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 해위해

시모 해위해
Simo Häyhä

생몰년도

1905년 12월 17일 ~ 2002년 4월 1일(향년 97세)

출생지

러시아 제국 핀란드 대공국 비푸리 주 라우턔르비

사망지

핀란드 하미나

별명

백사병(Белая Смерть), 하얀 사신(White Death)

복무

핀란드 방위군

복무기간

1925년 ~ 1940년(겨울전쟁 당시 소위로 진급)

최종계급

소위(Vänrikki)

근무

백위대
보병 34연대
제2자전거대대
제1자전거대대

참전

겨울전쟁
└콜라 전투

1. 개요
2. 생애
2.1. 초기 생애
2.2. 겨울전쟁 신화
2.3. 전후
3. 창작물에서
4. 같이 보기

1. 개요

전직 핀란드군인. 역사상 최강의 저격수를 논하면 항상 1위를 놓고 경쟁하는 인물 중 한명이며,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직후에 벌어진 겨울전쟁에서 활약한 전설적인 저격수다. 그를 상대하는 소련군백사병(白死病) 또는 하얀 사신(Белая Смерть)[1]이라 부르며 두려워했다.

한국에 권위 있는 핀란드어 한글 표기법이 없기 때문인지 이름 표기가 중구난방이다. 철자나 실제 발음에 이끌려 '시모 하이하'라 표기하기도 하고 '시모 헤위헤'라고도 하지만 발음기호가 ['simɔ 'hæy̯hæ\]이므로 국제 음성 기호와 한글 대조표에 따라 시모 해위해로 옮기는 것이 올바르다.

2. 생애

2.1. 초기 생애

핀란드 대공국의 소도시 라우턔르비에서 태어났다. 본업은 농부사냥꾼이었으며 20세에 화이트 가드(Suojeluskunta)라는 민병대에 가입했다.

전문적인 저격 교육을 수료한 적은 없으나 입대 이전부터 사냥으로 다져진 독자적인 사격술을 갖고 있어[2] 다수의 사격대회 수상을 하였고 1925년에 핀란드 육군에 징병되어 15개월 간의 의무 군복무를 마친 후 상병 전역했다. 이후 본업에 종사하던 중 1939년 겨울전쟁이 발발하자 예비역으로 전쟁에 소집되었다.

당시 해위해가 속했던 중대의 직속상관인 아르네 유틸라이넨 중위는[3] 해위해의 사격실력에 주목해 해위해에게 어떤 소대에도 귀속되지 않는 특수 저격병의 임무를 부여하였다.

2.2. 겨울전쟁 신화

전쟁이 일어나던 당시의 자연환경은 문자 그대로 최악으로 전장 전체가 폭설과 함께 -20도에서 -40도의 극한의 한파를 유지하고 있었다.

해위해는 이러한 특수한 환경에서 100일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무려 542명(자료에 따라서는 최저 505명, 최대 602명)을 사살하였다. 이는 단일 저격수 역사상 최다 사살 기록으로 당시 소련군에게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악몽이자 움직이는 재앙으로 작용했다.

소련 병사들은 핀란드의 설원에서 위장과 방한을 위해 항상 눈처럼 흰 전투복을 입고 나타나는 그에게 '백사병/하얀 사신'(Белая Смерть/White death)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4] 소련군은 오직 시모 해위해를 저격하기 위한 저격수 부대를 1개 소대 규모로 조직했고 그 밖에도 교란 및 사살을 목적으로 포대 공격을 시도했으나 그를 사살하는 데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그는 모신나강의 핀란드 생산품인 M28 소총을 사용하여 저격수로서 대부분의 전과를 올렸다. 또한 수오미 기관단총으로도 200명을 사살하였으며 기록을 보면 적군으로부터 노획한 총기를 쓰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후에는 진급과 훈장을 수훈한 것에 더불어 1940년 2월 17일 스웨덴 사업가 유겐 요한슨이 해위해를 위해 특수 제작한 M28 특수 모델을 선물 받았다.

시모 해위해는 핀란드군 통계 기준 총 259명을 저격으로 사살했으며, 이와 비슷한 수의 적을 기관단총과 기관총을 사용해 사살하였다. 그가 가장 많은 적을 저격해 사살한 날은 1939년 12월 21일로 해위해는 그 날 하루 동안 25명을 저격했다.

