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제국

실존했거나 현존하는 식민제국 목록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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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독일

쿠를란트-젬갈렌

스페인

오만

오스만

이탈리아

일본

포르투갈

프랑스

구호기사단

오스트리아-헝가리

에스파냐 제국
Imperio Español

국기

표어

PLVS VLTRA(저 너머 더 멀리)

위치

이베리아 반도
아메리카 대륙 등지

수도

톨레도 (1492년~1561년)
마드리드 (1561년~1601년)
바야돌리드 (1601년~1606년)
마드리드 (1606년~ )

정치체제

전제군주제입헌군주제[1]

국가원수

언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카탈루냐어, 아라곤어,
바스크어, 나우아어, 오토미어, 마야어,
아이마라어, 치브차어 등

민족

스페인인, 포르투갈인, 카탈루냐인, 바스크인,
아라곤인, 나우아인, 오토미인, 마야인,
아이마라인, 무이스카인, 마푸체인 등

종교

가톨릭

주요사건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도달 & 그라나다 정복
1494년 - 토르데시야스 조약 체결
1504년 나폴리 왕국 점령
1519년 마젤란의 함대 출항, 세계일주 (~ 1522년)
1521년 아즈텍 정복
1529년 사라고사 조약 체결
1534년 잉카 정복
1535년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령[2] 설치
1542년 페루 부왕령 설치
1545년 포토시 은광 개발, 막대한 은의 유입
1556년 사실상 건국
1565년 필리핀 식민화 시작 (~ 1571년)
1568년 네덜란드 북부의 반란
1571년 레판토 해전, 오스만 해군 격파. 지중해 패권 장악
1580년 이베리아 연합 결성
1581년 북부 네덜란드의 사실상 독립
1588년 칼레 해전에서 잉글랜드 해군에게 패배
1609년 안트베르펜 조약, 네덜란드와 12년간 휴전 합의
1640년 포르투갈 독립, 이베리아 연합 해체
1643년 로크루아 전투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북부 네덜란드 독립
1659년 피레네 조약, 데카덴시아 종결

1700년 합스부르크 단손, 보르본 왕조로 교체 [3]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 벨기에 상실
1762년 7년 전쟁,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4] 할양받음
1783년 파리 조약, 영국으로부터 플로리다 회복

1808년 나폴레옹의 스페인 침공 (~1813년)
1810년 멕시코의 반란
1816년 아르헨티나 독립
1818년 산 마르틴, 칠레 독립 선포
1819년 시몬 볼리바르, 그란 콜롬비아 선포
1821년 멕시코, 페루 독립 / 플로리다 미국에 할양됨

1884년 베를린 회담, 서사하라 식민화
1898년 미서전쟁 패배, 쿠바와 필리핀 상실
1905년 모로코 사건
1912년 모로코 북부 식민화
1931년 공화국 수립
1936년 스페인 내전
1939년 프랑코 집권
1975년 보르본 왕정복고, 제국 해체

영어: Spanish Empire

스페인어: Imperio Español

1. 개요
2. 역사
2.1. 형성
2.2. 쇠퇴와 부흥
2.3. 몰락
2.4. 20세기
3. 식민지 목록
4. 현재 국외 영토

1. 개요

1556년 에스파냐 합스부르크 왕가(압스부르고 왕가)의 시조이자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인 카를로스 1세(재위 1516~1556)가 퇴위한 뒤 그의 신성 로마 제국 지역을 제외한 스페인과 이탈리아, 저지대, 국외 식민지 등의 왕좌를 물려받은 펠리페 2세(재위 1556~1598) 시대에 성립되어 대략 19세기 후반까지 이어진 세계 규모의 식민제국이다.

전성기 시절에는 오대양 육대주에 걸쳐 식민지를 지배했으며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원조가 되기도 했다.

