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익희

<span style="text-shadow: 0 0 10px #ffffff; color: #fede58;">건국훈장</span> 대한민국장(重章) 수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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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익희의 역임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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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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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

2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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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신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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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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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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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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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전)

20대(후)

강창희

정의화

정세균

문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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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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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border:0px solid; margin:-12px; margin-top:-2px; margin-bottom:0px"

국민대학 학장

초대
신익희

제2대
박이순

제3대
채상훈

제4대
최문경

제5대
강병두

제6대
김세완

제7대
이종항

제8대
이기영

제9대
서임수

제10대
이규석

제11대
정범석

1981년 종합대학으로 승격

국민대학교 총장

초대
정범석

제2대
이재철

제3대
정일영

제4대
이규석

제5-6대
현승일

제7대
정성진

제8대
김문환

제9대
이성우

제10-11대
유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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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법인 국민학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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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border:0px solid; margin:-12px; margin-top:-2px; margin-bottom:0px"

재단법인 국민학원 이사장

초대
신익희

제2-3대
최범술

제4대
정기영

제5대
이용조

제6대
정병조

제7대
조경구

제8대
김기섭

학교법인 국민학원 이사장

초대
김성곤

제2-3대
김세완

제4대
김판석

제5대
신현확

제6대
김인배

제7대
신현확

제8대
홍성희

제9대
이동화

제10대
서성택

제11대
조해형

제12대
서성택

제13대
김재현

제14-15대
김원기

제16-18대
이현재

제19-20대
한종우

제21대
김채겸

제22대
김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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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 회장

제5·6대
하경덕

제7대
신익희

제8대
홍성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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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대한민국 제1-2대 국회의장
신익희
申翼熙 | Sin Ik-hui

출생

1892년[1] 6월 9일

조선 경기도 광주유수부 초월면 서하리
(現 대한민국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서하리)

사망

1956년 5월 5일 (63세)

대한민국 충청남도~전라북도 호남선 열차

본관

평산 신씨 31세손 희(熙)자 항렬

해공(海公), 해후(海候)

직업

독립운동가, 정치인, 중화민국 국민당 육군 중장,
국민대학교 학장 및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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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신현(증조부), 신명호(조부), 신단(부), 신식(백부)
풍양 조씨, 전주 이씨(적모), 정경량(모), 신재희(형)
이승희(사별),김순이(재혼)
신정완(장녀), 신하균(장남), 차녀[2]
김재호(사위), 신기현(손자), 김낙양&김유생(외손자)
신보희, 신규희, 신필희, 신정희(이복형)

별칭

자(字)는 여구(如耉), 호(號)는 해공(海公), 해후(海候)
별칭(別稱)은 왕해공(王海公), 임방호(壬邦乎)

학력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학부 학사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경력

제3·4대 국회의장
서울특별시장
국방부 장관
자유당 중앙위원회 의장
대한체육회장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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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반내역 ]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부 제 30대 내무부장

임기

1944년 4월 22일 ~ 1948년 8월 15일

전임

조완구

후임

폐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부 초대 내무부차장

임기

1919년 4월 10일 ~ 1919년 4월 23일

전임

신설

후임

현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부 비서부 임시서리 비서장

임기

1921년 1월 25일 ~ 1921년 3월 30일

전임

오영선

후임

오영선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부 비서부 제 6대 비서장

임기

1921년 5월 7일

전임

김여제

후임

?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부 대리 외무부장 겸 외무부차장

임기

1920년 9월 27일 ~ 1920년 11월 30일
1920년 12월 1일 ~ 1921년 5월 7일

전임

이동휘

후임

이희경(대리)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부 제 18대 외무부장

임기

1933년 3월 6일 ~ 1933년 6월 22일

전임

조소앙

후임

김규식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부 제 6대(서리) 외무부차장

임기

1920년 9월 1일 ~ 1920년 9월 19일

전임

정인과

후임

본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부 제 13대 외무부차장

임기

1933년 3월 6일 ~ 1933년 12월 30일

전임

김석

후임

차이석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부 제 13대 외무부차장

임기

1943년 3월 4일 ~

전임

차이석

후임

페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무부 임시서리 법무부부장

임기

1919년 8월 18일 ~ 1919년 9월 11일

전임

안창호

후임

신규식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무부 제 4대 법무부차장

임기

1919년 8월 5일 ~ 1920년 2월 23일

전임

김응섭

후임

안병찬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제국 제1대 법제국장

임기

1920년 1월 13일

전임

신설

후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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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경기광주군 제 2·3대 국회의원

2대 임기

1950년 5월 31일 ~ 1954년 5월 30일 초선

3대 임기

1954년 5월 31일 ~ 1956년 5월 5일(사망) 재선

후임

신하균

"나라는 완전 독립되어야 하고(國家須完全獨立;국가수완전독립).

민족은 철저 해방되어야 하며(民族須澈底解放;민족수철저해방).

사회는 필히 평등하여야 한다(社會必須平等;사회필수평등)."[3]

1. 개요
2. 생애
2.1. 유년시절
2.2. 일제강점기
2.3. 광복 이후
2.4. 대한민국 수립 이후
2.5. 대통령 후보 출마와 사망
3. 사후
4. 미디어

1. 개요

대한민국정치가·독립운동가.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자는 여구(汝耉)이며 호는 해공(海公)이다. 현재 표기되는 이름은 '신익희(申翼熙)'지만 광복 직후에는 한자 독음의 한글 표기가 완전히 통일되지 않아서 이름이 '신익히'로 표기되기도 했다.# 대한민국 민주당계 정당의 아버지라는 평가와 해방정국 백색테러의 배후조종자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는 인물이다.

2. 생애

2.1. 유년시절

경기도 광주군 출생. 임진왜란탄금대 전투에서 전사한 신립의 후손이다. 조선 후기 때 판서를 지낸 신단(申檀)과 그의 넷째 부인인 동래 정씨 정경랑(鄭敬娘) 사이에서 태어났다. 신단의 여섯 아들 중 막내였고, 동복 형제가 2명 있었다.

어렸을 때는 한문에 능통했으나[4] 1908년 관립 한성외국어학교 영어과를 졸업했다. 이때부터 우파적인 성격을 띄어 "영국 젠틀맨"이란 조롱을 당했다.

2.2. 일제강점기

1913년 일본 유학을 가서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부에 들어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벌며 고학을 했다. 한국 유학생들과 학우회를 조직하고 총무·평의회장·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기관지인 '학지광(學之光)'을 발간하여 학생운동을 하였다. 1915년 졸업과 동시에 귀국, 고향에 동명강습소를 열었으며, 서울 중동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7년 보성법률상업학교(현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가 되었다.

