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휴

오서(吳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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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손파로토역전(孫破虜討逆傳)」

2권 「오주전(吳主傳)」

3권 「삼사주전(三嗣主傳)」

손견

손책

손권

손량

손휴

손호

4권 「유요태사자사섭전(劉繇太史慈士燮傳)」

5권 「비빈전(妃嬪傳)」

유요

태사자

사섭

오부인

서부인

보연사

왕부인

반근숙

전혜해

주부인

하희

등방란

6권 「종실전(宗實傳)」

손정

손유

손교

손환

손분

손보

손익

손광

손소

손환

7권 「장고제갈보전(張顧諸葛步傳)」

8권 「장엄정감설전(張嚴程闞薛傳)」

9권 「주유노숙여몽전(周瑜魯肅呂蒙傳)」

장소

고옹

제갈근

보즐

장굉

엄준

정병

감택

설종

주유

노숙

여몽

10권 「정황한장주진동감릉서반정전(程黃韓蔣周陳董甘凌徐潘丁傳)」

정보

황개

한당

장흠

주태

진무

동습

감녕

능통

서성

반장

정봉

11권 「주치주연여범주환전(朱治朱然呂範朱桓傳)」

12권 「우육장낙육오주전(虞陸張駱陸吾朱傳)」

주치

주연

여범

주환

우번

육적

장온

낙통

육모

오찬

주거

13권 「육손전(陸遜傳)」

14권 「오주오자전(吳主五子傳)」

15권 「하전여주종리전(賀全呂周鍾離傳)」

육손

손등

손려

손화

손패

손분

하제

전종

여대

주방

종리목

16권 「반준육개전(潘濬陸凱傳)」

17권 「시의호종전(是儀胡綜傳)」

18권 「오범유돈조달전(吳範劉惇趙達傳)」

반준

육개

시의

호종

오범

유돈

조달

19권 「제갈등이손복양전(諸葛滕二孫濮陽傳)」

20권 「왕누하위화전(王樓賀韋華傳)」

제갈각

등윤

손준

손침

복양흥

왕번

누현

하소

위소

화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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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오 3대 황제
경황제
景皇帝
孫休

손휴

시호

경황제(景皇帝)

작위

낭야왕(琅邪王)

성씨

(孫)

(休)

자열(子烈)

연호

영안(永安, 258년 10월 ~ 264년 6월)

생몰 연도

235년 ~ 264년 7월 25일

재위 기간

낭야왕

252년 ~ 258년 10월 18일

동오
황제

258년 10월 18일 ~ 264년 7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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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11px;margin-top:-6px;margin-bottom:-16px"

증조부

효의왕 손종(孝懿王 孫鍾)

조부

시조 무열황제 손견(始祖 武烈皇帝 孫堅)

아버지

태조 대황제 손권(太祖 大皇帝 孫權)

어머니

경회황후 왕씨(敬懷皇后 王氏)

선태자 손등(宣太子 孫登)
건창후 손려(建昌侯 孫慮)
소헌문황제 손화(昭獻文皇帝 孫和)
노왕 손패(魯王 孫覇)
장안후 손분(章安侯 孫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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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평가
4. 기타
5. 미디어 믹스

1. 개요

삼국시대 손오(孫吳)의 제3대 황제. 손권의 6번째 아들.[1] 어머니는 경회황후 왕씨. 자는 자열(子烈)이고, 연호는 영안(永安). 아들로는 손만, 손공, 손망, 손보가 있다.

2. 생애

258년 10월에 손침은 자신을 제거하려 한 황제 손량을 폐위시키고 10월 18일에 낭야왕 손휴를 황제로 삼았다. 이러한 배경에서 봤듯이 손침은 손휴를 허수아비로 세우고 더욱 더 막장 행각을 펼쳤고 손휴는 손량을 폐위한 손침과 그 일파들이 두려워 계속 상을 주었으나 속으로는 손침과 그 일파들을 쳐낼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가 당도해 손침이 역모를 꾀한다는 보고가 들어왔고 12월 8일 손휴는 좌장군 장포, 정봉 등과 모의해 천하의 개쌍놈 손침을 척살하고 그 일족을 멸했다. 패악질을 해대던 손준과 손침이 황족이라는 것을 부끄러워 하여 황실 족보에서 삭제하고 손씨 성을 없애고 ()씨로 바꾸고 고준, 고침으로 부르게 했다. 호적에서 파고 대놓고 고인드립을 칠 정도였으니 손휴가 손침, 손준 일파에 대해 화가 났는지 알 수 있다.