1939년 12월 22일: 138명 저격 사살 (22일 간 138 명)

1940년 1월 26일: 누계 199명 저격 사살 (35일 간 61명)

1940년 2월 17일: 누계 219 명 저격 사살 (22일 간 20명)

1940년 3월 7일 (시모 해위해가 중상을 입었을 때) 총 259명의 저격 사망자가 발생(18일 동안 40명)

다른 유명한 저격수들과 차별화된 특징은 그가 전투 중 망원조준경사용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실전에서 그는 소총에 조준경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총에 기본적으로 달린 가늠좌와 가늠쇠를 이용하여 맨눈 시력만으로 조준하였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그의 초인적인 시력과 정신력, 그리고 사격 실력이었다.

그는 동료들에게도 스코프를 사용하지 말 것을 권했는데, 첫째로 스코프의 렌즈에 의한 반사광 때문에 적에게 노출될 가능성이 있으며, 둘째로 -20도에서 -40도에 달하는 당시 전장인 혹독한 설원 환경에선 스코프에 성에와 눈이 끼어 관리가 어렵고, 셋째로 스코프를 사용할 경우 반드시 머리를 내밀어 눈을 대야 하기 때문에 적에게 포착되기 쉬우며, 개인적인 이유로는 해위해 본인이 스코프가 없는 과거 사냥꾼들의 사격 방식을 선호해 스코프를 불편하게 여겼기 때문이다.[5]

하나하나 뜯어보면 틀린 말도 아니였고 해위해 자신도 스코프를 쓰지 않은 덕분에 은밀하게 저격할 수 있었으나, 조언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당연히 이런 조언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스코프에 단점이 있다 하더라도, 우선 스코프 없이 장거리에서 수월한 목표물 처치가 가능하다는 전제가 있어야 조건을 감안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맨눈 저격은 대부분의 군인들이 250m~300m 정도가 한계이며 그것도 어디까지나 명중 유무의 영역이지 정밀한 저격은(특정 부위만 맞혀 무력화 등) 불가능에 가깝다. 이 때문에 저격수에게 있어 망원조준경은 제2의 눈이나 다름없는데 해위해는 이 도구를 포기하고 맨눈으로 수백 명의 적들을 저격했다.

그런 사유로 시모 해위해는 저격 거리가 다른 저격수들만큼 길지는 않았다. 현재까지 확인된 그의 가장 긴 저격 거리는 450m의 거리에서 소련군 저격수를 역저격한 사례이다. 이도 저격하지 않으면 안 돼서 한 특수한 경우로, 시모 해위해는 100-150m의 거리를 선호하였다.# 따라서 그의 전투방식은 저격수로서 대단히 불리한 단점인 짧은 사격범위를 빠르고 정확한 실력으로 커버하는 식이었다.[6]

그밖에 저격을 할 때 입에 주변에 쌓여 있는 눈을 주워 물고 있어 입김이 새어 나와 포착되는 것을 막거나, 총구 근처의 눈을 단단하게 눌러 압착해두어서 총이 발사될 때 눈이 흩날리지 않게 하는 노련하고 세심한 기술을 구사했다.

키가 159cm에 불과한 이 조그마한 전사[7]는 영하 20도에서 영하 40도까지 달하는 극한의 날씨 속에서 수적으로도 열세였고, 보급도 미비한 핀란드 측에서 소련을 상대로 500여 명 사살이라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전과를 세웠다. 그러나 1940년 3월 6일, 저격 중 소련군이 시모를 사살하려고 지근거리에서 쏘아서 폭발한 유탄의 파편이 그의 턱에 명중하였다. 이로 인해 시모는 뼈가 깨지고 얼굴의 절반을 잃는다.

재건 수술 후의 모습. 사진을 포토샵 등의 프로그램을 이용해 일부러 일그러뜨린 것이 아닌 원본 사진이다. 그 당시 안면 재건 시술 수준을 감안해보면 저만큼 복원해낸 것도 무척 성공적이다. 얼굴의 반이 날아간 그의 모습을 본 모두가 살아날 수 없겠다고 생각했지만 대수술을 거친 후 1주일 만에 깨어났다. 그리고 그가 깨어난 그 날은 바로 핀란드의 전쟁이 끝나던 날이었다. 원래의 얼굴을 보고 싶다면 문서의 맨 위에 있는 프로필 사진을 보면 된다.

2.3. 전후

은퇴 후의 백사병, 노년의 모습.

그는 핀란드 총사령관 만네르하임에게 훈장과 소위 진급의 영예를 얻었다. 진급 전 계급은 상병이었고, 이는 5계급 특진으로 핀란드군 역사상 이 정도로 급격한 진급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신경계 손상으로 더 이상 전투를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그는 명예로운 퇴역을 하게 되었고 무스 사냥이나 개 사육 등의 생활을 하면서 살다가 2002년 4월 1일, 97세의 나이로 장수하면서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아래는 1998년 잡지사와의 인터뷰 내용인데, 이 인터뷰 중 그는 명사수가 되는 방법에 대한 질문에 연습뿐이라고 답했다.