3.1 운동에서 독립선언서 작성에 관여했으며,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후 내무차장·외무차장 등을 지냈다. 이때 백의사의 단장 염동진(본명은 염응택)이 남경중앙군관학교에서 교관들을 폭행하려는 폭동에 가담했다가 쫓기자 그를 숨겨주었던 것이 백의사와의 인연이 되었다.[5] 1923년, 서북군벌 후징이의 막하에 들어가 그의 군사고문 겸 국민군 중장에 임명되었다. 하지만 1925년, 후징이가 급사하면서 후임인 악유준의 미움을 받아 국민군을 떠나야 했고 이후 장제스에게 의탁하였다. 1927년, 국민정부 심계원장 위유런의 배려로 심계원에서 일하다가 한국 광복군에 뛰어든다. 임정과 국민당의 관계를 보면 알지만 이는 당시엔 흔한 일이었다.

2.3. 광복 이후

8.15 광복과 더불어 귀국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강령을 실천하기 위해 국민대학교 설립을 주도했다.

백의사를 이끌었고 심지어 김일성을 죽이기 위해 백의사를 북에 보냈다. [6] 심지어 미군정을 물러나게 하기 위할 쿠데타에 가까운 중경 임시정부 추대운동을 주동했던 적도 있었다. 존 리드 하지 중장은 그에게 사살 위협만을 하고 풀어주었다. #

정치공작대·정치위원회 등을 조직하였으며, 김구, 이승만 등과 함께 신탁통치 반대에 앞장섰다. 김구가 남북협상에 임하자 이에 반대하며 단독정부수립을 주장하는 이승만과 행보를 같이했다. 이 과정에서 김구와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7]

백색테러로 악명을 떨친 정치공작대나 이후 지청천의 대동청년단과 합세하여 대한국민당을 결성하고, 임정 내무부장에 있을때 경위대라는 사설 친위대를 만들려 한것을 보면 상당히 파시스트적인 면모가 보인다. 특히 백의사는 송진우여운형 암살 등 광복 직후의 수많은 암살과 테러에 깊게 개입돼 있다는 점에서 신익희는 백색테러의 배후조종자이자 정적들을 닥치는대로 암살한 살인자라는 비판을 피할 수가 없다. 후대에는 "독재에 대항한 야당 지도자"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실제로 1950년대 이후의 야당 지도자나 핵심인물들을 보면 알게 모르게 다들 극우 단체나 파시즘적 행보와 연관이 있다. 이유는 대부분의 중도파가 몰락하고, 대부분의 좌파가 죽거나 월북한 다음 남은 사람들이 이들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946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부위원장, 자유신문사 사장, 국민대학 초대학장 및 이사장, 대한체육회 회장 등을 겸했다. 그 해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일종의 국회의원격) 대의원에 피선, 1947년 의장이 되었다.

2.4. 대한민국 수립 이후

1948년 7월 초대 국회부의장에 선출되었으며 최연장자라는 이유로 선출된 국회의장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되자 국회의장직을 계승했다.

대한국민당을 창당할 때 앞장섰으나 독선적인 이승만과 부딪치면서 1949년 민주국민당을 창당하고 김성수, 조병옥, 장면, 윤보선, 박순천과 함께 야권을 이끌었다. 다시 1950년 다시 국회의장에 선출되어 부의장 장택수, 조봉암과 함께 이승만을 불신임까지 밀고 나갔으나 (당시 대선은 국회 간선제) 6.25 전쟁이 터지면서 이승만은 위기를 모면했고 발췌 개헌을 통과시킨다. 1953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대관식 때 대한민국 정부의 축하 사절로 영국을 방문했다.

사사오입 개헌이 터지자 호헌동지회를 구성했고 이를 바탕으로 민주당(1955년)을 창당했다.[8]

2.5. 대통령 후보 출마와 사망

이후 민주당 구파의 수장으로 장면을 이기고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30만이 운집한 한강 백사장 연설 등에서 크게 선전하였다.

신익희 백사장 연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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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 한강 모래사장에 가득히 모여주신 친애하는 서울시민 동포 동지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해방이 되기 전에 약 30년 동안이나 외국에 망명생활을 하던 사람의 하나로 오랜 시간을 두고 본국 안에 살고 있는 부모 형제 자매 동포 동지들이 그리워서 밤낮으로 눈물을 흘리고 한숨을 짓던 사람입니다.

오늘과 같이 많은 우리 동포 동지들과 이 한자리에서 대하게 되니 내 감격은 무엇이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더욱이 6ㆍ25사변 때 우리 전국 남녀 동지들의 가슴속에 깊이 박힌 원한의 이 한강, 오늘 이렇게 많이 만나 뵙게 된 것도 감탄 회포를 불금(不禁)하는 바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40년 동안이나 두고 우리 전 국민 동포들 남녀노소를 물론하고 우리나라가 독립이 되어야 우리는 살겠다고 하였거니와, 참으로 우리는 오매지간(寤寐之間)에도 염원하고 성축하고 바라고 기다리던 우리 독립 국민의 자유를 옹호하는 민주주의 국가를 우리들이 찾은 지 벌써 8년입니다.

일본제국주의의 파멸에 이은 무조건 항복이라는 것이 있은 지 10년이나 되는 것을 기억하지만 우리나라가 독립이 되어서 대한민국에 정부가 선 지도 8년이 된 것입니다.

우리들의 살림살이 살아가는 형편이 어떠한 모양이었습니까? 이것이야말로 우리 전국 동포 동지들이 날마다 시간마다 꼬박꼬박 우리들이 몸소 겪고 지내 내려온 터인지라 여러분은 특별히 잘 체험하고 잘 기억하실 것입니다. 만일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양, 이 꼬락서니, 우리들이 40년 동안 두고 밤이나 낮이나 원하고 바라던 독립, 이 독립 이것이 결코 우리가 사는 꼬락서니, 이와 같으리라는 것을 생각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 이 까닭이 무엇입니까? 세상만사가 이유 없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무슨 이유? 무슨 까닭? 이 까닭은 다 이야기한다 할지라도, 책임 맡아 나라 일 하는 이들이 일 잘못해서 이 꼬락서니가 되었다는 결론입니다. 이것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헌정대원(憲政大原)의 원칙일 것입니다.

국토는 양단된 채로 우리들이 사는 형편 어데 가던지 우리가 이 모양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들은 어떻게 해서 이러한 고생에 파묻혀 있나?

여러분! 오직 우리나라 정치가 한 사람의 의사에 의한 일인독재정치가 여론을 다 무시하고 제 마음대로, 제 뜻대로 함부로 비판이나 모든 종류의 체계 없는 생각이나 정책이나 하는 것을 함부로 거듭해서 불법이니 무법이니 위법이니 하는 것이 헌법을 무시하는 것을 비롯해서 큰 법률, 작은 법률 지키지 않는 까닭에 우리들의 도덕은 여지없이 타락되어서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별이 없는 이러한 형편으로 한심한 형편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까?

