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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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2.1. 고대
2.2. 근대
2.3. 현대
3. 분류
3.1. 중력수차
3.2. 충동수차
3.3. 반동수차

1. 개요

水車

물의 역학적 에너지를 축의 회전 운동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기계들의 총칭.

물레방앗간에서 사용된 물레방아도 수차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2. 역사

2.1. 고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시대에 발명되었다고 추측되며, 농지 관개를 위해서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대 로마의 기술자 비트루비우스가 만든 수차에 대한 기록도 남아있는데 자주 사용되지 않는 기계라 되어 있는것으로 보아 노예 노동이 풍부한 로마 사회에서는 많이 보급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슬람세계의 수차는 시리아 하마지방의 수차가 유명한데[1] 대규모 17기의 농지 관개 용 수차들이 현재에도 남아 있어 관광 명소가 되고 있다. 아래 사진에서 크고 아름다운 규모의 수차를 확인할 수 있다.

유럽에서도 풍차와 함께 제분용, 배수용 등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해양성 기후라 수력을 마음껏 쓸 수 있는 환경이었고, 이 주식인 특성상 제분 시설은 필수였기 때문이다.

한국 에서는 수차를 제분 용 관개 용 에따라 다른 명칭을 붙였다. 곡식을 가는 맷돌로 쓰일 때에는 수연(水碾), 수애(水磑), 수마(水磨), 수롱(水礱) 등으로 불렀고, 곡식을 빻는 방아로 쓰일 때는 수대(水碓) 또는 기대(機碓)라고 불렀다. 우리나라에서 수차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5, 6세기경부터인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 근거는 아래에도 나와 있는 610년에 고구려의 중 담징이 일본에 건너가 그해에 연자 맷돌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그 후 수차에 대한 기록은 ‘고려사’에서 단 한번 나타나는데. 1362년(공민왕 11년) 기록에 따르면 농민들이 저수지와 제방을 쌓아 물을 끌어대는 것에만 의존하여 관청에서 수차를 만들어 보급하고 농민들에게 사용을 장려했다는 내용이다. 이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말기까지도 수차가 관개용으로 일반화되지 않았다고 짐작된다. 고려가 멸망 한 후 조선시대에 세종대왕을 비롯해 농민들에게 여러 번 수차 사용을 장려하기도 했으나, 그 시도들은 성공하지 못했고, 결국 구조적인 발전이나 보급의 확대는 일부지역에서만 이루어졌다.

한반도에서 수차가 잘 쓰이지 않는 이유는 여러가지지만, 일반적으로 한반도의 환경이 수차에 적합지 않다는 걸 가장 큰 이유로 든다. # 조선이 기술이 있었음에도 수차를 보급시키지 못한 이유 한반도는 강수량 대부분이 장마철에 밀집해 있는 만큼, 수차를 돌릴만한 물이 부족한 상황이 자주 있다는 것. 거기다 겨울에는 물이 얼어버리는지라 사용이 불가능해진다. 이를 두고 원동기형 수차와 달리 용골차는 계절에 상관 없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지만, 당장 실록에 "토양(土壤)의 성분이 푸석하여 물을 받을 수 없는 까닭에 수차의 법은 마침내 이익을 보지 못하였다."고 언급하고 있다. 천수답이나 보, 제언 등 다른 방법이 있는 상황에서 굳이 비싼데다 사용하기도 어려운 수차를 만들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물론 보급 시도는 계속 있었다. 잠곡 김육이나 연암 박지원도 중국에서 들여온 수차를 보급했다는 것이 버젓히 업적으로 나와있고, 특히 김육은 충청도 관찰사 때 수차의 보급에 적극 나섰다. 관개용 수차는 빗물과 도랑에만 의존하는 천수답과 기존 관개시설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도구이지 그것들의 대체용품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널리 보급되지 않은 것은 분명한 것이, 기존 관개시설과 수차의 이용이 병행되지 못하는 문제점에 대해 조선 후기 재야학자인 반계 유형원은 자신의 저서인 우서에서 '우리나라 농민들은 수차의 이용을 알지 못하여 논 아래 도랑의 물이 한 길만 내려가도 이를 굽어보기만 할 뿐 감히 끌어올리지를 못한다'라며 한탄하기도 했다.참고 그러나 보급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어서, 순조 시대가 되면 자원이 풍부한 강원도경상도 함양, 창원에서는 수차가 널리 보급되었다. 남도형과 북도형의 수차엔 차이가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중국에서는 최소 한나라 시절부터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14세기까지 수력으로 작동하는 방적기풀무 등 수차를 공업용으로도 이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후의 발전은 볼 수 없다. 애초에 중국도 남방지역에서만 주로 쓰였고 북방은 한반도처럼 겨울이 길고 물이 얼거나 말라버리는 조건이라 수차를 못 썼다.

일본 서기에는 610년 고구려로부터 온 승려 담징이 연애(碾磑)라는 수차로 움직이는 맷돌을 만들었다고 있다. 일본도 한국이나 북중국보다는 덜하지만 연중 강수량이 고르지 못한 기후였으나, 관개 수리가 발달하여 수차가 정착할 수 있었다.

2.2. 근대

2.3. 현대

3. 분류

물의 역학적 에너지를 회전 운동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방법에 따라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3.1. 중력수차

산업혁명이 일어나기전 대부분의 수차는 중력수차였다.

수차의 어느 높이에 물을 흘리느냐에 따라 종류가 나뉘고 그 종류마다 효율도 다르다.

3.2. 충동수차

물의 역학적 에너지를 거의 모두 운동에너지로 전환시켜 고압의 물을 노즐에서 발사해 수차의 판에 충돌시켜 회전에너지로 전환시키는 방식이다.

충동수차의 경우 물을 받는 판의 형태에 따라 효율이 달라지기도 한다.

댐에서 발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3.3. 반동수차

추가 바람


  1. [1] 수차의 도시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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