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수

2011년 6월 사진

이름

심정수(沈正洙)

생년월일

1975년 5월 5일

국적

한국

출신지

서울특별시

출신학교

서울수유초-동대문중-동대문상고[1]

포지션

3루수, 우익수, 좌익수[2]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4년 고졸 연고구단 자유계약(OB)

소속팀

OB-두산 베어스(1994~2000)
현대 유니콘스(2001~2004)
삼성 라이온즈(2005~2008)

응원가

Joan Jett - 'I love Rock AND Roll'[3]

종교

불교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95

2003

2004

2005

2006

수상 기록

2002, 2003, 2007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2007년 한국프로야구 홈런왕

2007년 한국프로야구 타점왕

2003년 한국프로야구 최고 장타율

2003년 한국프로야구 최고 출루율

2000년 한국프로야구 플레이오프 MVP

2002, 2003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올해의 선수

OB 베어스 등번호 4번

김광수(1982~1992)

심정수(1994)

윤기수(1995-1998)

OB/두산 베어스 등번호 32번

윤기수(1993~1994)

심정수(1995~2000)

빅터 콜(2001~2002)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44번

심정수(2001)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32번

김성준

심정수(2002~2004)

오윤(2005~2007)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2번

손주인(2003~2004)

심정수(2005~2008)

강희성(2009)

1. 소개
2. 선수 경력
3. 은퇴 후
4. 약물 의혹
4.1. 약물 의혹에 대한 반박
5. 기타
6. 연도별 기록

1. 소개

헤라클레스

심장사

한국야구 역사를 대표하는 우타거포 중 한 명[4]

그리고 역대 최고의 기록을 가졌던 전설적인 선수와 정점을 겨뤘던 유일무이한 국내선수

비운의 2인자

OB-두산 베어스, 현대 유니콘스,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외야수.

2. 선수 경력

2.1. OB 베어스 & 두산 베어스 시절

OB 베어스 시절.정수빈? 심정수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한 웨이트 트레이닝이 제대로 빛을 발한 1999년. 이분이 생각나면 지는거다...

공포의 클린업 우동수 시절. 참고로 타순은 이의 역순이다.

학창 시절에는 동대문상고에서 유격수로 뛰었다. 이 때 보디빌딩을 하는 친구들로부터 근육 만드는 법을 배워서 일찍부터 감자, 달걀 흰자, 우유 등을 먹으며 몸을 키웠다고 한다. 덕분에 미래의 거포 감으로 OB 베어스에서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접촉했고, 한양대학교로의 진학과 프로 입단 사이에서 최종적으로 프로 입단을 선택했다. 이 때가 1994년.

첫 해에는 2군에서 뛰다가 1995년에 본격적으로 1군에 콜업되었다. 내야수 주로 3루수를 봤지만 1루 송구시 대부분 내야 그물로 빗나갔다고한다. 이 때 별명이 소년장사, 공포의 8번타자. 그러다가 김인식 감독과 면담으로 외야수로 전향, 감독의 배려로 부담감 없이 장타력을 마음껏 발휘해 보라는 차원에서 8번에 들어갔다. 심정수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김인식 감독은 예의 믿음의 야구를 시전, 10경기 연속 무안타를 쳐도 서너번 연속 삼진을 당해도 심정수를 계속 내보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너는 삼진 먹어도 되니까 니 마음껏 돌려."였다고. 오오 믿음의 야구 오오[5]관련 영상

결국 .282, 21홈런, 59타점이라는 8번타자로서는 가공할 만한 성적을 내며 1군 데뷔시즌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당시 장타율(.508)은 팀 선배이자 그 해 홈런왕이자 MVP였던 김상호보다도 높은 팀 내 1위. 물론 이것은 김상호의 타격 정확성이 나쁘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후 2년 동안의 조정기를 거쳐서[6] 본격적인 활약은 1998년 타이론 우즈, 김동주와 함께 우동수 트리오가 구축된 시점부터 시작되었다. 우동수 트리오의 5번 슬롯에서 활약하던 3년(1998~2000) 동안 심정수의 성적은 .311 79홈런 274타점 OPS .935. 이 기간 동안 심정수보다 좋은 성적을 낸 타자는 타이론 우즈와 이승엽 둘 뿐이었다. 특히 2000년 LG와의 플레이오프에서는 4, 5, 6차전에서 연속으로 결승 홈런을 날려 팀을 한국시리즈에 올리는 1등공신이 되었다. 해설자 모두들 함성을 짓게 만든 덕아웃 시리즈였다.[7] 당연히 플레이오프 MVP도 그의 몫이었다. 이 활약으로 심정수는 한국판 '미스터 옥토버'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2001년 현대에서도, 2005년삼성으로 넘어가서도 심정수는 가을야구 때 큰 거를 쳐준다. 그리고 또 얼굴 생김새가 비슷하게 생긴 먼 후배뻘 잠실 아이돌[8] 이 선수도 가을에 펄펄 뛰고 다닌다.[9]

바야흐로 본격적인 잠실 거포 시대를 여나 했는데...