한겨레의 능률은 극도로 저하가 되고, 전국의 우리 군인, 동포, 동지들은 고통의 위협에 허덕이고 있을 뿐더러 빌어도 환멸인, 이런 그늘 밑에서 우리들은 시들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하면 우리는 살아나갈 수 있을까?

나는 우리 이 위기와 이 곤경에 직면하고 있는 우리 국가 민족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사랑하는 이 나라, 사랑하는 이 민족을 어떻게 해야 보다 낫게 바로 살아가도록 힘을 쓸 수 있을까? 또 우리나라, 우리 민족을 어떻게 해야 구할 수 있을까 하는 이 어리석은, 그러나 내 정성된 몇 가지의 의견을 여러분께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이 몇 마디 말을 여러분이 생각하기를, 신익희라는 사람은 민주당에서 앞으로 오는 선거에 대통령의 후보자로 지명받은 사람이니, 이제 몇몇 마디의 말은 만일 자기가 투표를 많이 받아서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면 이런 이런 일을 하겠다고 우리 국민들에게 하는 약속이리라 들어주셔도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에 당선되고 안 되는 것은 원칙적으로 전 국민이 지지하고 찬동해서 많은 표를 던져줌으로 해서 당선되어 대통령이 되는 것이지 자기가 잘났다고 “내가 대통령 되겠다.”, “나를 따르라” 이러한 생각 가지고는 대통령이 되기가 어렵다는 것이 아마 우리 일반 사람들이 아는 도리일 것입니다.

특별한 방법으로 되고 안 되는 것은 나는 알 수 없고, 이러한 처지니까 만일 내가 오늘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는 몇 마디 이야기는 대통령이고 무엇이고 다 집어치우고서라도 우리나라가 이렇게 해야 잘될 것이고, 우리 민족이 이렇게 해야 잘살 수 있으리라 하는, 한 집안 식구가 한 자리에 모여서 걱정하고 의논하고 얘기하는 격으로 여러분이 들어주신다면, 많이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는 말씀입니다.

제일 먼저 중요한 줄거리를 말씀 드리면 사람과 짐승의 구별은 도의 도덕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이 사람 사는 보람이지, 남부럽지 않게 남의 뒤에 떨어지지 않게 잘살아가자는 것이 우리 전체의 목적이라면, 우선 먼저 사람다운 표준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양심 있고 올바르게 일하고 사람 속이지 아니하고 책임지고 모든 갖가지 일을 틀리지 않게 해가자고 하는 사람들을 오늘날 이 세상에서 행세를 못하게 되는 처지입니다. 양심 떼어서 선반에 올려놓고 얼굴에다 강철 조각을 뒤집어쓰고 사람을 속이고 거짓말하고 도적질 잘하는 자들이 대로 활보하고 행세하고 꺼덕거리고 지내는 세상입니다.

이러하니 만일 이 세상이 그대로 이렇게 지속되어 간다면 아마 사람다운 생활을 하기에는 틀렸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선 먼저 사람답게 잘살아가자면 우리는 도의 도덕을 지켜서 사람과 짐승의 구별이 예의염치(禮儀廉恥)를 찾는 데 있다는 옛날 교훈을 받아 새로 우리는 정신을 가다듬고 마을을 바꿔먹자 하는 말을 제일 먼저 첫 마디로 드립니다.

둘째로는 우리는 오늘날 살고 있는 이 나라는 옛날과 달라서 민주국가라는 나라입니다. 백성이 제일이요, 백성이 주장하는 나라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이름은 대한민국이라 백성의 나라, 이 백성의 나라는 옛날 나라와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주국가에서 제일 우리들이 주의하는 것은 법을 다스리는 나라다 하는 것입니다.그래서 수많은 학자들이 말하기를 민주국가라 하는 것이 거죽 외면으로 되는 것이라면, 이면에 있어서는 법을 다스리는 법치국가이라는 이야기를 다 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옛날 지나간 시간에는 황제의 말 한마디가 법률이라고 해서 지키지 않으면 모가지를 자르는 때도 있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한 사람의 말이나, 요새 항용 보는 특명이니, 무슨 명령이니, 특권으로 무슨 명령한다, 유시한다 하는 것이 법률을 못 당하는 것이며, 법률이래야만 반듯이 하는 일, 못하는 일을 규정한다는 법치의 정신을 지키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법률이야말로 전 국민의 뜻대로 국회에서 통과되는 것이 법률인데, 이 법률이야말로 대통령 되는 사람부터 저 길거리에서 지게를 지고, 품삯을 지는 친구들에게 이르도록 남녀노소, 부귀빈천 아무 구별 없이 법률 앞에서는 다 만인이 평등으로 다 똑같이 지켜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형편으로 이런 말을 하기가 나부터도 가슴이 쓰린 얘기입니다마는 대한민국의 법률의 그물의 커다란 독수리는 물론이려니와 가마기, 까치, 제비까지도 모다 뚫고 나가지만 불쌍하게도 법률 그물에 걸리는 것은 오직 파리나 모기뿐이라 하는 얘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답게 살려고 하면 도덕과 도의를 높여 가지고 큰 법률, 작은 법률 다 지켜야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다음 얘기할 것은 우리 동포들이 주야로 염원하고 있는 우리 국토의 통일, 우리 국가 재건에 선결 문제되는 이 남북통일의 문제, 이 통일문제, 우리들이 산 사람을 비유한다면, 한 허리 중간에다 바오라기로 잔뜩 동여매 놓고 밥 한 숟가락을 한 모금, 잘 내려가고 넘어갈 이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형편으로서는 남쪽이 없이 북쪽이 살아가기 어렵고, 북쪽이 없이 또한 남쪽이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조상 때부터 단일민족으로 정든 삼천리강산을 반쪽으로 나눌 수 없는 것도 또다시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만, 현재 우리가 사는 경제 형편으로 본다 할지라도 남북이 통일되지 않는 한 제대로 우리의 행복스러운 생활을 해가는 것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북을 통일하자는 것이 우리 민족의 제일 간절한 근본의 과제인 것이고 의무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모두 잘살아가자는 데에 선결문제라는 것을 다 같이 생각하고 있어요. 모든 일을 국내적 형편이나 국제적 형편에 알맞게 현실적으로 되도록 우리가 해가야 될 것은 물론입니다.

우리 전 민족의 본의 아닌 휴전조약이니 하는 것이 성립되어 가지고 몇 해째 계속하고 있지만 필경은 조국을 통일이라는 이 문제야 우리들이 해결한 문제인데는 틀림없지 만은, 이것저것 상관할 것 없이 덮어놓고 오늘 저녁이나 내일 아침이라도 북쪽으로 밀고 올라가서 당장에 백두산 꼭대기에다 태극기를 휘날리고 두만강, 압록강 물에 우리의 마른 목을 축이자는 이 희망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누가 없으리오마는 되지 않는 헛소리, 책임지지 않는 큰소리 아무리 소리 질러 보았댔자 특별히 뜻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될 수 있는 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우선 먼저 우리가 생각해야 되겠다는 나의 주장입니다.

