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민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영등포구 을)

제16~18대
권영세

제19·20대
신경민

현직


평일 남성 앵커

김성수

신경민

김세용

이름

신경민(辛京珉, Shin Kyoungmin)

출생일

1953년 8월 19일 (만 66세)

출생지

전라북도 전주시

종교

불교

본관

영산 신씨

최종 학력

고려대학교 언론학 석사과정 수료

병역

육군 중위 만기전역

소속 정당

더불어민주당

지역구

서울 영등포구 을

의원 선수

2

의원 대수

19, 20

소속 위원회

교육위원회

현직

제20대 국회의원

약력

제19, 20대 국회의원

더문캠 방송토론본부장

민주통합당 대변인

이화여자대학교 겸임교수

MBC 기자

외부 링크

블로그

1. 개요
2. 생애
2.1. 언론인 시절
2.2. 정치인 시절
3. 선거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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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직 언론인, 현 정치인.

대한민국의 제19대~20대 국회의원이며 지역구는 서울 영등포구 을 지역이고, 현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다.

정계 입문 이전에는 MBC 뉴스데스크에서 앵커를 했던 언론인으로, 이명박 정부 시기에 뉴스데스크 앵커를 하던 시절 폐부를 찌르는 클로징멘트로 각광을 받았다가 앵커보직에서 내려오게 된후 최고참 평기자로 근무하다 MBC를 정년퇴직한다. 그가 MBC 뉴스데스크 앵커직에서 내려온것은 이명박 정부가 넣은 외압 때문이라는 말들이 많았다.

MBC를 정년퇴직한 후에는 쉬다가, 2012년 19대 총선민주통합당에서 공천을 받아 서울 영등포구 을 지역에 출마해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리고 20대 총선 때 같은 지역구에서 재선 도전에 성공했다.

2. 생애

2.1. 언론인 시절

1953년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태어나 전주고등학교[1],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회학과[2]를 졸업하였다.

대학 졸업 후 1981년에 문화방송 공채 기자로 입사하였고, 1993년부터 1994년까지 MBC 뉴스데스크 주말 메인 앵커를 담당하였다.[3] 1980년대에는 평일 뉴스데스크나 아침뉴스에 간간히 출연해 보도국에서 국내외 속보나 단신을 전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88년에 백지연 앵커가 맡을 때까지 이는 계속되었다.[4]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인 1987년 1월 15일에 방송된 MBC 단신보도에서 해당 사건을 전하기도 했다.

어제 낮 12시쯤 서울시 용산구 갈월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21살 박종철군이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기다가 숨졌읍니다.[5] 숨진 박군은 서울대 민민투 책임자로서 수배중인 사회복지학과 박종운군을 숨겨준 혐의로 어제 오전 경찰에 연행됐었읍니다. 지금까지 간추린 뉴스였읍니다.

1996년에는 선거방송인 MBC 선택 96(1996년 15대 총선)의 진행을 맡았다.

1998년 9월부터 1999년 4월까지는 김주하 앵커와 같이 MBC 뉴스투데이의 진행을 맡았다.

2000년부터 워싱턴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했다. 2003년 귀국하여 보도국 부국장과 국제부 부장을 거쳐 2005년에는 보도국장 직무대리직을 수행하였으며, 그 해 보도본부 논설위원이 되었다. 2006년에는 보도국 선임기자가 되었으며, 2007년에는 법조언론인클럽의 부회장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또한 MBC 표준FMMBC 뉴스의 광장의 진행을 2007년 3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맡았다. 그리고 그 해 12월 19일 17대 대선 중계방송인 MBC 선택 2007을 단독진행했다.

그리고 드디어 2008년부터 엄기영 앵커가 사장으로 승진하면서[6] MBC 뉴스데스크 평일 메인 앵커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때 진행하면서 남긴 촌철살인같은 클로징멘트로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7]

여대생 머리를 짓밟는 군화와 직사 물대포에서 공권력의 정당한 집행은 읽을 수 없었습니다. 경찰 수뇌의 다급함과 피곤한 전경의 화풀이만 보였습니다. 이렇게 많은 열성 시민이 주말 새벽부터 밤까지 왜 그랬을까요? 만약에 배후가 있었다면 이런 시민을 동원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정부와 경찰이 아직도 디지털시대와 시민 분노를 이해하지 못 하고 7080식으로 대처했습니다.

