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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linism / Сталинизм

1. 개요
2. 상세
3. 특징
4. 논란
4.1. 과연 진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맞는가?
4.2. 마르크스/레닌주의?
5. 비판
5.1. 공산독재체제의 전범
5.2. 소련중심주의의 폐해
5.3.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서의 비판
6. 스탈린주의로 통치했던 공산주의 지도자들
7. 여담
8. 관련 문서

1. 개요

이오시프 스탈린은 그 특유의 독재정치로 인해 스탈린주의라는 독자적인 사상을 낳았고, 이는 오랫동안 전 세계 공산주의자들에게 현실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보급되었다. '일국사회주의론'이라 부르기도 한다.

레닌이 죽은지 5년 뒤에(1929), 스탈린 자신은 자신의 사상을, 고전 마르크스주의레닌주의 사이의 모순을 적당히 자기식으로 얼버무린 후, 정당한 후계 사상이라는 의미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그 자신이 고안한 신조어로 표현했다.[1][2] 자주 오용 되곤 하는 용어인데, 마르크스 사상은 마르크스주의고, 레닌의 사상은 볼셰비즘이며,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용어는 그냥 "마르크스주의+레닌주의"라는 의미가 아니라 스탈린의 사상을 뜻하는 표현이다.[3] 스탈린주의라는 용어는 1930년대에 라자르 카가노비치(Lazar Kaganovich)라는 소련의 정치가가 찬양의 의미에서 쓴적이 있지만[4], 광범하게 쓰이기 시작한 건 스탈린 사후에도 한참이 지난 1956년에 열린 제 20차 소련 공산당 전당 대회부터이다. 흐루쇼프가 스탈린의 죄과를 공공연히 비난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 그 이유이다.[5] 이후 스탈린주의라는 용어는 사회주의 운동에서는 마르크스-레닌주의 라는 사상을 스탈린의 잔학성과 연결시켜 정당성을 상실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트로츠키주의자들이 거의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가끔 스탈린주의와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용어를 전혀 별개의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나, 마치 반스탈린주의자인것 처럼 스탈린을 비판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이탈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앞서 말했듯이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스탈린이 자신의 이념적 노선을 칭하는 용어였다. 스탈린주의라는 말은 그냥 스탈린 시절의 정책을 의미하는 경우를 말하기도 하지만, 스탈린 자신은 나름대로 마르크스와 레닌의 사상을 분석해서 본인 취향대로 분석, 종합해서 제시했고 그것을 정석 공산주의 이론으로서 각지의 공산당에 보급한게 "마르크스-레닌주의"다.[6] 따라서 스탈린주의라는 것은 흐루쇼프의 비판(소위 수정주의[7])따위로 사라지지 않았고, 20세기 공산주의 운동은 스탈린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간에 스탈린 없이는 이해가 불가능하다.[8]

이에 맞서서 트로츠키 본인과 그 후계자들은 자신의 사상을 '트로츠키주의'라 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볼셰비키-레닌주의'라는 단어를 선호했다. 남한 운동권의 유일한 정통 트로츠키주의 단위인 볼셰비키그룹의 예전 이름도 '볼셰비키-레닌주의자'이다. 결국은 같은 레닌 이름 하나를 걸어 놓고 서로 우리가 정통입네 하며 원조전쟁을 벌인 것이다.

스탈린주의(마르크스-레닌주의)는 냉전기 동안 국제 공산주의 운동에서 압도적인 다수파를 차지했고[9], 흐루쇼프가 스탈린을 격하해서 해빙기가[10] 왔다고 하지만 공산주의 이념상 큰틀[11]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다. 변증법적 유물론을 왜곡해서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진보적인 이데올로그 들이자 체제라며 독재를 정당화 하는 것은 물론, 흐루쇼프 집권기 이후에도 민주화 운동에 군대를 보내서 유혈진압하는 만행은 빈번했고, 이 때문에 해외 사회주의 운동에서는 이들을 가르켜 탱크로 사람 깔아 뭉개는거 좋아하는 "인간 도살자"라는 의미에서 탱키(tankie)라는 멸칭으로 불린다. 냉전 붕괴 이후 이들의 세력이 약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적지않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이 가장 좌파적이며 진보적이라고 자칭하지만, 실제 하는 짓이라곤 독재자 찬양하고 권위주의 독재국가 빨아대면서 자유와 민주주의 등을 혐오하는 짓거리를 하는지라, 오늘 날에도 반스탈린주의 좌익진영과의 험악한 대립을 유지하고 있다.