여러분! 나라의 목적이 어데 있느냐? 정부를 세우는 목적이 어데 있느냐? 우리 국민이 다 잘살아가자는 것이 나라의 독립의 목적이오, 민족의 자유의 목적이고 정부 건립의 또한 목적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뭐니 뭐니 다 얘기할 것 없이 우선 먼저 우리 국민이 잘 살아가도록 올바른 민주정치로 백성을 위하는 정치, 백성이 하는 정치, 백성의 정치라는 유명한 이상적인 민주정치 정의로 내리고 이야기하는 이 실상에 있는 이 올바른 민주정치를 우리는 하나하나 실행함으로써 우리 전 국민이 마음으로 연구해서 옳다! 우리 정부야말로 우리를 살게 하는 정부다, 우리는 정부 없이 살아갈 수 없구나, 이 정부야말로 과연 우리 정부다, 남녀노소를 물론하고 이와 같은 신의와, 이와 같은 대세가 우리 정부에 오도록 우리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북쪽의 공산치하에서 신음하고 있는 수많은 이북동포 동지들 목을 길게 들여서 목구멍이 마르도록 하루바삐 백성을 위하는 우리의 정부, 대한민국, 우리 조국의 따뜻한 품안으로 한 시간 바삐 들어가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자는 터전을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놓으면, 어느 사람 치고 자유 없이 구박받는 정치제도 하에서 살겠냐고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정치를 잘해서, 백성들을 잘 살도록 해야만 될 것인데, 오늘날과 같은 정치를 해 가지곤 도저히 우리 국민이 행복하게 살 수 없어요.

우리가 밤낮으로 염원하는 첫째 조건으로써 우리가 잘살 수 있게 하는 올바른 민주정치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국민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국정의 혁신이 있는 연후에 비로소 국방력도 강화될 수 있고 모든 국민이 마음 놓고 북진통일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형편을 보면, 국민은 생활고에 허덕이어 못살겠다고 하고 있는데, 큰소리로 뭐니 뭐니 하는 것은 하나의 공수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가지 자랑거리가 있다고 공연히 내 대지 말고 한 가지라도 내 손으로 내 힘으로 만들도록 하는 현명하고 슬기로운 방면으로 여러 군사방면으로 최후의 승리를 가져온다는 것은 평시에 보기 좋은 장비를 훌륭하게 가졌다는 것이 최후의 승리를 얻는 요건이 아닌가요?

하루 반나절 못돼서 최후의 승리를 가져오는 비결은 장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충에 있다는 것입니다. 대포 하나 없어지면 보라는 듯이 보충하고, 탄알이 몇 십만 발 몇 백만 발 없어지면 보라는 듯이 보충해 놓고, 비행기가 오그라지면 비행기다 화염방사기가 없어지면 또한 화염방사기다, 이렇게 보란 듯이 보충 보급이 돼야 최후의 승리를 가져온다. 이 준비야말로 싸움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면 다 아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군사, 어느 한 가지 우리나라에서 총 몇 자로나 만든다고 그럽디까, 우리나라에서 탄알을 몇 개나 만든다고 그럽디까? 그런고로 우리나라 우리의 힘으로 모든 우리가 다 마련해 놓고 얘기를 해야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긴요하고 근본인 우리의 조국통일 문제에 있어서도 우리는 정치적으로 기본을 삼고 군사역량을 조금 가미해 가지고 평화로운 방법이 7, 8할이라 하면 이외의 다른 방법을 한 2, 3할쯤 가미를 해가지고 우리는 통일하는 것이 근본 결론의 길이고 또한 우리 국내, 국제적으로 제약 돼 있는 우리 형편에 반듯이 현실적으로 우리가 노력할 일이라 하는 것을 나는 말씀 드립니다.

그 다음에 여러분! 오늘날 우리 민주국가의 형편은 지나간 세대와는 달라요. 대통령이 대단히 능력 있고 자격 있고 고귀한 듯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지만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을 무어라 그러는지 여러분들은 다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하인이라고 불러요. 프레지던트라고 불러요. 프레지던트라는 말은 심부름꾼이 되는 하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하인인데 대통령 이외의 사람들 부장, 차장, 국장이니, 과장이니, 지사니, 무슨 경찰국장이니, 군수니, 경찰서장이니, 또 무엇이니 하는 사람들이 거 뭐일까요? 하인 중에도 자질구레한 새끼 파리들이다 이 말이에요. 그러므로 하인이란 말은 심부름꾼이란 말을 비유로 얘기 해 보면, 농사짓는 집의 머슴꾼 같은 것이고 장사하는 댁의 하인꾼 같은 것입니다.

대통령이라고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고, 땅에서 솟아난 것이 아니요. 그러므로 일 잘못하면 주인 되는 우리 국민들이 반듯이 이야기하고, 반듯이 나무라고, 반듯이 갈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말입니다. 여러분 이것이야말로 당연한 일입니다. 주인 되는 사람이 심부름하는 사람 청해 놓았다가 잘못하면 “여보게 이 사람 자네 일 잘못하니 가소” 하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니겠습니까?

요새 무슨 표어를 보면 모시고, 받들고, 뭐고 뭐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만은 다 봉건 잔재의 소리입니다. 모시기는 무슨 할아버지를 모십니까? 받들기는 뭐 상전을 받듭니까? 이러므로 만일 주인 되는 국민들이 언제나 “당신 일 잘못했으니 그만 가소” 그러면 두 마디가 없는 것입니다. “대단히 미안합니다. 나는 일 잘못했으니 나는 물러가겠습니다.”하고 가야 합니다.

요새는 어떻게 되었는가 하면 “가거라.”하면 “가? 어딜 가! 날더러 가라고! 당치 못한 소리” 거 좀 실례에 가까운 말이지만, 농사짓는데 무슨 논을 갈던지 할 때 논 속에 많은 거머리가 정강이에 딱 달라붙으면 암만 때려고 해도 자꾸 파고 들어갑니다.

거머리 달라붙듯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 말이 통속적으로 얘기 했습니다마는 우리 민주당에서 정치적인 원칙으로 내각책임제의 책임제도로 정치를 하자는 것이 이 진리를 우리는 주장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국민의 대표격인 국회에서 “당신 일 잘못하니 정치 그만둬” 그러면 당연히 책임지고 물러가야 하는 것이다 이 말입니다. 그거야 요새 국회의 형편 모양으로 한 당의 사람들이 굉장히 수요를 모아 가지고 된 일도 손을 들고 안 된 일에도 손을 들고 그래 가지고 전체의 올바른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두통을 앓도록 하는 형편입니다. 이러한 것조차 우리는 주의를 해야 된단 말씀입니다.