통상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스페인이 패하면서 쿠바, 필리핀, , 푸에르토리코 등을 상실한 시점을 스페인 제국의 붕괴라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지만, 스페인이 이후로도 모로코, 적도 기니, 서사하라를 비롯한 아프리카 일대에는 식민지를 유지했기 때문에 20세기까지도 스페인 제국이 존속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19세기 말기부터 스페인은 완전 변두리 국가로 전락하여 스페인의 동네북이었던 이웃 포르투갈보다도 식민지가 적었다. 그나마 포르투갈은 앙골라기니비사우, 모잠비크, 마카오, 카보베르데, 상투메 프린시페 등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패전 후 식민지라곤 아프리카 서사하라와 모로코 일부 지역, 적도 기니뿐이었던 스페인보다는 적긴 해도 꽤 있었다.

2. 역사

2.1. 형성

스페인 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끈 펠리페 2세.

이미 16세기 초 콜럼버스의 항해에 이어 코르테스가 멕시코를, 피사로가 페루를 정복하여 중남미에 거대한 식민지를 구축하기 시작했으며, 포르투갈 왕 세바스티앙 1세가 모로코 원정 도중 전사하여 정통 왕계(王系)가 단절되자 모계(母系)를 통해 포르투갈 왕실과 핏줄이 이어져 있던 펠리페 2세가 포르투갈 왕위를 주장, 이를 관철시킴으로써 1580년 에스파냐-포르투갈 동군연합(同君聯合)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에스파냐의 기존 아메리카 대륙 식민지에다 1571년 정복한 필리핀 식민지[5], 포르투갈이 대항해 시대를 개막하며 정복한 아프리카브라질, 인도, 동남아시아와 중국의 식민지[6] 및 국외 영토까지 포괄하여 거대한 규모의 해양 제국을 이룩하는 데 성공한다. 이 시기 필리핀에 처들어온 왜구를 카가얀 전투에서 격퇴하기도 하였고, 명나라를 정복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블로그 참조

펠리페 2세 사망 당시(1598) 스페인-포르투갈 연합 왕국의 영토. 붉은색은 스페인 영토, 푸른색은 포르투갈 영토.

1588년 잉글랜드 원정에 실패하고 무적함대가 패배하여 스페인 패한 전쟁으로 알지만 잉글랜드가 기고만장하여 역으로 스페인을 침공했을 때 잉글랜드 해군이 박살나는 등 스페인의 우위 속에서 런던 조약으로 전쟁이 끝났다. 펠리페 2세가 에스파냐, 정확히는 카스티야 중심의 중앙집권제도를 고집하여 포르투갈 귀족들의 불만을 샀음에도 연합왕국 자체는 이후 수십 년 동안 존속했다.

1581년 동군연합 성립 당시 스페인의 유럽 내 지배 지역. 이 가운데 북쪽의 플랑드르 속령은 펠리페 2세 당대부터 스페인 최대의 골칫거리였다.

2.2. 쇠퇴와 부흥

하지만 1618년 30년 전쟁이 터지고, 에스파냐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를 지원하여 전비(戰費)부담이 급속도로 늘어나는 데다, 프로테스탄트 국가인 네덜란드의 아시아 교역 지대에서의 해적 행위를 스페인 정부가 제대로 막지 못하자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진 포르투갈 쪽의 불만은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결국 30년 전쟁 중이던 1640년 포르투갈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여 스페인군과 관료들을 몰아내고 독립을 선언했으며, 60년 만에 스페인-포르투갈의 동군연합은 와해되고 포르투갈에는 브라간사 왕조가 들어섰다.

이와 비슷하게 카스티야 중심의 강압 정치와 종교 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세금 부담에 짓눌린 카탈루냐는 포르투갈의 독립에 자극을 받아, 프랑스의 지원을 기반으로 1640년 독립 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은 1652년까지 무려 12년이나 지속되어 스페인에 엄청난 부담을 주었으며, 설상가상으로 1641년에는 안달루시아, 1647년에는 남이탈리아의 속령인 나폴리 왕국, 1648년에는 아라곤 본토가 모반을 꾀했으며, 스페인은 이 모든 반란 기도를 진압하기 위해 엄청난 국력을 쏟아부어야 했다.[7]

여기에 30년 전쟁의 패전으로 1648년 네덜란드의 독립을 인정해야 했고, 프랑스와 계속된 전쟁으로 1659년 플랑드르 남서부의 아르투아와 페르피냥이 속한 로세욘 지방을 할양해야 했다. 이리하여 합스부르크 왕가의 근친혼이 거듭된 끝에 태어난 카를로스 2세(재위 1665~1700) 시대에 이르러서는 이전 강대국의 풍모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2류 국가로 전락해 버렸으며, 1678년에는 스위스 접경의 영토인 프랑슈-콩테를 프랑스에 넘겨주더니, 18세기 초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으로 보르본 왕가로 왕위가 넘어간 뒤 플랑드르와 나폴리 왕국 등의 유럽 영토는 오스트리아에게 넘겨주며 상실하게 된다.

