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모

1. 개요
2. 역사
3. 규칙
4. 등급
5. 선수 생활
6. 경기
7. 수입
8. 실상
9. 사건사고
9.2. 2018년 도효(스모 시합 판) 여성 출입 금지 논란
9.3. 2018년 어린이 시범 경기 여아 차별 논란
10. 그 외
11. 관련 인물
12. 관련 캐릭터
13. 관련 문서

相撲(すもう)

[1]

1. 개요

일본 전통의 스포츠. 일본어로 스모 선수를 리키시(力士, 한국 독음으로는 '력사'.)라고 한다. 멸망 직전의 씨름과는 다르게, 일본에서는 축구, 야구와 함께 3대 스포츠로서 당당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보는 스포츠로서뿐만 아니라 외에도 학교나 마을에서 스모 대회를 여는 등의 하는 스포츠로서의 입지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인기에 비해서 유독 일반인의 수련 인구가 적은 종목이기도 하다. 일시적인 이벤트로 즐기는 경우는 많아도, 취미나 아마추어 종목으로 일상에서 꾸준히 수련하는 사람은 적다. 우선 스모 특유의 복장부터 거의 벌거벗은 수준이라 일반인이 입기를 꺼려하며, 리키시의 몸도 다른 스포츠 선수에 비해 일반인과 괴리가 크다[2]. 또, 유도, 공수도, 검도 등의 다른 무도와 비교해서 멋있지 않다는 인식도 있어서 더욱 입문에 거부감을 가지게 된다[3]. 일부에서는 복장이나 룰 등을 수정해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아마추어 스모를 보급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효과는...

일본 만화에선 스모 선수들이 왠지 무지 셀 것처럼 나오지만 격투계의 현실은 아케보노 타로만 봐도...물론 료토 마치다 처럼 스모 기술로 격투기 챔피언을 먹은 인물이 있기는 한데, 스모 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베이스는 어디까지나 쇼토칸 가라테고 실제로도 그렇게 표방한다.

다만 스모선수만 격투 판에서 약한 건 아니다. 현대 격투판은 균형잡힌 강함을 갖춘 쪽이 우세하기 때문에 뭐가됬던 한쪽으로 치우친 종목은 힘들기 마련이다. 스모는 규칙이나 주변 환경의 문제 때문에 치우쳐도 너무 치우쳐서 더욱 돋보일 뿐, 다른 어떤 종목이라도 하나만 줄창 파던 사람이 적응 훈련 안하고 격투판 들어오면 스트라이커가가 타격으로 발리고 그래플러가 그래플링에 접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렇다고 그들이 운동 좀 했다 하는 일반인보다 약하겠는가?

2. 역사

스모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야요이 시대로[4], 적어도 그 이전부터 스모라는 것 자체는 존재해 왔다고 추정하고 있다. 다만 그때의 스모가 지금의 스모와 같았던 것은 당연히 아니고, 처음에는 리키시들의 맨손 힘겨루기에 가까웠다고 보여진다. 말이 힘겨루기지, 기록에 의하면 유술이나 발차기 등도 포함한 사실상의 종합 격투였다. 이것은 스모뿐만 아니라 일본의 고무도나 유술, 유도 등으로도 발전했다.

기록상으로 지금의 스모의 토대가 된 것은 나라 시대로, 속일본기에 찌르기, 때리기, 차기의 3가지 기술을 금하고 48가지의 기술과 예법에 대한 기록이 있어, 이것이 현대의 스모의 시작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부터 스모는 귀족들을 중심으로 인기 스포츠로 자리하고 있었으며, 정기적으로 스모 경기를 열기도 했고, 심지어 황실이나 귀족들이 전문 스모 선수를 육성하고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즉, 스모는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본의 프로 스포츠로 성장해 온 것이다.

밥먹듯 전쟁이 벌어졌던 무로마치, 가마쿠라 시대, 전국시대에도 장려되었으며 오다 노부나가가 현재의 씨름판의 원형을 고안했다는 기록이 있다. 다이묘들도 직속 리키시를 육성해 손님을 접대하거나 다른 다이묘의 리키시와 대결하는 어람 시합를 열었으며, 우수한 선수는 가신으로 임명되기도 했다고 한다. 에도 시대에는 서민층에게도 보급되고 직업 리키시도 등장하여 대중적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고 급기야 승패를 걸고 도박을 하는 등 사행성이 만연해지기도 했다. 사찰 건립 모금을 위해 스모 경기가 벌어지기도 했으며, 쿠로후네 사건 당시 막부가 미국인들에게 일본의 상징으로서 자랑스럽게 보여준 것 중 하나도 스모였다.

3. 규칙

아주 간단하다. 직경 4.55m의 원형 또는 사각형을 한 도효(土俵)에서 리키시 두 명이 승부를 겨루는데, 발바닥이 아닌 다른 부위가 바닥에 닿거나(머리카락이 닿아서 진 선수가 실제로 있다), 신체가 도효 바깥에 닿으면 진다. 반칙을 한 경우(주먹으로 때릴 때, 급소를 찌를 때, 가슴이나 배를 찰 때 등)도 마찬가지. 판정은 교지(行司, 스모의 심판)가 내린다.

스모 이외의 많은 레슬링 계열의 격투기는 폴처럼 상대의 등이 땅에 닿아야 승리가 되는 경우가 많으며, 장외가 반칙인 경우는 있어도 즉시 패배가 되는 경우는 적다. 이 때문에 스모의 승부는 다른 격투기와는 다르게 대부분 빠르게 이루어지며 승패의 향방이 정말 미세하게 갈린다. 체중제를 하지 않아도 승부가 성립하는 이유라고 봐도 될 것이다. 체격 차이가 커서 저게 뭐 상대가 되겠냐 싶은 시합도 체격이 작은 쪽이 순전히 기술과 순발력만으로 승리하는 경우가 많다.