쓸데없이 공연히 정부에서 괜찮게 일하는데도 “가거라. 말아라.”하는 때에는 그것도 좀 어렵습니다. 그런 까닭에 말썽 많으면 가는 게 원칙이지만 쓸데없이 공연한 험담이나 하고 가라고 하는 때에는 과연 이게 전 국민의 의사가 이런 게 아닌가 그걸 또 알아보는 방식으로 해 가지고 정부에서는 국회를 한번은 해산시키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내각책임제가 가지는 근본 뜻일 것입니다. 이것이 내각책임제의 알기 쉬운 이런 얘기를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다음은 우리 일반 행정 방면으로 어떻게 해야 우리들은 보다 낫게 살아 보겠는가? 제일 먼저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나라 살림을 해 가는 데 제일 긴요하고 시급한 문제 즉 일반 공무원에 대한 문제입니다. 나라 일을 해 나가는 데는 수많은 일꾼이 필요해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나, 문관이나, 무관이나, 경찰이나, 군인들이나, 전부 몰아서 국가의 공무원이란 명칭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자, 이분들이 오늘날 우리 일하고 있는 형편이 어떠합니까?

애는 많이 쓰고 갖은 고생 다 겪어 내려오는 우리 일반 공무원 동지들, 나는 늘 평소에 얘기하기를 말이나 노새에게 짐을 지워서 백 리나 팔십 리 길을 가라고 할 때에는 반드시 그 말이나 노새에게 먼저 먹이를 먹이라는 것입니다. 먹이를 배불리 먹이지 아니하고는 팔십 리 백 리를 그대로 가라하고 채찍질한다고 하면 그 말이나 노새가 그대로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나라 공무원의 형편은 어떠합니까?

한 사람이 이십 일이나 아니 반달이나 제대로 살아가기 어려울 만한 월급 푼어치를 주면서 어느 누군가 부모처자 없는 이가 있어요. 적어도 사오식구를 부양해서 살아가는 이러한 형편이나 우리가 늘 말 듣건대 우리 공무원들이 일 잘못해간다고 행정에 효율이 올라서지 않는다고 더 심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일본 사람들이 있을 때에는 세 시간 동안 일하면 해내던 일을 군정 때가 되니까 사흘 동안을 가지고도 다 못해내더니 대한민국이 생긴 뒤에는 석 달이 되어도 짓뭉개고 해놓지 못하더란 말입니다. 무슨 까닭일까요. 도장 하나 찍어서 결재해주는 일이라는데, 한 달 두 달 석 달 넉 달 끈단 말이에요, 또 어떤 이가 얘기하는 것을 들으니 무슨 대통령 비서실로 끌고 갔다 끌고 내려왔다 올라갔다 칠십일 동안 돌아다녀도 도무지 도장이 안 찍혔다는 그런 말을 최근에 들었습니다.

왜 이러느냐 말입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또 무슨 사바사바가 있어야 된다고 교제가 있어야 된다고요. 왜 이러는 것일까요. 왜 이러는 거냐 말입니다. 여러분 대한민국에서 공무원의 생활을 최저한도로 보장을 아니해주고 공무원의 신분을 확보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일 잘 해 가거라. 하며 그대로 밀고 끌고 가는 것은 곧 대한민국의 공무원들은 도적질해서 먹고 살라 하는 말과 똑같은 것이라고 나는 말합니다.

실정에는 우선 맞도록 최저한도의 조밥이나 보리밥이라도 배가 고프지 않도록 주고 무명이나 외양목 끝이라도 집안 식구의 등어리를 덮어 줄 수 있게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부패한 공무원이 비단으로 감고 싶다든지 산해진미의 좋은 음식을 먹고 싶다고 하여서 그러기 위해서 수뢰를 받거나 요새 흔히 하는 말로 사바사바를 하거나 이렇게 되거든 아무 사양할 것 없이 그야말로 모가지를 잘라 버리라는 말입니다. 이러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나라살림을 꾸려가려 며는 일반 공무원동지들에게 신분을 보장하고 최저한도의 생활을 확보해 주어야 한다는 말을 드리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또 한마디 말씀 드리려고 하는 것은 우리들이 민주국가를 꾸려가려고 할 때는 백성이 주인이라는 세상이 있도록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극히 적은 말 같습니다마는 우리나라의 신문이나 영화에 돌아다니는 것을 본다면 봉건시대의 계급적 용어가 얼마든지 아주 상투적으로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도 모르고 그대로 줄줄 써 내려온단 말입니다.

각하가 왜 그렇게 많은지. 각하, 각하는 민주국가의 알 수 없는 취미예요. 원칙으로 먼 각하는 다리 아래가 각합니다. 다리 아래. 또 말하자면 유시라는 게 있습니다. 신문에 보면 대통령의 유시라고 있습니다. 유시가 뭡니까? 유시가요. 여러분이 아실 것입니다. 한문 글자에 유시라는 글자는 그전에 황제가 쓰던 자예요. 요새 대통령이 말하면 지시라던지 훈시한다던지 하면 다란 말입니다. 유시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거기다 더군다나 대통령이 분부를 한다든지… 분부가 뭐입니까? 분부가.

무슨 얘기를 한다든지 그러면 모르려니와 상전이 종들에게 분부하는 게고 더구나 가정에서 높은 어른이 얕은 비속에게 분부한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아래 하(下)짜 줄 사(賜)짜 그전에 황제, 임금이 신하들에게 주는 것을 하사라 그랬습니다. 하사는 뭐냐 말입니다. 그런 것이 썩 집어치워야 해요.

내가 이 간단한 몇 마디를 얘기한다는 것은 민주국가에서 관권이 너무 남용된다는 얘기입니다. 아까 말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심부름꾼이고 하인이라면 관권의 남용된 유시가 뭐란 말입니까?

오늘날 어떻게 되고 있어요? 특별히 경찰권의 남용, 특무대니, 경찰이니, 무시무시합니다. 관리 공무원들은 다 하인들이란 말이야요. 하인이 주인의 따귀를 붙이고 발길질을 하고 대들어 보아야 그놈의 집안은 거꾸로 돼서 다 망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부럽지 않게 살려고 하면은 관권의 남용을 애초 썩 집어치우란 말입니다. 이것은 일반 행정면에서 얘기를 하고 다만 아무리 무어라 말하더라도 현재 우리생활에 있어서 재정경제와 상공방면에 상관된 얘기를 한마디 아니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무엇보다 민주국가나 무슨 국가를 막론하고 더군다나 백성이 주인이 된다는 나라에 있어서 우리들이 자발적으로 결심하고 각오해 가지고 우리나라를 꾸려가는 재정, 우리의 세금으로 다 마련하는 우리 의무를 진 것입니다.