2.2. 현대 유니콘스 시절

2000년 말의 제2차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사태에서 마해영, 양준혁, 송진우, 김재현 등과 함께 핵심 멤버로 활동했다.[10] 선수협 건은 결국 공정거래위원회의 중재로 잘 마무리되었지만, 선배들이 맞은 트레이드 후폭풍을 그 역시 비켜갈 수 없었다. 2001년 초 두산은 심정수보다 나이가 많고 공격력은 떨어졌던 외야수 심재학현대 유니콘스에서 받는 대가로 심정수를 트레이드 처리한다. 이 때 정들었던 두산을 떠난다는 생각에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때부터 그의 본격적인 각성이 시작되었다.

새로 옮겨간 현대 유니콘스는 심정수가 딱 좋아할 만한 연습덕후(…) 분위기였다. 김용달 코치의 조언을 받아 타격자세를 수정한 심정수는 2001년 시즌 초 무서운 성적을 냈으나, 그 해 6월 롯데 자이언츠 강민영의 투구에 얼굴을 맞는 바람에 광대뼈가 함몰되는 부상을 당하고 좋았던 페이스를 잃어버리게 된다. 당시 시즌 아웃이 유력했으나, 1달만에 복귀하였고, 이후 심정수가 1군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쓰고 있던 헬멧이 안면부를 보호해 주는 이른바 검투사 헬멧. 그에게 있어서 선수생활때 팬들은 헬멧을 중요시 여겼다. 참고로 심정수는 2003년 초에 롯데와의 경기에서 박지철의 공에 같은 부위를 맞고 또 부상을 당해서 검투사 헬멧을 다시 써야 했다.[11] 안 그래도 롯데가 심정수를 3번씩이나 맞추면서 사태가 더 커졌다.

2002년 이후 심정수는 타격폼을 마크 맥과이어같은 폼으로 확 바꾸면서 홈런을 40개 이상 기록하는 등 홈런갯수가 확 늘어난다. 당시 김용달 타격코치는 정말 집요하게 심정수에게 자신의 말대로 타격폼을 바꿀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심정수의 방까지 찾아와서 괴롭힐 정도였다고. 심정수는 자기 나름대로의 야구철학이 있었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김용달의 의견을 처음에는 외면하다가, 정말 집요하게 자신에게 매달리는 코치의 모습을 보면서 딱 한 번만 믿어보자 싶었다나. 결국 그 결정이 대박을 냈다. 김용달 코치는 늘 자신의 의견을 지나치게 선수들에게 강요한다는 악평이 따라다니는데, 그의 고집이 빛을 발한 드문 케이스. 여하간 2002년, 2003년 두 해에 46홈런과 53홈런을 연달아 쏘아올리면서 이승엽과 본격적인 선의의 경쟁을 펼쳤지만 두 해 다 아쉽게 홈런 2위에 머물렀다.콩정수 2002년엔 정규시즌 마지막 날에 이승엽이 연장전에서 홈런을 쳐서 공동1위는 아쉽게 무산되었다.

특히 2003년은 심정수 본인뿐 아니라 한국야구 역사에 남을 기록을 작성한 해였는데, 연초에 이승엽과 함께 초청선수 자격으로 참가한 플로리다 말린스의 스프링캠프에서도 당시 스카우트들에게 "지금 당장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와도 좋을 선수"라는 평을 받았으며 MLB닷컴 메인에도 올라가는 등 화제를 뿌렸고, 정규시즌에서는 53홈런뿐 아니라 .335 / .478 / .720 OPS 1.198이라는 말도 안 되는 높은 생산성을 과시했다. 삼진은 63개였는데 볼넷이 124개. 그야말로 타석에서 공포의 존재였다. 지금 저렇게 친다면 홈런왕 따위는 기본적으로 따놓은 당상이겠지만 하필 이 해에 이승엽이 홈런을 56개 치는 바람에 또다시 2인자로 남고 말았지만, 그 해 소속팀의 승리에 가장 많은 공헌을 한 선수는 명실공히 심정수였다. (이승엽 .301 / .428 / .699, 심정수 .335 / .478 / .720)

실질적인 타자의 득점공헌도를 판단하는 wRC(weighted runs created)는 이승엽이 139.3, 심정수가 153.6[12] 또한 이승엽이 1루수였던 반면 심정수는 우익수였으며 심정수의 소속팀은 그 해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끝내 홈런왕, 타점왕, MVP를 이승엽이 가져가자 심정수의 아내는 속상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대신에 타율, 출루율과 장타율은 이승엽보다 높아서 출루율과 장타율 부문 1위. 타율은 2위.[13] 그리고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도 2002~2003 2년 연속 수상.

여튼 2003년은 이승엽도 대단하지만 심정수같은 성적이야 말로 충공깽 같은 성적이다.[14] 단순 홈런 수치로만 봐도 현대에서 4년 간 통산 133홈런을 쳐내 OB-두산에서의 7년간 통산 홈런 121개를 월등히 뛰어넘는다. 이 시절이 심정수의 진정한 리즈시절.