4. 등급

1. 요코즈나(横綱): 리키시 중 최고위. 쉽게 말해 명예의 전당 스모계에서는 전설의 경지로 생각하며 한 번 요코즈나가 되면 더 이상 강등은 없지만 성적이 안 좋다 싶으면 은퇴도 각오해야 한다. 전적 외에도 기술·인품에 집안 내력까지 정말 모든 걸 갖춘 후 스모 협회의 인정을 받아야 오를 수 있는 엄청 되기 힘든 경지로, 1603년부터 413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 반열에 오른 사람은 71명밖에 안 되는데 계산하면 약 5년 11개월마다 한 명꼴로 등극했다고 보면 된다. 68대부터 71대까지는 몽골인 선수들이 4번 연속 요코즈나에 올랐는데 2017년이 되어서 19년 만에야 순수 일본 출신 요코즈나가 탄생했다고 한다. 이름은 기세노사토.#[5]

2. 오제키(大関): 요코즈나 다음 가는 위치로 9단(段)에 해당하는 등급. 이 등급에서 경기를 치렀을 때 연속 우승이나 연속 우승에 준하는 성적을 내면 요코즈나 심의위원회의 회의 소집을 거쳐 요코즈나로 승급할 수 있다. 카도반이라는 제도를 통해 성적이 일시적으로 떨어져도 한 번은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대전격투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2에드몬드 혼다철권간류가 바로 이 타이틀을 달고 있다. 철권 스토리 모드에서 간류와 상대하게 되면 간류가 "왜 요코즈나가 69명밖에 안 되는지 그 이유를 알려주지"라며 허세를 부린다. 동시에 뜨는 "간류는 요코즈나가 아닙니다"라는 깨알 같은 자막은 덤. 스토리에 따르면 간류는 화려한 옷차림으로 도효에 오르거나 불을 뿜고 나타나는 등의 기행으로 인해 행실불량 판정을 받아 요코즈나로의 승급이 영구 정지되었다고 한다. 오제키에서 두 대회 연속 마케코시 즉 8패 이상 기록할 경우 세키와케로 강등인데 세키와케로 내려간 바쇼에서 일정 성적이상 기록시 바로 오제키로 복귀한다는 특례가 있다. 이래저래 스모판에서는 특전이 많은 계급이다.

3. 세키와케(関脇): 오제키의 전 단계. 여기서 좋은 성적을 유지하면 오제키로 승급할 수 있다. 오제키의 적격 기준은 최근 3바쇼 45전 중 33승 이상인데, 1~2승 미달임에도 통과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35승을 올리고도 승급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승급은 스모 계 대내·외적인 정세와 리키시 본인에 대한 여론, 위원들의 판단에서 나오기 때문에 유동적이고 자의적 해석이 내려질 때가 자주 있다. 예를들어 최초의 몽골인 요코즈나 아사쇼류의 경우 평소 과격한 언행으로 오제키 진급이 1회 누락된바 있다.

4. 고무스비(小結): 보통 마에가시라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리키시가 다음 대회의 고무스비가 된다.

※오오제키부터 고무스비를 三役(산야쿠)라고도 한다.

5. 마에가시라(前頭): 이 계급에 속한 이들을 히라마쿠(平幕)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

※요코즈나부터 여기까지를 마쿠노우치[6](幕内)라 부른다.

6. 주료(十両): 2부 리그. 마쿠우치와 마쿠시타의 중간으로서 신예와 노장들의 실질적 격전지가 되기도 한다. 실질적인 스모 리키시들로서 수입적으로나 지원에 있어서나 엄청나게 풍요로워지기 시작하는 위치이므로 마쿠시타 이하의 리키시들은 주료에 일단 승진하려고 열심으로 노력하게 된다.

※요코즈나부터 여기까지를 세키토리(関取)라 부르며, 선수 명단을 작성할 때 이름을 굵은 글씨로 써 준다. 세키토리에 진입하면 쓰케비토(付け人)가 1인의 리키시에게 한 명 또는 두 명이 붙는다. 하위 계급의 리키시로서 훈련소부터 경기장, 행사장까지 따라다니며 해당 리키시의 잔심부름이나 신변을 챙겨주는 역할을 한다. 그 리키시가 속한 헤야(도장)에서 붙기도 하고, 헤야끼리 연합한 일문에서 뽑히기도 한다. 또한 개인 게쇼마와시[7]를 입고 의식을 위한 무대에 나갈 수 있으며, 독자적인 개인 생활 공간도 주어진다. 주료 이상이 되면 급여는 물론 신변까지 한꺼번에 변하는 것이다.[8]

7. 마쿠시타(幕下): 3부 리그

8. 산단메(三段目): 4부 리그

9. 조니단(序二段): 5부 리그

10. 조노쿠치(序ノ口): 6부 리그

5. 선수 생활

대개의 리키시들의 첫 선수데뷔는 중, 고등학교 연령에서 조노구치 밑바닥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학교를 중퇴하고 곧바로 훈련소(헤야)에 뛰어들기도 한다. 일부는 대학에 진학하여 교내 명문 스모부를 거쳐 헤야에 입문하는 경우도 있다. 각종 선수권에서 거둔 수상이력을 참작하여 조노구치보다 상위의 계급에서 리키시 생활을 시작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 제도는 과거 수많은 수정을 거쳐 현재의 방식으로 정립되었으며, 마쿠시타 쓰케다시(幕下付出)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 마쿠시타 쓰케다시의 조건

1) 마쿠시타 15부터 시작하는 경우

: 전일본 스모선수권 대회(아마추어 스모), 전국 학생스모 선수권 대회(학생 요코즈나), 전일본 실업단 스모선수권 대회(실업단 요코즈나), 국민체육대회 스모경기(성년남자부 A, 국체 요코즈나) - 이 중 한 가지 선수권 우승 보유자

2) 마쿠시타 10부터 시작하는 경우

: 전일본 스모선수권 대회 우승을 필수적으로 만족한 상태에서 나머지 세 선수권 중 한 가지 이상의 우승기록이 있는 자

참고로 리키시들은 전부 본명이 아닌 링네임인 시코나[9]를 쓴다. 이는 외국인 리키시도 예외가 아니라서 파란 눈의 리키시가 한자 이름을 쓰는 것이 스모계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스모가 일본색이 강하다 보니 외국인 리키시들은 어느 정도의 일본어를 구사할 것을 요구 받기도 한다. 물론 외국에서 스모하러 올 정도면 어느 정도는 일본에 대해서 공부하고 오기는 하지만...