세금, 세금의 의무는 우리들의 거룩한 힘으로 우리들이 다 지고 있어요. 그렇지만은 오늘날 이 세금제도의 소위 인정과세라고 하는 것은 당신은 이만큼 벌 것이라고 이만큼 내라는 경우라니, 이런 제도 이게 무슨 제도입니까. 우리나라 이외 다른데서 별로 보지 못하는 제도입니다. 세금이라는 것은 얼마를 벌면 얼마를 내라는 그 비율이 결정 됐단 말입니다. 그런 제도이기에 모든 가지 폐단이 여실히 있어 가지고 제게 달갑게 하면 많이 벌어도 세금을 적게 내라고 하는 것이고 제가 밉게 보는 처지라면 아무리 돈을 벌지 못하는 형편이라도 세금을 많이 무겁게 부과시켜 가지고 못살게 하는 이거야말로 무엇이겠습니까?

국가의 세입이 마련 없이 줄게 되고 전 국민이 이 세금 난리에 눈, 코를 뜨지 못해 못살게 되는 지경이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인정과세의 제도라는 것은 하루바삐 폐지해야 되겠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 이외에 모든 가지 잡부금, 농촌에도 도시에도 기가 막히는 잡부금, 될 수 있는 한 경감해 가지고 우리 전 국민에게 고통이 적도록 마련해야 되겠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더군다나 우리 도시에서 서울에서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전 시민 동포동지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문제이겠지만 은행에서 빚 쓰는 문제, 옛날에 은행이 없을 때는 말할 것 없지 만은 국가에서 은행을 가지고 있는 의무가 우리 돈 버는 사람들이 집에다 그대로 돈을 두기에 편치 않으니 은행에 갔다 두고 이자를 붙여서 돈을 맡기는 것도 그 목적이겠지만, 그 것보다 더 주요한 문제는 생산업의 밑천으로 은행에서 빚을 내서 자기가 저당을 하거나 신용대부를 해서 크거나 적거나 사업에 종사를 해서 은행에도 이가 되고 장사하는 이들 공업하는 이들 공장하는 이들도 많은 이익을 받게 되어서 이것이 개인의 살림살이도 늘러 갈 뿐더러 국민의 경제가 발전이 되고 전 국가 경제가 번영하는 까닭에 이것은 전 국민의 기가 막히는 긴요한 관계를 가진 은행문제인데, 여러분 오늘날 우리 은행의 융자, 은행의 빚 쓰는 관계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여러분 계획적입니다.

자기에 가까운 사람만이 은행에 가서 돈을 얻어 쓸 수 있고 자기네가 밉게 보고 자기네가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돈을 얻어 쓸 수 없게 하는 형편이 아니겠습니까? 더욱이 정부 방면에서 특권으로 은행융자를 이렇게 저렇게 좌지우지하게 되는 형편이라면, 우리의 국민경제의 우리의 산업발전, 우리의 재정경제가 정상적으로 발전되리라는 우리가 기약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오늘과 같이 은행의 문을 닫고 좁다 하게 뒷문으로 옆문으로 드나들게 되는 이와 같은 기현상은 하루바삐 고쳐서 은행의 대문을 활짝 전 국민 앞에 열어 놓아야 될 것이다 하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같이 하여 적어도 도시의 소규모의 생산업자에 큰 이익을 주어 앞으로 유지하고 발전이 터전이 되게 하는 것이 그분들을 위하는 유일한 길이라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우리가 다 같이 생각해야 할 것은 농촌문제의 일로서 우리나라는 농업국가로서 전 인구의 7할 이상 8할이 농민입니다. 농민들이 잘 살아서 농촌이 번영해야 우리나라는 잘된다는 이치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부인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러하니 우리 농촌에 제일 먼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은 토지소득세라는 것, 이것도 6ㆍ25사변 직후로 군대 양식이라든지 모든 가지로 해서 단 1년 2년 동안에 임시로 현물로서 토지소득세를 받겠다는 것이 정부방침의 토론 설명하는 얘기로서 국회의 통과를 받던 것이지만 오늘날까지 꼬박꼬박 토지소득세 현물로 받고 있는 형편입니다.

여러분! 이것 돈으로 금전으로 받아야 된다는 것을 국회에서 몇 번을 통과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오늘날까지 그대로 현물을 받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토지소득세를 폐지해야 되고 이것을 계속해서 나간다고 하면 우리 농민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잡부금. 농촌의 잡부금 많은 데는 백 삼 십 여 가지, 적은 데라야 오십여 가지, 이 잡부금. 이건 과연 우리 농민의 기름과 우리 농민의 땀을 그대로 긁어서, 더 못살게 하는 것이니 우리는 하루바삐 안 받도록 마련해야 되겠다는 주장입니다.

여러분! 뿐만 아니라 비료를 싸게 때에 맞게 우리 농민들에게 배급을 해줘야 될 것은 물론이고 정부에서 양곡을 사들인다고 하는데도 강제로 매상하는 제도를 치워버리고 적어도 쌀 한 섬에 농민이 얼마만큼 밑천을 들였다는, 그 밑천을 정부에서 주고 그대로 사들이는 공정한 이 방법을 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주장입니다.

다음에 군사문제입니다. 이 문제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데 조국을 방위하고 우리 전 민족을 수호해 나간다고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공산침략을 방지하는 유일한 우리의 힘은 군사역량일 것입니다. 원래 국민의 의무로서 큰일의 의무 세 가지 중의 하나로서 병역에 복무하는 의무가 누구나 우리가 다 각오하고 있는 것이지만 여러분 오늘날 우리나라에 병역이 공정하게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관대작의 아들 손자, 부자장자의 아들 손자, 특권계층의 아들 손자들이 얼마나 병정으로 전방에 가서 지내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아십니까? 징용이다, 징병이다, 하는 이 두 가지 어느 것을 물론하고 어떤 계층이나 종류나 물론하고 다 똑같이 공정하게 우리는 이 징용 징병에 복역해야 되겠다는 이 의무를 우리는 공정하게 져야 되겠다는 주장입니다.

이렇게 하므로 우리들은 병역에 가게 되는 것이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즐겁게 우리나라를 위하고 우리 민족을 위해서 우리가 당연히 질 우리의 의무일 뿐더러 누구나 다 같이 하는 의무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사기는 앙양되어 가지고 우리의 전쟁은 최후의 승리로 반드시 우리가 갖게 된다는 신념이 또한 이러한 것에 있는 것으로 여기에 붙여서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뿐만 아니라 현대의 우리 전쟁은 수효가 많은 것에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다 아시다시피 핵 신무기나 원자탄이나 수소탄이라는 과학무기가 있을 까닭에 극히 적은 수효의 군사를 가지고서도 최후의 승리를 가져온다는 것을 우리가 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물며 옛날로부터 병부재다(兵不在多)요, 병(兵)이라는 것은 많은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재어정(在於精)이다. 정(精)한데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는 반드시 앞으로 군대에 관한 정병주의로 지금 있는 군대의 수를 훨씬 줄여서 거의 반가량을 간발해 가지고서 우리나라의 병역을 공정히 하고 우리 군대의 군기를 천명하게 잘해 가지고 보면 최후의 승리는 반드시 우리에게 온다는 신념을 우리는 다 같이 갖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나는 특별히 주장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끝으로 우리 교육문화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도 시간이 너무 걸려서 미안합니다마는 우리나라에서는 의무교육이라, 해놓고 실제로 우리가 의무교육을 하고 있습니까? 사친회비니, 소위 학교의 잡부금이니, 다른 중고등학교하든지 대학교 학생들을 차지해 놓고서도 초등학교 학생아이들까지도 이 부담에 학부형 되는 이들이 기가 막혀 머리가 빠진다는 것은 도리어 허식된 비유의 얘기고 그 아주 못살 지경이란 말이에요! 자 그러하니, 어떻게 됐고 좀 깨끗하게 해봤으면 하는 주장입니다.