그리고 이 화려한 세월이 지나가면서 그의 몰락이 곧바로 시작되었다. 몰락의 원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부상, 또다른 하나는 라섹수술. 특히 무릎과 어깨가 문제였다. 지나치게 송구연습을 열심히 한 탓에[15] 심정수의 어깨 회전근은 2003년 시즌 이전부터 심각하게 손상되어 있었고, 바꾼 타격폼을 정착시켜서 장타를 늘리기 위해 무리하게 스윙연습을 하는 통에 무릎에 무리가 갔던 것이다. 김용달 코치의 조언에 따라 바뀐 타격폼이 기존보다 무릎을 많이 사용하는 폼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장종훈과 비슷하게 지나친 훈련이 도리어 해가 된 케이스.

결국 2004년 시즌 심정수는 우익수와 지명타자 자리에서 뛰며 전 시즌보다 1할 가까이 낮은 타율을 기록했고, 이러한 부진 때문에 평소 갈망하던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을 완전히 접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4년 초 라섹수술을 받았는데, 이후 밤에 움직이는 물체의 빛이 번져 보이는 야구선수로서는 치명적인 후유증을 약 1년여 간 겪었다고 한다. 그 결과 타격 정확성이 저하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승엽이도 없고, 해영이도 없던 홀로 분전하던 양준혁의 뒤를 받쳐 줄 우타거포를 물색하던 삼성 라이온즈FA로 풀린 그에게 손을 내밀게 된다. 결국 박진만에 이어 심정수까지 삼성에 내준 현대는 이어지는 해 거짓말처럼 7위를 기록했다.[16]

현대가 만약 돈이 많고 팬들이 많이 있었더라면 심정수는 물론 잡았을 것이다. 애초에 잘했으니깐 하지만 당시 현대2000년 서울 연고를 선언하고 인천을 박차고 나오면서 팬층이 다 떨어져 비인기 구단으로 전락한 데다[17] 2001년 모기업 현대전자의 부도로 인해 돈까지 없어진 상황이었다. 결국은 공인 프랜차이즈 스타 박진만을 놓치고, 프랜차이즈로 등극할 수 있었던 심정수마저 떠나게 되었다.

게다가 신인 1차 지명권 박탈, 유망주 농사 폭망까지 겹치면서 그렇게 현대는 멸망했다.

2.3. 삼성 라이온즈 시절

2005년 올스타전에서.[18]

빠던갑

라섹 수술을 받은 후 시력 저하의 후유증을 겪고 있었던 심정수는 시력 검사로 인한 메디컬 테스트 탈락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때문에 눈을 문제 삼는 구단과는 얘기 안한다는 선언을 했고, 우타 거포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삼성 라이온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4년 최대 60억 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들이며 심정수를 영입한다.

이후 그가 먹튀로 전락했기 때문에, 팬들은 심정수의 메디컬 테스트 거부가 정당하지 못한 행동이었다고 비판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문제는 삼성 라이온즈에서도 심정수의 부상을 알면서 영입했다는 점이다. 심정수의 은퇴 즈음하여 삼성 구단 관계자들은 심각한 부상이 있더라도 심정수는 성실한 선수이기에 재활에 쉽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삼성 프런트에게는 최악의 선택이 되고 말았다... STC가 있었더라면??[19]

한 마디로 삼성판 갈락티코스 정책.

계약 첫 해였던 2005년에는 롯데 자이언츠와의 개막 2연전에서 장원준에게 만루홈런을 뽑아내는 등 5월까지는 엄청난 활약을 보였으나 6월부터 부상이 악화되며 부진을 거듭했고 7번타자로 내려가는 등 수모를 겪으며 .275, 28홈런 87타점 OPS .903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망한 시즌이라는 게 OPS 9할이다. 게다가 시즌 홈런도 2위!(참고로 1위는 래리 서튼) 문제는 60억을 받았다라는 사실이다 이 시기부터 어깨 부상과 수비 범위 감소로 인해 좌익수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6년 초 수술을 결심, 왼쪽 무릎과 오른쪽 어깨를 독일에서 수술하고 그 해를 통째로 재활에 날리게 되었지만[20] 한국시리즈에는 정상적으로 출장했다. 다음 해인 2007년에는 안경을 스포츠 고글에서 옛날의 뿔테로 바꾸고 타석에 등장, 31홈런과 101타점을 기록하며 53홈런을 칠 때도 해보지 못했던 타점왕과 홈런왕 타이틀을 함께 거머쥐었다. 그러나 타율은 막장. 1995년 OB 베어스의 김상호가 세운 25홈런, .272를 뛰어넘는 .258라는 최저타율 홈런왕 기록을 수립하였다. [21] 팬들은 심정수의 정확도 하락에 대단히 아쉬워하면서도 여전히 장타력은 살아 있음을 확인했고, 2008년에는 더 나아질 거라며 기대했다.