2. 상세

스탈린의 사상은 그의 정치적 경력의 본격적 출발점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러시아 혁명의 뿌리인 마르크스주의에 그 근간을 두고 있다. 마르크스는 민주적인 사회주의 국가가 성립하기 위한 전략을 상당히 세밀하게 짜 놓았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일단 국가 권력은 혁명이 닥쳐왔을때 혁명적인 주체(전위당)들이 총력을 다해 찬탈하고 프롤레타리아 무산계급 대중을 그 전위당이 일깨운다는 형식이다.

문제는 이것이 사실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을 이루는 전략이자 사회변혁 방식이긴 하나, 마르크스는 살아생전 전략가로서의 사회주의/공산주의 사상가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가 이러쿵 저러쿵 해서 망하고 결과적으로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하게 된 다는 말만 수차례 했고, 노동자들의 세력화를 위해 정당건설과 조직화에 대해 이야기하긴 했지만, 그는 제대로 된 사회주의 혁명을 목격한 적이 없었고, 다시말해 사회주의 혁명을 경험한 적이 없다.[12][13]

이러한 그의 사상을 이어받아 보다 구체화하고 현실화 시킨것이 레닌주의다.[14]레닌의 사상 중에는 현실적으로 써먹고자 만들어놓은 사상이 굉장히 많은데, 정치적인 면에서는 일단 민주집중제가 있고, 경제적인 면에서는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통한 재화의 배분이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실 마르크스 본인은 사회주의 국가의 성립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주장한 바가 전혀 없다. 마르크스의 대표적인 저작이 자본론인 것에서 알 수 있듯 마르크스가 평생에 걸처 주력한 작업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분석'이지 '사회주의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자신이 주장한 역사관인 변증법적 유물론에 따라 자본주의 역시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고, 자본주의의 발전이 극에 달하면 그 결과로 새로운 경제 체제가 나타날 것이며, 봉건제 경제가 영주귀족정을 가져오고 자본주의 체제가 도시 시민계급 중심의 정치체제를 가져온 것처럼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경제체제(마르크스의 정의에 따르면 공산주의) 역시 새로운 정치체제를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했을 뿐이다. 이 새로운 경제-정치체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일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마르크스는 일관적으로 '나로써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리고 우리 생전에 볼 수는 없을 것이다(즉, 그것을 구체화하는 것은 우리의 역할이 아니다) 라는 대답을 내놓았을 뿐이다. 다만, 인류의 발전과 진보에 대한 낙천적인 기대가 가득하던 빅토리아 시대의 토양 속에서 마르크스는 '미래에 도래할 새로운 체제는 지금보다 더 나은 체제일 것'이라고 기대했고, 그 지향점으로 '개인의 자유로운 추구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능력에 따라 생산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행복한 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 외, 민주집중제라거나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같은 구체적인 실행의 청사진을 제시한 것은 마르크스 자신이 아니라 후대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다.

레닌의 민주집중제는 간략히 말하면, 각 지역에 소비에트(평의회)를 건설하고, 그 평의회의 의견을 받아 상부에 건의하는 한 단계 더 높은 평의회를 건설하고, 국가 수도에는 그 의견을 종합하고 조율하며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는 최고 평의회를 건설한다는 방식이다.