또 뿐만 아니라 대학교 관계에 있어서도 학원의 모리배처럼 법규에 맞지 않는 대학이라는 것을 합리화하고 적법하게 정비해야 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징집문제, 이것은 소집이거나 징집이거나 다 응용되는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국가의 생명은 무한한 것입니다. 언제나 신진대사에 모든 방법을 아무리 국보가 가난하고 위험한 경우에 있다 하더라도 위정 하는 사람들은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국가의 위기로 후방에서 당장 전국에 미만한 화약내 나는 전시판이라 하더라도 후방에서 교육받고 있는 학생들은 적어도 보류되어야 된다는 거의 원칙인데 요새는 징집에 관한 보류문제가 대단히 시끄러워진 모양입니다. 나는 후방의 국가의 동량의 재목으로 부흥재건에 간부 양성하는 본의로 고등학교이상 대학교 학생동지들의 징집문제를 반드시 보류하는 것을 고려해야 되겠다는 주장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문제에 있어서도 우리들이 간과하지 못하는 문제들은 더군다나 우리 서울 같은 도시들이예요. 기술자, 한 사람의 기술자면 하루 이틀에 양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기술자의 대접이 우리 대한민국처럼 초라한 나라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기술자는 정부에서 보장해서 취직문제나 모든 가지가 기술자 이외의 다른 사람보다는 특별히 잘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을 노력해야 될 것입니다.

전체의 실업자의 구제문제니 취직문제니 하는 것도 사회문제의 큰 문제이겠지만 기술자를 우선적으로 실업의 구제문제를 우리는 유의해야 되겠다는 것을 먼저 말씀 드리면서 이 가운데에 포함되고 있는 문제이겠지만 수많은 상이용사 더군다나 전란에 전몰한 우리 군경장병들의 유가족의 구호문제 거기에 부수해서 성질은 다르다 보겠지만 형편에 있어 같은 것이 6ㆍ25사변 때 무참하게도 이북에 납치되어간 가족들의 구호문제, 이런 등등의 문제가 아무쪼록 합리적이고 적절하게 대대로 우리 정부, 우리 국가, 우리 전 국민의 동정 거룩한 동족의 사랑으로 바라는 것입니다.

미련하고 불쌍한 수많은 우리 동포들에게 따뜻한 마음과 부드러운 손이 닿도록 우리는 노력해야 되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적으로 동족의 의리로 반드시 이렇게 아니하면 안 되겠다는 말입니다. 극히 적은 문제이겠지만 하도 말썽이 많은 문젠데 도시의 미관도 우리 서울, 대 서울 이런 도시에 그렇게 무시할 문제는 아니겠지만 산 사람의 사회의 일인 만큼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대 서울 도시의 미관이라는 것보다는 수많은 전재민 동포의 집 없는 고충을 좀 알아줘야 되지 않겠어요.

누구인들 좋은 집에서 살고 싶지, 판잣집에서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 주택문제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구라파에서도 있는 문제로써, 이들이 문제한 나라라고 해서 도시 미관상이니 위생상이니 하고 오늘날 우리나라와 같이 몇 만 호를 갑자기 헐어버리는 때는 없습니다.

이 문제만 하더라도 정부에서 외자물자를 많이 받아들여 공동주택을 하루바삐 지어서 그들에게 싼값으로 주는 것이 옳은 방법인데도 불구하고, 산 설고 물 다른 타향살이에 갑자기 판자 집을 헐라고 하니 그들이 갈 곳이 어디냐 말입니다.

이것이 모두 주책없는 정책이란 말입니다. 아니 심하게 말하면 판자 집을 헐라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좋은 양옥집에서 사니까 남이야 집 없이 헤매든 말든 아랑곳없다는 듯이 도시의 미관이니 위생상 나쁘다는 구실을 붙여 가지고 전재민들을 못살게 하는 것 밖에 안 된단 말입니다. 이것 안 됩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앞으로 우리의 정부는 반드시 거국일치의 내각으로 전국의 인재를 망라해 가지고 인재 본위로 옛날에 한말과 마찬가지로 야무유현격으로 적재적소로 무슨 당파에 속한 사람이거나, 민주당에 당적을 가진 사람이나, 자유당에 당적을 가진 사람이나, 그 이외에 또 무슨 당의 당적을 가졌다는 사람들이거나, 나하고 친한 사람이니 그렇게 친하지 않는 사람이나, 내가 평소에 그렇게 예쁘다고 곱다고 생각을 한 사람이나, 아주 마땅하다 가깝다 생각한 사람이거나 다만 자격이 있어 다만 이만한 인재라면 한국에 다 들러붙어서 우리나라를 어떻게 잘 해갈 수 있고, 우리의 이 국민을 어떻게 잘 살려 갈 수 있으며, 우리의 조국을 어떻게 해야 하루바삐 통일되며, 우리 전 국민이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루 바삐 안정시킬 수가 있느냐 하는 이 일을 함께 해나가자는 말입니다.

이러함으로 나는 정당의 관계로 나를 괴롭혔다, 나를 무시했다, 나를 모욕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선거라는 것은 대통령 선거라고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국회의원 선거보다 참 욕설이 큽디다.

국회의원 선거 때 각 지방을 돌아다녀보면 서로 입후보했다는 사람들이 자꾸 같이 욕을 해서 나는 그때에 그분들에게 얘기하기를 “당신들은 선거 운동하는 요령을 모르니 내 얘기 할 테니 들어보라”하고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입후보한 사람이 여럿이거든 당신은 그 입후보한 사람을 자꾸 칭찬해 주라. 마음껏 칭찬해 놓고 맨 나중에 아무리 그분들이 잘났고 좋다고 하드라도 나보다 못하다는 얘기를 조금 못하다는 얘기로 결론 내라” 나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아나 모르나 모르되 선거운동의 요령은 그래야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요새 듣고 보니 대통령 선거라 그런지 도무지 욕설이 너무 많고 듣기 어려운 욕이 많습니다. 그렇지만은 욕하는 사람이 죄지, 욕먹는 사람은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리 욕하던 사람이라도 내가 대신 욕하고 싶지 않고 또 만일 내가 앞으로 전 국민 동지들에게 찬성을 받아서 지원을 받아 내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된다고 하더라도 나를 욕한 사람들을 원망스럽다, 괘씸하다, 보고 해야겠다는 생각은 아니하겠다. 하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끝으로 만일 내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된다면 서울 근처의 속담 한마디 마찬가지로 내가 만일 광주(光州) 유수(留守)를 하면은 남한산성에서 줄 불을 놓겠다. 그런 얘기와 마찬가지로 내가 만일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하면 우리 전 국민의 주인 되는 우리 전 국민 동포 동지들의 심부름꾼으로 충실하게 일할 작정입니다. 그 말입니다.