그러나 2008년이 돌아오자 왼쪽 무릎 부상이 재발했다. 결국 시즌 아웃. 역시 한 시즌을 통째로 날리며 재기와 명예회복을 노렸지만, 무릎이 더 이상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결국 33세의 젊은 나이에 갑작스러운 은퇴를 선택했다. 다음 시즌에 부활하리라는 보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현명한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삼성 팬들에게는 안 좋은 기억이 될 수밖에 없었다.(…) 팬들 입장에서도 여러 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선수.

fa로 삼성라이온스에서 4년간 뛰면서 친 홈런은 총 63개. 4년총액 60억에 계약했으니 홈런하나당 1억씩 받음셈ㅎㅎㅎ

3. 은퇴 후

은퇴 직후에는 잠시 삼성의 어린이 야구교실에서 리틀야구팀을 지도하다가,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스포츠 매니지먼트와 야구이론을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양준혁이 했던 "내가 야구하면서 본 야구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이승엽심정수다"라는 칭찬답게 타격이론에 해박하고 평소 영어에도 관심이 많아, 국내 복귀 후 어느 팀이든 간에 지도자 생활이 가장 기대되는 선수이다. 덤으로 선수시절 내내 끊임없는 영어공부를 많이한 성실한 선수로 기억되는 선수이다.

2009년 기사

2011년 3월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에 연수 간 전준호가 심정수 집에 들러 찍은 사진. 샌디에이고 주립대(UCSD)에서 스포츠 심리학을 전공 중이라고 한다.#

2015년 1월 LG 스프링 캠프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야구하는 아들들 뒷바라지하는 재미에 빠진 듯. 조만간 그라운드에서 심정수 2세들을 볼 수 있을 듯하다. #

4. 약물 의혹

심정수 금지약물복용설은 지금도 인터넷 야구커뮤니티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는 떡밥.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OB 시절과 전성기인 현대 유니콘스 시절의 심정수를 비교해보면 야구선수에서 보디빌더 수준으로 몸이 불어났다가, 삼성에 간 이후로는 다시 몸이 작아져 은퇴 후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즈음엔 위 사진에서 보듯 대표적인 쌕쌕이였던 전준호보다도 몸이 작아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무릎 부상이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이 아니냐는 가설도 꽤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평균 20~30홈런 내외를 기록하던 선수가 갑자기 50홈런 가까이 치게 된 것에 대해서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인지 KBO 선수 중에서 직접 걸린 소수의 선수를 제외하면 비공인 약물 의심 선수 1순위이다. 게다가 한창 리즈시절 때 국가대표를 계속 불참한 것도 의구심을 증폭시키는 데 한 몫했다.

그런데 사실 2001년 야구월드컵에 국가대표로 출전한 적이 있긴 하다. #, # 그러나 심정수의 홈런 개수가 급격히 증가한 시점이 2002년이라는 점과 그 이후부터 국가대표를 불참한 것 또한 명백한 사실이다.

가장 의심가는 행동은 2004년 FA 때 삼성이 영입하면서 계약서 작성 전에 기본적으로 해야되는 메디컬 테스트를 거부한 것. 당시 거부하면서 했던 말이 명언인데, 날 못 믿는 팀에서는 선수 생활 안 한다였다. 게다가 선수 생활 마지막인 삼성 시절 시력 저하, 무릎 부상 등으로 결국 은퇴했는데, 금지약물을 장기간 사용했을 시 나타나는 전형적인 부작용이 시력저하와 무릎부상이라 의혹을 사기가 충분했다. 날씬한 초기 시절과 확연히 차이가 나는 달덩이 같이 불어터진 얼굴은 심증은 매우 의심이 간다는 것이 사실.

4.1. 약물 의혹에 대한 반박

평균 20~30개의 홈런을 쳤던 심정수인데 그 20~30개 치던 시절은 가장 홈런이 나오기 힘든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야구장을 홈으로 썼을 때의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잠실을 홈구장으로 쓰면서 2자리수 홈런을 꾸준히 기록하는 정도만 되어도 확실한 일발장타력을 갖춘 선수라고 평가받으며, 20홈런을 넘겨본 타자일 경우 적어도 파워만큼은 확실하게 검증된 선수로 평가받는다. 잠실을 쓰던 시절의 심정수는 체격이 꽤나 슬림했었던 프로 2년차에 이미 1위와 불과 4개밖에 차이나지 않는 21홈런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OB-두산 시절 100경기 이상 출전했던 5시즌에는 언제나 18홈런 이상을 쳐줬다. 따라서 없었던 파워 포텐셜이 생긴 것이 아니라 체격과 관계없이 원래부터 톱클래스의 파워 포텐셜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또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몸이 불어났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심정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웨이트 트레이닝에 관심을 가졌고[22] 프로 입단 후 본격적인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여 10kg를 찌운 결과 이미 두산 시절에 몸을 완성하였고 그 몸을 계속 유지하였다. 지금은 사진이 뜨지 않지만 흔히 현대 시절에 몸을 불렸다고 알려진 사진도 1999년, 즉 두산 시절에 촬영한 사진이다.[23]