6. 경기

정규경기는 1년 여섯 번, 대개 홀수 달 두 번째 일요일부터 시작하여 네 번째 일요일에 끝나는 총 15일의 경기를 실시한다.(단, 2012년 접어들어, 거의 정설로 굳어져 왔던 두번째 일요일이었던 바쇼 첫날이, 첫번째 일요일로 결정되는 사례가 종종 나타나고 있다. 각 바쇼 개최일은 연간일정표를 참고하기 바란다) 조노구치부터 마쿠시타까지 7일의 날짜를 택하여 경기할 수 있으며 주료 이상의 세키토리는 15일의 경기일정을 다 소화해야 한다.

대개 부상 등의 이유로 휴장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 경우 휴장 1회는 1패와 동일하게 적용하므로 다음 승강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본래 '공상제도'라 해서, 경기 중 입은 부상에 한정하여 휴장을 인정하되 승패에 영향을 주지 않는 제도가 있었다. 이 제도는 2000년대 초중반까지 적용되었다가 폐지된다. 훈련 중 부상이나 실수에 의한 부상과의 시비가 만만찮은 것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공상제도를 믿고 훈련이나 수행을 게을리하여 특히 자국(일본)내 리키시들의 경기력이 저하되었다는 의견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휴장으로 인해 직, 간접적으로 승강급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경우는 요코즈나 뿐이다. 그 요코즈나가 어떤 여론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 그 휴장이 긍정적이게도, 부정적이게도 보이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아래는 정규바쇼의 개최지이다. (1월, 5월, 9월의 개최지는 동일하다)

  • 1월 하츠바쇼(初場所): 도쿄, 료고쿠 국기관(両国国技館),
도쿄도 스미다 구 소재
  • 3월 하루바쇼(春場所): 오사카, 오사카 부립 체육관(大阪府立体育会館),
오사카부 나니와 구 소재
  • 5월 나츠바쇼(夏場所): 도쿄
  • 7월 나고야바쇼(名古屋場所) : 나고야, 아이치현 체육관(愛知県体育館),
아이치현 나고야시 나카구 소재
  • 9월 아키바쇼(秋場所): 도쿄
  • 11월 규슈바쇼(九州場所): 후쿠오카, 후쿠오카 국제센터(福岡国際センター),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하카타구 소재

이외에도, 위의 지역이 아닌 지방 소도시, 농어촌 지역 등을 협회에서 매년 다른 지역을 선정하여 순회하는 '순업(巡業, 발음은 '즁교')'이 있다. 하지만 순업은 승부의 의미라기보다 '공연', '퍼포먼스'의 의미[10]가 더 강하고, 도시같은 곳에서 스모를 볼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지방인들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다. 또한 순업에서의 승부는 하루 한번의 공연으로 토너먼트제이며, 이로 인한 승패의 여부가 리키시들의 공식 성적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덤으로 요코즈나로 은퇴하면 부와 명예가 따른다고는 하지만 이미 상한 몸으로 오래 사는건 바라기 힘들고 요즘엔 민속씨름처럼 그다지 안쳐준다는 듯. 과거엔 평균수명이 50세 정도였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생전에 돈 많이 벌어놓고 빨리 죽어 유산도 빨리, 많이 남기는 요코즈나가 1등 신랑감이라는 말도 있었을까. 다만 최근엔 의학의 발달과 은퇴 후 다이어트 하는 등 나름 건강을 관리해서 장수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그래도 일본의 국기(國技)인지라 덴노가 직접 주재하기 때문에 한국씨름과 같은 안습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듯 싶다. 일본 특유의 문화 수출 덕분에 해외에도 은근히 팬이 있다. 프랑스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도 스모팬이었다.

7. 수입

계급별로 다르나 일본 TV 프로그램에서 리키시가 직접 밝힌 정보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수준의 월 수입을 올린다고 한다.

  • 요코즈나(橫綱) - 약 300만 엔
  • 오제키(大關) - 약 250만 엔
  • 세키와케(關協) - 약 200만 엔
  • 고무스비(小結) - 약 160만 엔
  • 마에가시라(前頭) - 약 130만 엔

이는 공식적인 봉급이고 요코즈나의 경우 각종 광고료, 출연료, 현상금[11]등을 합하면 연 수입이 5억 엔에 달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 마쿠시타(幕下)부터 2달마다 용돈성격의 보수가 지급된다.

8. 실상

원래 스모는 힘이 좋은 역사, 그러니까 특별한 트레이닝 없이도 강한 사람들이 하는 경기였다. 한국의 씨름처럼. 당연히 과거의 역사는 비교적 근육질이면서 체지방량은 많으나 체지방률은 낮은, 흔히 7~80년대 에로 영화에 나오는 힘 좋은 변강쇠 같은 타입이 많았다. 이게 현대로 넘어오면서 중량을 이길 수 있는 게 없다는 공식이 퍼지고, 그로 인해 덩치가 큰 외국인들이 스모에 많이 진출하면서[12] 살을 찌우는 게 암묵적으로 강제된 스모 선수가 증가[13]하고 결과적으로 기술이나 순간적으로 방향을 바꾸는 힘의 사용 같은 것은 보기 힘들게 되었다. 한국 씨름이 이만기, 강호동에서 백승일, 최홍만, 김영현 등으로 변한 것과 동일하다.