Q: 어떻게 그런 명사수가 되셨습니까?

A: 연습했습니다.

Q: 그렇게 사람을 많이 죽인 것에 대해 후회는 없습니까?

A: 명령받은 것을 최대한 실행했을 뿐입니다.

3. 창작물에서

직접적으로 모티브를 따온 것 이외에도, "스코프를 쓰지 않는 저격수"라는 컨셉이 붙은 캐릭터라면 대부분 이 시모 해위해의 영향을 받은 캐릭터다. 다만, 어째 이런 경우에는 "다른 저격수에 비해 짧은 저격거리"는 빼는 경우가 많다.

  • 스웨덴의 메탈밴드 Sabaton의 White Death라는 곡은 겨울전쟁 때의 시모 해위해를 소재로 삼고 있다.
  • 모바일 게임 소녀전선에서 모신나강 소총의 전용장비 명칭이 Hayha 메모리 칩이다. 장비 설명에 써있는 문구는 "백색사신을 다시 전장에 불러올 수 있는 기억 칩입니다."[8] 거기에다 모드 2 개조 시 얻는 패시브 스킬은 이름부터가 하얀 사신이다.
  • 일본의 2014년 7월 7일에 발매된 하얀 마녀라는 만화의 여주인공의 모티브가 시모 해위해다.
  • 모바일 게임, 라스트 오리진바이오로이드 전투원인 T-8W 발키리는 시모 해위해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이다. 적과 가까운 거리일 수록 강해지는 패시브 스킬이나, 조준경 없는 모신나강 소총과[9] '하얀 사신'이라는 별명을 그대로 따왔다.
  • 카카오 페이지에서 연제하는 '마탄의 사수'의 주인공의 이름이 '하이하'이고 그가 얻은 2차 직업의 이름도 '하얀 사신'이다

4. 같이 보기


  1. [1] 직역으로는 '하얀 사신', '하얀 죽음'이지만, 러시아어로 흑사병(Чёрная смерть)이라는 말을 직역하면 검은 사신 혹은 검은 죽음이다. 즉 의역하면 백사병 정도 되는 이름.
  2. [2] 어릴때부터 총기와 사냥을 접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소련의 저격수 바실리 자이체프나 미국의 해병 카를로스 헤스콕과 같은 유명한 저격수들과 함께 공통적으로 가진 성장배경이다.
  3. [3] 참고로 그의 동생이 핀란드 공군에이스 조종사인 에이노 일마리 유틸라이넨이다.
  4. [4] 러시아어흑사병을 Чёрная смерть(직역하면 검은 죽음)라고 한다. 그가 소련군에게 어느 정도로 공포의 대상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5. [5] 저격 자세를 취할 때 스코프를 사용하면 평소보다 머리를 아주 약간이나마 올릴 필요가 있다. 그리고 모신나강의 조준경은 근접전을 대비하여 기계식 조준기로도 조준할 수 있도록 높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선호하지 않은 듯하다.
  6. [6] 물론 이런 중화기를 사용하기는 애매한 거리를 커버하는 "지정사수"라는 보직이 존재하기는 한다. 다만 이럴경우 전문적인 저격수가 아니고 분대와 함께 이동하기 때문에 시모 해위해처럼 단독적으로 행동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런 지근거리에서 활동하는 저격수라면 우선 사격술과 완벽할 정도의 위장술은 물론이고 달려드는 적들을 모조리 사살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힘들고 위험부담도 크다. 그가 기록한 사살수 중 기관단총 및 기관총에 의한 사살 또한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기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7. [7] 사실 저격수는 키가 크면 불리하다. 체격이 커지면 아무 데나 숨기도 어렵고, 피격당하기 쉬운 것은 물론 눈에도 잘 띄기 때문.
  8. [8] 화력 +30, 회피 +5, 치명피해 +30%라는 강력한 옵션으로 한발 한발이 재앙이었던 해위해의 위엄을 표현한 성능으로, 3개장 풀강 전용장비 모신나강은 인게임내 화력 1위로 1대 죽창을 뛰어넘는 죽창발사기가 된다.
  9. [9] 조준하는 오른쪽 눈은 십자 조준선 형태의 모양이 그려져 있는 오드아이로, 개조된 안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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