이런 제도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와는 달리 시민의 의견이 중앙에 직접 전해질 수 없기에 상부의 권력을 강화하게 된다. 일부의 의견과는 달리 현대 지방자치제에서 지방 자치단체의 주된 역할은 중앙 정부에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레닌은 토론을 장려하는 듯 하면서 한번 상부에서 의견이 결정되면 하부가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으므로 민주집중제는 이름과는 달리 까딱하면 상부의 권력을 강화하는 독재의 경향을 띌 수 있었고 발전 수준이 낮은 러시아 사회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더욱 농후했기에 레닌은 이를 항상 경계하며 두려워했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트로츠키가 말한 혁명의 수출이었다.

레닌주의는 스탈린주의 독재의 기초가 되어버렸지만, 이는 현대 민주주의에 비유해보면 현대민주주의가 언제든지 파시즘이나 우민정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모든 민주주의 국가가 우민정으로 타락해서 몰락한 것은 아니지만, 레닌주의를 기반한 모든 나라가 강력한 중앙 권력을 견제할 수단이 없어 전체주의화 되다가 몰락했던 역사적 사실은 레닌주의 자체에도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고 해석할 수 밖에 없다. 자세한 내용은 민주집중제 참조.

3. 특징

스탈린주의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1. 국가 총력태세의 유지[15].(다시말해 총력전을 위한 철권통치)
  • 2. 국가주도하의 산업개발 및 재화 분배.[16]
  • 3. 인민은 국가의 영도를 받고, 국가는 국가를 장악한 당의 영도를 받고, 당은 당 중앙의 영도를 받는다.[17]

사실상 스탈린주의는 볼셰비즘 급진파의 연장선 아래에 있었고, 볼셰비즘 급진파는 이전의 블라디미르 레닌이 주창한 신경제정책을 살릴 생각이 없던, 철통같은 국가주도형 사회주의를 해법으로 간주했다. 결국 민주주의이긴 한데 문제는 당의 영도를 받는 사람은 완전히 쌩까는 구조의 국가체제를 구상하는 집단의 중핵이 권력을 찬탈한 것이 바로 스탈린주의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이전의 절대군주제에 맞먹는 강권독재 시스템이 되어버린다.

4. 논란

4.1. 과연 진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맞는가?

이런 독재 시스템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기존의 사회주의 이념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관점도 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에서의 '독재'라는 단어는 현대에 생각되는 무단정치 시스템이 아니라, "현재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착취자 집단(부르주아 등)을 배제하고 의식화된 노동자/농민이 권력을 장악함"의 의미를 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특정 개인/집단이 권력을 독점하고 다른 집단을 배제하는 것이 바로 독재이며, 마르크스건 레닌이건 이런 '독재'를 성립시키고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내세운 것은 바로 폭력이었다는 점을 보면 모든 독재를 부정하고 '민주주의'를 절대적 가치로 중요시하는 중립적 관점에서는 현대의 무단정치보다 낫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권력의 제한과 견제를 부정하는 이념은 어떤 이유를 붙이건 독재를 정당화하는 것이다.[20] 마르크스나 레닌, 그리고 트로츠키까지도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모두를 포괄하는 민주주의는 불가능하고 어차피 독재는 불가피하니 부르주아 독재와 프롤레타리아 독재 가운데 두 개의 독재 가운데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고 전제하고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추구한 것이다. 어찌 보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의식화된 노동자와 농민은 억압받는 집단이자 다수 집단으로서 항상 옳은 집단으로 평가되었고, 이들이 잘못을 저지를 리가 없다고 믿었을 뿐이라는 것'이라는 해석이 있는데, 이것이 마르크스-엥겔스-레닌-트로츠키의 입장은 아니다. 이들은 '노동자들이 '생산 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할 수가 없기 때문에, 정권을 잡더라도 착취자의 위치에 설 수가 없다'는 이유를 들었을 뿐이다. '옳다, 그르다'의 도덕주의적 판단이 아니라, '노동자가 정권을 잡으면 생산 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국유화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윤이 아닌 필요에 따라 운영되는,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하지만 스탈린주의에서는 이러한 입장을 과장하여 노동계급의 도덕적 우월성을 전제했는데, 노동자와 농민이 항상 옳은 집단이라고 전제하는 것은 "황제 폐하께서 항상 민심에 따른 올바른 판단을 내려주실 것이니" 전제군주제도 민주주의지 독재가 아니라고 믿는 것과 같은 오류이다.