결국 당대 최고의 강타자인 이승엽과 경쟁할 수준이 되고 1999~2003년의 기록적인 타고투저 시기에 접어든 상황에 엄청난 투고타저구장인 잠실구장에서 잠실과 비교했을 때 훨씬 타자친화적 구장인 수원구장[24][25]으로 홈구장을 옮겼다. 그리고 비록 이 것이 선수 생명에 발목을 잡았지만 김용달 코치와 함께 타격 폼도 바꾸면서 홈런 양산에 불붙이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게다가 야구월드컵에도 출전한 것으로 보아 더더욱 약물 의혹을 제기하기는 어렵다.[26] 게다가 2004 올림픽 예선에 출전하려다가 부상을 당해서 중도에 하차한거지, 안 나간게 절대 아니다. 그러나 당해 대회에서 씻을 수 없는 참사를 당하며 2004 아테네 올림픽 본선 출전에 실패하게 된다(...)

위에서도 수차례 언급되었지만 심정수는 당시 웨이트 트레이닝 같은 개념이 전혀 없던 한국야구에서 웨이트트레이닝의 선구자였으며, 보는 사람이 질릴 정도로 경기 내내 계란을 까먹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는 지금처럼 웨이트트레이닝 방법론과 영양학이 널리 퍼져 있던 시기가 아니었으며 진짜 몸만들기에 관심이 많던 사람들이나 신경쓰던 시절이다. 90년대만 해도 힘센 사람이라면 지금처럼 식스팩 복근을 단련한 몸짱이 아니라 씨름선수를 떠올리던 시절이었다. 단백질 관련 식품 따위는 당연히 없었는데, 그 시절부터 집중적인 단백질 섭취와 벌크업을 반복하면서 올바른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는 수많은 증거가 있다. 당시에 사람들이 심정수와 같은 벌크업을 잘 하지 않았던 건, 지금처럼 닭가슴살 상품이나 단백질 쉐이크, 프로틴바 등 단백질을 단기간에 보충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 대량의 단백질 섭취가 대단히 고역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루에 계란 한 판을 까먹는다는 건 말이 쉽지 하루에 5개만 먹어도 물리는 게 보통 사람이니 정말 영양섭취에도 대단한 노력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런 증거들은 싸그리 무시하면서 심정수의 벌크업을 약물 덕으로 치부하는 건 선수의 노력에 대한 모욕에 가깝다.

그리고 흔히 말하는 '날 못 믿는 팀에서는 선수생활 안 한다'란 발언은 심정수에게 관심을 보이던 삼성이 시력에 문제를 제기하자 한 발언이며 와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시력 저하는 라식수술 부작용 때문이란 것은 다 알지 않는가? 라식수술 부작용이 심정수의 커리어를 발목잡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약물 복용 의혹을 키우기 위해 거의 의도적으로 끼워맞춘 수준이다.

심정수가 가장 억울한 점은 프로야구 약물 떡밥에서 심정수에게 크게 쉴드를 쳐줄만한 사람이 많이 없다는 것이다. 두산팬들에게는 그저 OB 시절의 옛날 선수이다.[27] 심정수가 전성기를 보냈던 현대 유니콘스는 처음부터 (엘롯기에 비하면) 팬이 많지 않았으며, 그마저도 수원야구장 시절에는 더더욱 줄어들었고 2008년 해체와 넥센으로의 재창단 그리고 연이은 트레이드파동을 거치면서 남아있던 팬조차도 대부분 흩어졌다. 이렇기에 과거 현대팬이라도 심정수는 세월이 흘러 이제는 옛날 선수이거나, 넥센의 팬들에게는 딱히 관계가 없는 인물이다.[28] 심정수가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보냈던 삼성팬들에게는 먹튀로 좋지 않은 이미지가 있다. 즉 현재 야구팬들 중에 열성적으로 나서서 심정수를 옹호해줄만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 쉴드가 중요한 게, 진짜 약물 복용이 확실시된다면야 쉴드쳐줄 가치가 전혀 없으므로 별 의미가 없겠지만, 심정수처럼 단지 의혹인 상태에서는 쉴드를 쳐주면서 반박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경우 그 의혹이 점점 많은 사람들에게 믿음과 확신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약물 떡밥이 풀릴 때는 보통 무릎 부상이 심했던 다른 강타자들도 어느 정도 언급되는데, 김재현이나 김상현처럼 무릎부상을 크게 겪었던 선수들에 대해서 약물 떡밥이 언급되면 대개의 경우 "그 부상 이후에 큰 부상 없이 고령의 나이까지 꾸준히 활동했다.", "스테로이드로 인한 근육량의 증가가 없다.", "원래 힘만큼은 장사였다.", "심리적인 안정으로 포텐이 터진 것이다.", "첫 풀시즌에 무릎에 무리가 온 것이다." 등의 납득할만한 반박을 여러 팬들이 해준다.