이후로 보르본 왕조가 스페인을 지배하였고 운이 좋게도 현명한 왕들이 나와서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카를로스 3세 시기에 이르러 스페인의 아메리카 영토는 남부 아르헨티나에서 미국 서부와 남부, 중부지방 및 캐나다 남쪽까지 이르게 되었고 내실도 튼튼히 다졌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카를로스 4세가 즉위하였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그 영향이 스페인에게 번졌고 이는 스페인 황금기의 붕괴를 가져왔다.[8]

2.3. 몰락

나폴레옹이 등장한 시기에 카를로스 4세는 계속된 실정으로 결국 스스로 왕위에서 물러나고 그의 아들이 페르난도 6세로 즉위하였다. 하지만 곧바로 나폴레옹은 자기의 친형을 호세 1세로 즉위시키고 페르난도 7세를 쫓아내어 중앙정부는 프랑스의 손에 넘어간다. 한편 중앙의 상황과 달리 지방에서는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모습이 보였다. 프랑스군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약탈과 강간을 일삼자 지방의 민중들이 들고 일어났고 이베리아 반도 전쟁이 일어난다. 특히 여성들까지 전쟁에 참여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프랑스는 스페인과 영국의 연합군에 엄청난 손해를 입었고, 결국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철수하며 페르난도 왕자가 국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돌아왔고 페르난도 7세로 즉위하면서 보르본 왕조가 복구되었다.

하지만 국민들의 기대와 달리 자기 왕위에만 관심을 가지고 중남미에서 일어나는 반란들을 진압하지 못하여 하나둘씩 독립시키며 기대를 좌절로 만들었고 내부의 문제들도 해결하지 못해 국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그 뒤를 이은 왕들도 정치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고 점점 커져가는 상황이었다. 스페인 전열함대 또한 나폴레옹 전쟁에서 입은 끔찍한 피해를 자력으로 복구하지 못하고 러시아 제국의 74문 전열함 다섯 척을 중고로 구매하는 지경으로 치달았다.

그리고 19세기 말인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이 발발하였다. 미국이 쿠바와 필리핀의 독립 운동을 도와 스페인의 만행으로부터 구해주겠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았다. 결국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 쿠바, 필리핀, 푸에르토 리코, 북마리아나 제도를 모두 상실했고 남은 서태평양의 섬들은 따로 유지시키기에는 비용 부담이 커서 독일에게 매각했다.

이때 스페인이 본국의 함대를 쿠바와 필리핀으로 보내려고 했으나 다른 제국주의 유럽국가들이 막았고 아무것도 못하고 미국에 영토를 내줘야 했다. 유럽국가들도 스페인보다 미국의 손을 들어준 상황이었고 세계열강에서 스페인이 빠지고 본격적으로 미국이 세계에 등장한다.

이후로 건진 건 서사하라적도 기니, 스페인령 모로코가 있는 아프리카 영토 뿐이었다. 당대 강대국인 영국이나 프랑스는 물론이고, 심지어 17세기까지 스페인의 속령에 불과했던 벨기에네덜란드가 보유한 식민지보다도 더 작은 영토를 가진 상태가 되었고 제국주의 시대에 이탈리아와 함께 가장 약골로 평가를 받았다.

스페인령 모로코의 경우 스페인의 주요 식민지 목표였으나 프랑스의 개입으로 완전한 통치는 못하고 프랑스와 분할통치하였다.[9] 이때 프랑스를 견제하는 독일영국 덕에 그나마 차지한 것이었고, 모로코 북부를 차지했다. 스페인 본토와의 연계성도 높았고 경제성도 좋은 곳이었다. 물론 실제로 모로코의 대부분은 프랑스의 식민지였고 스페인은 세우타 등 해안 지대와 서사하라 접경 사막 지대를 약간 차지했을 뿐이다. 다음 지도를 보자.