위에서 노동자와 농민이 옳으냐 그르냐를 논하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는데, '옳다, 그르다'의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에게 옳은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를 수 있기 때문이다. 레닌주의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은 해석하기에 따라 '어차피 어떤 계급이든가에 의한 독재는 불가피하다'는 전제를 깔고서, 일종의 공리주의의 연장선상에서 '다수인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여러 중간계급에 속한 노동인민들에게 최대의 행복을 보장하기 위하여 소수인 부르주아 지배계급의 행복을 배제한다'는 차원에서 나온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더 많은 수를 차지하는 노동인민에게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사회와 인류의 발전을 위해 더 바람직하다'고 전제하고서 나온 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개념인데... '어떤 계급에 의한 것이든 독재는 불가피하다'라는 전제나 '더 많은 수를 차지하는 노동인민에게 최대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라는 전제에 대한 가치판단은 각자 알아서 할 문제다.

그렇다면 이렇게 나온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개념에 대해서 스탈린주의에서 말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과연 레닌이 말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같은 것이 또 다른 논란이 된다. 트로츠키주의적 관점에서는 위에서 설명했듯 '어차피 어떤 계급에 의한 것이든 독재는 불가피하므로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서 나온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스탈린주의에서는 프롤레타리아 계급 그 자체에 의한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와는 구분되는 관료집단에 의한 독재로 곡해했다고 할 수 있다. 스탈린 관료집단에서 자기네들의 독재를 '우리는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적 이익을 대변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지도하는 위치에 있으므로, 관료집단이 곧 프롤레타리아를 대표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포장한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도 독재는 독재이지만 어차피 어떤 계급에 의해서든 독재는 불가피하니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더 나은데, 스탈린주의에서 말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원래 의미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아니고 이름만 무단 도용한 다른 형태의 독재이며, 그게 아니라 원래 레닌이 의도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트로츠키주의의 입장이다.

어찌되었든 스탈린주의의 독재든, 레닌이 말하는 '원래 의미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든 무단정치는 무단정치고 독재는 독재다. 스탈린주의의 독재는 그것이 정말로 레닌이 '다수인 노동인민에게 최대의 행복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하다'라고 말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가 논란이 되는 것이다.

4.2. 마르크스/레닌주의?

일반적으로, 스탈린주의 시대의 러시아 공산당과 2차세계대전 이후 탄생한 수많은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의 공산당(북한의 경우에는 조선로동당)[21] 들이 당 강령에 "우리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따르는 사회주의정당이당!"이라는 부분을 삽입했다.[22] 하지만 사실 이 강령들에 나온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사실상 스탈린주의를 말하는 것이었고, 소비에트 집중식 국가 시스템이나, 당 중앙 시스템, 국가개발 5개년 계획, 독재 및 감시 시스템 확립이라는 것은 사실상 소련의 방식을 빼다 박았다.

결국 현실사회주의의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사실상 스탈린주의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물론 현실사회주의라 이야기하는 사회주의가 완벽히 스탈린주의와 싱크로율이 맞지는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각각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변화했다. 소련은 일단 흐루쇼프 시기를 지나면서 소련식 사회주의가 한번 바뀌었고, 브레즈네프 시대부터 소련 특유의 스타일의 사회주의가 확립되었기 때문이고, 유고슬라비아티토 특유의 티토주의라는 이름이 생겼고, 중국마오주의이라는 것이 생겼다. 하지만 이들 모두 저마다 뿌리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따르고 있기때문에 당 규약과 강령에 마르크스/레닌주의라고 명시했던 것(그래서 동유럽과 비동맹노선의 사회주의를 뭉뚱그려 "현실 사회주의"로 말하기엔 좀 어패가 있긴 하다).

