요청을 끝내 거절하였다.

선거 지원 요청을 거절한 이유에 대해서는 '자신은 정계 은퇴를 한 사람이기에 유세 지원 등 정치 활동을 하지 않겠다'라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세간의 해석은 다르다. 총선에서 야권이 표의 분산으로 여권에 참패를 하게 되면 야권의 대표 대선 주자들이 정치적 타격을 입어 행보에 차질이 생길테고, 이 틈을 노려 손학규 본인이 위기 속에 구세주처럼 등장하여 사실상 추대에 가까운 형태로 야권의 새로운 유력 대선 주자가 되려고 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20대 총선은 우리나라 정치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한 편의 반전 영화였다. 100석 이상만 얻어도 성공한 것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열악한 상황에서 선거를 치렀던 민주당수도권에서 압승하고 낙동강 벨트에서 크게 선전한 덕분에 123석을 얻어 원내 제1당에 등극하였고 국민의당도 호남을 석권하여 38석을 확보, 제3당의 입지를 다지는 데에 성공한다. 반면 선거를 매우 낙관적으로 바라봤던 집권여당 새누리당은 원내 1당을 민주당에 빼앗기는 수모를 겪는다. 결과적으로 이 총선에 명운을 걸었던 야권 대선주자들의 입지가 더욱 탄탄해지는 결과가 나왔다. 결국 손학규는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꼴이 된 셈이었다.

만약 손학규가 민주당의 도움 요청을 받아들여, 본인의 본거지인 경기도, 그리고 더 나가서 수도권에서 열심히 선거 지원 활동을 했다면 민주당의 수도권 압승에 대한 공의 상당 부분은 손학규가 차지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손학규가 연고가 있거나 정치 활동을 한 적이 있는 수원 5개 지역구와 분당 갑/을을 민주당이 싹쓸이 하는, 상상하기 힘든 결과를 얻었는데 만약 손학규가 이 지역에서 열심히 유세 지원이라도 해줬더라면 이러한 엄청난 성과에 숟가락이라도 올려볼 수 있었을 거라는 말이다.

즉, 손학규가 민주당 비대위가 보낸 지원 요청을 받아들여 문재인처럼 전국 지원 유세를 돈다거나 아니면 본거지인 경기도, 수도권 집중 유세를 했거나 안되면 후보들에게 격려 방문을 했으면, 아니면 적어도 당시 야권 후보들의 후보 단일화를 중재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면 아마 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은 문재인 단독 1강 체제가 아닌, 주류 진영이 지지하는 문재인과 비주류 진영이 지지하는 손학규의 양강 구도로 진행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자신이 소속되어 있었던 정당의 미래에 눈을 감고 개인의 정치적 진로만을 먼저 생각한 그의 판단이 결국 그가 2014년부터 짜온 모든 정계 복귀 계획을 망치고 대권을 향한 그의 길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이 되어버렸다. 자기가 몸담은 정당의 이익과 판세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만을 위한 정치를 하려다 스스로 넘어져 앞길을 망친 셈이니 누굴 원망하겠느냐만은. 다만 본인은 분명히 정계은퇴 상태여서 그랬다고 말했다.

6.2. 당 운영 관련 논란

2018년 하반기 손학규 대표와 김관영 원내대표를 비롯한 바른미래당 지도부는 야3당이 주장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관련한 선거법 개정을 목표로 당시 당대표인 손학규는 이정미 정의당대표와 단식투쟁[19]에까지 돌입해가며 해당 사안에 대하여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더불어민주당은 공수처와 각종 예산안 입법 등을 포함한 선거법 개정안을 수용하면서 법안 처리과정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것으로 결과적으로는 어느정도 성과를 거두며 단식투쟁을 종료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구 바른정당계의 반발에 부딪혔고 이에대한 잡음을 해결하기위해 감행한 당 조직 인사내정 등과 관련한 행위들로 인하여 현재까지도 바른미래당 내의 계파갈등은 손학규를 중심으로 내홍이 격화되고 있다.