그러나 심정수 같은 경우에는 약물 의혹을 반박할 만한 사실이나 정황은 상당히 많지만, 정작 이런 사실들을 바탕으로 약물 의혹에 대해 반박을 해 줄 사람들이 별로 없다. 게다가 당시 프로야구의 인기가 침체기였고 심정수의 소속팀은 그 상황에서도 가장 인기가 없는 현대였기에 반박을 할 만한 사실들도 꽤 묻혀있다. 이러다 보니 약물 떡밥에서 약물 복용이 확실한 리오스 다음으로 집중 포격을 받기가 쉬워지며 많은 사람들이 심정수를 약물 복용을 했을 것이라고 믿게 되는 것이다.

결론을 정리해보면, "원래 힘이 장사인 선수가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힘이 더 커지고 극악의 투고타저 구장인 잠실을 벗어난 데다가 이승엽이라는 훌륭한 경쟁상대 덕분에 기록적인 타고투저 기간 동안에 역사에 남을 만한 성적을 기록하게 되었으며, 이 리즈시절을 거쳐 라식수술과 과도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인한 각종 부상 때문에 일찍 선수생활을 접게 된다."로 굳이 약물 복용을 포함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연결이 된다.

## 약물의혹에 대해 좀더 세분해서 반박한 글

또한 이 약물의혹은 기존 국내야구계가 '야구선수는 유연해야 한다.', '웨이트를 많이 하면 유연성이 떨어져서 수비가 망가지고, 부상이 많아진다.' 식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도 한몫한다.[29] 동양인은 웨이트해봤자 "몸이 버티지 못한다", "파워는 안늘어난다"는 편견도 상당했다. 이 때문에 심정수의 벌크업과 파워증가를 웨이트 트레이닝이 아니라, 약물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2012년 이후 넥센 히어로즈가 이지풍 코치의 주도아래 체계적인 웨이트트레이닝으로 엄청난 장타력을 선보이자, 국내야구계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특히 김민성유한준이라는 걸출한 성공사례를 통해서, 벌크업의 효과를 다들 체감하였다.

박동희가 메이저리그에 취재를 갔을 때, 거기서 인터뷰한 메이저리그 코치가 다르빗슈 유도 메이저리그에 와서 했던 말이 "이 좋은 걸 왜 여태 안 했을까..." 라며 웨이트 트레이닝을 안 한 것을 후회했다. 그보다 앞서 메이저리그 안착에 성공했던 박찬호도 늘상 운동을 했고, 강정호가 메이저리그 포스팅을 앞두고, 메이저리그에 대비하기 위해, 몸을 만들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서 심정수도 약물이 아니라 성공적인 웨이트트레이닝 예시로 설명할 수 있다.

5. 기타

  • 넥센 히어로즈에 있다 2015 시즌에는 한화 이글스로 이적한 오윤이 심정수와 비슷하게 닮아서 짭정수, 오라클레스로도 불린다.하지만 타격은... 재밌게도 오윤은 현대 유니콘스 시절에 지명되어 심정수와 같이 선수생활을 했었다. 그리고 심정수가 삼성으로 갈 때 등번호를 오윤이 물려받았다.[34]
  • 2013년 10월 2일 마구마구에서 레전드 카드가 나왔는데심정구, 최고의 기록을 남긴 현대 유니콘스가 아닌 우동수 트리오를 이끌었던 시기를 감안해 두산 베어스의 레전드로 나왔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프로야구 매니저에서는 현대의 레전드로 나왔다.[35] 나중에 심재학이 두산 레전드로 추가되자 대부분의 OB-두산팬들이 "무슨 마약하시길래 이런생각을 했어요?"라는 질타와 함께 차라리 두산 심정수를 레전드로 내달라고 요청하기도. 실제로 박재홍도 SK와 현대로 나누어서 레전드 카드가 나왔다는 점에서 실현 불가능하진 않을텐데... 2014년 말 성명권 문제로 인해 선수카드명이 본명이 아닌 '심경수'로 변경하게 된다.
  • 여담으로, 이사만루 시리즈의 2015에서 희귀한 가명 중 하나인데, 류현진(류한제) 등등 사진이 나와있지 않는 가명 선수들이 대부분인데, 심정수는 심종선으로 나오면서 대놓고 사진이 나와있다 그럼 어떻게 보냐고? 검투사 헬멧

6. 연도별 기록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4

OB

32

61

.164

10

4

0

3

9

4

0

4

.377

.215

1995

116

362

.282

102

19

0

21
(4위)

59

63

4

37

.508
(4위)

.344

1996

107

371

.248

92

15

3

18

54

51

4

48

.450

.331

1997

40

122

.246

30

5

0

5

22

17

2

22

.410

.359

1998

126

477

.294

140

29

4

19

73

71

4

39

.491

.346

1999

두산

132

480

.335
(5위)

161

35
(4위)

1

31

110
(5위)