260년, 포리당(浦里塘)[2]을 만들다 백성들의 원망을 샀으며 263년에 촉한이 위의 대규모 침공을 받자 구원병을 내주어 정봉 형제에게 각각 수춘과 면중으로 진격케 해 촉을 구원케 했으나, 결국 촉은 멸망했다. 264년에 과거 촉 땅이었던 백제성을 공격했다가 나헌에게 막혔으며 우방이자 위의 침공을 막아줄 방파제 역할을 했던 촉이 망하자 손휴는 오의 앞날에 대해 걱정하다가 30세의 나이로 요절한다.

이후 태자 손만이 즉위했어야 했으나, 승상 복양흥과 장포가 짜고 그의 조카 손호를 즉위시켰다. 그러나 손호는 손휴의 아내 주부인을 핍박하여 죽이고, 손휴의 네 아들을 오의 작은 성에 몰아넣고, 그 중에서 손만손공을 죽였다.

3. 평가

재위 기간 내에 조세와 군역 부담을 줄이고 인재를 육성하거나 내정에 힘쓰는 등 명군의 자질을 보였다. 하지만 이 망하자 앞으로 의 앞날에 대해 걱정하다가 요절해버린게 너무나 아쉬울 뿐... 더군나나 다음 황제가 오나라 막장의 대미를 장식한 황제인지라...

사실 손휴 시대 전반은 손준, 손침 형제들의 깽판에 그걸 수습하느라고 그렇게 썩 좋지는 못했다. 같은 시기 촉한이 황호 집권으로 한참 막장의 첨단을 달릴때 촉한에 사신으로 간 설후가 "촉나라 군주는 어리석고 신하는 아첨만 해대어 바른말 하는 사람도 없고 백성들은 누렇게 떠서 마치 처마 밑에 있는 제비 부자가 집이 불타는 줄 모르고 자신의 안전을 즐기는 것과 같다" 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촉한이 망하고 등애가 3년간 촉을 정비하면 이걸 기반으로 오나라 침공 및 점령도 가능하다고 장담했을 정도였던 촉한의 사정을 생각해보면 한창 더한 개막장을 달리던 오나라가 그렇게 촉한을 욕할 상황이 아니었다.

당시 오나라는 포리당 같은 거대 토목 공사 때문에 백성들의 고통도 심했고 심심하면 정변이 일어나 궁궐에 칼부림이 그칠날이 없었던 데다가 손준, 손침의 횡포를 수습한 이후 황제가 '큰 돼지랑 공작좀 가져와라~' 라고 명령내리자 또 징발될까봐 겁난 수공예인들과 백성들이 교지에서 반란까지 일으키는 상황인데다가 복양흥에 장포 같은 용렬한 인물이 실권을 장악하여 백성들의 욕을 대놓고 얻어먹던 상황이었으며, 복양흥은 '농민 1만명을 징벌해 병사로 만들자'고 제갈각, 손준, 손침 이래로 큰 타격을 입은 백성들 입장에서 기겁하는 소리가 나올 얘기까지 했으니 손휴 개인의 품성이 좋았다고 한들 나라꼴이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홍대용은 담헌서에서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오휴(吳休)는 아첨한 자의 수단에 빠져서 위소, 성충(昭冲)의 무리와 더불어 글 읽로 강논함을 기쁘게 여겼다. 그러나 그가 복양흥, 장포(興布)의 무리에게 답한 말들은 또한 명백하고 절실하였으니, 대개 그의 천품(天禀)은 좋았던 것인데 가르침과 인도함을 착하게 못한 것이 애석하다. 흥포의 무리는 자기들의 허물을 행여 말할까 두려워해서 굳이 간하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임금을 그르치고 자신의 은총(恩寵)만 받으려고 하는 소인의 무리는 모두 이와 같으니, 두렵다.

그의 정치나 후사가 복양흥, 장포 때문에 망했다는 걸 생각하면 일견 이해가 가는 평가일지도.

4. 기타

손오의 황제로서는 재위 기간 내에 유일하게 연호를 고치지 않았다. 어차피 재위 기간이 10년이 안 돼 연호를 교체할 계기가 생기지 않았던 듯. 손준과 손침을 징벌했지만 그 둘에게 제거된 이전의 권력자인 제갈각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듯 하다. 복권은 시켜줬지만 공로를 세우는 비석을 세우자는 말엔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사람들이 자신의 아들들의 이름을 피휘하는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이름자를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 [3] 자신의 아들 중에 황제가 된 사람이 없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어림에 따르면 손휴는 사냥을 좋아했는데, 그 계절이 되면 새벽에 나갔다가 저녁에야 돌아오곤 했다. 신하들이 모두 이를 말리면서 간언했다.

이것은 하잖은 짐승이니 어찌 심히 탐닉할 가치가 있겠습니까?

손휴가 대답했다.

비록 하잖은 짐승이지만 굳은 절조가 사람보다 낫기 때문에 짐은 그것을 좋아하는 것이오.