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1950년대 이전까지는 사실상 모두 스탈린주의식 사회주의를 따르고 있었고, 그렇다고 이제와서 1940년대처럼 위대한 대원수 스탈린 운운하기는 좀 뭣하고, 그러다 보니 원조의 원조를 찾는 식으로 각자 나름의 현실 사회주의를 마르크스/레닌주의라고 써 놓은것이다. 각자 원조따지는 종교전쟁도 아니고 이거 뭐[23]

현실사회주의에서의 자세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관해서는 해당항목 참조.

5. 비판

사실상 공산주의의 이미지가 오늘날 십창나게 만든 가장 큰 주범이자 근원이나 다름없다. 권력의 1인자에 대한 절대 숭배와 권위주의적 통치. 이를 거스를 경우 혹독하고 잔혹한 탄압과 숙청으로 빚어진 이미지로 인해서이다. 동구권의 사회주의[24]은 좌익에 속하지만 본질적인 면에서는 현상 유지적인 성향과 기득권에 의한 권력 독점 등 보수주의와 완벽히 상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5.1. 공산독재체제의 전범

스탈린주의 하에서의 소련은 완벽한 스탈린 1인 독재체제였다. 러시아 혁명 당시 내로라하던 많은 혁명가들을 제치고 레닌 사후 권력을 장악했으며, 최대 정적인 트로츠키를 축출한 이후로는 권력을 공고히 하고자 옛날의 동지들까지도 무차별적으로 숙청했다. 그렇게 모든 권력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이를 토대로 소련과 세계 공산주의 운동을 자신의 마음대로 주물렀다.

문제는 이러한 끔찍한 행태를 보인 스탈린주의가 당시 거의 유일한 공산국가였던 소련의 지배이념이 되었고, 이 때문에 전세계의 공산주의 운동의 주류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생겨난 많은 공산국가들이 이 이념을 토대로 하면서 정치적으로는 독재체제로 전락했고 스탈린이 벌인 학살이나 숙청 등도 그대로 실천하게 된다. 또한 일부 독재자들은 자신들만의 사상을 창조하기도 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김일성주체사상.[25]

그리고 이는 일반인들에게 사회주의공산주의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강제수용소 끌려가고 전 인민이 강제로 사상학습하며 살게 되는 것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게 된다.[26] 실제로 냉전 시절, 반공(反共) 자본주의 진영에서 공산주의를 비난할 때 가장 잘 써먹은게 바로 이 스탈린주의의 폐해였다. 그러니 호치민 같은 개념인은 스탈린주의를 수용하지 않았다.

5.2. 소련중심주의의 폐해

당대의 소련은 거의 유일한 공산국가였고, 그렇기에 스탈린의 결정은 당대 전세계의 공산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공산주의 진영은 그의 말이라면 무비판적으로 따르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는 결론적으로는 자신이 집권하고 있는 소련의 공산화와 안정화(실제로는 자신의 권력에 대한 안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렇기에 스탈린의 결정들 중에는 공산주의 운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꽤 많았다. 대표적인 예들은 아래와 같다.

  • 독일에서는 좌익 내의 분열과 갈등에 기여했다. 독일 공산당은 스탈린의 지시로 인해 독일 사회민주당과는 늘 으르렁거렸다.[27] 이러한 좌익 간의 갈등과 반목은 훗날 나치즘히틀러가 맹위를 떨치며 선거에서 부상했을 때에도 계속되었다. 결국 나치가 집권하고 나자 사회민주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은 모두 사이좋게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

5.3.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서의 비판

스탈린주의 하에서 스탈린과 소련이 보인 문제들과 공산독재체제는 좌익에게도 뜨거운 감자였다. 물론 이런 체제를 옹호하거나 호의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시각을 보인 사람들도 있었다. 러시아 공산당의 노선을 따르지 않는 사회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아나키스트들은 스탈린주의의 독단적 일 처리 방식이나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영도에 많은 비판을 쏟아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실제로 대립각을 이루며 무력충돌로 번진 예도 굉장히 많다.