79

1

61

.606

.408

2000

126

454

.304

138

21

2

29

91

75

3

79

.551

.40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1

현대

107

381

.294

112

19

1

18

70

67

8

71

.491

.404

2002

133

502

.321
(4위)

161
(4위)

22

1

46
(2위)

119
(2위)

101
(2위)

2

72

.643
(2위)

.404
(5위)

2003

133

460

.335
(2위)

154

16

1

53
(2위)

142
(2위)

110
(3위)

6

133
(1위)

.720
(1위)

.478
(1위)

2004

102

367

.256

94

14

1

22

78

64

0

81

.480

.385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5

삼성

124

433

.275

119

14

0

28
(2위)

87
(3위)

77
(3위)

3

93

.501
(5위)

.402
(4위)

2006

26

85

.141

12

1

0

1

7

8

0

10

.188

.229

2007

124

427

.258

110

17

0

31
(1위)

101
(1위)

64

6

86

.515

.381

2008

22

68

.235

16

0

0

3

7

8

0

20

.368

.409

통산(15시즌)

1450

5050

.287

1451

231

14

328
(5위)

1029

859

43

856

.533

.387


  1. [1] 동대문상고와 청원고는 엄연히 다른 학교이다. 청원고는 동대문상고와는 별도로 설립한 일반계 고등학교이고, 동대문상고는 청원정보산업고로 교명을 바꿨다가 2001년 일반계인 청원여자고등학교로 전환했다. 하지만 동대문상고 야구부는 청원고로 이관되어서 동대문상고 출신 선수들에게 (현 청원고)라고 표기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동대문상고는 여고로 바뀐 거다. 단지, 야구부 때문에 청원고로 이관되었을 뿐. 모교는 여고가 됐고, 야구부는 다른 학교로 가버렸다 안습
  2. [2] 입단 직후만 3루수, 1995년 부터 외야전업 2004년까지 우익수였다. 삼성으로 이적한 2005년 부터 은퇴 할 때까지 좌익수로 출장
  3. [3] 홈런 심정수 날려버려 날려버려 홈런 심정수 랄라라라라라라(X2)
  4. [4] 굉장히 저평가 받는 타자이기도 한데, 투타합쳐서 역대 WAR 15위권안에 들어가고, 단일시즌 WAR으로 보면 03 심정수가 97 이종범보다 높다. 참고로 스텟티즈 기준으로 단일시즌 WAR은 94이종범-15테임즈-03심정수-97이종범-96이종범순이다.
  5. [5] 3루에는 안경현이 있다가 안경현은 심정수의 친구인 김동주가 입단하자 2루로 김동주는 3루를 은퇴 할 때가지 보게 된다.
  6. [6] 밑에 통산 성적에도 나와 있듯이 1997시즌은 40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는데 군 문제(결국 면제가 되었다)와 부상이 겹쳤고 2000년이 되어서야 밝혀졌지만 가정적인 문제(이혼을 했다)도 겹쳤다.
  7. [7] 당시 플레이오프에서 심정수가 기록한 안타는 이들 3개의 홈런이 전부였는데, 그게 모두 결승홈런이었던 것. 특히 마지막 6차전의 결승 홈런은 연장전 승부에서 쳐낸 것이어서 더욱 두산 팬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8. [8] 웨이트 트레이닝 이전의 심정수의 모습은 얼굴을 제외하면 정수빈보단 박건우와 비슷했다. 체격이나 장타력, 우타 외야수라는 포지션 등등
  9. [9] 다만, 2009년에 활약이 저조했으나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 정점을 찍는다.
  10. [10] 심정수 본인은 후의 인터뷰에서 이 때는 후배로서 동기인 김재현과 함께 주로 선배들의 결정을 따르는 쪽이었다고 말했다.
  11. [11] 이 때 심정수를 위해서 급하게 검투사 헬멧을 제작한 게 당시 현대 유니콘스 운영팀 과장이었던 염경엽이다.
  12. [12] 파크팩터 보정도 같이 판단하는 WRC+는 스탯티즈 기준 210.7.
  13. [13] 그해에 심정수의 3관왕을 저지했던 선수는 .342를 기록한 두산시절의 친구 김동주였다.
  14. [14] 사실 이승엽의 2003시즌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시즌이기는 하지만, 세이버 스탯으로 따지면 오히려 99이승엽과 02이승엽이 더 고평가를 받는다. 베이스볼 랩 wRC+기준 03이승엽, 99이승엽은 190, 02이승엽은 197이다. 그러나 03심정수는 208로 이승엽의 어떤 해보다 더 높다. 참고로 10이대호가 192 94이종범이 198 15테임즈가 219(...) 82백인천이 225(...) 신들의 전쟁
  15. [15] 심정수는 심재학, 심성보와 함께 1990년대 말~2000년대 초까지 KBO 최고의 강견 중 한 명이었다.
  16. [16] 이 때 삼성에서 나온 명언이 그 유명한 "구단이 돈이 없잖아요". 이 때문에 삼성은 거지성이라는 별명으로 조롱당했다. 2016년부터는 진짜 거지성이 되었다.