(스페인령 모로코(초록색 부분))

한편 스페인령 모로코의 리프(Rif)지방에는 고급 광물이 풍부하여 노천광산 채굴을 통해 쉽게 추출 할 수 있었다. 스페인 정부는 사업가 호라치오 에체베리에타(Don Horacio Echevarrieta)[10]를 내세워 광산을 경영했는데 이게 원주민과의 마찰을 불러 리프전쟁의 간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다. 에체베리에타는 연간 100만톤의 철광석을 채굴하여 본국으로 실어날랐다.

2.4. 20세기

한편 스페인 제국의 산업화는 19세기 후반 바스크 지방과 카디스, 말라가, 바르셀로나의 철광업과 조선업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이스파노-수이사나, 이베리아 항공, Saltos del Duero, AESA같은 산업 재벌기업도 이즈음 성장하기 시작했다. [11] [12] 이 시기 스페인의 외교는 세계대전 참전같은 적극적인 외부로의 무력투사 대신 영국, 프랑스와의 앙숙관계를 청산하고, 북서아프리카 항로에 국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주력하였다.[13]

한편으로는 많은 변혁이 이루어진 시기였는데 1898년 미국과의 전쟁을 계기로 스페인 사회 전반적인 쇄신을 추구하는 “98세대”가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것도 이 시기이며, 호아킨 코스타,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실존주의가 선봉에 섰다. 특히 이 시기 등단한 스페인 문학가들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내전 이후 스페인 문학을 전세계로 퍼트리는데 큰 공헌을 했다.

이후 스페인은 모로코에서 일어난 반란(리프 전쟁)을 초기 진압하지 못했고, 왕정에 대한 불신이 커져, 리베라를 중심으로 한 쿠데타 발생, 그리고 이어진 군부의 계속된 실책으로 결국 1931년 보르본 왕조마저 공화국 수립으로 몰락하였고 완전히 추방되어 왕정이 폐지되었다. 알폰소 13세가 추방당하면서 제국주의적 사상이 사라졌으므로 사실상 수백년 간 지속된 왕국의 팽창과 제국주의적 행동은 끝이 났다.

이 과정에서 북아프리카 식민지에 주둔한 이른바 아프리카 군단(Ejército de África)의 영향력이 커졌고, 이들은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이끄는 반란군의 중추가 되었다.

그리고 공화국 역시 스페인 내전으로 폐지되었고, 스페인은 파시스트 정권이 등장하였다.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영토 확장보다 자신의 안위를 중요시 했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같은 파시스트 국가였던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이 스페인에 지원 요청을 하였지만 프랑코는 이리저리 빠져나가며 영국과 독일 사이에서 왔다갔다 한다. 결국 독일, 이탈리아가 패망하며 히틀러무솔리니는 죽고 프랑코와 스페인만 살아남았다.

나치 독일의 소련 침공 때 스페인이 지원한 것에 소련과 스탈린은 매우 분노했고 이탈리아와 독일처럼 스페인도 손봐야 한다고 했지만, 미국과 영국의 만류로 그냥 넘어갔다. 대신 꽤 오랫동안 경제제재를 받고 국제적 고립에 처했다. 스페인의 NATO 가입 역시 프랑코 사망하고 스페인이 왕정복고가 된 이후에야 이루어졌다.

한편 스페인령 모로코는 1956년 모로코의 독립과 함께 반환하고 1968년 10월 스페인령 기니 역시 적도기니로 독립하였다.

1975년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죽고 죽기 전의 명령에 의해 왕정복고가 이루어져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즉위하였다. 프랑코는 스페인 왕가 대신에 잠시 스페인을 맡았다고 자기 통치의 합리화를 했다. 하지만 어떻든 평화롭게 넘어갔다.

이 해에 스페인령 사하라에서 스페인이 철수함으로써 세우타, 멜리야와 북아프리카 몇몇 도서지역을 제외하고 스페인의 국외영토는 모두 독립했고 수백년 간 이어진 스페인의 제국주의 여정은 끝을 맺는다.