또한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레닌주의를 이야기 하는 사람들 중에도 지나친 철권통치로 사회주의를 말아먹은 사상이라는 비난이 존재한다.[28] 심지어 스탈린의 불구대천의 원수인 레온 트로츠키를 지지하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이나 국제사회주의[29]들은 아주 이를 갈면서 싫어한다. 심지어 트로츠키가 쓴 책중에는 배반당한 혁명이라고 스탈린주의를 대놓고 디스하는 책이 있을 정도.[30]

6. 스탈린주의로 통치했던 공산주의 지도자들

스탈린 본인을 포함하여 과거과 현재 공산주의 국가의 독재자 대부분이 여기에 들어간다.[31]

7. 여담

1919년 전 세계의 공산주의 정당 협의기구인 코민테른이 형성되고 스탈린 관료집단에 의해 관료적으로 퇴보한 후, 스탈린주의는 전 세계 공산당의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실제로 조선공산당도 당시 포스터에는 전 조선의 볼셰비키등의 스탈린주의적 색채가 진한 구호를 사용하기도 했다.

앨릭스 캘리니코스[33]을 비롯한 일부 학자들은 스탈린주의를 일종의 국가자본주의라고 한다. 무슨 소리냐 하면, 단지 사적기업에서 국영기업으로 바뀌었을 뿐인 착취체제의 변종이라고 하는 것.[34] 캘리니코스가 속한 영국 사회주의 노동자당은 트로츠키주의의 일파인 국제사회주의경향(IST)[35]을 주도하는 정당이다. 그러니 이들이 스탈린주의를 증오할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노동인민을 대하는 태도가 노동인민의 정치적, 사회적 주체성을 부정하고 단지 관료집단에 의해 '먹여 살려야' 할 객체로만 간주한다는 비판도 있다. 레닌이 말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개념은 노동인민이 정치적, 사회적 주체가 되기 위해서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스탈린주의는 이 개념을 왜곡하여 노동인민을 단지 무상복지 혜택을 주고 먹여 살려야 하는 객체로만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좌파판 나향욱이라는 이야기다.

조지 오웰의 대표작인 동물농장사회주의가 아니라 스탈린주의를 까는 소설이다. 조지 오웰은 사회주의자다. 1984에서는 이 주제를 더욱 확장하여 모든 국가가 스탈린주의의 길로 빠져들 수 있음을 경고한다.