폐도령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요시와라 같은 유흥지역에서 도검을 소지한 사무라이와 자주 물리적 충돌을 빚었던 계층이기도 하다. 선수들이 유흥가로 놀러가서 취했다가 마찬가지로 만취한 사무라이들과 시비가 붙어서 벌어지는 싸움이었다. 사무라이 측이 도검을 소지하고 있는데도 오히려 스모선수들한테 두들겨 맞고 도망치거나 심지어 맞아 죽는 일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사건 중에서는 오사카 유곽에서 신선조 창설 전의 세리자와 가모 일행과 스모선수단이 싸움을 벌인 오사카 난투 사건이 제일 유명한 사건이지만 실상은 좀 과장되었다. 일단 양측의 난투가 있었던 것은 맞으나 봉행소에서 작성된 정확한 조서가 존재하지 않아서 실제 양측 가담자의 수, 사상자는 불분명하다. 분명한 건 가모 일행은 진검, 스모선수단은 몽둥이로 싸웠고 후세의 신선조 옹호 측은 가모 일행이 숫적 불리함을 극복하고 스모선수 수십명을 베어 죽였다고 주장하나 신선조 창설 이전, 무직 낭인에 불과했던 세리자와 가모가 그런 학살을 벌이고도 무사했다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

참고로 이런 고체중자에게 유리한 시합 방식 때문에 스모선수들의 강함은 자신들의 체중을 최대한 이용한 밀어붙이기에 가까워졌다. 그런고로 동체중이나 자신보다 저체중자에겐 강하지만, 자신보다 힘이 세거나 체중이 더 나가는 상대에겐 약해지는 특징이 있다. 물론 정식 시합에서 상대에 비교해서 저체중의 선수들이 이기는 일이 전혀 없는 건 아니고 테크닉 성향의 선수가 없는 것도 아니니 전반적으로 그런 분위기라는 의미로 보면 된다. 간단히 예를 들자면 현역 요코즈나인 하쿠호가 스모 선수로는 평균적인 몸무게인 151kg 전후이다. 당연하지만 만일 체중이 스모의 승부를 결정짓는 유일한 요소라면 애초에 경기를 할 필요도 없이 체중을 재서 더 무거운 선수가 이기면 되는 종목이 되어버린다.

실제로 저체중 리키시의 시합을 보면 상당히 테크니컬한 움직임으로 자신보다 무거운 상태를 꺾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만 체중보다 높은 확률로 승부가 결정 나는 요소가 있는데 그건 뒤를 잡히면 진다는 것. 스모 경기 방식상 뒤를 잡히는 경우 거의 90%의 확률로 패배한다고.

이 때문에 체중을 불려야 유리하다는 것이 일반화된 후 스모 선수들은 그 특유의 덩치 키우기에 매진하게 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100킬로는 가뿐히 넘기는 스모 선수들이 그 체중을 유지하고 더 불리기 위한 식사 요령이 있는데, 바로 하루에 두끼만 먹는 것이다. 그 두 끼를 그야말로 폭식하면, 쉴 새 없이 먹는 것 보다 체중이 더 크고 빠르게 올라간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지방은 몸에서 쓸 에너지를 비상용으로 축적해두는 용도로 늘어난다. 하지만 영양분이 자주 공급될 경우 몸에서 도리어 지방축적을 줄인다고 한다. 그래서 스모 선수들과는 달리 보디빌더들은 고단백 저지방의 적은 양의 음식을 자주 먹는 방법으로 근육을 만든다.

이들이 주로 먹는 음식으로 고칼로리의 냄비 요리인 창코나베가 유명하다. 고칼로리라는 것만 빼면 맛도 영양도 괜찮은 요리이니 혹시 기회가 된다면 한번 먹어봐도 좋을 듯.

이러한 훈련 방법 때문에 스모 선수들의 평균 수명은 꽤 짧은 편이다. 본래 전문 운동선수들이 과도한 운동량 때문에 일반인보다 수명이 짧은 편이지만, 특히 스모의 경우 저런 체중 불리기는 건강에 매우 해롭기 때문이다. 스모에서 은퇴하면 그 많은 살이 쫙 빠지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65대 요코즈나로 스모협회 역대 최연소 임원에 철저한 자기관리로 유명한 다카노하나의 경우 현역시절의 체중이 161kg였으나, 스모를 은퇴히자 85kg까지 감량하여 그야말로 '반쪽'이 되었다. 물론 고니시키 처럼 은퇴 후에도 감량을 전혀 못해서 생명이 위험하다는 진단을 받고 위장축소수술까지 한 경우도 있다. 물론 의학의 발달로 인해 장수하는 선수들도 존재하나 전체적으로 짧은 수명인 건 사실.

마쿠우치 선수들은 긴자 술집에서 최고로 환영받는 손님들이다. 한번 들를 때마다 수백만원에서 심지어는 수천만원씩이나 소비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절대 혼자 안다닌다. 1명에서 3명까지 서포터가 따라다니기 때문에 마쿠우치 선수들은 서포터 분까지 다 챙긴다. 그러기에 씀씀이도 엄청날 수밖에. 반대로 무한리필 집에서는 가장 보이콧 하는 손님 중 하나이다.

일본에 10년간 교환교수로 갔던 교수의 증언에 의하면 요코즈나는 돈 많고 빨리 죽어서 신랑감으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하루에 아주 짧은 경기 한 판을 이기는 걸로도 꽤 많은 수입을 올린다고 한다. 스모 경기가 길어봐야 1분을 넘지 않고 아주 짧은 경우는 0.2초 만에 승부가 나는 경우도 있으며, 3분이 지나도 승부가 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메인심판인 교지는 약간의 휴식을 줄 수 있으며 경기속행 때는 본래의 승부 장면 그대로 복원한 다음 다시 경기를 진행해 승부를 유도할 수 있다. 그렇지만 대개 1분을 넘길 경우 긴 경기며, 휴식을 일시적으로 주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래서 '스모판에는 돈이 굴러다닌다.'는 속담도 있으며[14], 돈을 벌기 위해서 온 외국인들도 제법 있다고 한다. 북유럽이나 미국 등에서 온 선수들도 있지만, 평균적으로 가장 강한 외국인 선수는 몽골 출신 선수들이다. 예전에는 하와이 출신[15]들이 스모판을 휩쓸었던 시절도 있다. 20세기 말 쯤? 이 시기에 대표적인 선수가 체중 200kg이 넘어가는 고니시키, 아케보노, 무사시마루 등이며, 보통 2명을 넘기기 힘든 요코즈나가 5명이나 나온 시기 이기도 하다. 오제키도 두 자리수가 된 것은 현대 스모 이후 최초라고...

