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영(프로게이머)

前 스타크래프트 1 프로게이머

프로필

이름

신주영

로마자 이름

Shin Joo Young

생년월일

1977년 12월 17일

국적/출생지

대한민국 대전광역시 서구

종족

저그, 프로토스

現 소속

무소속

ID

Honest'SG

소속 기록

무소속

1999-01-01 ~ 1999-07-01

KTF 매직엔스

2004-11-01 ~ 2005-03-01

1. 소개
2. 수상경력
3. 경력
3.1. 스타크래프트 게이머 시절
3.2. 입대 이후
4. 그가 남긴 것

1. 소개

국내 최초의 프로게이머 1호

이기석, 김태형과 함께 전설적인 스타크래프트 1세대 프로게이머라고 할 수 있겠다.

단, 신주영은 본명이 아니다. 본명은 박창준이며 좋아했던 누나의 이름을 가명으로 썼다고 한다.

ID는 Honest. 종족은 저그프로토스.

2. 수상경력

1998년 12월 블리자드 시즌3 16강 래더 토너먼트 우승

1999년 1월 두루넷배 TNT 스타크래프트 대회 준우승

1999년 4월 블리자드 래더 토너먼트 시즌1 8강

1999년 제3회 KPGL 스타크래프트 단체전 준우승

1999년 넷클럽배 스타크래프트 개인전 우승

3. 경력

3.1. 스타크래프트 게이머 시절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되었던 1998년부터 활약하기 시작한 게이머로, 오리지날 시절에는 저그중심의 랜덤유저였으며 부르드워가 출시된 이후로는 프로토스 중심의 랜덤유저로 플레이했다. 별명은 Fast finger.[1] 미국 프로게이머 리그(PGL)에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등록되어 최초의 프로게이머로 인정받고 있다.[2] 이 때 프로게이머라는 의미는 지금과 사뭇 다른데 협회니 팀이니 하는 소속도 없고, 특히 정규리그란 안정적인 개념조차 없던 시기에 대회가 열리면 개인 자격으로 참여, 상금을 타내는것을 업으로 삼는다는 개념이었다. 쉽게 말해 '상금을 노리고 게임을 하는 유저' 이상은 아니었다.

여기서 더 발전해서 팬층을 거느리게 되자 PC방 홍보수단으로 특정 PC방에서 게임을 하면 월급을 주는 식으로 발전한 것이 초창기 프로게이머였다. 당시 신주영이 소속되어 있던 PC방이 후술할 '슬기방'이다. 프로게이머계에서 유일한 개척자는 아니지만, 게임을 업으로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처음 알린 것이니 큰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는 1998년 12월 블리자드 래더 토너먼트에서 우승하여 세간의 큰 화제를 모았다.[3] 그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이기석이 CF 스타로 한창 이름을 날리던 1999년, 신주영은 군입대를 하게 되면서 프로게이머 경력이 사실상 중단되었다.

군입대 이후에 자잘한 논란거리가 나왔고, 이기석과 마찬가지로 어뷰징 논란이 일면서 이미지에 있어서 많은 손해를 보게 된다. 제대 이후에는 사실상 활동이 멈췄다.[4] 그러다가 2004년 KTF Magic NS에 입단하면서 복귀를 선언하지만, 스타판은 이미 신주영이 활약하던 시기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고 2005년 하릴없이 은퇴하게 된다.

3.2. 입대 이후

한창 활동하던 1999년 8월 군에 입대하여 이후로는 언론과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났다. 입대전 프로게이머 시절 몸을 혹사했는지 자대배치받고 얼마 안되어 후송을 가버렸고, 휴가때마다 게임을 즐기느라 복귀일을 맞추지 못해 9개월간 육군교도소 생활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2002년 군 제대 직후 신주영의 부활을 놓고 언론의 관심이 대단했다. 국내 최초로 1억 연봉계약설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게임계의 살아있는 신화를 지나친 상업성으로 이용하려는 몇몇 이들과 본인의 뒤처진 게임실력으로 끝내 부활에 실패했다. 이후 주위 지인들과도 연락이 두절되었고 협회에 의해 제명당하게 되었다. 협회에서 실시하는 정기 소양교육에 여러 차례 불참한 것이 제명된 이유다. 스타에 흥미를 잃었던 것으로 판단된다.(직접 입으로 이젠 스타가 재미없고 흥미를 잃었다 라고 했었다.)

2004년 10월 KTF 매직엔스에 입단했다가 2005년 4월 다시 은퇴했고, 이후에는 고향인 대전에서 PC방 영업 중.

2016년 인터뷰에 따르면 리니지를 플레이하며 개인방송을 진행 중이라 한다. http://sports.news.naver.com/esports/news/read.nhn?oid=442&aid=0000029816

개인방송국 주소 : http://afreeca.com/accshin1000

4. 그가 남긴 것

한국에서 스타크래프트 대회가 TV방송되기 시작한 1999년~2000년에 전성기를 보낸 이기석에게 인지도 면에서 밀려, 많은 이들이 '프로게이머의 원조'하면 이기석을 많이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신주영 역시 한국 프로게임(e-sports)계의 살아있는 역사임에는 틀림이 없다.