더구나 2019년 보궐선거 결과 참패로 당내 분위기를 전환해 볼 수 있는 기회마저 날아가버렸고 그로부터 몇 주 뒤인 4월 18일 현직 원외 지역위원장 20명을 비롯해 전 지역위원장, 정무직 당직자 등 60여 명이 손학규 대표의 사퇴를 요구한 바 있다. 안철수계를 중심으로 목소리가 나왔다. #

김관영 원내대표가 오신환권은희 의원을 사개특위에서 강제로 사보임시키자, 4월 26일 바른미래당의 원외 지역위원장 전체 81명 중 49명은 성명서를 내고 "위선과 독재로 당의 분열에 앞장서고 있는 손학규 대표, 김 원내대표를 보면 분노와 참담함을 금할 길이 없다"며 지도부의 총사퇴를 요구했으며, "안철수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의 공동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

김 원내대표의 사보임으로 인해 당내 최고위원들이 당무를 거부하고 있는 상태에서, 5월 1일 주승용 의원과 문병호[20] 전 의원을 지명직 최고위원 2명을 임명한 것을 두고 절차적으로 당헌 위반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이준석, 권은희, 김수민 최고위원은 "당헌 23조4항에 따르면 지명직 최고위원 임명 때 최고위원회에 협의하도록 돼 있다"며 "손 대표의 주승용·문병호 지명직 최고위원 임명은 당헌 위반으로 원천무효"라고 주장했다. #

설상가상으로, 5월 3일에는 지도부 총사퇴와 안철수·유승민 공동체제 출범을 요구한 정무직 당직자 13명을 무더기로 해임하면서 독재 논란이 더 불거졌다. #

이후 패스트트랙 및 사보임에 반대하였고 손학규 퇴진을 요구한 오신환이 원내대표에 당선되면서, 손 대표의 입지는 축소될 전망이다.

5월 17일에는 지도부 해임을 주장한 당직자 13명에 대한 해임을 취소하면서, # 해당 논란은 약간 사그라들었으나, 대표 사퇴 요구는 계속되고 있다.

5월 20일 정책위의장에는 채이배 의원, 원내대변인에는 최도자[21] 의원, 사무총장에는 임재훈 의원을 지명선임했다. 이에 바른정당계는 "이러한 지명선임은 최고위원들과 합의한 적 없고 통보와 다를 바 없다"고 반발했다. 오신환 원내대표는 "임명권은 당대표의 권한이지만 정책위의장은 원내대표와 호흡하며 국정현안과 정책에 대해 같이 논의하는 자리인데 자신과 협의도 없이 채이배 의원을 임명 강행하는 것은 안된다" 하면서 "당을 민주적으로 운영하시라"며 최고위원 회의에서 손학규 대표를 향해 비판했다.

이번 인선임명이 합의를 통해 이루어진 것인지, 손학규가 강행해서 이루어진 것인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신임 원내대표 선출 이후 당이 계속해서 내홍에 빠져들면 이것은 당 대표의 리더십에 흠이 갈 수 밖에 없다. 사실상 패스트트랙 정국과 강제 사보임을 거치면서 자신의 최대 지지기반과도 같았던 안철수 계가 돌아선 바람에, 손학규의 리더십에 치명상을 입은데다 이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사퇴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7월 24일 오신환 원내대표와 바른정당계 하태경 이준석 권은희 최고위원, 안철수계 김수민 의원 등이 불참한 가운데 장진영 당 대표 비서실장과 채이배 정책위의장이 합의해 중앙당 윤리위원장을 선임했다. 중앙당 윤리위원장에는 안병원 전 대한석유협회 회장이 임명됐다. # 결국 손학규의 개썅마이웨이

사실상 이후 바른미래당 최고위는 손학규계 당권파 진영으로 구성되고 원대회의의 경우 바른정당계 및 비당권파 진영으로 양 진영 회의로 구성되어 갈라져 버렸다.