2008년에는 불가리아 출신의 고토오슈 가쓰노리가 유럽인 최초로 우승하기도 했다. 2000년대부터 말만 일본 국기이지 챔피언 자리는 정작 외국인들이 휩쓰는 상황(...)이 되다보니, 일본의 자존심인 스모를 되찾자는 마음으로 일본인 요코즈나가 탄생하기를 바랬으나, 현실은 요코즈나는 커녕 일본인의 우승도 요원한 상태... 였다가 2016년에 고토쇼기쿠(琴奨菊) 가 10년 만에 일본인 우승을 달성하고, 2017년에 기세노사토(稀勢の里·본명 하기와라 유타카) 선수가 요코즈나 하쿠호(白鵬)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19년 만에 일본인 요코즈나가 탄생했다.

9. 사건사고

9.1. 승부조작

2010년 6월경에는 적지 않은 수의 선수와 스승들이 야쿠자들과 관계된 야구도박에 연루되는 문제로 인기가 떨어져 NHK에서 여름의 나고야 대회 생중계를 중단해버렸다. 이 도박사건으로 인하여 덴노 사배라고 부르는 우승컵도 나고야 바쇼에서는 주어지지 않았고 대거 유력한 후원인 및 회사들이 나고야 바쇼에 대한 후원을 중단하여 야구도박 사건은 스모역사상 최대의 불명예 사건 중 하나로 남게 되었으며, 일본 스모 협회에서는 이사장을 교체하고 폭력단과의 연계를 단호히 근절하고자 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2010년 9월 경기부터 NHK방송을 재개했으며, 우승컵 및 각종부상들이 다시 주어지기로 발표되었다.

그러다가 야구도박사건을 수사하면서 경찰이 승부조작을 시사하는 내용의 문자메시지[16]를 찾아냈고, 2011년 들어와서 현역 스모선수 2명과 지도자 1명이 스모경기의 승부조작을 인정함으로서 충격에 빠졌다. 정기 리그전에 해당하는 2011년 3월 하루바쇼(春場所)는 취소되었고[17], NHK와 후지TV는 자체적으로 열던 스모대회를 취소했다. 문부과학상은 스모협회의 공익법인 허가를 취소할수 있음을 시사하고 나섰다. 스모 대회를 독점 중계해온 NHK는 스모 중계에서 완전 철수할지를 신중히 검토 중이다.

승부조작사건으로 인한 신인도 추락으로 NHK는 5월 스모중계권을 포기하고 대회를 방송하지 않았다. 단 정식명칭 나츠바쇼가 아닌, '기량심사바쇼'라는 이름으로 5월 경기는 매년 거행되던 형태로 국기관에서 치루어졌다. 또한 승부조작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다수의 마쿠노우치급과 쥬료급 리키시가 은퇴를 하는 크나큰 수업료를 치르게 되었다. 사실 이 승부조작사건에 연루된 리키시들도 일부는 진위를 두고 논란거리가 되었다.

7월의 나고야 경기는 NHK에서 중계되었다. 앞으로 다른 예외상황이나 물의가 없는 이상 계속 NHK와 스모협회간 중계권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스모가 예전에 비하여 형편없는 상황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일본의 국기'임을 자임하는 이상.

이 와중에 외국인 선수들한테만 승부조작을 뒤집어씌워서 몽골선수 & 유럽선수 다수와 한국인 유일의 세키토리였던 가스가오(春日王克昌-김성택[18])이 강제은퇴를 해야 했다. 물론 김성택 본인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며, 일본 내에서도 김성택 등의 외국인 기사들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우는 데에 대한 의문이 많았다. 특히 김성택의 경우는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승부조작에 가담한 가능성이 희박한 편이다. 링크 이들중에서도 물론 조작에 참여한 사람은 많았지만 모르는 사람이 봐도 노골적으로 조작질 해댔던 일본 자국인 선수들은 다 봐주는 스모협회를 보며 조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인 리키시들도 이 건으로 퇴진한 경우는 있었으나, 직접적 정황이 나타난 소수를 제외하고 별로 인기가 없는 리키시들이었으며, 수사진행 상황에서도 다수의 경우가 물증 아닌 일부인들의 진술 위주로 진행되었다. 사실 가장 의혹이 심한 선수가 장기간 오제키를 지키고 있었던 순혈 일본인 카이오(魁皇博之) 인데 이선수에 대해선 조사조차 안 했다는거다. 죄질로 따지면 카이오야 말로 영구제명을 시켜도 시원찮을 수준의 노골적인 오오제키 사수질이 계속됐는데도 말이다. 그 카이오는 2011년 7월 나고야 바쇼에서 연령과 성적부진으로 은퇴선언[19]을 하였다. 시기가 늦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카이오의 존재는 점점 외국인 리키시에게 위축당하는 일본인 리키시를 볼 때 상징적으로 희망의 존재가 되었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사실 훨씬 이전부터 승부조작 의혹이 제기되긴 했다. '괴짜경제학'(원제:Freakonomics)이란 책에서도 밑단계로 내려가기 직전 다시말해 축구로 치면 2부 리그 강등 직전인 선수가 강등이냐 아니냐를 결정짓는 시합에서 기괴할 정도로 승률이 높다는 점[20], 선수층이 좁고 양성 도장들도 서로 관련이 있다는 것, 경기자체가 순식간에 승부가 지어지는 관계로 슬쩍 힘을 빼주는 정도로 간단하게 져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승부조작의 난이도에 비해 얻는 인센티브가 너무 크다는 것[21]등을 들어 아마도 승부조작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게다가 문제를 증명하겠다고 했던 이들 중 두 명이 의문사를 맞았다. 한 명은 현역은퇴 후 지도자 신분에서 1996년 4월 본인의 승부조작 관련 저서발간을 앞둔 상태였고, 다른 한명은 해당 도장의 후원자였다. 더욱 공교로운 점은 이 두명은 죽은 날짜와 병원, 병명 및 상황이 모두 일치하여 의혹을 부채질하였다. 참고로 이 책은, 2005년에 나왔다. 고질적 문제였던 것.