결코 내가 잘났다, 내가 이렇거니 우리 국민들은 따라와라, 이런 죄스러운 생각과 죄스러운 말은 아니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전 국민 동포 동지들과 같이 괴로우나, 즐거우나, 웃음이나, 울음이나, 먹으나, 굶거나, 똑같이 여러분과 지내보리라는 약속입니다.

높직한데 들어앉아서 국민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국민이 우는지 웃는지 도무지 모르고 너는 너, 나는 나의 격으로 그대로 살아가지는 아니할 뿐더러 언제나 여러분을 자주 자주 찾아서 어떻게들 지내시며,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일이 있소 하는 얘기를 묻기도 하려니와 동시에 여러분은 부단히 나를 찾아서 우리 주인 되는 국민들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당신은 이렇게 일해주소 하는 부탁으로 여러분이 자주 찾아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입니다.

이러한 형편으로 나는 언제나 대통령이 있다는 집이라면 언제든지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여러분을 기다리겠습니다. 하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 좌석도 불편한 모래사장에 수많은 여러분이 차례 없이 지껄이고 있는 이 사람의 말을 재미있는 것처럼 잘 들어주시니 특별히 고맙습니다.

내 말은 여기서 끝내기로 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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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 후, 조금만 더 유세를 하면 이승만을 이길 수 있다는 분위기가 민주당 내 조성되었다. 당시 신익희의 건강은 결코 좋은 편이 아니었으나, 신익희도 이러한 상황에 고무되어 측근의 만료에도 유세 일정을 줄이지 않았다.

5월 5일 선거를 열흘 남기고 전주로 가기 위해 전라선 열차를 타던 중 호남선 구간인 함열역 부근에서 뇌일혈로 졸도했고 이리역에 급히 내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 열차 안에서 이미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9]

사실 60을 갓 넘긴 상황이었고 전국순회유세로 건강이 우려되는 시점이라 아주 놀랄 일은 아니었다. 조병옥 등도 그의 수행을 자처할 정도였다. 신익희는 선조들이 조선시대에 60세 이상 장수한 점을 자랑하며 자신의 건강에는 이상이 없다고 강조했지만 그 역시 63살에 죽었다. 죽기 이틀전인 5월 3일 한강백사장 연설에서 너무 흥분해서 효자동 자택에서도 흥분이 가시질 않아 정말 위험했다고 한다.

넥타이를 매다 졸도한 뒤, 깨어나 홍차를 마시고 종손이자 비서인 신창현에게 뒤지(휴지)를 달라고 말한 것이 그의 마지막 한마디가 되었다. 이승만의 독살설도 있지만 정황을 보면 음모론으로 봐야할 듯 하다.

3. 사후

해공 국민장 (1956)

그가 죽은 직후 비 내리는 호남선[10]이란 노래가 유명세를 탔다. 청와대효자동의 자택에 묻혔다.

그의 사후 진보당조봉암은 단일화를 주장했으나 민주당은 거부했고, 이에 5월 15일 선거 당일 대량의 무효표가 "추모표" 격으로 던져졌다. 그 숫자가 무려 185만표에 달해 단일화(조봉암 210만)를 했다면 부정선거의 의혹에도 불구하고 이승만(500만)을 위협할 정도였다고.

그의 사후 지역구인 경기도 광주군에서 재보궐선거가 치러졌는데 아들 신하균이 당선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그의 비서였던 유치송은 전두환 정권 때 관제야당인 민주한국당을 창당하여 총재가 되었다.

국민대학교는 설립자이자 초대학장인 그를 기리기 위해 매년 추도식에 총장을 비롯한 교직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캠퍼스에는 신익희 동상이 건립되어 있고. 문재인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선거운동 차 국민대학교 캠퍼스를 방문했을 때 이 신익희 동상에 헌화하기도 하였다. 또한 학교 박물관에 신익희 기념관을 조성하였고, 장학금이나 단체명에 그의 호인 '해공'을 따서 명명하는 경우가 많다.

더불어민주당 창당기념식 (2017)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창당 기념일인 9월 18일에 경기도 광주의 신익희 생가에서 창당 기념식을 매년 열고 있다.

4. 미디어

광복 직후터 제1공화국시기를 다루는 현대사 드라마에서는 높은 확률로 출연한다.

제1공화국에서는 전운무풍지대에서는 김기종이 담당하였다.

서울1945에서는 박영록이 담당하였으나, 복장고증 오류나 안경 미착용 등으로 자막에 신익희라고 달지 않는 이상 모를 정도.(...)

4.1. 야인시대

신익희(야인시대) 문서 참고.


  1. [1] 1894년생이라는 설도 있다.
  2. [2] 어릴 때 사망했다.
  3. [3] 여기서 '수(須)'는 '반드시'의 의미이다. 흔히 알려진 해석 가운데 '자유'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해석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해방' 은 주권의 의미가 강조된 '광복'으로 해석한다.
  4. [4] 심지어는 삼국지연의를 잘 못읽는 청나라 사람에게 대신 삼국지를 술술 읽어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5. [5] 대한민국 임시정부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 학교의 조선인 학생들은 김구에게 불만이 많았다. 국민당에게도 그렇고. 여담으로 김구는 백의사를 만주에 파견하고, 만주를 폭격할 계획까지 세웠었다.
  6. [6] 백의사와 정치공작대는 1946년 3월 1일 평양의 3.1절 기념식에서 김일성에게 수류탄을 던진다. 그러나 이 수류탄은 김일성 옆에 있던 소련군 장교 노비첸코가 주워서 던지려다가 노비첸코의 손에서 폭발한다. 그는 한쪽 손이 잘려나가고 한쪽 눈이 실명되지만 김일성은 무사했다.
  7. [7] 김구는 국민대학교 설립 당시 기성회 고문으로 참여했으나, 신익희와 사이가 멀어진 이후부터는 단국대학교에 도움을 주게 된다.
  8. [8] 이때 조봉암을 참여시키는데 미지근한 태도를 취했다.
  9. [9] 다음 선거(1960년)에 출마했던 민주당 구파의 리더였던 조병옥도 선거 중 급사했다.
  10. [10] 남행열차와 다른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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