6.3. 당 대표 사퇴 발언 번복 논란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는 15일 추석 전 당 지지율이 10%가 안 되면 사퇴하겠다'고 한 것과 관련해 "(약속이 유효한지) 아직 답변을 못 드리겠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이 분열된 상태에서 싸움이 혁신위원회로까지 확대가 될지는 (몰랐다)"며 "우리가 지지율을 높인다는 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있는 것인지 (봐야 한다). 답변을 보류하겠다"고 했다. 노욕에 찌든 한 정치인의 추악한 말로 4·3 보궐선거 참패 후 당내 일부의 퇴진 요구를 받아온 손 대표는 지난 4월 15일 "추석까지 당 지지율이 10%에 미치지 못하면 대표직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로선 이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확답을 할 수 없다는 뜻으로 보인다. #

결국 추석이 다 지나서도, 사퇴하지 않았다. 본인의 약속을 깬 것이다. 강제로 당 대표를 끌어낼 수 있는 법안이 시급한 상황.

손 대표는 이런 비당권파 발언에 대해 "퇴진파가 지지율 상승에 같이 노력해 줬느냐"라고 얘기했다.링크

6.4. 기타

  • 음주운전으로 뇌사 상태에 빠진 윤창호 씨[22]의 친구들 면전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 음주운전 경험을 고백하여 논란이 되었다. 실제로 음주운전 경력이 있는 것도 문제지만, 그것을 음주운전에 의한 피해자와 피해자의 친구들 앞에서 말하는 것은 그 이상으로 굉장한 망언이다.
  • 자신을 지구의 영웅으로 표현한 만화책을 초등학교 교재로 썼다가 선거법 위반 논란을 겪었다. #
  • 간호조무사협회 창립 46주년 기념식에서 '처음부터 간호조무사를 꿈꾼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 '가정 사정상 학교에 제대로 못 가는 등 여러 가지 개인 사정상 간호조무사를 택할 수밖에 없지 않으신가.' 같은 발언과 간호조무사에게 '낮은 대우를 받는 자격을 갖고 계신 분들'이란 표현을 사용해 논란을 빚었다.#

7.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3

상반기 재보궐선거 (경기 광명 국회의원)

민주자유당

41,683 (44.9%)

당선 (1위)

초선[23]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광명 을)

신한국당

31,544 (42.65%)

당선 (1위)

재선[24]

1998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한나라당

1,303,340 (45.69%)

낙선 (2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광명)

한나라당

65,887 (47.35%)

당선 (1위)

3선[25]

2002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한나라당

1,744,291 (58.37%)

당선 (1위)

초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종로)

통합민주당

31,530 (44.76%)

낙선 (2위)

2011

상반기 재보궐선거 (경기 성남 분당 을 국회의원)

민주당

41,570 (51.00%)

당선 (1위)

4선[26]

2014

상반기 재보궐선거 (경기 수원 병 국회의원)

새정치민주연합

27,979 (45.04%)

낙선 (2위)

[27]