9.2. 2018년 도효(스모 시합 판) 여성 출입 금지 논란

2018년 4월 4일, 교토 마이즈루시 문화공원체육관에서 봄맞이 스모 경기 도중 인삿말을 하던 다타미 료조 마이즈루 시장이 갑자기 쓰러지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관객들이 우왕좌왕하는 와중에 관람석에 있던 여성이 응급처치를 위해 도효 위로 올라갔으나, 장내 아나운서가 "여성은 도효에서 내려가 주십시오."라는 안내 방송을 내보낸 것이 알려져 큰 논란이 되었다.#

당시 도효에 있던 경기 심판도 여성에게 똑같이 이를 요구했다고 한다.[22] 결국 해당 여성이 내려갔고 이후 구급대가 도착, 시장을 병원으로 후송했다. 참고로 도효에 올라가서 심장 마사지를 실시한 여성은 현직 간호사라고 한다.[23]

심지어 스모장에 여성이 올라와서 부정탔다면서 소금까지 뿌려댔다.[24] # 스모 협회는 여성 때문에 소금을 뿌린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그러나 아사히 신문 기사의 헤드라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여성 때문에 소금을 뿌렸다고 보는 관점이 더 일반적이기는 하다.

사건이 알려진 뒤 일본 국내에서는 거센 비판이 휘몰아쳤다. 안 그래도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이런 악습을 유지하냐고 논란이 많았던 참이었고, 2000년에는 오오타 후사에 오사카 지사가 스모 대회 우승자에게 상패를 전달하는데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경기 장소로 올라가지 않고 경기 장소 아래에서 상을 수여했던 일이 있어서 논란이 되었을 정도였다. 여기에 더해 사람의 생명이 달린 급박한 상황에서까지 전근대의 구태의연한 금녀 관습을 고집하는 것이 과연 타당하냐는 불만이 곳곳에서 폭발했다. 이 사건으로 각종 미디어에서는 일제히 스모 협회를 극딜했고 SNS상에서도 스모계의 구태의연한 악습에 비난이 폭주, 결국 스모 협회는 "사람의 생명이 달린 상황에 부적절한 대응이었다"는 내용의 공식 사과문을 올렸으나, 금녀의 전통은 계속 지키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스모계에서 혼성 시합 금지 및 여성 참여 금지의 전통을 명시적으로 내세운 시기는 메이지 시대다. 근대화 과정에서 정부가 여성이 옷을 풀어헤치고 스모를 하는 것을 후진(?)적인 문화라고 간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러니 이 금녀 전통이라는 것이 고작해야 한세기 전에 태어난 것이며, 전통을 세운 이유도 상당히 성차별적이었다는 것이다. 근대 이전의 기록을 보면 여성이 스모를 즐겼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보인다.

9.3. 2018년 어린이 시범 경기 여아 차별 논란

게다가 어린 여자아이까지 막아선다는 점에서 다시 논란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이에 스모 협회는 여자가 남자에 비해 부상을 당하기 쉬워(?), 안전을 고려해 그렇게 결정했다”고 언급했다는 보도까지도 나와서 애초부터 협회의 결정으로 당초 참석이 예정되어있던 5명의 여자아이들은 참석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에 한 스모 관련 단체에서는 ”불참 통보를 받아 실망하고 울었던 아이도 있었으며 다음에는 참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당연히 논란이 됬는데 스모 경기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이러한 과거 악습인 금녀 규칙을 굳이 고수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는 것이 지적되었다.

10. 그 외

한국 사람들에게는 우메보시, 낫토, 가부키와 함께 일본 문화의 관문 중 하나. 우메보시와 낫토, 가부키, 그리고 스모를 순수한 의미에서 즐길 수 있다면 일본 문화에 상당히 친숙해졌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지도. 고종과 순종은 망국 이후 석조전에서 요코즈나 히다치야마가 선보이는 스모 경기를 관람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스모 선수가 살이 쪄서 대변 후 뒷처리를 못하므로 그부분을 닦아주는 직업이 실존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25] ,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스모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사람들이 많은 일본에서조차도 아직까지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떠돌고 있는 도시전설 중 하나인데[26], 실제로 스모 선수는 위에서 언급된 바 있듯, 살이 찌긴 했어도 운동 선수라, 일반인들과 근육량, 운동량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난다. 유연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실제 스모 선수가 하는 훈련 중 '마타와리(股割り)'라고 해서 양 다리를 벌리고 앉은 상태에서 땅에 배와 가슴을 붙이는 훈련이 있을 정도로, 살이 찐 상태에서도 운동을 잘 하지 않는 일반인보다 대체로 유연성이 훨씬 좋다. 즉, 혼자 뒷처리를 하는 것은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스모 선수에게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뜻. 실제로 어떤 일본 방송에서 유명 스모 선수에게 장시간 비행기를 탔을 때 일반인들에게도 조금 비좁은 비행기 화장실을 어떻게 이용하고 대변 후 뒷처리는 가능하냐는 질문을 했는데, 전혀 문제 없이 이용하고 뒷처리까지 잘 하고 나왔다는 답변을 한 적이 있다.

이러한 속설이 생기게 된 계기는 위에서 언급한 '쓰케다시(付出) '제도의 쓰케비토(付け人)'가 그런 일을 할지도 모른다는 소문 때문인데, 마쿠시타(幕下) 이하 리그에서는 주어지지도 않고(오히려 그 이하 선수들은 쓰케비토가 되는 입장), 잔심부름이나 짐을 들어주거나, 등을 닦는 역할 정도를 도와주는 것이지, 역시 그부분을 닦는 것을 도와주지는 않는다고 한다.