스페인 제국의 마지막 유산 플라사스 데 소베라니아.

플라사스 데 소베라니아는 세우타와 멜리야를 제외하고, 스페인이 현재 차지하고 있는 모로코 해안선 가까이 있는 아프리카 대륙의 북쪽 영역들을 일컫는다. 플라사스 데 소바레니아란 '주권의 장소들'이라는 뜻인데, 스페인 국가가 성립할 때부터 차지하고 있는 땅이라고 주장하는 곳이다. 지금도 모로코 정부에서 줄기차게 반환을 요구하고 있고, 2011년에는 모로코 활동가들이 이곳에 상륙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스페인 정부는 프랑스와 영국의 국외영토와 마찬가지로 현재의 모로코 왕조 성립 이전인 16세기에 귀속됐기에 고유영토라는 논리로 거부하고 있다.[14] 그런데 저 중에 차파리나스 군도(Islas Chafarinas)는 한참 후 제국주의시절인 1848년에 스페인이 점령한 곳인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제국주의 시절 식민지의 정의에 부합한 현재 남아있는 스페인 최후의 식민지인 셈이다.

3. 식민지 목록

  • 페루 부왕령(1542~1824) - 프란시스코 피사로잉카 제국을 정복하고 세운 식민지. 본래 현재 남아메리카의 스페인어권 지역 전부를 포함하는 남미 유일의 스페인 부왕령이었지만 18세기에 두 부왕령이 분리되어 나갔다. 수도는 리마이다.
    • 페루 - 현재 브라질 서쪽 아마존 지역 영토 일부까지 포함되었다. 결국 스페인의 식민지배에서 독립 하고 페루가 이 지역을 통치했었으나 1909년에 브라질에게 영유권을 빼앗김으로서 현재의 페루와 브라질 간 아마존 국경이 획정된다.
    • 칠레

4. 현재 국외 영토


  1. [1] 1837년부터
  2. [2] 현재의 멕시코와 미국 서부
  3. [3] 펠리페 5세
  4. [4] 미시시피강 서부 한정 + 뉴올리언스
  5. [5] 필리핀은 국명 자체가 정복 당시 군주였던 펠리페 2세의 이름을 딴 것이다.
  6. [6] 1999년 12월에야 중국에 반환된 마카오도 포함된다.
  7. [7] 현재 이들 지역은 남이탈리아 빼고 모두 스페인 영토이긴 하나 카탈루냐 지역은 특히 반(反)카스티야적인 자립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툭하면 분리 독립 논의가 불거지곤 한다.
  8. [8]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 이후 스페인의 외교적 입장은 친 부르봉 정책이었다.
  9. [9] 모로코 사건 참조.
  10. [10] 스페인의 백만장자이자 기업인, 광산업자, 부동산사업자, 은행가,정치인(...)으로 이베리아 항공의 설립자 이기도 하다. 모로코에서 광산을 경영하면서 리프전쟁의 스페인 포로를 구해오기도 했다. 부동산에서 일가견이 있어서 마드리드빌바오, 바르셀로나의 건축사업에 참여 하기도 했고, 광산업으로 벌은 돈을 관광업에 투자하기도 했다. 급진 자유주의 성향 정치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반대로 2차대전 기간 중에는 빌헬름 카나리스와의 인연으로 함께 활동하기도 한 복잡한 인물(...)
  11. [11] 바스크 지방의 조선업은 1970년대까지 번영하였으나 이후 오일쇼크와 인건비 상승, 동아시아 지역의 조선업 성장, 세계경제 불황으로 1980년대 몰락하였고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신화는 이러한 도시의 쇠퇴속에서 계획된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12. [12] 이 외에도 스페인은 영국 의 드래드노트를 기초로 에스파냐급 전함 3척, 에메랄드급 경순양함을 기초로 프란시페 알퐁소급 경순양함을 진수하였다.
  13. [13] 스페인이 2차 모로코 사태 때 개입하는 명분이 되기도 했으며 특히 이 길목 중간에 위치한 카나리아 제도는 스페인 내전 당시 가장 먼저 반란군의 깃발이 올라간 곳이다.
  14. [14] 이 논리는 영국이 지브롤터 반환을 거부하는 이유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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