8. 소속 정당

9. 저서

10. 여담

  • 흔치 않게 이인제처럼 육군 현역병 출신으로 병장 만기 제대를 하였다. 무려 35개월 동안 복무하였으며 본인도 전역 당시에도 예비군복을 입고 오전 근무한 후에 집에 갔다고 하면서 나름대로 군 복무를 열심히 한 편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 정계의 잠룡 혹은 거물이라고 불리는 인물답게 고정적인 지지층이 있으며 지지자들의 손학규를 향한 마음은 일편단심이다. 매 경선에서 고배를 마셔도 '우리의 가슴 속 영원한 대통령은 손학규 의원님'이라며 위로와 응원을 할 정도.
  • 디시인사이드 설립자인 김유식에게 지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꽤 오래 전의 일이고 현재도 지지받는 지는 불명.
  • 이명박 전 대통령 및 이재오 전 특임장관과는 6.3 항쟁때부터 알고 있어 친분이 있는 사이이다. 오히려 세 사람이 한솥밥을 먹던 신한국당-한나라당 시절에는 이 세 사람 모두 상호간에 허물이 없는 매우 친한 사이였다. 이재오는 이명박을 도우면서 친이계의 좌장이 되었고, 손학규는 민주당계 정당의 당적으로 이동하면서 예전보다 사이가 멀어졌지만 이명박과 이재오도 손학규에 대해서는 최근까지도 상당한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 5월 21일 바른미래당이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 및 전국 공천자 대회'를 열었는데, 바른미래당 중앙선대위원장을 맡은 손학규가 이날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을 호되게 비판하는 일장 연설을 했는데, 바른미래당이 아닌 바른민주당으로 말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때까지야 그냥 말실수를 했으려니 했다.
그런데 2019년 4월 9일에는 바른정당 계열의 당 최고위원들이 손학규 당 대표에게 4.3 재보선 패배 책임을 물어 사퇴를 종용하고 있는 것에 대해 단호히 거부하면서 바른미래당에 대한 애정을 역설하는 와중, 당명을 바른미래당이 아닌 더불어민주당이라고 말하는 실수를 또다시 저질렀다. 유튜브 영상. 1분 26초부터흥분해서 한 실수라지만 일각에서는 '손 대표가 사실은 민주당으로 돌아가길 갈망하고 있는 게 아니냐'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11. 틀 둘러보기

대한민국원내정당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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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11px;margin-top:-6px;margin-bottom:-5px"

이해찬

김병준
(비대위원장)