스모 경기중에 입는 저 바지는 '마와시'라고 부르는데, 일반적으로는 세탁하지 않는다. 세탁을 하면 일종의 '기'가 씻겨간다고 믿는 풍조가 있기 때문이다. 경기 끝나고는 빨랫줄에 걸든가 해서 그냥 바람과 햇빛에 말리는걸로 끝. 국내에 개봉했던 으랏차차 스모부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스모 선수들은 머리에 촌마게를 트는데 리키시들에게는 이 촌마게가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지위에 따라서 형태가 전부 다르다고 한다. 또한 경기 중에 상대의 촌마게를 쥐는 것은 반칙행위이다. 은퇴하면 촌마게를 자르는 단발식이 열린다. 덕분에 머리카락이 심심한 리키시들은 이 촌마게 트는 것이 고역이라고 한다. 정반대로 머리숱이 너무 많은 경우 나카조리(中剃り)라고 하여 속알머리를 배코친 뒤 상투를 튼다.

스모 경기 중 임팩트 있는 시합[27] 이 나오면 관중들이 방석을 집어던지는 퍼포먼스를 해준다.[28] 그리고 '위험하니 방석을 던지지 마시오.' 라는 장내방송이 흘려나온다.(...) 물론 방석 자체가 위험한 건 아니지만 가끔 착각해서 방석이 아닌 소지품을 던진다거나 애먼 물건을 애먼데 맞추거나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듯.

정규바쇼에서 우승하면 우승자가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2014년 5월 나츠바쇼에서 우승한 69대 요코즈나 하쿠호가 기자회견을 거부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관계자가 몇 번이고 설득했음에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아무런 입장 표명도 없었는데, 며칠 후 하쿠호가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5월 바쇼 중에 임신 5개월이던 부인이 유산을 했는데, 기자회견에 참석하면 유산에 대한 질문이 나올 것으로 보아 부인을 배려하고자 기자회견을 거부했다고 밝혔다.원문기사 그의 블로그엔 그를 격려하는 메세지가 1000여건 이상 들어오고, 한편으론 매스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원문기사

후타바 채널 같은 곳에서 스모를 소재로한 합성사진에서는 스모선수가 막 날아다니고 에네르기파 같은것도 쓰거나 하는식으로 패러디된다. 바로 이 짤방. 다만 이 짤방들에 등장하는 격투기들은 '相撲(스모)'가 아니라 'SUMO'라고 부르는 게 일반적.

이것들의 원조는 바로 위의 영상으로, 일본에서는 오니무소(鬼無双)[29], 해외에서는 The Real Sumo Fighting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유튜브 업로더 checkit014[30]가 만든 이 영상은 8탄까지 나왔으나, 그 이후 더 이상 올라오지 않고 있다. 그런데 2015년 4월 25일, 니코니코 초회의를 통해 이벤트 매치가 벌어졌다.

곁다리로 스모를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만들자는 이들도 일본에 있긴 한데, 일본 스모 협회조차도 매우 부정적이다. 다만 여자 스모의 경우 일본 국내에서는 별 인기가 없지만 반대로 세계 대회가 열리기도 한다는 듯.

보통 NHK BS위성방송에서 스모 경기를 중계 방송해주는 바람에 애니메이션 덕후들에게 본의 아닌 피해를 끼치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사건은 2000년 3월 21일 카드캡터 사쿠라 최종회 방영 사건이었다. 당시 무사시마루(武蔵丸)와 타카노나미(貴ノ浪)의 경기가 연장되는 바람에 카드캡터 사쿠라 방송이 늦어지면서, 결국 최종편 녹화 당시 사쿠라 대신 스모를 녹화할 수 있었고, 가장 중요한 마지막 장면 4분 녹화를 날리게 만든 사건이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사건을 무사시마루의 비극 (武蔵丸の悲劇)이라는 이름으로 회자될 정도. 자세한 내용과 당시 방영 영상은 해당 항목을 참고.

스모의 승패를 가를 때 부채(軍配ぐんばい)를 올려서 판정을 하는데, 여기서 일본어의 관용구인 ~に軍配が上がる(~이(가) 승리하다)가 파생되었다. 직역하면 '~에게 부채가 올려졌다', 즉 이겼다는 의미.

스모의 등급 결정과 관련이 없는 임시 대회나 순업 에서는 숏키리(初っ切り)라는 코너가 있는데, 본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리키시들이 나와서 스모의 금칙들을 재미있게 콩트 형식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전통이다. 처음에는 단지 금칙들만 가지고서 개그를 보여주었다가, 요즘에는 프로레슬링 패러디가 나온다던지 다양한 소재들이 나온다. 이거 때문에 스모를 즐겨보는 사람들도 많은 듯. 예시 1 예시 2

여담으로 덴뿌라와 더불어 일본을 방문한 찰리 채플린살린 스포츠이기도 하다.