SG팀의 막내 이기석은 신주영의 빌드를 따라할 정도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신주영에 대한 플레이가 많이 남아있지 않은 이유는 군대를 간 시점부터 대회가 TV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TV방영에 의해 이기석이 프로게이머의 원조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긴 하나 스타크래프트에 일정이상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신주영이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게이머임을 알고있다.

주로 연습하던 PC방인 '슬기방'의 이름을 따 창단한 '청오정보통신 슬기방'(SG) 팀에서 활동하였으며, SG 소속으로 1999년 4월 KPGL 스타크래프트 단체전 준우승을 차지했다.

입대 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스타크래프트 공략집인 '스타크래프트 무작정 따라하기'를 발매했다.[5] 스타크래프트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 당시 수많은 '스타 관련 책'이 나왔지만 그중에서도 거의 최초로 등장한 '게임 공략 메뉴얼'로 스타크래프트의 간략한 역사, 각종 주요 빌드, 거기다 저자인 본인과 쌈장 이기석과의 대결영상을 수록한 부록CD를 제공하는 등, 지금보아도 상당히 알찬 구성으로 되어 있다. 소개된 주요 빌드들은 당시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면 상당히 유용한 빌드가 많았다.

다만 출간시기가 워낙 옛날인지라 지금과는 상당한 괴리감이 보이는데 오리지날과 브루드워가 공존하던 시기였기에 '오리지날 전용' 전략이 수록되어있다. 생마린 40~50기를 동원한 러시방법도 소개되어있고 마린 8기에 디펜시브 매트릭스를 걸은 일명 '수퍼 머린'전략도 있다. 뮤탈 컨트롤이 발생하기 전이라 뮤탈의 활용은 저글링+뮤탈에만 간혹가다 쓰이고, 멀티에서 미네랄 양쪽끝과 커맨드 옆에 벙커를 지으면 공중유닛을 '완벽 방어'할 수 있다는 내용도 수록되어 있다. 사장된 고전전략뿐만 아니라 비교적 현대적인 전략도 수록되어있는데 4드론, 패스트 다템 등 스타 초창기에 있었던 주요 빌드들도 많이 소개되어 있다. 특히 저그의 1.08패치 이전 확장의 개념은 저그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3해처리와 유사하다.[6] 부록CD에는 '스피드 웹'이라는 독특한 프로그램이 있는데 '전화선'을 연결해서 인터넷 통신으로 상대방과 배틀넷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1시간당 1400~1600원의 전화료가 나오는데 당시는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가 공존하던 시기로 ADSL, 메가패스가 등장하지 않았을 무렵이었기에 그렇게 배틀넷을 즐겼던 것.

스타크래프트 1.08패치에 맞춘 개정판이 나오기도 했다. 대형 서점이나 옛날 책을 주로 파는 곳 위주로 찾아보면 구할 수 있을지도.

또 당시에 프로게이머 겸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던 임영수와 스타크래프트 소설을 쓰기도 했다. 스토리는 오리지날 스토리-태사다르오버마인드와 자폭했을 때 까지인데 1권만 신주영, 임영수가 쓴 걸로 되어있고 2권 이후는 다른 사람이 쓴 걸로 되어있다. 이것도 구하기는 힘들고 도서관이나 중고 서점에 가보면 간간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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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최근 선수의 별명들이 해설자들의 설정에서 나오는데 반해 신주영의 별명은 외국인들이 직접 붙여준 것이라 의미가 남다르다.
  2. [2] 이 당시 국내에는 프로게이머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3. [3] 이 대회에서 신주영은 16강에서 김태형을 2:0으로 꺾고 8강에서 이기석을 2:1로 꺾은 뒤, 4강과 결승에서는 외국에서 이름을 날리던 게이머들을 모두 꺾고 우승하여 국내최강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4. [4] 사실 2002년 ITV 명인전에 출연해 이기석과 한 경기 치러 불과 5분만에 GG친 적이 있다. 이 때면 이기석도 이미 퇴물이 된지 오래였건만... 또한 MBC GAME에서 MBC명인전이라는 프로로 이기석 국기봉과 같이 올드게이머로 출현하여 후배 프로게이머였던 김정민, 장진남과도 경기하였지만 패배하였다.
  5. [5] 출판사 길벗사의 '무작정 따라하기' 시리즈 중 하나로 냈다. 무작정 따라하기 시리즈는 지금도 있지만 게임 관련 무작정 따라하기는 신주영이 처음이자 마지막일듯.
  6. [6] 지금 3해처리와 유사하게 스포닝풀 + 3해처리의 개념이었다. 프로게이머가 되기전엔 이 전략을 주로 써서 자신이 '맵핵 유저'로 의심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만큼 효과적이었던 전략이란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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