수신기에 따르면 동오(東吳)의 경제 손휴(孫休)가 병이 나 박수 무당을 찾았다. 마음에 드는 박수를 찾아낸 손휴는 그를 시험하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에 거위를 죽여 뜰에 묻고는 조그마한 집을 지어 그 안에다 침상과 탁자를 들인 다음, 부인들이 신는 신발과 의복을 그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박수를 불러와 그것을 보게 한 다음에 말했다. "만약에 이 무덤에 묻힌 죽은 부인의 모습을 말할 수 있으면 후한 상을 내리는 동시에 그대를 믿고 내 병을 맡기겠노라." 그러자 박수는 하루가 다 지나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답답해진 손휴가 박수를 재촉하자 그제서야 그는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실은 귀신은 보이지 않고 단지 무덤 위에 흰 거위 한 마리만 보입니다. 그래서 소인이 즉시 말씀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귀신이 거위의 모습으로 변한 것인가 의심스러워서 말입니다. 그래서 거위가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렸지만, 무슨 연유인지 조금도 모습을 바꿀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서야 사실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5. 미디어 믹스

삼국지 11

삼국지 12, 13

삼국지 시리즈에도 등장하지만 취급은 그저 그렇다. 그래도 황제에 손침을 쳐냈기 때문에 후반기 장수 중에선 준수한 편. 삼국지 3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삼국지 9의 능력치는 통솔력 64/무력 39/지력 79/정치력 72로 전투 관련 능력치는 우울한 편이지만 투함과 덫 때문에 해전에서는 꽤 위협적이다.

삼국지 10의 능력치는 통솔력 57/무력 42/지력 79/정치력 75/매력 83에 농업, 기술 특기를 가지고 있어서 내정에 적합하다. 손침을 잡은 후 말빨로 처발라버린 것을 반영하였는지 논파 특기를 가지고 있다는 게 특이점. 전체적으로 특기는 농업, 기술, 혼란, 반박, 논파. 총 5개다.

삼국지 11의 능력치는 통솔력 57/무력 39/지력 78/정치력 75/매력 81로 후반기 장수치고는 비교적 준수하지만, 수군 적성이 A인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병종 적성은 모두 C이며 무특기이므로 전장에서 활용하기는 어렵다.

삼국지 12의 일러스트는 손침을 죽이라고 명을 내리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자세히 보면 왼손을 편 채 올리면서 오른손으로 아래를 가리키고 있다. 유일하게 오나라 황제들 중에서 칼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57/42/78/76. 특기는 농업 3, 설파 2, 수영 1. 전수특기는 농업이며 전법은 기동강화.

진삼국무쌍7에서는 진나라 IF 스토리에서 등장, 클론 무장 치고는 오의 최종 보스로 등장하는 위업을 이룬다.

사마사 암살 사건이 해결된 후, 위나라가 통일을 위해 몇 년간 힘을 비축했다가 사마사가 촉으로, 사마소는 오로 진격. 형주를 치고 건업으로 진격해 오가 사실보다 더 빨리 멸망하게 된다. 손권 사후 개판이었던 후계 구도 때문에 사마사, 사마소 형제의 우애 띄어주기 용 비교 대상이 되는 굴욕도 겪는다.

하지만 정봉과 연사의 오나라 잔존병이 성도에서 쫒겨온 강유와 연합해 적벽에서 결전을 치루지만…

삼국전투기에서는 네기시 소이치로 등장한다. 처음에 손침에게 빌빌대는 유약한 모습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역시나 크라우저 2세로 변신하여 손침을 SALHAE했다. 역사대로 손준과 손침을 고씨로 개명시키지만 그냥 고씨라고만 나와 단순히 원래 있던 고(高)씨로 개명시킨건지, 아니면 원래대로 고(故)씨로 개명시킨건지 이 만화만 보고는 알 수 없다. 사족으로 복양흥장포도 각각 알렉산더 쟈기, 카뮤로 분장하고 나왔다.


  1. [1] 맏형인 손등하고는 26세 차이로 나이만 보면 아들 뻘이다(...). 참고로 손권하고 손등이 27세 차이다. 큰형 손등은 손휴가 어릴때 요절했고 둘째 형 손려는 그가 출생하기도 전에 사망했다.
  2. [2] 관개, 간척을 위한 댐.
  3. [3] 사실 중국의 경우 이런 경우가 제법 많다. 사람 이름을 짓거나 강 이름을 짓거나 할 때 새로운 한자를 만들어서 지어주는 경우는 중국과 한국에 두루 있는 경우이다. 훈에 사람 이름, 물 이름 등이 들어간 경우가 대개 이런 경우로 그래서 중국의 경우 최근 현재 있는 5만여자를 제외한 신설 한자를 만들어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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