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읍

食邑

과거 중국, 한국, 베트남 등에서 공이 많은 신하에게 내리는 토지와 백성들. 식읍은 백성들의 가호 단위로 센다. 예를 들자면식읍 50호. 녹읍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일종의 보너스 개념이다. 견훤(양주[1]), 경순왕(경주)의 예처럼 특정 지역 전체를 식읍으로 받는 케이스도 있다. 식읍과 녹읍의 차이는 녹읍은 직역(벼슬)의 대가(소위 나라의 녹을 받는다)로 받는 것이고 식읍은 벼슬을 하지 않아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식읍을 받은 신하는 본래 국가가 식읍에서 거둬야 하는 조세를 백성들로부터 대리하여 수취할 수 있고, 백성들의 노동력을 마음대로 징발할 수 있다.

세습이 인정되지 않는 녹읍(祿邑)과는 달리 자산으로 여겨져서 세습을 할 수 있지만, 온전히 그 소유권까지 주는 봉읍(封邑)과는 달리 식읍의 소유권은 원칙적으로 나라에게 속한다.

그 수가 많든 적든, 식읍을 받는 것은 대단한 영예이다. 단 100호의 식읍만 받아도, 100가구부터 세금을 받는 셈이니 물질적으로도 엄청난 특권이었다. 게다가 화폐가 잘 발달하지 않거나 돈이 없는 가호에서는 노동력이나 군역으로 대신 부과할 수도 있으니 말 그대로 작은 마을의 왕이 되는 셈. 너무나 큰 특권이기에 통일신라 시대에는 사실상 거의 폐지되었는데, 김유신 이후 몇백 년만에 장보고가 식읍 2천 호를 받았다. 후기의 견훤도 후백제왕을 자칭하기 전에 신라의 식읍 2천 호를 자칭했는데, 이건 신라 조정에서 인정한 건 아니고 그냥 자칭이다.

식읍이 대단한 건 옛날에는 인구가 현대처럼 특정 지역에 몰려사는 형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식읍 규모가 크면 거의 마을이나 심지어 도시 몇 개를 받았다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신무왕장보고한테 식읍 2,000호를 내려줬다고 하는데, 한국으로 치면 거의 중견 도시 몇 개를 보너스로 받았다는 것과 동일하다. 그리고 경순왕은 신라고려에 바친 대가로 왕건으로부터 경주 전체를 식읍으로 받았다.


  1. [1] 견훤이 받은 양주 식읍은 2019년 기준 양주시 + 의정부시 + 동두천시 + 남양주시 + 중랑구 + 노원구 + 강북구 + 도봉구 + 성동구 일대이다. 견훤이 받은 양주 식읍에 2019년 살고 있는 인구는 무려 400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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