  17. [17] 더군다나 현대가 임시연고를 두었던 수원시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축구가 강세이다.
  18. [18] 친정팀 두산 동료 박명환, 정수근, 홍성흔과 함께. 여담으로 익히 알다시피 이 짤방에서 두산 유니폼을 입고있는 사람 모두 본인과 그 옆에있는 사람처럼 FA로 유니폼을 갈아입게된다.근데 맨 오른쪽 사람은 다시 두산으로 돌아왔다
  19. [19] 실제로 STC가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에게 개방된 것은 심정수가 은퇴하고 난 바로 다음 해였던 2009년이었다.
  20. [20] 에피소드로, 독일 재활 당시 2006 독일 월드컵 직전이라 레버쿠젠에서 최종 훈련을 하고 있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을 만나며 선전을 기원하기도 했다.
  21. [21] 당해 시즌 초반에 극심한 타격슬럼프가 원인이기도 했지만 이 시즌에 심정수는 단 한번도 3안타 이상을 기록한 경기가 없었다. 즉, 시즌 초 부진이 그 시즌 전체타율을 깎아먹게 된 셈. 그러나 세이버스탯을 보면 war 5.15에 wrc+ 153.8이라는 대단한 스탯을 기록한다. ops는 896인데...출루율이 381로 자기 타율보다 무려 1할이상이 높다. 그리고 이 시즌은 06에 이어서 투고타저 시즌이기도 하다. 07시즌은 낮은 타율때문에 저평가된 케이스다. 세이버관점에서 본다면 심정수는 매우 뛰어난 타자임을 알수있다.
  22. [22] 이것은 상당히 잘 알려져 있는데도 이상하게 약물 떡밥만 나오면 잊혀지는 사실이다.
  23. [23]1999년에 심정수는 31홈런 OPS 1.014를 기록했다.
  24. [24] 수원구장의 사이즈는 좌우 95m 중앙 120m 펜스높이 2.5m이다. 심정수가 원래 썼던 잠실과 비교하면, 잠실은 좌우100m 중앙 125m 펜스높이 2.6m이므로 전체적으로 못해도 5m의 이득을 보는 상황. 당연히 홈런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25. [25] 그리고 kt 위즈가 창단 후 홈으로 쓰게 되며 리모델링 하면서 좌우가 98m로 멀어졌다지만 빅데이터를 통해 분석한 결과 바람이 우타자에게 유리하게 부는 성향을 토대로 댄 블랙(양타자), 마르테, 유한준, 박경수, 김상현을 영입했고, 2015년 외야 중앙의 펍을 넘긴 두 선수도 리그를 호령한 박병호와 홈런 라이벌 테임즈가 아닌 이호준임을 생각하면 더 규격이 작은 시기인 현대의 수원 임시 홈 시절 심정수의 홈런이 늘어날 상황이다.
  26. [26] 야구 월드컵은 항상 도핑 테스트를 실시하며, 두산의 김재환이 여기서 도핑 테스트에 걸리기도 했다.
  27. [27] 게다가 현재 두산 팬덤은 김경문 감독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거치면서 새로 유입된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28. [28] 재창단 과정을 거치며 넥센으로 온 현대팬들도 있지만 넥센이 확실히 자리잡은 2012년 이후 유입된 팬들에게는 현대가 막연하고 생소할 수 밖에 없다.
  29. [29] 아직까지도 이런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들도 상당히 많다. 대표적으로 웨이트트레이닝할 시간을 주지 않고 무조건 살을 빼게 시키게 하는 김성근 감독.
  30. [30] 계란에 다른 별명들을 합친 것으로 계란 파는 사람이 아니다 현대 유니콘스 시절, 경기 중에 삶은 계란을 한 판은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고 해서 생긴 별명. 이 별명답게 경기 중 현대쪽 벤치를 보여줄 때면 삶은 계란을 땅콩먹듯 먹고 있는 심정수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이런 심정수마저 침몰시킨 오키나와 캠프의 위엄 http://sports.news.naver.com/kbo/news/read.nhn?oid=109&aid=0000005941#
  31. [31] 당시 '이승엽은 허리로 치고 심정수는 힘으로 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힘 하나는 장사였다.
  32. [32] 라식수술 후 공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처참하게 몰락하면서 생긴 별명으로, 공이 보이지 않아서 귀로 공이 오는 소리를 듣고 친다는 청각타법드립이 심정수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33. [33] 리그 Top 5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보통 94이종범, 82백인천, 91장종훈, 96양준혁, 02이승엽 등과 함께 03 심정수는 꼭 들어간다. 10이대호 01호세는 여기 낄 데가 아니다 전부 엘리트카드 아니면 EX카드 그리고 이제 (타격 한정)15테임즈가 압도적 원탑이다
  34. [34] 다만 현대에서 히어로즈로 바뀔 때는 32번이 아닌 다른 번호로 바꿨다.
  35. [35] 덧붙히자면 최초 레전드 16명 중 한 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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