- 2008년 6월 2일 뉴스데스크 클로징.[8]

그러나 2009년 4월 이명박 정부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뉴스데스크 앵커직에서 강제로 하차당했고, 2011년에 문화방송에서 정년 퇴직했다.[9]

뉴스데스크 마지막 클로징 멘트에서.

2.2. 정치인 시절

언론인으로서의 유명세와 당시 이명박 정부에 의해 앵커직에서 강제 하차된 정치인의 이미지가 합쳐지면서 민주당측의 강력한 러브콜을 받던 정치인이었고, 그 스스로도 MBC 계열 기자 출신이 많던 민주통합당[10]에 2012년 1월에 입당하여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민주통합당 대변인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치러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막판까지 공천 지역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결국 민주통합당 후보로 새누리당의 현역의원인 친박 권영세가 버티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을 선거구에 전략공천을 받아 출마하게 되었다. 여러모로 공천을 잘했고 명분 및 실리적으로도 출마하기 좋은 상황었다는 평이 많았다. 이유는 본인이 기자가 된 이 후 30여년 동안 거주한 곳인데다 본인이 MBC 출신이고 그 당시엔 영등포 을 지역구 내에 자신의 친정인 문화방송이 있는 여의도가 있어서 낙하산 논란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11]

원래는 후배였던 최문순 마냥 비례대표로 출마하려 했으나 출마 당시 정부의 방송장악을 비판하고 공정방송을 요구하는 KBS, MBC 기자들의 파업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고 정부와 여당은 탄압으로 일관하고 있었는데 이에 대한 대항마 및 저지를 위해 이슈화하고 정당성 확보라는 명분을 이유로 언론계를 중심으로 하여 지역구에 출마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게다가 당장 본인부터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클로징 멘트로 인해 정부와 여당에게 찍혀 외압으로 인해 강제로 메인 앵커에서 하차했으니... 이에 고민하다 결국 지역구 출마로 선회한 것이고 그것을 부각하기 위해 공천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러다 보니 전략공천인데도 반발하는 모습은 전혀 없었으며 야권 연대로 인해 통합진보당 후보가 알아서 양보해 1:1 대결이 되었다.

선거 초반에는 이 지역 현역 3선의 새누리당 권영세 의원에게 밀렸지만 자신의 유명세를 활용하면서 역전에 성공해 그를 꺾고 당선되었다. 권영세의 패인은 당 사무총장 및 공천관리위원회 부위원장이라 중앙당의 공천 업무에 매달리다 보니 지역구에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12] 이를 신 의원이 비집고 들어온 것.

2013년 5월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 2014년 3월 민주통합당의 후신인 민주당이 새정치연합과 합당하여 새정치민주연합이 되자 초대 최고위원으로 활동하였다.

2016. 2. 25일,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에서 연설을 하게 되었다. 과거 자신의 어린 시절과 언론인의 인생을 회고하는 것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언론인 출신답게 아주 날카로운 지적이 이어졌다.

2016년 4월 13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영등포 을 후보로 재출마하여 35,221 표를 득표(41.1%)하며 재선에 성공했다. 지난 19대에서는 일대일 대결에서 승리한 것과 달리 이번에는 17대까지 이 지역에서 출마해 권영세에게 간발의 차로 패한 김종구 후보가 국민의당으로 출마해 18.7%나 표를 잠식 당했지만, 상대적으로 권영세도 주중 한국대사관 대사로 나가는 등 지역구에서 오래 활동하지 못한 약점도 있었는 것도 있어 재선에 성공했다. 선거 당시 서울특별시당 시당위원장을 역임하며 무려 35석을 차지하는 괴력을 보여주는 등, 당내 입지가 더 넓어졌다고 평가된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선거대책위원회 TV토론본부장으로 문재인 후보의 TV토론을 이끌었다.