8. 관련 문서


  1. [1] The New Fontana Dictionary of Modern Thought (1479) Third Edition, Allan Bullock and Stephen Trombley, Eds., p. 506.
  2. [2] Lisischkin, G. (Г. Лисичкин), Novy Mir (Мифы и реальность, Новый мир), 1989, № 3, p. 59
  3. [3] 한국 좌파 상태가 개판이다 보니, 심지어 트로츠키주의 자칭하는 인간들 중에서 자신이 마르크스-레닌주의자라고 상큼한 소리 하고 다니는 인간들도 존재한다. 해외 사회주의자들 앞에서 이딴 소리를 하면 엄청난 웃음 거리가 될 것이다.
  4. [4] Montefiore, Simon Sebag (2004). Stalin: The Court of the Red Tsar. Knopf, p.164
  5. [5] 흥미롭게도, 스탈린주의자들의 최대 정적이었던 트로츠키의 지지자들 역시 스스로를 레닌의 정통성을 계승했다는 의미에서 볼셰비키-레닌주의자라고 지칭했고, 트로츠키의 저서인 '배반당한 혁명' 이나 '스탈린주의 날조학'에서도 '스탈린주의'라는 명칭을 '정통 맑스주의와 레닌주의에서 벗어난 사이비놈들'이라는 의미의 멸칭으로 사용했다. 물론 당시 동구권(현실사회주의) 진영 내에서 트로츠키주의라는 지칭이 얼마나 강렬한 적대감과 혐오감을 내포하고 있었는지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 '농담'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결국, 소련의 공산주의 전통(레닌주의의 전통)에 속한 계파들은 자신들이야말로 맑스주의와 레닌주의의 정통파라고 자칭하면서 적대적인 다른 정파들을 '스탈린/트로츠키의 이단적 분파' 라고 지칭했던 것.
  6. [6] 선대 지도자들의 후광을 이용해서 자신의 정당성과 권력강화에 이용한 것인데, 북한에서 최근에 주체사상을 김일성-김정일주의라고 부르는 것도 이것과 같은 맥락이다.
  7. [7] 흔히 사용되는 탈스탈린주의라는 용어는 소련 붕괴 이후에나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고, 흐루쇼프 자신 또한 스탈린 정책상 몇가지 측면을 변경했을 뿐 이념 자체를 바꾸진 않았다. 공산주의자들 사이에서 이러한 움직임은 수정주의라고 불렸다.
  8. [8] 한국에서는 타국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트로츠키주의를 자처하는 이들이 많아서 그렇지, 트로츠키주의는 한번도 스탈린주의에 비빌만한 영향력을 가진적이 없었고, 다른 종류의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도 기회주의적 이미지 때문에 평가가 좋지 않다.
  9. [9]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 였다. PD, NL 모두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변종이었고, 부르주아 제국에 맞선 약소국의 민족자결이 어쩌고 하는 주장은 본래 레닌이 하던 말이다.
  10. [10]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이 흐루쇼프를 지칭하는 멸칭이 수정주의자(Revisionist)인데 이는 그들의 용어로 덜스탈린주의적인 인물이라는 의미다.
  11. [11] 한국으로 치자면 친박, 비박의 차이 정도
  12. [12] 물론 1848년 혁명을 보긴 했으나 이는 사실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연장선상이었다. 파리 코뮌망했어요.(...)
  13. [13] 다만 그의 동료인 엥겔스는 독일 사회민주당이 합법화 된후 나름대로의 세를 갖춘 정당이 되고, 유럽 각국에서도 사회주의 정당이 창당되는걸 지켜보았다.
  14. [14] 굳이 따지면 마르크스가 교주 격이라면 주된 포교자가 레닌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거꾸로 그래서 마르크스를 레닌이 곡해했다는 이야기도 충분히 가능했고, 당대에도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당장 사민주의로자 룩셈부르크라든가), 처음부터 레닌주의가 없는 마르크시즘이 발달했던 서방 강대국들을 제외하고는 레닌과 소련의 영향력이 너무 거대하여 필수요소격이 되었고, 심지어 후에는 서구국가들 조차도 영향을 받는 지경에 이른다. 이때문에 이른바 공산주의를 마르크스-레닌 주의라 하는 것이다.
  15. [15] 이는 적백내전 당시의 전시공산주의 제도에 착안한 것이다.
  16. [16] 이러한 정책은 훗날 국가주도형 경제개발을 시행하는 많은 나라들에 영향을 준다.
  17. [17] 여기서 당 중앙은 무 오류라는 해괴한 이야기를 진리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민주집중제도 개개인의 뜻을 모은 것이고, 당도 개개인의 뜻을 모아서 의견이 전달되니까 여간해선 틀릴 일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 시기에는 중우정치나 집단 히스테리 따위는 당 중앙의 철통같은 이론과 사회주의의 이상에 대한 무한한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 이었다. 흠좀무
  18. [18] 스탈린주의 여부를 가리는 가장 중요한 이론이다. 본래 일국사회주의론은 부하린이 먼저 제시했지만 스탈린이 트로츠키와 대립하던 일국사회주의론을 취하여 트로츠키를 공격한다. 그리고 부하린이 제시한 개념과 동떨어진 내용으로 적용했다.