11. 관련 인물

12. 관련 캐릭터

13. 관련 문서


  1. [1] 한자를 한국식으로 읽으면 "상박"으로, 서로 때린다는 뜻이다. 용호상박의 그 '상박'이다. 스모는 물론이고 씨름도 상박이라고 칭하는 경우도 드물게 있다.
  2. [2] 거의 과비만이나 다름없는 체중과 몸매, 그리고 선수생명이 다하면 정상적인 체중으로 돌려놔야 한다는 것, 그리고 문제는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3. [3] 육중한 무게의 몸으로 무대뽀로 밀어내는 것이나 다름없는 동작이라 경쾌하고 날렵한 동작을 선보이는 기타 다른 종목과 비교할때 무식해보일 수 있기 때문.
  4. [4] 일본서기에 スマヰ라는 표현으로 등장
  5. [5] 다만 원래 2개대회 연속 우승을 해야주는 칭호인데, 하나만 우승했는데도 칭호를 받아서 비판여론도 좀 있다.
  6. [6] 마쿠우치라고도 한다.
  7. [7] 앞치마처럼 생긴 마와시인데 마쿠시타 이하에서 하얀색 마와시를 쓰는것과 달리 검정 파랑 붉은 분홍(!) 등 다양한 색상을 쓸 수 있다. 물론 단색으로만 가능하고 지나치게 화려하다든지 알록달록 색상은 금지다. 주로 후원회나 출신학교에서 지원한다.
  8. [8] 한국으로 치면 전문의 의사와 비슷한 급여를 받는다. 대체로 스모선수들은 주료승급시기에 준해서 결혼하는 사람이 많다.
  9. [9] 경우에 따라서는 카부키처럼 이 리키시 이름을 다른 선수가 이어 쓰는 경우도 있다. 유명한 예로는 다카노하나 등등. 도장별로 돌림자도 있다.
  10. [10] 실제로 승부에 이기기 위해 전력을 다하지 않는 다. 자칫 다치기라도 하면 정규 바쇼에 영향이 미치기 때문.
  11. [11] 경기에서 이겼을 때 그 경기에 걸린 현상광고료의 50%를 선수가 갖고, 45%는 협회에 적립하여 은퇴시 일괄 지급받으며, 5%는 협회가 징수한다. 경기에서 이긴 선수가 예를 표할 때 심판이 건내주는 봉투가 바로 이것. 즉 이기면 바로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는 셈이다.
  12. [12] 아사쇼류, 아사세키류, 도키텐쿠처럼 고교/대학으로 유학오는 경우도 있다.
  13. [13] 실례로 몽골인 요코즈나 하루마후지는 쉽게 증량이 되는 체질이 아니라서 먹고 토하고 선배들한테 맞으면서 혼나고 다시 먹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14. [14] 예전에는 자신이 응원하거나 성적이 좋은 리키시의 몸에 응원의 뜻으로 지폐를 붙여주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걸 털어먹는 쓰리꾼들도 들러붙고...
  15. [15] 하와이에 사는 원주민인 폴리네시아인들은 전 세계적으로 봐도 매우 체격이 좋고 힘이 센 민족 중에 하나이다. 덕분에 인구수 대비 엄청난 비율로 격투기, 럭비, 프로레슬링, 미식축구 등 큰 체격과 힘이 중요한 스포츠에 많이 진출한 편.
  16. [16] 구체적인 조작방법과 돈거래를 시사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17. [17] 이는 1946년 경기장 보수공사로 인한 대회미개최를 제외하고 1833년 시작 이래 처음.
  18. [18] 씨름선수 출신, 김남일부평고등학교 동기
  19. [19] 은퇴시기가 늦어진 이유에 대하여 카이오의 고향인 후쿠오카 지역의 규슈 바쇼 수입유지가 원인이라 지적하는 시각이 있다. 11월 개최인 규슈 바쇼의 경우 최근 몇년 사이 관객수가 격감했으며, 그나마 남은 관객도 카이오가 은퇴할 경우, 더더욱 경기를 직접 관전할 이유가 없으므로 입장자=수입, 즉 돈과 직결해서 생각해 볼 때, 협회에서는 될 수 있으면 카이오를 오래 붙들어두려 했고, 승부조작도 그 배경에서 거론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치요노후지를 뛰어넘는 1047승을 기록하였다.
  20. [20] 물론 강등직전인 만큼 더 열심히 한다든가 절박함에 더 큰 힘을 낸다든가 할 수도 있지만 그걸로 설명이 안 될만큼 높았다. 통계적으로 봤을 때 승률은 48%정도로 나와야하지만 실제론 80%에 육박했다. 게다가 8승이 유지 기준인데 7승 째인 사람이 8,9승을 이미 올린 사람이랑 붙었을 때를 통계로 낸 것이었다. 이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더 강력한 선수지만 져 주는데 부담이 없는 선수인 것이다.
  21. [21] 축구나 야구의 2부리그를 봐도 알겠지만 스모도 대우 차이가 엄청나게 크다
  22. [22] 여성이 도효에 올라갔을 때 일부 관객이 여자가 도효에 올라가도 되느냐고 쓸데없이 지적을 했고 이를 들은 스모협회 측에서 안내방송을 내보냈다는 목격담도 있다.
  23. [23] 2018년 4월 5일 日本テレビ NEWS ZERO 보도내용
  24. [24] 경기나 훈련 도중에 리키시가 부상을 입거나 갑작스럽게 쓰러지는 등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 부정을 쫒는 의미로 소금을 뿌리는 관습이 있는데,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소금을 뿌린 것은 여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시장이 도효 위에서 갑자기 쓰러졌기 때문일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25. [25] 네이버 지식인 등의 답변에서 이러한 소문을 마치 그러한 직업이 실존하는양 연봉을 써놓고 또 이러한 잘못된 소문을 퍼나르는 사람들이 문제다. 똘추, 뽕아,시다바리 등이 그런 직업을 가리킨다고 하는데 시다바리는 일본에서 전혀 다른 직업을 가리키는 말이며, 똘추와 뽕아는 애초에 일본어가 아니다. 그냥 한국어의 비속어에 불과한 말이다.
  26. [26] 한국의 네이버 지식인과 보통 비슷한 느낌인 일본의 야후 재팬 지혜대에서 가장 많이 올라오는 질문 중 하나일 정도로 일본에서도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한국과는 달리, 스모에 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소문일뿐이라며 제대로 된 설명을 해준다.
  27. [27] 거의 대부분은 요코즈나가 패배한 경우
  28. [28] 방석을 빌릴때 일정액의 보증금을 지불하고 나중에 반납한뒤 되돌려 받는 시스템이어서 내 보증금을 네가 가져라라는 의미에서 시작된 풍습.
  29. [29] 에드몬드 혼다의 슈퍼콤보. 한국식 독음은 '귀무쌍'으로 읽는다.
  30. [30] '체키쨩 14세'라는 웹 사이트를 운영하는 일본인이다. 라그나로크 온라인이 인기였던 시절에 가끔 자신의 캐릭터인 '체키쨩'(직업:몽크)등을 활용한 단편 RO웹툰을 여럿 그리기도 했다.
  31. [31] 아래의 캐릭터들과는 달리 키도 작고 여리여리한 체격의 부잣집 아가씨임에도...
  32. [32] 스모부 소속 유령부원.
  33. [33] 원래 명칭이 스모 정식 기술명인 네코다마시(ねこだまし)이다. 기술 효능 또한 유래에 걸맞게 선공기+풀죽음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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