대선 이후엔 서울특별시 시장 출마 후보군과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군으로도 꼽히고 있다.

3.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영등포 을)

민주통합당

45,458 (52.61%)

당선 (1위)

초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영등포 을)

더불어민주당

35,221 (41.05%)

당선 (1위)

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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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제20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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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과는 전주고 48회 졸업생 동기이다. 다만 MBC에 입사한 것은 정동영이 1978년으로 선배이다.
  2. [2] 이해찬, 은수미 의원이 사회학과 동문이다. 신경민은 71학번, 이해찬 의원은 71년 서울대 공대에 입학하였다가 사회학과 72학번으로 다시 입학, 은수미는 82학번이다.
  3. [3] 후임으로 온 앵커는 고교, 대학 동창인 정동영이다. 여담으로 1993년 서해 훼리호 참사 당시 뉴스데스크 시작하면서 끝날때까지 깊은 빡침이 느껴지는 표정으로 보도를 했다.
  4. [4] 백지연 앵커가 뉴스데스크에 출연하기 전에는 서브앵커없이 정동영,신경민등 젊은 기자들이 서브앵커역할을 돌아가면서 맡았었다.
  5. [5] 당시 맞춤법으로는 '읍니다'가 맞다.
  6. [6] 다만 바로 앵커가 된 것은 아니고, 한동안 김성수 앵커가 진행을 맡았다. 이 분도 나중에 민주당에 가서 같이 국회의원이 된다. 2008년 3월에 보직을 서로 맞바꿔서 김성수 앵커는 표준FM의 뉴스의 광장(08:00~08:30)을 맡게 된다.
  7. [7] 최일구가 해학적이고 유머러스한 느낌이었다면, 신경민은 굉장히 날카로우면서도 냉철한 느낌의 멘트를 주로 하였다.
  8. [8] 전반부는 박혜진 아나운서가, 후반부는 신경민 기자가 읽었다.
  9. [9] 2003년 4월 4일 오전 9시 38분 빌 게이츠 사망 오보사건 당시 김장겸 기자가(전 MBC 사장, 이 때는 국제부 소속 기자였다) 팩트체크 없이 멋대로 가짜뉴스를 보도국측에 전해 대형 오보를 일으켰었다. 이후 징계의원회에 회부됐으나 신경민 국제부 부장이 보도국에다가 열심히 하다가 그런거니 한 번만 봐달라며 사정사정한 덕에 간신히 경고조치로 끝난 적이 있다. 그런데 정작 김장겸은 신경민 의원이 앵커하차 압박을 받을 당시 회사를 위해 물러나라며 설전을 벌인 적이 있다고 한다(...)역시나 박근혜 정부 밑에서 MBC사장으로 임명될 만한 인물이었다.
  10. [10] 정동영을 시작으로, 이득렬(새천년민주당 창당준비위원), 강성구(후단협 사태 이후 한나라당 입당), 박영선과 노웅래가 들어왔으며, 이후 최문순이 2008년에, 2011년에 신경민이 들어왔다. 이후 박광온김성수, 최명길(대선 전에 국민의당 입당)도 민주당 계열로 들어와서 국회의원이 된다.
  11. [11] 2014년에 마포구 상암동으로 이전했지만 여전히 MBC가 있는 마포구 국회의원 두 명 모두 자당 소속이다. 마포을 지역구 의원은 손혜원이고 상암동을 포함하는 이웃 지역구인 갑 지역구 의원은 노웅래인데 하필 그도 MBC 기자 출신이다. 옮겨도 민주당계 정당을 피히기 어렵네.
  12. [12] 전국 선거는 졌으나 수도권은 확실히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 바람이 불었다. 새누리당은 수도권에서 43석에 그쳐 69석을 차지한 야권에게 졌다. 그리고 다음 선거에서 서울특별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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