  19. [19] 트로츠키주의의 연속혁명론과 대립한다. 국제혁명론에 대한 상반된 이론. 트로츠키는 러시아 내의 혁명에서 그치지 않고 국제적으로 자본주의 국가들 내의 혁명세력을 도와 자본주의 국가를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어야 봉건주의 단계인 러시아가 도움을 받음으로써 변증법적 유물론에 따라 자본주의 단계를 건널 수 있다 주장했고, 스탈린은 국제혁명 이전에 소련의 안정화가 중요하고 소련의 공업화를 통해과정은 묻지말자. 자본주의 단계를 건너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 할 수 있다 보았다.
  20. [20] 그래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반대하는 카우츠키나 베른슈타인 같은 개량주의자들이 나온 것이다.
  21. [21] 의외로 동유럽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공산당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쓴 경우는 별로 없다. 동독도 통일사회당이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폴란드통일노동당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이는 사회주의 발전단계 이론에 따라 아직 생산 자본력이 발달되지 못한 나라는 사회주의 혁명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일단 공산당이 아닌 그 전단계의 당이 혁명을 완수하기 위함이다. 혹은 지역적인 배경에서 기존 정당을 빌리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 이름만 다르지 뭐
  22. [22] 조선로동당의 경우, 1970년대에 이를 주체사상이라고 바꾸더니, 아예 이제는 사회주의라는 항목까지 삭제함으로서 스스로 부자세습 특권층 독재국가라는 것을 자인하고 말았다.
  23. [23] 물론 중국은 그 당시에도 마오주의를 공공연하게 명시하고 마오쩌둥에 대한 개인숭배를 장려했다. 역시 대륙은 사회주의를 해도 그 기상이 다르다
  24. [24] 특히 일국사회주의론을 내새우며 국제적인 연계보다는 자국 내에서 띵가띵가 독재놀이했던 소련
  25. [25] 사실 북한의 주체사상도 이러한 극단적인 스탈린주의가 김씨 가문 일족 숭배, 차라리 민속 종교에 더 가까운 종말론적 세계관, 한반도 특유의 혈통주의, 일제시기를 거쳐 내제화 된 파시즘 등과 결합하며 변태를 일으킨 일종의 괴상한 체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26. [26] 하지만 이런 폭력적이고 잔인한 모습으로만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 편향적이고 단면적인 이해에 불과하다. 관련 문서 참고.
  27. [27] 물론 이런 관계가 스탈린의 지시가 100% 원인인 것만은 아니었다. 사실 독일 내의 사회민주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은 사이가 썩 좋지 않았다. 사회민주주의의 수정주의적 자세에 대한 이론적 논쟁도 존재했었고, 무엇보다 바이에른 공화국 성립 당시 로자 룩셈부르크를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자들의 봉기를 사회민주당 정부에서 진압한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28. [28] 그도 그럴 것이 현실사회주의에서 가장 주류가 스탈린주의였기에 사회주의가 좋고 나쁘냐는 가치판단을 떠나서 사회주의하면 스탈린주의가 연상되고, 스탈린주의하면 스탈린 시절의 온갖 사건들이 연상되고야 말았다. 그러니 사회주의에 대한 인식이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게 되었다.
  29. [29] 트로츠키의 직계 후계자는 아니고, 트로츠키를 스탈린의 '위로부터의 사회주의'에 저항하다가 희생된 일종의 상징적 아나그램으로 여기는 것이다.
  30. [30] 3부작 짜리 트로츠키 전기를 집필한 트로츠키주의자 아이작 도이처는 그의 공업화는 업적이라 인정했다. 이는 현재 소련을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하는 계열하고는 상반된 견해다.
  31. [31] 물론 공산주의 국가의 독재자였음에도 스탈린주의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 사람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람이 유고슬라비아요시프 브로즈 티토인데 그의 사상은 '티토주의'라 불릴 정도로 당시 공산주의의 주류인 스탈린주의와는 차이가 있었다.
  32. [32] 1972년의 주체사상 선포까진 스탈린주의로 다스렸고, 주체사상은 마오이즘과 스탈린주의의 변종이다.
  33. [33] Alex Callinicos. 1948년생. 정치학 교수이자 영국 사회주의 노동자당의 중앙위원.
  34. [34] 참고로, 60~70년대 독재 시절 한국이 국가자본주의였다. 국가자본주의는 신흥공업국에서 자주 보인다. 물론 스탈린주의는 '일종의' 국가자본주의일 뿐 대부분의 국가자본주의는 스탈린주의와는 큰 차이가 있다.
  35. [35] 노동자연대도 여기에 속해 있다. 사실 노동자연대의 사상적 뿌리가 영국 사노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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