손학규


정동영

이정미

이상규

조원진

}}}}}}||


  1. [1] 임기 중 작고
  2. [A] 2.1 2.2 광명시 갑
  3. [B] 3.1 3.2 광명시 을
  4. [4] 의원직 사퇴
  5. [5] 광명시
  6. [6] 의원직 사퇴
  7. [7] 의원직 사퇴
  8. [8] 손학규는 표기상 이니셜이 HK가 되어야 하나 본인은 HQ를 쓴다. Kyu /kju:/와 발음이 같은 Q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HackQ, SONA-Q. 때문에 안티들에게는 아Q정전에서 따온 '하Q'라는 멸칭으로도 불린다. 반면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규형, Q형, Q아재(...) 등으로도 불린다.
  9. [9] 다만, 노무현, 손학규, 이명박, 이재오, 이회창은 김영삼이 발탁하긴 했으나, 이들은 김영삼 직계보다 외부 영입인재로 분류돼기에 상도동계가 아닌 YS키즈로 분류한다. 김무성 외에는 강삼재, 김덕룡 등이 대표적인 상도동계 인사이다.
  10. [10] 한나라당 시절 당의 총재던 이회창이 1997년과 2002년 각각 김대중,노무현에게 패배하여 당이 여당에서 제1야당으로 밀려났었고 대통합민주신당은 노무현 대통령이 입당하지 않아, 엄밀한 의미의 여당이 아니었다.
  11. [11] 해당 링크는 일요시사 기사지만 그외 언론 기사들에서도 손학규계의 숫자는 엇비슷했다.
  12. [12] 다만 이건 더불어민주당에게 선거구제 개편을 약속 받으면서 소기의 성과를 얻었다. 자유한국당이 여전히 반대하지만.
  13. [13] 비슷한 시기 민주당 대표를 지냈던 정세균 전 국회의장의 사례도 참고할 만 하다. 정세균 역시 누구에게나 알려진 정계의 신사로서 여야 어느 쪽에서건 적을 만들지 않기로 유명했는데, 이로 인해 국회의원 최대 영예인 국회의장 직을 마치고도 관례인 정계은퇴에 나서지 않고 계속 정치활동을 시도하고 있다. 물론 이는 정세균의 지역기반이 호남이며, 정당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신사'형 정치인은 결국 대통령감이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14. [14] 물론 상술한 대로 수원 병 선거구는 남평우 - 남경필 부자의 근거지였던 곳이라 어느 야당의 인물이 출마했어도 이기기 힘든 지역이었다. 게다가 뜬끔없는 전략공천도 겹치고. 그러나 새누리당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다른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더불어민주당 김영진 후보가 당선되며 마침내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입성하게 됐다.
  15. [15] 노무현 대통령 본인도 회고에서 "한나라당에서 나를 가리켜 경포대라고 했다. 나도 예전에 사실을 잘못 알고 비판한 경우가 더러 있었다. 하지만 고의로 사실을 왜곡해서 남을 욕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말을 한 분이 당을 옮겨 이쪽으로 건너왔다. 할 말이 없었다"라고 대놓고 비판을 가했으며, 2007년 대선 당시에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에 나선 유시민은 손학규를 "보따리 장수"라고 비판했다.
  16. [16] 실제로 이명박은 박근혜에게는 탄핵 소추 가결 직후, '본인이 뭐라고 하든 전 국민들이 다 알고 있으니 순리대로 따르면 된다' 고 비아냥대며 박근혜를 비난한 바 있지만, 손학규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친분을 드러내면서 상당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17. [17] 물론 손학규가 탈당하면서 이렇다할 비박 주자가 사라진 이명박으로서는 박근혜에서 정권을 넘겨주는 것이 아쉬웠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었다고 정말 손학규가 대권 후보가 될 수 있었느냐는 다른 문제.
  18. [18] 만약 손학규가 한나라당에 남아었다면, 2007년 대선 경선에서 4위로 사실상 꼴찌를 했던 홍준표의 현실이 손학규의 미래에 가까웠을 것이다. 이명박은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에도 차기 대선 주자로 이재오와 정운찬같은 본인과 성향이 잘 맞으면서 친밀한 최측근을 지지했던 만큼, 손학규가 홍준표처럼 친이계와 같은 배를 탔다고 해도, 손학규가 실용정부말기 인기도가 떨어진 친이계와 강력한 콘크리트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는 친박계 사이에서 투쟁하면서 본인의 확고한 지지층을 만들어 차기 대선주자로서 입지를 강력하게 확보하지 못했다면, 한나라당의 차기 대권주자가 돼기는커녕 계파도 만들지 못하고 당시 당 대표 체제가 무너지며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차기 대권 주자의 꿈을 접었던 홍준표와 비슷한 처지가 되었을 확률이 높다. 나중에 홍준표가 대선에 나가고 다시 당권을 잡긴 했지만 그건 보수 진영 자체가 궤멸 위기에 놓인 시점에서의 일이니...
  19. [19] 특히 손학규대표의 경우 고령의 나이라는 점을 감안했을때 목숨을 걸고 투쟁에 임했다는 점도 부각시켰다.
  20. [20] 10월 27일 탈당. 다만 최고위에서의 발언상 안철수,유승민,손학규 셋 모두 타겟으로 언급한 것으로 미루어 노선 선회가 아닌 양측에 대하여 모두 비판적인 입장으로 보인다.
  21. [21] 다만 최도자 의원 지명선임에 대해선 하태경의원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22. [22] 음주운전으로 사람이 숨질 경우 살인죄처럼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이른바 윤창호법이 그의 사고를 계기로 공론화 된 것이다.
  23. [23] 전임자 윤항렬 의원 작고
  24. [24] 1998.4.6 사퇴 (경기지사 선거 출마)
  25. [25] 2002.5 사퇴 (경기지사 선거 출마)
  26. [26] 전임자 임태희 청와대 대통령실장 임명으로 사퇴
  27. [27] 전임자 남경필 의원이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로 사퇴. 이후 정계 은퇴 선언
  28. [28] 이 "저녁이 있는 삶"은 워라밸로 이어지는 등 상당히 성공적인 구호였으나 역시 후보 본인의 이미지 상승에는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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